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26일 월요일

원래 다 그런 것.

나는 작가의 말을 신뢰하지 않지만, 어느 소설에서 읽었던 구절을 오래 기억한다.

누군가에게 외면당하고 버림받았던 사람은 공교롭게도 자신이 반대편의 입장이 되었을 때에, 누군가를 외면하고 등돌리는 일을 쉽게 한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그것은 심리적인 문제일까 아니면 자기도 모르게 학습되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그런 이유들 때문이 아니라, 그냥 사람 사는 일들이 다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원래 다 그런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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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24일 토요일

두통.

훗날 지금의 글들을 다시 읽어보았을 때에, 이렇게 생활하면 안된다는 교훈이 되면 좋겠다.

저녁에 몽롱한 상태로 귀가했다.
만성 두통에다, 신경성인지 뭔지는 몰라도 위통이 함께 심했다.
습도 98%, 실내온도 섭씨 30도의 한 평짜리 방 안에 하루 여덟시간 앉아있었기 때문이었을거다.

새벽에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욕실에 들어가 토해보려고 애쓴 것 같기도 하고, 이 정도로 더울 수 있다니 신기하군... 하면서 몸을 식히려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가 미처 옷을 안 벗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혼자 웃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젖은 옷이 아직 욕실 바닥에 그대로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뭔가 어떻게 수습을 하고 자리에 누워 잠을 잤을 것이다. 그 과정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침, 어스름한 햇빛이 시작되고 있었다.
굶었더니 뱃속이 조금 편해졌다. 아직 머리가 아프긴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아플테니까 신경쓰지 말자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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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21일 수요일

습기가 가득.


습기가 가득한 여름날이다.
몸과 마음이 축축하다.
그래도 가끔씩 멀리서 친구가 찾아와주고, 심심할까봐 소나기도 내려준다.
비가 오거나 말거나 나는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다.
언제 쓰일지는 아직 모르지만, 재활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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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20일 화요일

집안 일.


퇴근길에 주차장에 갔더니.
절묘하게 접어놓았던 거울에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다.

'시키는대로...'라는 글귀를 본 순간, 집에 밀려있는 빨래와 설거지감, 청소할 것들이 생각났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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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15일 목요일

망가졌다.


하지 말라는 뜻인지, 새벽에 갑자기 정적을 깨고 굉음이 들렸다.
깜짝 놀라 일어나 불을 켜보니 악기의 브릿지가 부러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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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12일 월요일

친구 형.


나는 선배, 후배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더불어 나이, 인맥 등을 따지는 관습에 거부감이 심하다.
그 덕분에 나는 오랜동안 함께 연주하며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의 나이를 여전히 모르고 있다.
언제나 진짜 '선배'로서의 존재감을 주는 형들의 정확한 나이도 잘 모른다. 사실은 관심이 없다.

이 형도 그런 사람. 일부러 찾아와줘서 반가왔다. 가까운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둘이 함께 저녁으로 냄비라면을 사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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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지난 주 주말, 정오 즈음에 금발의 여자와 이 사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내는 깁슨 레스폴들이 나란히 걸려있는 벽 앞에 서서 한참을 기타들만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는 기타를 바라보는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흐뭇하고 행복해보이는 것같았다. 아마 내가 영어를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인사를 나누고 사내가 말했다.
"내가 사랑하는 기타를 고향에 두고 왔다. 깁슨 레스폴 커스텀인데, 어릴적부터 그것 하나만 가지고 있었다. 그 기타는 나와 동갑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팔뚝을 걷어 문신을 보여줬다.

그의 친구 중에는 펜더 텔레캐스터를 정교하게 문신한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런 잡담만 하다가, 여전히 웃음이 가득한 얼굴의 여자친구의 손을 잡고 가게에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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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2일 금요일

오랜만에 연주.


고압적인 분위기의 연주자들 틈에 한 자리 잡고 앉아서, 한 해 전 이맘때를 생각했다.

혼자 있어서 외롭다는 것은 거짓말은 아닐지 몰라도 착각에 가깝다.
오케스트라의 한 구석에 비스듬히 앉아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잘 할지 몰라 긴장하고 있는 순간이 정말 외로왔다.

이 날의 연주는 방송용이었다. 어쩔 수 없이 방송이 되겠지만 그 테잎은 파기처분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날 너무 연주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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