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31일 수요일

나뭇잎.


집에 돌아와 주차를 하고 뒷자리에서 악기를 꺼내느라 몸을 숙였는데, 자동차 뒷 유리에 낙엽이 떨어져 붙어있었다. 사실은 자동차를 세우자 마자 눈앞에 있는 높은 나무에서 떨어졌던 모양이었다.

동네에 노인 한 분이 계시는데, 집을 드나드는 길에 자주 마주쳐서 그때마다 인사를 드리게 되었다. 언제나 깔끔한 차림에 한 손에 담배를 들고 느릿느릿 걸으신다. 인사를 하면 언제나 존댓말로 대답을 해주셨다. 하루는 또 마주쳐서 먼저 인사를 건네던 아내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금세 겨울이죠...?"
"예..."
"인생도 그렇더이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며 느리게 걸어가셨다.


.

우연한 연주.

우연한 연주.
속마음은 적절한 장소와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연주하고 싶지 않았다.
잠깐 인사만 하고 바삐 돌아올 작정이었는데, 거절 못할 부탁이어서 하는 수 없었다. 
더 머뭇거리면 실례일 것 같아서 낯선 무대 위로 올라갔다. 언제부터 그렇게 비싸게 굴었느냐는 소리를 들을까봐 그랬던 것도 아니고 좋지 않은 악기가 불편해서 꺼렸던 것도 아니었다. 몇 사람이 되었든 연주를 보고 듣는 분들에게 소란을 끼치기가 싫었다. 무엇보다도 좋지 않은 연주를 하게 되면 기분이 망쳐진다. 그런 기분은 제법 오래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나쁜 음악, 나쁜 악기란 없다고 여전히 믿는다. 나쁜 연주자만 있을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지난 밤의 그 장소에서의 내가 나쁜 연주자가 아니었기를 바란다. 관객들도 모두들 정말 즐거워서 박수를 쳐주셨으리라고 생각했다.



.

2007년 10월 30일 화요일

순이가 좋아하는 담요.


순이는 이 담요를 무척 좋아하고 있다.
새로 세탁을 하여 잘 말려둔 담요를 펴놓았더니 제일 먼저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잠시 후 돌아보니 몸을 동그랗게 말고 새근거리며 잠을 자고 있었다.
기분 좋은 소리를 한참을 내면서.



.

골목길처럼.


순이는 악기들 사이를 소리도 없이 잘도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순이와 함께 살기 시작했던 첫 날에, 나는 어린 고양이를 안전한 곳에 놓아두고 한참 청소를 했다. 도중에 돌아보니 고양이가 없어졌었다. 좁은 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순이는 내 악기의 페그머신에 주둥이를 부비며 한쪽 발을 올려두고 놀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올려다보며 야옹거렸었다.

여러 개의 악기들이 세워져있는 좁은 공간을 골목길처럼 누비고 다니는 고양이 순이.

.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고양이 에기는 길게 서 있는 악기가 영 이상하게 보였던가보다.

순이가 처음 내 옷 주머니에 담겨 집에 왔을때에 마냥 즐거워하면서 베이스의 헤드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던 기억이 났다.

.

2007년 10월 29일 월요일

커피.


아내가 어느날 기구를 한 개 주문하더니 에스프레소를 만들어주고 있다.

선반에는 커피 봉지가 가득해졌다.
마치 쌀자루가 가득한 것 처럼 넉넉해졌다.



.

이불 속에 들어간 순이.



고양이 순이는 섬유유연제의 냄새를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내가 이불을 세탁한 뒤 이불보에 솜을 집어넣고 있는동안 순이는 곁에 앉아서 설레어하더니, 반듯하게 이불을 펴놓은 순간 수영장에 뛰어들듯 이불위로 다이빙을 했다. 결국 폭신한 이불 속에 들어가서 마냥 좋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가만히 놔두었다.
순이는 저 안에서 몸을 구르고 자세를 바꿔가며 한참을 놀고 있었다.


.

아이팟


몇 년 동안 작은 에러도 한 번 없이 가지고 다니는 많은 음악들을 담아주고 있는 60기가의 구형 아이팟.
아내의 것도 같은 모델이다. 
내것도 나와 같이 세상의 여러곳을 다녀왔지만 나보다 더 해외를 많이 돌아다녔던 덕분에 아내의 것은 숱한 비행기 멀미도 했을지 모른다. 어쨌든 음악을 많이 들으며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여간 기특한 기계가 아니다.

