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설이다. 고양이 이지는 열 일곱 살이 됐다. 당뇨를 다 이겨내고 건강하게 잘 지낸다. 그 뒤에는 두꺼운 공책에 가득 시간과 횟수를 기록해가면서 고양이에게 약과 밥을 손가락으로 떠먹이고 있는 아내의 고단함이 있다. 벌써 몇 년째 나이 많은 고양이들을 돌보느라 아내는 긴 시간 외출도 해본 적이 없다. 이지와 아픈 짤이가 편안하게 잘 지내주고 있는 것이 아내의 고생에 대한 유일한 보상이다.짤이는 열 다섯 살이 됐다. 이 고양이는 작년에만 동물병원에 스무 번 다녀왔다. 이제 한쪽 뒷다리를 완전히 쓰지 못하고 있어서 아내는 밥과 약을 먹이고 피하수액을 주사해주는 것 뿐 아니라 시간에 맞춰 화장실에 데려가 오줌과 똥을 누고 있는 동안 고양이가 서있을 수 있도록 두 팔로 감싸 안은 채 돕는 일을 매일 여러 번 하고 있다. 짤이는 도움이 필요하면 고개를 들어 사람을 찾지만 그렇다고 소리 내어 부르거나 하지 않는다. 아내나 내가 근처에 보이지 않으면 영차, 하고 일어나서 쓰지 못하는 다리를 끌고 어떻게 해서든 화장실로 간다. 그러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용변을 보면서 힘을 주고는 그만 철푸덕 쓰러져버리기도 하지만, 우리가 달려가 뒤늦게 부축이라도 해주면 다시 기운을 내어 제 자리로 걸어가려 애를 쓴다. 자기연민이나 칭얼거림은 하나도 없다. 나는 고양이 짤이가 그런 모습을 보일 때 늠름하다고 생각한다.거기에다 이제 아내는 제 오빠의 개 율리까지 낮 시간에 돌보고 있은지 일 년이 넘었다. 지난 해 여름부터는 평일이면 매일 열 시간 씩 율리는 이 집에 와서 지낸다. 아내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나이 많은 고양이 두 마리를 돌보다가 그 사이 비는 시간에 개를 데리고 나가서 몇 번씩 산책을 시키고 돌아와 개에게 밥과 물, 간식을 주고 있다. 개 율리는 고양이들이 있는 곳을 어린이집처럼 다니면서 표정이 더 밝아졌다. 살이 오르고 건강해지기도 했다. 열 살 짜리 동갑내기인 고양이 깜이는 여전히 개가 함께 있는 것을 마뜩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미워하는 법도 없다. 개는 개대로 고양이들 사이를 조심조심 다니고 나이 많은 고양이들은 의도적으로 개를 무시하는 듯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심심한 깜이만 율리에게 다가가기도 하고 놀자고 해보기도 하는데, 정작 율리는 까만 고양이와 그다지 친해지고 싶어하지는 않아서 깜이가 다가오면 가만히 벽을 보고 돌아 앉는다.
Choi WonSik
최 원식
2026년 2월 17일 화요일
2026년 2월 11일 수요일
포항에서
나흘 전 공연에서 악기의 출력이 약하게 들리고 있었다. 한 달 동안 집에서 연습할 때에 페달에 헤드폰을 연결하여 쓰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펙트 페달의 볼륨이 많이 줄여져 있었는데 리허설을 할 때에 괜찮은 것 같았어서 그대로 했더니 공연할 때에 좀 부족하게 들렸다. 이번엔 원래 했던대로 출력을 조정했다. 줄의 액션도 미세하게 조정하여 연주하기에 편했다. 새로 산 인이어들도 모두 좋은 소리를 내줬다. 오늘은 Ziigaat 이어폰을 썼다. 새해 두번째 공연은 앞의 것보다 좀 더 좋았던 것 같았다.
공연을 잘 마치고 집을 향해 출발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틀어둔 음악의 음량을 크게 해보기도 하고 잠시 꺼두어보기도 했다. 창문을 열면 금세 공기청정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지난 번 대구에 다녀올 때처럼 졸음 운전을 하게 될 것 같아서, 졸음 쉼터에 멈추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아주 작은 볼륨으로 음악을 들으며 잠들었는데, 그만 한 시간 넘게 자고 일어났다. 그 덕분에 개운한 상태로 집에 올 수 있었다.2026년 2월 7일 토요일
연세대 대강당 공연
올해 첫 공연. 기온이 뚝 떨어졌다고 들었지만 추위를 만만하게 보고 나갔다가 덜덜 떨면서 리허설을 했다. 아무리 지어진 지 육십 년이 넘었다고 하지만 대강당 무대 위에 마치 바람이라도 부는 듯 추웠다. 사운드체크를 하는 중에 대기실에 달려가 외투를 다시 걸쳐입고 돌아와 리허설을 마쳤다.
리허설을 할 때에 새로 구입한 64 Audio 인이어를 써보았다. 한 시간 남짓 써본 후 지난 일년 넘게 사용해왔던 커스텀 인이어는 꺼내어보지도 않고 다시 가방에 담았다. 64 Audio를 착용하고 두 시간 넘는 공연을 잘 했다. 가볍고 착용감이 거의 없어서 편했다. 볼륨을 많이 올려도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없었다. 귀가 편하였어서 공연을 마친 후에 몸도 피곤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공연에서 처음 연주해보는 새 노래도 무대 위에서 잘 표현되었던 것 같다. 첫 공연을 잘 해서 기분이 좋았고, 얇은 옷을 입고 갔던 바람에 너무 추웠다. 손이 시려울 지경이 되어서 공연 뒷 부분은 피크로 연주했다. 내가 겨울 날씨를 우습게 본 것이었다. 다음 주에는 포항에 가는데, 기온이 오른다고 해도 두꺼운 옷을 가지고 가기로 했다.2026년 1월 20일 화요일
랄프 타우너
먼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고된 공연을 마치고 운전할 때에, 어떤 겨울날 모든 일이 무상하게 느껴져 마음이 얼어있었을 때에 그의 음악에서 위로를 받았었다.
그는 리더로서 녹음했던 대부분의 앨범을 ECM에서 냈다. 그 레이블을 떠올리면 그가 동시에 떠오른다. 그의 음악을 듣다가 알게 됐던 연주자들이 많았다. 자주 반복하여 듣지 않았어도 그의 연주를 듣고 나면 그 공기가 향기처럼 오래 남았다. 냄새를 기억하듯 문득 생각이 나서 그의 음악을 꺼내어 들어보곤 했었다.
새벽에 일어나 그의 마지막 앨범을 듣고 있었다. 이 앨범의 맨 끝 곡 이름은 Empty Stage 였다. 사방이 조용한 이 시간이 좀 더 지속되었으면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