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30일 토요일

고양이 털.


오래도록 사용하지 않아 구석에 놓아둔채 건드려보지 않았던 다이나콤프.
고양이 털이 엉겨붙어 이 모양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고양이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고양이들은 매일 털을 뿜어내며 놀고 존다.

이런 것에 알레르기도 없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의 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

2013년 3월 27일 수요일

춘천


오늘은 그냥 포스팅 갯수 한 개 더해놓기 위한 글.
너무 블로그를 비워두고 있었어서 괜히 순서도 없이 써놓는 글.

그리고 사진은 몇 주 전에 잠시 들러 몇 시간 머물렀던 춘천의 명동 뒷골목이다.
그곳에서 군복무를 했었어서 오래 전에 나는 저 좁은 길을 군화를 신고 지나다니고는 했었다.
누군가가 면회를 와서 외출을 나와 즐기러 다닌적은 한번도 없었다. 언제나 부대내 사무실에서 회식을 하거나 함께 지냈던 동료들과 두 세 번 들러본 것이 전부.

춘천닭갈비는 정말 맛있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좋은 음식인데, 문제는 내가 닭고기를 즐겨 먹지 않는다는 것... 그래도 눈앞에 음식이 있으면 의전상 맛있게 먹는다. ...혹은, 맛있어 보이게 먹을 수 있다.

춘천에 있던 시절, 주말 외출이라도 어쩌다가 나올 수 있게 되면 인성병원 뒷 쪽의 지하찻집에 갔었다. 당시에 유일하게 음악 비디오를 상영하고, LP로 신청한 음악도 틀어주던 가게였다. 퀘퀘한 지하실 냄새를 견디며 담배를 한 갑 다 비우도록 몇 번이나 들었던 옛날 음악들이 기억난다. 그렇게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터덜 터덜 부대로 복귀했던 적도 있었다. 커피는 참 맛이 없었지만 음악을 들을 수 없었던 군인 시절에 그곳은 정말 좋은 장소였는데, 이미 오래 전에 없어졌다. 춘천 시내에는 뭐 그렇게 커피집이 많이도 생겼는지.

군 시절의 동료들 중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제대를 한 뒤로 군 시절의 이야기는 남들에게 거의 하지 않지만, 그곳에서 만났던 유능한 내 선임들, 영리하고 재능 많았던 어린 친구들, 언제나 신세를 졌던 분들의 모습은 아직도 이십대들의 모습으로 내 기억 속에 살고 있다.

군대 시절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그 가운데 하나는 군복이었다. 
나는 내가 의외로 제복을 입고 지내는 폐쇄적인 조직 생활에 잘 맞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 충격적이었다. 폭력을 다루는 조직, 국가가 강제하는 획일적인 상명하복 체계의 집단 속에서 나는 꽤나 규율을 지키는 체 하고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철두철미하며 적당히 비열해지기도 하면서 잘 살았다. 만약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직업군인들이 조금만 더 의롭게 보이고 전문적이라거나 신념과 자긍심에 차있는 모습이었다면 큰일이었을 뻔 했다. 그 집단에 머물러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올 여름에는 자전거를 타고 한 번 춘천에 가보고 싶은데, 사실은 자신이 없다.
겨울을 지나면서 뭐 이렇게 통증이 많은지. 아프다는 말이 습관처럼 입에서 나와서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는 중이다.

기타치는 민열이는 강화도에 놀러오라고 했는데, 그곳에도 꼭 가보고 싶다. 멀리 남쪽에 계신 선배님, 형님도 찾아뵙고 싶은데 내가 몇 가지나 해볼 수 있을지.


.

2013년 3월 9일 토요일

마커스 밀러 - Renaissance


이 앨범은 2012년에 나왔다.
좋은 음악들은 언제나 쏟아지듯 나오고 있고, 어떤 음반을 처음 듣고 좋다고 감탄하는 일은 자주 있다. 이 음반은 그런 중에서도 좋다.

작년 가을 서늘한 바람이 시작되면서 자전거 타는 시즌이 끝났다고 생각했을때에 이 글을 썼다가 그냥 묻어뒀었다. 그리고 올해 초에 생각이 나서 다시 글을 이어 더 썼다가 다시 그냥 덮었었다. 감상문 치고는 장황하고 음반 리뷰라기엔 너무 아첨 같았다.

