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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9일 토요일

월출산


 숙소에서 나와서 공연장소인 사찰을 향해 운전했다. 도중에 저수지인 대동제에 잠시 멈추어 산길을 따라 걸었다. 다람쥐가 발 앞을 가로질러 뛰고, 머리 위에서 도토리가 툭툭 떨어졌다. 도갑사에 도착하여 무대가 설치된 대웅보전 주변을 둘러보고 천천히 다니면서 구경을 했다. 열매가 떨어지고 있는 감나무 앞에서 멀리 보이는 화강암 절벽을 올려다 보았다.

등산로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산속으로 걸어 석조여래좌상을 보러 갔다.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소리가 듣기에 좋았다. 미륵전 안에는 사람이 있어서 열린 문으로 허리가 긴 불좌상을 넘겨 보다가 나왔다. 그리고는 별 생각 없이 계속 산길을 따라 더 올라갔다.

사람이 다니는 길에는 어김없이 돌을 쌓아놓은 것들이 보였다. 어째서 돌을 그대로 두지 못하는 건지, 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길이 난 대로 계속 따라 걸었다.

모이는 시간이 가까와져 다시 내려와 절을 돌며 구경을 했다. 사람이 많아서 쉴 곳을 찾지 못했다. 오층석탑과 느티나무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방해가 되는 것이 너무 많았다. 자동차로 돌아가 시트에 기대어 잠시 눈을 붙였다가, 리허설을 했다.

하늘이 어둑해질 무렵 공연을 시작했다. 공연 중에는 상현달이 떠있었다. 한 시간 반 연주를 마치고 났더니 그때부터 피로감이 들었다. 돌아올 때에도 멈추지 않고 운전했다. 네 시간 십 분만에 집에 도착했다. 






2026년 9월 5일 토요일

임진각 포크페스티벌

 

날씨가 좋았다. 아내와 함께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 갔다. 외곽순환도로에서는 터널마다 정체가 심했다. 일찌감치 출발한 덕분에 약속시간 한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장소에 도착하니 드넓은 하늘에 흰구름이 아름답게 떠 있었다. 구월이 되자마자 성큼 다가온 가을이 느껴졌다. 언제나 여름은 길게 느껴지고 가을은 갑자기 와 있다.

파주 포크페스티벌에 마지막으로 왔던 것은 2023년이었다. 그동안 몇 번 그곳에 갔었지만 공원 전체를 빙 돌아 걸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멀찍이 서서 무대쪽을 바라보며 바람을 맞고 걷기도 했다.

이날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온 아내는 나보다 체력이 좋다. 그가 풍경을 즐기며 언덕을 성큼성큼 오르는 바람에 나는 뒤쳐졌다. 이따가 공연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기운을 아끼느라 느리게 걷는 중이라고 변명을 하고 싶었다.

리허설을 준비하는 데 삼십 분이 걸렸고, 실제 리허설은 십여 분 만에 끝났다. 이날엔 무대 위에서 아예 앰프를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는데, 전날 가로 뉘인 앰프 캐비넷 앞에서 음량 조절을 해본 것이 연습이 되었다. 보스 멀티페달에 XLR 케이블을 직접 연결하고 인이어에서 들리는 소리만으로 연주했다.

리허설을 하기 위해 무대에 있을 때에 반가운 분들을 만났다. 앞 순서 가수들의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리허설을 마치고 다시 찾아가 짧은 인사를 더 했다. 꼭 십 년 전에도 그곳에서 오래 전 함께 연주했던 분들과 인사했던 기억이 났다. 서로 건강을 묻고, 안부를 전했다. 

공연을 시작하고 리허설 때와 달라진 소리를 듣게 됐다. 첫 곡을 연주하는 중에 모니터 믹서에서 음량을 다시 조정할 여유가 있었다. 그 후로는 편안하게 공연을 할 수 있었다.  

공연을 마치고 자동차로 돌아와 시동을 걸었다. 아직 푸드트럭에서는 음식을 팔고 있는 중이었다. 하루 종일 많이 걸었던 아내는 피곤해진 목소리를 냈다. 다시 자유로, 외곽순환도로를 달려 집에 도착했다.






