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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15일 목요일

눈이 내렸다

 



지난 밤에 바람이 습하더니 아침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도로는 미끄러웠고 눈은 하루 종일 날리듯 내렸다. 날씨가 잘 어울리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일찍 출발하여 주유소에 들러 연료를 가득 채웠다. 워셔액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유소에서 워셔액을 사려고 했는데 망설이다가 사지 않았다. 차에서 잠시 내려 후드를 열고 닫는 것이 귀찮았기 때문이었다.
하루에 마시는 커피 양을 많이 줄였다. 일부러 집에서 커피를 내리지 않고, 그대신 빈 텀블러를 들고 나왔다. 새벽에 모로코와 프랑스가 벌인 월드컵 4강전 경기를 보느라 잠이 조금 모자랐다. 커피는 학교에 도착하여 로비에 있는 커피집에서 샀다. 그 커피가게 커피는 맛있었다. 그동안 고맙게 잘 마셨습니다, 라고 마음 속으로 인사했다. 텀블러 뚜껑을 열어 커피를 식히면서 눈이 쌓이는 모습을 구경했다.
집에 돌아올 땐 워셔액이 바닥나버려서 조금 고생스러웠다. 어제 주문했던 만년필이 도착해있다는 소식에 즐거운 마음으로 눈길을 달려왔다.

2022년 12월 8일 목요일

생일 케이크

 


아내의 생일이었다. 나는 어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일 케이크를 샀다. 지나다니면서 봐두었던 '베이커리 카페'들이 팔당대교 부근에 몇 군데 있었다. 빵이라는 말도 외래어인데... 강을 따라 주욱 베이커리 카페들만 있었다. 빵카페는 없었다. 그 중 한 군데에 들렀더니 하루 전에 주문을 하면 케이크를 살 수 있다고 했다. 다른 곳엔 케이크로 보이는 것이 있긴 했지만 너무 단 것들로 만들어져서, 한 입 베어 먹는 즉시 신장의 부신 시스템에 이상이 생길 것 같았다. 날은 저물었고 동네는 가까와져서 할 수 없이 어떤 빵집에서 케이크를 샀다. 불매운동이 계속 중이어서 빵집엔 손님이 없었다.

아침에 아내와 함께 미역국과 케이크와 샐러드를 먹었다. 이상하게 보이긴 했겠지만 꽤 조화로운 조합이었다. 물론 나만 그렇게 먹었고 아내는 밥과 국을 먹었다. 나가기 전에 볕이 드는 곳에서 고롱거리며 자고있던 고양이 짤이를 쓰다듬었더니 두 앞발로 내 손을 살며시 잡고 핥아주었다. 시계를 보며 고양이들을 어루만져주다가 집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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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7일 수요일

한 해를 마치는 공연

 


화요일에 올해의 마지막 공연을 했다. 2019년에 이곳에서 송년 공연을 한 뒤에 판데믹 두 해 동안 하지 못했다가 이번에 다시 연주할 수 있었다.

악기를 두 개 가져가서 리허설을 해보고 한 개만 사용하기로 했다. 패시브 악기의 네크 상태가 약간 안좋았기 때문이었다. 자동차에 악기를 다시 가져다 두고 오는 나를 함께 갔던 아내가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았다. 쓰지도 않을 것을 무겁게 왜 들고 온 건가, 했는가 보다.

연주를 하지 못하고 지냈던 기간이 그렇게 길어질줄은 몰랐었다. 다시 공연을 하러 한 해 동안 여러 지역을 다니는 일은 피로했지만 힘들게 여겨지지 않았다. 리허설을 하면서 우리가 특별하지도 않은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대수로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두 시간 공연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집에 돌아올 때에 어딘가 정신이 멍해져서 두 번이나 길을 잘못 들었다.

2022년 11월 26일 토요일

광주에 다녀왔다

 


광주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공연을 했다. 왕복 여덟 시간 운전하는 일이, 이젠 솔직히 힘이 들었다. 리허설을 마친 뒤에 자동차 안에서 삼십분 동안 얕은 잠을 잤다. 짧은 휴식이었지만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함께 갔던 아내는 그곳에 전시 중이었던 사진전을 보고 주변의 거리를 산책하기도 했다. 나는 도로와 공연장 대기실 외에는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 하루를 보냈다.


