2017년 12월 31일 일요일

클럽 연주.


올해 마지막 연주는 작은 클럽에서 친구들과 함께 했다.
엊그제 금요일 밤의 일이었다.
아침에 악기 두 개를 놓고 고민을 하다가 플렛리스 프레시젼 한 개만 가지고 가기로 정했다.
기타가 네 명, 하모니카 연주자도 있었다. 화음과 멜로디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반주를 하고 싶었다.

감기몸살을 한참 앓았다.
겨우 회복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았었나 보다.
연주를 마친 후에 통증이 많았다.
새해엔 더 많이 움직이고 부지런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십 분 후에는 새해가 되어 달력이 넘겨질 것이다.
좋은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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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와 동물병원에.


작년 12월 31일에도 고양이 이지는 동물병원에 있었다.
다른 동물병원으로 옮겨 다니면서 한 해 동안 이지는 수술을 받기도 했고 주사를 맞고 피를 뽑는 일을 반복했었다.
이제 아프지 않게 되어 스스로 밥을 먹으며 지내고 있다.
오늘은 혈액검사를 다시 했다. 좋지 않았던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몸무게도 늘었다.

두어 달 먹일 수 있는 약을 지어 이지와 함께 집에 돌아왔다.

새해에는 고양이들도 사람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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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9일 금요일

새 아이폰.


아이폰 텐을 구입한지 두어 주 되었다.
무선충전은 몹시 편하다.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애플은 앞으로 남아있는 충전단자 구멍도 없애려는 모양이다.

홈버튼이 없어진 것도 무척 쉽게 적응이 되었다.
겨우 버튼이 없어진 것일 뿐인데 힘을 주어 누르는 동작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편리할 수가 없다. 새 인터페이스는 몇 분만에 익숙해졌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문화는 늘 일정 시간 지체된다. 기껏 물리적인 버튼을 없애줬더니, 가상버튼을 만들어서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원래 그런 것이다.
아이폰이 국내에 처음 들어왔을 때에 누구나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 것이 싫다며 한참 동안  폴더폰을 고집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원래 그런 것이다. 습관이거나 취향이거나 간에 자신에게 편한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위의 사진은 아직 서랍 속에 보관하고 있는 아이폰 5s 로 찍은 것이다.
더 이상 쓸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여전히 집안에서 원격 카메라로 사용하거나 메트로놈, 튜너, 메모녹음기, 애플뮤직 플레이어로 쓰고 있다. 얼마 전에 iOS 11.2.1 로 업데이트를 했고, 체감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불필요한 동작은 모두 꺼두고 있다. 충전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제 할 일을 해주고 있다. 이 기계는 2013년에 구입했었다.

최근 애플에 대한 뉴스가 가득하다. 언론들은 신이 난 것 처럼 보인다.
구형기기를 더 오래 쓸 수 있도록 했더니, 사람들은 '속았다'며 화를 내고 소송을 벌이고 있다.
그것도 원래 그런 것이다.
이번 기회에 애플에게 구형 기기의 배터리 교체 프로그램 같은 것을 준비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역시, 그럴 리가 없다.
대중은 원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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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0일 수요일

함부로 하지 않기.

페미니즘이 젠더의 구별이나 성차별에 관련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작은 부분일지도 모른다.
여성운동은 권력과 복종, 억압과 자유, 지배와 피지배, 합리적 이성과 무지, 그리고 인간성 회복에 더 깊이 상관이 있다.

그리고 남자들은 쉽게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면 안 된다. 그것은 여성모독일 수도 있다.
사내들은 체험할 수도 짐작할 수도 없는 일들을 이 땅의 여자들이 평생 겪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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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9일 화요일

송년공연


밴드와 함께 하는 올해의 마지막 공연을 했다.
작은 공간에 퍼지는 소리가 좋았다.
두 개의 악기를 가져갔는데 두 개 모두 악기의 상태가 가장 좋았다. 연주 도중에 그냥 마지막 곡까지 플렛리스로 해버릴까 하는 충동이 일었었다. 절반은 플렛리스 프레시젼으로, 나머지 절반은 재즈베이스로 연주했다.


이 밴드와 벌써 십 년이 넘었다.
한 곡 한 곡 모두 나에게도 의미가 있는 셋리스트였다.
어린 시절에 실시간으로 음반을 샀던 곡들을 십여년간 원작자와 함께 연주하며 보냈다.
열 몇 살 무렵 나는 훗날 이런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지독한 감기몸살로 온몸이 다 아팠다.
컨디션만 더 좋았다면 공연을 더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올 때에 몹시 힘들었다.
병약하기도 하지, 해 마다 독감에 꼭 걸린다.

이제 이 달 말에 이태원에서 블루스 공연을 하고 나면, 올해가 지나간다.
세월은 무겁고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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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4일 목요일

학기 마무리.


한 학기를 마쳤다.
십 년 동안 해오고 있는 일인데 해마다 다른 기분이 든다.
시간은 참 빠르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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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5일 토요일

블루스 공연.


친구들과 춘천에서 블루스 공연을 했다.
건축가 김수근의 붉은벽돌 건물이 있는 곳, 그동안 여러 사람들과 여러번 찾아와 공연을 했던 장소였다. 그 이전에는 이곳에서 마주보이는 의암호를 지나 북한강 앞 군부대에서 군복무를 했었다.

공연을 마련한 분들이 준비를 잘해주신 덕분에 연주하는 것이 모두 편했다. 바깥에는 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뒷풀이 장소는 신발을 벗고 다리를 접어 앉아야 하는 곳이었는데 그것때문에 조금 나아졌던 허리통증이 재발하고 말았다. 친구들에게 조용히 인사를 하고 그곳을 빠져나와 안개가 지독한 고속도로를 달려 돌아왔다.

2017년 11월 6일 월요일

통증, 손톱, 근심거리.

내 손톱은 언제나 말썽이다.

사소한 걱정이 반복되면 그것도 고질적인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모양이다.
내 오른손 검지손가락 끝은 언제나 아프다.
이렇게 오래 악기를 연주해왔는데도 여전히 손톱 끝이 자주 들려서 통증이 느껴진다.
조금 괜찮은 것 같아서 다시 연습을 계속하면 어김없이 손톱이 덜렁거리는 느낌과 함께 손끝이 줄에 닿을 때 마다 아프다.
그러면 연습을 쉬어야 했다.

그런데 이 증상은 낫지 않는다. 통증이 완화되지도 않는다.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
연습과 연주를 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아프거나 말거나 그냥 계속 하기로 했다.
설마 손톱이 완전히 들려서 빠지지는 않을 것 아닌가, 생각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아파도 참고 계속하면 어느 순간에는 괜찮아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괜찮아지다가 다시 나쁜 느낌과 함께 통증이 찾아온다.
그러면 그것을 무시하고 다시 계속하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도 하고 싶은 만큼 잘 해내지 못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할 것인지 나는 아직은 잘 모른다.

