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7일 금요일

입양을 기다리는 고양이

몇 년 째 동네의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있는 아내가 보름 전에 이 고양이 사내아이를 발견했다.
한 눈에 버려졌거나 집을 잃은 고양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 이유는 깨끗하게 다듬어진 털에 아직 샴푸 냄새도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애타게 찾고 있을지도 몰라 계속 지켜보고 밥을 주면서 보호해왔다. 고양이는 그 자리를 떠나지도 않고 다른 곳으로 놀러가지도 않으며 지나가는 사람만 보면 반가와하고 말을 걸거나 애교를 부렸다고.

문제는 이런 고양이들은 길고양이의 세계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잘 받아들여지지도 않기 쉽다는 것이었다. 친구 한 마리도 사귀지 못하고 지내던 이 고양이가  겨우 아내의 식당차에 단골로 오고 계시는 한 녀석과 나란히 잠들어 있는걸 한 번 보았을 뿐이었다. 자꾸 텃세 부리는 고양이에게 얻어 터져 상처를 입고 있었고, 이 동네의 돼먹지 않은 몇 어린이들이 돌을 던지거나 비비탄 총을 겨누어 얘를 쏘며 놀고 있었다.


아내가 결심을 하고 고양이를 데려왔다. 고양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찾아갔다.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정도의 절차도 어려웠다. 이 동네의 동물병원 몇 군데는 동물의 목숨으로 병원 월세를 내기에 급급한 사람들이어서인지 간단한 검사도 어렵다. 터무니없는 가격 흥정에 엉터리 진료가 허다하다. 병원 이름을 밝히고 싶어 죽겠다.

거리가 멀지만 좋은 병원이어서 자주 다니는 곳은 (역시) 환자들이 붐벼서 일주일을 기다려야 수술이 가능했다. 아내는 케이지를 들고 먼길을 돌아 양심적인 병원을 새로 찾아 고양이를 수술 시키고 약을 먹일 수 있었다. 지금 이 놈은 우리집에서 다른 고양이들과 다른 장소에 혼자 격리되어 있다. 유리창 너머에 격리된 상태여서 고양이들이 밥 한 술 먹고 유리를 사이에 둔 채 마주보고 서로 구경하는 장면을 며칠 째 본다.

이 고양이 - 우리는 이름도 모르지만 - 는 타고난 성격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과 눈만 마주치면 웃고 말하고 장난치려고 한다. 다른 고양이들을 대하는 것도 그저 즐겁고 재미있기만 한 모양이다.
아내는 그동안 많은 고양이들을 구했고 입양 보냈다. 어쩌다보니 입양 보낼 시기를 놓치고 말아서 식구로 남아버린 녀석도 있는 바람에 이미 우리집은 사람집이 아니라 고양이집이 되었다. 귀엽고 의젓한 요놈을 더 품에 안기엔 벅차다. 아내가 입양보냈던 고양이들 중에는 외국 대사관 직원 부부에게로 가서 그분들과 함께 그 나라로 떠나 잘 살고 있는 놈도 있다. 행여나 기대하여 짤막한 영어 광고글도 함께 써서 페이스북에 올렸다.

요 녀석이 부디 맘 착한 분에게로 가서 뻔뻔하게 눌러 앉아 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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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발매


새 음반 발매에 대한 기자간담회를 했다. 밴드 멤버들의 일정상 인터뷰를 여러번 할 수 가 없었다. 그래서 여러 언론들의 협조를 얻어 동시에 기자회견처럼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고, 미리 인터뷰 연락을 해오신 기자분들께는 사과하고 양해를 구했다고 들었다.