하지만 벌써 봄이 시작되려고 하는데 해가 바뀌고 계절이 변하도록 여전히 자주 꺼내 듣고 있는 이 앨범에 대하여는 (쓰다가 만 것이 아까워서는 아니고) 일기장에라도 좀 적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동기를 유발시킨 이유들 중 하나는, 이 음반에 대한 국내 웹사이트와 블로그의 리뷰 글들을 보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있다.

나는 마커스 밀러의 진지한 팬인 것이 맞다.  그의 음반을 거의 다 가지고 있고 십 년이 넘은 이 블로그의 글들을 뒤져보다 보면 그의 이름이 많이 나온다.

1983년의 첫 솔로 앨범 Suddenly 이후 그가 내놓는 앨범들은 모두 다 좋았다. 연주와 작곡, 편곡, 녹음에 이르기까지 그는 단지 자신의 재능을 발표하는 것 뿐 아니라 모범답안이라든가 방향을 제시해왔다. 프로듀서로서, 음악감독으로서 언제나 좋은 품질을 지닌 결과물을 유지하는 것 만으로도 어려운 일인데 꾸준하게 자신의 음악 - 베이스가 리드하는 연주곡 위주의 음악들을 개척하고 새로운 것을 제시해오고 있는 인물로서 많은 연주자들의 존경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의 스튜디오 앨범들은 이미 하나의 쟝르가 되어있었다. 1993년의 The Sun Don’t Lie 가 하나의 견본이 되어 그 후 이어지는 그의 앨범들은 적당한 공식 - 좋은 베이스 멜로디, 그루브 넘치는 연주, 게스트 보컬과 훌륭한 게스트 연주자들의 세션, ‘편곡을 하려면 이렇게 좀 해봐’라고 말하는 듯한 재즈-팝의 클래식 커버곡들, 빠지지 않는 마커스 자신의 베이스 클라리넷 연주 그리고 마커스 스타일의 프로듀싱 더하기 프로그래밍들.

그런데 그의 음반들이 모두 좋은 작품들이기는 하지만 그 전부가 항상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2001년 M2 이후 스튜디오 앨범인 Silver Rain, Free, Marcus 를 들어보면, 물론 그 음반들만 해도 상대적으로는 높은 수준의 앨범들이지만, 과도한 음향적인 테크닉이 좋은 음악을 덮어버리고 있는 느낌이 있었다. 다섯 장의 스튜디오 앨범들을 발표하면서 그의 연주와 더불어 작곡과 편곡은 여전히 훌륭했지만 공장에서 생산되는 깔끔한 디자인의 공산품 같은 기분이 들어서 더 새로운 것은 나오지 않는 것일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스탠리 클락, 빅터 우튼과 함께 했던 2008년의 Thunder만 하더라도, 그 앨범과 투어들이 혼자만의 작업은 아니었지만 지나치게 익살스러운 쇼에 가깝다는 기분이었다. 팬서비스를 위한 투어쇼라고 생각하면 괜찮은 정도의 이상한 합작품이었던 느낌이 있었다. 이제 슬슬 이 분도 적당히 훌륭한 업적을 남긴 옛 뮤지션의 한 사람이 되어가는구나, 했었다. 그러면서도 자주 발표하는 라이브 음반과 유럽 사람들과 함께 했던 작업들, 마일스 데이비스에 대한 헌정 같은 기분의 프로젝트들을 모두 챙겨 듣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 앨범 Renaissance가 나왔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이 음반을 통해 마커스 밀러는 그가 가진 가장 최고의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인터뷰를 읽으며 반가왔다.
“나는 오랫동안 스튜디오를 하나의 악기처럼 사용해왔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이제는 다시 처음의 날것 같은 음악적 느낌을 환기해보고 기본으로 돌아가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이 음반은 마커스 밀러 혼자만의 앨범이라기 보다는 ‘마커스 밀러 밴드’의 음반에 가깝다. 그동안 그가 들려줬던 마술 같은 녹음기술 같은 것은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그 대신 관악기와 피아노, 일렉트릭 피아노, 드럼, 기타로 이루어진 소박한 사운드를 (산타모니카의 그의 녹음실에서 추가적인 것을 녹음한 것을 빼면) 대부분 라이브로 녹음하여 앨범에 담았다. 잘 기획된 세션맨들의 장기자랑이거나 스튜디오 테크닉을 쓴 것이 아니라, 좋은 밴드의 그루브와 그 멤버들의 상호작용들이 그대로 담겨있다. 사운드로 말하자면 라이브 연주에서도 그대로 재현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가득하다. 연주적으로는 모두가 잘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모든 면에서 능숙하다.