공연은 두 시간을 넘게 이어졌다. 나는 공연의 절반 동안은 높은 의자에 앉아서  연주했다. 의자가 준비되었던 덕분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덜 힘들어할 수 있었다.

부친의 입원과 수술을 위해 병실에서 이틀 밤을 새웠던 이후, 집에 돌아와 제대로 잠을 못 자고 있었다. 고약한 꿈을 꾸고 깨어나 다시 잠들지 못한 적이 많았다. 스트레스에 취약하여 몸이 힘든 것인지 체력이 부족하여 스트레스를 더 심하게 겪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안정을 취하고 쉬고 싶었다.

공연을 마친 후 곧 출발하여 집에 돌아왔을 때엔 자정이 넘었다. 다음 날 아침에 건강검진이 예약되어 있었기 때문에 물도 마시지 않아야 했다. 완전히 지쳐서 아침까지 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다시 나쁜 꿈을 꾸고 새벽에 깨어나버렸다. 건강검진을 하러 가서는 몽롱한 상태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 오전 시간을 보냈다. 내 시력이 전 보다 더 나빠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밤중에 운전하는 일이 유난히 힘들었던 것은 아마도 눈이 더 나빠졌기 때문이었나 보다. 새 안경을 사야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 달의 일정들이 거의 끝나가고, 이제 곧 십이월이 된다. 한 해가 다 지나갔다.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달려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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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17일 목요일

철원에서 공연.

 

지난 달 마지막 날에 철원에서 공연을 했었다. 그리고 두어 주 넘게 시간이 흘렀다.

공연은 월요일이었고, 이틀 전 밤중에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었기 때문에 거리엔 무거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원래의 연주할 목록을 전부 바꾸어 어쿠스틱 기타 위주로 차분한 곡들을 새로 골라 연주하기로 했다. 의자에 앉아서 공연 전체를 연주해본 것은 몇 년 만의 일이었다. 작은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도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았다.

세월호를 기리는 실리콘으로 만든 노란 리본을 악기 가방에 매달고 다닌지 여덟 해가 지나가고 있다. 악기 가방에 붙어있는 노란 리본이 유난히 기운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2022년 10월 17일 월요일

아내의 그림


 아내가 집에서 그려왔던 그림들 중 한 점이 그림전시회의 벽면에 걸렸다. 집에서는 아무렇게나 바닥에 쌓아둔 그림들 틈에 있던 고양이 에기의 초상이 전시되어있는 곳에 아내와 함께 갔다.

아내의 그림은 공간 안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마땅한 조명도 없이 걸려있었다. 큐레이터 역할을 맡은 그림 선생이 처음엔 아내의 그림을 더 좋은 위치에 전시하도록 했었는데 어느 남자노인이 그 자리에 제것을 걸겠다며 성을 내고 떼를 써서 아내가 양보해줬다고 했다. 잘한 일이다. 그런 정도의 내면을 가진 분의 소원 쯤은 들어줘도 된다.

후미진 구석 그림자 진 벽 위에 우리와 함께 살았던 고양이 에기가 생전 모습 그대로 늠름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아내의 그림은 그곳에서 쉽게 눈에 띄었다. 나는 그림 옆에 쑥스러워하는 작가를 서게 하고 사진을 찍었다.

붓을 잡지 않고 지냈던 시간이 많았지만 아내는 그림 그리는 일을 멈추지는 않았다. 일부러 말을 꺼내어 그림에 대한 대화를 해본 적은 없다. 오가다 그림이 보이면 잠깐 서서 구경하곤 했을 뿐. 그의 기억, 감정, 느낌들이 꽃이 되거나 고양이로 변하여 여전히 방구석 여기저기에 놓여져 있다. 지난 주엔 큰 화방에 들러 캔버스와 붓 몇 개를 사고, 나는 연필 세 자루를 샀다.

그리고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고 있다.



