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28일 화요일

고맙고, 미안했다.

고양이 순이와 내가 작은 오피스텔에서 둘이 살고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 해 겨울에 나는 매일 연주를 하러 다녔다.
저녁부터 밤까지 세 번, 네 번의 연주를 하고 나면 셔츠는 땀으로 젖기 일쑤였다. 그러면 나는 더워진 몸을 식히기 위해 겨울의 차고 매서운 바람이 부는 밖으로 나와 젖은 셔츠 차림으로 쏘다녔다. 자동차의 창문을 열어둔 채로 운전을 하기도 했다.

어느날 일을 마친 후 새벽에 오피스텔로 돌아오면서 그만 고양이 밥을 사오는 것을 잊고 말았다.
당시에는 잘 모르고 그랬던 일이었지만, 몸이 고단했고 다시 나가기엔 귀찮았다. 나는 대충 내가 먹던 참치캔을 덜어서 고양이 밥그릇에 담아주고는 그만 쓰러져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알람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팔 다리가 무겁고 등은 침대에 접착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잠은 깨었는데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감기에 심하게 걸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목과 이마에는 열이 심했다. 손은 차갑게 느껴졌다. 허벅지에 이불이 스치기만 해도 민감한 통증을 느꼈다. 고개를 들어보려 했더니 여름날 뙤약볕에서 넘어져 앞으로 구르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나는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엉금엉금 기어서 물을 한 잔 마시고는 주저앉았다. 몇 시인지 확인하고, 아직 연주하러 나가려면 몇 시간은 남았으니 조금만 더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천천히 기어가서 침대에 누웠다. 순이는 책상 앞 의자에서 몸을 말고 쿨쿨 잠들어있었다. 순이가 자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는 다시 잠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나는 내 신음소리에 잠을 깨어버렸다.
나도 모르게 아파서 신음을 내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 소리에 그만 내가 깨어버렸던 것이었다.
우선 일터에 전화를 하여 몸이 아프다는 것을 말하고 양해를 구하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전화를 찾으려 했다.
그런데 몸이 너무 무거웠다. 꼼짝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들어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입고 있던 셔츠는 식은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열은 더 심해져서 널어둔 빨래를 걷어 깔고 누우면 잘 다려질 정도라고 생각했다.
나는 가까스로 눈을 뜨고 팔을 들어 올려 무거운 몸을 일으키려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두 개의 파란 눈알이 내 코 앞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찌나 놀랐는지, 잠시 내 위에서 나를 보고있는 존재가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고양이 순이였다.

고양이는 나를 밟고 앉아서 내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양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가늘고 높은 목소리로 외마디 말을 하고는, 하고 있던 일을 계속 하겠다는 듯 내 입술과 코를 핥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짓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당황했다. 그 다음에는 간지럽고 우습기도 하여 어린 고양이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려주며 조금 더 누워있었다. 고양이 순이는 계속 내 볼과 코와 입을 핥아주고 있었다.
그런데 간지럽다고 생각했던 볼과 입술에 이상한 감촉이 느껴졌다. 간지럽기 보다는 통증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순이를 쓰다듬으며 머리맡으로 옮겨 앉혔다. 그랬더니 고양이는 펄쩍 내 얼굴을 뛰어넘어 책상 앞 의자에 다시 올라가 앉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혼자 기합소리까지 내며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았다. 일터에 가야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었다. 이제 일어나서 전화를 하고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본 다음, 약국에라도 다녀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을 마치고 세면대 앞에서 거울을 들여다 본 후 전화를 찾으러 나오려다가, 나는 다시 욕실로 들어가 거울을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이게 뭐지.
입술 끝이 벗겨져 있었다. 볼도 벌겋게 부어올랐고 코 끝도 살짝 빨갛게 되어있었다.
고양이가 핥아주는 바람에.
나는 그것이 고양이 순이의 혀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것을 몇 초 동안 거울 앞에서 얼굴을 만져보다가 그제서야 알았다. 내가 신음을 내었던 것은 고양이의 혀가 너무 따가와서 그랬던 것이었다.
나는 찬물을 틀어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렸다. 고양이가 앉아있는 책상 앞으로 가서 몸을 낮춰 앉았다. 몇 개월짜리 고양이 순이가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그릉그릉 소리를 내며 좋아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에게 말하듯 무심코 이렇게 말해버렸다.
"고맙다."

나는 어린 고양이 순이를 여러번 쓰다듬고 들어올려 껴안았다. 얼굴을 막 주물러주기도 했다. 순이는 계속 그릉그릉 소리를 냈다. 뭔가 큰 위로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고양이에게 간호를 받은 것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이 고양이에게 고마와했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아프더니, 정신을 차려보니까 나는 고양이를 들어올려 한 바퀴 돌기도 하고 아직은 거북하지만 앉았다가 일어설 때에도 덜 어지러웠다. 그렇다면 쉬지 말고 일을 하고 오자, 라고 생각했다. 나는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고 좌변기에 앉아 이를 닦았다. 평소보다 두툼하게 옷을 껴입고 악기를 챙겨 질질 끌며 고양이를 위해 램프를 켜주고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했다.

