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31일 월요일

연말공연.


청중이 많으면 많을수록 연주하는 입장은 여유로와진다. 대구의 이 공연장에서는 천 명의 관객들이 가득 차있었다. 그분들 덕분에 잔향이 많이 사라졌다. 나는 음악이 흐를 때에 관객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늘 신기하다. 점잖을 빼는 분들이나 즐기려고 작정한 분들이나 그 동작의 크기만 다를뿐, 반응은 솔직하고 냉정하다.

간밤의 꿈에 작은 클럽에서 연주를 하는 꿈을 꾸다가, 잠꼬대를 하고 말았다. 일찍 일어나있던 아내가 짓궂게도 내 잠꼬대에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나는 그 대답에 다시 대답을 하다가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꿈속에서의 장면은 이제 막 클럽에 가득 앉아있는 분들의 무릎사이로 지나가면서 무대에 오르기 직전이었다. 무릎이 서로 닿을 정도의 공간에서 밤새 연주하기, 그것이 가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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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다니던 날.


바보같이 눈길에 발을 헛디뎠다. 금세 부어오르고 통증이 심했다.
집에 돌아와 더운 물에 담갔다가 주물러보기도 했지만 견딜 수 없이 아팠다.
자고 일어났더니 웬걸, 한 걸음 옮기기도 힘들었다.
전부터 계속 아프고 있던 왼손의 손가락도 치료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병원에 가기로 결심했다.
쌀쌀해진 일요일 오전에 옷을 차려 입고 뒤뚱거리며 문을 연 정형외과를 찾아갔다.
친절함을 배우기엔 평일의 업무가 너무 힘들었다는듯, 일요일에 출근해서 창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기라는듯, 퉁명스럽기 그지 없는 병원 직원들의 말투가 거슬려서 하마트면 아픈 발로 아무데나 걷어차줄뻔 했다. 접수창구의 여자아이는 원래 교육을 그렇게 받은 것인지, 사람을 바라보지도 않은채 중얼거리며 물었다. "뒷자리요."
나는 정말 못알아들어서, 뒷자리에 함께 와준 아내를 돌아보았다. 그랬더니 두 번째엔 내 얼굴을 쳐다보며, 그러나 여전히 중얼거리듯, 주민번호 뒷자리요, 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겨우 발목을 삐끗했을뿐이지만, 정말 고통을 견디며 병원을 찾아와 접수를 하려는 환자에게도 그렇게 대하고 있었을테니, 원.


말씨가 빠른 의사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발목의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처방을 받았다. 몹시 아픈 주사를 맞았고, 약도 받아 먹었다. 손가락의 문제는 심각하다고 겁을 주고 있었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에게나 테니스 선수들에게 흔히 있는 무엇무엇이라는 증상일 확률이 있으니 심하면 수술을 해야 좋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정밀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고 했다. 몹시 아픈 주사를 맞은 쪽의 궁둥이를 문지르면서 발목의 처치에 대한 값만 치르고 병원을 나섰다.
몇 주 만에 부모님 댁에 들러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결국은 어머니의 강한 확신과 막무가내에 이끌려 침을 놓아주는 집에 가게 되었다. 마침 오늘 침놓아주는 집에 가기로 되어있었던 어머니를, 그저 태워다드리고 도망쳐오고 싶었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침을 꽤 무서워한다.) 역시 함께 동행한 아내는, 자신의 살에 스테인레스 재질의 가느다란 쇠꼬챙이가 찔려 박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생글 생글 웃으며 구경하고 있었다.


어릴 적 부터 발목을 자주 다쳤어서, 침을 맞았던 일이 몇 번 있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그것을 두려워한다. 침이라는 것을 두려워한다기보다는 시술을 하는 사람을 미더워하지 않는 것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 자세히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지도 않을뿐더러, 아파서 찾아온 환자보다 수백명의 살에 침을 찔러본 내가 더 잘 알거든? 이라는 식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침대에 누워 발목과 손가락에 침을 맞기 시작했다. 고통스럽지 않아서 깜박 잠이 들 정도였다.


