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 30일 화요일

섣달 그믐.


나는 어쩌자고 외출을 하면서 창문을 열어뒀던 것일까.
정신을 어디에 두고 다니는 것인지, 집에 돌아와보니 창틀에 눈이 쌓였고 방바닥에는 물이 흥건했다.
올 겨울은 덜 추운건가, 생각했는데 눈이 내려서 쌓였다.

함박눈이 내려서 하얗게 쌓였다.
나는 칠칠맞게 창문이나 열어놓고 다니는 삼십대가 되고 말았다.





.

2003년 12월 16일 화요일

연주하고 싶다.


음악하는 친구들 중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
이 친구는 오래될수록 그윽한 면이 있어서 오히려 늘 새롭다.

멀리서 악기를 들고 찾아와 단 둘이 연습을 했다.
비좁은 방구석이지만 연습은 즐거웠고 한참을 집중하며 소리를 내었다.

이제 보름 후면 새해가 된다.




.

2003년 11월 15일 토요일

2003년 11월 9일 일요일

가을.


오후에 노란색이 가득한 것을 보고 잠시 걸었다.
늘 밤에 다니다보니 오후 세 시에 이렇게 많은 색들이 있었구나, 하며 좋아하였다.
바람은 서늘했고 텅 빈 작은 학교 운동장에는 낙엽이 구르며 쌓이며 놀고 있었다.
어리고 버릇없는 손자녀석이 바퀴가 덕지덕지 붙은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있었고, 그 뒤를 할머니가 어렵게 따라다니고 있었다.
한쪽 의자에 앉아서 노란색을 잔뜩 묻히고 있었다.

십여년 전에 한 번 가보았던 치악산 구룡사, 지리산 연곡사, 천 살이 되었다는 은행나무가 있다는 용문사, 오대산 월정사 초입의 전나무숲길. 해마다 가을이면 단풍으로 물드는 그곳들에 올 가을에는 정말 마음먹고 가보고 싶었다.

그대신 오후에 가을냄새를 맡으며 앉아서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올 가을은 이것으로 됐다고 생각했다.




.

2003년 10월 20일 월요일

동트는 것을 보았다.


오늘 아침은 대단했다.
새벽 내내 동쪽 끝으로부터 달려오면서 해가 뜨는 것을 보았다.

동해시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고, 밤새 달려 집에 도착했다.



.

2003년 9월 23일 화요일

이사를 했다.



한번도 높은 곳에 살았던 적이 없었다.
적응되려면 오래 걸릴 것 같다.
창문을 열 때마다 이상하고 무서웠다.
그러나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좋다.


.

2003년 9월 15일 월요일

책 정리.


정리하기가 어렵다.
어디론가 이사를 해야할 때마다 책들의 일부를 버려야 했다.
점점 늘어가기는 커녕 가지고 있던 책들을 없애야 하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그래서 결국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사보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묵은 신문지를 모아서 버리는 것과는 아주 많이 다른데, 그것을 이해해주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한숨 쉬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

2003년 9월 5일 금요일

기운내자.


나 자신에게 기운내는 척이라도 해주자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면 실제로 기운이 나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다시 어떻게든 앙다물고 굴러가야 한다.

























.

2003년 9월 1일 월요일

인정하기로 한다.

이성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은 반드시 있다.

그것을 인정하자.

벽 앞에 서서 인정하기 시작하면 일부러 뛰어넘을 생각을 잊게 된다.





.

2003년 7월 5일 토요일

지나가게 하기도 어렵다.

지난 몇 주 동안, 나는 무슨 벌을 받기 위해 긴 터널을 엎드려 기어서 반대편 입구에 도착해야만 하는 것 같은 심정으로 지냈다.

불과 며칠 전, 아직 끝나지 않은 고통이 계속되고는 있지만 이제 조금은 내성이 생겼다고 느꼈다. 조금은 평온해졌다.

지금은 더 밝게 생각하기로 하고 있다.

공들여 그릇을 만들어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하여, 반드시 깨먹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나약하지만 사악하지는 않으려 애도 쓰고 있다.




.

2003년 6월 13일 금요일

자코 음반 소개글을 썼다.


최근 이 음반을 진열해둔 교보문고 매장에 사용할 글을 써드렸다.

--
자코 파스토리우스의 베이스 연주는 세월이 흘러도 빛을 잃지 않는다.
이 앨범 Punk Jazz 는 원래부터 자코 파스토리우스의 진지한 팬들이었을 세상의 모든 베이스 연주자들을 위해 선곡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왜냐면 베이스 키드들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포함되어있었어야 했을, 자코가 생전에 항상 연주하고 있던 Donna Lee, Portrait of Tracy 와 같은 곡들도 없고, Teen Town 같은 히트곡도 이 음반에는 실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신 아직 자코 파스토리우스를 모르고 있을지도 모르는 새로운 재즈팬들과, 반드시 베이스라는 악기의 소리를 듣고 싶은 것은 아니더라도 좋은 음악이면 얼마든지 즐길 준비가 되어있는 음악팬들을 위해 차분하게 선곡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렉트릭 베이스기타의 연주방법과 관점 자체를 바꿔놓았던 대단한 연주자, 자코 파스토리우스가 연주하는 플렛리스 베이스의 매력을 풍성하게 느낄 수 있다.

