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26일 월요일

연말.


여섯 해 전 어느 가을 저녁에 나는 저런 자세로 카페에 앉아있었다. 세상은 잘 못 되어질 일들이 없을 것 같았고 자고 일어나면 어제보다는 조금씩 더 행복해질지도 모른다고 근거 없이 믿고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하면, 다양한 면에서 저 당시와 반대이다.
마치 배당받았던 행복의 할당량을 먼저 사용해버려서 앞으로 더 좋아질 경우는 없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도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어느쪽이라고 해도 지루하고 권태롭다.

나는 그래서 새 해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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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23일 금요일

내 표정.


누군가가 찍어준 사진을 보면서 생각을 해보면 그날 그 공연 중에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이 난다. 항상 기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아주 자세히 기억나기도 한다.

저 사진 속의 장면에서는 깜박 잊고 고양이의 밥과 물을 새로 챙겨주지 않고 집을 나왔던 것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었다. 베이스 줄이 일주일만에 못쓰게 되도록 죽어버려서 신경질이 나있던 상태였다. 쓰고 있는 모자가 착용감이 거의 없고 따뜻하지만 어쩐지 뇌수술을 마친 환자처럼 보여서 우울하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저 날의 공연에는 정말 연주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나이 든 사람과 인사를 할 때에, 살짝 웃는데도 잘 구겨진 청바지처럼 자연스런 주름을 가진 분들을 만날 때가 있다. 웃음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늙어졌다면 평생 복을 만들며 살아온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런데 내 얼굴 표정은 언제 어디에서나 불만이 가득한 것 처럼 보인다.

2005년 12월 20일 화요일

즐거웠다.


"맞아, 원래 라이브라는 것은 이런 것이었어."라는 생각을 하게 해줬던, 즐거운 공연이었다.
분위기 때문에 내가 평소의 규칙을 깨고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셨다.
분명히 또 너무 많이 떠들었고 오버를 했을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피해했다.

김창완 형님이 말해줬다. "괜찮아, 가장 좋은 술 깨는 약은 후회야. 마셔."

오랜만의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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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음반 좋다.


이 달 초에 블루스밴드의 공연이 있었다.
그 공연을 나는 잘 하고 싶었다. 그래서 공연을 연습하던 동안 셔플과 블루스 음반들을 듣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음악들만 듣고 있느라 단순한 화성과 반복되는 멜로디들에 갇혀 폐쇄공포증에 걸릴 것 같았다.
이틀 전 산울림의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꼬박 일주일 돈안 산울림의 음악들만 반복해서 들었다. 악보를 그려뒀지만 모두 외고 싶었다. 스무 곡을 완전히 외기 위해 몇 십번씩 들었던 것 같다.

그런 이유로 빅터 우튼의 새 음반과 리차드 보나의 새 음반을 듣지 못하고 아이팟에 넣어둔 채로 벼르고 있었다. 공연이 모두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에 비로소 긴장을 풀고 이 음반들을 들어주리라 하고 있었다.

그랬다가 이 시간까지 이틀 동안 오디오 앰프가 난로처럼 뜨거워지도록 쉬지 않고 듣고 있는 중이다. 행복하다. 내 고양이는 그 난로 위에서 졸고 있다.

리차드 보나의 새 앨범 Tiki 는, 음악적인 감동으로 가득하다.
이미 그는 매우 대단한 연주자이지만 계속해서 발전 중인 것 같다. 그의 음악들에는 중독성이 있다. 지금까지 그의 음반들이 모두 다 그랬지만 한 곡도 뒤로 밀쳐둘 것이 없는 좋은 음악들로 채워져있었다. 매우 좋았다.
빅터 우튼의 새 음반 역시 놀라왔다. 이번에는 노골적인 자부심, 가족에 대한 헌신적인 애정 등이 약간 과도하게 담겨있다. 잘 만들어준 음반을 고맙게 듣고는 있지만 어쩐지 보나의 것과 비교해보면 이쪽의 것은 좋은 베이스 교본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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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19일 월요일

기분 좋았다.


나는 긴장했었다.
그러나 스무 곡의 노래들을 쉬지 않고 이어가면서 나는 즐길 수 있었다.
전날에 잠을 못 잤고, 아침 일찍부터 고된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났었다.
공연이 끝난 후에 피로하지 않았던 것은 긴장이 덜 풀려서였을까 아니면 즐겁게 연주했기 때문이었을까.

공연이 끝난 후 한쪽 구석에 편안하게 앉아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조여뒀던 정신을 느슨하게 해두려고 했다. 맥주와 샐러드를 먹으며 함께 연주했던 사람들과 잡담을 나눴다. 같이 즐겼던 관객들의 답례에 인사도 하고 웃고 떠들었다.
나에게는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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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 놀이.


깊은 잠에 빠졌었다.
평소 부족했던 잠을 보상받기 위해 하루를 날을 잡아 잤다.
역시 이런 것은 건강한 삶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많이 잤는데도 개운하지 않았다.

이를 닦고, 세수하고, 수건으로 얼굴의 물기를 닦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닥에서 봉투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고양이 순이가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그동안 거의 매일 내가 집을 비워두고 다녔기 때문에, 불쌍한 내 고양이는 혼자 저렇게 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많이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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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17일 토요일

혀 끝에 피가 맺혔다.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들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나에게만 어쩐지 기이한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초자연적이거나 기적적인 일들이 생기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그냥 뭔가 이상한 일들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늘어놓자면 꽤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막 기억나는 일 중에는 군대에서 부대배치를 받았던 직후, 누군가가 트럭 위에서 쇠파이프를 던지다가 그만 내 얼굴에 명중시켰던 일이었다. 다행히도 오른쪽 눈과 귀 사이에 맞았다. 얼굴이 많이 찢어졌었다. 피를 흘리고 있었다. 곧 치료를 받았고 붕대를 감은채로 며칠 고생을 했다. 만약 날아온 쇠파이프를 눈에 맞았다면 분명 실명했을 것이다. 귀에 맞았다면 지금쯤 나는 음악일은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기이하다기 보다는 천만다행이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기이하게 여겨진다. 나는 그 때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쇠파이프를 던졌던 사람이 정확하게 내 광대뼈 뒷쪽을 겨냥하여 명중시키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우연과 실수와 운이 잘 섞였던 것이리라.