이 멤버들은 2009년 가을에 마커스 밀러가 Tutu Revisited 투어를 위해 새롭게 불러모은 젊은이들이다. 원래 이 프로젝트는 일시적으로 한 번의 공연을 위해 시작되었다가 결국 2년에 걸친 투어와 DVD가 포함된 2장의 CD 발매로까지 이어져버렸다. 마커스 밀러는 아마 이 밴드에 아주 만족하고 있었을 것이다. 쉰 중반 나이의, 이미 아주 많은 것을 이뤄놓은 베테랑 연주자가 갓 스무살 나이의 색소폰 연주자 Alex Han과 같은 어린 연주자들로 부터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그는 인터뷰에서 말하고 있었다. 결국 마커스 밀러는 최근 그와 함께 했던 연주자들과 이 새로운 밴드의 멤버들을 그대로 스튜디오에 모이게 하여 Renaissance를 만들게 되었다.

열 세 곡의 트랙들을 소개해보면,

Detroit ; 베이스 라인의 시작, Louis Cato 의 깨끗한 드럼이 먼저 들린다. 간단한 마디로 만들어진 주제를 반복하면서 짧고 리듬감 넘치는 베이스 솔로가 연결된다. Alex Han의 깔끔한 솔로는 Maceo Parker 처럼 단정하고 세련된 펑키 스타일을 들려준다. Kris Bowers의 피아노와 Rhodes 연주도 담백하다. 이 밴드 사운드가 뒤에 이어질 다른 열 두 곡의 사운드의 기본골격이 된다. 디트로이트는 마커스 밀러가 어린 시절 많은 영향을 받았던 베이스 연주자 James Jamerson이 활동하던 지역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를 마커스 역시 디트로이트를 방문했을 때에 언급하기도 했다.

Redemption ; 아름다운 멜로디의 베이스 리프로 시작하고 있다. 마커스 밀러의 모든 베이스 라인은 항상 그 곡의 그루브와 방향을 결정하면서 시작된다. Sean Jones의 트럼펫과 알렉스 한의 색소폰이 조화롭다. 이 곡에서의 펜더 Rhodes는 Federico Gonzalez Peña 가 맡고 있는데 그는 2007년 이후 마커스 밀러의 라이브에서 세션을 맡아 왔고 Thunder 의 투어에도 참여해왔던 멤버이다.

February ; 루이스 카토는 드럼과 젬베를 연주하고 있다. 베이스가 주선율을 먼저 제시하고 관악기와 페데리코 페냐의 피아노가 그것을 잇고 있는 형식이다. 네크 가까이에서 피킹하는 마커스의 사운드는 매우 감미롭다. 간단하고 아름다운 곡이고, 라이브 연주를 할 때에 각 파트의 솔로 자리를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것 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들린다. 몇 개의 유튜브 비디오를 보면 실제 연주되고 있을 때엔 과연 솔로 연주자들의 긴 즉흥연주들을 들어볼 수 있다.

Slippin’ Into Darkness ; 70년대에 큰 인기를 누렸던 펑키밴드 중에 WAR라는 팀이 있었다. 그들의 1971년 히트곡을 커버한 트랙이다.
( http://www.youtube.com/watch?v=kSRuvbttPGI )
이 곡은 다시 연주했던 뮤지션들이 많이 있었다. 마커스 밀러의 홈페이지에 소개된 레코딩 현장을 담은 비디오를 보면 마커스 밀러가 피아니스트인 크리스 바우저에게 굳이 이 곡의 후렴을 노래부르며 느낌을 주문하는 장면이 있는데, 어떤 방법으로 나이 어린 연주자에게 자신의 느낌을 전달하고 싶어했는지 엿볼 수 있었다.