텔레비젼을 전혀 보지 않고 있었던 나는 올 여름부터 생활이 바뀌어버렸다. 화면이 큰 텔레비젼이 생기면서 DVD플레이어와 VOD 셋탑박스, 거기에 애플 TV를 이어 붙였다. 애플 TV 안에는 음악비디오들로 채워져있어서 이미 여러번 보고있었던 뮤지션들의 연주를 하염없이 또 보고있을 때도 많아졌다.
집안에는 세 개의 맥과 셋탑박스와 애플 TV가 함께 연결되어버렸다.


.

2007년 10월 26일 금요일

잠에 취한 고양이들.


평소에 늘 때리고 쫓으며 투닥투닥 놀더니 둘이서는 정이 들었나보다.
마음 편하게 한데 붙어 잠을 자고 있었다.
순이는 오랜만에 길게 엎드려서 자고 있었다.

비내린 축축한 가을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안의 고양이 세 마리는 계속 누워 잠만 잤다고 했다. 내가 집에 돌아온 후 고양이들은 잠시 소란스럽게 다니더니 이내 다시 잠들었다.



.

2007년 10월 25일 목요일

순이에게 다가온 변화들.


고양이 순이는 어린시절을 혼자 보냈다.


고양이 친구들이 생기더니 나와 둘이만 살고 있을때에는 하지 않던 행동들을 하기 시작했다.
수건을 넣어두는 서랍 안에 들어가 좋아하고 있었다. 많이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다.


순이가 혼자 사용하던 공간들을 다른 고양이와 나누어 쓰게 되어서 순이가 많이 답답해하면 어쩌나, 했었다. 그대신 순이에게 고양이들과 어울려 살게 된 것이 신나는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더 많이 시간을 보내고 함께 놀아줘야 좋을텐데, 밖의 일이 바빠서 고양이들을 아내에게 맡겨두고 돌아다녀야했다.
집에 있는 동안 순이를 자주 안아주고 칭찬해줬다.
그래도 모자라겠지. 고양이에게 미안해했다.


.

준비.

과천 공연 후 공연은 몇 주 쉬고 있는 중이었다.
벌써 가을이 한창이다.
주말부터 다시 공연들을 시작한다. 연말까지 계속이다.

홈페이지를 정리하다가 수 년 전의 사진들을 봤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악기를 처음 구입했을 때의 사진도 있었다. 하루 중 휴대전화보다 더 많이 만지고 사용하는 도구여서 처음처럼 잘 닦여지고 깨끗한 상태일 수가 없었다. 마지막 분기의 공연들을 시작하기 위해 오늘은 악기마다 새 줄을 갈아 끼우고 지판에 오일을 먹였다. 일일이 문질러 닦아준다거나 하는 일은 자주 못한지 오래되었다. 녹슬어버린 브릿지가 당분간은 멀쩡하게 잘 버텨준다면 좋겠다. 바꾸고 싶지 않은데 점점 더 심하게 부식되어가고 있다. 다른 악기는 갑자기 건조해진 날씨 탓에 네크에 이상이 있었다가 습도를 맞춰준 덕분에 다시 좋은 상태로 돌아왔다.

한 해 전 이맘 때에도 나는 비슷하게 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겨울의 초입에 유난히 추위를 견디지 못해하면서 도로를 뛰어다녔었다. 공연장에 도착하면 잔뜩 얼어버린 악기를 녹이느라 외투를 벗어 덮어놓기도 했었다. 차갑고 마른 공기, 입김, 볼을 얼게 하는 바람들을 기억하고 있다. 두꺼운 옷위에 악기를 걸쳐메고 운동화 속에는 발이 얼어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가을이다.


.

2007년 10월 24일 수요일

세 고양이의 일과.


고양이 쿠로는 하루 종일 에기에게 치댄다.
에기는 쿠로를 성가셔했다.



순이는 고양이 쿠로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쿠로는 함께 놀아줄 상대가 없어서 심심해했다.


.

두 고양이의 아침.


아침이 되자 고양이 에기는 햇빛을 즐기느라 창문가에서 놀고 있었다.


순이는 어둑한 방으로 옮겨와 잠을 자고 있었다.
순이는 잠깐 코를 골기도 했다.

나는 고양이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음악을 끄고 조용한 걸음으로 방에서 나왔다.


.

2007년 10월 21일 일요일

커피.


나와 아내는 커피를 좋아한다.
자주 많이 마시고 있다.
그래서 원두가 금세 떨어진다.

오랜만에 친구의 커피집에 콩을 주문해놓고 잔여분의 원두를 갈아서, 아내가 잠든 사이에 나 혼자 내려 마셔버렸다.
새 원두가 내일까지 도착하면 좋을텐데.


2007년 10월 17일 수요일

고양이 에기.


조용한 밤.
조용한 램프 앞의 하얀 고양이 에기.

.

2007년 10월 11일 목요일

알지 못하면 용감하다.


