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6일 화요일

부산에 다녀왔다.


 길고 긴 열 네 시간이었다. 나는 두 시간 전에 집에서 출발하여 서울역으로 향했다. 일찍 도착하여 햄버거를 사먹으며 시간을 보내겠다고 아내에게 말했었다. 내비게이션 앱이 평소와 다르게 한강을 건너 돌아가는 길을 안내했을 때에, 나는 그것을 무시했다. 가끔 아이폰 앱은 불필요한 경로를 안내할 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곧 나는 내 판단이 틀린 것을 알았다.

끔찍한 도로정체를 겪었다. 내비게이션 앱은 서울역에 도착할 예정시간을 점점 늘리고 있었고 꽉 막힌 도로는 뚫리지 않았다. 한 시간 십여분 동안 길 위에 갇혀 있었다. 손에 땀이 나고 입이 말랐다. 겨우 정체구간을 벗어난 뒤에는 정신없이 차를 달렸다. 몇 년 만에 과속도 했고 차선을 위반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 시간에 역에 도착하여 기차를 타기에는 무리였다.

아내에게 전화하여 도움을 청했다. 아내가 빠르게 판단하여 다음 기차를 예약해줬다. 매니저님에게 급히 전화하여 사정을 설명했다. 아내가 기차표를 예약해주기 전까지 나는, 그대로 차를 돌려 고속도로를 달려 부산까지 갈 마음을 먹고 있었다. 

아내가 급하게 예약해준 기차는 몇 군데 들르지 않는 급행이었다. 나는 앞서 출발했던 일행과 큰 차이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저녁 여섯 시가 다 되어 하루의 첫끼를 먹었다. 굶고 있다가 먹었기 때문에 맛있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부산의 돼지국밥은 이제 높은 수준으로 평준화가 되어있는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맛있는 국밥으로 허기를 채웠다.



부산의 따뜻한 기온과 굶다가 먹은 뜨거운 국밥의 온기 때문에 졸음이 쏟아졌다. 대기실에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그대로 드러누워 잠들어버릴 것 같았다. 악기를 걸쳐메고 괜히 선채로 서성거리다가 의상을 갈아입은 염민열과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일정을 마치고 부산역에서 다시 기차에 올라탔다. 좌석에 앉으니 몸이 의자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나는 에어팟을 귀에 꽂고 Fourplay와 Chuck Loeb의 음악을 들었다. Mendelssohn의 바이올린 협주곡 앨범도 들었다. 다시 서울역에 도착하니 한 시 반. 낮과 달리 텅 비어있는 강변북로를 달리며 큰 음량으로 멘델스존의 음악을 다시 들었다. 음악이 끝날 무렵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루가 참 길었다.

집에 돌아와 찬물로 여러번 세수를 하고, 내일 학교에서 수업할 자료를 완성했다. 지난 주에 만들어두긴 했었으나 내용이 부실했기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준비해야 했다. 모든 것을 마치고 알람을 서너 개 설정한 다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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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2일 금요일

밤중에 옥상 위에서.

 


부평에 있는 어느 극장의 옥상에서 연주했다. 부평 뮤직플로우 페스티벌이라는 새로운 음악 축제에 참여하는 것이었는데, 친구들과 함께 연주하는 것을 촬영했다. 우리는 지난 해에 이정선 형님과 그분의 노래를 다시 녹음했었다. 오늘은 그분을 가운데에 모시고 두 곡을 연주했다.

금요일 저녁에 도로 정체가 심할 것을 각오는 했었다. 하지만 정말 막혀도 너무 많이 막혔었다. 한참 동안 외곽순환도로를 지나 부평에 도착했지만 그곳에서부터 약속장소까지 가는 데에 다시 한 시간이나 걸렸다. 두 시간 반을 운전하여 겨우 부평 문화센터에 도착했다.