이 곡에서 루이스 카토의 드럼은 정말 좋다. 그는 단순하게 시작하여 점점 그루브를 늘려가는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고, 스네어는 별도의 다른 멜로디로 여겨질 만큼 타이밍이 훌륭하다. 작년에 들었던 다른 어떤 음반 보다도 스네어 소리가 좋다. 사실은 스네어 뿐 아니라 이 앨범 전체를 통하여 드럼 연주 자체가 매우 훌륭하다. 루이스 카토는 베이시스트이기도 하다. 다른 곳에서는 드럼키트 옆에서 베이스 세션을 하고 있다. 알렉스 한과 마찬가지로 버클리 출신인데, 음악적 재능이 많은 소년이었던 것 같다. 아홉살 무렵 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악기들을 연주하고 있었다고 읽었다. 마커스 밀러는 루이스 카토와 알렉스 한을 많이 칭찬하고 있다. 루이스 카토에 대해서는 ‘베이스 연주자가 연주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그가 어떻게 연주할 것인지를 알고 있는 것 같다’라고 했다.

원곡과는 아주 다른데도 불구하고 원곡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편곡은 마커스 밀러의 재능이다. 앨범 마다 실려있는 커버곡들에서 전부 들어볼 수 있다. 이 곡의 베이스 솔로는 마커스 밀러가 마일스 데이비스를 위해 썼던 곡인 Jean Pierre의 베이스 라인이 연상된다.

Setembro (Brazilian Wedding Song) ; 브라질의 결혼식 노래라고 되어 있는 이 곡은 브라질의 작곡가이며 보컬리스트인 Ivan Lins의 곡을 마커스 밀러가 편곡했다. 플렛리스 베이스와 어쿠스틱 베이스를 사용하고 있고 주제 멜로디 외의 베이스 라인들은 라틴 느낌의 감미로운 연주로 이어진다. 중간의 베이스 라인은 디지 길레스피의 ‘만테카’를 떠올리게 하는 배킹 연주이다. 베이스 클라리넷도 연주하고 있다. 숨소리가 많이 들어간 가사가 없는 보컬을 들려주고 있는 여자의 목소리는 Gretchen Parlato의 것이다. 베이스와 유니즌으로도, 후반부에서는 허밍하듯 자유롭게 노래하며 곡의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스페인어로 노래하고 있는 남자는 바로 Ruben Blades이다. Gretchen Parlato의 브라질리언 테마와 좋은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Jekyll & Hyde ; 이 앨범의 곡들은 뒤로 빼놓을만한 것이 하나도 없을만큼 모두 좋은 작품들이지만 이 곡은 마커스 밀러의 클래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마커스가 작곡한 이번 앨범의 곡들 중에서도 제일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강한 펑키 느낌으로 시작되는 부분이 하이드 씨인지 다른 분위기의 감미로운 부분이 지킬 박사의 파트인지는 듣는 이가 입맛에 맞춰 들어주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두 섹션이 서로 반복되고 각각 연주되며 음악적인 대비를 이루고 있다. 베이스의 리프와 관악기 섹션은 리듬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멜로딕하게 연주되고 있고, 강한 부분에서는 베이스의 슬랩 연주가 Adam Rogers 의 기타와 어울리고 있다. 부드럽게 진행되는 다른 섹션에서는 마커스의 뮤트 주법, 핑거링이 타이트하게 이어지고 있다. 마커스 밀러는 이 곡을 녹음할 때에 멤버들에게 이렇게 주문했다고 했다. “관악기의 느낌 많은 표현, 피아노는 50년대 재즈 스타일로, 드럼과 베이스는 누보 펑크 느낌으로, 기타는 헨드릭스 처럼.” (음식 주문하는 것 같다.)

역시 이 곡에서도 루이스 카토의 드럼이 정말 듣기 좋다. 강약의 완급 조절도 일품이다. 재즈 스타일과 록 스타일의 연주를 한 곡에서 표현하고 있는데, 국내의 드럼을 연주하는 사람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었다.

Interlude : Nocturnal Mist ; Luther “Maco” Hanes의 곡이라고 적혀있는데 짧은 전주곡으로, 다음의 Revelation과 이어진다.