2022년 10월 14일 금요일

낮에 했던 일

 

낮에 세 가지 일을 하려고 외출했다. 정비소에 가서 우선 자동차 전조등을 교환했다. 정비공장 사장님은 무척 빠르게 전구를 갈아줬다. 13년이 된 자동차는 그동안 고장 한 번 없이 나를 잘 태우고 다녀준다. 몇 개의 부품을 교환하고 정기적으로 정비해준 것 밖에 없는데 아무 것도 속썩이는 일이 없는 차여서 아주 정이 들었다.

그 다음엔 머리를 깎으려고 했는데 미용실에 사람이 많았다. 잠시 주차해두고 기다릴만한 곳도 없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며 전화를 걸어 아내를 불러냈다. 가을, 초겨울에 입고 다니던 옷이 십일년이 되었는데 많이 낡지 않아서 한참 더 입을 수 있지만 너무 무거웠다. 가벼우며 보온이 되는 옷이 필요했다. 내일과 다음 주 토요일엔 밤 시간에 야외에서 연주해야 하니까 악기를 메어도 불편하지 않은 외투를 한 벌 사기로 했다.

아내와 국수집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고 (아내는 나 때문에 물감이 묻은 붓들을 세척하고 나와야 했다) 아웃렛 매장을 돌아다니며 펠트 재질로 된 운동화와 외투 한 벌을 샀다. 신발도 옷도 가볍고 따뜻할 것 같았다. 함께 가준 아내가 내 마음에 들만한 것을 나보다 먼저 발견해줬다.

내일은 많이 추운 기온은 아니라고 했다. 공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늦어도 자정 무렵일 것이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은 후 축구중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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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4일 화요일

가을

 



비가 그치더니 갑자기 추워졌다. 나는 언제나 가을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는데, 내 부모가 나이 많은 노인이 되니 가을공기를 마시는 기분이 이전과 같지 않다. 모친은 작년에도 빛바랜 나뭇잎을 보며 탄식같은 한숨을 쉬었었다.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 내 모친의 등과 어깨는 전보다 더 쇠약해진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무거웠던 것을 내려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난 주에 노인은 혼자 하는 말처럼, "벌써 단풍이 들면 어떻게 해"라고 했다.

이 홈페이지, 혹은 블로그는 이제 이십년이 되었다. 나는 이십년 전 가을을 기억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즈음의 기억들이 어디론가 휘발된 것처럼 부분부분 지워져 버린 것을 알게 됐다.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던 다양한 부정적 감정이 가득한 그 가을에 대한 기억이 어찌된 일인지 더듬어보아도 서로 연결되지 않고 순서대로 떠오르지도 않는다. 괴로움, 외로움, 상실감, 배신감, 분노, 슬픔, 불안 같은 것이 내 속에 단단하게 뭉쳐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여름이 지나고 찬바람 냄새를 맡을 즈음이면 한동안은 그 시절 그 감정의 흔적이 흉터처럼 만져지곤 했다. 이제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혼자 멍하니 앉아 노란 단풍잎의 빛을 쬐던 가을날 오후의 세상만 기억 속 어딘가에 남았다. 감정이 무뎌지니까 계절을 다시 만나도 전과 같지 않고 서로 서먹하다.

여전히 가을이면 외롭고 멀리 떠난 고양이들을 그리워하고 뵐 수 없는 분들을 생각하며 슬퍼하긴 하지만, 우울했던 세상 가운데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알 수 없는 감정, 이유없이 안심하던 낙천적인 기분은 없어졌다. 내 부모는 많이 늙었고 나도 스스로 나이들었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은 오지도 않았는데 창문을 드나드는 바람소리에 지레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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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일 토요일

시월

 


시월이 되었고 밤엔 춥다. 가을이 문앞에 와있다.

수요일에 시골집에 가는 길엔 벼를 모두 베어버린 텅빈 논을 보았다. 노란 빛을 띠는 들판도 보았다. 시골집 뒤뜰엔 밤이 잔뜩 떨어져 있었다.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송이들이 수염을 깎지 않은 남자의 입처럼 헤벌레 벌어진 채로 별 뜻 없는 말을 하듯 밤알들을 뱉어 놓고 있었다.

