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2일 월요일

집에서

내가 여수에 다녀오는 사이에 아내는 혼자 거실의 가구를 모두 옮겨 자리를 다시 배치해 놓았다. 한쪽 벽의 책들을 모두 꺼내어 바닥에 내려 놓았다가 일일이 먼지를 털어 다시 반대편 자리에 꽂아 놓았을 것이었다. 무거운 것들은 바닥에 수건을 대고 이리 저리 밀고 당겼을 것이고. 그런 일을 어째서 매번 혼자 하는 것인지 의문이었는데, 계속 허리가 아프다느니 하는 내가 집에 없을 때 혼자 애쓰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겠지.

아내가 고양이들의 자리도 새로 정돈해줘서 고양이들은 해가 질 때까지 베란다에서 뒹굴고 졸며 보냈다. 깔끔해진 집안엔 새로 내린 커피 냄새가 떠다녔다.
다음 주에 울산에 갈 땐 미리 그림을 그려서 줄테니, 이번엔 내 방도 대청소를 부탁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여수에서 공연


 여수에서 공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한 시 사십 분. 네 시간 오십분 정도 운전했던 것 같다. 대여섯 시간 운전하는 것 정도는 거뜬하다는 걸 확인했다. 허리통증만 없었다면 중간에 잠깐 쉬지도 않았을 것이다.

집에 돌아올 때까지 허리에 보조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공연을 마치고 운전을 시작할 때 맨살에 감고 있던 것을 벗어 셔츠 위로 다시 감았다. 벨크로 복대에 땀이 묻어 있었다. 그것이라도 하고 있던 덕분에 두 시간 십오분 공연을 잘 서서 버텼다. 공연 끝에 무대 앞으로 나가 객석을 향해 인사를 하는데 허리를 숙이다가 억, 하고 신음을 했다. 보조대 때문에 버티고 있었던 것이지 아프지 않았던 건 아니었던 거다.

악기를 챙기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나오는 신음을 내지 않도록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적어도 누군가에게 들리게 하진 않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신음내기, 표정, 몸짓 등은 어떻게 보아도 남에게 보내는 신호다. 남이 알 이유는 없는거니까, 도움을 바라는 게 아니라면 주변에서 알아차리게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픈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다. 크고 복잡하게 지어진 공연장의 긴 복도를 수레를 끌며 걸을 때 절룩거린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적어도 엄살은 떨지 말아야지.


2024년 4월 20일 토요일

비 오는 날

 


비가 내리는 날 고속도로를 다섯 시간 반 달려 여수에 도착했다.

미리 주소를 전달 받은 숙소에 가서 짐을 내려 놓고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김밥, 우유를 사 왔다. 이미 근처 음식점은 문을 닫았고, 다시 운전하여 영업 중인 식당을 찾아가는 건 무리였다.

음식을 먹은 다음 허리에 감고 있던 벨크로 보호대를 풀어 놓고 일부러 가지고 온 전기 찜질기를 등 아래에 켜 둔 채로 한 시간 쯤 누워 있었다. 아이패드로 Jerry Mulligan의  Night Lights 앨범을 들었다. 짧은 앨범이어서 그 뒤에 클래식 피아노 연주곡 플레이리스트가 이어지도록 해뒀다. 뜨끈하게 허리 찜질을 하며 좋은 음악을 듣고 있으니 몇 시간 동안의 피로가 풀렸다.

다시 일어나 아래 층 커피 기계에서 종이컵에 에스프레소를 따라 들고 왔다. 오늘은 펜 파우치에 펜 세 자루를 담아서 나왔다. 조금 열어둔 창 밖으로 들어오던 빗소리가 잦아 들었다. 음악을 들으며 몇 자 적고 있으니 작년 시월에 일본에 다녀와 안양과 광주에서 공연을 했던 닷새 동안의 일이 기억 났다.

그 때에도 피로하고 힘들었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통증이 심하진 않았다. 다음 날 일정을 잘 해내기 위해서 음악소리를 작게 줄여 놓고 드러누웠다. 잠이 들었다가 깨었다가를 반복했지만 허리를 따뜻하게 해두고 오래 누워서 쉴 수 있었다.

2024년 4월 16일 화요일

한의원

 오후 늦게 새로운 한의원에 찾아 갔다.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었다. 이층짜리 건물은 계단이 있는 통로가 좁고 많이 낡았다. 한의원은 2001년에 문을 열었다고 했는데 건물은 그보다 한참 더 오래 된 것 같았다.

지팡이를 쥐고 위태롭게 내려오고 있는 노인을 위해 계단 아래에서 기다려 줬다. 또 다른 노인은 문 안쪽에서 자기 신발을 신느라 한참 걸렸다.

한의사와 문답으로 진료를 받고 그가 시키는 몇 개의 동작을 해 보였다. 찜질을 하고 전기자극을 십여분, 부항을 열 두개 붙여 놓고 다시 십여분. 침은 종아리와 발목에까지 스무 개 정도 꽂은 것 같다. 허리에 첫번째 침이 놓였을 때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 허벅지를 따라 무릎 아래로 옮겨 갔다.

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줄 바게트 빵을 사가지고 왔다. 목요일과 토요일에 운전을 오래 해야 하니까, 한의원에는 내일과 금요일에도 가려고 한다. 오늘 갔던 한의원이 좋았다. 이제부터 여기에 다니기로 했다.

2024년 4월 15일 월요일

참사 10주기


 세월호 대참사 10주기 기억문화제에서 연주를 하고 왔다. 비가 내리던 오후, 비 때문에 진흙이 되어버린 유원지 공터에 작은 무대가 차려져 있었다. 리허설 뒤엔 차 안에서 시트를 눕히고 누워 있었다. 덕분에 허리 통증이 조금 나아졌다.

