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People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People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3년 7월 21일 금요일

모임


 삼십년 전 친구들과 낮에 만났다. 먼 곳에 사는 인호형이 제일 일찍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나는 5월에 미국에서 살다가 돌아온 인호형과 미리 만났었다. 다른 친구들은 그를 실제로 삼십년만에 만나는 자리였다. 서로 반가와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과 낮이 바뀐 나는 낮 시간에 낯선 장소에서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으니 점점 더 몽롱해졌다. 에어컨 가까이에 앉아서 반쯤은 졸고 있는 상태로 대화를 하다가 창밖을 보거나 빈 벽을 올려다 보거나 했다. 시간은 한쪽으로 진행한다던데, 살다보면 시간은 구불구불 지나가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수 없이 많은 휘어있는 시간 중 하루를 보낸 것 같았다.



2022년 5월 20일 금요일

오후에 친구와.

 


서정원을 만났고, 커피를 주문하여 자리에 마주 앉자 그는 자기가 직접 만든 쿠키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내밀었다. 맛있었다. 그가 혼자 집에서 빵과 과자를 만들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맛보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하지 못하는 일이어서 여러번 감탄해주고 있었다.

친구로부터 그가 최근에 보았던 과학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들었다. 뇌과학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람이 도덕, 규율, 인간성을 배반하는 선택을 반복하다보면 그런 결정이 유발할 수 있는 죄의식이나 미안한 감정에 스스로 무뎌지도록 뇌가 작용하기 시작한다는 이야기였다. 죄의식이라는 감정은 결국 뇌의 주인을 괴롭게 만드는 부정적인 것이기 때문에 뇌에서는 그 반응을 무디게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과학의 성과라고 하니 과연 그랬었군, 하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과학이 밝혀내어 알려주기 이전에도 인간이 그런 형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류는 아마 고대로부터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외에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철학, 규범, 종교의 모습으로 자연이 지닌 본래의 이기심에서 진보하고자 하는 노력은 더디지만 멈춘 적이 없었다. 그렇게 애쓴 결과 겨우 요만큼일 뿐이지만 여기까지라도 온 것 아닐까. 가장 쉽고 무책임한 행위는 그저 남을 탓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올해가 되어 처음 만났던 오랜 친구로부터 얻게 되었던 교훈이었다. 그리고 쿠키는 맛있었다.


.

2020년 3월 16일 월요일

연주.


지난 주 금요일, 서교동 클럽에서 공연을 했다.
이번에는 전날 밤에 합주를 할 수 있어서 연주하는데에 편했다. 합주라고 해봤자... 대충 한 번 맞춰보는 것이었지만.

감염병에 대한 소식은 넘쳐나고 한국의 언론은 여전히 마스크 타령인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공연을 보러 와준 분들이 많아서 뜻밖이었다. 사실은 무관중 공연이라고 해도 기꺼이 할 생각이었다.

하루 전 합주할 때에는 의자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스트랩이 조금 늘어난 것인지 내 체중이 조금 줄어버린 것인지 서있을 때에 악기의 위치가 약간 낮게 느껴졌다.
다음 주에 남아있는 한 곡이 마저 발표되면 또 공연을 하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짧았던 공연 시간이 근래 석 달 중 제일 마음이 편안했다.


.

2020년 3월 2일 월요일

촬영.


친구와 함께 하는 밴드 멤버들이 오랜만에 악기를 가지고 모였다. 지난 해에 녹음했던 음악 중 한 곡이 발매되었다. 밴드는 '윤병주와 지인들'이라는 이름으로 정해졌다.
오늘은 공개하고 있는 곡들을 위해 비디오 촬영을 했다.

