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9일 화요일

강릉, 강문, 초당동


 집을 떠나 호텔에서 하루 머무는 일정이 정해졌을 때 당연히 공책과 펜을 가지고 가기로 마음 먹었다. 숙소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가져가지 않았더라면 후회할 뻔 했다.

장거리 운전과 긴 리허설 때문에 피곤했었는데도 호텔 방 안의 책상에서 글을 쓸 때 눈이 아프지 않았다. 책상용 스탠드 조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내 방에서는 밝게 불을 켜놓아도 그림자가 생기고, 한 두 장 종이를 채우면 눈물이 나며 눈이 따갑고 아프다. 밝기와 빛의 색이 괜찮은 조명 한 개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방에서 내다 보이던 풍경은 넓은 논이었고 해송들이 군데 군데 모여 앉아 있었다. 어릴 적부터 그곳에서 그 소나무들을 보아왔는데, 언제나 흐트러진 차림으로 기대거나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강릉이라면 바다 보다도 늘 소나무들이 좋았었다.

지금은 잘 포장된 도로가 길게 늘어져 있어서 옛날의 해변 모습은 아니지만 나는 그곳을 한 여름에 맨발로 걸어다니기도 했었다. 바다에서 나와서 대충 샤워장 물을 끼얹고, 젖은 옷과 몸 그대로 호수를 끼고 돌아 걸으면 한 여름 볕과 바닷가 바람에 어느새 옷이 바짝 말라 있었다. 높은 방에서 창 밖을 내려다 보다가, 대충 육십여년 전에 저 길을 걷고 있었을 내 아버지를 한 번 상상해 보았다.




강릉에서.


 강릉에 일요일에 갔다가 월요일에 공연을 하고 돌아왔다. 출연하는 팀들이 많았고 긴 시간이 필요한 공연이었다. 일요일에 리허설을 하기 위해 강릉에 가서 초당동 해안길에서 하루를 묵었다.

강릉 공연에는 펜더 재즈를 가지고 갔다. 이번에는 낮은 D음을 쓸 곡이 없었기 때문이었기도 했고, 몇 달 전 이 악기의 상태가 나빴던 것을 그동안 잘 고쳐놓았기 때문에 큰 공간에서 소리를 확인하고 싶었다. 공연을 만든 방송사 쪽에서 무대 위에서 입을 의상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을 때 나는 십 년 전에 검은색 반팔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공연했던 사진을 골라서 보내줬다. 그 옷차림은 이렇다 할 색감이 없으니 펜더 재즈 베이스의 선버스트 바디가 의상의 일부로 보여지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페달은 MXR 프리앰프/드라이브 한 개를 가져갔다. 페달 보드를 들고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베이스의 소리가 자연스럽게 들리기를 원했다. 그나마 가져갔던 페달은 두 곡에서만 썼다. 


발왕산 동쪽 해안 도시의 기후는 종잡을 수 없다. 경포 호숫가에 차려진 무대는 저녁이 되어 기온이 내려가도 습도가 높았다. 악기를 잡으면 나무에서 물기가 배어나왔다. 바람도 불었다.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베이스 줄과 손가락 끝을 괴롭게 하더니, 결국 또 손톱 끝이 조금 들려버렸다.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몰라 피크를 두어 개 챙겨 갔었다. 내 손가락 끝은 언제나 말썽이다. 소리는 좋았다. 넓은 장소와 기온과 습도, 그리고 관객들 덕분에 공연 내내 모든 음악들의 소리가 좋았던 것 같았다.



2022년 7월 13일 수요일

병실에서

 

전날 저녁부터 새벽, 퇴원 수속을 할 때까지 환자는 계속 난동을 피웠다.

나는 꼬박 서른 여섯 시간 동안 깨어있어야 했다. 음식을 먹으면 졸음이 쏟아질까봐 굶었다.

거울을 보면 내 얼굴에서 잔주름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을 알게된다. 나는 나이 들었고 이제 늙기 시작한지 오래다. 내가 나이 든 것을 느낄 땐 내 부모가 늙어있는 사실이 뒤따라 떠오른다.

올해부터 내 모친은 부쩍 늙었다. 엄마를 만나면 더 지쳐보이는 어깨와 눈빛이 먼저 보인다. 엄마가 걷는 모습을 보면 끝나지 않은 고단함의 무게를 간신히 버티며 위태롭게 다른 발을 앞으로 옮기고 있었다. 갑자기 그의 주변에만 중력이 늘어난 것처럼, 작아진 몸이 무거워진 공간을 어쩔 수 없이 견디는 모양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내 아버지 곁에서 하루 혹은 이틀을 시달리며 보낸 뒤에, 내 모습도 잠시 엄마의 모양처럼 보였다.

새벽에 예상했던 부친의 큰 난동이 벌어졌고, 나는 그동안 경험이 쌓인 덕분에 잘 대처할 수 있었다. 노인은 소란스럽고 추한 언동, 자기에게 상해를 입힐 수 있었던 심각한 소동을 벌였다. 내가 오염된 환자복과 시트를 처리하고 돌아왔더니 노인이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소리를 지르고 발길질을 하며 에너지를 썼으니 노곤해진 모양이었다.

퇴원한 뒤에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는 길을 달려 부친을 집에 데려다 놓았다. 내 모친에게 다시 곤란한 어떤 것을 떠맡기는 기분이 들었다. 모두의 삶은 고단한데, 특별히 어떤 존재는 타인의 삶을 갉아 먹으며 생을 유지한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여섯 시간을 자고 깨어났다. 다음 주에 다시 부친을 데리고 진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야하는 날짜를 달력에 표시해두고, 커피를 아주 진하게 내려 마셨다.


.

2022년 7월 4일 월요일

Souverän M605 Tortoiseshell Black.

 


무려 5월 말에 해외 필기구점에서 주문했던 만년필이 도착했다. 값을 치른지 한 달 하고도 엿새 만이다.

올해의 'Special Edition' 으로,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잉크를 넣고 써보니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만족스럽다.

이 펜을 손에 쥐고있게 되기까지 사연이 많았다. 이쪽으로는 물정을 모르던 나로서는 생소한 경험들을 하기도 했다. 그 이야기들은 길지만 남들에게는 하찮은 일이어서 한번 죽 써보았다가 지웠다. 가지고 싶어했던 펜을 잇달아 두 자루나 샀고, 그것으로 앞에 있던 과정들의 피로는 사라졌다.

이 펜이 나오면서 펠리칸 만년필 매니아들이 입을 모아 배럴이 불투명하게 바뀐 것을 꾸짖기도 했다. 직접 만져보니 그들의 불평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백여년 동안 지속되었던 반투명한 잉크 뷰 챔버는 사라졌다. 피스톤 필러 방식의 펜이기 때문에 잉크를 넣을 때 제대로 충분히 잉크를 담았는지, 사용 중에는 잉크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졌다.

그런데 사람은 적응하기 마련이니까 나에게는 그게 대수로운 일은 아닌 느낌이다. 펜을 오래 쓰다보면 미세한 중량의 차이를 느낄 수 있게 되어 아마 잉크가 바닥나기 전에 새로 채우거나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쓸모 없는 상상도 해보았다. 

성능도 좋고 보기도 참 좋다. 택배를 받은 직후 나는 아내에게 미리 준비해둔 긴 변명을 말하기 시작했는데, 아내는 끝까지 들어주는 대신 '이제 새 잉크도 사기 시작하겠군.'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