그날 밤에 연주하는 일이 수월하지는 않았다. 의자를 부탁하여 앉아서 연주했다. 도돌이표를 잊고 실수를 하기도 했다. 가까스로 일을 마치고 났는데 땀도 나지 않았다. 밖으로 나왔을 때엔 내 입김이 단지 바깥 공기가 차갑기 때문에 나는 것인지 내 체온이 너무 높기 때문에 나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차가운 공기를 쐬니 조금 몸이 나아진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연주를 할 수 있었을 정도라면 뭐 그다지 심하게 아픈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지난 밤에 잊었던 고양이 밥을 기억하고 밤새 문을 여는 마트에 들러 사료를 한 봉지 샀다. 어서 들어가 쉬고 싶어서 내가 먹을 빵과 우유를 봉지에 담아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악기를 내려놓고 자신만만하게 순이를 부르며 사료봉지를 뜯어 고양이 밥그릇을 찾았을 때가 되어서야, 아뿔싸, 나는 고양이의 밥그릇과 물그릇이 텅 비어있는 것을 보았다. 어린 고양이 순이는 기뻐하는 소리를 내며 사료봉지에 달려들어 보채고 비닐봉지 안에 들어있는 빵을 물고 뛰어다녔다. 전날 밤에 덜어주었던 참치통조림은 말라붙은채로 그릇 밖에 나와있었다. 입맛에 맞지 않았는지, 입맛이 변했던 것인지 참치는 전혀 먹지 않았다. 나는 고양이 밥그릇에 사료를 부어주고 다른 그릇에 물을 따라줬다.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밥을 먹고있는 고양이 곁에 나란히 앉아서 우유와 빵을 먹었다.
우습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지만, 나는 사람의 언어로 또 고양이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세월이 흘러 벌써 그것은 6년 전의 일이 되었다. 이제 고양이 순이는 살이 포동포동 오른 어른고양이가 되었다. 걸핏하면 사람처럼 의자에 앉아 무심하게 바라보다가 서로 눈이 마주치면 눈을 깜박여준다. 어슬렁거리며 집안을 걷고 다른 고양이와 장난을 치다가 가끔은 혼을 내기도 한다.

6년 전의 그 겨울밤에, 아기 고양이였던 순이는 사실은 내가 아파하고 있던 것을 걱정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밥도 물도 주지 않은채 잠만 자고 있는 나를 보며 어서 저놈을 깨워야 밥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일 수도 있다. 깔깔한 혓바닥으로 계속 내 얼굴을 핥으며 정말 단순하게 배가 고파서 사람을 책망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의 만 이틀을 굶고있었으면서도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내 곁에서 몸을 말고 자다가, 식은땀을 흘리고 고열을 견디고 있었던 나를 한참 동안 핥아준 덕분에 내 얼굴에 상처까지 냈던 고양이의 행동을 나는 쉽게 잊지 못한다. 사실은 다른 의도였었다고 하더라도, 나에게 그 경험은 어린 고양이로부터 받았던 극진한 간호였다. 그리고 아무도 본 사람은 없지만, 그날 밤 내가 고양이 곁에 가까이 앉아서 고맙고 미안했다라고 말했던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진심이었다.




.

2011년 6월 12일 일요일

램프를 친구 삼은 고양이

고양이가 집안에 네 마리가 있는데, 각각 식성이 다르다.
이 녀석이 즐겨 먹는 사료는 저 넘이 안 먹고, 요놈이 너무나 좋아하는 캔 사료는 조놈에게는 그냥 못먹는 깡통일 뿐이다.
지난 밤에 아내와 대화를 하던 중, 아내가 나에게 '이지가 좋아하는 간식을 주문했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곁에 있던 막내 고양이 지지배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꼬리는 물음표처럼 휜 채로 등 한 가운데의 털이 바짝 선 모습으로 눈알은 평소보다 훨씬 더 커져가지고서는, 갑자기 밥을 달라고 성화를 부리기 시작했다.
내 무리한 추정으로는 이 고양이가 아마도 자신의 이름인 '이지'와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명사인 '밥'을 동시에 듣고 의미 혹은 이미지를 파악했으며, 사람들에게 강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않으면 이번에도 얼렁뚱땅 그냥 넘어갈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 같았다.
고양이라는 것들이 막무가내인 점은 이 부분인데, 아무리 조금 전 들었던 말이 미래에 있을 기쁜 소식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설명을 해도 그런 언어는 알아듣거나 파악해주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시제에 약한 것일까나.
결국 이 녀석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다른 간식 - 이라고 해봤자 생선을 재료로 한 습식사료 - 를 잘게 잘라 내어 주었다. 그랬더니......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뒤돌아 앉아서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엉덩이를 사람 쪽으로 하고, 신체의 모든 부분이 벽을 향한 채로 단지 두 귀만 뒤쪽으로 돌려져 있는 모양새. 아, 기가 막혔다.

조금 전에 바닥에 엎드려 뭔가를 읽다가 고개를 들었더니, 막내 고양이가 책상에 앉아 전등을 쳐다보며 뭐라 뭐라 하고 있었다. 어조는 처연하고 음성은 낮은 것으로 보아 여전히 세상 돌아가는 것은 모르면서 제 신세를 부풀려 한탄하는 것 같았다.
눈 부셨을텐데... 그보다도, 전구 주제에 고양이의 말을 들어줄 리가 없지 않은가. 바보 고양이.



.

2011년 6월 7일 화요일

어지러움

문득 올해 초에 오키나와에서 보았던 수평선이 떠올랐다.
이쪽은 제주도의 북쪽 해안이므로 오키나와의 바다와는 거리가 멀다.
어지럽고 눈의 촛점을 잘 맞출 수 없는 증상이 오래 지속되고 있어서 먼 바다를 내다보고 있으려니 오히려 피로해졌다.
이것이 단순히 수면부족이거나 피로였으면 좋겠는데.
혹시 한동안 피우지 않았던 담배를 근래에 다시 피웠던 탓은 아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