서교동 거리는 온통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있었다. 주차를 한 뒤 차에서 내려서는 나도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사람들은 전염병 때문에 두려움이 생겼고 간혹 맨 얼굴로 상점에 들어가면 직원 분들이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였기 때문에, 남들을 불안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메르스라는 전염병이 창궐했던 것이 불과 사, 오 년 전이다. 그것이 지금의 코로나 19라는 것 보다 훨씬 지독했었다. 다만 그때와 달리 지금의 행정부는 일을 너무 잘 하고 있고, 지금의 언론은 그때와 달리 신이 나서 아무 말이나 하고 있다.

오랜 시간 촬영이 계속되니 슬슬 허리가 아파왔다. 그런데 나만 힘들고 아픈 것 같아서 내색하지 않으려 힘을 주고 서있었다. 알고 보니 다른 사람들도 피로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네 시간 동안 공연을 하는 것이 낫지, 같은 곡들을 여러 번 촬영만 하는 것은 고된 일이었다.

수고를 아끼지 않아준 감독님과 잘 준비해준 친구 덕분에 즐겁게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오가는 사람이 줄어버린 밤거리가 유난히 춥게 느껴졌다.

2020년 2월 11일 화요일

사진 촬영.


친구들과 함께 하고있는 밴드의 사진이 필요하여, 사진을 찍으러 오전에 남산으로 갔다.
평일 오전에 남산 도서관 앞은 한산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사람들이 계속 지나다녔다. 하늘은 오랜만에 맑았다.

촬영을 마치고 근처에 있는 기사식당에서 양이 많이 나오는 그 돈까스를 멤버들과 함께 먹었다. 나는 삼분의 일 정도를 남겨야 했다. 명동과 퇴계로를 자주 쏘다니던 어린 시절에는 어떻게 그 큰 접시를 싹싹 비웠는지 모르겠다.

사진 찍는 일을 마쳤고, 이제 다음 주에는 지난 가을에 녹음했던 음악이 발매될 것 같다.


.



2019년 8월 20일 화요일

슬픔.


운전을 하다가 전화를 받고, 십여년간 함께 일하고있는 분이 갑자기 부친상을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하려던 일들을 대충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와 밤중에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자정이 넘어서 도착한 인적드문 길 옆의 장례식장에서 아버지를 잃은 사람을 만났다.

두 시간 동안 텅빈 방 안에 마주 앉아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예상하지 못한 이별이 사람을 얼마나 무기력하게 하는지 나는 잘 알고있다. 그것은 서운함, 슬픔 따위의 단어로는 그 뜻을 전달하기에 부족하다.

돌아오는 길엔 한번도 쉬지 않고 운전했다. 검은 하늘빛이 바래지더니 요금소를 지날 무렵 갑자기 아침이 되었다. 나는 돌아가신 분의 인생은 알지 못하지만 조금전 만나고 온 분이 느끼고 있을 황망한 심정은 잘 알 것 같았다. 졸음을 이기기 위해 음악을 틀었다가 상을 입은 분이 생각나서, 그만 꺼두고 달려야했다.



.

2019년 7월 21일 일요일

연주.


일요일 저녁 공연을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팀과 함께 연주했다.
흐린 하늘처럼 가라앉은 기분으로 집에서 나왔었는데 연주를 마친 뒤에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

2019년 4월 19일 금요일

공연.


병주와 함께 다시 지난번 장소에서 공연했다. 오늘은 잠도 적당히 자두었고, 컨디션이 좋았다.
지난 달에 겪었던 고통스러운 경험 덕분에 리허설 때에 내 귀를 괴롭히지 않는 각도로 스피커와 앰프들을 자리잡아 놓았다. 앰프의 게인도 적당히, 가능한 피로하지 않기 위해 스트랩의 길이를 몇 센티미터 줄였다.
즐겁게 했다. 아마 한 시간 반 정도 연주했던 것 같다.


2018년 12월 31일 월요일

좋은 해가 되면 좋겠다.


