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1일 월요일

광주에 다녀온 이야기

 

새벽에 평소와 다르게 유난히 고양이 깜이가 소란스럽게 소리를 내며 다녔다. 두 번 일어나 먹을 것을 주고 겨우 잠들었으나 세 번째엔 자는 것을 포기하고 일어나야 했다. 고양이에게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그래서 새벽 네 시에 집에서 광주로 출발했다. 차라리 일찍 도착하여 차 안에서 눈을 붙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공연장 앞에 도착해보니 정해진 주차 구역엔 그늘이 없어서 볕이 내리쬐고 있었고 도로의 소음은 이어폰을 귀에 꽂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아서 잘 수가 없었다. 뒤척이다가 바로 앉았다가 반복하다가 결국 차에서 내렸다. 밖으로 나가 5.18 기념공원을 산책하기로 했다.

이른 아침, 긴 숲길을 따라 걸으며 초록으로 우거진 그늘 아래에서 공기를 들이 마셨다. 잠을 못자서 어지러웠던 것인지 갑자기 큰 숨을 쉬는 바람에 그랬던 것인지 살짝 몸을 휘청거리기도 했다.

사찰 무각사엔 무슨 공사를 하고 있는지 가림막이 쳐 있었다. 내리막길을 따라 절의 앞쪽으로 가볼 수도 있었겠지만 기운을 아끼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공원에는 아주 예쁜 새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바쁜 일 없어 보이는 새들은 낮고 여유롭게 날아 나무들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새들이 지나다니는 자리에 광주항쟁 기동타격대를 기리는 기념석이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날 그들 중 열 여섯은 도청 안에서 총격으로 죽었다. 도청 정문에서 세 사람이 죽었고 여섯 명은 행방불명이 되었다. 산 사람들은 군사재판을 받고 내란죄로 복역했다. 내란죄.

공연장으로 돌아왔더니 대기실 문이 열려서 이제야 잘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긴 소파에 벌렁 누웠다. 이번엔 냉방이 너무 세어 추워서 쉽게 잠들지 못했다. 겨우 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멤버들이 도착하였다. 무대에서 악기 소리가 들려 일어나 앉았다.

전날인 금요일 아침에 새 스트링을 감아 놓은 펜더 엘리트 재즈 5현 베이스를 가지고 갔다. 그동안 허리 통증 때문에 무거운 악기를 메고 서있기가 어려워 몇 년째 공연에서 쓰지 않고 있었던 악기였다. 지난 일주일 동안 매일 이 악기로 연습을 하고, 이번에는 꼭 이 베이스를 가지고 연주해보겠다고 생각했다. 브릿지 새들도 조정하고 튜닝 페그를 단단히 잠그었다. 건전지 잔량도 확인했는데, 결국 액티브 스위치는 켜보지도 않았다. 기대했던 그대로 좋은 소리를 내주어서 계속 패시브 모드로 두고 두 시간 동안 연주했다. 그리고 이제 내 허리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다만, 잠이 부족했던 것 때문에 계속 머리가 무거웠다. 이런 바보짓은 다시는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연을 잘 마치고 집으로 출발하여 두 시간 가까이 달리다가 휴게소에 멈추었다. 더 운전하는 것은 무리였다. 불빛에서 먼 거리에 주차를 하고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깨어보니 자정이 되어 있었다. 여기가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데 몇 분이 걸렸다. 한 시간 반 쯤 잤던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개운해져서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다시 집을 향해 달렸다. 집에 왔더니 일요일 두 시가 되었다. 하루가 아주 길었다.







2026년 4월 26일 일요일

이른 아침

 

일요일 이른 아침에 동네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사찰에 가보았다. 역사 깊고 오래된 곳이라고 들었다. 한강 쪽이 아니라 동네의 내륙 쪽 산길에서 아침 산책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절 마당에는 마음에 드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사찰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괜한 기대를 했었는가 보다, 하며 오래 머물지 않고 돌아서려고 했다. 그때 어디에선가 고양이가 나타나더니 단숨에 내 앞으로 뛰어 왔다.

