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1일 수요일

강변에서

 

저녁에 강변을 걸으면서 음악을 듣다가 잠시 멈추어 섰다. 십여년 전에는 자전거를 타고 밤낮 없이 달리고 있던 길 옆에서 곡선을 그리며 흘러가는 강을 보다가 다시 걸었다.

나는 우연히 전쟁이 끝나고 십오년 후에 태어나 부모 덕분에 궁핍과 가난을 겪지 않고 자랐다. 나를 둘러싼 사회에 온갖 부조리와 폭력이 시꺼먼 기름때처럼 묻어있던 십대, 이십대를 지나서, 그래도 반 걸음 나아졌다가 다시 몇 걸음 후퇴하곤 했던 땅에서 용케 살았다. 나는 성공하지 못하였지만 그렇다고 망하지도 않았다. 운이 좋았고, 찾아오는 기회를 쥐기 위해 무척 애쓰기도 했다. 모든 것은 우연히 이 시기에 여기에서 생겨나 살고 있던 덕분이다.

그러는 동안 먼 나라에서 들려오는 침략과 전쟁 소식을 듣지 않았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지금 바다 건너 저쪽에서 죄없이 사람들이 죽고 도시가 폐허가 되어가는 뉴스를 보는 것이 힘들고 괴롭다. 특별히 기쁜 일이 없었어도 저렇게 고요하게 흐르는 강처럼 평안한 일상을 보낸 것이 큰 혜택처럼 느껴져서, 한번 더 힘들었다.

2026년 2월 27일 금요일

프리버드에서

금요일 오후, 강변북로는 정체가 심했다. 일찍 집에서 나왔기 때문에 시간 여유가 있었다. 갓 나온 Pat Metheny의 새 앨범과 Jeremy Pelt의 앨범을 들으며 운전했다. 몇 년만에 상수동 그 거리를 베이스를 짊어지고 걷는 기분이 어색했다. 오늘은 64 Audio 인이어를 썼는데, 아주 편했다. 사운드체크를 하고 나서 공연 시간이 될 때까지 차에서 음악을 들으며 잠깐 잤다. 조금이라도 틈이 나면 쉬는 수밖에 없다.

시간이 되어 무대 위에 자리를 잡고 섰는데 갑자기 오른쪽 팔에서 경련이 나기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왼쪽 어깨가 아파서 반대쪽에 힘을 주어 의지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이런 상태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허리가 심하게 아팠던 때에도 장거리 운전을 하고 공연을 하러 다녔으니까 이 정도는 뭐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가능한 힘을 빼고 여유롭게 연주하려고 했다. 공연 중간 쯤 되니 몸이 풀렸는지 더 이상 아프지도 않았다.
아무튼 이 달 중 제일 중요했던 한 주를 어깨 통증 때문에 고생하며 보내야 했다. 집에 돌아와 짐을 내려놓고 악기와 케이블을 닦았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고 피곤하기만 했다. 이제 좀 더 치료를 받고 나면 곧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2026년 2월 26일 목요일

태안에서

 

지난 주말에 갑자기 어깨에 심한 통증이 생겼다. 치료를 받고 겨우 팔을 쓸 수 있게 되었지만 다 낫지는 않은 상태였다. 하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정이 있었던 때에 아프게 되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예상하지 못한 통증, 갑자기 어딘가가 아픈 것에 언제나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리허설을 한 다음 차에서 계속 드러누워 쉬어야 했다. 오늘 공연은 평소보다 짧은 것이니까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 동안 거의 자세를 바꾸지 않고 연주해야 했다. 인이어는 그동안 쓰고 있던 Galdiolus 커스텀을 가져갔다. 몇 달만에 들어보니 어딘가 소리가 부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 내 상태가 불안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쪽 팔을 쓰지 못하여 운전할 때에도 힘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야 긴장했던 것이 좀 풀렸다. 주사와 침을 맞고 부항시술을 받아 흉측하게 되어 있는 어깨에 다시 큼직한 패치를 붙이고 쉬었다. 하도 어깨와 팔에 신경을 쓰며 연주했더니 공연 내용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


2026년 2월 17일 화요일

말띠 해

 

오늘은 설이다. 고양이 이지는 열 일곱 살이 됐다. 당뇨를 다 이겨내고 건강하게 잘 지낸다. 그 뒤에는 두꺼운 공책에 가득 시간과 횟수를 기록해가면서 고양이에게 약과 밥을 손가락으로 떠먹이고 있는 아내의 고단함이 있다. 벌써 몇 년째 나이 많은 고양이들을 돌보느라 아내는 긴 시간 외출도 해본 적이 없다. 이지와 아픈 짤이가 편안하게 잘 지내주고 있는 것이 아내의 고생에 대한 유일한 보상이다.

짤이는 열 다섯 살이 됐다. 이 고양이는 작년에만 동물병원에 스무 번 다녀왔다. 이제 한쪽 뒷다리를 완전히 쓰지 못하고 있어서 아내는 밥과 약을 먹이고 피하수액을 주사해주는 것 뿐 아니라 시간에 맞춰 화장실에 데려가 오줌과 똥을 누고 있는 동안 고양이가 서있을 수 있도록 두 팔로 감싸 안은 채 돕는 일을 매일 여러 번 하고 있다. 짤이는 도움이 필요하면 고개를 들어 사람을 찾지만 그렇다고 소리 내어 부르거나 하지 않는다. 아내나 내가 근처에 보이지 않으면 영차, 하고 일어나서 쓰지 못하는 다리를 끌고 어떻게 해서든 화장실로 간다. 그러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용변을 보면서 힘을 주고는 그만 철푸덕 쓰러져버리기도 하지만, 우리가 달려가 뒤늦게 부축이라도 해주면 다시 기운을 내어 제 자리로 걸어가려 애를 쓴다. 자기연민이나 칭얼거림은 하나도 없다. 나는 고양이 짤이가 그런 모습을 보일 때 늠름하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다 이제 아내는 제 오빠의 개 율리까지 낮 시간에 돌보고 있은지 일 년이 넘었다. 지난 해 여름부터는 평일이면 매일 열 시간 씩 율리는 이 집에 와서 지낸다. 아내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나이 많은 고양이 두 마리를 돌보다가 그 사이 비는 시간에 개를 데리고 나가서 몇 번씩 산책을 시키고 돌아와 개에게 밥과 물, 간식을 주고 있다. 개 율리는 고양이들이 있는 곳을 어린이집처럼 다니면서 표정이 더 밝아졌다. 살이 오르고 건강해지기도 했다. 열 살 짜리 동갑내기인 고양이 깜이는 여전히 개가 함께 있는 것을 마뜩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미워하는 법도 없다. 개는 개대로 고양이들 사이를 조심조심 다니고 나이 많은 고양이들은 의도적으로 개를 무시하는 듯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심심한 깜이만 율리에게 다가가기도 하고 놀자고 해보기도 하는데, 정작 율리는 까만 고양이와 그다지 친해지고 싶어하지는 않아서 깜이가 다가오면 가만히 벽을 보고 돌아 앉는다.
아내가 잠깐 쉴 수 있는 시간이 되면 고양이들과 개가 동시에 낮잠을 자는데, 그럴 때엔 집안이 더없이 고요하다. 나는 스피커를 끄고 헤드폰이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거나 방문을 닫고 악기 연습을 한다.
올해는 말띠 해라고 했다.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다만 언제나 그렇게 기원하고 있었듯이 올해에도 매일 아무 일 없이 평범한 일상이 계속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