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29일 토요일

작은 무대에서의 소리.


십 수년간 많은 사람들의 발자취로 맨질 맨질해져있는 무대의 바닥에 페달보드를 설치하고...
뒤를 돌아보았더니 아뿔싸, Trace Elliot의 콤보 앰프가 있었다.

이 앰프를 선호하는 분들도 분명 있겠지만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지금껏 그 앰프로는 한 번도 기분 좋았던 적이 없었다. 걱정을 조금 하면서 열심히 소리를 만들어보았다. 작은 무대에 기타앰프들이 단체 사진을 찍듯 다닥 다닥 붙어있는 모양새에서는 볼륨을 작게 해두고 시작해야 좋다. 베이스 앰프의 소리를 꾸밀때의 첫번째 중요한 점은 다른 악기들의 소리를 간섭하지 않아야 하는 것. 넓지 않은 공간에서는 저음 쪽을 지나치게 줄여버리면 좋지 않으므로 EQ는 만지지 않고 우선 음량을 줄여준다. 기타와 드럼의 레벨이 결정될 때 까지는 음색을 적절하게 만들어두는 것에 신경을 쓰고, 밴드의 사운드를 잡아 먹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볼륨을 조금씩 조절하여 만져 놓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 상태가 되기 십상이다. 세팅을 살펴보면 역시 D.I. 박스가 앰프에 연결된 채로 마이크가 설치되어있지 않았다. 결국 개인 모니터용으로 앰프를 올려다 놓은 것일 뿐... 페달보드를 통해 빠져나갈 소리를 듣기 좋게 만져주는 일로 리허설을 마쳤다.
물론 무대 위의 내 위치가 가장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리였어서 그랬겠지만, 공연 내내 모든 사운드가 고르게 잘 들려줘서 나는 신경 쓸 것이 없었다. 다른 멤버들의 사정은 곤혹스러웠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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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공연.


오랜만에 낡은 클럽에서의 사진을 얻었다.
수십년이 된 장소도 아닌데 낡았다는 표현을 사용하기엔 마땅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맨 처음 그 장소가 생겼을때 반갑고 기분 좋아했던 것이 생각났다. 벌써 세월이 흘러 이제 십 년을 훌쩍 넘겼다.
소박한 규모의 무대가 새삼 반가왔던 것인지 제법 흥이 나서 나는 어쩐지 마음대로 연주해버렸던 것 같았다. 지켜보신 분들이 '그렇게 신이 났었나요'라고 해줬다.
내가 그랬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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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26일 수요일

새 음반이 나왔다.


지난 달 말에 녹음했던 음반이 나왔다.
후반작업을 이번 달의 중반까지 계속 해왔다.
녹음했을 때에 메모해둔 것을 읽으며 11월이 되어버린 이제야 옮겨 적는다.
실제 녹음은 10월의 마지막 사흘 동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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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중언부언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여전히 아쉽다. 두 가지의 믹스, 마스터링 중의 한쪽을 선택해야했기 때문이다. 동의했고 결정되어버렸는데도 자주 아쉽다. 그래서 밴드의 일로 말하자면 베타버젼의 작은 음반으로 여겨지게 될 것 같다. 적어도 나로서는.

여섯 개의 곡들을 순서대로 멤버 전원이 동시에 합주를 하는 것으로 녹음했다. 녹음은 당연히 매우 빨리 진행되었다. 여러차례 테이크를 반복할 필요가 없기도 했다. 짧은 시간에 집중해야할 것들이 많았는데 너무 여유가 없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료들 사이의 신뢰 덕분에 일이 일답게 진행될 수 있었다. 삼고초려로 초빙했던 외국의 엔지니어분은 함께 저녁식사를 할 때에, '이렇게 멤버들끼리 친한 밴드는 오랜만입니다'라고 해줬다.

한 곡에서 플렛리스 베이스를 사용했다. 연습하고 준비하는 기간에는 합주실에 가지고 나가지도 않았었다. 합주연습을 할 때 마다 집에 돌아와서 플렛리스로 녹음할 생각으로 연습해뒀었다. 녹음 하루 전에 상훈씨에게 언뜻 의사를 비췄더니 '해보라'고 하길래, 녹음 직전에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플렛리스를 꺼내어 그냥 해버렸다. 모두들 '저 녀석이 뭐 잘 알아서 하겠지' 정도로 생각해줬던 것 같아서 그게 고맙다. 이 곡은 그래서, 플렛을 제거한 프레시젼 베이스에 콤프레서, 암펙의 SVT2가 전부였다.