군대에서 몸을 많이 상하였다. 얼굴의 반쪽만 괴상하게 부어오르는 증상도 겪었다. 이것이 발전되어 몇 시간 만에 온몸의 절반만 엄청나게 부어올랐다. 병원에 실려갔다. 아무도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아무런 치료도 조치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사흘 수에 그냥 정상으로 돌아왔다. 똑같은 일이 수 년 후에 또 있었다. 그 때엔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했는데, 아무런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또 언젠가는 늦가을에, 어느 산에 올라가 잠시 앉아서 쉬고 있을 때에 뱀 한 마리가 내 발 위를 지나간 적이 있었다. 게다가 그 뱀은 온몸이 하얀 백사였다. 처음 뱀의 존재를 느꼈을 때에 이미 뱀은 내 왼쪽 신발 위에 대가리를 올려두고 혀를 낼름거리고 있었다. 너무 너무 느리게 다른쪽 발 위로 이동하고 있는 동안 나는 온몸이 얼어붙어버렸다. 나는 뱀을 무서워하기 때문이었다. 식은땀이 났다. 그런데 내가 뱀을 무척 싫어했는데도, 그 순간 코 앞에서 내 발 위를 지나가고 있는 하얀뱀의 아름다움에 잠시 넋을 잃을 뻔 했다. 우아하고 편안해 보였다. 그 색감과 피부의 질감, 그리고 가느다란 소리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뱀이 내 곁을 떠나서 숲 사이로 사라져간 다음에도 나는 일어날 생각을 못했다. 가을 산바람에 섞인 냄새가 구수하다고 생각했다.
산을 내려와 사람들에게 얘기했더니 가을뱀은 모두 독사라고 하거나 발 위를 지나가는데도 물지도 않았다니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나에게 핀잔만 줬다. 게다가 하얀 백사였다고 말했을 때엔 더 이상 내 말을 믿으려 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겠지, 믿어줄 리가 있나. 너무 이상한 일이었잖아.

조금 전 새벽의 일이다.
어쩌다 보니 약속이 이상하게 되어서 두어 시간 동안 친구를 기다렸다.
겨우 만나서는 몇 분 이야기를 하고 금세 헤어졌다.
이미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그냥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주 들르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식당 아주머니가 얼굴이 창백해져서 어쩔 줄 몰라했다. 식당의 돈을 넣어두는 금고가 송두리째 없어져버렸다는 것이다. 신고를 받고 경찰이 왔다. 그 아주머니는 상황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서 경찰관에게 주고, 새벽 세 시 이후의 상황과 실내에 있었던 사람들의 인상착의를 설명해줬다.
그리고 그 식당을 나서자마자 담배를 한 개비 피웠고, 자동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어쩐지 혀 끝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 멀쩡했던 혀에 뭔가가 달라붙은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혀의 끝에 피가 잔뜩 맺혀서, 까맣게 부풀어올라있었다.
이것을 뾰족한 것으로 터뜨릴까 망설이다가, 그만뒀다.
혀는 입술처럼 혈관덩어리여서 피를 흘리기 시작하면 잘 멎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이런 일들이 왜 나에게 생기는 것일까.


2005년 12월 11일 일요일

기다려진다.


다음 주에는 산울림 공연 세션이다.
내 십대시절의 중요한 부분을 메우고 있었던 '어르신'의 음악이어서 정말 즐겁게 준비하고 있다.
신기한 경험을 했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과는 거리가 멀고, 전혀라고 해도 좋을만큼 찾아 듣지 않고 있었는데도 다시 산울림의 노래제목들을 접했을 때에 나는 이미 거의 다 외고 있었다.
어릴적에 흡수된 것은 ROM 같은 곳에 저장되는걸까.

그 공연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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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10일 토요일

귀엽고 예뻤다.


책상 위의 저 자리에 앰프를 놓아둔 후 며칠 동안, 고양이 순이는 계속 저렇게 눈만 내밀고 힐긋거리며 나를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쏙 들어가 숨어버렸다.
고양이들이 숨바꼭질을 즐긴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었다.
장난을 거는 것을 보니 그 모습이 귀엽고 예뻐서 나는 어쩔 줄 몰라했다.

조금 전에도 나와 순이는 눈이 마주쳤다.
저렇게 보고 있다가 갑자기 한쪽 앞발을 들고, '물어볼게 있어'라고 말이라도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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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쉬어야겠다.


하고 있던 밴드를 그만뒀더니 직장을 잃은 것이냐고 누가 물어보았다.
내가 하는 일이 차라리 그런 것이었다면 나는 불의를 정말 잘 참는 사람이 되었거나 아니면 일찌감치 조직으로부터 버림 받았을지도 모른다.
실직한 것은 아니므로 여전히 다른 밴드, 다른 사람들과 연주를 하고 있다.
혼자서도 계속 뭔가를 하고 있다. 그동안 써뒀던 음악 중 한 곡을 다음 주 일요일에 결혼을 하는 친구에게 선물하려고 했다. 결혼식에서 그 곡을 연주해주려고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알고 지내는 연주자들이 모두 바쁘다는 것이다. 일이 있어서 바쁘다는데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야하니까 절대로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듣는 일은 이제 질렸다. 아무래도 밴드의 멤버를 구할 때에는 '무신론자 우대' 같은 조건이 필요해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남았는데 연주할 친구들을 어디에서 구할 것인지 걱정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빈둥거릴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많이 자고 자주 먹었다.
몸을 편하게 하고 긴장을 풀었더니 저절로 빠르게 게을러졌다.

고양이 순이는 그동안 무척 심심했었던 것 같다.
내가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까 고양이가 많이 좋아한다.
까불고 장난을 치고, 사료도 많이 먹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내 어깨 위로 뛰어내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냥 내버려뒀으면 고양이가 알아서 어깨에 매달렸을 것을 도와준답시고 손을 내밀었다가 그만 가구의 모서리에 손등을 다쳤다. 외상은 없는데 혈관이 지나는 부분이 계속 부어오르고 있는 중이다. 많이 아프다. 주먹을 쥐기가 힘들다.
그래도 고양이가 다치지 않아서 나는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순이는 어쩐지 나를 비웃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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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8일 목요일

고양이 소리.


새벽에 약간의 취기가 남아있었다.
조금 덜 마시면 덜 마신대로 더 마시면 과한대로 컨디션이 나쁘다.
오랜만에 시간이 많이 남아서, 깊은 잠을 자고 싶었다.
그러나 습관이 무섭다. 오늘도 날이 밝도록 잠을 못 잤다.

이웃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책상 위의 구석진 곳에 앰프를 두고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구입한 코러스에서 나는 소리인지, 계속 그르릉거리는 잡음이 들려왔다.
이펙터를 꺼보기도 하고 케이블도 확인했다. 앰프의 노브들을 살펴봤는데 이상이 없었다.
계속 악기소리의 사이 사이에 뭔가가 계속 그르릉 그르릉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앰프 뒤에서 고양이 순이가 부시시 일어났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아까부터 순이가 구석에서 자고 있었던 것이었다.
잠이 깨지 않은 고양이가 몸을 더 일으키지 않은채 장난을 걸어왔다.
나는 사진을 한 장 찍어뒀다.
그 모습이 무척 귀여워서, 결국 순이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유통기한이 다 되어버린 커피냄새, 방치해둔 빨래들, 빈 그릇이 가득한 설거지통들... 날이 밝으면 집안 꼴이 더 잘 보일 것 같아서 나는 이불을 뒤집어 덮고 잠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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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6일 화요일

절이 싫으면 떠나는 것.