밤중에 순서가 되어 무대에 올라 갔다. 비는 그쳤지만 기온이 떨어져 추웠다. 무대 앞에 많지 않은 갯수의 간이 의자를 놓았는데 절반은 비어 있었다. 바로 옆 산책로엔 사람들과 강아지들이 오고 갔는데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극우 단체는 차량에 확성기를 켜고 못 되어먹은 소리를 하며 공연을 방해하고 있었다. 다들 너무 무관심하고, 일부는 아주 나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연주하는 마지막 곡은 유가족 합창단들과 함께 했다. 손이 얼어 있어서 혹시라도 잘못 칠까봐 다른 때보다 힘주어 줄을 누르며 연주했다. 연주를 마친 뒤엔 나 혼자 뒤로 돌아 서서 유가족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허리를 숙일 때에 또 뭐가 안 좋았던 것인지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다시 허리가 아팠다.

기억하지 않으면 눈물도 흘리지 않는다고 했다. 잊지 않고 있는 것도 연대하는 방법이다. 십년이 지났지만 아무 것도 밝혀지거나 해결한 것이 없다. 잊지 않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2024년 4월 13일 토요일

성남 공연


 가족과 함께 공연장에 와 준 친구가 꽃을 선물했다. 하루 전에 꽃집 앞에서 망설이다가 돌아왔는데 이런 우연이. 마침 내가 사고 싶었던 배색으로 이루어진 꽃 묶음이었다. 고마웠다. 아내가 찍어준 사진 속에선 고양이 깜이가 향기를 맡으며 코를 부비고 있었다.

연락 없이 일찍 예매하여 공연을 보러 온 다른 친구들은 내가 서있는 자리 앞 줄에 앉아 있었다는데, 나는 이제 안경을 쓰지 않으면 객석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정확히 보지 못 한다. (다행이었다) 그들은 과일과 떡을 선물해 줬다. 나는 그들에게 줄 공책을 가져갔었는데 그나마도 준비하지 않았다면 너무 염치 없었을 뻔 했다. 고마워하며 받았다. 허기 진 채로 밤 늦게 집에 돌아와 떡을 맛있게 먹었다.

성남 아트센터에 여러 차례 갔었지만 오페라하우스에서는 처음 연주해 봤다. 연주자가 다녀야 하는 동선에 경사로가 없어서 악기를 실은 손수레를 끌며 계단을 오르다가 허리 통증이 시작되어 애를 먹었다. 


2024년 4월 12일 금요일

일상으로


 결국 선거 다음날 아침까지 개표 과정을 다 보고, 오전에는 뉴스를 보고 나서 오후 내내 잤다. 투표 결과를 보는 것이 마치 아는 사람들의 연주를 구경하는 것처럼 마음이 쓰였다. 그래도 다 보고 나서 개운해진 마음으로 푹 자고 일어났다.

그렇게 낮에 자버렸으니 가뜩이나 밤에 잠이 안 올텐데, 레슨을 마치고 돌아와 무슨 생각에 그랬는지 커피를 서버 가득 새로 내렸다. 그것을 조금씩 마시면서 결국 밤을 새우고 말았다. 이제 내 생활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래서 두 시간, 한 시간 씩 토막 잠을 자며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깎고, 허리 통증을 줄이기 위해 찜질도 했다.
집에 오는 길에 꽃집 앞에 서서 노래 한 곡을 다 듣는 동안 꽃을 살까 말까 고민했다. 길엔 지기 시작한 벚꽃잎이 날리고 있었다. 고민만 하다가, 꽃 대신 간식거리를 사서 집에 돌아왔다.
내일부터는 다시 공연을 하고 긴 시간 운전을 하는 일상을 시작한다. 모든 일정들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2024년 4월 10일 수요일

선거일


 그동안 완전히 선거에 몰입하여 매일 정치 뉴스만 보고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영상만 찾아보며 지냈다.

이제 투표일이다. 사전투표날 잠깐 마음이 들떠 있었지만 잘 참았다. 나는 매일 출근하는 사람도 아니니까, 되도록 정식 선거일에 투표장에 가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석 달, 넉 달 전부터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다.

2024년 4월 4일 목요일

생일


 열 몇 살이 되었을 때 이후로 나는 나의 생일을 특별하게 여긴 적이 없다. 사람들은 생일을 축하하고 축하 받는다. 나는 생일을 축하하는 일을 습관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전날 아내의 주장에 순응하여 오랜만에 함께 외출했다. 네팔식 카레와 난을 배불리 먹고 돌아왔다. 우리는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들의 생일은 모르지만 처음 만났던 순간은 기억한다. 생일이라는 것이 그 정도 의미는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2024년 3월 29일 금요일

실리콘 그리스

 

만년필 한 개가 피스톤이 뻑뻑해져서 실리콘 그리스를 샀다. 공기 비닐에 싸여 하루만에 도착했다. 지난 달에 저것을 사려고 동네 잡화점을 돌아다녔었는데 찾지 못했다. 결국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다.

문제가 생긴 펜은 작년에 중고로 샀던 M200 펜으로, 거래를 하고 펜을 집에 가져와서 보니 내부 상태가 아주 나빴었다. 아마 전 주인이 한 번도 세척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피스톤을 힘주어 돌려야 겨우 움직였다. 점점 더 심해져서 이번에야 말로 그리스를 발라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닙파트를 분리하고 잘 세척하여 펜을 말린 후 배럴 깊숙이 그리스를 발라줬다. 이제 원래대로 피스톤은 부드럽게 작동하게 됐다. 만년필에 바르는 그리스 양은 아주 조금만 필요한데 내가 산 것은 85그램이나 되어 너무 양이 많다. 그리스를 다 쓰기 전에 아마 변질되어 버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나누어 덜어주고 싶지만, 주변에 피스톤필러 방식 만년필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2024년 3월 28일 목요일

한의원.