스물 여덟 곡의 음악들은 지금은 더 이상 구해서 듣기 힘든 음악도 아니고, 희귀한 음원들도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여기저기 흩어져서 좋재하던 그의 연주들을 한 자리에 적절하게 잘 모아두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영상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음원이라든지, 오래 전에 발매되었던 음원들이 다시 성의있게 믹스되어 있어서 만족할만한 음질로 들어볼 수 있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The Chicken 은 자코의 홈레코딩 버젼으로 소개되고 있다. 실제로 자코의 침실에서 녹음되었다고 하는 짧은 연주이다. 자코는 이 곡을 집에서 녹음하면서 베이스, 드럼, 기타, 알토 색소폰, 리코더 등을 모두 혼자 연주했다. 이 녹음을 존 콜트레인의 미망인에게 우편으로 보냈었다고 전해진다. 나중에 수도 없이 많이 연주되었던 곡이지만, 자코의 다른 곡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오래 전부터 그의 머리속에서 악곡의 구성 등이 짜여져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세번째 트랙 I Can Dig It Baby 는 이미 자코 사후에 공개되었던 Rare Collection 에서도 소개되었던 음악이다. 자코의 첫번째 레코딩 세션 곡이었다. 소울 기타리스트이며 가수인 Little Beaver 의 음반에 Nelson "Jocko" Padron 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하여 단 한 곡에서만 베이스를 연주했는데 그 곡이 바로 이 I Can Dig It Baby 이다. 8비트로 분절되는 오른손 핑거링이 쫀득쫀득 곡의 리듬에 달라 붙는다. 일렉트릭 베이스의 매력을 잘 들려주는 동시에 자코의 지문과도 같은 핑거링의 초기버젼을 느껴볼 수 있다.

다섯번째 트랙 Continuum 은 자코의 데뷔앨범에 담겨있는, 그가 열 일곱 살에 만들었다고 하는 아름다운 곡이다. 플렛리스 베이스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이 잘 담겨있는 명곡이다. 자코의 베이스 연주가 위대한 이유는 단지 그의 테크닉이 훌륭해서만은 아니다. 이 곡은 자코의 연주 특징들이 골고루 잘 담겨있는 음악이다. 그가 사용하는 다양한 핑거링 포지션, 코드를 적절하게 재구성하는 감각, 적재적소에 사용되는 악센트와 어조, 풍부하고 예쁜 멜로디가 프레이즈마다 어떻게 이어지고 연결되는지를 감상할 수 있다.

자코의 이름이 제대로 표기되기 시작했던 팻 메스니의 데뷔 앨범 Bright Size Life 에서도 한 곡이 골라졌다. 여섯번째 트랙 Midwestern Nights 가 그것이다. Bright Size Life 의 모든 곡들은 자코와 팻 메스니의 연주를 양쪽 채널로 분리하여 녹음했는데 덕분에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왼쪽 스피커로 자코의 베이스 연주만 분명하게 들을 수 있다. 곡의 후반부에 반복되는 베이스의 멜로디는 여운이 짙고 음색은 깊다.

그 외에도 조 자비눌, 웨인 쇼터에게 발탁되어 몸담고 있었던 웨더레포트에서의 명연주 Birdland, 팻 메스니, 라일 메이즈, 마이클 브렉커, 돈 앨리어스와 함께 조니 미첼의 밴드로 참여했던 시절의 연주가 담긴 Goodbye Pork Pie Hat, The Dry Cleaner From Des Moines, 평소 공연에서도 즐겨 연주했던 비틀즈의 Blackbird, 바하의 곡을 옮긴 Chromatic Fantasy 등이 수록되어있다.
베이스 연주자로서, 그리고 놀라운 재능을 가졌던 작곡가로서의 자코 파스토리우스라는 음악인을 흠뻑 느껴볼 수 있는 음반이다.









.

2003년 6월 12일 목요일

자코 anthology.


자코 파스토리우스 앤솔로지가 발표될 것이라는 기사를 읽었을 때에는 수록곡 리스트를 보고 실망을 했었다.
자코가 죽은 후 계속 나오고 있는 그의 음반들은 너무 심하다. 아무리 장사도 좋지만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나빴던 기억은 Golden Roads 라고 하는, 일본에서 출시했던 자코 음반이었다.
이 연주자의 것이라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모아두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제외하고,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 그 음반이 무슨 가치가 있다는 것일까, 하였다.