새벽에 눈보라를 뚫고 얼어붙은 고속도로를 질주하면서 내가 고민했던 것은 더 참을 것인지 아닌지가 아니었다.
명분, 실리라는 것은 사람들이 제 입맛에 맞도록 만들어내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 것은 계산에 넣을 수도 없었다.
나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위대한 일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부끄럽거나 수치스러운 짓은 아니기를 원했다. 그것이 생각의 시작이었다.
지난 주말 공연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나는 노력했다.
며칠 동안 시간을 들이고 밥을 굶고 비용을 썼다.
집에 돌아와 낯선 앰프의 매뉴얼을 읽고 스무 곡 남짓 악보를 완벽히 외느라 오래 집중했다.
실수할 가능성이 있는 부분은 체크하여 필기해뒀다.
공연장에 있는 메인콘솔을 카메라에 담아와서 세세한 모양을 익혔다.
엔지니어에게 공연시 내가 원하는 사운드에 대해 말하고 의견을 구했다.
일주일도 되지 않았던 베이스 줄을 새것으로 교환했다. 그리고, 리더 때문에 속상해있는 다른 멤버들을 챙기느라 애썼다.

그 결과 공연의 질은 매우 좋았다.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다.
나는 나 혼자만의 시험을 잘 치렀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밴드의 리더가 투자한 것에 비하면 가격대비 최상의 공연이었다.
며칠 후 돌아온 것은 터무니없는 액수의 연주료와 비상식적인 변명이었다.
그는 함께 연주하는 사람들을 폄하했다. 그의 언어에 치졸한 욕심이 드러나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떳떳하지 못할 때에 당당한 태도를 보인다.
겁을 내면서도 잔인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그래서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겨우 나와 같은 연주자가 그 밴드를 그만두는 일이 그렇게 심각한 것이었나.
꼬리를 물고 걸려오는 동료들의 전화와 질문들에 당황스러웠다.
회유도 있고 걱정해주는 말도 있었다. 동조하거나 칭찬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갑자기 그만두는 바람에 몇 사람들에게 급박한 전화들이 걸려온 모양이었다. 순조로울 수도 있었던 다음 공연들이 위태롭게 되었던 것이었을까. 벌써부터 들려오는 협박과 비난의 단어들. 내가 매장될지도 모른다는 공갈.
어리석은 행동은 몇 번의 반복만으로 악행이 된다.

내가 남에게 어떻게 살아야 옳은가를 말해준다는 것은 시건방진 일이다.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것 아니냐와 같은 말도 하면 안 된다.
그런데 그런 말을 나 자신에게는 매일 해야만 한다.
조금 숨을 돌리고, 충전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지금은 좋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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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1일 목요일

이상했던 날이었다.

1. 잠을 자다가 꿈에서 무엇인가가 몹시 우스워 자다말고 누운채로 크게 웃어버렸다.
내 웃음소리에 내가 놀라서 그만 잠을 깨었다.
잠을 깬 것과 동시에 무엇이 우스웠던 것이었는지 잊고 말았다.
기억해내려 애써보다가 다시 잠을 잤다.
혼자 몇 년 지내다 보니 언제나 강박증이 있다.
알람이 울리기 5분 전에 나는 늘 깨어난다.

2. 시간에 쫓길 하루일 것을 예상했다. 평소보다 준비물을 많이 챙겨서 집을 나섰다.
그런데 그만 양말을 신지 않은채로 신발을 신고 있었다.
아마 나는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3. 잠이 덜 깬채로 오후 한 시에 강변을 달리고 있었다. 바깥은 싸늘한데 자동차 안은 밝은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늘 어둠 속을 달리다가 모처럼 너무 밝은 도로를 질주하고 있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4. 첫번째 약속장소에서 사람을 기다렸다. 어쩐지 담배를 피우고 싶지 않았다. 이것도 이상하다면 이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때, 갑자기 한 아이가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미끄러져 다가오더니 내 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모습이 예뻐 보였다. 유난히 인상 깊었다.

5. 평소같으면 전혀 연주할 일이 없었을 곡을, 전혀 그 곡을 연주할 것 같지 않았던 사람과 갑자기 공연 리허설에서 연습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곡이었어서, 나는 그 곡을 외고 있었다. 연주하는 동안에 마치 그것이 언젠가 겪었던 일 처럼 여겨졌다. 강한 기시감이었다.

6. 특별히 나쁘게 했던 것도 아닌데, 갑자기 누군가를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나빴다. 화가 났다거나 짜증이 났다거나 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한밤중에 다른 공연이 끝난 후, 자신을 인도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인사를 청해온 남자가 있었다. 손을 내밀길래 악수를 받아줬다. 그러자 그는 숨 쉴 틈도 없이 계속 시타르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 악기의 재질과 역사와 인도에서의 문화적인 가치를 설명하고 있었다. 몇 분은 참고 듣다가 너무 피곤하여 견딜 수 없었다. 이놈도 죽여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종일 이상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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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30일 수요일

벌써 12월이다. 빠르다.

세월이 잘도 지나간다.

이번 주에는,
월요일에는 두 건의 레슨 약속이 있다.
화요일에 공연 연습이 있다.
수요일에는 공연 연습 후에 이동해야 한다. 김광석 밴드의 공연 연습이다.
목요일에는 공연 리허설 후에 이동하여 다른쪽 공연 연습을 해야 한다.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김목경 밴드 공연이 있다.
일요일에는 강원도 태백에서 김광석 밴드와 공연이 있다.

매일 평균 90킬로미터를 하루도 쉬지 않고 한 달 내내 운전을 했다.

벌써 한 해의 마지막 달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는 새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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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29일 화요일

고작 피눈물인가.