사람 곁에 꼭 붙어서 지내는 고양이 짤이가 뭔가를 보고있다. 아내의 발이다.
지난 달에 아내가 발을 다쳤었다. 병원에 다녀온 후에도 계속 통증을 느낀다고 했을 때에 알아차렸어야 했다. 아내는 웬만한 일로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는 성격인데, 내가 그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다른 병원에 가보았고, 그동안 발가락 뼈가 부러진채로 한 달 가까이 지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갔었던 병원에서 엉뚱한 진료를 하고 가벼운 말로 환자를 안심시켰던 것이었다.
발에 깁스를 하고 집에 돌아온 아내의 모습을 보며 여러가지 감정이 오고갔다.
무슨 나쁜 일이 생겼을 때에 아무도 뭐라고 말하지 않는데도 나는 어쩐지 나의 탓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것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화도 났다가, 생각을 거듭하면 역시 나의 부주의이고 내가 제대로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마음에 우울해지기도 한다.
어제는 아내의 발에 붕대를 다시 감아주면서, 나는 왜 제대로 하는 일이 없는가 하여 힘이 빠졌다.

이제 올해가 하루 남았다.
아버지는 지난번 수술에서 떼어낸 조직을 의사가 검사한 결과, 다시 암으로 의심되는 것이 발견되어 재수술을 하게 됐다. 보름 뒤에 다시 입원을 해야한다. 엄마는 내일 입원했던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지속적인 치료를 위해 몇 가지를 예약하여야 한다.
고양이 이지는 잘 먹고 잘 지내기는 하지만 여전히 약에 의지해야하는 상황이다. 어쩌면 계속 약의 힘을 빌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내는 앞으로 3주 이상 절뚝거리며 다녀야 한다고 했다. 그 기간이 지나도 부러진 뼈가 완전히 아물거나 낫는 것은 아니라고 하니, 한동안 고생스러울 것이다.

악기들을 잘 보관하기 위해 내가 지내는 방에는 언제나 보일러를 잠그고 산다.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다가 문득 내가 손이 시려워서 자주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방문을 열고 나가보니 고양이들은 아내의 곁에 모여서 따뜻하게 자고 있었다. 한 번 내려서 마신 커피가루가 담긴 필터에 물을 데워 부었다. 연하고 맛없는 커피가 한 잔 생겼다.
달력을 한 장 넘긴다고 하여 무엇인가 변해질 것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그래도 해가 바뀌면 가족들 모두의 병이 낫기를 바란다. 봄볕을 쬘 수 있을 즈음엔 모두들 산보도 하고 각자 즐거운 여가를 보낼 수도 있으면 좋겠다.

금세 지나가버린 한 해가 아쉽지도 않다. 조금의 미련도 없기는 오랜만이다.




.

2018년 9월 17일 월요일

그 때 그 곳.


페이스북 덕분에 연락을 하고 지냈던 주엽형의 초대로 내가 졸업한 학교에 갔었다.
학교의 홍보를 위해 쓰이는 일이라고 하여 두말없이 가겠다고 대답하고, 시간을 내어 다녀왔다. 어색한 사진 몇 장을 찍고 주엽형과 마주 앉아 인터뷰를 하였다. 사실 그것은 좋은 핑계였고, 기회삼아 옛 학교에 가보고 싶었다. 25년만에 가보는 곳이었다.

눈에 익은 길이 나왔을 때에 갑자기 잊고 지냈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기억은 혼재되기 쉽고 나는 워낙 시간의 앞과 뒤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가끔 떠오르던 골목길이나 좁은 거리가 어디였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었다. 바로 내가 다녔던 학교 앞이었다.

주엽형의 연락으로 태우형과 광장형도 만났다. 함께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다른 장소에서 약속하지 않고 학교로 갔던 것은 잘한 일이었다. 엄혹했던 시절, 야만스러움이 아직 씻겨지지 않았던 사회의 분위기는 학교라고 하여 크게 다르지 않았었다. 오늘 만났던 형들은 모두 젊은 투사들이었고 자신을 던지며 부당한 일들에 맞서 싸웠었다. 그 틈새에서 늘 이어폰이나 귀에 꽂고 다니며 음악을 할 생각만 했던 나를 이해해주고 오히려 배려해줬던 사람들도 그 형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공적으로 사적으로 빚을 졌다. 그런 부채의식은 평생 지속된다. 굳이 갚으라고 하는 사람은 없는데도.

