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9일 수요일

일기장


나는 이 일기장 프로그램의 오래된 버젼을 쓰고 있었다. 제작사에서 새로운 앱을 팔기 시작하면서 내가 사용하는 버젼은 더 이상 지원하지 않겠다고 한지 오래 되었었다. 나는 그들의 새 제품을 구입하지 않고 맨처음 구입했던 오래된 버젼을 고집했다. 내가 사용할 기능은 이 버젼의 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에 컴퓨터와 모바일의 오에스를 업데이트할 때마다 잔고생을 하면서도 꾸준히 이 프로그램을 사용해왔다.
그런데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더 이상 지원하지 않을뿐 아니라 아예 새해의 캘린더를 볼 수 없게 해둔 것이었다. 이럴줄은 몰랐다. 최신 버젼의 것을 다운로드 할 것인지 고민해봤지만, 제작사는 이제 이 앱을 '구독 형식'으로 바꿔버렸다. 잡다한 많은 기능이 담겨있어 훌륭해보이긴 했는데 그것을 구입하여 새로운 호구가 되고싶지는 않았다.
아직 이 앱만큼 기기간의 동기화나 사용하는데에 편리한 프로그램은 보지 못했다. 더 쓰지 못하는 것은 아쉬웠다. 그대신 거의 이십여년 만에 종이 일기장을 구입했다. 다시 손으로 적는 일기장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새해부터는 공책 일기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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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7일 월요일

귀여운 개들, 성격검사


시골에 갔다가 부모님 두 분과 함께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식사를 마칠 즈음 아내가 먼저 밖으로 나갔고, 조용히 챙겨둔 고기 몇 점을 문 밖에 있던 개들에게 주고 있었다. 우리에겐 늘 있는 일이다. 둘 중에 더 똑똑해 보이는 개는 아내에게 빨리 달라고 재촉하지 않고 자존심을 지키며 아내의 손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내는 나에게 MBTI 검사를 해보라고 권하고 있다. 자신의 결과를 알려주며 내것도 궁금하다고 했다. 나는 웬만하면 해볼 수 있을 일인데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런 것으로 사람의 성격을 구분하여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도 하고, 어쩐지 그것이 새로운 혈액형 종교 같은 기분이 들어서 별로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요즘처럼 그 검사가 인기있기 전에 어떤 계기로 이미 해본 적이 있었다. 네 개의 알파벳 전부가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대신 처음 몇 줄에 적혀있던 나에 대한 설명은 기억한다. 그것에 의하면 나는 '동물을 싫어하고 사업과 이윤에 밝은 사람'이라는데, 어딘가 평행우주 속의 다른 나에 대한 이야기인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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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3일 목요일

매트릭스: 부활을 보았다.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늘 서둘러 가서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시작할 즈음 다른 손님들이 몇 분 들어오긴 했지만 적어도 광고를 하고 있는 동안까지는 상영관 안에 나와 나 때문에 함께 따라와버린 아내 두 사람 뿐이었다. 이십년 전에 처음 나왔던 영화의 뜬금없는 새 시리즈를 관객들은 그다지 흥미있어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물론 나는 두 시간 동안 혼자 킬킬 웃으며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래리 워쵸스키 (모두 워쇼스키라고 하는데, 키아누 리브스가 인터뷰에서 '워쳐우스키'라고 하길래 나도...) 로 시리즈의 처음을 시작했던 감독은 이제 라나 워쵸스키가 되어서 마지막 시리즈를 내놓았다. 당시에는 형제였던 앤디 워쵸스키와 함께 세 편의 시리즈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자매가 된 그 릴리 워쵸스키 없이 이번엔 라나 워쵸스키 혼자 감독하였다. 나는 영화가 개봉하면 꼭 보러갈 생각으로 그 사이에 앞의 세 시리즈를 다시 보아뒀었다.