침을 맞고 집에 돌아왔더니 졸음이 쏟아져서 세 시간을 잤다.
자고 일어났더니 목이 말라서, 부엌으로 가서 물을 한 잔 가득 따라 마시고, 담배를 한 개 들고 재떨이를 찾아 다녔다. 문득, 어랍쇼, 통증을 느끼지 못한채 걸어다니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완전히 나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침의 상태와 비교하면 거의 다 나은 느낌이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네크의 상태가 많이 나빠져 있던 베이스 기타를 손보았다. 다시 조립하고, 조율한 뒤에, 조금 전까지 연습을 해보고 있었는데, 신기하다. 손가락의 통증이 없어졌다. 부어있던 왼손도 가라앉아서 이제 오른손과 비슷해졌다. 팔목도 멀쩡하고 움직임도 편하다. 그것참... 진통의 비결이 궁금하다.


정형외과의 주사도 맞아뒀고, 왼발과 왼손에 여러개의 침도 맞아두었으니 이제 곧 낫겠지.
모처럼 추운 겨울날씨가 반갑다. 몸이 나아지니까 반가와진다. 아침 무렵만 하더라도, 뭐가 이렇게 추운 것이냐고 투덜거렸다.

2007년 12월 28일 금요일

대구 공연 리허설.

리허설하는 내내 동굴 속처럼 모든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베이스앰프의 베이스 노브를 거의 1까지 줄여야 했다.


공연 후에.



한 달 동안, 베이스 줄을 4 셋트 소모했다. 대구에 가기 전날에 마지막 줄 셋트를 써버려서 여분의 베이스 줄이 없어서 조금 불안했다.

깊이 잠을 잔 적이 없었어서 마지막 공연엔 피로가 제법 쌓여있었다. 4 시간 가까이 장거리 운전을 한 까닭이기도 했겠지. 그런데에다, 공연이 끝난 후에 제법 술을 많이 마셨다.

올해 초 부터 체중이 줄어서 몸이 가벼워졌었는데, 4 개월만에 다시 살이 쪄버렸다. 어쩌면 이렇게 금세 옷이 꽉 끼여 조이고 행동하는데에 부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게다가 공연 내내 서있다가 보면 발목이 아프다. 공연사진에 찍혀있는 사진을 보면 얼굴이 더 둥글게 되어버렸다. 겨우내 더 통통해지기 전에 살을 빼야지.

2007년 12월 26일 수요일

나쁜 소리일때.


지난 주의 H 공연장에서는 소리가 좋아서 모두들 편안하게 연주했다.
이번 대구의 공연장은 그보다 크고 넓었다. 소리의 잔향이 너무 심해서 연주하기에 많이 힘들었다.
운동경기장이라던가 산이나 건조물을 마주보고 있는 야외공연장에서도 잔향이 너무 많아 애를 먹었던 적이 있었다. 이런 경우, 악기의 소리들은 귀여운 강아지가 되어버린다. 어떤 음을 치면 그 소리들은 공을 던지면 열심히 달려가 그것을 물고 다시 내가 서있는 곳까지 충성스럽게 되돌아오는 것 같았다. 모든 악기의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공간에 윙윙거리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다.

불편했지만 적응하기 위해 집중하고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이다. 경험으로 배워뒀던 몇 가지의 방법들이 제대로 적용되어줘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선택하는 방법은, 다른 연주자의 모니터 스피커 소리를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들을 수 있도록 내 모니터의 레벨을 줄여주는 일이다. 그리고 베이스 앰프의 Low EQ를 과감하게 줄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잔향이 너무 많은 공간에서, 이렇게까지 저음을 희생하면 과연 베이스 소리라고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될 정도로 줄여주는 시도를 해보면 그 효과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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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24일 월요일

레슨실에서.