화요일, 서둘러 집을 나서서 한 시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타이어의 바람이 빠져 주저앉아있는 것을 알게되었다.
나는 그 전날 밤에 집에 돌아올때에 어쩐지 차에서 덜덜거리는 소리가 심하다고 생각했었다.
설마 타이어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둔감한 녀석이라고 하지만 나는 바퀴가 주저앉은 상태로 시속 100킬로미터를 달려 한 시간 동안 운전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고, 평소에는 생각했었다.
무지하면 용감하다.

결국 조용한 학교의 교정 안에 덩치 큰 견인차를 불러 자동차를 실어 날랐다. 마침 바퀴들을 새로 구입하려 했었기 때문에 가까운 바퀴가게에 차를 싣고 가서 새 신발들로 교환했다. 예비 타이어까지, 다섯 개. 오늘 낮에는 몇 개의 부품들도 새로 교환하고 채워넣었다.


.

2007년 10월 6일 토요일

곁에서 졸고 있었다.


오랜만에 짧고 깊이 잘 잤다.
자고 일어났더니 내 옆에서 고양이 둘이 함께 뒹굴고 있었다.
나는 방문을 닫아놓고 잠들었었다.
까망이 녀석은 집안의 모든 문을 열줄 아는데, 순이는 어느날부터 그런 까망이를 앞세워 이 방 저 방 문을 열고 드나든다. 결국 침대의 절반을 둘이 차지한채 졸고 있었다.
한 밤중에, 덜컥 하며 방문이 열리고 고양이 두 마리가 한 줄로 느릿느릿 들어오는 일이 자주 생겼다. 시킬 때마다 방문을 열어주는 고양이 쿠로도 귀엽고 쿠로의 엉덩이를 쿡쿡 찔러서 방문을 열도록 만드는 순이도 많이 귀여웠다.


.

2007년 10월 4일 목요일

순이의 턱이 나았다.


아내는 아직 속단하기 이르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는 순이의 턱이 다 나았다.
벌써 사흘째 더 이상 고양이 여드름은 보이지 않고 짧게 깎아줬던 턱 밑의 털이 촘촘하게 자라고 있는 중이다. 꽤 오래 낫지 않은 고양이들도 많았다고 했는데 의외로 빨리 치료된 편이었다.
매일 매일 치료해주고 씻겨줬다는 것만으로는 이렇게 쉽게 나아졌다고 하기 힘든데, 곰곰 생각해보니 akaki님의 조언을 읽고 남아 있던 다른 모든 플라스틱 그릇들을 치워버린 것이 효과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작은 스트레스에도 민감한 샴고양이 순이는 그 사이 체중도 줄었었다. 그러더니 이틀 전 부터 다시 잘 먹고 있다. 다행이다. 내가 잘 보살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미안했다.


.

고양이 에기의 호기심.


에기는 다른 고양이와 어울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다.
에기로서도 다른 고양이들과 함께 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간섭받고 싶지 않고 성가신 것이 싫어서 스스로를 격리하여 지내고는 있지만 방문이 열리면 다른 고양이들도 궁금하고 문밖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많다.

가끔 뭔가에 흥미를 느껴 움찔하며 달려나오려 하다가도 이내 마음을 돌리고 그냥 방안을 돌아다녀보기도 한다. 나는 에기가 조금씩 문과 마음을 열고 집안을 여유롭게 돌아다니게 되면 좋겠다.



.

고양이 에기.


스누피 인형에게 모자를 씌워놓았더니 고양이 에기가 스누피의 얼굴을 한참동안 들여다보고 있었다.


.

집안정리.


아직도 집안 정리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의 집 정리는 올해 안에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내는 긴 시간 동안 혼자 페인트칠을 하더니 빨간 상자들을 만들어줬다. 작은 스피커를 올려놓는데에 그만이었다.


.

2007년 10월 3일 수요일

에기의 은신처.


고양이 에기는 혼자만 지내고 싶어했다.
그래서 제일 큰 방의 방문을 언제나 닫아두고 에기는 그 방안에서만 지내고 있었다.
순이는 어째서 자신이 큰방에 들어가지 못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닫혀진 방문을 열어놓으라고 두드리거나 발바닥으로 문지르기 일쑤였다.

그러더니 턱시도 고양이 쿠로가 방문을 여는 기술 보유자라는 것을 순이가 알게 되었다.
순이는 이제 생각나면 쿠로를 앞세워 방문을 열고, 장롱문을 열고, 작은 서랍도 열어볼 수 있게 되어버렸다.

어쩌면 이 기회에 우리의 이 나이든 언니 고양이가 순이와 함께 마루를 뛰어다니게 되지 않을까... 라고 우리는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에기는 가구 속의 작은 공간을 발견하고 그 안에 숨어버렸다.