2026년 9월 4일 금요일

청계천에서

 

을지로 CKL 스테이지에서 공연을 했다. 금요일 오후에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길은 강변북로, 금호동 금남시장, 장충체육관을 지나 청계천을 지나는 경로였다. 도착하여 짐을 내리고 밖으로 나왔다. 푸른 하늘 아래 건물들 사이로 센 바람이 불고 있었다. 건너편 동아빌딩의 유리 벽면에 빛이 닿아 다동빌딩 벽에 물결처럼 반사되고 있었다.

광통교에 기대어 서서 풍경을 보며 가을이 좀 성급하다는 생각도 하고.

리허설을 하고 첫 끼를 먹은 후 음식점 거리의 한구석에서 쉬고 있는 고양이와 인사했다. 복집과 고기집 사이를 오가며 살고 있는 동네 아이인 것 같았다.

다동, 무교동, 을지로입구역을 걸으며 산책을 했다. 나는 이 길을 많이 걸어다녔었는데 이제 내가 기억하는 모습은 너무 옛날 일이 되어있었다.

무대는 높고 서있는 관객들의 위치는 낮아서 그랬겠지만 눕혀져 있는 앰프 캐비넷 앞에 오랜만에 서서 연주했다. 리허설을 할 때에 베이스 음량을 여러번 고쳐 만져서 편하게 연주할 수 있게 하는 데 잠시 시간이 걸렸다. 인이어를 귀에 꽂고 있어도 언제나 등 뒤에서 울리는 앰프 소리와 진동을 느끼는 데에 익숙해져있었기 때문이다. 밴드 단독공연의 절반 정도 분량이어서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시작부터 계속 뛰고 있던 관객 몇 사람을 보면서 체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2026년 8월 31일 월요일

광화문, S Theatre

 

28, 29일에 세종문화회관 S Theatre 에서 이틀 동안 공연했다.

이틀 동안 펜더 엘리트 5현 베이스를 썼다. 이번에는 페달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악기를 공연에 쓴 것은 5월 광주 공연이 마지막이었다. 몇 달 만에 무거운 베이스를 메고 연주를 해보았다.

금요일엔 긴 시간 리허설을 하느라 공연 전에 힘이 빠져있었다. 그래서 토요일엔 무대 위에 의자를 놓고 앉은채로 리허설을 했다. 공연 후에 허리가 아팠지만 집에 와서 스트레칭을 한 후 통증이 사라졌다. 이제 내 몸이 묵직한 악기를 써도 괜찮은 상태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극장 옆 공원길에 키 작은 배롱나무가 있었다. 아직 많이 덥고 습했다. 진한 분홍색 배롱나무 꽃이 예쁘게 피어있었다. 배롱나무 꽃이 다 져버려야 가을이 시작한다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2026년 8월 15일 토요일

영월에 다녀왔다


 영월 관풍헌에서 열린 행사에 다녀왔다. 무척 덥고 습한 날씨였다. 리허설을 한 후에 악기를 무대 위에 그대로 두었더니 세 시간 동안 물기를 머금어 옷에 쩍쩍 달라붙고 있었다. 습기 때문에 손끝이 점점 아파오고 있었던 바람에 중간에 몇 곡은 피크로 연주했다.

영월까지 가는 길은 도로정체가 심했다. 두어 시간이면 가는 거리를 네 시간 넘게 운전했다. 운전하는 내내 하늘이 흐리고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도착한 후 잠깐 하늘이 개었었다. 봉래산 별마로 천문대 쪽에서 동강 쪽으로 날아오는 패러글라이더들이 보였다.

약속 시간 한 시간 전에 도착하여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너무 오래 운전을 해서 일어나 걷고 싶었다. 정겹게 보이는 극장이 궁금하여 안에 들어가 구경도 했다. 극장 창유리에서 내다본 관풍헌의 뒷면을 보고, 팝콘 냄새를 맡다가 나왔다.

공연 시각이 될 때까지 주변을 산책하고 사진을 많이 찍었다. 나중에 쓸만한 것을 추리고 보면 몇 장 남지 않긴 했지만 돌아다니며 사진과 눈에 담은 모습들이 기억에 남았다.
이제 피해를 입은 자동차를 수리하고 한 주일에 두 번 세 번씩 예정되어 있는 밴드 일정을 시작하게 됐다. 여름이 길게 느껴지다가도 아직은 찬 바람이 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2026년 6월 28일 일요일

세종시에서

 

장거리 운전을 자주 하다보니 세종시에 다녀오는 것은 가까운 거리로 여겨졌다. 오늘은 아내와 함께 공연하는 장소에 다녀왔다. 뜨거운 햇빛을 피해 그늘에서 올려다본 하늘빛이 고왔다.

