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4일 토요일

용인에서

 

용인에서 공연했다. 잠을 잘 잤고 긴 시간 운전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겠지만, 몸 컨디션이 근래 들어 가장 좋았다. 사운드 체크 할 때에 64Audio 인이어로 듣는 소리도 아주 좋았다. 아픈 데도 없고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그래서였는지 첫 곡부터 기분 좋게 연주를 시작했다. 공연 후에 동료들이 눈에 띄게 즐거워 보였다고 말해줬다. 안 아팠기 때문이었던 것이었는데, 잘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오늘은 내 생일이었다. 생일에 몸 상태가 좋았던 것은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조금은 우울했을 거다. 건강이 중요하다고 새삼 생각했다. 몇 년 만에 함께 외출한 아내는 리허설을 마치고 와보니 그 사이에 대기실에 음식을 한 아름 차려 놓고 있었다. 멤버들이 모여 앉아 맛있게 식사를 했다. 나는 가지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으니 선물 같은 것은 준비하지 말아달라고 했었는데, 아내가 마음을 써주어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 먹고 공연 후엔 친구들 부부와 저녁식사도 했다. 그만한 선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맙소사, 지금은 여전히 생일이 부끄러운 나이인가 보다. 십여 년 전에도 부끄러웠는데 아직도 그렇다. 더 나이가 든 다음엔 생일이 부끄럽지 않아지며는 좋겠다. 나는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늘 묻고 있는데, 언젠가는 거기에 대답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2026년 3월 27일 금요일

밀양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하고 일찌감치 집에서 출발했다. 두 시간 쯤 달리고 있을 때에 도로정체 구간을 만났다. 짐작했던 대로 사고가 났던 것이었다. 오십여 분 달리지 못하고 있는 동안 내비게이션이 예측해주는 도착 시간도 정확하게 오십 분 뒤로 미루어지고 있었다. 일찍 나오길 잘 했다, 라고 생각했다. 긴 정체구간을 빠져나올 때에 보았더니 터널 안에서 사고가 난 대형 차량을 쉽게 견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약속 시각 한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리허설 전까지 혼자 소리를 좀 내어보고 싶었지만 다섯 시간 운전을 하고 났더니 어깨와 허리가 뻣뻣해져 있었다. 대기실에 있는 낮고 긴 의자에 누워 스트레칭을 했다. 월요일부터 집에서 연습할 때 쓰고 있었던 Moollon 재즈 베이스를 가지고 갔다. 겨우내 습도 조절을 잘 했던 덕분에 상태가 좋았고 소리도 좋았다.

리허설을 하고 차에서 누워 쉬다가, 대기실에서 도시락을 먹고 다시 차에서 눈을 붙였다. 공연을 시작할 때엔 가벼운 몸이 되어 여유롭게 연주할 수 있었다. 두 시간이 금세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상주 부근에서 또 정체구간을 만났다. 이번에도 추돌 사고였다. 응급차와 견인차가 지나가고 사고 현장엔 경찰과 구급대원들이 분주하게 일을 해주고 있었다. 주의력을 잃고 무심하게 다니면 안되겠구나, 생각했다. 그 때문에 환기가 되었던 것인지 졸지 않고 집까지 잘 올 수 있었다. 오늘 하루 아홉 시간 운전했다.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의자에 앉자마자 갑자기 피로가 밀려왔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던 모양이다.
밀양으로 가는 중엔 애플뮤직에서 갓 나온 Jon Anderson의 앨범을 들었다. 나는 이번에 처음 들었는데, 알고보니 2011년에 출시했던 것을 다시 낸 모양이다. 귀가 중엔 Bill Evans와 Stan Getz 의 라이브 앨범을 들었다.


2026년 3월 20일 금요일

짤이가 떠났다.

 

지난 화요일 아침에, 갑자기, 고양이 짤이가 죽었다. 꼭 끌어안은 아내의 품 안에서 세상을 떠났다. 열흘 전 동물병원에 갔을 때에 다시 심장이 나빠져 있다고 듣긴 했었다. 그러나 이렇게 별안간 가버리고 말 줄은 몰랐다.

아내는 아직 짤이를 안은 채 쓰다듬으며 속삭이고 있다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듯 가늘고 짧게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고양이를 편하게 뉘이고 집안을 대충 정리했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생긴 동물 장례장에 짤이를 태우고 가는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서로 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슬퍼한다고 한들 수 년 동안 자기의 일상 전부를 고양이를 돌보는 데에 바치고 있었던 아내의 마음만 할 리가 없었다.

어제 낮에 동네 꽃집에 가서 장미 열 송이를 샀다. 짤이의 재가 담긴 단지 곁에 꽃을 놓아두었더니 깜이가 몹시 궁금해했다. 깜이를 번쩍 들어올려 꽃 향기를 맡게 해줬다. 십 년 전에 순이가 떠났던 날, 고양이 꼼이는 집안을 돌아다니며 순이를 찾다가 나를 올려다보며 뭐라고 말하듯 울기도 했다. 깜이는 꼭 그날 꼼이처럼 이쪽 저쪽 방을 옮겨 다니며 짤이를 찾다가 불안한 눈으로 나를 보며 낮고 길게 야옹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지는 베란다 문을 열어달라고 하더니 뭔가를 찾는 듯 다니고 있었다.

십오 년 세월을 거슬러 짤이가 담긴 사진들을 찾아 보았다. 사진 속에서 어리고 천진한 고양이가 즐겁게 놀고, 이제는 먼저 떠나고 없는 고양이들과 몸을 대고 낮잠도 자고 있었다. 짤이는 또래인 고양이 이지에게는 장난도 먼저 걸며 친하게 지내면서도 언제나 양보하고 져주곤 했다. 지난 십년 동안엔 자기처럼 아파트 길에서 우리집으로 들어와 식구가 되었던 깜이를 보듬어주고 마음씨 좋은 형의 역할을 맡아 해줬다.

아내는 유리 꽃병에 장미를 담아 짤이가 들어있는 단지 곁에 놓아두고 그 옆에 조명을 켜놓았다. 진하지 않은 꽃내음이 밤새 그 주변에 떠다니고 있었다. 짤이, 안녕, 이라고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인사를 해줬다.

2026년 3월 15일 일요일

강릉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공연장 근처 주차장에서 쪽잠을 잤다. 리허설을 마치고 다시 차에서 삼십 분 잤다. 덕분에 개운한 몸으로 공연을 했다.

유난히 모니터 사운드가 좋았다. 악기의 상태도 좋았고 소리도 좋았다. 연주하는 기분도 좋았다. 오전에 배가 고파서 들렀던 식당에서 칼국수를 한 그릇 먹었다. 작은 식당엔 서너 명 노인이 모여 앉아 낮부터 소주를 두고 두런두런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참 오랜만에 듣는 강릉 사투리와 억양이었다.
돌아올 때엔 왜 그렇게 잠이 쏟아졌는지, 자동차 창문을 열어보기도 하고 혼자 고함을 질러보기도 하면서 겨우 집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