사소한 근심거리는 또 있다.
악기들의 네크는 언제나 말썽을 부릴 준비를 하고 있다.
조금만 네크가 휘면 연주 자체가 어려워진다.
소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손끝이 늘 아프기 때문에 네크의 상태가 나에게는 더 민감하게 느껴진다.
어떤 악기는 트러스로드를 늘 조정하고, 바디와 네크를 분리해야만 하는 악기는 줄을 느슨하게 풀어둔 채로 하드쉘케이스에 눕혀 넣어뒀다.
지난 세월 동안 하루도 이 문제로 편안한 적이 없었다.

허리는, 이제 너무 많이 아프다.
진통제도 먹었고, 스트레칭도 해봤다.
허리를 쓰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이 답이라고, 나보다 먼저 아파보았던 친구들이 말해줬다.
그럴 수가 없기 때문에, 그냥 아픔을 참는 수 밖에는 없다.
점점 그런 것이, 지겨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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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5일 일요일

일요일.


일요일인데, 두시 반이 되어서야 침대에서 일어났다.
허리 통증이 극심해졌다.
지난 밤에 맛사지를 받았다. 몸이 나른해졌던 때문이었는지 거의 여덟 시간을 잤다.

커피 콩을 갈아 기계에 넣고 물을 담았다. 커피가 내려지는 동안 진공청소기를 들고 청소를 했다. 매일 청소를 하는데 매일 비슷한 양의 먼지와 고양이 털이 수집된다.
청소를 하면서 오늘 해야 하는 일들을 떠올렸다.
해야 하는데 하기 싫은 일은 없었다.
하고 싶은데 제약이 있는 일들 뿐이었다.

고양이들은 자다가 일어나 사료를 달라고 보채었다.
이지는 청소를 하는 동안에 세 번이나 사료를 먹었다.
꼼이와 까만 초등학생 고양이는 뛰어 놀고 있었다.
까치 한 마리가 베란다의 난간에 잠시 앉았다가 날아갔다.
고양이 꼼은 바구니 안에 들어가 모처럼 잠을 청하려 하고 있었다. 분명히 소리도 나지 않았고, 꼼에게는 보이지도 않는 각도였는데 까치가 날아오르기 직전에 고양이 꼼이 바구니에서 뛰어 나와 베란다로 달려갔다.
놀라운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고양이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 것일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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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4일 토요일

본 것 몇 가지.

영화 몇 편을 보았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일찍 시작한 한국영화가 있었다.
유튜브에서 그 영화의 예고편을 보았을 때에 나는 그 영화가 후질 것을 미리 알았다.
그리고 그 영화의 첫 장면이 시작되었을 때에 나는 과연 이 영화가 유치할 것도 알 수 있었다.
좋은 배우들을 데려다가 쓸데없이 써먹는 영화들은 언제나 있었다.
음악도 유치했다.

십 몇 년 전에 시작하여 몇 해 동안 HBO에서 방영했었다는 미국드라마를 보았다.
The Wire 였다.
좋은 시리즈물이었다.
음악도 훌륭했다. 에피소드 마다 그것을 잘 드러내는 음악들이 들렸다.
영어자막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나중에 검색하여 알고보니 방언과 은어를 잘 골라서 대사에 끼워넣었다고 했다. 많은 미국인들이 재미있게 볼만 했던 드라마라는 것을 잘 알았다.

이 시리즈물에서 인상 깊었던 캐릭터는 Omar Little 이었다.
인기를 끌 수 있는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 배우가 묘사하는 인물이 입체적이었다. 훌륭했다. 그 배우에 대해 찾아 읽어보았다.
Michael Kenneth Williams 라는 인물이었다.
예상했던대로 가장 많이 인기를 모았던 캐릭터로 이 배우의 이름이 알려져있었다. 얼굴에 세로로 길게 나 있는 상처가 그의 실제 흉터라는 것도 알았다.

이 배우는 약국에서 일을 하다가 자넷 잭슨의 앨범 Rhythm Nation 1814를 듣고 각성하여 직장을 그만뒀다. 그 후 댄서가 되기 위해 배우고 커리어를 쌓기 위한 일을 하다가 Tupac 의 비디오에 출연하면서 배우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음악이 어떤 사람을 다른 예술의 길로 이끌고, 그가 다시 음악과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 예가 많이 있었다. 이 배우의 인생도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됐다.
미국에서 흑인배우의 쓰임새가 따로 존재하기도 하는 것이겠지만, 마이클 윌리엄스는 오마 리틀의 연기를 통해 그 영향을 더 넓혔다.
나는 자넷 잭슨의 음반을 틀어두고 노랫말을 검색하여 훑어 보았다.
80년대 끝물에 나왔던 앨범으로 당시의 사운드가 잘 담겨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을 가사의 내용들이라고 했다.
이 음반은 미국 내 흑인들의 머리속을 각성시키고, 그것에 영향받은 배우를 만들어 낸 앨범이 되었다. 그 배우는 이후 미국 흑인들의 메세지를 쏟아내었던 힙합 뮤지션과의 인연으로 다른 많은 힙합 아티스트들의 댄서로 활동하였고, 나중에는 TV 시리즈의 중요한 캐릭터를 맡았다. 다시 그 영향이 미국의 흑인과 다른 인종들에게까지 퍼지게 되었다. 이것은 좋은 스토리라고 생각했다.

나의 작은 나라에서는 위와 같은 좋은 스토리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 영향이 미약하고, 그저 볼티모어의 작은 코너에 지나지 않을 음악시장터 안에서 서로 생존을 위해 약을 파는 것 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가득한 것 같았다. 그것에는 어떤 새로운 생각도, 반성도, 각성도 이루어지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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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2일 일요일

1년 석 달.


고양이 순이가 떠난지 1년 3개월이 지났다.
순이가 향기를 맡으며 놀았던 꽃은 여전히 새로 피어나고 있었다.
아내가 그릇에 물을 담고 꽃의 가지를 잘라 테이블 위에 올려뒀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그 꽃잎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손에 모아 순이의 재가 담긴 상자 위에 올려뒀다.
꽃잎은 천천히 마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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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9일 목요일

허리 통증이 심해졌다.

운전을 오래 하고, 짐을 조금 날랐다.
긴 하루를 보내고 저녁부터 밤까지 약속했던 일정을 했다.
일교차가 커졌다. 낮에는 23도, 밤에는 섭씨 8도까지 내려갔다.
감기기운이 시작되었다.

집에 돌아왔더니 열 한 시가 넘었다.

허리에 통증이 심해졌다.
이마에는 열이 났다.
그런데 내일 모레에는 최소한 여덟 시간 이상 운전을 해야 한다.
더 아파지지 않도록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싶었다.

이틀 동안 청소를 하지 못했더니 바닥에 고양이 털이 뭉쳐서 공처럼 굴러 다녔다.
내일 낮에는 목욕을 하고 청소를 할 것이다.
허리의 통증이 덜 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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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8일 일요일

울산에 다녀왔다.