무덥고 습했던 여름날에 나는 머지않아 더위가 끝나고 찬 바람이 불 것을 알고는 있었다. 쉰 번을 넘도록 겪어온 가을이 막 시작하려는 지금, 어쩐지 처음 당해보는 슬픔 같은 감정을 느낀다. 계절을 마주하는 일은 어쩔 수 없는 것인데 여전히 서글픈 이유는 결국 해내지 못한 일들만 지나온 길에 줄지어 떨어져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뒤돌아보면 이루지 못한 일들이 여기 저기 버려져 있다.

해가 지는 것을 보며 아내와 국도를 달릴 때 하늘빛이 처연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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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20일 화요일

좋은 음악

조슈아 레드맨과 그의 친구들이 새로 낸 앨범이 좋아서 여러번 들었다. 지난 십년 동안 새로 등장하여 활동하는 재즈맨들의 재즈와 격이 다른 앨범이다. 그나마 진지한 재즈를 하고있는 거의 끝 세대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재즈의 과거를 만들어왔던 연주자들과 비교하면 근래에 등장한 세대들의 연주는 어쩐지 오래 듣고있지 않게 된다. 다양한 스타일들이 자연스럽게 섞이다보니 더 깊은 사색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심도 든다. 그런 중에 오십대에 접어든 연주자 네 명이 녹음한 앨범 LongGone이 반갑다. 러닝타임이 47분인데 앨범의 제목에 EP라는 표시가 있었다. 스트리밍 시대엔 오십여분 되는 분량도 EP인건가.

이번 쿼텟의 멤버들인 브라이언 블레이드, 크리스챈 맥브라이드, 브래드 멜다우 모두 조슈아 레드맨이 데뷔할 때에 함께 했던 친구들이다. 90년대에 그들이 등장했을 때에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젊은 그들에게 환호했었다. 삼십여년 동안 그들은 이제 각자의 위치에서 중요한 연주자가 되었다. 그들이 함께 연주한 앨범이 좋지 않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생각이 나서, 똑같은 쿼텟 편성으로 1987년에 브랜포드 마살리스가 녹음한 앨범 Random Abstract를 찾아 들어보았다. 나는 그 앨범을 과거에 CD로도 구경해보지 못했다가 애플뮤직에서 발견하여 얼른 보관함에 담아두었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케니 커클랜드가 참여했던 음반이었다. 삼십년 전 마살리스 형제들이야말로 재즈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젊은 재즈맨들이었다. 앞의 것과 비교하자면 그 어린 나이에 브랜포드 마살리스가 발표했던 35년 전 앨범이 지금 막 나온 현재의 거물 재즈맨들의 것보다 (적어도 나에게는) 훨씬 뛰어나게 들렸다. 브랜포드 마살리스 쿼텟을 듣고 난 뒤엔 이 앨범이 재즈이고 조슈아 레드맨 쿼텟의 앨범은 재즈로부터 태어난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연주자의 재능과 기술의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시대가 만드는 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음악이 연주되어지고 녹음되어졌던 시간이 만들어낸 간격이고, 고작 몇 십년이라는 차이는 나중엔 아무 차이도 아니게 될 것이다. 나중이 되면 그냥 좋은 음악과 아닌 음악의 차이만 남겠지.



2022년 9월 16일 금요일

부산으로.

 



공연은 다음 날인 토요일. 하루 전에 부산으로 가서 하루를 자기로 했다. 단독공연에 가지고 다니는 악기와 짐이 많아져서 모두 자동차에 싣고 아내와 함께 출발했다.

우리가 고양이들을 집에 남겨둔채 하루 이상 집을 비웠던 것은 3년 전에 딱 한 번이 전부였다. 사료와 물을 충분히 마련해주고 집에서 나왔지만 나이든 고양이들이 빈 집에서 잘 있을지 계속 걱정하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들여놓고 근처에 있는 아내의 친구집으로 향했다. 아내는 그곳에서 하룻밤 묵기로 되어 있었고 나는 호텔에서 푹 쉰 다음 공연장으로 가려는 계획이었다. 장거리 운전을 했더니 다시 운전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아내와 함께 걷기로 했다. 친구의 집은 그곳에서 1킬로미터 거리에 있었다.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느릿느릿 걷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피로가 풀리며 기분이 상쾌해졌다.