예상했던 정도의 시간이 걸렸고, 나에게도 이야기할 시간이 주어졌었다.
그런데 마치고 보니 마치 단상 위에 있는 밴드와 엔지니어들만의 힘으로 다 이루어놓았다는 듯 자랑질을 한 것 같아 몹시 겸연쩍고 부끄러웠다. 그 자리엔 녹음할 때에 모든 일들을 성심껏 도와주셨던 스탭분들이 다 있었다. 한 마디 감사의 말을 하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 분들은 그날 우리의 녹음을 도와주신 댓가로 돈을 더 번다거나 무슨 영예를 얻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 그냥 마음으로 궂은 일을 다 해줬던 분들인데 인사 한 마디 못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겨우 음반 한 장을 발표한 것일 뿐인데 이 정도는 과하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바쁘게 빗길을 달려 방송 녹화장으로 가는 중에 이미 송고되어 웹의 지면에 올려지고 있는 기사들을 아이폰으로 읽을 수 있었다. 놀라운 세상인거다. 무엇이 놀라운가 하면, 아무런 내용도 정보도 최소한의 안목도 구경할 수 없는 기사들이 그렇다.
이런 테크놀로지의 세계인데도 제대로된, 최소한 사실에 기반을 둔 기사를 읽으려면 보물찾기 하듯 찾아야 하거나 포기해야 한다. 끔직하지만 점점 더 나빠질 것 같다. 여전히 그런 시대를 살고 있어야 하는 것이라니 그 사실이 테크놀로지의 발전 보다 더 놀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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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18일 수요일

새 음반

김창완밴드의 새 음반이 나왔다.
음반의 녹음장면이 담긴 영상이 함께 나왔다.




2012년 4월 17일 화요일

밴드의 새 음반 녹음 이야기.

2012년 3월 23일 금요일.

두 시간 정도 잤을까, 나도 모르게 알람이 울리기 전에 선잠을 깨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어두운 방안에서 고양이들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사이좋게 모여 잠들어 있었다. 창문에는 빗방울이 닿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여섯 시 반에 집을 나와서 녹음현장에 도착했다. 아침 일곱시 사십 분이었다. 히터를 틀어둔 채 자동차 지붕의 빗소리를 들으며 스르륵 다시 잠이 들었다.

오전 아홉 시에 모든 스탭들과 악기들이 준비를 갖췄다. 손에 들고 있던 커피가 아직 식지 않았다. 나는 내 자리에 앉아서 녹음할 노래들의 제목을 적어둔 종이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냥 보고만 있었다. 읽거나 생각을 하거나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물 한 병을 열어 마저 다 마셨다.
개인 악기들과 앰프 등은 하루 전 22일 목요일 낮에 미리 가져다 뒀다.
나는 내가 해야할 일을 순서없이 여기 저기 적어놓았다. 아직 잠을 덜 깬 상태로 앰프 앞에 앉아 그것을 정리하여 종이에 옮겨 적고 있었다. 목요일에 일을 마치고 늦게 집에 돌아와 혼자 녹음할 곡들을 죽 쳐봤었다. 그 시간에 차라리 잠을 푹 자둘 것을 그랬다.
지금까지 낫지 않고 걸핏하면 다시 상처가 나고 있는 오른손의 손톱끝이 그날은 유난히 심하게 아팠어서, 신경이 날카로와져있었다. 조명을 어둡게 해놓았는데도 자주 눈이 부셔서 계속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저기’, ‘금지곡’, ‘꿈이야 생각하며 잊어줘’, ‘팩스 잘 받았습니다’, ‘멀어져간 여자’는 펜더 재즈로 녹음했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의 앞 부분은 손가락으로, 뒷 부분은 피크로 연주했다. 아길라의 스톰프형 프리앰프에 드라이브를 조금 걸어둔 상태로 암펙 앰프의 게인은 조금 줄인 상태의 사운드로 했다.
‘독수리가 떴네’,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는 물론 Moollon 프레시젼 베이스로, ‘지구가 왜 돌까’, ‘옷 젖는건 괜찮아’, ‘길엔 사람도 많네’는 물론 Moollon 재즈 베이스를 사용했다.
‘팩스 잘 받았습니다’와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는 모두 피크를 사용했다. 나머지는 전부 피크로 연주할 수 없는 곡들이었어서 손끝의 통증에 신경쓰지 않으려고 힘을 주다 보니 나중에는 턱이 아팠다. 아마 이를 너무 오래 꽉 물고 있었나보다.

