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전 공연에서 악기의 출력이 약하게 들리고 있었다. 한 달 동안 집에서 연습할 때에 페달에 헤드폰을 연결하여 쓰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펙트 페달의 볼륨이 많이 줄여져 있었는데 리허설을 할 때에 괜찮은 것 같았어서 그대로 했더니 공연할 때에 좀 부족하게 들렸다. 이번엔 원래 했던대로 출력을 조정했다. 줄의 액션도 미세하게 조정하여 연주하기에 편했다. 새로 산 인이어들도 모두 좋은 소리를 내줬다. 오늘은 Ziigaat 이어폰을 썼다. 새해 두번째 공연은 앞의 것보다 좀 더 좋았던 것 같았다.
공연을 잘 마치고 집을 향해 출발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틀어둔 음악의 음량을 크게 해보기도 하고 잠시 꺼두어보기도 했다. 창문을 열면 금세 공기청정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지난 번 대구에 다녀올 때처럼 졸음 운전을 하게 될 것 같아서, 졸음 쉼터에 멈추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아주 작은 볼륨으로 음악을 들으며 잠들었는데, 그만 한 시간 넘게 자고 일어났다. 그 덕분에 개운한 상태로 집에 올 수 있었다.Choi WonSik
최 원식
2026년 2월 11일 수요일
2026년 2월 7일 토요일
연세대 대강당 공연
올해 첫 공연. 기온이 뚝 떨어졌다고 들었지만 추위를 만만하게 보고 나갔다가 덜덜 떨면서 리허설을 했다. 아무리 지어진 지 육십 년이 넘었다고 하지만 대강당 무대 위에 마치 바람이라도 부는 듯 추웠다. 사운드체크를 하는 중에 대기실에 달려가 외투를 다시 걸쳐입고 돌아와 리허설을 마쳤다.
리허설을 할 때에 새로 구입한 64 Audio 인이어를 써보았다. 한 시간 남짓 써본 후 지난 일년 넘게 사용해왔던 커스텀 인이어는 꺼내어보지도 않고 다시 가방에 담았다. 64 Audio를 착용하고 두 시간 넘는 공연을 잘 했다. 가볍고 착용감이 거의 없어서 편했다. 볼륨을 많이 올려도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없었다. 귀가 편하였어서 공연을 마친 후에 몸도 피곤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공연에서 처음 연주해보는 새 노래도 무대 위에서 잘 표현되었던 것 같다. 첫 공연을 잘 해서 기분이 좋았고, 얇은 옷을 입고 갔던 바람에 너무 추웠다. 손이 시려울 지경이 되어서 공연 뒷 부분은 피크로 연주했다. 내가 겨울 날씨를 우습게 본 것이었다. 다음 주에는 포항에 가는데, 기온이 오른다고 해도 두꺼운 옷을 가지고 가기로 했다.2026년 1월 20일 화요일
랄프 타우너
먼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고된 공연을 마치고 운전할 때에, 어떤 겨울날 모든 일이 무상하게 느껴져 마음이 얼어있었을 때에 그의 음악에서 위로를 받았었다.
그는 리더로서 녹음했던 대부분의 앨범을 ECM에서 냈다. 그 레이블을 떠올리면 그가 동시에 떠오른다. 그의 음악을 듣다가 알게 됐던 연주자들이 많았다. 자주 반복하여 듣지 않았어도 그의 연주를 듣고 나면 그 공기가 향기처럼 오래 남았다. 냄새를 기억하듯 문득 생각이 나서 그의 음악을 꺼내어 들어보곤 했었다.
새벽에 일어나 그의 마지막 앨범을 듣고 있었다. 이 앨범의 맨 끝 곡 이름은 Empty Stage 였다. 사방이 조용한 이 시간이 좀 더 지속되었으면 했다.
2026년 1월 7일 수요일
바람불어 좋은 날
유튜브에 누군가가 1980년 영화 <바람불어 좋은 날>을 통째로 업로드 해놓은 것을 발견했다. 혹시나 하고 검색해보았다가 찾았다. 군데군데 빨리 돌리기를 하면서 영화를 다시 보았다. 거의 삼십여 년만에 다시 본 것 같다. 마지막에 봤던 것은 텔레비젼에서였던 것 같다. 내 기억이 맞는지 자신은 없다. 감독은 이장호이고 조감독 중에 배창호 감독이 있었다. 나중에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촬영하러 라오스에 갔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죽고 말았던 김성찬이 나오고, 이장호 감독의 동생인 연극배우 이영호가 함께 주연으로 나온다. 그리고 한 영화에 모두 출연하기 어려울 것 같은 배우들이 잔뜩 나온다. 김희라, 임예진, 유지인, 김보연, 최불암, 김영애, 김인문, 박원숙, 추석양 등이 한꺼번에. <별들의 고향>이 입봉작이었던 이장호 감독의 명성이 작용했던 것이었을까.
나는 이 영화를 중학교 여름방학 때에 화양동 골목에 있던 동시상영 극장에서 보았다. 한낮에 어두운 상영관 안에 들어가면 자욱한 담배연기가 영사기 빛에 반사되어 떠다녔다. 사람이 없어도 마냥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는 없었다. 학교 선생들이 검문하며 지나다니기도 했고 몇 푼 돈을 뺏으려고 하는 양아치들을 만날 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볼 때엔 다른 생각은 잊고 집중하여 스크린만 보고 있었다. '방화'도 유치하지 않을 수 있다고 처음 생각하게 된 영화였다.
거기에 나오는 동네는 그 몇 년 전에 내가 살았던 길동과 닮았었다. 이발소, 중화요리집, 오른쪽에 운전석이 있는 낡은 수입차는 화양동, 신당동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주인공 덕배는 동시상영 영화관에서 마주칠 수도 있는 인물처럼 보였다. 음악만 아니었다면 더 좋은 영화가 될 뻔 했다고, 이제 막 카세트 테이프를 사모으며 음악에 빠져들고 있었던 열 네 살짜리 사내아이는 생각했었다.
잭 드죠넷, 안소니 잭슨이 죽었을 때에는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고마웠다고, 블로그에 추모하는 글을 쉽게 쓸 수 있었다. 그러나 배우 안성기 씨가 일흔 넷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외국인 연주자들을 향해 추모한다느니 했던 것처럼 선뜻 마음을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그대신 계속 <바람불어 좋은 날>이 생각났다. 이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분의 명복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