게다가 자코가 살아있을 때에, 그가 만들었던 음악이 자신들이 원했던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음반을 내주지 않았던 회사가 워너브러더스였다. 이제는 그 회사에서 '천재 베이시스트' 라는 문구를 써가며 두 장 짜리 편집앨범을 팔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결국은 이 음반을 사고 말았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고 났을 때에 기분은 좋아져있었다.
새로운 곡은 하나도 없었지만 처음 공개된다고 하는 홈레코딩 버젼은 재미있었다. 그 외의 수록곡들도 자코 사후에 나왔던 다른 음반들에 비해 성의있게 준비한 것 같았다. 두 장의 시디에 모아놓은 스물 여덟 곡의 음악들은 순서도 잘 갖추어놓았다. 그동안 영상으로만 접해볼 수 있었던 몇 곡도 깨끗한 음질로 들어볼 수 있다. 다시 들어보아도 새삼 어떻게 이런 연주를 하고 이런 작곡을 했을까, 감탄하게 되었다.

다만 여전히 한 가지, 음질은 깨끗해졌을지 모르지만 시디 전체가 어딘가 답답한 음색이었다. 프레스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이런 식이라면 다음부터는 라이센스를 사지 않는 편이 좋겠다.






.

메탈리카


주문했던 음반들이 오전에 도착했다.
몇 가지 필요한 악보들을 정리하고 배달되어 온 상자를 뜯어보았다.
새 시디들의 포장을 벗기고 음악을 듣는 순간이 즐겁다.

메탈리카의 신보, 좋았다.
시디는 하드디스크에 음원파일로 옮겨뒀다. 함께 담겨있던 비디오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가 내리는 눅눅한 초여름날, 저녁 늦게까지 메탈리카를 들었다.

리뷰나 비평들은 이 음반을 나쁘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 것들은 듣고 읽을 필요가 없는 것 같다.

메탈리카 덕분에 아직 듣지 못한 새 시디들이 남아있다. 아직 들어보지 못한 음반들을 책상 위에 겹쳐 올려두고 있는 기분도 좋다.

라이센스 음반을 구입하는 경우 그 안에 끼워진 우리말 속지는 여전히 한심하다.
그것은 음악을 소개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다 할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음악에 대한 논의도 아니고 광고도 아니다.
그냥 유치하기 짝이없는 일기와 비슷하다.

"커크해밋의 날카로운 피킹에 쓰러진 많은 사람들은 주작의 기운이 자욱한 무덤의 평원을 이루었고..."

라는 따위의 어투와 문체를 보고 그만 그 종이를 꽉꽉 구겨서 쓰레기통을 향해 던졌다. 그러나 쓰레기통에 한번에 들어가지 않는 바람에 굳이 일어나 그것을 다시 집어서 버려야 했다.



.

2003년 6월 10일 화요일

새벽.


하기 싫은 연주였다.
재미있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새벽에 국도를 달리다가 잠시 차를 세웠다.
커피를 한 잔 사고,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커피를 식혀 마셨다.
차갑고 습한 공기가 코에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면서, 불평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

2003년 6월 5일 목요일

빅터 베일리의 베이스.


빅터 베일리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1년이 넘도록 분실한 베이스에 대한 광고를 올려두고 있다. 휴스턴 공항에서 분명히 체크를 하고,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했는데 베이스가 없어졌다고 했다.

그가 베이스를 되찾을 가능성은 없어보인다. 미국의 국내선 항공사에서는 그런 사고가 흔히 일어난다고 들었다.

오랜 후에 이베이 같은 데에서 저 악기가 나오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고.



.

2003년 6월 3일 화요일

창피했다.

불규칙한 생활이 계속되고 있었다.
하루 한 끼 정도 먹고 잠은 계속 못잤다.
뒤엉킨 생활로 날짜를 가늠하지 못했던 날도 있었다.
그 결과를 오늘 제대로 맛봤다.

밤 열 시에 시작해야 하는 일인데, 오후 여섯 시에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알람을 맞춰두고 두 시간만 잔 다음 일어나려고 했었다.
갑자기 벼락을 맞은듯 깜짝 놀라서 깨어났더니 열 시 십 분이었다.

일하러 가야할 곳은 여의도였다.
아무거나 챙겨입고 걸치고 신고 달음질쳤다.
전화를 걸어서 방금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다는 말을 할 때엔 정말 죽고 싶었다.
열 한시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그곳에 들어섰을 때에 내 얼굴에 한꺼번에 시선들이 꽂혔다.

다행히 그곳 사람들의 배려로 시간이 조정되었고, 한 시간 늦게 시작하여 연주를 마쳤다.
동료들에게 미안하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말 창피했다.
오늘 일로 내 생활을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








.

2003년 5월 16일 금요일

조카.


동생의 아들은 세 살이 조금 안된 나이이다.
지금보다도 더 어릴때부터 내 집에 올때마다, 조카는 내가 베이스를 치고 있는 것을 구경했다.