공연 전까지 시간이 생겨서 너른 공원을 잠시 걸었다. 조금 걸었을 뿐인데 너무 더워서 땀이 많이 났다. 아내는 혼자서 먼 곳까지 더 걸었었다고, 나중에 들었다.

오늘은 Moollon 재즈 베이스를 가지고 갔다. 강가에 있는 내 집은 여름엔 습도가 높아서 악기의 상태를 항상 유지하게 하기가 어렵다. 공연 사나흘 전에 가장 상태가 좋은 악기를 골라 들고 나가곤 하는데 오늘은 Moollon 베이스가 가장 좋았다. 칠십여 분 공연을 즐겁게 잘 했다. 관객과의 거리가 가까워서 분위기도 좋았다. 유월 공연을 좋은 기분으로 마무리했다.


2026년 6월 18일 목요일

대구에서

 


꼭 24시간 전에 나는 대구에서 돌아와 이곳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짐을 꺼내고 있는 중이었다. 오전에 공연하여 한낮에 일을 마치니까 집에 돌아와 주차할 자리가 있어서 좋았다. 어제처럼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온 날에 주차 공간이 없어서 또 아파트 안을 빙빙 돌고 있어야 했다면 아주 힘이 들었을 것이다.

어제에도 내가 힘들었던 원인은 수면 부족이었다. 잠을 잘 수만 있었다면 거뜬히 일정을 마치고 대구 시내를 걸으며 산책이라도 했을 것이다. 새벽 네 시에 출발할 때부터 이미 졸음을 견디느라 애쓰며 운전해야 했다. 돌아올 때엔 두 군에 휴게소에 들러 방전된 배터리를 급하게 충전하는 것처럼 짧게 잠을 자고 깨어나 다시 고속도로를 달렸다.

지난 달 광주에 갔던 날에도 새벽 네 시에 출발하여 하루 종일 극심한 피로에 힘들어 했다. 이런 짓은 삼가자고 지난 달 블로그 글에도 써놓았었다. 같은 짓을 또 했던 이유는 이번엔 오전 공연이었으니 일을 마치고 얼른 돌아와 쉬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일 모레엔 김해에서 연주한다. 공연은 오후 다섯 시라고 했다. 이번엔 반드시 잠을 충분히 자고 좋은 상태로 다녀오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2026년 5월 11일 월요일

광주에 다녀온 이야기

 

새벽에 평소와 다르게 유난히 고양이 깜이가 소란스럽게 소리를 내며 다녔다. 두 번 일어나 먹을 것을 주고 겨우 잠들었으나 세 번째엔 자는 것을 포기하고 일어나야 했다. 고양이에게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그래서 새벽 네 시에 집에서 광주로 출발했다. 차라리 일찍 도착하여 차 안에서 눈을 붙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공연장 앞에 도착해보니 정해진 주차 구역엔 그늘이 없어서 볕이 내리쬐고 있었고 도로의 소음은 이어폰을 귀에 꽂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아서 잘 수가 없었다. 뒤척이다가 바로 앉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차에서 내렸다. 자는 것은 그만 두고 밖으로 나가 5.18 기념공원을 산책하기로 했다.

이른 아침, 긴 숲길을 따라 걸으며 초록으로 우거진 그늘 아래에서 공기를 들이 마셨다. 잠을 못자서 어지러웠던 것인지 갑자기 큰 숨을 쉬는 바람에 그랬던 것인지 살짝 몸을 휘청거리기도 했다.

사찰 무각사엔 무슨 공사를 하고 있는지 가림막이 쳐 있었다. 내리막길을 따라 절의 앞쪽으로 가볼 수도 있었겠지만 기운을 아끼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공원에는 아주 예쁜 새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바쁜 일 없어 보이는 새들은 낮고 여유롭게 날아 나무들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새들이 지나다니는 자리에 광주항쟁 기동타격대를 기리는 기념석이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날 그들 중 열 여섯은 도청 안에서 총격으로 죽었다. 도청 정문에서 세 사람이 죽었고 여섯 명은 행방불명이 되었다. 산 사람들은 군사재판을 받고 내란죄로 복역했다. 내란죄.