나 혼자 다시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해가 저물고 있었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굳이 하루 전에 먼길을 왔으니 다음날 공연을 좋은 몸 상태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피로를 풀며 가지고 간 공책과 펜으로 글쓰기를 하다가 깊은 밤이 되었다. 허기를 느껴서 잠을 못자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와서 먹은 것이 그만 배탈이 나버렸다. 새벽에 잠을 설치고 창 밖을 보면서 집에 두고온 고양이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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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29일 월요일

여름이 다 지났다

 

 

여름이 지나가고 밤 기온은 섭씨 19도. 수요일엔 17도까지 내려간다고 예보에서 들었다.

여기의 여름은 언제나 심하게 더웠다. 20년 전, 30년 전에도 독하게 더웠고, 태풍이 지나갔고, 큰 비가 내렸었다. 사람들은 더위가 점점 지독해지고 비도 이상하게 내린다는 말을 하는데, 5년 전, 10년 전에도 지독했고 이상했다. 겨울이 지나가고 다시 옷이 가벼워질 때가 되면 사람들은 방금 지나온 겨울을 몇 년 동안 살아온 듯 말하며 무더위를 과장하는 것 같다. 나는 끔찍하게 더웠던 여름을 수 십 번 겪은 것 같은데.

기온이 내려가니 여름 내내 맨 바닥에 길게 늘어져있던 고양이들이 각자 적당한 공간을 찾아 들어가 눕기 시작했다. 사십여년 된 낡은 가구는 캣타워로 변해버렸다. 이제 학교는 새 학기를 시작했고 열흘 쯤 지나면 추석이다. 무더위는 이상하지 않은데 시간이 점점 더 빠르게 흐르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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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28일 일요일

토요일 아침

 

자고 일어났더니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허리 통증이 재발되어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가는 길에 두 번이나 갑자기 드러누웠다. 조심 조심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바깥의 도로 사정을 볼까 하여 베란다에 가보았더니 고양이 깜이가 바람을 쐬며 햇볕을 쬐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고양이는 눈을 꿈벅거리며 잘 잤느냐고 묻고 있었다.



새벽에 집 주차장에 도착한 뒤 애플워치를 들여다 보았더니 여러 개의 경고가 화면에 보여지고 있었다. 세 시간 전 무대 위에서 소음 레벨이 100 데시벨에 다다랐었다는 경고였다. 그랬었나, 그렇게 소란스러웠던 것 같지 않았는데.

정오가 되기 전에 밥을 차려 먹고 또 한 번의 공연을 위해 성남으로 출발했다.




2022년 7월 19일 화요일

강릉, 강문, 초당동


 집을 떠나 호텔에서 하루 머무는 일정이 정해졌을 때 당연히 공책과 펜을 가지고 가기로 마음 먹었다. 숙소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가져가지 않았더라면 후회할 뻔 했다.

장거리 운전과 긴 리허설 때문에 피곤했었는데도 호텔 방 안의 책상에서 글을 쓸 때 눈이 아프지 않았다. 책상용 스탠드 조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내 방에서는 밝게 불을 켜놓아도 그림자가 생기고, 한 두 장 종이를 채우면 눈물이 나며 눈이 따갑고 아프다. 밝기와 빛의 색이 괜찮은 조명 한 개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방에서 내다 보이던 풍경은 넓은 논이었고 해송들이 군데 군데 모여 앉아 있었다. 어릴 적부터 그곳에서 그 소나무들을 보아왔는데, 언제나 흐트러진 차림으로 기대거나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강릉이라면 바다 보다도 늘 소나무들이 좋았었다.

지금은 잘 포장된 도로가 길게 늘어져 있어서 옛날의 해변 모습은 아니지만 나는 그곳을 한 여름에 맨발로 걸어다니기도 했었다. 바다에서 나와서 대충 샤워장 물을 끼얹고, 젖은 옷과 몸 그대로 호수를 끼고 돌아 걸으면 한 여름 볕과 바닷가 바람에 어느새 옷이 바짝 말라 있었다. 높은 방에서 창 밖을 내려다 보다가, 대충 육십여년 전에 저 길을 걷고 있었을 내 아버지를 한 번 상상해 보았다.




2022년 7월 13일 수요일

병실에서

 

전날 저녁부터 새벽, 퇴원 수속을 할 때까지 환자는 계속 난동을 피웠다.