요즘은 우리집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앰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끊임없이 소리를 내줄 것을 요구한다. 앰프에 연결하지 않으면 짜증도 냈다.
번거롭긴 하지만 앰프에 악기를 연결하고 둥둥둥 베이스를 쳐주기 시작하면 흐뭇한 표정으로 춤을 추다가, 이내 관심없어하며 자기 할 일을 한다.


.

2003년 5월 15일 목요일

경천 형님.


내 하드디스크에 경천 형님의 사진이 몇 장씩 있는 이유는, 그 연세의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이 형님은 일단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 즉시 적당한 자세를 잡고 포즈를 취해주기 때문이다. 촬영한 사진을 꼭 보여달라고 하지도, 인화해서 가져다 달라는 말씀도 없다.
주소록에 쓰일 얼굴 사진만 필요로 했던 것인데, 이 사진을 찍을 때에도 자연스럽게 촬영을 유도하셔서 다 함께 크게 웃었다.
연달아 몇 장을 찍은 다음 내가 카메라를 가방에 넣으려니까, 이렇게 말했다.

"밖에 나가서 더 찍을텨?"





.

2003년 5월 12일 월요일

일이 된 음악.

친구들과 연습을 하며 서로의 이마를 맞대고 음악을 듣고, 의논하고, 고민해보았던 것이 언제적 일이었을까.
땀냄새 맡으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연습했던 일, 공연을 준비했던 일들이 아주 오래 전 기억이 되었다.
나는 연습을 싫어하지 않는다. 긴 연습을 즐거워할 때가 오히려 많다.
하지만 에너지가 없는 사람들과의 연습은 즐겁게 참여할 수가 없다.
의논할 것도 없고 뭔가 새롭게 만들어갈 것도 없고, 심지어 더 잘 하면 안되고, 무엇보다도 매일 똑같은 연주를 반복 훈련하려는 사람들과 연주하는 것은 최악이다.

그런데 이제 음악은 일이 되었고, 언제나 즐기면서 좋아만 하면서 할 수는 없게 되었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연주와 연습들이 나에게 좋은 경험들이 되도록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아니면 너무 의미가 없다.




.

2003년 4월 28일 월요일

알아서 듣고 해와라.


나는 처음부터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과 함께 연주를 시작했다.
지금도 나이든 분들과 연주를 하게 될 때가 많다.
이런 경우 크게 두 가지 성향의 음악선배들을 만나게 된다.

첫번째는 악보를 잔뜩 늘어놓는 분들이다.
한 꾸러미의 악보를 집어주면서, '다 복사할 필요는 없고, 뭐 몇 장 정도 빼고 한번씩만 살펴보고 와라' 라고 한다.

두번째는 카세트테잎을 주는 분들이다.
'이것만 우선 듣고 알아서 해와라'

사실은 '듣고 딴다'라는 표현을 쓴다. 그분들의 용어로 그 말의 뜻은 음악을 듣고 코드진행과 연주할 음표들을 외거나 적어오라는 의미이다.
요즘은 이런 경우에 나는 난처해진다.
이제 더 이상 집에 카세트 테잎 플레이어가 없기 때문이다. 오래 사용했던 플레이어가 고장난 후에 다시 구입할 생각이 없어서 그냥 뒀던 것이다.
이렇게 카세트 테잎을 받게 되면 별 수 없이 나는 자동차 안에서 테잎을 틀어놓고 오선지와 연필을 쥔채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노래의 제목을 적어서 음악파일을 다운로드 하거나 음반을 구해보아야 한다.
오래된 곡이나 대중적이지 않은 곡들은 그나마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도 없고 음반을 구하기 쉽지 않을 때도 많다.

게다가, 이렇게 테잎을 받아모면 거의 대부분 그 음질이 아주 나쁘다. 나와 같은 연주자들에게 테잎을 주기 위해 복사를 거듭했을테니 음질이 좋을 수 없다. 어쩌면 처음부터 소스 음원이 후졌을 가능성도 높다. 피치는 엉망이고 인트로나 곡의 마무리 부분은 아예 뚝 잘려져있기도 하다.

한번은 용기를 내어 시디를 주실 수는 없느냐고 물었다.
"응? 없어." 라고 했다.

위의 두 가지 경우에 들지 않는 음악선배도 있다.
곡의 제목만 겨우 알려주고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나중에는 그것이 오히려 정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연주하려면 최소한 이런 이런 음악은 듣고 있어야지, 라는 생각일 것이다. 그래서 점점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음악이라고 해도 일 때문에 구입하는 시디들이 늘어간다.




.

2003년 4월 21일 월요일

편지.


요즘 재미있게 읽었던 책은 이황과 기대승의 편지들을 모아놓은 '고봉집'의 새 번역본이었다.
남의 편지들을 읽는 것이 원래 재미있는 것이지만, 이 두 학자의 편지들은 정말 재미있었다.