8비트의 연주곡과 컨트리 형식의 노래, 다른 두 곡에서는 늘 가지고 다니던 재즈베이스를 사용했다. 코러스와 콤프레서, 시그널 부스터를 썼다. 가능한 앰프의 소리만 내고 싶었기 때문에 자주 모두 바이패스해둔 부분이 있다. 록음악을 연주하기에는 내 악기의 현고가 모두 낮기 때문에, 녹음 당일에는 브릿지를 조절해서 조금씩 올려두었다. 집에 돌아와 다시 브릿지와 픽업의 높이를 맞추느라 시간을 들여야했다. 피크를 사용한 것은 두 곡. 엔지니어분의 제안으로 한 곡에서는 오래된 베이스맨 앰프를 빌어와 게인을 잔뜩 걸어 드라이브 소리를 더빙했다. 암펙에서의 드라이브도 해보고 싶었지만 워낙 '빨리 빨리' 했어야 했던 분위기여서, 펜더의 베이스맨만 사용하고 말았다.

나머지 한 곡에서는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5현을 사용했다. 악기 자체의 게인이 센 편이어서 앰프의 음량을 낮춰야했다. 이펙터는 아무 것도 연결하지 않은 상태로 녹음했다. 기타앰프를 연결한 상훈씨의 클라비넷 사운드와 기타의 소리가 중음역대를 메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을 더 어지럽히고 싶지 않아서, 결국 낮은 D의 음은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두 번의 테이크로 녹음을 마치게 되었다.

보컬 녹음이 정말로 빨리 끝나버렸기 때문에 멤버들은 몇 가지의 더빙을 더 시도해볼 시간을 얻었다. 우리 밴드 리더분의 보컬 녹음 장면은 감탄할만 했다. 목소리와 힘을 제어하는 방법도 방법이거니와 마이크를 사용하는 방법, 잘 계획되어진 순서... 역시 연륜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반작업의 맨 마지막에, 두 개의 결과물을 두고 선택을 했어야만 했다. 녹음작업부터 함께 관여하고, 실질적인 프로듀싱을 해줬던 엔지니어 N씨의 후반작업이 나는 좋았다. 그러나 다른 쪽으로 결정했어야 했고, 음악이라는 결과물 앞에서 어느쪽이 최선인지에 대하여 판단의 책임을 질 수가 없었다. 여전히 아쉬움이 많고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결정을 내려야하는 분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연주자가 되었든 창작자가 되었든, 어느 정도의 레벨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논리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살면서 배웠지 않았느냐고 자신에게 타이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도 나에게는 그만한 논리라는 것이 갖춰져있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더 좋다는 말입니다'라는 것으로는 너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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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음반.

어쨌든 버젼 0.5의 베타 음반이 나왔다. 이것이 좋은 일들의 좋은 시작이 되면 좋겠다.
굳이 정관사를 붙여 최상급의 단어를 만들어 붙인 'The Happiest'라는 이름 속에는, 오래된 한 뮤지션의 반어법적인 역설이 있다고 나는 짐작해본다. '가장 행복한' 사람의 내면에는 지긋지긋할 정도의 고독과 외로움이 녹아있다. 누구라고 해도 그런 것은 그저 겨우 짐작해보기나 할 뿐, 본인의 것으로 여길 수는 없는 것이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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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25일 화요일

매스미디어.

지난 번 케이블 방송사의 음악 시상식 캡쳐화면을 주워오게 되었다.
다시 보니 그 날의 정신없었던 분위기가 기억난다. 폭탄테러 직후의 시장터 같았다.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거대자본의 기업에서 물량으로 쏟아부은 것에 비하여, 그런 기획과 공연의 좋은점은 어디에 있을까. 그렇게 많은 사람의 시간과 노동력을 빌어와서 겨우 좋은 그림을 만드는데에 열중해버릴 뿐, 음악에는 관심이 없는 기획이라고 생각했다. 거창한 철학이나 비젼은 기대하기도 어렵거니와 음악적이지도 않은 음악 방송사의 쇼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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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21일 금요일

바람부는 날의 음악.


사진은 최근 경매사이트에 올라와있던 카세트테이프의 표지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고양이가 창가에 앉아서 하염없이 하늘을 보고 있길래 무엇을 하는가 했더니, 바람에 이리 저리 날리고 있는 나뭇잎들이 보였다. 고층의 아파트 유리창에 와서 부딪히고는 다시 날려가버리는 나뭇잎들.

낙엽 落葉 이라고 해버리면 ‘떨어지는 잎사귀’일텐데, 이것은 쏘아올려지듯 속절없이 빙글 빙글 돌며 날려지고 있는 중이어서 나뭇잎이라고만 해야하는가, 따위의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고양이와 나란히 앉아 미칠듯이 쏘아올려지고 있는 나뭇잎들을 구경하다가, Brian Melvin의 음반을 틀어두었었다. 그날 이후 두 주일 가까이 계속 그 음반을 듣게 되고 있다.
드러머 브라이언 멜빈의 음반이라고는 하지만 Jaco Pastorius, Jon Davis가 함께 연주한 트리오 앨범이어서 오히려 자코라는 연주자의 이름으로 더 알려져있는지도 모른다.