.

가을 문턱에서.


가을 문턱에서 아침 저녁 강바람을 맞으며 어으, 춥다...라는 소리를 벌써 하고 있다.
선선한 계절에 이 집의 고양이들도 나도 참 잘 먹는다.
식욕이 왕성하다.

식성이란 변하기도 하는가보다.
고기라면 입에 대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보냈었는데, 요즘은 가끔 고기를 먹고싶어하고 있다.
여전히 가리는 음식은 많다. 그러나 예전에는 고기집을 찾아다니거나 하지 않았었다.
줄었던 체중이 왕성한 식욕으로 다시 늘고 있는 것 같다.
나쁘게도 집 근처엔 알고보니 음식맛이 좋은 식당들이 즐비했다.



.

고양이의 호기심.


사진을 찍어두고 싶어서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고양이 쿠로가 호기심에 렌즈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저 뒤에서는 순이가 너무 궁금하다는 듯 멀리서 눈을 크게 뜨고 보고 있었다.


.

2007년 10월 2일 화요일

둘 다 팔이 길다.


늘어지게 자고 있는 에기의 팔도 길어보였지만,


고양이 에기의 엄마인 아내의 팔도 유난히 길어보였다.

.

케빈.


웃음 넉넉한 케빈.
나는 다른 사람에게 나이를 묻지 않기 때문에, 이 친구가 나보다 어리다고 했을 때에 당황했었다. 케빈으로서는 나의 반응이 오히려 기분 나빴을지도 모른다. -_-

목소리 좋고 흥도 많은 강원도 사람, 케빈.


.

쿠로의 엄마.


특별한 사정 때문에 우리에게 고양이 쿠로를 맡겨두고 매일 일하러 다니고 있는 쿠로의 엄마, Nina.

쿠로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고는 있지만 내 고양이를 다른 곳에 맡겨두고 지내는 마음이 편안할 리가 없다. 쿠로가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우리는 쿠로를 잘 먹이고 잘 놀게 하여 피둥피둥 살을 찌워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 고양이가 야윈채로 돌아오면 쿠로의 엄마는 마음이 아플 것 같아서.


.

2007년 10월 1일 월요일

고양이 쿠로의 발.


고양이 쿠로의 복실한 두 손.


.

순이는 편안하게 잔다.


여름을 잘 보내고 선선해지니까, 순이는 더 편안하게 누워 잔다.
잠을 깨우고 싶지 않지만 결국은 손을 내밀어 쓰다듬고 안아주게 되어버린다.


.

여유가 없다.


공연이 끝난 후 악기들을 챙기고 있을 때에 서두르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
공연을 하기 위해서 악기들을 꺼내고 있을 때에 그렇게 하는 것 처럼 차근 차근, 느릿 느릿, 여유를 부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공연이 끝난 뒤 무대 위에서 내 악기를 바삐 챙기지 않고 게으름을 부린다거나, 사정이 있어서 뒤늦게 무대로 뛰어가본다거나 하면 이미 다른 장비들이 모두 빠져나간 뒤 불이 꺼지고 텅 비어있는 무대 위에 내 물건들이 여기 저기 황량하게 버려져있게 된다. 뭔가를 잃어버리는 일도 생긴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곡을 마친 후 악기를 스탠드에 세워두고 무대에서 내려오는체 하며 앰프 뒤에 잠시 서있다가, 무대의 조명이 꺼지고 관객들이 떠나기 시작할 때에 슬그머니 무대로 다시 나간다. 그리고 재빨리 내 짐을 꾸린다.

요즘 자주 뭔가를 잊어버리기도 하고 잃어버리기도 해서 물건을 간수하는데에 신경을 쓰고 있는데, 아무래도 악기관리용 소형 공구들을 이제 다 잃어버린 것 같다. 나는 왜 늘 뭔가를 잃어버리며 다니는걸까.


.

새벽에도 곁에서.


고양이 순이는 깊은 새벽에도 매일 내 곁에 와서 자리를 지키느라 고생을 한다.
나는 그것이 고생스러워 보인다. 순이를 살며시 안아서 편안한 자리에 눕혀놓으면, 순이는 다시 일어나 그루밍을 하고 물 몇 모금 마신 후에 다시 내 곁에 찾아와 굳이 불편한 모습을 하고 졸기 시작한다. 미안하고, 안스럽고, 고맙다.

곁에 다가와 함께 있으려고 하는 것은 순이와 내가 둘이만 살 때에도 똑같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순이가 앉은 자세에서 졸고 있는 기술이 늘었다는 정도이다.
나는 순이가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준 다음, 다시 조용히 안아서 푹신하고 넓은 의자 위에 눕혀주고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