 간신히 일어나 혼자 걸을 수 있는 정도였던 것이 이제 많이 나아서 걷는 데 불편하지 않게 되었다. 토요일부터 이틀에 한번씩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찜질과 부항, 전기자극 치료를 받았다. 처음 경험하는 약침주사라는 것도 치료 받을 때마다 두 개씩 맞았다. '약침'이라고 해놓았지만 결국은 주사인데, 어떤 약물인지 물어보지 못했다. 다만 칸막이 벽에 붙여둔 안내문에 '천연 한약재'를 원료로 한 것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

엿새 전에 쓰러져버렸을 땐 회복하는 데 오래 걸릴까봐 걱정했었다. 빠르게 낫고 있어서 다행이다.  그러나 여전히 통증이 몸을 괴롭힌다. 이번엔 통증을 완전히 없앨 때까지 병원에 다녀보겠다고 작정했다. 결국 안 된다면 할 수 없지만 뭐라도 해보아야 한다.

내가 느리게 움직이고 자주 제 자리에 무릎을 굽히고 앉는 것을 보는 깜이의 얼굴에 근심이 섞여 있었다. 다가가 안고 쓰다듬어주고 싶은데 몸을 쉽게 굽히기도, 고양이를 번쩍 안아 들기도 불편했다. 대신 느릿느릿 간식을 한 그릇 가져다 주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충분히 누워 쉬었더니 저녁엔 몸을 움직이는 것이 조금 더 편해졌다. 조심조심 악기를 메고 레슨을 하러 다녀왔다.

2024년 3월 24일 일요일

허리병


 두 주 전 심한 통증을 이겨내고 겨우 회복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목요일 아침에 결국 허리병이 재발하여 집에서 쓰러졌다. 바닥에 무기력하게 드러누워 천장을 올려다 보는 중에 머리 속에선 계속 다음 달 밴드 일정 날짜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 전까지는 나아서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목요일 레슨은 하는 수 없이 연기했다. 당장 움직일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등허리에 뜨거운 찜질을 하며 계속 누워 있었다. 금요일이 되자 혼자 힘으로 일어나 몇 걸음 걸을 수 있었다. 토요일 아침엔 조금 수월하게 일어서고 걷는 데 문제가 없게 되었다. 꾸물대지 않고 동네 한의원에 찾아가 치료를 받았다.

아직 아파서 똑바로 의자에 앉아 있기가 쉽지 않다. 4년 전에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가고 병원을 전전하다가 입원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동안 관리한다고 했는데도 또 이렇게 되었다. 이번엔 통증이 없어질 때까지 치료를 받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2024년 3월 15일 금요일

아침 산책


 아직 어둑할 때 나와서 강을 따라 걷다가 동이 튼 다음 집에 돌아오고 있다.

물안개가 걷히는 동안 오리들은 떼를 지어 다니며 자맥질을 하고 백로 한 쌍이 번갈아 강과 하천을 날며 놀았다. 멀리 검단산이 예쁘게 보였다.

2024년 3월 10일 일요일

하남에서 공연


 하남문화예술회관은 집에서 강을 건너면 바로 있는 장소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이번엔 집에서 가까운 곳에 공연 일정이 잡혔다. 약속 시간 30분 전에 도착하겠다고 생각하고 시간에 맞춰 출발했다. 공연장까지 17분 걸렸다. 나머지 멤버들은 나보다 먼저 와 있었다.

이곳에서 공연했던 것은 12년 전 일이었다. 오래 되어서 잘 기억나지 않았는데, 장비반입구 쪽 주차장에서 제일 먼저 길고 완만한 경사로가 보였다. 악기를 실은 수레를 밀고 들어가면 바로 무대로 향하는 출입구가 나왔다. 대기실도 가까왔다. 어제 공연장이 너무 열악했기 때문에 하남 문화예술회관이 매우 선진적이고 좋아 보였다.
어젠 몇 곡을 제외하고 전부 피크로 연주했다. 오늘은 피크를 가져가지 않고 모두 손가락만으로 연주했다. 두 시간 십오분 동안 연주하는 것이 조금 힘들었다. 이틀 연속 공연을 했기 때문이었는지, 지치고 힘이 들었다.
밤중에 귀가하여 지하 2층에 주차를 하고, 악기들을 차 안에 그대로 둔 채 집에 들어왔다.


2024년 3월 9일 토요일

부천에서 공연

 

연주하러 다니다 보면 불편할 때도 있고 고생스러울 때도 있는 법이지만, 이 극장은 너무 열악했다. 주차장에서 무대로 향하는 길엔 경사로가 전혀 없었다. 악기를 실은 손수레를 멈추고 악기를 들고 계단을 올라 옮긴 다음 다시 수레에 싣고 무대 앞에 도착했더니, 또 다시 계단이 있었다. 리허설을 마칠 때까지 난방을 해주지 않아 야외공연을 하는 것처럼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 대기실도 열악하긴 마찬가지였다. 불평하면 뭐 할 것인가. 주차장으로 가서 자동차 히터를 켜고 잠시 누워 있었다.

기분 탓인지, 첫 곡을 시작할 때에 소리가 고르게 들리지 않아서 두 시간 넘게 예민해져 있는 상태로 연주를 했다. 그런 날도 있는 것이니까, 더 불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쾌적했다. 며칠 째 듣고 있는 마리아 조앙 피르스의 쇼팽 앨범을 들으며 운전했다.



