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12일 토요일

일기.


국민학생이었을 때부터 나는 일기를 써왔다.
맨 처음 컴퓨터를 가지게 되었을 때에 책받침만한 플로피 디스켓을 번갈아 끼워 컴퓨터를 부팅하면서 했던 일은 일기를 쓰는 것이었다.
'보석글'을 가지고 끄적이던 일기쓰기는 결국 너무 번거롭고 경제적이지 않았다. 다시 공책에 쓰는 일기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매킨토시를 가지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개인용 컴퓨터로 일기를 쓰는 일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동할 수 있는 랩탑이 없었기 때문에 오래지 않아 다시 공책에 일기를 썼다.
언젠가부터는 그 두 가지의 일이 이러저리 섞여버려서, 컴퓨터 안에 텍스트 파일로 쌓여가는 일기가 따로 있고 여전히 공책에 적어두는 일기가 한쪽에 따로 있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기록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나조차도 다시 읽어볼 일이 별로 없는 일기를 나는 왜 계속 쓰고 있는 것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

2002년 10월 8일 화요일

악보 보기.


나는 악보를 볼줄 모르는 연주자였다.
지금도 악보를 빠르게 읽지 못한다.
낯선 장소에 도착하여 허둥지둥 악기를 꺼낸 후 대뜸 악보 한 장을 건네어 받는다고 해도 아무 문제없이 초견이 가능한 경지는 아직도 멀었다.
함께 연습하는 분들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더니 믿어주지 않았다.
내가 먼저 고백하기 전까지는 '저 녀석이 악보를 못본다'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동안 나는 눈치와 임기응변, 음악을 외는 습관으로 해왔었다.

나는 한번도 음악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학교의 음악시간이란 교과서 제목 뿐인 '음악'이었다. 음악 선생님들을 볼 때마다 저 분이 정말 음악을 좋아하기는 할까 의심스럽기만 했었다.
나중에 나 혼자 화성공부를 할 때에도 나는 악보를 볼줄 몰라서 영문자로 되어있는 코드 이름을 기초로 무조건 음과 패턴을 외는 식으로 해왔었다.
무대에서 연주를 하기 시작한 후에, 그제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심정으로 악보를 보고 그리는 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연주해야 한다면 악보를 볼줄 아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악보는 연극의 대본과 같다. 음악을 부분마다 잘라서 이름을 붙이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악보를 볼줄 몰라도 얼마든지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다. 또 멋진 곡을 만들 수도 있고, 남에게 가르쳐줄 수도 있다. 그러나 악보를 볼줄 알게되면 연습하는 동안 일일이 말로 설명해야 할 시간에 몇 곡이라도 더 연주해 볼 수 있게 된다.

가끔씩 악보를 보는 바보들을 만날 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어정쩡하게 교육을 받았거나, 교육은 잘 받았지만 음악을 어정쩡하게 하고 있는 이들이다.
음악을 좋아하여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 악보에 표시되지 않았다고 하여 연주할 부분에서 쉬고 있거나 하지는 않는다. 엉터리로 기보된 악보대로 연주하면서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모를 수 없다.
싱코페이션을 악보대로 연주하는 연주자들 보다는 악보는 상관하지 않으면서도 제 맛을 내주는 블루스, 재즈 연주자들이 좋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연극배우가 각자의 대본을 손에 들고 공연하지 않는 것과 닮았다고 생각해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