공연장으로 돌아왔더니 대기실 문이 열려서 이제야 잘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긴 소파에 벌렁 누웠다. 이번엔 냉방이 너무 세어 추워서 쉽게 잠들지 못했다. 겨우 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멤버들이 도착하였다. 무대에서 악기 소리가 들려 일어나 앉았다.

전날인 금요일 아침에 새 스트링을 감아 놓은 펜더 엘리트 재즈 5현 베이스를 가지고 갔다. 그동안 허리 통증 때문에 무거운 악기를 메고 서있기가 어려워 몇 년째 공연에서 쓰지 않고 있었던 악기였다. 지난 일주일 동안 매일 이 악기로 연습을 하고, 이번에는 꼭 이 베이스를 가지고 연주해보겠다고 생각했다. 브릿지 새들도 조정하고 튜닝 페그를 단단히 잠그었다. 건전지 잔량도 확인했는데, 결국 액티브 스위치는 켜보지도 않았다. 기대했던 그대로 좋은 소리를 내주어서 계속 패시브 모드로 두고 두 시간 동안 연주했다. 그리고 이제 내 허리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다만, 잠이 부족했던 것 때문에 계속 머리가 무거웠다. 이런 바보짓은 다시는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연을 잘 마치고 집으로 출발하여 두 시간 가까이 달리다가 휴게소에 멈추었다. 더 운전하는 것은 무리였다. 불빛에서 먼 거리에 주차를 하고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깨어보니 자정이 되어 있었다. 여기가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데 몇 분이 걸렸다. 한 시간 반 쯤 잤던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개운해져서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다시 집을 향해 달렸다. 집에 왔더니 일요일 두 시가 되었다. 하루가 아주 길었다.







2026년 4월 18일 토요일

안산에서

 

안산에서 공연을 했다. 사 년 전에는 여기 안산 예술의 전당 바로 옆 극장에서 공연했었다. 그곳은 달맞이 극장, 오늘 갔던 곳은 해돋이 극장이라는 예쁜 이름을 갖고 있었다. 어차피 실내 무대이므로 해도 달도 보이지는 않지만 이름은 곱다. 오늘은 한 달 만에 펜더 울트라 II 재즈를 가지고 갔다. 지난 밤에 악기를 가방에 넣기 전에 스트링을 새로 교환하려고 했다가 무슨 일인지 상태가 좋아서 그대로 두었다. 십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악기의 스트링을 자주 갈아야 했었다. 연주를 마치면 언제나 악기를 관리하는 습관이 되어있기도 하고, 이제는 손에 땀도 나지 않아서 베이스 줄을 더 오래 쓰게 되었는가 보다.

공연을 마치고 극장 바로 옆 종합병원 길을 지나면서 오륙 년 전 그곳 장례식장에 두 번 연이어 갔었던 기억이 났다. 그 맞은 편에는 단원고 4.16 기억교실이 있다. 이틀 전은 세월호 참사 12주기였다. 이 년 전에 10주기 기억문화제에서 공연을 했을 때 하루 종일 비가 내렸던 것도 생각났다.


집에 돌아와 다큐멘터리 영화 <란 12.3> 을 보았다. 영화가 만들어질 때 보잘 것 없는 금액을 후원했던 덕분에 개봉 전 온라인 시사회 링크 주소를 받았다. 원래는 지난 주에 메시지를 받았지만 그날엔 익산에서 집에 돌아왔더니 이미 볼 수 있는 시간이 지나버렸었다. 오늘이 마지막 기회였다. 헤드폰을 쓰고 볼륨을 높여서 영화를 보았다.
그래, 아직은 난중 亂中이지만, 수 많은 개인사들이 우연과 인연으로 얽혀서 함께 치르었던 거대한 경험의 힘은 세다고 믿고 있다.

2026년 4월 11일 토요일

익산에서

 

꽃이 가득 핀 봄날 토요일에, 오전 일찍부터 고속도로 정체가 극심했다. 나는 일부러 조금 더 먼 거리로 경로를 정했다. 경부고속도로보다 가는 길은 좀 길지만 시간은 덜 걸린다고 내비게이션이 알려주고 있어서 중부고속도로를 선택했다. 두 번이나 긴 정체가 생겨서 도착 예정시간이 자꾸 뒤로 늦춰지고 있었다. 그런데 결국엔 처음 내비게이션이 알려줬던 시각 그대로 약속시간 한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연인지 아니면 기계의 예측이 맞았던 것인지.