2024년 3월 7일 목요일

만년필


 이틀 전 주문했던 올해 첫 스페셜 에디션인 M200 Orange Delight 펜이 도착했다. 2월에 발매한다는 소식을 읽었던 것이 1월 마지막 주 일이었다. 수입사에서 드디어 입고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열흘 전이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펜상점 웹페이지를 몇 개 띄워놓고 수시로 리로드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화요일 오후, 펜가게에 상품이 올라오자마자 주문했다. 예상했던대로 색상이 밝고 촌스러우며 예뻤다. 만년필은 사진만으로는 그 아름다움이 잘 담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2024년 3월 5일 화요일

응석


 어리광이 심해진 고양이 깜이는 굳이 의자에 앉아있는 내 위에 올라와 안겨서 내려가지 않고 있었다. 무거운 고양이를 다리 위에 올려놓고 심야에 컴퓨터 화면을 함께 보고 있으려니 힘이 들었다. 고양이가 지루해져서 스스로 내려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2024년 3월 4일 월요일

이지


 작년 유월부터 인슐린을 맞으며 당뇨를 관리해 온 고양이 이지. 지난 달에 방광염 증세로 약을 먹이며 돌보았다. 혈당수치가 다시 높게 올라갔었다가, 다시 100mg/dL 초반으로 낮아졌다. 식후 혈당이 102 정도로 낮아져 있었는데 몸 상태가 나쁘지 않아졌는지 오늘은 조금 활발해 보였고 장난도 치며 다녔다. 표정도 편안해 보였다.


2024년 2월 24일 토요일

잉크 넣기


 만년필들을 매일 고루 번갈아 쓰고 있으니까, 잉크를 새로 넣는 주기가 비슷하게 되었다. 배럴의 크기에 따라 M200 펜들이 매달 첫 주, M600 펜들은 40여일 정도에 한 번씩이다. 컨버터 방식의 펜들도 엇비슷하게 잉크를 넣는 주기가 겹친다. 

아무리 귀찮아도 펜에 잉크를 넣을 때엔 물로 세척하고 펜을 물에 담그어 두었다가 잘 말리는 과정을 꼭 지킨다. 중고로 샀던 펜 한 개는 집에 가져온 다음 아주 오래 청소하고 닦아야 했었는데, 피스톤이 부드럽게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잘 세척하고 닦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머지 않아 펜을 분해하여 배럴 안에 실리콘 그리스를 발라야 할 것 같다.

전 주인이 그 펜을 평소에 잘 세척하기만 했어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유일하게 중고로 샀던 그 M200 을 겪은 뒤에 다른 잉크를 넣을 때가 아니더라도 언제나 말끔하게 세척하고 잉크를 새로 담는다. 이틀 전엔 골든 베릴을, 오늘은 카페 크렘 만년필에 잉크를 넣었다.

2024년 2월 21일 수요일

검은 고양이


 검은 고양이 깜이는 여덟살이 되었다. 두 배나 나이가 많은 언니 고양이 두 마리를 보살피느라 아무래도 덜 신경을 썼더니, 깜이는 그것이 섭섭하였는가 보다. 자주 떼를 쓰고 더 투정이 많아졌다. 깊은 밤엔 내 곁에 와서 훼방을 놓으며 야단을 친다. 그 때마다 못 본 체 하지 않고 놀아주고 달래어 주고는 있지만, 나도 여기저기 아프다. 좀 편안히 앉아 있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것을 고양이에게 설명하기엔 약간 구차하기도 하고, 고양이가 내 사정을 들어줄 것 같지도 않아서 뭐라고 말하진 못했다. 모든 응석을 다 받아줄 수는 없으니까 눈을 맞추며 쓰다듬어 주면서 내 마음을 알아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24년 2월 20일 화요일

안성에서 공연


 토요일 공연은 몸이 아픈 상태로 해야 했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허리에 주먹을 대고 문지르거나 두드렸다. 파스를 두 장 붙이고 있었지만 통증이 낫진 않았다.

공연 직전에 커피를 한 컵 가득 마셔버렸다. (맛있는 커피였다) 그 때문에 서너 곡 지날 무렵부터 오줌이 마려웠다. <둘이서>는 본래 처음부터 끝까지 베이스가 멜로디를 연주해야 하는 곡인데, 밴드리더님은 그 노래를 단순한 기타 반주로만 하길 원했다. 그 노래가 막 시작되었을 때 나는 느릿느릿 무대 뒤로 빠져나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기실 화장실에 다녀왔다. 볼일을 보면서 지금 무대에서 흐르고 있을 노래를 머리 속에서 따라 가고 있었다. 그 곡의 2절이 끝난 뒤 간주에서부터는 베이스 연주를 하기로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무대로 돌아갔을 때 여유롭게 필요한 순간에 잘 맞춰 소리를 낼 수 있었다.

공연의 절반 뒷 부분은 가벼운 악기를 메고 거의 전부를 피크로 연주했다. 통증을 참느라 조금이라도 에너지를 아껴보려 했던 것이었는데 힘을 빼고 연주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2024년 2월 16일 금요일

음악


 스물 한 살 어느 봄날 아침에 나는 시외버스를 타고 고속도로 위를 지나가는 중이었다. 제 2중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를 지나면서 나는 내 인생의 그 시간이 허비되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푸념만 차창 유리에 뿌옇게 끼고 있었다.

자주 가던 레코드 가게에서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클래시컬 음악 카세트 테이프를 한 개 샀었다. 니콜로 파가니니 현악 4중주라는 것 정도만 알아 볼 수 있었다. 버스에서 카세트테이프의 비닐포장을 벗기고 처음 들어보았다. 그 음악이 이어폰에서 흘러 나오자마자 나는 그 소리가 좋았다. 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무심하게 보면서 지금 이 시간이 그렇게까지 쓸모 없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지난 몇 주 동안 애플뮤직에서 파가니니 쿼텟의 음반을 여러 장 듣고 있는 중이다.

2024년 2월 13일 화요일

감기


 어제부터 갑자기 허리 통증이 더 심해졌다. 작은 동작에도 제한이 많다. 많이 아프고, 움직이는 데 힘을 줄 수가 없다. 유난히 아픈 날엔 무기력해진다.

아내는 감기에 걸려 힘들어 했다. 연휴 끝날이었던 어제 문을 연 약국을 검색하여 판피린과 알약을 사 왔다. 나는 아내와 같은 증상으로 오늘부터 감기기운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 아프지만 지금은 아픈 고양이들 걱정이 먼저다. 그게 먼저라고 생각은 하는데, 사실은 우선 내가 아프니까 기운을 내지 못하겠다.