오래된 건물의 복도를 지나는 사람들, 새로 생긴 길을 오고가는 학생들의 모습은 분주해보였다. 제법 굵어진 나무 한 그루, 매점으로 쓰였던 낡은 건물의 벽돌들도 모두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늦여름의 햇빛은 따뜻했고 그늘 아래에서 부는 바람은 시원했다.

떠오르는 생각들이 많았다. 기억하고 있는 일들은 너무 흐릿했다. 낯익은 장소에서 느껴보는 생소한 기분들이 돌아다녔다. 떠올랐던 것들을 써두고 싶었는데, 몇 번 시도를 하다가 그만뒀다. 서로 맞춰지지 않는 조각들같은 생각들이었다. 기분과 느낌은 그것대로 지니는 편이 나을 때가 많았다. 따뜻한 햇빛과 선선한 바람을 기억해두자, 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는 잘 기억할 수 있다.

집에 돌아올 때엔 일부러 국도를 타고 느릿느릿 운전했다. 꼬불거리는 도로 위에 차들이 없었다. 조용한 오후였다. 함께 와준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한적하고 고즈넉한 드라이브를 했다. 컨테이너로 꾸민 커피집을 발견하고 멈춰 서서 찬 커피도 한 잔 사서 마셨다.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왜 나는 그 형들과 사진 한 장 함께 찍어두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자신의 모습을 담는 사진을 찍는 일에 무감하다보니 아쉬운 한 컷을 얻어놓지 못했다. 이제 사람을 만나면 함께 사진 찍어두는 일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2018년 8월 14일 화요일

이름.

2009, Kimchangwan Band
공연을 마친 후 숙소에서 멤버들이 둥글게 모여 앉았다. 이야기 도중에 밴드 리더님의 오래된 기타가 화제에 올랐다.
그 기타는 미국에서 1990년에 만들어진 Hamer 기타였다. 8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에서 저가모델로 만들어졌던 Hamer 기타도 있었다.

from Pinterest.com
이 기타회사는 1973년에 처음 시작하여 깁슨, 펜더와도 인연이 많다. 나름 한 시대의 정점을 찍었던 기타이기도 했다.

이야기 도중에 리더님은 계속 이 기타를 '헤이머'라고 불렀고, 나는 '해머'라고 말했다. 사진을 검색해봤다면 제대로 된 발음을 쉽게 알 수 있었을텐데 나는 이 기타의 이름을 Hammer 로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 충전 중이었던 아이폰을 가지러가기 귀찮아서 '아, 헤이머가 맞는건가' 하고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 생각이 나서 검색을 해보고 자료를 찾아봤다.
새로 알게 된 것은 사람의 surname 인 Hamer는 '하이머' 정도로 발음한다는 것이었다. 같은 문제를 두고 미국인들의 게시판에서도 질문과 대답이 오가고 있었다. 이런 경우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면 되는지 알려주면 간단하게 궁금한 것이 풀린다. 아니나 다를까 몇 개의 게시판에서 Hamer 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여 발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심지어 기타 회사의 설립자인 Paul Hamer 를 만났을 때에 직접 물어봐서 알게 되었다는 글도 있었다.

덕분에 이 기타와 이 이름을 '하이머' 라고 부른다는 것을 배웠다. 잊어먹지 않을 것 같다.