1. 휴일의 사이에 끼워진 월요일 저녁. 오후에 학원에 나와봤더니 이런 날에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학생들이 가득.... 할 리는 없고, 몇 명만 복도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젊고 시간이 많아서 그렇겠지만, 그렇게 대충 대충 뭔가를 성취해보겠다는 생각이라면 반드시 음악이라는 것을 공부할 필요는 없지 않겠니,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2. 말하기를 바로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발음이나 말의 습관을 문제 삼자는 것이 아니고, 생각을 탓하는 것이다. 음악이란 말을 배우는 것과 같다.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면 차근 차근 제대로 말하기를 배워야 옳다. 색소폰이라고 쓰고 말해야 바르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를 해줘도 꼬박 꼬박 섹스폰이라고들 한다. 섹스를 하면서 전화를 건다는 의미가 아니라면 좀 읽고 쓰는 버릇이라도 해보렴. 여전히 전기 기타, 일렉트릭 기타를 그냥 일렉이라고 부른다. 그들중 아무도 그냥 Drum이라고만 쓰면 두드리는 북 한 개를 의미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다. 반드시 Drums라고 써야만 온전한 드럼 셋트를 의미하게 된다. 노래의 곡목을 쓸 때에 각 단어의 첫 철자를 대문자로 써야한다는 것도 그들은 '배우지 못해서' 모른다. 가르쳐주지 않아서, 漢時의 운율이라든가 소넷트는 14행시라는 것은 (이런 시대에는) 알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더라도 영어가사의 Rhyme은 이해해야 한다. 적어도 영어가사 노래를 발음을 잔뜩 굴려가며 부르고 있으려면 말이다.

3. 학원의 레슨을 잠시 쉬겠습니다,라고 굳이 인사까지 하고 갔던 학생들이 곧 다시 돌아왔다. 새로 들어와 시작하는 학생들도 계속 늘어난다. 다시 레슨을 하려는 학생들은 반갑다. 그러나 씁쓸하다. 그 정도의 시간을 투자하여 레슨을 받았으면 혼자 실력을 연마할 수 있도록 해줬어야 좋은 선생이었을테다. 새로 시작하기 위해 찾아온 학생들도 반갑지만 씁쓸하다. 무슨 음악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그냥 가요요, 라고 하던가 '찬양'이요, 라고 한다. '집에 가라'라고 해주고 싶은 충동이 울컥 치민다. 역시 별로 좋은 선생이 아닌 까닭일테다.
갈등이 있다. 기왕에 오랜 기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므로 나는 더 잘 가르치고 싶다. 그들에게 해줄 이야기들은 그칠줄 모르고 떠오른다. 그러나 문득 문득 이런 일은 그만두고 나는 자꾸 음악의 여행을 하러 다니고 싶다. 훌쩍 악기를 들고 떠나버리는 꿈도 꾼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레슨이란, 수 개월, 수 년 동안 끊임없이 가르치는 일이 아니다. 무엇을 연습하고 어떻게 음악을 들으며 연주할 것인가에 대해 책을 내밀어 주면, 책장을 넘겨가며 읽는 일은 학생의 몫이다.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만들어주지 못하는 선생이 되어서 나는 부끄럽다. 그 때문에 그들은 계속 부모의 돈을 들여, 혹은 고생하며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들여 일 년이 넘게 레슨을 받는다. 학생의 숫자는 늘어만 가고... 모르는 사람들은 나더러 더 많이 벌테니 좋은 일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숫자가 쌓여갈 수록 나는 부끄럽다.

2007년 12월 23일 일요일

피크 사용하기.