아침에는 오랜만에 아슬아슬한 운전을 해야했다.
예상했던 것 보다 도로에 차가 많았다.
왕십리를 지나 을지로의 좁은 도로를 빠져나갔다. 겨우 서울역에 도착했다.
예상했던 시간 보다 십오 분이나 늦었다. 역 앞에는 주차장으로 향하는 차들이 줄 서 있었다. 그것을 보고 당황했다. 주차를 하는데에 시간을 빼앗기면 어쩌나 싶었다. 알고 보니 한 대의 차량이 정차를 하고는 비켜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정작 주차장에는 자리가 많았다.
차를 세우고 역사를 가로질러 뛰어갔다.
출발 십 분 전에 열차에 올라 탔다.

잠이 부족했는데 기차에서 제대로 졸지도 못했다.
연주를 했던 시간이 짧게 느껴지기도 길게 느껴지기도 했다.

새벽에 돌아와 다시 도로를 달릴 때에는 느리고 천천히 운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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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6일 금요일

이지와 병원에.


이지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다녀왔다.
일주일 분량의 약을 새로 지었다. 용량과 함량은 이전 보다 더 적은 양으로 하였다.
이지의 입 안을 수의사선생님이 살펴보았다.
염증이 가라앉고 있다고 했다. 이제 더 센 약이나 스테로이드제를 투여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필요하다면 약을 다 먹은 후에 한 번 더 혈액검사를 하여 몇 가지 수치를 확인하여 수액을 맞추기도 하자고 논의했다.

자동차에 이지를 담은 가방을 조심스럽게 들여놓으며 '이제 집에 가자'라고 했다.
그 말은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는데도 가끔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온다.
아주 천천히, 뜨겁게 달궈진 쇠줄이 겨드랑이를 지나가는 듯한 통증을 느낀다.
어떤 것은 잊지 않고 있다가, 혼자 아파하고 혼자 슬퍼한다.

고양이 이지는 훨씬 더 편안해 보이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
1년 만에 처음이었다.
기쁜 일이다. 이대로 아프지 않고 말끔히 낫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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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일 일요일

이태원, 블루스 공연.


이태원에서 연주를 했다.
블루스 공연이었다.
도로가 막힐 것을 염려하여 일찍 출발했는데 금세 도착하게 되었다.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클럽에 가서 악기를 내려 놓았다.
혼자 길 건너에 있는 빵집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 먹었다.
드러머 대희가 밥을 먹지 않았다고 하여 빵집으로 불렀다. 샌드위치를 한 개 더 사고, 큰 컵으로 주문했던 커피는 종이컵에 따라 나눠 마셨다.

공연은 좋았다. 아마도 관객이 가득 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손님들은 자리를 지키고 끝까지 공연을 보아줬다.
연주의 질은 관객이 만드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다.

텅 빈 강변도로를 달려 집에 돌아왔다.
불 꺼진 집안에 들어와 악기를 꺼내어 스탠드에 걸어두고, 옷을 갈아 입고, 세수를 하고 발을 씼었다.
무엇인가 덜 채워진 기분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자려고 누웠는데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고양이 이지는 아내의 곁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까만 막내 고양이도 오늘은 큰형 고양이 곁에 붙어서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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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9일 금요일

고양이, 병원에서.


사진 속의 고양이는 집안에서 막내이다.
밤중에 혼자 깨어서 놀아주지 않는다고 칭얼대고 있었다.

오전에 고양이 이지를 병원에 데려가 수액을 맞추고, 오후에 수술을 받게 했다.
수술을 마친 이지를 보기 위해 병원 내부의 케이지에 다가갔다. 아내의 목소리를 듣자 담요 속에 고개를 숨기고 있던 이지가 반가운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작은 고양이가 큰 고생을 했다. 안스러웠다.

이지가 회복을 위해 다시 수액을 맞고 있는 동안, 나는 아내와 고양이를 동물병원에 놓아둔 채 합주를 하러 가야 했다.

한밤중에 집에 돌아와 아직도 회복 중인 고양이 이지가 아내의 머리 맡에 꼭 붙어서 자고 있는 것을 들여다 보았다. 이것으로 아픈 것이 다 낫게 되면 정말 좋겠다.
이지의 나이가 아홉 살이 넘었다.
첫째 고양이는 이제 열 살이 넘게 된다.
고양이들이 아프지 않고 잘 지내기를 바란다.
나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순이를 생각한다.
그 여름과 가을의 아프고 시렸던 기억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제일 어린 고양이는 칭얼거리다 지쳐 악기 밑에 드러누워 졸고 있다.
나도 곁에 다가가 바닥에 앉아서 고양이를 쓰다듬어줬다.



2017년 9월 22일 금요일

전주에서 공연했다.


길고 긴 하루였는데, 짧게 지나갔다.
고속도로 운전을 일곱 시간 했다. 다른 도로까지 합친다면 여덟시간 동안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덜 피곤하였다.

날씨는 맑았다. 전주에 있는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이라는 곳은 몇 년 전에도 왔었다. 그 때에 함께 출연했던 신해철 씨의 팀이 리허설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구경했었다. 야외공연장을 내려다보며 해철이형의 죽음을 떠올렸다.

리허설이 고단했다. 그곳이 잔향이 많은 곳이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처음부터 앰프의 음량이 너무 작다고 생각했다. 그 때에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결국 공연이 시작되었을 때에 케이블 불량으로 소리가 나지 않는 일을 겪었다. 긴 시간 동안 운전할 때에도 멀쩡했는데, 순간 갑자기 하루의 피로가 밀려들어왔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런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다급할 때에 도와줬던 스탭에게 다가가 수고하셨고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분에게도 긴 하루였을 것이다.
내가 가지고 다니는 케이블의 길이가 짧은 것이 늘 신경 쓰였었다. 한 달 전 부터 길이가 긴 좋은 케이블을 새로 구입하려고 했다가 그만뒀었다. 역시 한 개 사두어야 좋은 것일까 하는 고민만 하나 더 늘었다.

밤중에는 고속도로를 달리며 애플뮤직에 담아둔 새로 나온 음반들을 들었다.
운전하며 음악만 들었던 것이 하루 중 제일 좋은 일이었다.



2017년 9월 21일 목요일

일산에서 공연했다.


짧은 리허설을 마치고 긴 대기 시간 동안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오랜만에 만나는 다른 팀 친구들과 인사를 했다. 남을 만나 안부를 주고 받으면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자신의 모습이 변해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살기 때문이다.

