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 15일 토요일

2003년 11월 9일 일요일

가을.


오후에 노란색이 가득한 것을 보고 잠시 걸었다.
늘 밤에 다니다보니 오후 세 시에 이렇게 많은 색들이 있었구나, 하며 좋아하였다.
바람은 서늘했고 텅 빈 작은 학교 운동장에는 낙엽이 구르며 쌓이며 놀고 있었다.
어리고 버릇없는 손자녀석이 바퀴가 덕지덕지 붙은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있었고, 그 뒤를 할머니가 어렵게 따라다니고 있었다.
한쪽 의자에 앉아서 노란색을 잔뜩 묻히고 있었다.

십여년 전에 한 번 가보았던 치악산 구룡사, 지리산 연곡사, 천 살이 되었다는 은행나무가 있다는 용문사, 오대산 월정사 초입의 전나무숲길. 해마다 가을이면 단풍으로 물드는 그곳들에 올 가을에는 정말 마음먹고 가보고 싶었다.

그대신 오후에 가을냄새를 맡으며 앉아서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올 가을은 이것으로 됐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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