그들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지만 나도 꾸준히 편지와 이메일 등을 차곡차곡 모아두고 있는 편이다. 생각이 나서 그것들을 다시 읽어보았는데... 정말 쓸데 없는 말들만 가득했다.




.

2003년 3월 16일 일요일

마커스 밀러.

마커스 밀러는 그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는 팬들의 질문에 꾸준히 답을 해주고 있다. 아래에 정리한 것은 그 질문과 대답들 중에서 베이스에 관련된 것들을 모아본 것이다.

마커스 밀러의 베이스는 그가 1977년 2월에 구입한 것이라고 하고, 시리얼 넘버는 S732742 이다. 애쉬 바디에 메이플 네크이고 네크 픽업 쪽에는 늘 픽업커버를 붙여두고 있다. 로저 새도우스키가 그의 재즈 베이스에 프리앰프와 바르톨리니 픽업을 달아줬다. 브릿지는 Bad-Ass 의 것으로 교환해줬다. 그외의 다른 부분들은 처음 그대로이다.

1. 로즈우드 지판과 메이플 지판의 차이점에 관하여.
"메이플은 에보니, 로즈우드 보다 좀 더 센 느낌입니다. 메이플 네크의 소리는 다른 것들에 비해 더 강하게 됩니다. 나는 메이플 지판이 아니었다면 내 엄지손가락 주법의 소리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핑거링의 경우라면 나는 조금 더 부드러운 나무, 보통은 로즈우드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한 개의 베이스만 사용하고 있고, 메이플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2. 픽업커버에 관하여.
"잭슨 파이브의 저메인 잭슨이 베이스에 두 개의 픽업커버를 모두 달고 있는 것이 멋있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내 베이스에도 픽업커버를 붙여뒀습니다. 결국 연주할 때에 톤의 변화를 주기 위해 브릿지 쪽의 것은 떼어냈지만 네크 쪽의 것은 그대로 부착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 픽업 가드가 없으면 연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슬랩 연주를 할 때에 손뼘으로 픽업커버를 동시에 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애쉬바디의 펜더 재즈베이스를 고르게 된 이유.
"내가 그 베이스를 구입했던 것은 겨우 15세 때였습니다. 나는 무슨 나무로 악기가 만들어져 있었는지 알지도 못했습니다. 단지 펜더 베이스를 원했을 뿐이었습니다. 그 당시 선택할 수 있는 베이스는 세 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깁슨, 리켄베커, 그리고 펜더였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위해서는 펜더 베이스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아마도 그 베이스가 열대나무인 발사우드 (balsa) 같은 것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개의치 않았을 것입니다.
메이플 우드로 만든 네크에 대해서는, 나는 그것이 그냥 보기에 멋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네크는 브라운 빛이었는데, 나는 메이플의 색상이 뭔가 다르게 보여지는 것이 좋았습니다. 베이스를 가진 다음에는 나는 그저 계속 연주하고 또 연주했습니다. 마침내 내가 가지고 있는 베이스에 잘 맞는 스타일을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4. 사운드 장비에 대하여.
"장비는 소박한 편입니다. 아무런 이펙터를 사용하지 않은 적도 있었습니다. The Sun Don't Lie 앨범에 있는 Panther 라는 곡에서는 재즈베이스의 내츄럴 사운드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지금은 EBS 앰프와 캐비넷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랙에는 Distressor 콤프레서가 들어있는데 이것으로 힘이 많이 들어갔을 때의 사운드를 깎아주고 있습니다. Lexicon 이펙터 프로세서로 필요한 경우에 약간의 리버브를 사용합니다. 경우에 따라 약간의 디스토션과 페이즈쉬프트 등의 효과를 위해 페달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용하는 페달들은 MXR 90 Phase, Mutron Envelope Filter, EBS IQ Filter, EBS Multi Drive, Dan Electro Overdrive, EBS Octaver 입니다."

5. 몇 개의 베이스를 가지고 있을까?
"적어도 쉰 개는 될 것입니다. 하지만 플렛이 있는 사운드가 필요한 작업을 위해서는 거의 77년 펜더 재즈베이스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플렛리스로는 새도우스키와 포데라, 그라파이트 모듈러스의 것을 번갈아 쓰고 있습니다."

6. 오늘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어떤 베이스를 고르겠느냐는 질문.
"오늘날 수 많은 새로운 베이스들은 나에게는 너무 하이테크의 소리를 내주는 것 같습니다. 전기의 힘으로 낮은 음을 과장해주는 매우 얇은 사운드들입니다. 반면에 이 베이스들은 솔로를 할 때에는 가끔씩 너무 두꺼운 음이 나거나 하는 오래된 베이스들과 달리, 훌륭한 소리를 내줍니다.
그래서 나는 오래된 악기의 컨셉으로 만들어진 새 버젼에 자연히 끌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모델의 펜더 베이스, 혹은 재즈 베이스 스타일의 새도우스키 같은 것들입니다.
재즈베이스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다른 베이스들도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Moon, F-Bass, Fodera, Ryder 같은 것들입니다.
어떤 경우에서든 가장 중요한 것은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베이스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결론은, '내 베이스의 안과 겉을 두루 알고 있어야 하고 가능한 어떤 상황에서도 연주해낼 수 있는 것' 이 중요합니다."