방송사 쪽에서 맡고 있는 음향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지난 주 경주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음향을 체크하는데에 긴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주문한다고 해도 마음에 드는 소리를 얻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모니터 스피커의 음량을 거의 줄이고 경주에서처럼 무대 위의 소리에 의존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길 잘했다. 소리가 없는 것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세 곡만 연주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감기기운이 왔다가 갔다가 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아니라면, 가만히 있다가 땀이 나도록 덥고 그러다가 갑자기 급히 추워지는 일이 자주 있는데 무슨 증상인 것일까. 나는 얇은 외투를 손에 쥐고 입었다가 벗었다가를 반복했다.

내일은 긴 여행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가을은 아주 빠르게 지나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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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0일 수요일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일년 가까이 아내도 나도 잠을 푹 자본 일이 거의 없다.
오늘도 좋은 잠을 잔 것이 아니라 몸이 지쳐서 혼절했다가 깨어난 기분이었다.

동네의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깎았다. 그곳은 갈 때 마다 내 이름을 묻고 뭔가 적립을 해주는 것 처럼 하는데, 그것을 언제 어디에 어떻게 쓸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벌써 열 번은 더 갔던 것 같은데 항상 이름만 물어볼 뿐 다른 말이 없다. 아마 매달 한 번씩 출석을 부르는걸까.

고양이 까미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동물병원 진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데에 세 시간 정도 소요된다면 그 다음 일정에 무리가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고양이가 꾀가 늘었다. 몇 번이나 이동가방의 지퍼를 열거나 틈새에 머리를 밀어 넣어 탈출을 하고 말았다. 현관 앞에서 진땀을 흘리며 고양이를 가방에 넣으려다가 결국 실패했다. 고양이 까미는 장난감 진열대 앞에서 드러누운 어린이처럼 벌러덩 누워서 시위를 했다.
결국 다시 집에 들어가 플라스틱 이동장으로 바꾸어 들고 나와 까미를 가두듯 집어 넣고 동물병원으로 갔다.

고양이를 집에 데려와 풀어놓고 나는 악기를 챙겨 다시 집을 나섰다. 자동차 뒷쪽의 문 덮개를 분리하여 그동안 나사가 풀려 덜렁거리던 번호판을 죄어놓았다.
문정동에 가서 볼일을 보고 돌아왔다. 도로가 당연히 막혔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세 시간이 걸렸다.

다시 동네로 돌아왔더니 이미 어두워져있었다. 아내가 집에 돌아왔고, 우리는 서로 아무 것도 먹지 않은채 하루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했다. 고양이 이지에게 아내가 사료를 먹이고 난 후, 우리는 기운없는 걸음으로 동네의 식당에 가서 고기를 사먹었다. 평소에 고기를 자주 먹지 않는 나로서는 드문 일이었는데, 어쩐지 오늘은 고기를 먹고 싶었다.

배부르게 음식을 먹고 아내와 함께 집에 돌아오는 길, 골목 어귀에서 고양이 두 마리를 만났다. 한 놈은 앞의 친구를 따라오다가 멈칫 서있는 것 같았다. 그만 우리가 방해를 한 셈이 되어서 두 고양이는 각각 어두운 구석으로 숨어버렸다.
나는 순이 생각이 나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는데, 달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했다. 날씨가 맑았는데 왜 금세 보이지 않았던 것인지 지금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2017년 9월 15일 금요일

경주에서 공연했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많았다. 좋은 날씨였다. 나는 이것이 어제 발생한 멕시코의 강진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멕시코에서 벌어진 지진은 아마도 같은 판에 위치한 일본과 미국 서부에도 영향을 줄 것이었다.

그리고 열차에서 내려 도착한 곳은 경주였다.

공연으로만 말하자면, 보기 드문 최악의 상황이었다.
고분 앞에 무대를 꾸미고 용이라든가 꾸불거리는 것을 금색으로 칠한 조형물을 세웠다. 그것이 미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기야 하겠지만, 어쩐지 '신라'에 대한 강박이 이상한 형태로 표현되는 느낌이었다.

악기가 좋지 않았다거나 음향이 너무 나빴다는 것은 사실 부차적인 이야기이다.
연주자는 그냥 맡은 무대에서 연주나 하고 오면 그만일 것이다. 이러쿵 저러쿵 푸념을 해보았자 소용이 없는 것을 이제는 잘 안다.
그런데 누구나 그렇게만 생각하고 넘어간 결과, 여전히 음악공연의 수준은 이십 년, 삼십 년 전과 거의 달라진 것이 없게 되었다.

모니터 스피커를 공연 도중에 완전히 꺼달라고 부탁한 후, 진동과 느낌만으로 연주해야 했다. 그것은 뭐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것은 기록해두기로 한다.
공연 중에 마이크를 들고 무대에 난입하여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선출직 공무원은 이제 그만 뽑아주는 것이 좋다. 그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하여도 좋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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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3일 수요일

고양이 친구를 만났다.


새벽에 시골에 다녀와야했다. 잠이 모자라 거의 정신을 잃을 뻔 했다.
볕이 뜨거웠다.
그늘에 있으면 추위가 느껴질 정도의 바람이 불었다.
아무래도 며칠 안에 감기가 찾아올 것 같았다.

일찍 마칠 줄 알았던 일정이 길어지고, 나는 시간을 확인하며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어서 돌아가 해야할 일과 약속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데나 누워 잠들고 싶었던 즈음, 고양이 소리가 났다. 작년에 그곳에서 아내와 함께 만났었던 그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나에게 다가와 머리를 부비고 몸을 비비며 좋아했다. 나는 피곤한 것을 잊어버렸다. 고양이를 따라갔다.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그 집에서 가장 그늘이 시원한 마당이었다.

작년 3월, 그 고양이를 만나 쓰다듬어주고 인사를 했을 무렵에는 내 고양이 순이도 살아있었다. 순이는 떠나고 없는데, 너는 잘 살아있었구나, 하며 여러번 어루만져줬다.

오늘 오후에 있었던 유일한 즐거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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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9일 토요일

진천에서 공연했다.


고려 초엽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돌다리를 건너 숲속에 있는 무대에 도착했다.
큰 강이 보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저수지였다. 돌다리 아래에 흐르던 것은 금강으로 달려가는 세금천이었다. 큰 강인줄 알았던 것에는 초평호라는 이름이 붙어져 있었다. 사실은 저수지였지만 호수라고 해도 좋을 풍경이었다.

아길라 앰프의 소리가 좋았다.
조금 더 늦은 저녁에 공연을 했었다면 숲속에서 울리는 소리가 더 듣기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조명이라든가 다른 문제 때문에 아마도 해가 떠있는 시간에 공연을 진행하여야 했을 것이다.