무대를 마련하고 촬영과 녹음을 맡은 스탭들이 어두운 옥상 위에서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낮부터 계속 촬영이 이어지고 있었다고 들었다. 옥상 위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나는 당연히 외투를 벗고 연주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웃옷을 벗었고, 촬영이 끝날 때까지 벌벌 떨며 연주했다. 며칠 전 전주에서 야외공연을 했던 것보다 더 추웠다. 손가락 끝에 감각이 없었다.


일을 마치고 짐을 챙겨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이 장면을 찍었다. 춥고 손이 시려워 고생스러웠지만 연주하며 밤하늘에 떠있는 고운 달을 계속 볼 수 있었다. 달무리 주변에 별도 빛나던데, 하늘이 맑았던 모양이었다. 모든 일이 끝난 뒤 어둡고 고요한 옥상 위에서 부지런히 정리하고 짐을 챙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움직이는 그림자들처럼 보였다.

집에 돌아올 때에는 강변북로를 따라 쾌적하게 달려올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작은 사고들이 많아서 다시 도로 정체를 경험했다. 그래서 돌아올 때에도 다시 두 시간 가까이 운전. 그런데 생각해보면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평범한 일상이었던 때가 있었다. 다시 악기를 싣고 운전하고 연주하러 다닐 수 있는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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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7일 일요일

전주에 다녀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고속도로를 달렸다. 전주에서 공연을 했다.

공연장은 4년 전에 공연했던 야외무대였다. 건물도 풍경도 낯이 익은데 다만 사람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고 공연장에 들어가기 위해 백신접종을 마쳤다는 증명을 확인받아야 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리허설을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와 악기를 한 번 살펴봐야했다. 부쩍 기온이 낮아졌기 때문에 짧은 시간 무대 위에서 연주했을 뿐인데도 악기의 튜닝이 심하게 달라져있었다. 밤이 되어 공연을 시작했을 때에는 손이 차가와져서 내가 힘을 조절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근육을 다친 손가락에 통증이 너무 심했다.

관객들도 함께 추위를 견디며 야외공연장에 모여 앉아있었다. 아직은 예전처럼 일어나 호응을 하거나 마음껏 즐기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지긋지긋한 판데믹은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


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몸을 따뜻하게 하느라 가지고 온 옷을 모두 입었다. 공연 전에 도시락을 먹으러 대기실에 갔더니 아무도 없는 방에 리더님의 기타가 놓여져 있었다.

짧은 공연을 마치고 다시 세 시간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영하의 기온도 아니었는데 몸이 얼어 덜덜 떨었다. 고속도로에 접어들면서 자동차의 히터를 세게 틀었다. 지난 주에 울산에 다녀올 때에는 기차를 탔는데도 피로했었는데, 오늘은 야간에 장거리 운전을 하느라 더 힘이 들었다. 안경의 돗수를 다시 맞춰야할지도 모르겠다. 눈이 흐릿하여 피로감이 더 생긴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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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9일 토요일

울산에 다녀왔다.


 오전에 서울역에 가서 기차를 타고 울산으로 갔다. 기차역에 내려 다시 사십여분 걸려 공연장에 도착했다. 가는 비가 계속 내렸다. 그리고 긴 시간 동안 리허설을 했다. 오랜만의 첫 공연을 우리는 잘 하고 싶었고, 한 시간 반 동안 거의 모든 곡을 전부 연주해봤다.


다시 긴 시간을 기다려 공연을 시작했다. 공연을 오래 쉬었지만 몸이 음악을 기억하는 기분이 들었다. 듬성듬성 앉은 관객을 보며 다시 연주를 하는 것이 기분 좋았다.


그리고 다시 기차역으로. 예전엔 일상처럼 했던 공연하는 하루의 일정이 부쩍 힘들게 여겨졌다. 악기도 무겁게 느껴졌고, 운전을 하지 않았는데도 피로감이 심했다. 체력의 문제일까.