한 주 전 공연에 썼던 내 오래된 펜더 재즈를 다시 가져갔다. 지난 해 내내 새로 산 베이스를 치고 있었는데 그 악기의 넥이 아주 약간 길어서 그 사이 거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 바람에 지난 주에 연주 도중에 그만 순간적으로 프렛 한 군데를 잘못 짚고 말았었다. 이 악기를 나는 내 몸처럼 다루었었는데 이럴 수가, 했었다. 오늘은 실수 없이 잘 했다.

돌아오는 길은 경부고속도로를 선택했다. 갈 때엔 거의 네 시간이 걸렸는데 돌아올 때엔 두 시간 사십 분 운전했다. 오늘은 고속도로에서 쉬었던 적이 없었다. 휴게소 라면을 먹지 못했기 때문에, 어쩐지 라면 생각이 나서 집앞 가게에서 라면을 사가지고 왔다. 아직 잠들지 않은 아내를 꼬드겨 라면을 나누어 먹었는데 뭐라고 할까, 아주 맛있게 먹었다.


2026년 3월 27일 금요일

밀양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하고 일찌감치 집에서 출발했다. 두 시간 쯤 달리고 있을 때에 도로정체 구간을 만났다. 짐작했던 대로 사고가 났던 것이었다. 오십여 분 달리지 못하고 있는 동안 내비게이션이 예측해주는 도착 시간도 정확하게 오십 분 뒤로 미루어지고 있었다. 일찍 나오길 잘 했다, 라고 생각했다. 긴 정체구간을 빠져나올 때에 보았더니 터널 안에서 사고가 난 대형 차량을 쉽게 견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약속 시각 한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리허설 전까지 혼자 소리를 좀 내어보고 싶었지만 다섯 시간 운전을 하고 났더니 어깨와 허리가 뻣뻣해져 있었다. 대기실에 있는 낮고 긴 의자에 누워 스트레칭을 했다. 월요일부터 집에서 연습할 때 쓰고 있었던 Moollon 재즈 베이스를 가지고 갔다. 겨우내 습도 조절을 잘 했던 덕분에 상태가 좋았고 소리도 좋았다.

리허설을 하고 차에서 누워 쉬다가, 대기실에서 도시락을 먹고 다시 차에서 눈을 붙였다. 공연을 시작할 때엔 가벼운 몸이 되어 여유롭게 연주할 수 있었다. 두 시간이 금세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상주 부근에서 또 정체구간을 만났다. 이번에도 추돌 사고였다. 응급차와 견인차가 지나가고 사고 현장엔 경찰과 구급대원들이 분주하게 일을 해주고 있었다. 주의력을 잃고 무심하게 다니면 안되겠구나, 생각했다. 그 때문에 환기가 되었던 것인지 졸지 않고 집까지 잘 올 수 있었다. 오늘 하루 아홉 시간 운전했다.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의자에 앉자마자 갑자기 피로가 밀려왔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던 모양이다.
밀양으로 가는 중엔 애플뮤직에서 갓 나온 Jon Anderson의 앨범을 들었다. 나는 이번에 처음 들었는데, 알고보니 2011년에 출시했던 것을 다시 낸 모양이다. 귀가 중엔 Bill Evans와 Stan Getz 의 라이브 앨범을 들었다.


2026년 2월 27일 금요일

프리버드에서

금요일 오후, 강변북로는 정체가 심했다. 일찍 집에서 나왔기 때문에 시간 여유가 있었다. 갓 나온 Pat Metheny의 새 앨범과 Jeremy Pelt의 앨범을 들으며 운전했다. 몇 년만에 상수동 그 거리를 베이스를 짊어지고 걷는 기분이 어색했다. 오늘은 64 Audio 인이어를 썼는데, 아주 편했다. 사운드체크를 하고 나서 공연 시간이 될 때까지 차에서 음악을 들으며 잠깐 잤다. 조금이라도 틈이 나면 쉬는 수밖에 없다.