2024년 2월 11일 일요일

본업


 엿새 뒤 안성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몇 주 축구경기를 보며 지냈다가 슬그머니 다시 악기 연습을 시작했다. 더 오래 연습하지 않고 있으면 공연장에서 손끝이 아파 연주하기 불편하다가 공연이 끝날 때가 되어서야 손이 풀릴 것이다. 연습을 하고 미리 악기를 점검해두면 무대 위에서 첫 음을 낼 때부터 순조롭다.


2024년 2월 7일 수요일

인상


 인상만으로 그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가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는 볼 수 있는 것 같다. 신기한 일이다. 누군가의 얼굴에서 태도와 생각이 읽힌다고 생각하다가 나는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를 읽을 수 있을까 하여. 그렇게 가만히 나를 마주 보고 있다가 이내 그만 두었다. 내가 나에게 뭔가 잘 못 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아서 오래 마주 볼 수 없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 눈 코 입의 형태와 간격이 만들어 내는 모양이 서로 닮거나 달라지기도 하는 것 같다. 강하게 주장할 자신은 없지만, 적어도 눈빛은 그렇다.

2024년 2월 2일 금요일

사람 사이에서


세상엔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할 수 없는 건, 할 수 없는 거다.

단 한 건의 잡담조차 이어질 수 없는 대상을 만날 때도 더러 있다. 그것도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상대방의 잘못도 나의 실수도 아니다.
사람의 사이에 있으면 막연한 응원, 댓가 없는 호의가 중요할 때가 많다. 베풀되 보상을 바라지 않기, 그것이 중요하다.

2024년 1월 28일 일요일

부평 공연

 

어제 토요일, 공연하는 날 새벽에 마감에 쫓겨 어쩔 수 없이 타이핑 하는 기분으로 페달보드를 꺼내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 달 전 제주도에 갈 때 보드에서 컴프레서 페달 한 개만 떼어 가지고 갔었다. 전기잡음 문제를 일으켰던 일렉트로 하모닉스 페달 대신에 MXR 베이스 옥타브 디럭스를 보드에 붙이고, 프리앰프와 컴프레서의 위치를 바꾸어 연결했다. 그것이 공연 무대에서 아주 잘 작동해줬다. 리허설 할 때에 이미 좋은 소리가 나고 있어서 마음 편하게 연주할 수 있었다. 길게 고민했던 것이 아니라 하기 싫어서 버티다가 어쩔 수 없이 새벽에 급조했던 것인데, 결과가 좋았다.

가져간 악기들의 상태도 좋았다. 사실 한 달 넘게 쓰지 않았으니 상태가 나빠질 일도 없었다. 어제 공연에선 절반 분량을 펜더 엘리트 5현으로 연주했다. Passive 모드로만 썼다.

펜더 '64 재즈는 연말에 제주도에서 돌아온 후 두어 주 동안 줄을 풀고 가습기 앞에 세워져 있었다. 평소에 정확하게 조율한 상태에서 오래 두면 넥에 무리가 생기곤 했었는데 어제는 사운드체크부터 공연을 마칠 때까지 거의 여덟 시간 동안 두었어도 멀쩡했다. 올해의 첫 공연은 이렇게 시작했다.



2024년 1월 26일 금요일

The Boxer

며칠 머리 속에서 노래가 재생되고 있었어서 Smokie를 듣고 있다가 유튜브에서 그들의 영상을 찾아 보고 있었다. 중학생 무렵엔 카세트 테이프에 접힌 채 끼워져 있던 속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이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을 구경할 수 있었다. 스모키에서 이어져 지금도 유럽, 러시아에서 공연하고 있는 크리스 노먼의 영상을 보다가, 어떤 무대에서 그가 통기타를 가지고 자기가 좋아하는 곡이라며 The Boxer를 부르는 걸 보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이먼과 가펑클의 The Boxer를 틀어보았다.

노래를 들으며 또 한 번 가사를 찾아 읽어보았다. 나는 오랜 동안 'for a pocketfull of mumbles' 라는 구절을 'for a pocket for a numbers'로 잘 못 알은채 지냈었다. 어느날 그 노래를 듣다가 이상하잖아, 라는 생각이 들어 가사를 검색해 보고 내가 엉터리로 알고 있었다는 걸 알았던 것이다. 그 전까지 나는 어릴 적 서점에서 샀던 '팝송책'에 나와 있던 것을 그대로 외운 채로 있었다. 그 이전에 듣고 있을 땐 몰랐다는 것이 더 창피했다.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이 그 곡에서 주인공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너무 외로왔을 때 7번가에서 호객하는 창녀들로부터 위안을 얻곤 했다는 부분을 노래하고 있었다. 나는 그 구절이 그 노래의 문학적, 음악적 완성도를 높였다고, 어릴 때부터 생각해 왔다. 마지막 절에 갑자기 등장하는 권투선수 비유보다 훨씬 좋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2024년 1월 24일 수요일

애플 뮤직 클래시컬

 

 애플뮤직 클래시컬이 한국 서비스를 시작했다. 앱을 미리 다운로드 해놓고 "이제 사용할 수 있다"는 알림이 보이자마자 이어폰을 연결하여 들어보기 시작했다. 기돈 크레머, 주빈 메타, 마르타 아르헤리치, 빈 필하모닉 등의 이름을 오랜만에 보았다. 애플뮤직에서 기획한 것으로 보이는 몇 개의 목록에서 음악을 골라 듣기도 했다.

마리아 주앙 피르스의 음반을 들었다. 2006년에 나온 여섯 장짜리 시디, 여섯 시간 반이 넘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집이다. 작년에 손열음 씨가 낸 앨범과 같은 곡 구성이다. 손열음의 모차르트 컴플리트 소나타엔 한 곡이 없고, 그래서 전체 시간은 여섯 시간 이십 사분이었다. 두 사람의 연주는 질감이 다르고 호흡도 다른데 짚어내기 어려운 정서적인 닮은 점이 있다. 하루를 잡아서 한 악장씩 두 앨범을 비교하여 들어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지만, 열 세 시간을 쉼 없이 집중하여 음악을 듣기란 어려울 것이다. 한 번에 시디 한 장씩, 그렇게 들어보면 좋겠다.