이십여년 전에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이 영화에 빠져들었던 나는 2003년에 마무리했던 세번째 시리즈 레볼루션의 결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은 그 이후 한참 시간이 흐른 다음 영화를 몇 번이나 다시 본 다음에야 그 이야기의 흐름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래서 뭔가 끝내지 못한 결말을 보충해주는 마지막 회가 세상에 나와주기를 기다렸었다. 드디어 세상에 나온 네번째 시리즈를 나는 사용설명서를 미리 읽어둔 게임을 하는 것처럼 쉽게 따라가며 볼 수 있었다. 많이 웃고 아주 재미있었지만, 좌석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면서, 아이구 이 영화는 손익분기점까지 못 갈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너무 관객이 없으니 계속 의자에 붙어서 마지막까지 앉아있겠다고 떼를 쓰기엔 심야에 고생하는 직원들의 눈치가 보였다. 나중에 크레딧 뒤에 쿠키영상이 있다는 이야기를 읽고 꺼지지 않은 스크린을 지나쳐 나온 것을 후회했다. 주차장에 가기 전에 화장실에 들렀더니 이십대로 보이는 친구들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 화가 나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사기를 당한 기분인 듯 불평을 하고 있었다. '영화가 재미있었다'라고 끼어들었다가는 나쁜 경험을 할 것이 틀림없어서 나는 얌전히 볼일을 마치고 나왔다.

2021년 12월 20일 월요일

스티브 스왈로우

 


기타리스트 존 스코필드의 2020년 앨범 Swallow Tales를 한 해가 지난 이 즈음에야 듣고있었다.

기타리스트의 기타 트리오 편성 음반이지만 이 앨범의 주인공은 베이시스트 스티브 스왈로우이다.  아홉개의 오리지널 곡은 모두 스티브 스왈로우 작곡이다. 믿음직한 드러머 빌 스튜어트의 완벽한 리듬연주 앞에서 선생과 학생으로 만나 수십년 동안 우정을 가꿔온 두 명인의 연주를 듣다보면 50여분이 언제 흘러갔는지 모른다. 세 사람의 연주는 튀어오르지도 너무 가라앉지도 않으면서 모든 곡에서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듣다보면 저절로 탄식이 나오는 순간이 많은 앨범이다.

세 사람은 같은 또래의 동료들은 아니다. 스티브 스왈로우는 '40년생, 존 스코필드는 '51년생, 빌 스튜어트는 '66년생이다. 스티브 스왈로우는 존 스코필드의 1980년 앨범 Bar Talk 이후 스코필드의 앨범 여서 일곱 장에서 베이스 연주를 했다. 빌 스튜어트는 스물 네살 때에 존 스코필드의 Meant To Be 앨범에 참여한 이후 스코필드의 앨범 열 다섯 장에서 함께 연주해왔다. 이 앨범은 스왈로우 선생님과 각별한 친분이 있는 존 스코필드가 오랜 세월 자기들끼리만 연주해보았던 스티브 스왈로우의 곡을 녹음하자고 제안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앨범 전체가 차분하고 정갈한 기분이 드는데 그것은 혹시 ECM에서 만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선곡과 연주가 담백하여 ECM에서 내기로 한 것일지도.

베이시스트 스티브 스왈로우에게는 어떤 신비로움 같은 것이 있다. 그가 아주 젊은 시절에 이미 '잘 나가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였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나는 그가 '70년대 중반 이후 악기를 바꿔 연주해온 것을 들으며 나이를 먹었다. 긴 세월 내내 그는 어떤 범주에 집어넣기 힘든 고유한 일렉트릭 베이스 연주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가진 일렉트릭 베이스기타에 관한 관점이나 생각에 동의하지 못한다. 굳이 새로 고안하여 이상한 모양의 악기를 완성하고 직접 연주하고 있는 것에도 나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그의 연주를 따라해보거나 솔로를 듣고 베껴 연주해볼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 어느 음반에서나 그의 연주는 특별하다.  그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매순간 스왈로우 세계의 어떤 풍경이 새롭게 펼쳐진다. 완벽하고 아름다운 triad 사용법이라던가, 그가 기타피크를 쥐고 탄현하는 길고 짧고 세고 여린 모든 음들이 들려주는 깊이라던가 하는 것은 다른 누구에게서도 들어볼 수 없는 소리이다. 나는 아마 그의 연주를 따라해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을 시도해볼 엄두를 내본 적이 없었던 것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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