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24일 금요일

죽고싶을때.

작년이었던가, 전화를 걸어서 자살을 하겠다고 말했던 친구가 있었다. 내가 조언을 해줬다.
주말에 폭설이 내린다고 하니까, 주중에 죽으라고.
눈내리는 날 시체를 치워야 하는 사람들을 배려해야 할 것 아니냐고... 끝까지 말하기 전에 전화가 툭 끊어졌었다.

결과를 말하자면 그는 멀쩡히 살아있었다. 적어도 마지막에 문자메세지를 보내왔던 12월 말 까지는. 아마 오늘까지도 살아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가 죽지 않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마도 그는 그렇게 살아갈 것 같다. 자신을 죽일뻔했던 위기를 딛고 남의 도움없이도 잘 버텨냈었으니까.

FxxxxT의 블로그에 들렀다가 자살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생각이 나서 써둔다. (관련된 내용은 하나도 없어요.)

정말 죽을 정도로 힘들었던 적이 있었던 사람은 흔하지 않다. 그런데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은 적이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제법 많다.
혹시 지금 이 시간,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일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은게 있다. 정말 무섭게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을 만나면, 몸이 반응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더 빠르게 죽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느껴본 사람은 안다. 그런 상황에 몰리게 되면 필사적으로 살으려 애쓰게 된다. 숨이 쉬어지지 않고, 정말 죽음이 눈 앞에 보이게 된다.
그래서, 시쳇말로 정말 존나게 고통스러웠던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살고싶다! 라는 욕망이 생긴다. 그래서 죽지 않으려고, 이렇게 힘들어도 어떻게든 살아남아보겠다고 이를 악물고 일부러 의식하며 숨을 쉰다. 그렇게 자고, 그렇게 돌아다니고, 그렇게 힘든 날들을 보내다가보면 잇몸이 주저 앉기도 하고 단단한 어금니에 금이 가기도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까지 힘들어본적이 없거든, 그냥 죽어보는 것도 좋다. 정말로 목숨을 끊으면 큰일이니까 권장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유서 따위를 써보든가, 간접체험을 해보든가, 여러가지 문학적 상상을 해보던가....... 분명한 사실은 어떤 쪽이든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죽고싶을 정도로 아픈 상태라면 (조금은 매정한 말이긴 하지만) 아직 덜 아파본 상태라고 해주고 싶다. 그 정도 증세라면 아직도 기운이 남았으니까, 기운을 내주세요, 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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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19일 일요일

스페이스 공감 공연.



이틀 공연을 했다. 두번째 날 공연이 녹화되었다.
이 모습은 첫날의 장면이었다.
첫날 보다 이튿날의 연주가 기분이 좋았다.

힘들고 즐겁지 않은 공연을 하고 나면 묘하게도 투지라든가 오기 같은 것이 생긴다.
그런데 즐겁게 연주하고 기분 좋은 공연을 마치고 나면, 집에 돌아올 때에 마음은 더 무겁고 길은 더 멀게 느껴진다.

이 공연을 하고 있던 그 이틀 동안 일본에서는 리차드 보나의 공연이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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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한 번씩 이런 짓을.

이 글을 쓰기 직전 기억해낸 것인데, 작년 이맘때에도 술에 만취되어 기절한 적이 있었다.
일 년에 한번씩 심하게 겪고, 몸조심을 하다가, 열 두어 달 정도 지나면 또 잊어먹고, 다시 만용을 부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나보다.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지난 밤, 공연 시작 전 와인을 돌려 마셨는데, 기분 좋았다. 공연을 잘 마치고 개운한 맘에 남은 와인을 더 마시고... 자리를 옮겨 또 마시고, 마시다가 맥주와 소주를 섞어 만든 폭탄주를 들이 부었다. 내가 미쳤지. 일년치의 술을 냅다 부어댔던 결과 결국 대리운전하는 분을 불러 집에 간신히 돌아왔다.
전혀 머리도 안 아프고 적당히 취한 채로 뒤끝이 나쁘지도 않았는데, 문제는 복통이었다.
그동안 위장이 많이 상했는지, 아주 작은 음식물까지 남김없이 다 게워냈다. 역류하는 산 때문에 식도가 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할 정도였다. (상당히 겁은 많다...)
토하고, 또 토하고, 뭔가 마시면 다시 토하고... 이 짓을 다음날 저녁까지 계속하다가 이제 겨우 회복이 된 것 같다.
어쩌다 한번 긴장을 풀면 이렇게 되어 버리고, 어쩌다 한번 대책없이 마시고 나면 가슴 속에 슬픔처럼 술자국이 남는다.
나는 이대로 맛이 가버린 삼십대 사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러면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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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13일 월요일

불규칙한 생활.