부모가 성당에 다니고 있어서, 어릴적에 영세를 받았던 나에게 아직도 종교적인 경험의 기억은 남아 있다.
지금은 더 이상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그런데 언젠가 우연히 어느 성당에 들어가 미사에 참여했어야 할 일이 생겼었다. 함께 동행했던 친구가 남들이 하는 일을 따라하느라고 자신있게 영성체를 받아 먹는 것을 보았다. 그는 영세를 받지 않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영성체를 받아 먹는 것을 보는 순간 멈칫했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전혀 그럴 이유가 없었다. 나와 상관 없는 일 아니었나. 내가 무슨, 그 친구를 가로막고 서서 영성체는 아무나 받아 먹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해줘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또 얼마 전에는 일 때문에 부득이 어느 교회의 예배시간에 끝까지 앉아 있어야 했다.
갑자기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성당의 그것과 닮은 밀가루 조각들을 들고 와서 한 사람씩 나눠주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손톱만한 플라스틱 컵에 포도주를 담아와서 사람들에게 먹이는 것도 보았다. 근거도 이유도 없는 허식이었다.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천주교회에서의 영성체는 우스꽝스럽지 않은 것일까. 어쩌면 양쪽이 크게 다르지 않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절에서 우담바라가 피었다며 법석을 떤다.
인도의 전설에서 여래나전륜성왕이라는 존재가 나타날 때 피어난다는 꽃이 우담바라라고 들었다. 그것의 실체가 사실은 잠자리 알이거나, 아니면 무슨 곰팡이이거나 간에, 사람들의 불심을 자극하고 마음 따뜻해지는 설화로 사람들의 마음에 옮겨 다니는 것 자체는 고운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붓다의 계시인양 광고를 하고 등을 판매하고 신자들에게 돈을 걷는 것을 보면 속이 메슥거린다. 원래 사찰에서 하는 일이라는 것이 그렇기는 했다. 사주를 보고 중매를 서주며 등값을 걷어 테니스장을 만드는 일 아니었던가.

지금 미국의 어느 베트남계 성당에 있는 마리아상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다. 그 소식을 듣고 그곳에 사람들이 줄지어 모이고 있다고 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성모상의 눈에서 붉은 액체가 흐르고 있으니 구경거리이긴 하겠다.
신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 잔향이 이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그래... 고작 전지전능한 유일신의 체현이 시멘트 조각상에서 피눈물을 나게 만드는 것이란 말인가.
기껏 종교라는 것이, 고작 그런 것인가.
약을 파는 것이 낫지 않겠나.
고작, 고작 피눈물인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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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19일 토요일

차 문 고쳤다.



하루만에 수리할 것을 수 개월 동안 안 고치고 있었다.
역시 이런 말을 하면 조금 이상하다는 소리를 듣겠지만, 몇 개월 내내 한쪽이 찌그러져있었던 내 차에 정이 들었었다.
다시 개성 없는 승용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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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18일 금요일

가수가 밴드를 엿먹이기.

노래하는 사람이 함께 연주하는 사람들을 엿먹이는 방법은 쉽고 간편하다.
보통 그런 사람들은 음악의 기본이 부족하고, 뭘 잘 모르니까 수치심도 없다.
부끄러운 줄 모르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청중들을 향해 어떤 매너를 갖춰야 하는지도 당연히 모른다.
뭘 모르니까, 그런 사람들은 용감하다.
그들은 한결같이 마이크 앞에 비스듬히 선다. 똑바로 서있지 못하는 것 같다.
그렇게 선채로 인사를 몇 마디 하지만, 당연히 관객들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 상황을 만회하겠다는 생각에 밴드를 엿먹이기 시작한다.
'저희들이 연습을 하나도 못해서...'
'부족하고 미흡하지만 그래도 한 번 불러 보겠...'
대개 이런 핑계를 댄다.
사실을 말하자면 평소에 연습이 되어있지 않은 것은 자기자신이다.
이런 사람들은 당연히 음악의 흐름이나 화음의 움직임도 눈치채지 못하여 엉뚱한 곳에서 호흡을 하고 난처한 순간에 괴성을 지른다.
자신이 실수를 하면 반드시 이런 말을 한다.
'밴드가 약속에 없는 것을 갑자기 했네요.'


지난 밤 연주했던 녀석의 이야기이다.
나는 그가 이 글을 읽게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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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16일 수요일

낡은 컴퓨터.


3년을 사용한 컴퓨터라면 지금의 시대에는 오래된 편이다.
몇 년 전의 컴퓨터 지식만 기억한채 새 기계를 물색하다보면 당황하게 된다.
빠르게 변하고 발전하는 분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컴퓨터 앞에서 집안에 있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몇 년이 지나도록 잔병 하나 없고, 오에스가 업데이트 될 때 마다 체감 성능마저 좋아지는 것 처럼 느껴져서 새것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드디어 DVD-RW가 맛이 갔다.
쓰기만 버벅대는 것이 아니고 읽는 것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많이 쓰긴 썼다.
새 맥을 구입할 때가 된 것일까 생각하며 돈 계산을 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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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14일 월요일

새 줄.


매일 많이 치고 있으니까 별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보름에 한 세트씩 베이스줄을 교환한다는 것은 정말 많은 비용이 든다.
어떤 사람은 일 년 동안 베이스줄을 세탁하고 끓여서 사용했다며 자랑을 했었다.
그것이 자랑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오래된 줄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라는 것도 있으니까 남의 일에 뭐라고 할 일은 아니다. 음정이 맞지 않게 되었는데도 계속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소리 때문일 것 같지는 않지만.

줄값이 비싸다고 투덜대고 있으면서도 악기에 새 줄을 감는 기분은 정말 좋다.
악기를 손질하고 튜닝을 했다.
끊어낸 낡은 줄을 잘 감아 치우려고 했는데 고양이 순이가 그 무거운 쇠줄을 물고 던지며 놀기 시작했다.
순이는 치아가 센 편이 아닌데, 다칠까봐 걱정했다. 무엇보다 낡은 줄은 많이 더럽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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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13일 일요일

고양이 순이.


고양이 순이가 아침 인사를 하며 다가오다가 기지개를 폈다.
기지개를 피고 있다가 아침 인사를 하며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나도 잠이 덜 깬 채로 다가가 꼭 안아줬다.

내가 밖에서 뭘 하고 돌아다니는지 얘는 알지 못할 것이다.
내가 없는 동안에 고양이 순이는 집안에서 혼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나도 알 수가 없다.
자주 집을 오래 비워서 항상 그것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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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10일 목요일

죽는 사람들.


하루의 절반을 이어폰을 귀에 꽂은채로, 어떤날에는 코앞에 스테레오를 끌어당겨 안은채로 많은 시간을 그들의 음악에 취해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적이 있었다.
설명하기 쉽지 않은, 나에게 기쁨을 줬던 사람들이 해마다 세상을 떠나고 있다. 조 헨더슨도 죽었고, 지미 스미스도 죽었고, 레이 찰스도 죽었다.
지난 달에는 셜리 혼이 일흔 한 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마이클 브레커는 혈액암으로 투병중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매일 죽고 있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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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미운 고양이


나는 자주 낮에 잠을 자야하는 경우가 있다.
고양이에게는 너무 넓은 침대가, 나에겐 조금 좁은 침대가 방안에 있다.
밤을 새우고 나면 어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들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세수를 하고 보니 고양이 순이가 그 사이에 침대를 차지하고 누워있었다.