모든 곡들은 평균 두 번씩 연주, 녹음되었는데, 대부분 첫번째 것이 테이크 되었다.
평소에 무대에서 연주하던 곡들도 있었고, 이 녹음을 위해 일주일에 사흘씩 한 달 동안 합주연습을 했다.

멤버들의 실수도 거의 없었다. 한 곡씩 마칠 때 마다 의견이 다른 것도 없었다. 사실은 그다지 대화를 할 일이 없었다. 가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펴거나 5분의 시간을 얻어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돌아오거나 했을 뿐. 한 곡을 마친 후에는 리더님이 "자, 다음 곡~" 이라고 말하며 계속 녹음을 이어갔는데, 음반을 들어보면 어떤 곡과 곡 사이에 그렇게 말하는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들어가서 가느다랗게 들린다. ‘자, 쌩큐~ 다음 곡!’

아홉시 반에 시작된 녹음은 열 세 곡을 쉼 없이 진행하여 오후 두 시에 모두 끝났다. 중간에 삼십 분의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네 시간 동안 열 세 곡을 녹음한 셈이 되었다. 음반에는 열 두 곡이 수록되었다. 오후 부터 저녁 까지는 우리 리더 형님 혼자 보컬 녹음을 했고, 모든 것이 다 끝났을 때엔 아직 밤 열시가 다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하루 안에 앨범 한 장의 녹음을 다 마쳐버리다니,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정말 다 했네~’라며 비로소 긴장을 풀었다. 어두워진 하늘에서는 아직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그날의 녹음이 순조롭게 되었던 것은 비가 종일 내려주어 뭔가 차분한 분위기였기 때문일거라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커피를 진하게 내려 마신 후에 나는 반나절 동안 잠들었던 것 같다. 다음날 오후에 일어나서 어제 하루의 일을 생각하다가, 만약 내일 모레에 갑자기 부득이하게 다른 음반 한 장을 또 녹음해야한다고 해도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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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8일 일요일

음반 작업 중.

새 음반이 준비되고 있다. 녹음은 지난 달의 어느날, 하루에 열 세 곡을 녹음하는 것으로 끝났고 어제 믹싱을 마쳤다. 내일 마스터링을 하고 나면 머지않아 음반이 나올 것이다.
믹싱 스튜디오에 앉아 녹음된 음원들을 듣고 있으려니 아쉬운 부분들이야 언제나 뭘 해도 아쉬운 것이 있는 것이고, 우리의 소리와 연주들이 듣기 좋았다. 아무쪼록 그방에 있는 좋은 오디오로 들어보았던 그 느낌이 그대로 음반에 실려 전달될 수 있으면 좋겠다.

각자의 일 때문에 나와 상훈씨는 하루씩 나눠 후반작업에 참여했다. 리더님은 모든 과정을 한 가운데에 앉아 프로듀스했고, 멤버들과 함께 앉아 세부적인 것을 의논하며 진행했다. 밴드 멤버들의 의견은 금세 한데 모아졌다. 우리가 주문하는 내용들이 기존의 상식과 다르다며 엔지니어들은 자주 의아해했다.

윤기형님의 드럼 사운드는 마치 샘플러를 듣는 것 같았다. 단 한 번으로 이루어진 녹음이었는데 세세한 비트가 실수없이 잘 맞게 수음된 것을 들으며 다른 분들은 좋아했다. 그런데 나의 실수와 잘못은 내 귀에 잘 들렸다. 이제와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이 앞으로도 계속 신경쓰일 것이다. 고치거나 더빙할 수 없는 라이브 녹음이었으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어쨌든 끝이 났다. 이제 또 새로운 것을 위해 준비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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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1일 일요일

드러머 형님.

지난 번 합주 때에, 혼자 일찍 도착하게 되어 빈 방에서 볼륨을 크게 해두고 뭔가를 연습하고 있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며 윤기형이 들어오시더니,
"넌 그런거나 하고 싶어 죽겠지?" 라며, 킬킬 웃으셨다.
이크. 들켰다.

언제나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아직 하지 못한 것이 있는걸 고마와하는거죠, 뭐...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윤기형은 내 말은 듣지 못하신 것 같았다.



사람들 사진들을 좀 많이 찍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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