연주를 마치고 악기를 차에 실어 주차장으로 보낸 후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 산에서 내려와 다시 농다리를 건넜다. 어떤 남자가 다가와 뭔가를 물어보았다. 나에게, 군복무를 어디에서 했느냐고 했다. 그런 질문을 할 사람이 누구일까, 싶어 남자의 얼굴을 보았더니 나의 군대 동기였다. 훈련소를 함께 나와 같은 부대에 배정받은 후에 그는 고민 끝에 하사관에 지원했었다. 무척 반가왔다. 어깨를 두드리며 인사를 주고 받았다. 다만, 이름이 얼른 떠오르지 않아서 많이 미안했다. 함께 사진을 찍고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새벽에 친구를 공항버스 타는 곳에 데려다주기로 약속을 했었다.
밤중이 되니 몸은 지치고 졸음이 쏟아졌다. 집에 들렀다가 다시 새벽에 운전하며 나가기가 더 어려울 것 같았다. 나는 친구의 집으로 곧장 갔다가, 새벽에 그를 데려다 주고 버스에 올라타는 것을 보며 인사를 했다.

긴 하루였다.


2017년 9월 6일 수요일

어린 고양이와 동물병원에.


한쪽 귀가 무슨 일이었는지 구겨진 채로 되어있는 어린 고양이 까미.
귓속을 진료하기 위해 몇 주 동안 동물병원에 다니고 있다.

오늘은 낮 시간에 나 혼자 까미를 데리고 다녀왔다. 고양이의 양쪽 귀가 모두 전보다 많이 나아져있었다. 먹는 약을 잘 먹였기 때문일 것이라고 수의사 선생님이 말해줬다.

동물병원에 갓난 아기 고양이가 있었다.
까미는 진료를 마친 후에도 이동장 안에서 칭얼거렸다. 이동장을 아기 고양이 앞에 놓아두었더니 두 어린 고양이가 서로를 쳐다보며 잠시 놀았다.


2017년 9월 4일 월요일

늦여름.


자동차 후드 위에 앉아 있는 사마귀를 보았다.
햇볕을 받으며 분명 뜨거울 것이 틀림없는 철판 위에 앉아있었다.

며칠 전에 보았던 사마귀는 초록으로 빛났었다.
그늘에 서있으면 바람이 시원했다.
늦여름이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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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3일 일요일

두통.


나는 진통제를 잘 먹으려 하지 않았다.
아무리 통증이 심해도 가능한 약을 먹지 않고 버텨보았다.
진통제라는 것을 먹으면, 사실은 아픈 것인데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된다는 것이 싫다고 하는 이유였다.

그런데 몇 년 전 치과치료를 오래 받으면서 전혀 고민하는 일 없이 진통제를 먹었었다.
다 됐고, 그런 통증은 정말 싫었다.

이번에는 지난 토요일 동탄에서 공연을 할 때에 시작된 두통이 일주일 넘게 지속되고 있었다. 결국 더 버티지 못하고 약을 먹었다. 쉽게 사라지지 않아 사흘 째 먹었다. 아직 통증이 남아있지만 약을 먹기 전 보다는 훨씬 나았다.

이제 아파지면, 나는 부지런히 진통제를 사서 먹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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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6일 토요일

좋은 사람들이란.




누군가에게 실망을 하고 마음이 틀어져버리는 일은 큰 사건이나 첨예한 대립 때문에 벌어지지 않는다. 아주 사소한 일, 대수롭지 않은 말 한 마디, 문득 드러나버린 습관 같은 것에 갑자기 그 사람이 꼴 보기 싫어진다.

그런데 갑자기 미워진 그 사람은 사실 아무 잘못이 없다. 처음부터 생각이 반대라거나 이해관계 등으로 내 편이 아니었던 사람에게는 실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은 내가 만들어놓은 기대와 착각으로 사람에게 넌더리가 나고 두 번 다시 보기 싫어질 때가 많다. 정작 상대방은 갑자기 변한 것 없이, 원래부터 그런 상태로 일관해 왔을 뿐이었던 것이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인간에 대한 불신을 과장하게 된다. 타인을 쉽게 일반화 하고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게 될 수도 있다.


그 반대의 경우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희망적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깊은 성찰이나 고양된 인격에 몹시 감명하여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행동, 대수롭지 않은 말 한 마디, 그날따라 다르게 들리는 고운 음성, 새삼 느껴진 따스함에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무턱대고 호감을 가진다.

역시 알고 보면 그 상대방이 갑자기 훌륭해졌다거나 아름다와진 것이 아닐 것이고, 사실은 모두 내가 만든 환상과 바람을 증폭시켜줄 티끌만한 단서를 내가 발견하여 과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환상이거나 착각이면 뭐 어떤가. 혐오를 느끼는 것과 호감을 느끼는 것의 주체가 남이 아니라 알고 보면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세상의 대부분의 것은 대개 아는만큼 더 보인다. 사람을 보는 일이 꼭 그렇다. 좋은 사람이란 지상에서는 누구도 본 적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모두 내가 발견해내고 내가 찾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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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4일 목요일

아직 여름.


깻잎 위에 여치가 한 마리 앉아 있었다.
아무도 자기를 못 보는 줄 아는지, 바람에 흔들리고 사람이 곁을 지나도 꼼짝 않고 있었다.
결국 여치의 다음 일정을 기다려주다가 저것은 따지 못하고 지나쳐야 했다.

덥지 않은 여름은 없었는데, 매년 여름은 더 덥게 느껴진다. 이것은 착각이다. 훨씬 더 더운 여름도 있었고 덜 더운 여름도 있었을 것이다.
시골집에서 부모님께 인사하고 다시 운전을 시작하자 다시 비가 무섭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더 가물었거나 그 반대로 장마가 더 지독했던 여름도 있었을텐데 어쩐지 해가 갈 수록 여름은 더 더운 것 같고 비내리는 여름 오후는 더 끔찍하게 습하다.

아직은 여름이다. 추석이 다가오면 또 언제 그랬었냐는 듯 찬 바람이 불 것이다.
나는 전에, 여치 같은 메뚜기 친척들이 계절이 바뀌면서 색깔도 변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알고보니 갈색여치라는 놈이 따로 있었다. 가을이 되면 옷을 갈아입는 줄로 알고 그놈들 참 근사하다고 생각했는데, 실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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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2일 화요일

고양이가 좋아하는 것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들은 모두 베이스의 헤드머신을 좋아했다.
무엇 때문인지 여전히 잘 모르지만 아무튼 악기를 안고 있으면 늘 다가와 줄감개에 볼을 부비며 좋아한다.

얘가 특히 좋아한다. 열 살이 된 고양이 꼼은 내가 악기의 줄을 교환할 때 마다 곁에서 장난하며 즐거워하더니 결국 철사 모양으로 생긴 것들을 장난감 삼아 놀기 시작했었다. 덕분에 아내는 공예용 철사로 꼼에게 장난감을 자주 만들어 줬다.

한밤중에 바닥에 앉아 연습하고 있었는데, 쿨쿨 자고 있던 고양이가 어느새 다가와 방해를 하기 시작했다.



2017년 8월 20일 일요일

화장지 습격.


고양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본다고 하는, 화장지 습격.
꼬마 고양이 까미가 드디어 해냈다.

집안의 다른 고양이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인지, 어른 고양이들은 매일 발랄한 어린 고양이와 자주 놀아주지 않는다. 꼬마 고양이는 무척 심심했을 것이었다.