귀엽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한 감정은 매일 똑같다.
집을 비운 동안 고양이 순이가 심심해하고 외로와할 것을 생각하면 항상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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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8일 화요일

웨스 몽고메리


독립된 한 장의 앨범이 아니라 음반회사가 재량껏 곡들을 짜맞추어놓은 '히트곡 모음집'을 나는 좋아한다.
일관된 음악적 방향을 가지고 내용물이 담겨있는 음반이 아니라면 독립적인 한 장의 앨범이라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잘 꾸며 놓은 컴필레이션 앨범 한 장이 진지한 감상자의 인생 한 부분을 새로운 색으로 칠해버리기도 하는 법이다.

재즈를 처음 들었을 때에 전혀 사전지식이 없이 무작정 골라 구입했던 음반들이 있었다. 그것은 마일스 데이비스의 Kind Of Blue 와 웨스 몽고메리의 Verve 판, The Silver Collection 이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그 두장의 음반으로 내 인생의 방향이 달라졌다.
웨스 몽고메리의 The Silver Collection 음반은 그가 Verve 에서 녹음했던 곡들을 간추려 7곡의 소규모 그룹 연주와 3곡의 오케스트라 협연을 담은 음반이다.
이것이 1965년에 발표되었다고 나와있으니 웨스 몽고메리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발매되었던 모양이다. Riverside 에서의 녹음과는 질감이 많이 다르고, 나는 이쪽이 더 정감있게 들렸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첫 곡 If You Could See Me Now 는 윈튼 켈리, 폴 챔버스, 지미 캅과 함께 쿼텟을 이루어 뉴욕의 하프 노트라는 클럽에서 1965년에 연주했던 것이었다. 이 세 사람은 마일스 데이비스의 Kind Of Blue 를 녹음했던 멤버들이었다. 웨스 몽고메리의 좋은점들이 모두 담겨있다고 해줄 수는 없지만 풍부한 사운드와 따뜻한 음색의 솔로, 잘 짜여진 편곡이어서 수백번을 다시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이런 음반을 맨 처음 들어버리면 나쁜 점도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연주자들이 녹음한 If You Could See Me 가 있을텐데, 어쩐지 웨스 몽고메리의 이 버젼이 아니면 나머지는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떤 사람들은 나와 다른 경험과 의견이 있겠지만.
이 음반의 다른 곡들도 모두 참 좋다. 이 음반에 있는 Misty에 완전히 빠져있었어서, 어느날 사라 본의 노래를 들었을 때에 뭔가 밋밋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었다. 처음 들었던 재즈음반이었기도 하고, 처음 들었던 재즈 기타리스트의 음반이기도 했다. 재즈 초보자였던 나에게는 강한 첫경험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혹시 아직 재즈음반을 돈을 내고 구입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거나, 기타를 연주하는데 어디 한 번 재즈도 들어보겠다는 생각이 있는 분이라면 이 음반을 꼭 들어보시면 좋겠다.
윈튼 켈리의 피아노와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오르간 연주자 지미 스미스와의 트리오 버젼도 두 곡 들어있다. 담백하게 편곡된 오케스트라와 쿼텟의 협연도 세 곡이나 담겨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2005년 1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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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6일 일요일

사람들.



나라고 하는 사람에게도 이미지라는 것이 있다면 남에게 조금 잘 보이고 싶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든 최소한 나쁜 인상은 주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있다.
그런데 일을 하다가 보면 나는 인상을 쓰고 으르렁거릴 때가 있다.
어제 그랬었다.
결과만 보자면 인상을 쓰고 대충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후에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리허설 준비 중 소리가 나지 않고 있는 앰프를 조치해달라고 했더니 그냥 DI 박스로 대충 하면 안되겠느냐는 대답을 들었다. 나는 정말로 화가 났던 것은 아니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요식행위로 앰프와 캐비넷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면 음향업체의 스탭이라기엔 너무 무책임한 대응이라고 생각했다.
조금은 못된 인상을 하고 언성을 높여 말했고, 결국은 공연에 임박하여 새 앰프를 가져오는 것으로 문제는 해결했다. 그러나 리허설을 할 때에는 앰프의 사운드를 들을 수 없었다.

그 결과로 손해를 본 쪽은 그들이다. 시간과 비용을 더 들였어야 했고, 같은 일을 반복해야했다.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은 많다. 또 자신이 하는 일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려면 다른 일을 하던가, 놀고 먹는게 낫지 않느냐, 따위의 한가한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일을 하다보면 언제나 나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것을 바로잡을 것인지 아니면 대충 뭉개고 지나갈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고 가정해두며 사는 것이 좀 싫다. 어떻게 해서라도 바로잡고 보아야겠다라는 생각을 좀 해주면 좋겠다.

그런 반면에 공연장에서 잊지 못할 좋은 사람들을 만날 때도 있다.
어떤 스탭들은 스턴트맨들처럼 분주히 움직이며 '완벽하게' 무대를 준비해준다. 연주자의 입장에서 아무 것도 굳이 주문할 일이 없다. 아주 짧은 시간에 모든 준비를 마칠 수 있고 대개의 경우 공연의 질도 좋아진다.
그런 분들을 관찰해보면 특별히 조직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개개인이 그 분야의 뛰어난 실력자들인 것도 아니다. 업계에서 가장 비싼 임금을 받는 사람들도 아니다.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지금 그곳에서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는 것, 그래서인지 그 일을 즐겁게 한다는 것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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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5일 토요일

보나의 새 음반.


리차드 보나의 새 음반이 나왔다.
제목은 TIKI이고 몇 개의 클립을 미리 들어볼 수 있었다.
아직 아마존의 판매목록에는 올라오지 않았다. 지난번의 DVD와 함께 주문하고 싶어서 자주 아마존 사이트를 열어보고 있다.
그는 지금 러시아에서 공연 중이고,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연주와 이동을 반복하고 있다. 스페인, 슬로바시아, 헝가리, 체코와 라트비아, 네덜란드, 스웨덴과 폴란드, 프랑스에서 다음 달까지 공연을 계속 한다.
그의 일정표가 맞다면, 11월 14일에 슬로바키아의 바빌론 클럽에서 공연을 하고 바로 다음날인 15일에는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공연을 한다. 그런식으로 올해 말까지 공연이 계속된다. 대단한 정력이라고 생각했다. 자라섬에 왔을 때에도 한국 공연을 마친 바로 다음 날 그는 뉴욕에서 공연을 했었다.

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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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29일 토요일

대화.


며칠 전 새벽, 편의점 점원이 뜬금없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음악을 참 좋아하시나봐요'

나는 적당한 간격을 두고 (내 생각에는), 짧고 정중하게 대답했다.
'예'
'잔돈입니다'
'고맙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 장면이 어쩐지 자꾸 기억이 났다. 그 질문이 좀 많이 이상했다.
점원분은 뭔가 따분해하면서도 성의를 보이고 있다는 느낌의 목소리와 말투였다.
아마 늘 내가 귀에 이어폰을 꽂은채 계산대 앞에 서있는 것이 보기에 거슬렸나보다 싶기도 하고. 혹시 내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았던가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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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26일 수요일

순이는 따뜻한 것을 좋아한다.


