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1일 토요일

익산에서

 

꽃이 가득 핀 봄날 토요일에, 오전 일찍부터 고속도로 정체가 극심했다. 나는 일부러 조금 더 먼 거리로 경로를 정했다. 경부고속도로보다 가는 길은 좀 길지만 시간은 덜 걸린다고 내비게이션이 알려주고 있어서 중부고속도로를 선택했다. 두 번이나 긴 정체가 생겨서 도착 예정시간이 자꾸 뒤로 늦춰지고 있었다. 그런데 결국엔 처음 내비게이션이 알려줬던 시각 그대로 약속시간 한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연인지 아니면 기계의 예측이 맞았던 것인지.

한 주 전 공연에 썼던 내 오래된 펜더 재즈를 다시 가져갔다. 지난 해 내내 새로 산 베이스를 치고 있었는데 그 악기의 넥이 아주 약간 길어서 그 사이 거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 바람에 지난 주에 연주 도중에 그만 순간적으로 프렛 한 군데를 잘못 짚고 말았었다. 이 악기를 나는 내 몸처럼 다루었었는데 이럴 수가, 했었다. 오늘은 실수 없이 잘 했다.

돌아오는 길은 경부고속도로를 선택했다. 갈 때엔 거의 네 시간이 걸렸는데 돌아올 때엔 두 시간 사십 분 운전했다. 오늘은 고속도로에서 쉬었던 적이 없었다. 휴게소 라면을 먹지 못했기 때문에, 어쩐지 라면 생각이 나서 집앞 가게에서 라면을 사가지고 왔다. 아직 잠들지 않은 아내를 꼬드겨 라면을 나누어 먹었는데 뭐라고 할까, 아주 맛있게 먹었다.


2026년 4월 9일 목요일

시대

토요일에 친구가 책을 선물했다. 이 책이 나왔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나는 누구의 회고록, 자서전은 잘 읽지 않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설명을 본 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려고 했었다. 친구가 책을 건네어줬을 때 습관대로 책의 한 가운데 부분을 눌러 펴보고 있다가 몇 줄을 읽게 되었다. 우선 두 사람의 대화 형식이었던 것이 의외였는데 하필 펼쳐진 페이지에 담긴 길고 자세한 각주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아는 이야기와 몰랐던 사실들이 여러 이름들과 함께 친절하게 적혀있었다.

책을 눈에 드는 곳에 놓아두고 사나흘을 보냈다. 저것을 읽어봐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첫 장을 펼쳤다가 그 자리에서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온 것 빼고는 일어나지 않고 죽 다 읽어버렸다. 지난 한 세기의 미시사가 한 인물의 생애에 골고루 묻어 있었다. 내가 읽어서 얼핏 알고 있었던 역사와 내가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시대의 사건들이 영상처럼 보이는 책이었다.

이 책은 어제 오후에 읽었다. 일부러 날짜를 맞춘 건 아니었는데 오늘은 인혁당 사법 살인이 일어났던 그날이었다. 친구에게 덕분에 좋은 책을 잘 읽었다고 메시지로 감사 인사를 보냈다.

2026년 4월 4일 토요일

용인에서

 

용인에서 공연했다. 잠을 잘 잤고 긴 시간 운전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겠지만, 몸 컨디션이 근래 들어 가장 좋았다. 64Audio 인이어로 듣는 소리도 아주 좋았다. 아픈 데도 없고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그래서였는지 첫 곡부터 기분 좋게 연주를 시작했다. 공연 후에 동료들이 눈에 띄게 즐거워 보였다고 말해줬다. 안 아팠기 때문이었던 것이었는데, 잘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오늘은 내 생일이었다. 생일에 몸 상태가 좋았던 것은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조금은 우울했을 거다. 건강이 중요하다고 새삼 생각했다. 몇 년 만에 함께 외출한 아내는 리허설을 마치고 와보니 그 사이에 대기실에 음식을 한 아름 차려 놓고 있었다. 멤버들이 모여 앉아 맛있게 식사를 했다. 나는 가지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으니 선물 같은 것은 준비하지 말아달라고 했었는데, 아내가 마음을 써주어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 먹고 공연 후엔 친구들 부부와 저녁식사도 했다. 그만한 선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맙소사, 지금은 여전히 생일이 부끄러운 나이인가 보다. 십여 년 전에도 부끄러웠는데 아직도 그렇다. 더 나이가 든 다음엔 생일이 부끄럽지 않아지며는 좋겠다. 나는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늘 묻고 있는데, 언젠가는 거기에 대답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2026년 3월 27일 금요일

밀양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하고 일찌감치 집에서 출발했다. 두 시간 쯤 달리고 있을 때에 도로정체 구간을 만났다. 짐작했던 대로 사고가 났던 것이었다. 오십여 분 달리지 못하고 있는 동안 내비게이션이 예측해주는 도착 시간도 정확하게 오십 분 뒤로 미루어지고 있었다. 일찍 나오길 잘 했다, 라고 생각했다. 긴 정체구간을 빠져나올 때에 보았더니 터널 안에서 사고가 난 대형 차량을 쉽게 견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약속 시각 한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리허설 전까지 혼자 소리를 좀 내어보고 싶었지만 다섯 시간 운전을 하고 났더니 어깨와 허리가 뻣뻣해져 있었다. 대기실에 있는 낮고 긴 의자에 누워 스트레칭을 했다. 월요일부터 집에서 연습할 때 쓰고 있었던 Moollon 재즈 베이스를 가지고 갔다. 겨우내 습도 조절을 잘 했던 덕분에 상태가 좋았고 소리도 좋았다.

리허설을 하고 차에서 누워 쉬다가, 대기실에서 도시락을 먹고 다시 차에서 눈을 붙였다. 공연을 시작할 때엔 가벼운 몸이 되어 여유롭게 연주할 수 있었다. 두 시간이 금세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상주 부근에서 또 정체구간을 만났다. 이번에도 추돌 사고였다. 응급차와 견인차가 지나가고 사고 현장엔 경찰과 구급대원들이 분주하게 일을 해주고 있었다. 주의력을 잃고 무심하게 다니면 안되겠구나, 생각했다. 그 때문에 환기가 되었던 것인지 졸지 않고 집까지 잘 올 수 있었다. 오늘 하루 아홉 시간 운전했다.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의자에 앉자마자 갑자기 피로가 밀려왔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던 모양이다.
밀양으로 가는 중엔 애플뮤직에서 갓 나온 Jon Anderson의 앨범을 들었다. 나는 이번에 처음 들었는데, 알고보니 2011년에 출시했던 것을 다시 낸 모양이다. 귀가 중엔 Bill Evans와 Stan Getz 의 라이브 앨범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