Revelation ; 마커스 밀러의 곡이다. 주제 멜로디를 베이스와 Adam Agati의 기타, 알렉스 한의 색소폰이 함께 시작하고 있다. 베이스의 루트 음은 마커스 밀러가 멜로디와 함께 연주하고 있다. 색소폰 연주자 알렉스 한은 버클리 재학 시절 마커스 밀러와 만나서 그의 투어에 참여하게 되었고, 자신의 학교생활을 마치고 졸업한 후 지금까지 마커스 밀러 밴드의 멤버로 함께 하고 있다. 마커스 밀러는 특별히 알렉스 한을 여러번 칭찬하고 있는데 무대에서 가끔 그를 Han Solo라고 부르며 소개하기도 하고 있다. 과연 칭찬받을만한 연주자로, 경험이 많은 연주자처럼 감정적인 조절, 음악적인 표현이 다양하다. 앨범 수록곡 중에서 가장 힘을 많이 준 느낌이 드는 이 곡에서는 밴드 멤버 전체가 모두 극적인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는데 알렉스 한의 프레이즈는 그 중에서도 매우 돋보인다.

Mr. Clean ; 이 곡은 Weldon Irvine의 곡이다. Weldon Irvine은 뉴욕 사람으로 작곡가이고 극작가, 시인이면서 피아니스트이다. 오르간 연주자이기도 하다. 마커스 밀러는 자주 Weldon Irvine을 자신의 스승같은 인물로 말해왔다. 펑키한 편곡의 이 트랙은 Bobby Sparks가 클라비넷과 오르간을 연주하며 참여하고 있다. 마커스 밀러는 관악기 파트를 짜임새 있게 편곡해놓고, 첫번째 주제가 지나간 직후 드라이브가 섞인 짧은 베이스 솔로를 들려주고 있다. 뒤이어 Sean Jones의 트럼펫, 알렉스 한의 색소폰의 순서로 솔로가 진행되는데 루이스 카토의 연주는 솔로 연주자의 연주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펼쳐지고 있다. 곡을 중간에 멈추게 하고 이어지는 다른 주제의 베이스 리프가 시작되면서 잼 형식으로 트랙을 마치게 된다. 곡이 마쳐질 무렵에는 시작 보다 템포가 조금 빨라져있다.

Gorée (Go-ray) ; 친절하게 발음까지 함께 써놓은 Gorée는 잘 알려진 세네갈의 섬 이름이다. 마커스 밀러는 밴드와 함께 다카르 해변에 있는 이 섬에 들러서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 곳이 된 노예의 집을 보고 왔다고 했다. 이 섬의 이야기는 간결하게 줄여 쓰기가 어렵다. 다만 이 섬은 노예들이 아프리카를 떠나 노예상선에 실려지기 전에 붙잡혀 머물러 있어야 했던 곳들 중 하나이다. 당연히 이 곡은 노예가 되어야 했던 흑인 선조들에 대한 이야기이고, 짐승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죽임을 당하고 고통에 시달렸던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헌정곡이다.

베이스 클라리넷으로 시작하는 멜로디는 마커스 밀러의 연주이고 이것을 다시 알렉스 한이 소프라노 색소폰으로 받아 연주한다. 곡의 도입부 베이스는 마커스 밀러의 콘트라 베이스인데 이것이 언제 바뀌었는지 눈치채지도 못할만큼 슬쩍 플렛리스 베이스로 전환된다. 편곡의 아이디어도 좋지만 그것이 음악적으로 아주 잘 어울려서 인상적이었다. 마커스 밀러는 이 부분에 대한 질문을 받고 대답해준 적이 있었다. (음악잡지의 기자들이 이런 질문을 해준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많이 부럽다.) 플렛리스 베이스 사운드로 굳이 바꿨던 이유를 묻자 마커스 밀러는 “콘트라 베이스의 사운드가 잘 어울리고 좋았지만 그것은 아직도 나의 사운드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렉트릭 플렛리스 베이스로는 나의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다.”라고도 말했다.