귀의 문제로 병원에 몇 주째 다니고 있는 중이다. 많이 나았지만 아직 더 살펴봐줘야 한다.
짝짝이 귀를 가진 꼬마 고양이가 다시 습격을 할지도 모르니 조금 질 좋은 화장지를 사놓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유해하지 않은 일상용품이란 것이 과연 존재할까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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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9일 토요일

이천에서 공연했다.


이천에 있는 설봉공원에는 벌써 몇 번째 가서 공연을 했었다.
그런데 항상 비가 내렸고, 이 날도 비가 왔었다.
어느 맑은 날에 이곳에 한 번 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날 아침에 나는 너무 일찍 일어났고, 운전을 너무 많이 했고, 두 끼를 연속으로 냉면을 먹었던 탓인지 그만 배탈도 났었다. 무대 위는 정말 습했어서 악기의 네크에 계속 물기가 머금어 있었다. 공연을 마칠 즈음에는 피로감이 심했었다.

그런데 연주하는 것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관객들의 호응이라던가 괜찮은 음향 상태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음 주와 다음 달의 공연들은 모두 야외공연이다. 머지않아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연주할 것이고 11월에 예정되어 있는 야외공연을 할 때엔 손이 시려워질 것이다.

시간은 정말 점점 빨리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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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이 지났다.


결혼 10주년을 지나보냈다. 살다보니 지나간 세월이니까 그다지 대수롭지 않을지도 모른다. 처음 각자 한 마리씩 지니고 왔던 고양이 두 마리가 먼저 떠나간 자리에는 군데 군데 마음의 꽃들이 피어있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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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2일 토요일

검은 고양이.


지난해 초겨울에 누군가에게 버려졌던 어린이 고양이는 이제 우리와 함께 마냥 좋아하며 잘 살고 있다. 찬 바람 불던 그날 밤 먹을 것이라도 챙겨주려 아내와 함께 얘가 숨어있던 곳에 찾아갔을 때에, 아직 부르지도 않았는데 어둠 속에서 뛰어나와 아내의 바지를 붙잡고 늘어졌었다. 우리는 무엇을 상의할 겨를도 없이 이 놈을 안고 집에 돌아왔었다.

나는 그런 말을 입 밖에 잘 꺼내지 않았지만, 아내는 자주 이 꼬마 고양이가 지난 해에 떠나간 순이의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다지 신기한 일은 아니지만, 어쩐지 점점 내가 자리에 누울 때 까지 곁에 와서 졸고 있다거나 악기를 연습하고 있으면 늘 나에게 몸을 붙이고 그르릉 거리거나 하고 있다. 내가 집에 돌아오면 길게 소리를 내며 뛰어 나와 인사를 한다. 꼭 순이가 하던 짓 그대로라고 생각한 적이, 나도 많다.

선천적인 기형인지 아니면 더 어릴 때에 다쳤던 것인지 얘는 한쪽 귀가 꺾인채 더 자라지 못하였다. 그 때문에 귓속에 진드기도 있었고 아직 곰팡이가 남아 있어서 병원에 다니고 있다. 한쪽 뒷다리도 무슨 일이었는지 부러졌다가 저절로 붙은 흔적이 있다. 집안의 어른 고양이들은 에너지가 넘치는 꼬마 고양이가 귀찮을 때가 많아서 어쩌다가 상대를 해준다고 해도 오래 놀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어린이 고양이는 언제나 심심하다.


2017년 7월 30일 일요일

대구에 다녀왔다.


대구의 더위를 잘 알고 있어서 미리 걱정을 했다. 심각하게 반바지를 입고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고민도 했었는데, 날씨가 무려 선선했다. 오락가락 가는 비가 종일 내렸다.
너무 많은 출연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이해해주기로 했지만 무대 위의 사운드가 매우 안 좋았었다. 그것이 연주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누군가 들어줄 사람이 있었다면 붙잡고 설명을 해주고 싶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시간이 남아서 두류공원 안에 있는 2.28 기념탑을 찾아가 보았다. 걷기 시작할 때엔 하늘이 개이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내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기념탑은 공연장 근처였지만 공원 한 가운데를 빙 돌아서 가야했다. 몸이 땀과 비에 젖어버려서 대기실에 돌아와 셔츠를 갈아입고 연거푸 세수를 해야했다.
일행들은 어디에 갔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편의점을 찾아 다니다가 돌아왔다고 했다. 실제로 편의점에 들르기도 했었고, 그보다 굳이 무슨 기념탑에 다녀왔다는 말을 하여 '쟤는 점점 이상해지는구나'라고 생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거나 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많이 모인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몸을 흔들고 음악을 즐겨줬다. 무대 위의 상황은 전쟁터 같았는데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매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 간극의 느낌이 인상 깊었다. 2.28과 지금의 대구를 보는 것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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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7일 월요일

고양이와 꽃


꽃을 꽂아두었더니 고양이들이 한 마리씩 곁에 앉아 냄새를 맡으며 놀고 있었다.
고양이 까망이가 살며시 꽃가에 앉더니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마도 건드리고 물며 장난을 하고 싶어했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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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6일 일요일

성주에 갔었다.


공연을 위해 성주에 갔었다.
리허설 후 점심을 먹은 다음 일행과 함께 커피집에 들렀다가, 버들숲을 보게 되었다.
미리 알고 있던 지식이 없었다. 무슨 나무들인지도 잘 몰랐다. 잠을 거의 못 잤던 탓에 비실거리고 있었다. 수십그루의 오래된 나무들을 보고 홀려서 길을 건너 가까이 다가가 구경을 했다.
집에 돌아와 그 장소에 관하여 찾아 읽어보았다.
몇 백 년 나이를 먹은 버드나무들이 그곳에 있기 전에는 밤나무들을 심어 놓았었다고 했다.
무척 더웠던 여름날이었다.
공연 직전이 아니었다면 나는 천천히 나무들 사이를 걸어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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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5일 토요일

성주에서 공연.


매우 잠이 부족했던 하루였다.
공연 시작 5분전까지 몸이 무겁고 계속 졸음이 쏟아졌다.
처음 몇 곡은 조용하고 부드러운 곡들이어서 나는 연주하며 잠들 뻔했다.
덥고 눅눅했던 여름날이었다. 무대 위와 대기실에는 에어컨이 충분히 가동되고 있었다. 아마 적당한 실내온도와 조명의 따스함 때문에 잠을 쫓기 힘들었나 보다.

이 날은 계속 졸리운 상태로 공연을 마치고 빗길을 약 백여 킬로미터 운전했다. 휴게소에 들러 진한 커피를 마시고 화장실에서 찬물로 세수를 했다. 남았던 구간은 함께 차를 타고 갔던 윤기형님이 운전을 해주신 덕분에 안전하게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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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3일 목요일

한가로왔다.