피크를 사용한 것은 이번 공연이 처음이었다. 사실은 삼 년 전 1월의 공연에서도 피크를 사용했던 적이 있었지만 단 한 곡에서 그냥 한 번 써봤을 뿐이었다. 이번엔 작정을 하고 두 번째의 연습날 부터 피크를 쥐고 있었다.그동안 이 밴드의 연주를 해오면서 베이스의 연주 자체에 아무래도 답답한 부분이 있었다. 그것이 피크를 사용한 음색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전부터 했었지만 나는 고집을 피우고 있었다. 문득 지금까지 한 번도 피크를 사용하는 연습을 진지하게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몇 주 전부터 생각이 날 때마다 조금씩 피크를 쥐고 연습해오고 있었다. 공연을 위한 연습 첫 날 어떤 곡들에서는 여전히 답답하게 들리는 베이스 소리를 확인하고 피크를 사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이번 공연에는 두어 곡을 제외하고 모두 피크로 연주했다. 결과물을 들어보고 싶다. 녹음해주신 분들이 계실테니 곧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무대 뒤에서.


올 봄에 이 곳에서 공연을 했었다. 그때에도 적어두었던 기억이 나는데, 십여 년 전에 (정확히는 그보다 더 오래되었더군요...) 나는 이 공연장의 무대 뒤에서 허드렛 일을 하고 있었다.

친구와 함께 연주자들에게 제공되는 음료수를 나르고 악기를 설치하고 공연 내내 무대 곁의 커텐 뒤에 서서 연주를 지켜보며 심부름을 했었다. 몇 번 같은 공연장의 무대에 서보니 마치 자주 오던 장소라도 되는 듯 편안했다. 이 무대 곁의 커텐 뒤에서 쳐다보이는 내 모습이 궁금했었는데, 고맙게도 사진을 얻게 되었다. 뷰파인더로 내가 서있는 무대 쪽을 바라보고 있는 그 자리에 선채로 몇 시간이고 연주를 구경하던 어릴적 내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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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공연.

한 해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연말의 공연들을 하면서 겨울을 보내고 있다.

계속 무대에서 생활하는 것이 즐겁고 좋지만, 집에 남겨둔 고양이들에게 매일 미안해하고 있다.
공연을 다 마치고 며칠 쉴 때엔 고양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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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22일 토요일

편안한 고양이.

잘 먹고 잘 뛰어노는 꼬마 고양이가 부럽게 보였다.
마음도 편하고 몸도 편한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와 함께 살게 되어 행복해졌다면 참 좋겠다.
하루 종일 까불고 장난만 치려는 고양이 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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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19일 수요일

평화로움.

조금만 더 자고 싶었는데 외출해야하는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고양이 순이가 곁에서 내 얼굴을 앞발로 꾹꾹 찔러보고 있었다. 나는 순이를 와락 끌어안고 선잠을 조금 더 잤다. 직전의 상황은 같은 자리에 순이 대신에 양아치 고양이 꼬맹이가 있었다.
낮에는 집안의 고양이들을 전부 목욕시켰다. 순이가 끝없이 투덜거리면서 씻겨지고 있는 동안 다른 고양이들은 욕실 문 앞에 줄지어 서서 근심어린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하여 욕실 앞에 줄을 선 순서대로 한 마리씩 목욕을 했고, 그 털북숭이들을 말려주고 닦아주느라 여러 장의 수건이 흠뻑 젖었다.
겨울의 정오 무렵. 창문에는 햇살이 가득하고 목욕을 마친 고양이들은 기분이 좋아져서 각자 자리를 잡고 졸기 시작했다. 기껏 아내가 바닥 청소를 해놓았더니, 빗질이 끝난 뒤에 굴러다니는 고양이 털들로 다시 어지러워졌다.
마음도 개운해졌고, 차가운 강바람이 불고 있는 한 낮의 공기가 상쾌했다. 잠들어 있는 고양이들을 하나씩 쓰다듬어 줬다. 평화로운 느낌에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곧 악기를 들고 집을 나와 일터로 떠났다. 아내는 아마 다시 청소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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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18일 화요일

녹음실.


