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30일 월요일

진주에서 공연

 

1월 29일에 진주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을 했다.

리허설을 시작하기 전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 몇 주 동안 나는 다시 이펙터들을 새로 배열하고 페달보드 위에 연결하여 한참을 연습했다. 전에는 해보지 않았던 순서로 꾸며 보았다. 이것들을 통과한 악기 소리가 항상 좋을 수 있도록 오래 준비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악기를 조율하고 소리를 내보는 순간 제대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컴프레서 페달의 소리가 영 이상했다. 재빨리 노브를 조정하면 금세 해결할 수 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하려면 납득할 이유가 필요했다. 내가 집에서 시간을 들여 맞춰두었던 것이 틀렸었던 것인지, 케이블 어딘가에 이상이 생긴 것인지, 극장에 놓인 앰프와 모니터 스피커 때문인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새로 조정하는 값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내가 나를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을 수도 있겠다.

결국은 컴프레서의 아웃/인 노브를 대충 다시 만져서 소리는 잘 나오게 해두고 시작할 수 있었다. 나머지 페달들도 연습했던 그대로 좋은 소리를 내줬다. 어찌어찌 공연은 마쳤지만 왜 그런 문제가 생겼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좀 더 공부해서 내가 원하는 소리를 항상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졌다.

공연을 삼십분 앞두고 나는 무대에서 내려가 객석 사이의 통로를 따라 맨 위에 있는 콘트롤룸에 찾아갔다. 엔지니어를 찾아 리허설을 할 때에 내가 듣고 있던 음향 상황을 설명하고 두세 가지를 다시 주문했다. 그가 빠르게 알아듣고 내가 원하는대로 해주었던 덕분에 편안한 상태에서 두 시간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이런 일도 예전엔 귀찮아서 하지 않았었다. 지금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 없으니, 가능한 최적의 상태에서 가장 좋은 소리를 내며 연주하고 싶다.


경남문화예술회관

 

진주 경남문화예술회관은 규모가 큰 장소였다. 드러머 형님의 말에 따르면 그곳엔 과거에 체육관이 있었다고 했다. 지금의 극장이 1988년에 개관되었다고 하니 공사를 시작한 1984년 전에는 운동장 같은 것이 있던 자리였나 보다.

건물은 너무 과장되어 있고 위압감이 느껴졌다. 김중업의 설계라고 하는데, 그는 건국대학교 도서관, 홍익 대학교 본관, 프랑스 대사관을 설계했다. 내가 아는 건물들은 겨우 그 정도 뿐이지만 그의 이름은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나서 건물의 내부를 다녀보고 건물의 바깥을 한번 걸어보았다. 첫인상과 달리 건물은 복잡해 보이면서도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건축가가 하는 일이란 정말 근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2023년 1월 18일 수요일

엉터리 기억

 


기억은 불성실하다.
애플뮤직에서 Gary Burton의 앨범 중에 Pat Metheny가 참여했던 것을 찾고 있었다. 나는 개리 버튼의 앨범을 LP나 시디로 샀던 적이 없었다. 카세트 테이프로 한 두 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이 났을 때 앨범들을 찾아두고 죽 이어서 듣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것이 The New Quartet이라는 앨범이었다. 1973년에 발매되었다고 써있기 때문에, Bright Size Life가 1975년에 나왔으니까, 그것을 녹음하기 전에 Pat Metheny가 개리 버튼의 앨범에서 연주했던 것이겠지, 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 앨범에서 기타를 연주한 사람은 Mick Goodrick이었다. 알고보니 개리 버튼이 Pat Metheny를 자기의 퀸텟에 고용했던 것은 1974년의 일이었다.
Pat Metheny는 자신의 그룹을 결성하여 1977년에 개리 버튼 팀에서 나갔다. 그 후에 다시 개리 버튼의 앨범에 세션으로 참여했었는데 그것이 1989년 앨범 Reunion이었다. 이것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을 하여 듣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앨범을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었다. 그렇다면 분명 1990년에 처음 이 앨범을 들었던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 친구에게 내 기억이 맞는지 문자를 보내어 물어 보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기는 그 앨범을 샀던 적이 없고, 거기에 있는 한 두 곡을 나중에 컴필레이션 앨범에서 들어봤을 뿐이라고 했다.
겨우 삼십여년 전 일인데, 맞는 기억이 하나도 없다. 도대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사실이고 어떤 것이 내가 지어낸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카세트 테이프에 담아서 듣고 다녔던 앨범은 Passengers 였던 것 같다. (자신은 없지만)
기억은 불성실하다. 아니면, 그냥 내가 불성실한 것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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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k Goodrick 아저씨는 두 달 전에 파킨슨씨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2023년 1월 11일 수요일

잉크

 

새로 잉크 두 병과 공책 몇 권을 샀다.

카랜다쉬 잉크를 넣어 쓰고 있던 펠리칸 펜에 Diamine Eau De Nil 잉크를 넣었다. 나일 강의 물이라니, 색상의 이름들은 다 근사하다. 새 잉크의 색이 만년필 색깔과 거의 똑같이 보였다. Diamine 잉크를 처음 사보았는데 과연 좋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이미 두루 검증되었고 오랜 세월 인기가 있는 잉크는 사면서도 잘 모르고 정보가 부족한 잉크는 구입하기 꺼려하는 이유는 모험심이 없거나 권위에 기대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까.

새로 넣은 잉크가 펜과도 잘 어울리고 종이 위에 그어지는 기분도 좋아서 만족스럽다. 사실 잉크의 차이를 느낀다거나 하는 것은 일년 전만 해도 내 일상에 없던 일이었다.

디아민 Diamine 잉크는 원래 발음대로 하자면 '다이어민'이 될텐데 우리나라에선 '디아민'이라고 부른다. 유튜브 영상 중에 어떤 미국인은 '다이어마인'이라고 읽고 있었다. 그 단어가 만들어진 유래를 알면 원래의 영어 발음인 '다이어민'이 가장 납득할 수 있는 읽는 방법일 것이다.

그렇지만 디아민이라고 쓰고 읽는 것이 어쩐지 예쁘게 들리기도 하고, 그 철자를 연상하기도 편하여 좋다고 생각했다. 미국인의 '다이어마인'은 그들 나름대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 더 편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소리가 통일되지 않고 이름이 여기 저기에서 다르게 불리워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여러 가지로 불리워지고 있어도 가리키는 것은 하나라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다.



2023년 1월 1일 일요일

고양이 식구들.

 

2023년이 되었다. 
열네 살 고양이 이지는 근엄한 표정이지만 꾸준히 귀엽다.

일곱 살 짜리 깜이는 도통 철이 들지 않고. (나처럼)


열세 살 짤이는 언제나 착하고 게으르다. (꼭 나처럼)



깜이는 겨우내 사람의 베게를 제 침구로 쓰고 있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갑자기 하품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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