CEE-TEE-EYE ; 역시 마커스 밀러의 작곡이다. 이 트랙의 제목은 사실은 CTI라고 하는 크리드 테일러의 음반 레이블 이름이다. 클래식 재즈-펑크 음악 레이블이라고 설명할 수 있고, 70년대에 펑키한 재즈 연주자들의 많은 음반들이 이 레이블에서 나왔다. 나에게도 CTI에 대한 경험이 있다. 리 릿나워, 에릭 게일, 밥 제임스, 그로버 워싱턴 쥬니어 등의 연주자들을 이 레이블에서 나온 음반들로 많이 알았다. GRP와 ECM 등을 알게 된 것은 그보다 조금 나중이었는데 사실 당시에는 CTI 시절의 음반들이 CD로 많이 나오지도 않았었다. 운좋게 자주 가던 레코드점에 수입된 CTI 시디들이 있었던 덕분이었다. LP 시절의 음반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 레코드들에는 퓨젼재즈 스타일의 많은 기타리스트들이 있었고 앤소니 잭슨의 베이스도 들을 수 있었다. 론 카터와 죠지 벤슨과 프레디 허바드, Gerry Mulligan과 Chet Baker의 카네기홀 공연 음반도 있었던 추억의 레이블이다.

마커스 밀러는 CTI 레이블의 레코드들을 실시간(?)으로 듣고 자랐던 사람이었으니까 특별한 인연과 경험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트랙에서는 Maurice Brown이 참여하여 트럼펫 솔로를 연주하고 있다. 이 곡에서 들려지는 모리스 브라운의 연주와 사운드는 70년대의 프레디 허바드를 연상하게 해준다. 크리스 바우저가 펜더 Rhodes를 꼭 그 당시의 느낌으로 연주하고 있고, Adam Agati 가 정말 CTI 스타일 처럼 리듬 기타를 쳐주고 있다. 마커스 밀러는 이 곡의 전부를 슬랩 베이스로 반주하고 있는데 슬로우 템포의 펑키함이 처음 부터 끝까지 지속된다. 유니즌 섹션이 지나간 후에 이어지는 슬랩 연주에서 마커스 밀러 스타일의 테크닉이 요란하지 않게 잘 담겨있다.

Tightrope ; 가수 Janelle Manáe의 곡으로, 게스트 보컬로 Dr. John이 참여하고 있다. 이 앨범의 일관성을 조금 깨는 편곡의 트랙인데, 마지막 곡으로 집어넣기로 했던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이질적으로 들려지는 것은 아니고, 어쩌면 70년대 이전의 옛날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편곡과 연주로 들리기도 한다. 어쨌거나 이 한 곡만 놓고 들어보자면 짜임새가 좋고, Dr. John이 너무 혼자 튀어나와서 밸런스를 깨거나 하는 일도 없다. 알렉스 한과 마커스 밀러의 연주가 후반부에 서로 잘 섞이며 즐겁게 들린다.

I’ll Be There ; 마이클 잭슨의 곡이다. 마이클 잭슨이 세상을 떠난 후 마커스 밀러는 이 곡을 베이스 클리닉을 할 때 마다 연주했다고 했다. 마커스 밀러는 한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에 제일 처음 베이스로 멜로디를 연주했던 곡이 이 노래였고 그래서 세월이 흘러 잠깐씩 쳐보게 될 때 마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여겨지는 음악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마커스 밀러가 펜더 베이스를 구입하고 픽업가드를 떼어내지 않고 쓰기로 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잭슨 파이브의 저메인 잭슨을 따라하느라 그랬었다는 이야기도 생각났다.

솔로 베이스로 시작한 후 뒷 부분에는 베이스를 더빙하여 두 개의 베이스로 연주되어지고 있다.


대단한 베테랑 베이스 연주자일 뿐 아니라 뛰어난 작곡, 편곡자이며 프로듀서로서 마커스 밀러는 르네상스 시절의 예술가들을 닮았다. 아마도 그가 그렇게 불리워지고 싶었을, ‘르네상스맨’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인물이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그렇게 했듯이 이제 이 원로 베이스 연주자도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 서로 영향받고 영감을 나누며 여전히 새롭고 좋은 연주와 작품을 만들어 내고 투어를 다닌다. 연주자 개개인의 개성이 들어갈 공간을 충분히 남겨둔 작곡 방법, 계산이 잘 되어 있다기 보다는 감각적으로 짜임새가 있는 음반 작업, 무엇보다도 뛰어난 악기의 연주스타일과 톤 등등, 그는 재즈와 리듬앤블루스 음악의 한 가운데에서 중요한 어떤 장소를 스스로 만들었고 잘 닦아놓았다.
그의 연주는 전통적인 베이스의 역할을 전혀 잃지 않으면서도 이 악기의 진보적인 미래를 계속 제시해왔다.
멜로딕하지만 그루브를 잃지 않는 베이스 라인, 디렉트 사운드를 기초로 악기의 특징을 극대화 해놓은 녹음과 사운드 기법,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작곡과 편곡 등은 그 자체로 빛을 잃지 않는다. 그것이 첨단의 테크닉을 뽐내는 연주자들도 늘 그에게 존경을 보내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



2013년 3월 7일 목요일

햇볕 좋던 화요일.