구글에서 특정한 단어가 포함된 뉴스를 메일로 보내주는 서비스를 구독하고 있는데, 동이 틀 무렵이 되자 미식축구 선수 하인즈 워드의 기사들이 열 개가 넘게 전송되었다. 그가 자신의 어머니를 만나러 간 장면을 여러곳에서 크게 보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의 어머니가 "잘되면 쳐다보고 그렇지 않으면 쳐다도 보지 않는 게 한국풍토"라고 말했다는 내용은 각 언론사마다 인용구를 사용하며 강조해주고 있었다. 덧붙여 "연탄이나 숯이나 그게 그것"이라며 자신의 아들을 아프리칸이라고 표현한 언론에게 서운한 감정도 드러냈다고 들었다.

워드의 어머니의 관점을 두고 뭐라고 지적질을 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상한 인종관을 가진 분은 아닐까. 이상한 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아들의 피에 흐르는 흑인의 혈통은 부정하고 싶은 바람이 있는 것인지.

미국에 가본적 없는 내가 무지한 것일까.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말은 괜찮고, 아프리칸이라는 호칭은 서운하게 여기는 것이 정상적인건가. 그가 한국풍토라며 말했던 내용은 미국의 풍토라고 해도 똑같지 않은가.

내 이모님 중 한분도 미국인과 결혼하여 미국에서 살고 계시지만, 한국계 미국인들의 세상을 보는 관점은 유치할 때가 많다. 한국에서의 혼혈인 차별문제도 툭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백인이 아닌 인종과의 혼혈인 차별문제일지도 모른다. 그 기저에는 백인에 대한 비굴한 인종주의가 스며있기도 하며, 그 기원에는 잔혹하고 비열한 백인들의 역사가 있다. (마음씨 착한 내 이모부는 남부의 백인이다.)

미식축구의 대스타에 대한 관심은 미국 밖의 사람들에게는 별 관심거리가 되어지지 않는다. 핏줄에 집착하는 한국인들의 정서상, 어쨌든 미국에서의 유명인사가 한국계라는 것은 좋은 방송거리이고, 화제가 될만한 일이다. 그러나 "한 맺힌 이땅의 혼혈인들"을 기사제목으로 뽑아들기 전에 언론인들은 구린 백호주의부터 좀 씻었으면 좋겠다.

훌륭한 성공을 이룬 아들과 함께 한국에 다니러 오신다는 워드의 어머니가 혹시, "잘되지 않았어도 미리 미리 쳐다봐주는 풍토"를 원한다면 현실적으로 무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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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9일 목요일

순이의 기행.



집에 돌아왔는데, 언제나 뛰어나와 인사를 해주던 고양이 순이가 보이지 않았다.
깊이 잠들었다가도 내가 현관 안에 들어서면 항상 반기던 고양이였는데, 무슨 일인가 걱정하며 불을 켰다.

그랬더니 아뿔싸, 저 안에 들어가 있었다.
어떻게 마이크로웨이브의 문을 열었을까.
상상을 해보았는데, 앞발로 여기 저기 꾹꾹 누르다가 저 문이 열렸고, 종이봉투와 상자처럼 여겨 들어가 앉아 있었던 것이리라.
혼자 심심하던 중에 모처럼 발견한 재미있는 곳이었나 보다. 나는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내버려두려다가, 요리기구 안에 들어가는 것이 습관이 되면 곤란하다고 생각하여 억지로 순이를 끄집어 내었다. 그 안에서 나오고 싶어하지 않아서 힘들었다.
순이는 혼자 있는 것이 외롭고 심심한 것이 틀림없다.
마음이 많이 무겁다.
걱정이다. 고양이 순이를 집에 혼자 두고 며칠 동안 여행을 다녀와야 하는 일이 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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