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 누군가가 1980년 영화 <바람불어 좋은 날>을 통째로 업로드 해놓은 것을 발견했다. 혹시나 하고 검색해보았다가 찾았다. 군데군데 빨리 돌리기를 하면서 영화를 다시 보았다. 거의 삼십여 년만에 다시 본 것 같다. 마지막에 봤던 것은 텔레비젼에서였던 것 같다. 내 기억이 맞는지 자신은 없다. 감독은 이장호이고 조감독 중에 배창호 감독이 있었다. 나중에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촬영하러 라오스에 갔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죽고 말았던 김성찬이 나오고, 이장호 감독의 동생인 연극배우 이영호가 함께 주연으로 나온다. 그리고 한 영화에 모두 출연하기 어려울 것 같은 배우들이 잔뜩 나온다. 김희라, 임예진, 유지인, 김보연, 최불암, 김영애, 김인문, 박원숙, 추석양 등이 한꺼번에. <별들의 고향>이 입봉작이었던 이장호 감독의 명성이 작용했던 것이었을까.
나는 이 영화를 중학교 여름방학 때에 화양동 골목에 있던 동시상영 극장에서 보았다. 한낮에 어두운 상영관 안에 들어가면 자욱한 담배연기가 영사기 빛에 반사되어 떠다녔다. 사람이 없어도 마냥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는 없었다. 학교 선생들이 검문하며 지나다니기도 했고 몇 푼 돈을 뺏으려고 하는 양아치들을 만날 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볼 때엔 다른 생각은 잊고 집중하여 스크린만 보고 있었다. '방화'도 유치하지 않을 수 있다고 처음 생각하게 된 영화였다.
거기에 나오는 동네는 그 몇 년 전에 내가 살았던 길동과 닮았었다. 이발소, 중화요리집, 오른쪽에 운전석이 있는 낡은 수입차는 화양동, 신당동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주인공 덕배는 동시상영 영화관에서 마주칠 수도 있는 인물처럼 보였다. 음악만 아니었다면 더 좋은 영화가 될 뻔 했다고, 이제 막 카세트 테이프를 사모으며 음악에 빠져들고 있었던 열 네 살짜리 사내아이는 생각했었다.
잭 드죠넷, 안소니 잭슨이 죽었을 때에는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고마웠다고, 블로그에 추모하는 글을 쉽게 쓸 수 있었다. 그러나 배우 안성기 씨가 일흔 넷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외국인 연주자들을 향해 추모한다느니 했던 것처럼 선뜻 마음을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그대신 계속 <바람불어 좋은 날>이 생각났다. 이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분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