2024년 1월 23일 화요일

물건

 

 사람은 도구로 생각한다. 솜씨는 손을 놀려 하는 재주다.

어떤 물건을 쓰느냐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어 준다.

사람은 물건으로 사유한다는 말이 오늘은 많이 생각 났다.

2024년 1월 22일 월요일

음악

중학생 시절 나는 매일 긴 시간 음악을 듣고 살았다. 그 시절 똑같은 음악을 끝없이 반복하여 듣고 있던 것이 정말 얼마 전의 일처럼 느껴진다. 무손실 음원, 리마스터 된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듣고 있는 지금과 비교하면 또 멀고 먼 옛 이야기라는 게 체감된다. 사십년 전 자주 듣고 있던 음악을 지금 좋은 음질로 다시 들어보고 있으면 중학생 때 카세트 테이프로 듣고 있었던 시절 그 음악들도 음질이 좋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분명 어떤 테이프는 소리가 먹먹하거나 트레블이 지나치게 들려서 힘들어 했었는데 마치 지금 깨끗한 음질로 듣고 있는 이 음악 그대로 과거부터 듣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오늘 아침엔 Joe Henderson의 'Lush Life'를 듣고 있었다. 1992년에 나는 이제 막 나온 시디를 사서 그것을 양손으로 쥐고 집에 돌아와 경건하게 비닐을 벗겼었다. 어딘가 저 높은 곳에 있는, 도저히 다다를 수 없을 수준의 연주를 듣고 있다고 생각했다. 애플뮤직에 고해상도 무손실 음원으로 올려져 있고, 좋은 음질로 다시 듣고 있다. 그런데 애플뮤직에 어째서 'So Near, So Far' 앨범은 없는지 모르겠다. 오래 전 내가 m4a 파일로 변환해둔 것이 보관함에 간신히 남아 있는데 도저히 원본 시디를 찾지 못하겠다.
 

2024년 1월 13일 토요일

고양이 이지

 

방 안에 햇빛이 들어오고 어렴풋 소리가 들렸다. 그릇 소리, 고양이를 어르는 말 소리가 들리고 있어서 잠이 덜 깬 채로 밖으로 나갔다. 아내가 이지에게 밥을 먹여주고 있었다. 아내와 이지 앞에 다리를 접고 앉아서 고양이가 고개를 흔들어 여기저기 뿌려둔 습식사료 파편들을 닦아 치웠다. 이지의 입 안에 곱게 갈은 습식사료를 일일이 손가락으로 떠먹여주는 일을 하루에 세 번, 아내가 혼자 맡아서 하고 있다. 그렇게 일곱 달째 고양이를 먹이고 있고 여전히 이지의 혈당 수치는 백 몇 십이 나오고 있다. 스스로 먹지 못하는 나이 든 고양이에게 건조사료 대신에 깡통사료를 먹이기로 아내가 결정하고 실행하지 않았더라면, 이지의 당뇨병은 악화되었을 것이다. 비싸고 힘든 비용과 노력을 들여 고양이를 보살피고 있는 중이다.

베란다에도 햇빛이 잔뜩 들어오고 있었다. 창유리 앞에 서서 겨울 한 가운데에 있는 바깥을 내다 보았다. 이 집에 이십 년째 살고 있는데 처음 이사했던 날처럼 아직도 아파트 10층은 너무 높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떠난지 8년이 된 순이를 아직도 그리워 하고 있다. 찬 바람에 선뜩한 기분이 들 때처럼, 문득 보고싶어지고 가끔은 슬퍼진다. 애정, 교감, 좋아하는 마음은 생의 대부분을 힘들게 만든다. 함께 숨 쉬고 서로 체온을 느낄 수 있을 때 그 잠깐의 기억을 달이고 고아 마시며 대부분의 시간을 살아 낸다.

2024년 1월 11일 목요일


무슨 꿈을 꾸고 깨었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과거엔 잠에서 깨어나면 꿈을 기억하고 그 꿈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곤 했다. 때때로 꿈풀이를 검색하여 읽어보기도 했었다. 꿈이라는 것이 기억을 정돈하여 뇌에 저장하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안 다음부터는 자고 나서 꿈을 떠올려보지도 않게 됐다.

그 대신에 조금 전의 꿈 내용을 완전히 잊기 전까지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것을 기억하려 하고 있는지 추측해 볼 수는 있게 됐다. 아직 뇌와 꿈에 관한 과학적 성과에 대해 읽거나 배우기 이전에도 나는 꿈 꾼 것을 내가 현실에서 경험한 것과 관련지어 보는 습관이 있었다. 꿈이 미래를 예측한다던가 상징한다고 믿기 보다는 두서 없고 무논리적인 그 스토리를 기억하여 곱씹어 생각해보곤 했었다. 어릴 적 읽었던 책의 내용이나 영어 어휘들, 음악 등을 기억하는 데 꿈 꾼 것을 연관시켜 기억해온지 오래 됐다. 그것은 기억을 엉터리로 저장해버리기도 했다. 현실의 것과 꿈의 내용이 섞여서 소설의 이야기나 낱말들, 노래 등등이 실제 경험과 다르게 기억되기도 했던 것이다.