외국의 이름을 우리말로 가져와 편하게 발음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요즘은 아무도 Fender 를 '휀다'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펜더'라고 말하면서도 그 기타의 메이커가 'Fender' 인줄을 잘 안다. 검색창에는 '펜더 기타', '펜더 재즈베이스'라고 입력하는 것으로 모든 사람들이 상호 소통을 할 수 있다. '펜더'는 'Fender' 와 같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음악하는 사람들이 서로 '펜더'라고 말한다고 하여 뚜쟁이를 뜻하는 'Pander' 를 연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펜더'라는 말은 우리말 속에서 자연스런 기능을 한다.

그런데 독일의 기타와 앰프 회사인 Hughes & Kettner 는 한글 웹페이지에서 거의 대부분 '휴거스 앤 케트너'라고 말하고 쓴다. 양보하여 생각한다고 해도 '휴게스'가 아니고 왜 '휴거스'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Hughes 역시 사람의 이름이기 때문에 '휴-즈' 라고 발음해줘야 한다. 딥 퍼플에서 베이스를 연주하고 보컬도 맡았던 Glenn Hughes 역시 '글렌 휴즈'라고 말해야 맞다. 영화 감독 형제인 Hughes Brothers 나 맨체스터의 록커 Gary Hughes 의 이름들도 모두 '휴즈'라고 해줘야 옳다. 한글 검색으로 '휴거스 앤 케트너'라고 입력하면 유연한 검색어를 지원하는 구글에서도 '휴즈 앤 케트너'로 바꿔서 검색해주기 어렵다. 지금 구글이 굳이 옳은 발음으로 고쳐주고 있지 않는 이유는 이미 '휴거스 앤 케트너'라고 입력하여도 한글 자료에서는 무수히 많은 Hughes & Kettner 가 찾아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휴즈 앤 케트너'라고 검색하면 검색결과가 덜 나오게 되고 있는 실정은 뭔가 우습기도 하고 바보같기도 하다.

뛰어난 테크닉과 즉흥연주를 보여주는 베이스 연주자 Hadrien Feraud 의 이름은 '애드리안 페로'로 발음해줘야 하지만, 역시 한글 검색에서는 대부분 '헤드리안 페라우드'라고 나타나기 십상이다. 유튜브에 있는 영상을 찾아보면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이름에 있는 H 를 굳이 발음하는 것 같다. 성이라도 원래대로 불러주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사람의 이름이니까.


.


2018년 8월 8일 수요일

좋은 사람들.







좋은 사람 두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
아는 사이도 아니었는데 계속 마음이 좋지 않다.
빈 자리가 크게 느껴진다는 말이 와서 닿는다.
올 여름도 나쁘구나.



.

2018년 5월 16일 수요일

대전 공연.


대전에서 공연을 했다.
연주시간은 짧았지만 집에서 일찍 출발하여 리허설을 마치고 긴 대기시간을 보내야했다.
그렇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나는 맥북을 챙겨가서 대기실 테이블 앞에 앉아 대기하는 시간 동안 강의자료를 썼다. 준비해둔 것과 생각나는 모든 것을 다 쓰고, 다시 읽으며 불필요한 것을 빼거나 더 필요한 내용을 덧붙이는 방법으로 한 학기 내내 강의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작년에 사용했던 것들을 고쳐서 쓰느니 이렇게 다시 쓰는 것이 깔끔하기 때문이다. 매우 비효율적이고, 사실 조금은 고생스럽다.

리허설을 할 때에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공연음향 일을 하고 계시는 엔지니어분들에게 이런 말 정도는 하고 싶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면, 제대로 하기 위해 노력해달라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과신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타인의 경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쉽다. 어느 쪽이거나 그 이유는 아직 당신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것을 제 때에 바로잡으며 자신의 실력과 경험을 더 좋은 쪽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남의 말을 잘 들어보는 것이다. 그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통 자신보다 권력이 없거나 나이가 어리거나 혹은 뭔가 만만해보이는 대상에게 고압적으로 군다.
우리가 무대 위에서 까다롭게 음향문제를 주문했던 이유는 '일을 잘 하기' 위해서였다.
그저 각자의 일을 똑바로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경기지역에는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도로에 물이 고여 더 속도를 내지 못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음악을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좋았던, 하루였다.