나는 꼬박 서른 여섯 시간 동안 깨어있어야 했다. 음식을 먹으면 졸음이 쏟아질까봐 굶었다.

거울을 보면 내 얼굴에서 잔주름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을 알게된다. 나는 나이 들었고 이제 늙기 시작한지 오래다. 내가 나이 든 것을 느낄 땐 내 부모가 늙어있는 사실이 뒤따라 떠오른다.

올해부터 내 모친은 부쩍 늙었다. 엄마를 만나면 더 지쳐보이는 어깨와 눈빛이 먼저 보인다. 엄마가 걷는 모습을 보면 끝나지 않은 고단함의 무게를 간신히 버티며 위태롭게 다른 발을 앞으로 옮기고 있었다. 갑자기 그의 주변에만 중력이 늘어난 것처럼, 작아진 몸이 무거워진 공간을 어쩔 수 없이 견디는 모양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내 아버지 곁에서 하루 혹은 이틀을 시달리며 보낸 뒤에, 내 모습도 잠시 엄마의 모양처럼 보였다.

새벽에 예상했던 부친의 큰 난동이 벌어졌고, 나는 그동안 경험이 쌓인 덕분에 잘 대처할 수 있었다. 노인은 소란스럽고 추한 언동, 자기에게 상해를 입힐 수 있었던 심각한 소동을 벌였다. 내가 오염된 환자복과 시트를 처리하고 돌아왔더니 노인이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소리를 지르고 발길질을 하며 에너지를 썼으니 노곤해진 모양이었다.

퇴원한 뒤에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는 길을 달려 부친을 집에 데려다 놓았다. 내 모친에게 다시 곤란한 어떤 것을 떠맡기는 기분이 들었다. 모두의 삶은 고단한데, 특별히 어떤 존재는 타인의 삶을 갉아 먹으며 생을 유지한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여섯 시간을 자고 깨어났다. 다음 주에 다시 부친을 데리고 진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야하는 날짜를 달력에 표시해두고, 커피를 아주 진하게 내려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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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9일 일요일

22, Seoul Pen Show


'펜 쇼'에 처음 다녀왔다. 나는 잠을 안 자고 커피 석 잔을 마신 후에 아내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갔다. 행사가 열리는 충무아트센터에서 오래 전에 공연을 했었기 때문에 그곳에 주차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요일 낮 지하철은 쾌적했다.

행사 장소는 넓지도 좁지도 앉은 홀이었는데 오전부터 이미 사람으로 가득했다. 문 밖에서 보이는 것은 온통 사람들, 펜 보다 사람의 숫자가 더 많아 보였다. 성황이었다. 펠리칸 펜들을 잔뜩 진열하고 계셨던 분이 최고였다. 나는 그 앞에 세 번이나 가서 제일 오래 머물렀다. 사람들이 가득하여 비좁았기 때문에 마냥 그 자리에 눌러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몇 개 집어들고 잉크를 찍어 써보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잘 참았다. 종이에 몇 줄 선이라도 긋기 시작했다면 분명히 한 개 정도는 사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처음 가보는 행사였어서 더 그랬겠지만 나는 아주 재미있게 구경했다. 아내는 연필깎이를 샀다. 나는 아무 것도 사지 않은 나를 속으로 칭찬했다. 그대신 그동안 사진으로 보았던 펜들을 직접 보며 조금 더 공부해 볼 수 있었다. 가을에 다시 행사가 열릴 때엔 얼마 정도 돈을 챙겨서 갈지도 모르겠다.

행사장 길 건너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왔다. 허리에는 통증이 심하고 졸음이 쏟아져서 힘들었는데도, 오랜만에 걸어다니며 사람 많은 곳을 경험했더니 기분이 좋아졌다. 다녀오길 잘 했다. 혼자였다면 또 귀찮아하며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꺼이 함께 동행해준 아내에게 고마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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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3일 월요일

식구들과 세상에서.

 


천둥소리가 서너 번 들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식구들은 모두 자고 있다. 조용히 걸어가서 열어뒀던 베란다의 창문을 닫고 왔다. 비오는 소리, 스틸 펜촉이 종이 위를 지나가는 소리 사이로 고양이 깜이의 잠꼬대가 들렸다.