시간이 되어 무대 위에 자리를 잡고 섰는데 갑자기 오른쪽 팔에서 경련이 나기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왼쪽 어깨가 아파서 반대쪽에 힘을 주어 의지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이런 상태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허리가 심하게 아팠던 때에도 장거리 운전을 하고 공연을 하러 다녔으니까 이 정도는 뭐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가능한 힘을 빼고 여유롭게 연주하려고 했다. 공연 중간 쯤 되니 몸이 풀렸는지 더 이상 아프지도 않았다.
아무튼 이 달 중 제일 중요했던 한 주를 어깨 통증 때문에 고생하며 보내야 했다. 집에 돌아와 짐을 내려놓고 악기와 케이블을 닦았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고 피곤하기만 했다. 이제 좀 더 치료를 받고 나면 곧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2026년 2월 11일 수요일

포항에서

여섯 시 오십 분에 집에서 출발했다. 아홉 시 사십 분 쯤, 휴게소에 들러서 라면을 먹으며 좀 쉬었다. 미세먼지가 극심했었는데 자동차의 앞뒤 카메라에 시커멓게 먼지가 묻었다가 말라붙어버렸던 탓에 운전자보조 기능 일부가 작동하지 않았다. 열 한시에 포항에 도착하여 주유소에서 연료를 채우며 자동차의 카메라들과 센서들을 닦았다.
그 휴게소 라면은 참 맛이 없었는데, 아주 맛있게 먹었다.

나흘 전 공연에서 악기의 출력이 약하게 들리고 있었다. 한 달 동안 집에서 연습할 때에 페달에 헤드폰을 연결하여 쓰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펙트 페달의 볼륨이 많이 줄여져 있었는데 리허설을 할 때에 괜찮은 것 같았어서 그대로 했더니 공연할 때에 좀 부족하게 들렸다. 이번엔 원래 했던대로 출력을 조정했다. 줄의 액션도 미세하게 조정하여 연주하기에 편했다. 새로 산 인이어들도 모두 좋은 소리를 내줬다. 오늘은 Ziigaat 이어폰을 썼다. 새해 두번째 공연은 앞의 것보다 좀 더 좋았던 것 같았다.

공연을 잘 마치고 집을 향해 출발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틀어둔 음악의 음량을 크게 해보기도 하고 잠시 꺼두어보기도 했다. 창문을 열면 금세 공기청정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지난 번 대구에 다녀올 때처럼 졸음 운전을 하게 될 것 같아서, 졸음 쉼터에 멈추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아주 작은 볼륨으로 음악을 들으며 잠들었는데, 그만 한 시간 넘게 자고 일어났다. 그 덕분에 개운한 상태로 집에 올 수 있었다.


2025년 12월 27일 토요일

대구 공연

 

아침 일찍 출발하여 큼직한 컵으로 커피를 사고 주유소에 들러 연료를 가득 채웠다. 대구 수성아트피아 대극장에 도착하여 무대 반입구를 찾느라 크게 한 바퀴를 돌았다. 이 극장에 16년만에 다시 와보았다. 더 자주 갔던 것처럼 기억하고 있었는데 기록을 확인해보니 아양아트센터와 혼동을 했던 것 같다.

한번도 쉬지 않고 달려왔기 때문에 악기를 설치해놓고 화장실부터 다녀왔다. 오늘은 내 오래된 펜더 재즈 베이스를 썼다. 올해의 마지막 일정이니까 뭔가 더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일 년이 금세 지나가버렸다. 리허설을 한 다음엔 차에 가서 짧은 잠을 청했다. 꿈까지 꾸었는데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깨어보니 고작 이십 여분 졸았던 게 전부였다.

오늘은 이틀 전보다 더 나은 연주를 했다. 막바지엔 피로감도 느끼지 않았다. 뭔가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일곱 시간 사십 분 운전했다. 셜리 혼의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내가 타고 있는 버스가 자꾸만 좌우로 흔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아뿔싸, 내가 꿈을 꾸었던 것이었다. 졸았구나,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어서 졸음쉼터에 차를 세우고 내려 십여분 바람을 쐬었다. 차고 습한 공기가 코 안에 가득 들어왔다.
집에 돌아와 더운물로 씻고 책상 앞에 앉아서, 어찌어찌 한 해를 잘 마무리했구나, 라고 말했다. 자기에게 했던 말이 아니었는데 옆에서 고양이 깜이가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