십여년 전 피아노를 치는 친구가 어느날 이 음반을 알려줬을 때에야 겨우 듣게 되었던 나는 여기에 담겨있는 자코의 연주를 듣고 놀랐었다. 기뻐했었다.
이 앨범은 자코가 녹음한 음반들중 제일 명료한 음질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좋은 소리가 담겨있는 음반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스탠다드 재즈로 채워져있어서 언제나 아끼는 앨범이 되었다.
게다가 자코가 이 앨범에서 연주하고 있는 것은 플렛이 있는 베이스이다.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모두 뒤져도 찾기 어려운 플렛티드 베이스의 음색인데, 처음에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듣고 있었다. 자연스럽고, 착하고, 행복하게 연주하고 있는 느낌이다. 현실로 말하자면 심하게 망가져있었던 심신이었을 무렵의 그였지만, 브라이언 멜빈의 설명처럼 이 음반을 녹음할 무렵 만큼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마치 ‘드럼과 피아노를 위해서 연주하러 왔어’, 라고 말하고 있는 것 처럼 따뜻하고 충실하게 연주하고 있는 음반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녹음했던 음반이었고 사망했던 이듬해에 발표되었었다.

그가 죽은지 20년도 더 지나버렸다. 그가 남겨준 음악을 들으며 바람이 몹시도 부는 아침에 나는 겨우 기운을 얻는다. 부쩍 추워진 요즘에, 이 음반은 온기를 느끼게 해주고 웃을 수 있게도 해줬다. 거위털 외투보다도 고마운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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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레코드가게에서 지구레코드에서 나왔던 이 음반의 한국산 라이센스반을 보았었다. 그 레코드는 어찌 어찌 흘러서 그곳까지 가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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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18일 화요일

클럽에서.


새벽, 주룩 주룩 비가 내려주고 있다.
아침이 되어도 눈이 부시지 않을 것 같아 좋기만 하다.
오늘 저녁엔 오랜만에 클럽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다.
게다가 그 장소는 오랜만에 가보는 곳이다. 이제는 낡고 우중충해져있을 그곳의 입구에 다다르면 뭔가 반가운 것도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공연할 곡들을 대충 연습해보다가 오래 전에 드나들었던 곳들이 생각났다. 비좁은 무대여서 서있을 자리가 없었던 클럽들이 그때엔 더러 있었다. 먼저 드러머가 손님들 사이를 뚫고 들어가 어렵게 심벌들 사이로 몸을 통과시켜 드럼 세트에 앉으면 그제서야 겨우 겨우 콤보 앰프 위에 걸터앉아 엉덩이에 진동을 잔뜩 느끼며 연주해야 했던 눅눅하고 좁아터진 옛날의 클럽들, 카페들을 자주 그리워했다. 앞에 마주보고 앉은 관객과 눈이 마주쳐지는 것이 자주 민망해서 몇 시간 동안 눈을 감고 연주하기도 했었는데... 지금도 어딘가에는 그런 곳들이 남아야 있겠지만, 아직도 그런 곳에서 그렇게 음악을 즐기려하는 청중들은 존재할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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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5일 수요일

닳아버린 사람.


어린 학생 한 명이 카메라를 집어들더니
말없이 셔터를 눌렀었던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천진한데 나는 닳아버렸다.
내 모습을 찍어주는줄도 모르고
오른손을 내밀어 돌려달라고 보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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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보 위의 고양이.


곱게 세탁해놓은 흰 이불보 위에 제일 먼저 뛰어드는 고양이는
당연히 순이.
뒹굴다못해 노래를 부르듯 그르릉거린다.
세제 냄새가 담긴 하얀 이불보를 무척 좋아한다.

순이는 한참을 이불보 위에서 놀다가, 이불보 위에서 잠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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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감이 달렸다.


볕이 좋았던 낮에 집앞의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감을 보았다.
어쩌자고 푸른 하늘을 벽지 삼아 붉게도 매달려 있었는지.
종일 바람은 불고 햇볕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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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3일 월요일

쉴 수 있던 시간.


며칠 동안 많이 말하지 않아도 되었어서 좋았던 것이었나보다.
지나고 보니 그랬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내일 부터는 약장수처럼 하루종일 말을 해야하는 한 주가 시작될 것이어서 미리 피로해진다.
떠들지 않으면서도 할 수 있는 레슨 방법을 고안해야만 계속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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