미술관에 다녀왔다.
새벽에 일어나서 연습을 하다가 왼쪽 가운데 손가락의 손톱 밑으로 또 줄이 들어갔다가 나왔다.
통증은 참을만 한데 살짝 피가 보였다.
무엇을 잘못하고 있길래 자꾸 다치게 될까 생각해봤다. 손을 볼에 가져다 대었을 때에 문득 시렵구나, 느꼈다. 올겨울 내내 집안에서 연습을 할 때 마다 손이 차갑다. 난방을 예년 보다 덜 해서 그런 것은 아닌데. 그리고 자주 추워하고 옷을 몇 겹을 입는다. 늘 손이 시려운 상태에서 연습을 하다가 보니 손끝의 감각이 둔해져 있는 동안 힘 조절을 못했다. 그러니까 실수가 생기고 손가락 끝이 다치는 줄 모르고 있었던 것.

멍청한 아이는 자라나서 마흔이 넘어도 여전히 멍청하다.
결코 더 나아지지는 않고 다만 그렇지 않은척 하기에 능숙해질 뿐일지도 모른다.

내 소리에 아내가 깨어났고 그 뒤를 따라 고양이들이 일제히 어슬렁 거리며 구석 구석에서 기어나와 기지개를 폈다. 이 집에는 한쪽에서만 빛이 들어오고 그래 보았자 오전 부터 정오를 막 지나는 시각 까지가 전부인데, 고양이들은 그 몇 시간 동안을 더운 물에 들어가 몸을 잠기는 것 처럼 볕을 즐긴다.

내일은 학교에 그 다음 날에도 레슨을 위해 일터에, 약속이 없는 날에는 수업을 준비하고 혼자 하던 짓들도 해야 할테니까 오늘이 놀기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잠이 덜 깬 아내에게 대충 얼굴만 씻고 나가자고 재촉했다.

미술관에 들어가는 길이 조용하고 기분 좋았다. 그림을 보고 몇 시간을 느리게 걸으며 퀘퀘한 냄새를 맡으러 오기엔 이곳이 늘 좋다. 볕이 드는 곳으로 어슬렁 거리며 걸어가는 고양이들 처럼 아내와 느릿 느릿 걸었다.
까치 두 마리가 창문 밖에서 일과를 보내고 있는 것도 보았고, 젊은 아빠가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와서 노닐게 해주고 있는 것도 구경했다. 소란스럽지 않도록 조심하게 하면서, 억지로 무엇을 보라고 하던가 가르치려 하지 않는 모양이 푸근하게 보였다.

그러다가 돌아가신 정기용 선생의 전시를 보게 되었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줄 모르고 그냥 왔다가 만나게 되었다.
오후 두 시 정도였는데 그 때 까지 우리는 아무 것도 먹지 않아 배가 고팠다. 해가 길어졌다고 하지만 늦지 않게 집으로 돌아와야 했어서 전시물들의 일부분만 읽고 들여다 보았다.
아쉬움이 남았다.
밤중에 자다가 일어나서 생각만 하고 보지 못했던 영화 말하는 건축가를 보았다. 영화를 본 후에 미술관에서 집어온 유인물을 집어 들어 남은 전시기간을 확인했다. 다시 가 볼 수 있겠구나, 다행이다. 가까운 어느 날에 갑자기 다시 가서 여유있게 보고 올 수 있을 것이다.

정기용 선생의 영화 속 배경의 한 구석에 몇 초 동안, 막내삼촌이 나오고 있었다.
주원이의 결혼식에 가서 인사를 했던 일이 며칠 전인데, 어떤 인연은 이상하게 연결이 되기도 한다.
춘천에 한 번 다녀와보아야 좋을까 잠깐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