꿈에 대하여 중요하지 않게 여긴 이후로 나빴던 경험에 대한 기억이 덜 생생하게 기억되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을 기억하긴 하면서도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 같은 것은 우선 순위 밖으로 저장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자주 힘들고 기분 나쁜 꿈에 사로잡혀 은연 중에 정신적 피로를 많이 느껴왔다. 이젠 힘들게 하거나 우울하게 만드는 꿈은 꾸지 않고 있거나 빠르게 잊어버리거나 둘 중 하나로, 거의 기억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2024년 1월 10일 수요일

잉크


 같은 브랜드의 잉크를 쓰는 것이 좋다고 듣긴 했었다. 오래된 만년필 회사는 기본적으로 잉크를 같이 만든다. 펠리칸은 잉크를 만들어 파는 것으로 시작한 회사였다. 요즘 펜을 만드는 회사는 전부 자사 브랜드의 잉크도 생산한다. 그렇다면 잉크만 제조하는 회사의 잉크는 어떤 만년필에 넣어 쓰면 좋은 걸까. 예를 들어 지금 내 디플로마트 만년필엔 다이어민 잉크가 들어있는데, 30ml 짜리 디플로마트 잉크를 진작에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다이어민 잉크는 이 펜에서 아주 잘 흐르고 써진다. 오토후트 펜에도 다이어민 잉크를 넣어 쓰고 있다. 파버카스텔 펜에는 그동안 여러 브랜드의 잉크를 넣어 써오고 있다. 그래서 같은 브랜드의 잉크를 써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지냈다. 펠리칸 펜에도 다이어민, 파커, 카랜다쉬 잉크를 번갈아 넣어 쓰고 있었다.

지난 달 말에 펠리칸 잉크를 몇 병 샀다. 그동안 다이어민 잉크를 넣어 쓰고 있었던 M200 브라운 마블에 빨간색 펠리칸 잉크를 넣어 보았다. 놀랍게도 필감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냥 잘 미끄러지고 잘 흐른다는 것만이 아니라 펜 끝이 종이에 닿아 그어지는 기분이 완전히 변한 것이었다. M200 파스텔 블루엔 파커 블루블랙이 들어 있었는데, 그것 대신에 새로 산 펠리칸 Türkis 를 넣어 보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펠리칸 펜에 펠리칸 잉크를 넣으면 그것만으로도 펜의 닙이 바뀌기라도 한 것처럼 좋은 느낌으로 써지고 있었다. 남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신기한 경험이었다.

안개

 

새벽엔 짙은 안개가 바깥에 자욱했다. 베란다에 나가 밖을 내다 보았을 때 건너편 건물은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강쪽은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최근 눈이 많이 내린 것은 한반도 주변에 수증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날씨 예보 기사에서 읽었다. 꼭 수증기나 대류현상 때문이 아니어도 이 동네에 안개가 가득한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조용한 새벽에 바깥의 모든 것이 안개에 가려져, 마치 고립되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일은 전에도 몇 번 경험했었다. 아주 오래 전 고양이 순이를 품에 안고 안개가 자욱한 밖을 바라보며 베란다 창유리 앞에 서 있던 날의 기억이 최근에 본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 앞에 지나갔다. 부드럽고 윤기있는 순이의 털과 갸르릉 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순이의 눈동자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베란다 문을 닫으며 집안으로 들어와 잠 자는 고양이 짤이를 쓰다듬어 주고 내 의자 위에서 몸을 말고 잠든 깜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볼을 갖다 대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찰나의 순간을, 기억해두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지와 아내가 자고 있는 방에 다가가 잠깐 귀 기울였다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어 한 모금 마셨다. 나는 음악을 듣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더 오래 조용한 공기를 느끼고 싶기도 했다.

2024년 1월 9일 화요일

겨울

 기온이 다시 내려갔고 오늘은 눈이 또 내릴 거라고 했다.

나는 어제 야외에 세워두었던 자동차를 지하 주차장으로 옮겨 세웠다. 나흘 동안 야외에서 눈을 맞은 차엔 얼음이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앞유리에 얼어붙은 눈이 녹지 않았고 오래 낮은 기온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 기어가 작동하지 않았다. 내 오래된 자동차는 추운 곳에 오래 있다가 시동을 걸면 자동변속기가 작동하지 않아 바퀴에 힘이 전달되지 않곤 한다. 엔진은 움직이는데 차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기어를 반 수동으로 바꾸어 확인하면 기어 단수가 표시되지 않는다. 시동을 껐다가 몇 초 후에 다시 켜면 기어가 정상으로 작동했다. 그 문제는 영하의 기온에서만 일어났다. 다시 추워지고 또 눈이 내린다고 하니 내 차를 좀 녹여 둘 필요가 있었다.

이 아파트엔 자동차가 과포화 상태를 넘어선지 오래 되었다. 주차장은 모자란데 차는 계속 늘고 있다. 차가 많아지면서 겨울이 되면 어디에도 주차를 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지하주차장엔 다른 차를 가로막아 세워둔 차들 때문에 이동하기 조차 어렵다. 여유 공간 따위는 무시하고 길을 막은 차들을 밀어 치워놓고 차를 뺄 수도 없게 됐다. 세대가 변했기 때문인지, 이곳 주민들은 이웃에 대한 생각은 점점 못 한다. 자기의 이익과 손해에 예민하면서 공익적인 것에는 무심하다. 외출했다가 돌아올 때면 언제나 깊은 밤 시간일 수 밖에 없는 나는 주차할 자리가 없어서 아파트 담을 끼고 몇 바퀴씩 돌며 헤메인다. 이번엔 날씨 예보를 보다가 늙은 내 자동차가 생각나서 아직 자동차들이 돌아오기 전에 지하 주차장으로 옮겨 둔 것이다. 어쩐지 이런 정도의 행위 조차도 내가 약삭빠르고 이기적인 행동을 한 것 같아서, 기분이 개운하지 않았다. 어쨌든 오늘 밤엔 내 차에 붙은 얼음이 녹을 것이고 다음 날 엔진과 기어도 이상없이 작동하게 될 것이다.

