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24일 일요일

하늘.


너무 맑았던 날이었다.
눈이 부셔서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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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늦은 시간에 잠들지 못하고 맥북 앞에 앉아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우연히 각자의 맥북 앞에 앉았다가 만나게 되었다.
나는 내가 애플에게 신세를 진 것이라고 생각하여야 하는지, 이십여년 동안 호구처럼 계속 제품을 사주는데에 돈을 쓰고 있는 나에게 애플이 고마와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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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가 재미있어했다.


지금까지 순이는 내가 집을 비운동안 언제나 혼자 지냈었다. 이제 집안에 사람엄마가 나타난 후에 자주 재미있어하고 즐거워하며 놀기 시작했다. 다시 어린이 고양이로 돌아간 듯 사소한 것에 궁금해하고 귀여운 동작을 여러번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 둘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곁에 다가와 벽에 몸을 기대고 앉아서 마치 대화를 들으며 맞장구도 쳐줄 것처럼 하고 있었다.
나는 순이를 꼭 끌어안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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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9일 화요일

고양이가 풀을 뜯고 있다.


유진이 캣그라스에 심어놓았던 캣그래스가 많이 자랐다.
순이에게 보여주니 많이 좋아했다.
순이는 기분좋은 표정으로 그 풀을 뜯어서 꼭꼭 씹어먹고 있었다.


2007년 6월 15일 금요일

커피.


친구가 커피를 팔고 있는 바람에 입맛만 까다로와졌다.
미국에 머무는 동안 맛있는 커피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이제 매달 로스팅을 마친 원두를 주문하여 받아먹고 있다.
친구는 나처럼 큰 봉지를 사서 한 달이나 먹고 있으면 신선도가 떨어진다고 핀잔을 주고는 하지만 꼬박 꼬박 꾹꾹 눌러담아 잘도 보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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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스케치.


그 도시의 다른쪽 구석 - 리틀 도쿄에 잠시 차를 세우고 걷기 시작했을때의 느낌은 한인타운에서의 것과 명확히 대비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정갈함, 깨끗함, 그리고 분별있는 색상과 글씨들.

나는 정태춘의 L.A. 스케치라는 노래를 떠올렸다.
아이팟에 담아두지 않았어서 그곳에서는 들어볼 수가 없었다.
내가 보았던 코리아타운의 모습은 그 곡의 노랫말을 연상시켰다.

그 마을의 어느 낡은 벽 한 구석에서 만났던 배수관 한 개가 보여서 사진을 찍어뒀다.
나는 이 사진으로 그곳의 느낌을 기억하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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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이 예뻤다.


볕에 있으면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뜨겁고 그늘에 있으면 갑자기 추위를 느낄 지경이었다.
정말 공기가 좋구나, 라고 여러번 생각했었다.

낮에 리허설을 하는 동안 야외무대 위로 큰 천막을 쳐주었다. 뜨거워졌던 악기들이 천막의 그늘 아래에서 소리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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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4일 목요일

좋은 소리를 들었다.



이 극장에서의 앰프 사운드는 신기할 정도로 아름다왔다.
관리가 잘 되어있긴 했지만 평범한 EDEN 앰프와 캐비넷이었다. 
야외무대에서 전원을 연결하고 소리를 내보았을 때, 그 소리가 너무 좋아서 나는 놀랐었다.
왜냐면 하루 전날 연습실에서는 그 앰프의 소리가 그다지 만족스럽게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공연이 시작될 저녁 무렵에는 낮보다 조금 더 건조해졌고 기온도 내려갔었다. 무대위의 고음부분이 조금 더 명확해졌었고 상대적으로 듣기 싫을 수 있는 저음쪽의 무엇인가가 날아가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극장의 구조가 반듯하지 않은 건축물이었고 무대 뒤로 진짜 숲과 산이 있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다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야외에서 들었던 가장 산뜻한 베이스 앰프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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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리허설.

그곳의 했빛은 얄밉게도 내려쬐어서 그 뜨거운 오후의 햇살만 놓고 보자면 마치 태양은 영원히 초신성이 되지 않을 것 처럼 여겨졌다.

공연을 준비하고 있던 현지의 스탭들은 뙤약볕 아래에서 아무 말 없이 능숙한 동작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큰 야외극장은 너무 조용하고 고즈넉하여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졌다.


가끔씩 케이블을 던지거나 스피커를 옮기는 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서 그들의 몸에서 떨어지던 땀방울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들리는건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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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왔던 순이.


