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0일 토요일

김해에서

 

김해로 가는 동안 내내 비가 내렸다. 자동차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음질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토요일 아침에 비를 맞으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이 좋았다. 출발하면서 프레디 머큐리의 1985년 솔로 앨범 <Mr. Bad Guy> 를 틀어놓았다. 열 여섯 살 봄에 막 새로 나온 그 앨범을 LP 로 사서 스테레오 앞에 쭈그리고 앉아 듣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커텐 사이로 들어오고 있었던 햇빛과 품질 나쁜 턴테이블의 노이즈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마지막 곡이 끝나고 난 후 한 시간 쯤은 음악을 듣지 않고 운전만 했다. 문득 프레디 머큐리의 나이가 내 엄마의 나이와 같았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다가오는 수요일은 엄마의 팔순이다. 조금 전 듣고 있었던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처럼 내 엄마도 그 무렵 참 젊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2년 만에 다시 가본 김해 문화의전당. 오후 다섯 시에 시작하여 두 시간 공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바람을 좀 쐬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아 하늘이 밝았다. 사흘 전 대구에서보다 좀 더 긴 공연이었다. 극장도 좋았고 모니터 사운드도 좋았다. 즐겁게 연주를 했다. 잘 마쳤으니 기분 좋게 집에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삼랑진교를 달려 낙동강을 건널 때에 해가 지고 있는 하늘의 구름과 빛이 정말 아름다웠다. 잠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참고 그냥 달렸다. 대신에 멀리 보이는 산과 하늘의 경계를 눈에 담으며 운전했다. 이번에도 칠곡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한 시간 넘게 자고 일어났다. 자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기지개를 켜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본 다음엔 집까지 쉬지 않고 달려 돌아왔다.


2026년 6월 18일 목요일

대구에서

 


꼭 24시간 전에 나는 대구에서 돌아와 이곳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짐을 꺼내고 있는 중이었다. 오전에 공연하여 한낮에 일을 마치니까 집에 돌아와 주차할 자리가 있어서 좋았다. 어제처럼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온 날에 주차 공간이 없어서 또 아파트 안을 빙빙 돌고 있어야 했다면 아주 힘이 들었을 것이다.

어제에도 내가 힘들었던 원인은 수면 부족이었다. 잠을 잘 수만 있었다면 거뜬히 일정을 마치고 대구 시내를 걸으며 산책이라도 했을 것이다. 새벽 네 시에 출발할 때부터 이미 졸음을 견디느라 애쓰며 운전해야 했다. 돌아올 때엔 두 군에 휴게소에 들러 방전된 배터리를 급하게 충전하는 것처럼 짧게 잠을 자고 깨어나 다시 고속도로를 달렸다.

지난 달 광주에 갔던 날에도 새벽 네 시에 출발하여 하루 종일 극심한 피로에 힘들어 했다. 이런 짓은 삼가자고 지난 달 블로그 글에도 써놓았었다. 같은 짓을 또 했던 이유는 이번엔 오전 공연이었으니 일을 마치고 얼른 돌아와 쉬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일 모레엔 김해에서 연주한다. 공연은 오후 다섯 시라고 했다. 이번엔 반드시 잠을 충분히 자고 좋은 상태로 다녀오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2026년 6월 4일 목요일

선거

 

어제 아침에 투표를 한 후에 아직은 선선한 바람이 일렁이는 동네 길을 산책했다. 밤까지 개표 중계를 보고 있다가 잠들었다. 괜히 또 이른 시간에 혼자 깨어 선거 결과를 확인해보고 있었다. 뉴스와 트위터, 게시판 같은 데를 보고 있다가 일곱 시가 됐다.

뉴스공장을 틀어놓고 커피를 내렸다. 어떤 결과는 어처구니 없고 받아들이기 괴롭지만 어디 역사라는 것이 시원하게 달려가는 적이 있었나, 라고 생각했다. 뒤로 물러나거나 거꾸로 굽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너른 바다로 향하는 물줄기라는 표현은 정말 통찰력 있는 말이다.


2026년 6월 3일 수요일

부재 不在

 

아침 일찍 일어나 강을 바라보다가 주인들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오래된 캣타워 곁에 다가가 서있었다. 여기 층층마다 고양이들이 한 마리씩 올라가 놀던 때가 있었다. 제일 높은 곳에서 털을 고르고 있던,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편안히 낮잠을 자고 있던 내 고양이들이 사이 좋게 공유하고 있었던 가구가 이제는 덩그라니 혼자 나무처럼 서있다. 고양이들이 주둥이를 문지르고 몸을 부비곤 했던 캣타워 기둥을 어루만져보다가 먼지도 없는데 괜히 걸레를 적셔 가져와 닦았다.

고양이 깜이도 저 캣타워에서 시간을 보내길 좋아했었다. 지금도 가끔 캣타워에 올라가 드러누워 쉬기도 하지만 언니 고양이들이 멀리 떠나고 난 후에는 전처럼 자주 쓰지 않는다. 한밤중에 모처럼 저 위에 올라 혼자 먼 곳을 보고 있는 깜이를 보았는데, 그것도 잠시였다. 이내 내려와 맨바닥에 앉아서 멍하니 있었다. 고양이가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도 없는 캣타워에 혼자 있던 깜이가 내 눈에는 쓸쓸하게 보였다.
주렁주렁 열매처럼 캣타워에 고양이들이 열려 있었던 때가 있었고, 이제는 없다. 비어있는 캣타워는 내 고양이들의 무게를 기억한 채로 매일 강을 내려다 보고 있다. 그때에도 고양이들 덕분에 행복했고, 지금도 그들과의 기억 덕분에 마음 한 쪽이 따스하다. 지금 곁에서 자고있는 깜이도 나와 같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