2024년 1월 8일 월요일

성격과 취향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매일 글을 쓰는 것이 나에겐 휴식이고 편안한 일상이다. 유약하고 보잘 것 없는 소일거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는 대여섯 살 때부터 지금과 같은 취향이고 성격이었다. 밖에서 또래들과 노는 일은 거의 없었다. 흙장난을 해본 적도 없었고, 친구의 집에 가서 방 안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내는 정도가 가장 사회적인 행동이었다. 오히려 내 일상이 평화롭지 않게 된 것은 학교에 입학한 후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도록 강요 당하면서부터였다.

나처럼 지내어도 괜찮은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 반대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고 각자의 생활이 또래 집단과 달라진 이후에도 여전히 어울려 세월을 보내는 친구들을 여럿 본다. 역시 성격과 취향이 개체로 하여금 평생 똑같은 선택을 반복하게 하는 것이다. 내가 트위터에 글을 적지 않게 된 데에는 수다스런 사람들이 하루에 수십개씩 올리는 글에 어느 순간 질려버렸기 때문이었다. 얼굴 모르는 사람들이 올리는 글까지 더해져 때로는 자기분열적 혼잣말들을 보고 있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고, 정리되지도 다듬어지도 않는 생각을 낙서하듯 쓰고 있던 내 모습을 돌아보니 부끄럽게 느껴졌다. 지난 몇 해 동안 남들이 읽을 수 있는 글을 블로그에만 쓰고, 트위터는 일회성 정보를 찾거나 미리 만들어 놓은 리스트를 통해 뉴스를 읽는 용도로 쓰고 있다.


2024년 1월 6일 토요일

쥐가 났다


 아침에 자고 있다가 오른쪽 종아리에 경련이 나서 고통스러워 하며 깨었다. 처음은 손으로 주물러 보려고 하다가 통증이 심해져서 신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아파지고 있어서 신음은 저절로 비명이 되기 직전이었다. 좀 더 침착하게 해결해 보고 싶었지만 그 대신 끙끙 앓는 목소리만 크게 나오고 있었다.

방문 밖에서 이지에게 밥을 먹여주고 있던 아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발로 내 오른발을 꾹 밟아 뒤로 꺾어줬다. 그리고 급히 다시 돌아가 이지에게 밥 먹여주기를 계속 했다. 일단 아내가 발복을 뒤로 젖혀 준 다음엔 거짓말처럼 통증이 잦아 들었다.

내가 막 통증을 느끼고 신음을 내기 시작했을 때부터 내 곁에서 자고 있던 깜이가 크게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내 신음 소리가 커지면 고양이는 더 크게 소리를 냈다. 고양이가 거의 고함을 치듯 소리를 내고 있어서 나는 아파하던 중에 팔을 뻗어 깜이를 쓰다듬었다. 아내가 뛰어와서 '조치'를 해주고 돌아간 다음에도, 통증이 가라앉아 내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킬 때까지도 깜이는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제서야 돌아보았더니 고양이의 표정은 놀랐다거나 당황했다기 보다는 비장하고 용감해 보였다. 내가 팔을 뻗어 안아주자 깜이는 비로소 외치기를 멈췄다. 그 모습이 너무 우습고, 가여웠다. 한동안 고양이는 곁에 앉아 얼굴을 올려다 보며 나를 살피고 있었다.

밖에선 이지에게 밥을 먹여주느라 아내가 허리 통증을 참으며 웅크려 앉아 있었다. 깜이는 내 뒤를 따라 방에서 나오더니 제 밥그릇 앞에 앉아 늠름한 자세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들키지 않게 치킨텐더 덩어리를 꺼내 잘게 쪼개어 그릇에 담고 사료 몇 알을 섞어 고양이에게 주었다. 나는 조금 전 일이 식구들 앞에서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2024년 1월 4일 목요일

통기타

 쇠줄 통기타를 자주 치지 않았으니까 손가락 끝이 아픈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이유 보다도 가지고 있는 기타들이 결함이 많아 제대로 연주를 하지 못 하였다. 한 개는 넥이 뒤로 누워버린 뒤 복원되지 않고 있고 그나마 칠 수 있는 다른 한 개는 프렛을 잘라 낸 단면을 제대로 마감하지 않아 손을 움직일 때마다 날카로운 프렛 절삭면에 손가락이 긁힌다. 너트는 홈 깊이가 들쭉 날쭉하여 첫번째 프렛에서 줄이 눌리는 강도가 다르다. 버리기엔 아깝고 굳이 돈을 들여 수리하기엔 애매한 기타들이다.

통기타를 쥐고 줄을 뜯다 보면 중학생 시절 엄청나게 몰입하여 기타를 배우고 익혔던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손가락 끝엔 퍼렇게 산화된 니켈 때가 물들어 있었고 기타줄 모양으로 살 위에 자국이 나 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그 기억이 되살아 난다. 기타의 사운드 홀에 종이를 덮고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연습하다가, 결국 폭발하여 방문을 열며 나무라던 엄마의 모습도 생각난다.

좋은 통기타 한 개를 언젠가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2024년 1월 3일 수요일

지금 어디에 있는지


 사람들은 지금 매일 사용하는 물건들, 먹는 음식들, 생활을 제어하는 제도와 관습이 필요에 의해 생겨났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없던 것이 만들어지게 되어 이전에는 갖지 않았던 필요가 새로 생기는 것이다. 풍습이란 원래부터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 아니라 어느날 누군가들에 의해 시작되어 다수의 동의를 얻거나 다수에게 강제해 오면서 반복되었던 것이다. 유래를 알면 물건이 생겨난 시대를 이해할 수 있다. 과거의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지금 여기에 있는 자기와 타자를 바르게 알 수 있게 해 준다.

역사를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현대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무지한 채로 수명을 연장한다고 하여 특별히 잘 못 될 일은 없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지금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 고양된 정신이나 철학은 사치이다. 매일 먹고 놀고 즐기는 것 외에 가치라고 할 것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고, 알고 보면 굳이 문명의 울타리 안에서 살 이유도 없는 인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