오랜 친구와 나란히 앉아 악보를 앞에 두고 음악을 조물락거리고 있었다. 햇빛은 밝았고 방안은 따뜻했다. 건물의 높은 층에 녹음실이 있는 것이 더없이 좋았다. 지하가 아닌 것만으로도 상쾌했다. 문제는 흡연이었다. 담배 피우면 혼을 내겠다는 협박 문구들 때문에 녹음하는 내내 현관 밖으로 나가 덜덜 떨며 담배를 피웠다.
미국 흉내내기의 일환으로서의 금연정책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다) 문화 예술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라던가 하는 통계자료는 나올 수 없을까, 생각했다. 무엇인가 좋은 느낌이 들만하면 담배를 피우기 위해 나갔다 들어오느라고 양질의 음악을 녹음할 수 없었어요... 따위의 핑계를 댈 수 있다면 좋겠다.



2007년 12월 17일 월요일

가방을 좋아하는 고양이.



내가 맥북을 담아 들고 다니는 가방은 (벌써 꽤 오래도 썼다) 대단히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함께 사용하고 있는 기타가방과 함께 지난 수 년 동안 어디에나 같이 다녔다.
재봉선에 문제가 생긴다거나 하는 것은 물론 없고 여전히 새것처럼 편하고 견고하다.
고양이들이 마구 잡아 뜯어놓지만 않는다면 앞으로 몇 년 동안은 더 쓸 수도 있을지 모른다.
처음에는 샴고양이 순이가 가끔씩 발톱을 다듬느라 긁어놓았었고, 이제는 쬐그만 양아치 고양이 녀석이 제 장난감삼아 마음껏 유린하며 지낸다.
가방의 등받이부분이 푹신하고 편해서 순이도 자주 올라가 졸고는 했었는데, 이 녀석은 아예 손잡이 끈에 얼굴을 걸고 잠을 퍼자곤 한다.

2007년 12월 13일 목요일

공연 연습.



다음 주 부터 시작될 공연을 위해 연습을 하고 있다.

친구



'최대한 착하게 보이도록 찍자'라고 약속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충 그런 표정으로 되어버렸다.
녹음 작업에 불러준 친구의 마음이 고마왔다.
내년엔 그의 음악을 도울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침실


잠결에 조금씩 침대가 좁아지는 것을 느꼈다.
사람의 곁에 다가와 친근하게 구는 것이 귀엽다.
꼬마 고양이 꼼은 뻔뻔한데다 맷집 마저 좋다. 사람의 발에 몇 번 채이고 맞아도 잠을 깨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갈 줄을 모른다.
나는 똑바로 누워서 잠들었다가 깨어날 때엔 기묘하게 구부러진채로 일어나게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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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4일 화요일

달력



어릴적에 연세 많으셨던 분이 '달력은 점점 빨리 넘겨지도록 되어있다', 라고 하셨었다.
그것은 정말이었다.
학생들과 만나는 레슨실의 벽에는 달력이 붙어있는데, 나는 뭔가를 설명하다가 특별히 메모지가 없거나 다급하면 그냥 달력에다가 낙서를 해버리는 버릇이 있다.

어느덧 다 지나와버린 올해의 달력을 바라보니 한 해가 대단한 속도로 지나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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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


얼마전 어느 학교의 수시입시 필기시험 문제중에서, 정답이 나오지 않는 이상한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수험생들이 시험시간 내내 이의를 말하고 설명을 요구했지만 시험감독관들은 별 이상이 없는 문제라고 우기고 있었다고 했다. 결국은 시험종료 5분 전에 시험감독 선생들이 다급하게 문제가 잘못되었다며 정정을 해주고, 이미 답을 기입해버리고 말았던 학생들을 위해 대책을 마련해줬다고 들었다.
음표에 #이 한 개 빠져있는 것이 그렇게 심각해질 수 있다.

누구에게나 참정권이 주어지는 것이 옳다,라고 우리는 생각하도록 되어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길고 긴 역사를 통해서 인류가 기껏 배웠다는 것이 '개나 소나 투표하는' 훌륭한 제도인거구나, 라는 생각도 함께 한다.