약속이 없는 날이었다.
달력을 보면서 오늘이 아니면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자동차의 엔진오일을 교환하고 동네 도서관에 가서 회원등록을 했다. 사진을 준비해갔어야 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그곳 직원분 컴퓨터에 연결되어 있는, 최소 9년 전 모델로 보이는 로지텍 웹캠으로 사진을 찍어 회원증을 만들게 되었다. 정말 못생긴 남자 얼굴이 그 카드에 박혀 있게 되었다.
자동차의 내부세차를 했다. 세차장에는 못된 인상을 한 중년 여자 한 명이 세차일을 하는 노인들에게 고압적인 언행을 하고 있었다. 하필 듣고 있던 음악이 끝나버려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었는데도 그 소리를 다 듣고 말았다. 더위 속에서 땀을 줄줄 흘리던 노인들은 성가시고 귀찮은 표정조차 없었다. 가능한 요구하는 것을 어서 해주고 돌려보내고 싶어했던 것 같았다.
그 여자와 같은 인생은 편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스스로가 많이 아픈줄을 모르고 숨 쉬며 살고 있다니, 어쩌면 괜찮은 삶이다.

근처에는 나무에 가는 끈으로 묶여있는 의자가 있었다. 아마도 일하는 노인들이 가끔 앉아 쉬는 곳인 것 같았다. 나는 그곳에 앉아 더운 바람을 쐬었다. 모처럼 한가로왔던 오후였다. 이어폰은 가방 안에 넣어두고 잠시 더 앉아 있었다. 지나는 자동차들의 소음과 가끔씩 빼액 하고 비명처럼 노래하는 새소리들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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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2일 수요일

검은 고양이와 나.



오전에 잠에서 깨어나 게으름을 피우며 전화기를 들여다 보고 있는 동안, 아내가 이 사진을 찍어줬다.
검은 고양이 깜이는 덥고 재미도 없을텐데 자주 내 곁에서 시간을 보낸다.
바보스러운 얼굴과 표정이 우스워서 사진과 실물을 번갈아 쳐다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얘는 지금도 내 의자 옆에서 불편하게 졸고 있는 중이다.
왜 이러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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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1일 화요일

농활.


볕이 뜨겁다.
오후에 서둘러 일을 하면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림도 없다.
올 여름에 나와 아내는 일주일에 하루, 이틀씩 시골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 한 말에 살충제 한 뚜껑, 무슨 첨가제 반 뚜껑이라고 하는 식으로 섞어 농약도 뿌리고 심어 놓은 나무와 농작물들 사이에서 일을 한다. 역시 어줍잖고, 어림도 없다.
아내는 나보다 농촌생활에 훨씬 적응력이 높다. 많은 풀과 꽃의 이름들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신기했다.
사실은 부모님 두 분을 위한 노력봉사로 시작했던 일이었다. 힘들다. 그날 하루를 전부 소모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무엇보다 손가락의 통증이 낫지 않아서 밭일을 마친 후 다음날에는 악기연습을 처음부터 천천히 다시 해본다.
이 날엔 가족들과 점심으로 두부와 묵밥을 먹었다.
조용한 산 밑에서 새들의 소리를 듣는 것이 좋았다.
낮에 햇빛이 내리쬘 때엔 현기증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그만 축 늘어져 몇 시간 동안 잠을 잘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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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막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자동차의 후드에서 김이 나고 있는 것 같았다.
뜨겁고 습한 여름 오후였다.
눈 앞에 해바라기들이 거들먹거리고 있었다.
벌 몇 마리가 분주하게 날고 있었다.
지나가는 나비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가 따가운 해를 올려다 보고 말았다.
눈앞이 가물가물한 채로 비틀비틀 걸어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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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9일 일요일

기차역.


울산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날 플랫폼에 서서 이 사진을 찍었다.
그 직전에 이 역을 통과하는 고속열차가 굉음을 내며 빠르게 지나갔다.
나는 이제 '잠시 일상을 잊고 기차여행이라도 떠나보는...' 생각 같은 것은 하지도 않는다.
그런 일은 앞으로도 한참 동안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으니까.
언제나 일을 하러 갔다가, 일을 마치면 바빠진 마음을 쥐고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이 계속될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없는 기차역은 왜 그렇게 쓸쓸해 보이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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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8일 토요일

울산에서 심야 커피.



마침 울산에 와있었던 친구를 일 년 만에 만났다.
공연장에서 인사를 하고 공연을 마친 후 늦은 저녁을 다 먹고 나서야 연락하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평소였다면 자고 있을 시간이었을텐데 밤 늦게까지 나를 위해 운전을 해줬다.
밝게 켜놓은 간판들이 반짝이는 거리에서도 커피를 팔고 있는 곳이 있었을 것이었지만, 가능한 조용한 곳을 찾고 싶었다.


다시 공연장 근처로 돌아와 24시간 맥도날드에서 평소에 자주 사먹는 로스트커피를 주문했다.
머그컵에 가득 담긴 커피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2017년 7월 7일 금요일

울산에서 공연.


이 날은 공연장에 도착하여 처음 소리를 내어볼 때부터 뭔가 좋지 않았다.
리허설을 하는 동안 여러가지 방법으로 소리를 바꾸어 보았다. 어쩐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리허설을 마치고 대기실에서 스트링을 교환했다. 공연시작 두 시간 전이었다.
줄의 문제가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새줄로 바꾸어 나의 기분이라도 달라지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두 시간 동안 연주를 할 때에 소리가 좋지 않으면 세 배, 네 배로 피로를 느낀다. 필요없는 힘이 들어가 손끝을 다칠 수도 있다.
그 덕분이었는지 아니면 객석이 관객으로 메워졌던 때문이었는지 편안하게 연주를 할 수 있었다.
공연을 마치고 극장 밖으로 나왔을 때 덥고 습한 공기가 코 안에 들어왔다.
울산에는 빗방울이 오락가락 하고 있었다.


2017년 7월 6일 목요일

금요일.


내 의자에는 바퀴가 있다.
고양이 까미는 항상 의자 바로 옆에서 자고 있거나 그루밍을 하고 있다.
의자를 무심코 밀며 일어나면 고양이의 꼬리나 발을 의자의 바퀴로 다치게 할 수도 있다. 그것이 언제나 염려되어 자리에서 일어날 때에 의자의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확인을 해야 한다.
그런데 까미는 까만 고양이여서, 한 밤중에는 바닥에 고양이가 있는지 없는지 쉽게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날 때에 고양이가 잘 보였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해보았지만 이미 잠을 깬 고양이가 기지개를 펴더니 소란스럽게 칭얼대기 시작했다.
더운 여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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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4일 화요일

마포에서 공연.


그 극장이 개관하던 때에 그곳에서 공연을 했었다.
그 사이 몇 번은 연주를 하러, 몇 번은 다른 공연을 구경하러 갔었다.
10여년 밖에 안되었는데 내부가 많이 낡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누군가가 무관심하거나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인가 보다, 했다.