7. 펜더 프레시젼과 재즈베이스의 차이점에 관하여.
"재즈베이스의 네크는 헤드 쪽으로 갈수록 가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나처럼 손이 작은... 그러니까 내가 맨 처름 베이스를 구입했을 때였던 열 다섯살 무렵의 어린 나이인 사람들처럼 작은 손을 가진 이들에게는 그 가늘어지는 부분 덕분에 네 개의 플렛 근처를 다룰 때에 편할 수가 있습니다. 프레시젼 베이스에는 한 개의 분리된 픽업이 있고 재즈베이스에는 두 개의 픽업이 있습니다. 재즈베이스는 보다 다양한 음색을 더 얻을 수 있습니다. 플렛리스 연주자들이 좋아하는 브릿지 부분의 픽업 사운드도 낼 수 있고 프레시젼 소리에 가까운 네크쪽 픽업 사운드도 낼 수 있습니다. 두 가지를 조합하여 사운드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두 개의 픽업을 모두 최대로 두고 연주하고 있습니다. 가끔씩 조금 더 명확한 소리가 필요할 때에는 네크 픽업을 약간 줄여줍니다.
재즈베이스의 독립된 픽업이 가지고 있는 한 가지 결점이라면 전기잡음입니다. 두 개의 픽업 중 다른 하나를 줄이거나 했을 때에 잡음이 발생합니다. 그렇게 되면 엔지니어에게 불평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브릿지 픽업만을 사용할 경우가 생기면 엔지니어에게 잡음이 나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곤 합니다. 만일 그가 심하게 불평한다면, 나는 노래가 시작될 때에는 두 개의 픽업을 모두 올려두고 출발했다가 노래가 시작된 다음 재빨리 한 쪽을 줄여버립니다. 일단 음악이 시작되면 아무도 잡음이 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것입니다.
재즈베이스와 프레시젼 모두 훌륭합니다. 두 가지 모두 용도가 많은 베이스입니다. 실제로 자코 파스토리우스는 프레시젼 네크에 재즈베이스 바디를 붙인 하이브리드 베이스를 직접 만들기도 했습니다."

8. 값 비싼 베이스에 대하여.
"내 의견으로는, 아무리 비싼 베이스, 아름다운 나무, 보다 긴 서스틴, 수 많은 픽업세팅 등을 구입한다고 해도 그것이 연주자와 음악에 적합하지 않는다면 다 소용없는 짓입니다. 실제로 예를 들면, 나와 내 드러머는 내가 사운드 체크를 해봤던 모든 베이스들을 다 내다버리기로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항상 사운드 체크를 위해 새로운 베이스들을 쳐보고 있는데 그것들 대부분이 최소한 2500 달러가 넘는 가격의 베이스들입니다. 그런 베이스들은 대부분 과학적인 프로젝트와 같은 소리를 내주고 있습니다. 두 개 정도는 어떤 특별한 노래에 어울리긴 하겠지만 대개는 가벼운 사운드들입니다.
모두 가줘서 연주할 수 있는 좋은 솔리드 바디의 베이스를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쨌든 함께 연주하는 밴드에 잘 어울려야 하는 것이지, 악기 상점에 잘 어울리는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만일 악기점 점원과 잘 알고 지내는 사이라면 매일 여러 베이스들의 소리를 들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한 번 쳐본다고 하고 집에 가져가서 녹음을 해본 뒤 그 베이스들의 톤을 잘 들어볼 수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녹음해서 들어보는 것은 앰프를 통해 직접 들어보는 것과는 다릅니다.
튜닝이나 제조상의 질적인 문제가 있는 값이 싼 베이스들은 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베이스의 값이 5000 달러나 될 필요는 없습니다. 나머지 돈은 아껴서 좋은 프리앰프라든지 듣고 연습할 수 있는 시디 등을 사면 됩니다."