.

2017년 9월 9일 토요일

진천에서 공연했다.


고려 초엽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돌다리를 건너 숲속에 있는 무대에 도착했다.
큰 강이 보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저수지였다. 돌다리 아래에 흐르던 것은 금강으로 달려가는 세금천이었다. 큰 강인줄 알았던 것에는 초평호라는 이름이 붙어져 있었다. 사실은 저수지였지만 호수라고 해도 좋을 풍경이었다.

아길라 앰프의 소리가 좋았다.
조금 더 늦은 저녁에 공연을 했었다면 숲속에서 울리는 소리가 더 듣기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조명이라든가 다른 문제 때문에 아마도 해가 떠있는 시간에 공연을 진행하여야 했을 것이다.

연주를 마치고 악기를 차에 실어 주차장으로 보낸 후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 산에서 내려와 다시 농다리를 건넜다. 어떤 남자가 다가와 뭔가를 물어보았다. 나에게, 군복무를 어디에서 했느냐고 했다. 그런 질문을 할 사람이 누구일까, 싶어 남자의 얼굴을 보았더니 나의 군대 동기였다. 훈련소를 함께 나와 같은 부대에 배정받은 후에 그는 고민 끝에 하사관에 지원했었다. 무척 반가왔다. 어깨를 두드리며 인사를 주고 받았다. 다만, 이름이 얼른 떠오르지 않아서 많이 미안했다. 함께 사진을 찍고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새벽에 친구를 공항버스 타는 곳에 데려다주기로 약속을 했었다.
밤중이 되니 몸은 지치고 졸음이 쏟아졌다. 집에 들렀다가 다시 새벽에 운전하며 나가기가 더 어려울 것 같았다. 나는 친구의 집으로 곧장 갔다가, 새벽에 그를 데려다 주고 버스에 올라타는 것을 보며 인사를 했다.

긴 하루였다.


2017년 8월 26일 토요일

좋은 사람들이란.




누군가에게 실망을 하고 마음이 틀어져버리는 일은 큰 사건이나 첨예한 대립 때문에 벌어지지 않는다. 아주 사소한 일, 대수롭지 않은 말 한 마디, 문득 드러나버린 습관 같은 것에 갑자기 그 사람이 꼴 보기 싫어진다.

그런데 갑자기 미워진 그 사람은 사실 아무 잘못이 없다. 처음부터 생각이 반대라거나 이해관계 등으로 내 편이 아니었던 사람에게는 실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은 내가 만들어놓은 기대와 착각으로 사람에게 넌더리가 나고 두 번 다시 보기 싫어질 때가 많다. 정작 상대방은 갑자기 변한 것 없이, 원래부터 그런 상태로 일관해 왔을 뿐이었던 것이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인간에 대한 불신을 과장하게 된다. 타인을 쉽게 일반화 하고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게 될 수도 있다.


그 반대의 경우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희망적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깊은 성찰이나 고양된 인격에 몹시 감명하여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행동, 대수롭지 않은 말 한 마디, 그날따라 다르게 들리는 고운 음성, 새삼 느껴진 따스함에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무턱대고 호감을 가진다.

역시 알고 보면 그 상대방이 갑자기 훌륭해졌다거나 아름다와진 것이 아닐 것이고, 사실은 모두 내가 만든 환상과 바람을 증폭시켜줄 티끌만한 단서를 내가 발견하여 과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환상이거나 착각이면 뭐 어떤가. 혐오를 느끼는 것과 호감을 느끼는 것의 주체가 남이 아니라 알고 보면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세상의 대부분의 것은 대개 아는만큼 더 보인다. 사람을 보는 일이 꼭 그렇다. 좋은 사람이란 지상에서는 누구도 본 적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모두 내가 발견해내고 내가 찾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

2017년 8월 19일 토요일

십 년이 지났다.