공연에서 연주할 곡들은 열 여섯 곡이었다. 긴 시간일 줄 알았는데 끝나고 보니 금세 시간이 지나갔다.

염리동길에서 저녁식사 후 들렀었던 커피집의 커피가 아주 좋았다. 그 근처에 가게 되면 다시 찾아가보아도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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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2일 목요일

목요일.



순이가 떠난지 11개월이 되었다.
밤중에도 생각했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에도 생각했다.
그렇다고 순이의 재를 담아놓은 단지를 꺼내어 손으로 문질러본다거나 새삼 사진을 열어 하염없이 보고 있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하루도 어김 없이 고양이 순이를 생각하고 그리워 한다.

아침에 소음을 내는 사람들은 지난 해에 이어 매일 정확한 시간에 다시 음악소리와 괴성 지르기를 시작했다. 읍사무소의 공무원에게 다시 전화를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아마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는지 궁리해보지만 다른 수가 없다. 만일 그들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여름이 끝날 때 까지 내가 아침 시간을 망치지 않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는지 찾아보아야 한다.

국도를 달려 운전을 오래 했다. 애플 뮤직에서 새로 나온 음악들을 들었다. 리마스터를 거친 옛 음반들도 들었다. 재즈를 무작위로 틀어놓기도 했다.
어떤 날은 그날 했어야 했던 일에만 집중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잘 해내지 못한다. 언제나 마음의 짐이 있는 것을 감당하기 싫은 날도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조용한 길을 달리고 달렸다. 그 평화로움이 낯설게 여겨졌다.

컴퓨터와 전등을 끄고 자려고 누웠을 때 검은 고양이 까미가 내 발 곁에 오더니 발목을 껴안고 잠이 들었다. 불편할텐데 항상 내 곁에서 자다가, 아침이 밝으면 아내의 곁에 가서 선잠을 잔다.
어린 고양이 덕분에 순이를 잃은 마음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생명이라는 것, 죽음이라는 것은 양쪽 모두 불성실하고 불합리하다.
어린 고양이를 살짝 들어올려 침대의 푹신한 자리에 눞혔다.
고양이가 그르릉 거리며 편안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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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6일 금요일

연주.


블루스 연주를 했다.
공연은 차분했고 나는 기분이 편안했다.
그곳은 요리가 훌륭한 식당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밤 늦게 집에 돌아와 제일 먼저 커피를 내려 마셨다.
하루 종일 나른했던 이유는 더운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나보다, 했다.
커피를 진하게 내려 마시고 Yellowjackets 의 음악을 들었다.


2017년 6월 14일 수요일

학기가 끝났다.


이틀 뒤 공연을 위한 블루스 합주를 다녀왔다.
집에 돌아올 때에는 오랜만에 강변북로를 따라 달렸다.
쇼팽을 틀어두고 있다가, 시리에게 조동진의 노래를 틀어달라고 했다.
외롭고, 외로운 노래들이었다.

배가 고팠는데 먹고 싶은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미리 사두었던 품질 좋은 커피콩을 꺼내어 봉지를 열고, 유리 단지에 나누어 담았다.
내일은 학기의 마지막 강의를 하는 날이다.
강의 원고는 낮에 미리 써두었다.
이제 곧 잠들면, 아침까지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17년 5월 31일 수요일

정들었던 무대.


그곳에서 많이 연주했었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고, 그곳에서는 더 이상 프로그램을 제작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어제의 공연으로 이제 그 무대는 안녕이다.
더 좋은 시설, 더 좋은 환경으로 옮겨간다고 해도 언제나 중요한 것은 건물과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공연에서 항상 준비되어 있고 조건과 형식을 빠짐없이 지닌 쪽은 관객이다.
연주자와 엔지니어들이 아니다.
겸손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 태만한 쪽은 언제나 관객석 맞은편의 사람들이다.
그래서 정성을 쏟았던 사람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한때 빛났던 이름만 깜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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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26일 금요일

금요일.




오후 세 시에 합주를 하러 서교동에 갔었다.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길이 막히지 않았어서 일찍 도착하여 잠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었다.
날씨는 좋았고 하늘은 예뻤다.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과 한 곡씩 공연을 위한 곡들을 연습했다.
예정보다 합주가 일찍 끝났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조금 밀리고 막혔다.

아내가 만들어준 피자를 먹었다.
그것을 먹고 잠들었다가 밤 열 한시에 일어났다.
다음 날 레슨할 음악파일을 손보았다.
강의에 사용할 원고를 정리하고, 일부를 처음부터 고쳐서 다시 썼다.
커피를 내려 마셨다.
까만 어린이 고양이가 주방 쪽 작은 창문 앞에 앉아있었다.
그 그림자를 보는 순간 순이 생각이 났다.
까만 고양이를 안아서 쓰다듬어 주고, 아내가 그렸던 순이의 그림이 걸린 벽 앞에 서서 커피를 마셨다.


2017년 5월 22일 월요일

잠을 잤다.


주말이 다 지나도록 집에서 쓰러져 있었다.
무엇을 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싶어서 옛날 영화들을 꺼내어 다시 보았다.
지난 번에는 박찬욱의 복수 시리즈 1과 3을 보았다.
오늘은 가운데 것을 다시 보았다.

강의 원고를 쓰기 위해 자료를 펼쳐 놓고 그것을 다시 읽었다.
너무 많은 분량을 읽고 났더니 정작 원고를 쓸 수 없었다.
배가 고파서 국수를 만들어 먹고는 다시 잠을 자버렸다.

연습을 할 수도 없었다.
아픈 손가락은 이제 네 개로 늘어났다.
올 여름에는 병원에 한 번 가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업실에 가서 커피를 한 컵 곁에 두고 정리한 자료를 읽으며 강의 원고를 썼다.
쓰다 보니 금세 자정을 넘겨버렸다.
집에 돌아왔지만 주차장에 자리가 한 군데도 없었다.
서너 바퀴를 돌다가 결국 적당한 곳에 평행주차를 하고 자동차의 기어를 중립에 놓아둔채 집에 들어왔다.
고양이들이 반가와하며 뛰어나왔다. 아내는 내가 고야이들과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깨어나 잠결에 고양이 이지에게 물에 불려둔 사료를 떠먹였다.

2017년 5월 19일 금요일

여름이 오고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가 그만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다.
강의 원고를 쓰고 싶었는데 뉴스를 보다가 그만 오전을 다 보내버렸다.
뉴스를 보면서 아내와 함께 첫 끼를 먹었다.

낮에 동네에 나가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깎았다.
오후에는 아내와 함께 가구점을 구경했다.
아내에게 새로 침대가 필요하여 구입하려고 했는데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강을 건너 좋아하는 식당에서 카레와 네팔식 빵을 먹었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어린 고양이 까미는 낮 동안 이불 위에서 구르다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더니 칭얼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