9. 로저 새도우스키와의 인연.
"로저 새도우스키는 기타 엔지니어로 시작했습니다. 뉴욕의 스튜디오 연주자들이 악기를 수리하거나 플렛을 손보거나 픽업을 새로 달거나 할 때에 로저 새도우스키에게 악기를 맡겼었습니다. 어느날 그가 나에게 내 베이스의 브릿지를 바꿔보라는 제안을 했었습니다. 그가 소개한 것은 BADASS 브릿지였습니다. 그는 또 내 베이스에 고음과 저음부분에서 부스트를 내줄 수 있도록 온-보드 프리앰프를 달아보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내 베이스에 바르톨리니 프리앰프를 달아줬습니다. (1981년)
그 즈음 로저 새도우스키는 베이스와 기타들을 직접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 그가 내 베이스에 달아줬던 바르톨리니 픽업 사운드와 매우 유사한 소리를 내주는 자신만의 아웃보드 프리앰프 박스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온보드 프리앰프는 아웃보드 프리앰프와 똑같은 기능을 해줍니다. 그것의 역할은 베이스에서 내는 소리가 앰프와 스피커에 도달하기 전에 그 소리를 다듬어주는 것입니다.
프리앰프라는 것은 다양한 것들을 해줄 수 있습니다. 아웃보드 프리앰프는 앰프에 도달해야할 신호가 약한 베이스의 소리를 증폭해줄 수도 있고, 이퀄라이저를 추가하거나 하이와 로우의 사운드를 각각 적합한 서로 다른 앰프와 스피커로 보내줄 수도 있습니다. Tri-Amping 이라고 하는, 하이, 미들, 로우 사운드의 베이스 음색을 각각 서로 다른 세 개의 앰프에 보내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사용하는 온보드 프리앰프는 단지 하이와 로우 사운드를 보강해주고 있습니다. 스튜디오에 가서 그냥 보드에 플러그를 꽂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나는 온보드 프리앰프를 마음에 들어하고 있습니다."

10. 베이스 줄을 교환하는 시기에 대하여.
"여름에 공연을 하러 다니고 있을 때에는 4 ~ 5일 마다 줄을 갈아줍니다. 다른 계절에 공연할 때에는 열흘 마다 갈아주는 것 같습니다.
집에서 스튜디오 작업을 할 경우에도 4~5 일 마다 줄을 교환하고 있습니다.
나는 손에 땀이 비교적 적게 나는 편이어서 줄의 생명이 오래가는 편입니다. 지금 베이스의 소리를 한 번 들어보고, 베이스 소리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 줄을 갈아줄 때가 된 것입니다. 앤소니 잭슨과 같이 언제나 새로 감은 줄의 소리를 좋아한다면 모를까, 매일 교환하는 것은 불필요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줄을 가능한 싸게 구입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나는 줄을 교환한 다음 이틀 정도 지났을 즈음의 소리를 좋아합니다.
뉴욕에서 많은 세션을 하고 있었을 무렵에, 나는 앤소니 잭슨이 매번 세션을 할 때마다 줄을 풀어서 버린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가 버린 '오래된' 줄을 수집하려고 했었습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 줄들은 완벽하게 좋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줄 값은 언제나 비쌌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나는 앤소니 잭슨이 하루 쓰고 버리는 줄을 구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줄을 풀어버릴 때에, 늘 커터로 줄을 끊은 다음, 아예 내다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어찌나 화가 났던지... "

11. 줄을 물에 끓여서 사용해본 경험에 관하여.
"요즘은 줄을 삶거나 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늘 그렇게 해왔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줄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었으니까요."

12. 베이스 줄의 텐션에 대하여.
"베이스 줄의 텐션에 대해서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프리앰프라는 것이 줄의 높이나 줄과 픽업과의 간격에 관한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결국 줄의 텐션같은 것도 자신에게 잘 맞도록 해두고 쓰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

이 글은 2003년에 인터넷을 보며 번역, 의역해뒀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복사를 하여 이곳 저곳에 옮기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마음대로 편집하여 쓰기도 하고, 자신의 블로그에 마치 자신이 쓴 것처럼 올려두기도 했었다.
남이 멋대로 옮겨뒀던 곳에서 이 글을 발견하고 다시 읽다가 문장이 너무 심한 것은 새로 고쳐서 다시 기록해뒀다. (2010, 10월)

2003년 3월 11일 화요일

크리스챤 맥브라이드.


이 사람은 어느 인터뷰에서였는지 아니면 글에서였는지 자신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재즈의 전통과 미래를 잇고 있다."

겸손하지 않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다. 매우 수긍할 수 있다.

그의 최근 앨범 Vertical Vision 은 꽤 좋았다.
정말 이제부터의 재즈음악은 이렇게 되어가야 좋은 것 아니냐, 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이 음반을 구입하면 시디 속에 선물이 숨어있다. 음악이 담긴 비디오가 한 편, 그리고 자신의 앨범을 설명하는 비디오가 한 편 들어있다. 시디플레이어에서 빼내어 컴퓨터의 드라이브에 집어 넣으면 볼 수 있다. 성의있다는 느낌도 들고 기술에 실시간으로 잘 반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홈페이지 역시 친절하게 잘 꾸며져 있다.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사람들이 구경할만한 것들이 세세하게 잘 담겨있다. 쓸모없는 것들 음악 외의 가십성 글들은 없다. 1972년생, 젊고 노련하며 대단한 테크닉을 지닌 연주자의 홈페이지 답다.

http://www.christianmcbride.com/index.html




.

2003년 3월 8일 토요일

방송이 싫을 때.