결혼 10주년을 지나보냈다. 살다보니 지나간 세월이니까 그다지 대수롭지 않을지도 모른다. 처음 각자 한 마리씩 지니고 왔던 고양이 두 마리가 먼저 떠나간 자리에는 군데 군데 마음의 꽃들이 피어있는 기분이 들었다.




.

2017년 7월 15일 토요일

성주에서 공연.


매우 잠이 부족했던 하루였다.
공연 시작 5분전까지 몸이 무겁고 계속 졸음이 쏟아졌다.
처음 몇 곡은 조용하고 부드러운 곡들이어서 나는 연주하며 잠들 뻔했다.
덥고 눅눅했던 여름날이었다. 무대 위와 대기실에는 에어컨이 충분히 가동되고 있었다. 아마 적당한 실내온도와 조명의 따스함 때문에 잠을 쫓기 힘들었나 보다.

이 날은 계속 졸리운 상태로 공연을 마치고 빗길을 약 백여 킬로미터 운전했다. 휴게소에 들러 진한 커피를 마시고 화장실에서 찬물로 세수를 했다. 남았던 구간은 함께 차를 타고 갔던 윤기형님이 운전을 해주신 덕분에 안전하게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

2017년 7월 8일 토요일

울산에서 심야 커피.



마침 울산에 와있었던 친구를 일 년 만에 만났다.
공연장에서 인사를 하고 공연을 마친 후 늦은 저녁을 다 먹고 나서야 연락하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평소였다면 자고 있을 시간이었을텐데 밤 늦게까지 나를 위해 운전을 해줬다.
밝게 켜놓은 간판들이 반짝이는 거리에서도 커피를 팔고 있는 곳이 있었을 것이었지만, 가능한 조용한 곳을 찾고 싶었다.


다시 공연장 근처로 돌아와 24시간 맥도날드에서 평소에 자주 사먹는 로스트커피를 주문했다.
머그컵에 가득 담긴 커피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2016년 11월 13일 일요일

광화문에서.


수십만이라느니, 백만이 넘었다느니 하며 사람들은 숫자를 세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종로에서 교보빌딩 모퉁이까지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밀려 걸어갔다. 그 넓은 장소에서 앞 뒤의 사람들과 몸이 닿은채로 몇 시간 동안 움직여야 했다.

그러는 동안에 청소년, 젊은이들, 어린이를 안은 여자와 남자들, 휠체어를 타거나 안내견의 도움을 받으며 걷던 맹인들 중 누구도 남을 밀치거나 소란을 피우거나 발을 밟거나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신기하게 여겨졌다. 남한의 사람들은 원래 어깨를 부딪히거나 사람을 밀치거나 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 아니었나, 했다.

아니나 다를까, 타인을 몸으로 밀고, 손을 뻗어 사람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사람들이 드디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전부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떠들었고 아무 말이나 했다. 그러다가 만만해 보이는 상대를 보면 훈계질을 하거나 가르치려 들었다. 모두,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공감하지도 못하고 배우려 하지도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그렇게 되어버린 것인지, 원래 그런 인간들이 나이를 먹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냉정하게 따지자면 그들은 지금의 세상에 대하여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 공손히 사죄하는 일이 먼저여야 옳지 않을까. 쓸데 없는 소리일테지만.


2016년 5월 1일 일요일

친구들.

오래된 친구들.

한 장의 사진으로 사물의 모든 것을 짐작하면 안되는 이유를 말해주는 장면이다.

왼쪽은 집에 가면 절대로 연습 안하는 인간이고 오른쪽은 독방에 가둬 두어도 기타만 치고 있을 인간.

이 모습은 사실 내가 주문해서 보였던 행동이었지만, 사진을 유포하며 원래 저런 인간됨됨이라고 소문낼 작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