정답이 없는 객관식 문제를 내어놓고 유권자들에게 답을 고르라는 것은 옳지 않은 짓이다. 거기에다가 간단 명료한 문항에 대한 답의 예시라는 것이 무려 열 두 개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어처구니 없는 퀴즈다. 넌센스 문제가 아니고서야 그 열 두 개 중에 정답이 있을까싶을 정도다.
풀리지 않는 객관식 문제를 해결하는 고전적이고 유치한 방법을 사용하여, 우선은 말도 안되는 답들을 일단 지워나가보자....라고 한다면, 결국 다 지워야 할 지경이다. 그저 최악과 적당히 악이 있을뿐, 도무지 이번 문제엔 정답이 없다. 

그러더니 시험종료가 다가오니까 이번엔 엉터리 답안 몇 개가 자기들끼리 서로 합쳐지더니 그걸 찍어달라고도 한다. 앞으로 문항의 수는 더 줄어들 수도 있겠지만 그래봤자 그 답이 그 답일테다.
객관식 답안의 갯수가 줄면 뭐하나, 어쨌거나 정답의 근사치조차 보이지 않는다. 시험감독관은 부정행위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아예 수험생들의 눈과 귀를 틀어막았다. 이것 저것 틀어막으려고만 하다보니 자기들이 뭘 막아야 옳은지도 잘 모른다.

학생들로 말하자면, 시험공부는 하지 않은채 불량한 사전정보만 가진 수험생들이 태반이다. 그것도 가관이거니와, 시험장 밖에서는 각계의 '업자'들이 학생들을 교란하고 호객한다. 심지어 협박도 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문제출제자로 여기고 수험생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것은 말하자면 막대한 돈과 시간을 들여 벌이는 헛지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 아무리 엉터리 객관식 시험이라고 해도, 즐겁게 하자, 라고 마음 먹는다. 얼마나 즐겁고 마땅한가. 아무리 엿같은 문제라고 해도 기꺼이 하려고 애쓴다. 평생 해먹겠다고 헌법을 바꾸거나 체육관에서 얼렁뚱땅 처리되고 말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아무리 엉터리 문제라고 해도 풀어보려 애쓸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시험이 끝날때까지 더 머리가 아프더라도 계속 고민하고 속상해보기로한다. 어찌되어도 매한가지 결과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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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캣 놀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신경이 쓰여 문밖으로 나가보았다. 꼬마 고양이가 비닐봉지를 목에 걸고 뛰어다니고 있었다. 집안의 어른 고양이들중 아무도 그에게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넌 결코 수퍼캣이 될 수 없어' 라고.
내가 어릴때에 어른들이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아서, 번번히 다리가 부러졌던 친구 녀석이 있었다.

사진 속의 표정을 보면 이 고양이는 뭔가 스스로 몹시 대견하다고 생각되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보아줘도 그냥 까만 봉지 키티인데...
꼬마 고양이는 한참 동안 비닐봉지를 두른채 집안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줄 선 고양이들.


아내가 찍어두었다가 보여준 사진.
장면의 설명은 이런 이야기인듯. 까만 고양이는 워낙 아내를 좋아하여, 음식을 만들거나 주방에서 분주하게 일해야할 때엔 반드시 곁에 와서 앉는다. 
개수대의 좁은 턱에 올라앉은 까망이를 보고 샴고양이가 뛰어 올라갔다.
그것을 멀리서 지켜보던 꼬마 고양이는, 깡통 통조림을 배급받는 것으로 알고 얼른 따라서 올라와 줄을 섰다.
맨 앞을 넘겨다 보지만, 그날 저녁의 배급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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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3일 월요일

단짝이 된 고양이들.



햇빛이 따뜻하게 비추던 오후, 소파위에서 벌어진 고양이들의 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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