고양이 순이를 집에 남겨두고 내가 외국에 가있었던 동안의 모습이다.
순이에게 많이 설명을 해두고 떠나왔던 것이었지만, 고양이의 입장에서는 서운한 마음이 컸었나보다.

나는 집을 떠나있으면 반나절만 지나도 순이를 보고 싶어한다. 그것을 고양이 순이에게 말하며 이해를 부탁할 수 있다면 좋겠다.

여행에서 돌아와 순이를 껴안고 한참을 사과했다. 순이는 금세 마음이 풀렸는지 집안을 뛰어다니며 소란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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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진 채로 외국의 식당에서.


불과 몇 개월전의 뉴욕에서는 대상없이 막연한 무엇인가를 그리워했었다.
그곳의 차가운 바람과 기온은 혼자 감상에 빠져드는 것을 방해했었다.
너무 추웠던 것이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와서 길을 걷다가 이 식당에 들어가 앉았던 그 오후에는 따뜻한 바람과 고요한 냄새들이 가득한 해변을 걷고 있었다. 그런 날씨라면 당연히 내일의 약속보다는 엊그제의 추억을 되씹게 된다. 한껏 고즈넉하고 무기력해졌었다.

불과 몇 개월전의 막연한 그리움이란 것은 결핍을 부정하려는 앙탈같은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지금은 현재하는 대상을 자주 보고싶어하고 있게 되었다. 집에 두고온 내 고양이 순이가 그리워졌다. 하지만 이제 전보다 덜 걱정할 수 있었다. 순이를 돌봐주고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턱을 고인채 한참을 있다가, 곧 음식이 나오면 갑자기 곁에 그녀가 나타나 '어서 먹어'라고 말해주는 상상을 해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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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만났다.


로스앤젤레스의 변두리에 있는 대형상점 통로에서, 20여년만에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고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돌려보니 한 사람이 선뜻 내 이름을 부르지는 못한채 나를 바라보며 엉거주춤 서있었다.
이 친구는 중학시절의 동창생으로 십대의 시간을 드문 드문 함께 보낸 이후 전혀 만나지 못하고 지냈었다. 미리 알고 약속을 했던 것도 아닌데 우연히 엉뚱한 장소에서 마주쳤다. 서로 알아보고 이름을 부르기 직전에 나는 그를 스윽 지나쳐서 무심히도 걸어갔다고 했다. 으음, 그럴 수 있다...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자주 못알아본다.

우리는 마주 앉아 현재의 이야기를 지나온 이야기처럼 나눴다. 지나간 서로 모르는 각자의 일화들은 지금의 일처럼 툭툭 던지며 말할 수 있었다. 오래 전의 친구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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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7일 목요일

시간을 만들어 겨우 다녀보았다.


주어진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몇 군데를 정해두고 열심히 걸어다녔다.
산타모니카의 애플센터에 들러 다음번 컴퓨터로는 무엇이 좋을지 궁리를 해봤다.


몇 군데의 악기점에서 악기를 만져보고 소리도 들어보았다.
가지고 싶은 악기들이 몇 개나 보였지만, 살 수 없었다.

그리고 이분들의 손은 정말 컸다.
손가락도 길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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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4일 월요일

여행.


이번 일주일동안의 미국행은 부담되는 것들을 평소보다 좀 더 많이 남겨두고 떠나는 것이어서 마음이 무겁다. 학원과 학교에서의 레슨들도 빼먹어야했고 해결해야할 문제들도 쌓아둔채로 나 몰라라하며 비행기를 타야한다. 그것이 기분을 말끔하게 유지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여러가지 생각으로 복잡한 머리를 하고 가방 안에 짐을 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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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2일 토요일

바쁘게 달렸다.


심심할 틈도 없이 달려오다보니 유월이 되었다.
올해의 반년 동안은 계속 연주를 하고 음악소리 속에서 살았다. 그것이 고맙게 느껴졌다.
이제 일주일 동안의 연주여행을 다녀온 후 학교의 한 학기 수업을 마치면 나의 일들에 매달릴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었지만, 정리정돈을 하고 일어서서 잠시 자리를 돌아보면 여전히 미처 다 하지 못한 것들, 지키지 못한 약속들, 시작하지도 못한 계획들이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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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에서.


'음악을 틀지 말아주세요.'라고 했더니,
'음악을 틀으려하지(도) 않았거든요.'라고 일하는 분이 대답하셨었다.
고마왔다. 나는 소리에 지쳐있었다.

유진은 모과차를 마셨는데, 나는 내가 무엇을 주문했는지 금세 잊어버렸다.
해지기 직전 고요한 찻집에서 잠깐 쉬었던 덕분에 기운을 회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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