고양이 순이가 잠들어 있었다.
불편할텐데 혹시 커피냄새를 좋아해서 저렇게 다가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나에게 정이 들어서 곁에 있고 싶어하는 것인지를 생각하다가... 쓰다듬어 주면서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외장하드 디스크가 따뜻해서 순이는 주머니 난로처럼 외장하드를 사용하는 중이었나보다.

문을 열면 선뜻, 추운 냄새가 난다.
고양이 순이와 만난 것도 한 해가 지났다. 순이의 나이도 한 살.
그리고 나에게는 온전히 혼자 지나보내는 세 번째 가을.
코를 풀면 끈적한 테스토스테론 덩어리가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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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23일 일요일

순이가 성가셔한다.


순이는 성가셔한다.
조용한데 갑자기 소음이 들리거나, 소음이 지속되다가 갑자기 조용해지거나 하면 잠들었다가 문득 깨어 두리번거린다.
선반 위에 올라가 자다가 영 신경이 쓰이는지 냉장고 위로 옮겨 갔다가 하고 있었다.
도저히 못참겠다고 생각하면 내 어깨 위에 올라와 칭얼대며 아무 일도 못하게 하곤 한다.
그럴 때엔 정말로 불을 끄고 잠들어야 한다.

순이와 지내면서 고양이와의 대화를 많이 배웠다.
길에서 다른 고양이를 만났을 때에, 고양이들의 언어를 내가 알아듣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좋아했다.

방금 사진을 찍으려 하자 순이는 '방해하지마'라고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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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것이 좋다.


점점 더 혼자만의 시간이 귀하다.
새벽 네 시, 내가 악기를 건드리지 않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시간이다.
고요하고 참 좋다고 생각했다.
날이 추워져서 모든 창문을 닫았더니 아주 조용해졌다.
고양이 순이는 선반 위에서 잠을 자다가, 내가 연습을 멈추면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뜨고 고개를 내밀어 구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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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5일 수요일

녹슬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겠지만 연주 도중에 내가 저지르는 실수의 약 90 퍼센트는, 손에 땀이 너무 많이 나서 손가락이 줄 위에서 미끄러지기 때문이다.

.........

역시 좀 궁색하긴 하다.

내 악기의 부품은 벌겋게 녹이 슬어버렸다.
오른손을 자주 브릿지에 대고 연주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저런 부품들을 구입하기 쉬워졌다. 그것은 다행이다.
조만간 새 것으로 바꿀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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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상자.


약간 좁아 보인다.
그런데도 고양이 순이는 몸을 잘도 구부려 들어가서, 낮 동안 계속 자고 있었다.
어찌나 깊이 잘 자는지 깨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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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20일 화요일

자코의 아들.


이복 형제들인 존과 메리보다도 Felix Pastorius 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의 모습에서 아버지 Jaco Pastorius 가 연사오디기 때문일 것이다.
자코와 친분이 있었던 최고의 연주자들이 그를 격려하며 가르치거나 돕고 있었고, 비니 포데라는 그에게 5현 포데라를 선물했다.
너무 큰 아버지의 그림자 안에서 숨이 막힐 법 한데도, 그들 형제는 차분하고 평화롭게 그들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다. 펠릭스의 연주는 아직 소년의 느낌이 남아있다고 해도 무서운 부분이 느껴진다.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기대된다.
그러고보니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자코가 해놓았던 연주들을 생각하면 정말, 무시무시했던 것이었다.

펠릭스 파스토리우스는 일곱 살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열 네 살부터는 베이스를 시작했다.
자코의 클론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아버지의 외모를 닮았는데, 무엇보다도 손이 닮았다.
이제 막 이십대가 되었고 음악적으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자코의 아들이니까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가 잘 하고 있지 않는다면 유전자의 힘은 그다지 소용없다.
최근 그는 미니 음반을 녹음했는데, 타이틀 곡은 바로 I Can Dig It, Baby였다.

그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어머니인 잉그리드로부터 집에서 교육받았다. 학교를 보내지 않고 홈스쿨로 아이를 키우면 큰일이 나는 줄 아는 한국의 정서였다면 이 사람은 지금처럼 멋진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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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7일 수요일

가을이 왔다.


낮은 기온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찬물로 세수한 것처럼 정신이 들었다.
내가 뭐하고 있었는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연주하러 가는 길에 지겹게도 길이 막혔다.
나는 해지는 하늘을 구경하면서 마음 넉넉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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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의 답장.


나는 어린애처럼 며칠이 지난 후에도 그의 연주장면을 떠올리며 좋아하고 있다.
좋은 음악, 좋은 사람들, 좋은 연주는 좋은 공기를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그의 홈페이지에 내가 감사의 글을 남겼었는데, 그가 직접 답장을 써줬다.


이곳에 보관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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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보았다.


2005년 9월 4일, 자라섬에서.
리차드 보나의 공연을 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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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21일 일요일

고양이와 평화롭게.


늘 하던대로 홀딱 벗고 자다가 그만 추워서 몸을 떨며 일어났다.
이제 올해의 더위는 마지막회일까. 혹시 에필로그가 남아있을까.

하늘이 높고 선선해지니까 공기의 냄새가 감정을 과장시킨다.
집에 혼자 있을 때에는 알지 못하다가도 외출하여 누군가들과 함께 있으면 오히려 부쩍 혼자처럼 느껴졌다.

집에 다시 돌아오면 고양이 순이와 함께 평화로왔다.
나도 순이를 흉내내어 같은 모습으로 드러누워있다가 잠이 들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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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17일 수요일

줄을 삶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많이 습하다.
올 여름에 악기의 줄들이 쉽게 못쓰게 되어버렸다.
집안 청소를 하다가 생각이 나서, 오랜만에 물을 끓여 줄 세탁을 해보았다.
내 방법은 줄을 풀어 세제로 잘 닦은 후에 끓는 물에 3~4분 정도 넣어 약한 불로 가열하는 것이다. 줄을 물에서 꺼낸 뒤에 잘 말린 다음 적당히 왁스를 발라주는 정도이다.

새것처럼 될 수는 없지만 조금 더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효과는 볼 수 있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 줄은 아예 조율이 안될 정도로 못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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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16일 화요일

마커스 밀러.



