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1일 일요일

고양아람누리

 

나는 여러 번 공연해보았던 어울림극장과 이곳 아람극장을 헷갈렸다. 마치 익숙한 장소인 것처럼 무대 뒤 복도를 걸어다녔기 때문에 공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다음까지도 착각하고 있었다. 시월 마지막 날, 오랜만에 두 시간 짜리 공연을 했다. 공연 첫번째 곡을 시작할 때에 그만 슬라이드를 하다가 반음을 더 올려 소리내는 바람에 다시 정신을 다잡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공연장으로 출발하기 전에 집에서 연습했던 펜더 울트라 II 재즈베이스는 '64 커스텀 재즈보다 프렛이 한 개 더 있다. 암전된 상태에서 느낌으로 손을 움직이다가 정확하게 울트라 II 재즈베이스의 넥 길이에 맞추어 음을 내고 말았던 것이었다. 서너 곡이 지나갈 때까지 창피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올해에도 결국 실패한 것은 충분히 자는 일이었다. 언제나 수면부족 상태인 것이 이제 견디기 힘든데도 제대로 자고 있지 못하는 중이다. 공연장소에 도착하여 사운드체크를 하고, 한 시간 넘게 리허설을 한 다음 자동차 시트 열선을 켜두고 한 시간 동안 부족한 잠을 잤다. 시작하기 삼십 분 전에 깨어 대기실로 갔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열심히 공연을 준비해 주신 분들은 할로윈 장식으로 무대를 꾸며 놓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보며 어떤 죄책감이 들었다. 백 쉰 아홉 명이 한 군데에서 숨지고 말았던 사건이 겨우 네 해 전의 일이었는데,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열 건의 공연을 했고, 이제 시월이 지나갔다. 노란 단풍이 세상을 물들이기 시작한지 오래다. 이번 주에는 카메라를 들고 단풍구경이라도 하면 좋겠다.


2026년 10월 27일 화요일

노란 꽃

 

바람 불고 추운 날인데 해바라기는 아직도 서서 가을걷이가 다 끝난 논을 굽어보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노란 들국화가 한가득 피어있었다. 나는 (또) 밤을 새우고 엄마를 모시고 시골집에 도착했다. 뒷산 자작나무 가지 사이로 드나드는 서늘한 바람이 내는 소리는 햇빛에 흩어지고 있었다.

꿀벌 여러 마리가 꽃 위를 돌아다니며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몸을 굽히고 앉아서 한참 구경을 하다가 일어섰더니 이마에 땀이 맺혔다. 이제 주말에 공연을 하고 나면 곧 십일 월이 된다. 정말 얼마나 빠르게 세월이 가는지.


2026년 10월 24일 토요일

노들섬에서

 

새벽과 아침에 계속 잠을 깨어서 몸 상태가 나빴다. 몽롱한 채로 하루를 보냈다. 낮에 리허설을 하고 순서를 기다리느라 네 시간 동안 대기해야 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차에서 한 시간 반 쯤 자다가 깨었더니 노량진 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섬에 살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잔디 위를 지나가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거리가 멀어서 반갑다는 내 인사를 잘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머리 속이 여전히 맑지 않은 상태로 무대에 올라가 연주를 시작하는데 내 동작이 좀 굼뜨는 것 같았다. 베이스로 시작하는 첫 곡이 평소보다 느리게 진행되었다면, 내 탓이었다. 정신을 차리려고 먼 곳을 쳐다보면 온통 흐릿하게 보이기도 했다. 공연을 마친 후 강변길을 운전할 때에도 멍한 채로였어서, 창을 열고 달렸다.



2026년 10월 23일 금요일

성수동에서

성수동 공연장소에 도착했다. 무대 위에 악기를 내려놓고 동네 골목을 걷기 시작했다.

성수초등학교 나뭇잎들은 역시 아직은 노란색으로 변하지 않고 있었다. 그 부근을 걸으며 이십여 년 전 내가 혼자 살았던 오피스텔, 아버지의 가게가 있던 자리, 너무 변하여 옛 모습이 없어진 길을 보았다.

리허설을 한 후엔 길을 건너 화양동으로 넘어가 시장길과 수백 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 언덕길을 걸었다. 그곳은 중학생 시절 내 통학길이었다.

좋은 날씨, 바람도 없어서 춥지 않았던 야외공연이었다. 악기의 프렛을 너무 문질러 닦았던 탓인지 새 줄이 닿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톤 노브를 많이 줄이고 연주했다. 사정이 있어서 베이스앰프 없이 연주했다. 그것이 공연에 지장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아무래도 등 뒤에서 소리를 내주는 앰프와 캐비넷이 있는 쪽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