방송은 어차피 그런 용도로 쓰이는 것인가 보다, 할 때가 있다.
선동의 기능, 교육과 지시의 기능, 여론의 기능, 오락의 기능 등으로 시작했겠지만...
이제는 전파를 낭비하는 기능으로 쓰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라디오 녹음도 TV 녹화도 모두 마찬가지.
그런 것에 출연하면 자주 개운하지 않은 기분으로 일을 마치게 된다.
사기치는 것에 조력한 기분이 든다.
이것은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닌 것 같고...

한편으로는 그것이 대중의 수준을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중의 눈높이가 그 정도이니까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은 다른 것에 신경쓰며 출퇴근을 하면 되는 것인지도. 사기이거나 기만이거나 간에 광고와 돈과 사이드 이펙트만 있으면 그게 어디인가,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2003년 2월 25일 화요일

연주자의 시작.


기타리스트 경천 형님과 긴 얘기를 나눴던 적이 있었다.
술은 없이, 커피만 마시며.

"그때 동네의 중국인이 그만 의처증이 생겨서, 젋고 예쁜 아내를 간수하지 못하겠던지... 어느날 갑자기 마누라를 데리고 대만으로 가버렸지. 그때까지 나는 드럼을 쳐보겠다고 맨날 북을 두드리다가 그 중국인이 버리고 간 전기기타를 처음 만져보게 되었던 거야. 그게 시작이었지 뭐. 무슨 음악적인 계기 같은 것은 없었지."

그의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이 잘 연결되지 않았지만, 편집이 덜 끝난 영화를 보는 듯 흥미진진했다. 경천 형님은 지금도 연습을 많이 하신다. 불 꺼진 어두운 무대 위에서 그 분 혼자 연습하는 것을 구경한 적이 많다.




.

2003년 2월 20일 목요일

Jaco.


맨 처음 그의 음악을 들었던 것은 아주 오래 전 어느 봄날, 나른한 기운이 가득했던 오후였다.
그 목요일 오후에 나는 처음 그의 연주를 들었던 것이다.
그 후 십여년이 지나는 동안 여전히 내가 가지고 있는 음반들 중 그의 연주가 담겨있는 것이라고는 팻 메스니의 첫 앨범 뿐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자면 맨 처음 그의 음악을 듣게 되었을 때에 나는 레코드점으로 달려가 그의 음반들을 사왔어야 좋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어쨌든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고의로 그의 음악을 듣지 않으려 했었다.

80년대 이후 많은 베이스 연주자들의 연주를 듣다가 보면 어느 특정한 시기에 그들 모두가 비슷한 습관을 지니게 된 것처럼 비슷한 프레이즈를 써먹고 있는 것을 알게 될 때가 있었다.

앤소니 잭슨의 말이 생각난다.

"자코 이후의 수 많은 베이스 연주자들은, 미안하지만 나를 포함하여, 모두 자코의 클론이라고 여겨진다. 이제 누가 그의 벽을 깨고 넘을 수 있을까?"

최근에 와서야 나는 그의 시디를 모아놓고 열심히 듣고 있게 되었다.
이제는 자코보다 더 뛰어난 테크닉을 지닌 베이스 연주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그래봤자 모두 다 비슷 비슷하다. 자코의 위대함은 단지 베이스줄을 튕기는 것에 있지 않다. 그가 작곡한 곡들을 진지하게 들어보아야 한다. 실제로 나도 모르게 공손한 자세를 하고 음악을 들었던 적도 있었다.


.

2003년 2월 3일 월요일

음악.

어린시절에 빠져들었던 음악들은 나머지 평생 동안 좋아하게 되는 것일까.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금지곡들도 많았었고, 금지곡이 아니라고 해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음반들이 많았던 시절, 음반 한 장을 위해 작전을 세우고 조사를 하고 음반가게를 뒤지며 듣고 싶은 음악들을 찾아다녔던 기억이 많다.

그때의 음악들을 이제는 손바닥만한 시디로 손쉽게 구해 듣고, 수천 곡을 하드디스크에 담아 들을 수 있다. 휴일이라면 종일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음악만 들을 수도 있다.

그런데 아무리 사정이 좋아졌다고 하여도, 열악한 오디오 기기를 껴안고 처음으로 체험하는 모든 소리들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겠다는 듯 몰입할 수 있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음악을 한다며 돌아다니다보면 자주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을 사람들을 마주치게 된다.
한 번 만나면 두 번 다시는 상대하고 싶지 않고, 나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신경질이 나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있다.

그러나, 절대로 용서가 되지 않던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도 가끔씩은 마음 한쪽이 흐뭇해질 때도 있다.
그들도 어느 시절의 어느 순간들을, '빽판'을 껴안고 보물같은 음악에 빠져서 보냈던 기억이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좋고 나쁜 사람이란 없는 것 같고, 그냥 모두 다 친구같을 때가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