마커스 밀러의 새 음반, Silver Rain을 듣고 있다.
이번에는 Sophisticated Lady가 담겨 있다. 그 곡을 좋아해서 종일 틀어두며 듣고 있다.
마커스 밀러는 자신만의 음악적인 레시피 같은 것이 있나보다. 예를 들어 정해진 순서와 방법으로 이 곡은 요런 재료로 요렇게, 저 곡은 저렇게, 라고 하는 규칙이 있는 것 같다. 아주 안전한 결과물이 단정하게 생산된다. 파격적이지 않다고 해도 다수의 입맛에 꼭 맞는다.
그의 오리지널도 좋지만 앨범마다 스탠다드 한 곡씩을 커버해주는 것도 고맙다.
그의 편곡은 꽤 훌륭하다. 1시간 20분이 금세 지나가는 즐거운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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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 고양이.


아직 어린아이인 고양이 순이는 내가 집에 있는 동안에 항상 졸졸 따라다닌다.
내가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어김없이 책상에 올라와 나와 마주보고 코를 맞댄다.
아주 더운 여름이다.
더운 날씨에 고양이가 발목에 달라붙거나 앞에 다가와 코를 대고 있으면 더 덥다. 털옷을 입은 고양이는 나보다 더 더울 것이다.
내가 집을 비우면 혼자만 있어야 하는 고양이 순이.
항상 미안하고 고맙다고 생각했다.
얼굴을 쓰다듬고 입을 맞춰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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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12일 금요일

비오니까 좋다.


많이 덥고 습했다.
아침이 밝아올때까지 빗소리를 섞어 음악을 들었다.
고양이 순이는 밤새 울었다.
울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달려와서 가슴에 머리를 부볐다.
나는 요즘 자주 눈이 아프다.

오늘 밤의 공연은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가기가 귀찮다.

잠을 못자고 있기 때문에 알람을 맞춰두고, 잠깐 졸다가 일어나려고 한다.
고양이 순이의 그릇에 물을 따라주고, 사료를 담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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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7일 일요일

종일 마루바닥에 있었다.


매일 덥고 습하다.
하루 종일 연습을 하다가 문득 쳐다보면 순이는 저렇게 앉아 있었다.
다시 쳐다보아도 계속 저렇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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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가라앉아있다.


뭔가 침체기가 찾아왔다.
의욕이 뚝 떨어지고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잃었다.

Yellowjackets 의 연주를 들으며 하루를 보냈다.
지미 하슬립의 연주 모습을 상상해봤다. 아직 동영상을 찾아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6현 MTD에 줄을 거꾸로 감아 사용한다. 왼손잡이인데 처음부터 저렇게 연주를 시작했던 모양이었다. 저 형과 마주 앉아서 베이스를 배우게 된다면 상대방의 손가락을 보고 익히기에 수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습하고 덥다.
새 줄로 갈기 전까지는 연습 따위는 그만둬야지, 생각하다가도 불안하여 악기를 잡았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이럴때엔 그냥 음악이나 듣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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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2일 화요일

양쪽 끝은 닮았다.


클래식 오디세이라는 TV프로그램을 보면, 진행자인 아름다운 여자분이 언제나 드레스를 입고 나온다.
진행자의 말투와 어감도 격조있다. 심지어 근엄하기까지 하다.
카메라를 바꿔 쳐다볼 때 마다 언제나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원고를 읽는다.
누가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는걸까, 나는 그 모습을 볼 때 마다 생각해본다.
여자가 미소를 짓지 않으면 불편하게 보는 사내들이 있기 때문일까?
'고급음악'을 소개할 때엔 대충 단정한 옷 정도를 입어서는 부족하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엄숙한 분위기와 고급스러우려고 시도한 배경화면, 단편적인 정보를 나열하고 있는 설명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드레스를 보면 미안하지만 막 우습다.
지난 번엔 그 진행자분에게 어깨가 드러나보이는 드레스를 입혔는데, 어두운 색의 긴 치마여서 오히려 더 더워보였다. 그렇게 격식을 차린 설명 뒤로 소개된 영상은 털털하게 셔츠를 풀어헤치고 야외에서 자유롭게 연주하는 요요마였어서 더 웃겼다.

매스미디어가 일반 시민들을 계몽해야 한다는 강박, 후졌다.
음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은 모두 사람들에게 이런 것 좀 들어보라며 문화를 배우라고 가르치려는 듯 보인다. 그러다가 간혹 진행자가 일으켜 세워서 인사를 시키는 사람들은 무슨 시장이거나, 군수, 도지사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아주 일찍 음악회장에 오는 것이 틀림없다. 항상 맨 앞 자리에 앉아있다.

얼마 전에 이상한 쇼프로그램에 이상한 애들이 나와서 바지를 벗고 뛰어다녔다고 하여 말이 많았다.
그들이 자신들의 어느 부분을 사람들에게 생방송으로 보여준 것이 뭐 그렇게 대수인가 생각은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내가 우습게 여겼던 근엄한 프로그램의 드레스가 떠올라 겹쳐진다.
그들이 보여준 행위의 교훈이라면 알맹이 없는 사람일수록 늘 껍데기만 뒤집어 씌우려하는줄만 알았는데, 반대로 껍데기를 벗는 사람들도 있다는 정도라고나 할까. 펑크니 인디니 흉내를 내보려면 공부는 아니라고 해도 조금의 사색 정도는 있었으면 좋았다. 외피만 가져온채로 내실이 없는 경우, 사람은 그렇게 된다.

그 둘은 닮았다. 벗고 뛰어다닌 청년들은 행위에 대한 근거가 없고, 필요없이 차려입은 사람들은 격식 속에 내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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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웠다.


며칠 동안 마음이 어지러웠다.
이 동네에 이사를 온 후 처음으로 강가에 나가보았다. 그곳에 앉아서 모기에 물어뜯기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생각했다. 강바람은 음습하고 내음이 비릿했다.
쓸모없고 소모적인 일인 줄 알면서도 나는 감상적이 되어버릴 때가 자주 있다.

집에 돌아와 몸을 씻고, 안소니 잭슨이 연주한 미셀 카밀로, 스티브 칸, 미셀 페트루치아니, 존 스코필드의 음악들을 계속 들었다. 듣고 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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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22일 금요일

고양이가 버틴다.


실내 온도가 섭씨 30도 이상이다.
정말 덥다.
순이는 털옷을 입고 더위 앞에서 버티고 있다.
나는 훌러덩 벗고 고양이와 함께 견디고 있다.
순이를 목욕시켜줬더니 털의 색이 밝아졌다. 고양이가 기분이 좋아졌는지 창가에서 소리를 내며 졸고 있었다.

순이가 더위에 너무 시달릴까봐 선풍기를 틀어줬다. 바람이 싫은지 도망을 다녔다.
얼음을 얼려서 비닐에 담아 고양이의 곁에 놓아줬다. 순이는 아무런 흥미가 없어 보였다.
더워죽겠으니 건드리지나 말아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내버려두었더니 순이는 혼자 그늘과 응달을 찾아다니며 쉬고 있었다.