새벽에 서울역으로 돌아와 주차장에서 자동차 시동을 걸고, 강변북로를 따라 집까지 오면서는 음악도 틀어두지 않았다. 가끔 차창을 열면 서늘한 공기가 마스크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사는 곳도 심야가 되면 주차하기가 어려워진지 오래됐다. 집에 도착했더니 지하 주차장에 좋은 자리가 한 군데 비어있었다.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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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6일 수요일

공연을 위한 합주.


거의 두 해 만에 밴드의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한 달 전에 사전 연습을 했었지만 공연을 며칠 앞두고 준비하는 기분은 새로왔다. 약속장소에 일찍 도착하여 악기를 튜닝하며 집에서 체크해뒀던 메모들을 다시 살폈다. 첫째날에는 여섯 줄 베이스를 가져갔다. 이 악기의 소리는 이번 공연에 적합하지 않겠지만 다른 악기들과 이 베이스의 사운드가 어떻게 섞이는지, 큰 음량으로 듣고 싶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프리앰프의 노브들을 모두 플랫하게 해두고 테스트 했다. 경험이 쌓이면 더 좋은 사운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둘째날 합주에는 펜더 다섯줄 베이스를 사용했다. 역시 이 형태의 베이스가 우리 밴드의 사운드에 잘 맞았다. 패시브 모드에서도 배음이 잘 나와줬다. 액티브 상태에서는 기본 음량이 너무 세어서 오히려 볼륨 노브를 줄여야 했다. 이 달의 공연들은 이 악기와 원래의 재즈베이스로 해볼 생각이다. 울산과 전주와 부산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고 그 사이에 친구들과 함께하는 팀의 일정도 기다리고 있다. 얼마만의 일상인지, 모든 약속들이 귀하다.


합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야 애플워치에 표시된 알림을 보았다. 워낙 큰 음량으로 연주하다보니 소음 레벨이 109까지 올라갔었다. 아이폰에는 '일시적인 청각장애가 있을 수 있다' 라고 설명이 나왔다. 하루 종일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녔던 나는 이미 이십대에 귀의 성능을 일부 잃었을 것이다. 섬세한 음악을 틀어놓으면 내가 듣지 못하는 음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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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일 금요일

그냥 견뎠다.


 사람들로 붐볐던 종합병원. 자정이 지나자 텅 비어있는 것처럼 조용해졌다. 입원할 때에는 주차장이 혼잡하여 제대로 주차를 하지 못했었다. 한밤중에 좋은 자리로 자동차를 옮겨 놓을 수 있었다. 소독제를 듬뿍 손에 담아 문지르며 서둘러 병실로 돌아갔다.

노인 곁에서 이틀 밤을 새우는 것,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환자의 옆에서 선 채로 편의점 도시락을 먹거나 끼니를 거르는 것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얼마든지 더 할 수 있다. 나는 완전히 익숙해져서 병원에서의 보호자 생활은 눈 감고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김없이 일어나는 노인의 난동, 폭언, 행패와 의료사고에 가까운 행동들을 견디는 일은 힘들었다. 항상 힘들었지만 거듭 할 수록 더 힘들다. 감정이 없는 것처럼 대처하느라 애를 썼지만 이미 임계점을 넘어선지 오래였다. 결국 환자는 또 다시 사고를 일으켰다. 젖은 시트를 갈고 옷을 갈아입히고 병실 바닥에 뿌려진 피와 주사액들을 닦으면서는 오히려 화가 누그러뜨려졌다. 별 수 없이 그냥 견뎠다.

나는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가능한 버티고, 그 이상이 되면 적어도 내가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더하지는 않도록 하려 했다. 마스크 안에서 입을 다물고 그냥 견뎠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다음, 나는 화장실에서 기절하여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오랜만의 일이었다. 각성상태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 이후에도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 내 나이 때문에 이종 백신을 교차접종할 수 없었다. 지난번 접종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백신을 맞은 후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심지어 주사 맞은 자리에 약한 통증조차 남지 않았다. 주사를 맞은 후에 오히려 한 시간 정도 산책삼아 걸었다. 잠이 모자라서 여전히 피로했지만 기분이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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