한 마리가 아니라 이쪽 저쪽에서 고양이들이 튀어나와 꼬리를 높이 들고 반가와 했다. 검색을 해보니 그 절은 고양이들이 여러 마리 살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고양이들을 만나는 바람에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인사하고 쓰다듬어 주며 시간을 보내게 됐다.

고양이들은 전부 한쪽 귀 일부가 잘려져 있었다. 모두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는 표식을 해둔 것이다. 나이 어린 고양이들은 건강하고 즐거워 보였다. 배가 고파서 사람을 반기는 게 아니라 간식, 별식이라도 가지고 왔느냐고 하며 관심을 보이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않아서 미안하구나, 라고 말을 해줬다.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고양이들에게 친절했던 것 같다. 애들이 다 구김 없고 편안해 보였다.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뛰고, 계단을 달려 오르다가 볕이 드는 곳에 멈춰 몸을 핥고 있기도 했다.

산길을 내려와 아침 일찍 문 여는 식당에 들러 밥을 먹었다. 식당에도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는데 산 속에 있던 녀석들과는 다르게 사람을 경계하고 있었다. 호기심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길래 가까이 다가갔더니 얼른 뒤돌아 내빼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에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와 기지개를 켜고 있는 우리 고양이들에게 밥과 물을 챙겨 줬다.



 

2026년 4월 23일 목요일

아내의 그림

책꽂이 위에는 우리와 함께 살았던 고양이들이 있다. 모두 아내가 그린 그림들이다. 낡은 종이 냄새가 나는 수십 년 된 책을 한 권 꺼내어 보다가 내가 아직 이것을 왜 가지고 있는가, 생각했다. 몇 권은 버려도 된다. 사실 거의 다시 펼쳐보지 않는 책들은 모두 버려도 되는 것 아닐까. 어디 책 뿐인가, 저기에 있는 플라스틱 CD들이나 손 댈 일이 없는 오래된 물건들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을 나는 한 개도 버리지 못하고 집안 가득 두고 앉아 있다.

감정, 느낌, 그리움은 기억 속에 있다. 어느날 자아를 잃으면 기억은 그 모든 마음들을 다 끌어 안고 사라질 것이다. 나는 그 형체도 없는 지나 온 세월들을 품에 품고 싶은 것인지.  그것들이 물건 속에 담겨 있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벌써 오래 전에 떠나버린 고양이들이 아직도 선반 위에 뛰어 오르고 볕이 가득한 날엔 베란다 타일 위에서 뒹굴거린다. 한 집에 오래 살고 있다보니 집안 구석 어디에도 고양이들이 없는 자리가 없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식구들이 이 방 저 방 어디에나 있다. 그러다가 문득 아내가 그린 고양이들이 눈에 들어 오면, 아, 그렇지, 쟤들이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건 아니지, 라고 생각하곤 한다.


 

2026년 4월 21일 화요일

화요일에

자동차 앞유리와 와이퍼 사이에 꽃씨와 나뭇잎이 잔뜩 끼여 붙어 있었다. 그것을 대충 털어내고 나서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옮겨 두려고 하고 있었다. 그 때 마침 아내를 따라 산책 나온 개 율리가 곁에서 맴돌며 나를 쳐다 보았다. 문득 생각이 나서 사람과 개를 태우고 넓직한 근처 강변 공원에 가기로 했다. 너른 강을 보며 율리는 아주 신나게 뛰어 놀기 시작했다. 너무 빠르게 다가와서 간신히 한 장 건진 사진을 보니 개의 표정이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돌아올 때에 주유소에 들르고 싶었는데, 외출할 작정으로 나왔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갑도 신용카드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율리는 집에 돌아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깊은 밤이 되자 고양이 깜이가 내 의자를 차지하고 등받이에 기대어 기분 좋아 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의자를 내어주고 나는 높이 조절 탁자를 책상 앞에 끌어 와 새벽 내내 서 있었다. 잠깐씩 음악이 지나가고 다음 곡이 시작될 때에 헤드폰 너머로 깜이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손을 뻗어 토닥토닥 쓰다듬어 주면 잠시 멈추는 듯 하다가 고양이는 이내 다시 코를 골며 늘어지게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