오늘 강수확률은 0 퍼센트라고 했다.
비라도 내려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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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심하다.


나는 견딜만하지만,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가 걱정이다.
그리고 악기들도 상태가 나빠지고 있다.
베이스의 네크들이 심하게 뒤틀려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난 해 여름과 비교하면 괜찮은 편이라고 위안하고 있지만, 정말 정말 덥다.
작년 여름에는 실내온도가 사람의 체온보다 높은 곳에서 견디고 있었다.
강물 앞의 집이라는 것이 이렇게 습할줄은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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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17일 일요일

좋은 연주를 들었다.


피아니스트 유성희 씨의 연주를 구경하고 왔다.
다녀오길 정말 잘했다.
무너져가던 기분을 바꿔주러 찾아온 친구처럼 고마왔다.
그 전날 다른 밴드의 공연을 구경하러 갔다가 잔뜩 실망을 하고 돌아왔었다. 그래서 더욱 구원같은 연주였다.

유성희 씨는 2001년에 닐스 헤닝 어쩌고 저쩌고 페데르슨이 내한했을 때에 LG 아트센터에서 처음 보았다. 그때에도 정말 좋은 피아노 연주자라고 생각했다. 검은 드레스를 입었었고 몹시 긴장했던 것처럼 보였는데도 참 좋은 연주였다.

지난 밤 작은 클럽에서 했던 유성희 씨의 연주는 물론 100 퍼센트는 아니었을 것이다. 듣는 쪽의 입장에서는 장소의 분위기와 사운드와 다른 몇몇 문제들이 있었다. 그런 것을 감안하고 생각해보면 더 좋은 연주였다.
최근에 구경해보았던 대부분의 젊은 재즈 밴드들과 비교가 되었다. 그들은 음악의 기본을 모르거나 아니면 무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유성희 씨의 피아노는 후텁텁했던 기분을 바꿔줬다.

집에 돌아와 아침까지 앤소니 잭슨의 라이브를 듣고 잠을 청했다가, 한 시간만에 깨어났다.
잠결에 계속 베이스의 지판이 보이고 음악 소리가 들렸던 것 같았다. 음악은 분명히 끄고 잠들었었는데도.
눈을 비비고 일어나 앉았을 때엔 자, 연습을 해야지,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금세 졸리웠다.
좋은 연주자들은 아마도 자는 시간을 아끼며 연습을 했겠지.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선 잠을 자야겠다.

유성희 씨는 연주를 마치고 나서, 나와 일행이 앉아있던 테이블에 직접 오셔서 '끝까지 들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나는 '천만에요, 저야말로 정말 고맙게 잘 들었습니다' 정도의 한 마디 대꾸도... 해드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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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15일 금요일

매듭 지었다.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으며 기분을 추락시키고 싶지 않았다.
스티브 스왈로우, 존 파티투치, 리차드 보나, 앤소니 잭슨의 비디오를 계속 보았다.
스티브 스왈로우의 음색과 멜로디가 정말 훌륭했다. 들을 때마다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샤워를 하고 한참 연습을 했다.
어려운 매듭은 풀어줘야 한다. 사람과의 관계는 공을 들인만큼 귀해진다.
나는 저녁에 음식을 이것 저것 많이 먹어뒀다.
오늘로 운수 나빴던 날들이 일단락되어진 것이면 좋겠다.

내일은 오랜만에 다른 누군가의 공연을 구경가기로 했다.
뭔가 새로운 마음이 생겨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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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14일 목요일

운수 나쁜 날.


수요일.
운수 나빴던 날은 아니었다고 해도 어쩐지 뒤끝이 퀭하다.
이번 주는 아주 웃기는 나날이었다.
주말까지 또 무슨 일들이 있을지 흥미롭다.

상대방이 어쩐지 불편한 상태이거나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손익과 상관없이 그를 존중하고 배려해주려하고 헤아려보려하는 마음이 사람에게는 있다. 그런 마음을 뭐라고 이름 붙이려 한다면 제멋대로가 되겠지만 어쨌든 그런 것은 남들과 살아가는데에 중요한 일인가보다.
그러면 어째서 그런 정도의 마음가짐조차 보이지 않느냐고 질책하는 것도 옳지 않은 일이 되는 것인가. 그런 따위의 행동양식을 원래부터 가지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는 상대방의 상태와 상황도 존중하고 배려해야만 한다고 하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고.

배려라는 것도 사람따라 달라지기 마련이고 아무에게나 마음을 열거나 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다. 입맛대로 남을 재단하고 습관대로 사람을 살피지 않으려고 노력해보자.

나는 친구들에게든 누구에게든, 뭔가 얻어내어보려고 거짓 친절 부린 적 없었다. 귀찮은 일을 떠넘기려고 잔머리 굴리지 않았다. 정말 엿먹이고 싶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에게 입속에서 욕설은 해줄지언정 내가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고 살지는 않았으니까, 그것으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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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13일 수요일

취중진담.


'어떤 날'의 곡 중에 '취중진담'이 있었다.
당시에는 소극적이나마 속시원한 가사도 들렸지만 지금 다시 들어보면 조금 소심하고 유약하게 들린다.

어제 하루 종일 운수 나쁜 날이었다. 만났던 모든 사람들과 겪었던 모든 인연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새벽에 모든 일들이 끝나고 서로 속 상하게 했던 친구와의 만남 뒤로 더 힘들었다. 생각을 거듭하면 나쁘다. 항상 문제의 원인제공은 나로부터 시작된 것 같고, 자꾸 자책하게 된다.

새벽 내내 소주를 마시고 비틀거리며 집에 돌아왔다.
갑자기 연락하였는데도 기꺼이 나와서 함께 술을 마셔준 희준이에게 민폐를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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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11일 월요일

한적하다.


매주 클럽에서 공연하고 드문 드문 몇 개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그외에는 바쁜 일이 없다.
갑자기 시간이 나니까 홈페이지나 뒤적거리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덥고 습하다.
건강하고 즐겁게 여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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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길었던 시절.


백업 시디들을 뒤지다가 발견한 사진이다.
몇 년 전 어디인지 금세 떠올랐다.
정말 저렇게 하고 다녔다니... 좀 기가 막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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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9일 토요일

잘 잤다.


밤중에 친구의 전화를 받고 나가서 빗길을 운전하며 돌아다녔다.
나는 여전히 비오는 것을 좋아한다.
아마 평생 물난리를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새벽에 집에 돌아와 다시 하던 연습을 이어서 했다.
생소한 음악들을 들어보고 라면을 끓여먹었다.
고양이 순이는 생선통조림을 복스럽게도 먹어치우고 다시 잠들었다.
오늘 밤에는 블루스 공연이다.
비 내리는 밤 낯선 곳에서 연주한다. 마음 편하게 다녀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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