올해 초부터 컴퓨터로 글쓰기를 멈추고 만년필을 손에 쥐고 공책에 쓰기를 시작했다가, 그만 펜의 세계라는 수렁에 빠졌다. 어지러운 세상이 되어버려서 한가로이 취미나 즐길 때가 아니라는 자책과 이런 것에라도 몰두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만족이 매번 교차한다.

선거들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우리의 사회가 욕망의 세력과 염치의 세력이 반씩 나눠진 정도는 되는 줄 알았던 것이 그냥 판타지였던 것 같기도 하다. 거창한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평화롭고 안전하게 식구들과 세상을 사는 일이 이제 대단한 일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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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20일 금요일

오후에 친구와.

 


서정원을 만났고, 커피를 주문하여 자리에 마주 앉자 그는 자기가 직접 만든 쿠키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내밀었다. 맛있었다. 그가 혼자 집에서 빵과 과자를 만들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맛보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하지 못하는 일이어서 여러번 감탄해주고 있었다.

친구로부터 그가 최근에 보았던 과학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들었다. 뇌과학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람이 도덕, 규율, 인간성을 배반하는 선택을 반복하다보면 그런 결정이 유발할 수 있는 죄의식이나 미안한 감정에 스스로 무뎌지도록 뇌가 작용하기 시작한다는 이야기였다. 죄의식이라는 감정은 결국 뇌의 주인을 괴롭게 만드는 부정적인 것이기 때문에 뇌에서는 그 반응을 무디게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과학의 성과라고 하니 과연 그랬었군, 하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과학이 밝혀내어 알려주기 이전에도 인간이 그런 형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류는 아마 고대로부터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외에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철학, 규범, 종교의 모습으로 자연이 지닌 본래의 이기심에서 진보하고자 하는 노력은 더디지만 멈춘 적이 없었다. 그렇게 애쓴 결과 겨우 요만큼일 뿐이지만 여기까지라도 온 것 아닐까. 가장 쉽고 무책임한 행위는 그저 남을 탓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올해가 되어 처음 만났던 오랜 친구로부터 얻게 되었던 교훈이었다. 그리고 쿠키는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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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30일 토요일

재즈

 


(4월 29일 금요일 밤)

내일 연주할 곡들을 계속 연습하다가 유튜브에서 유명한 연주자들의 라이브를 구경하고 있었다. 이번에 연주할 곡들은 내가 외우고 있는 곡들이 대부분이어서 조금 더 음악적인 것에 집중을 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재즈 연주 영상들을 찾아 보고 있으니 잊고 지냈던 스윙 리듬의 기분이 돌아오고 있다.

Arturo Sandoval 의 십년 전 연주 영상을 보면서 아주 옛날 대학로에 매주 구경하러 가서 라이브를 보며 혼자 공부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당시에 나는 막막했던 미래에 대한 걱정, 무엇부터 먼저 시작해야 좋은지 알 수 없는 때였다. 아무라도 악기를 다루는 사람을 보면 다가가 인사를 하고 대뜸 질문을 해대었다. 내 성격에, 좀처럼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 연주자 선배들은 뭔가를 묻고있던 어린애가 기특했는지 귀찮아하지 않고 나에게 뭐라도 알려주고자 설명하곤 했는데, 문제는 그들은 자기가 알고있는 것을 가르쳐 본 경험이 없어서 쉽게 설명하지 못했고 나는 너무 아는 것이 없어서 그분들의 친절한 설명을 알아듣지 못했다. 리얼북 한 권을 제본하여 들고 다니며 연주자들 앞자리에 책을 펴놓고 소절을 따라가며 보고있기도 했다. 요령도 없이 무식하게 혼자 배우고 있었던 시절의 기억이 갑자기 많이 떠올랐다.

(4월 30일 토요일 밤)

서교동 골목의 가게에서 연주를 했다. 어제 악보를 보며 연습해두길 잘했다. 오랜만에 비좁은 공간에서 베이스 헤드를 드럼의 라이드 심벌에 부딪히며 워킹을 할 수 있었다. 낯설은 장소, 부자연스런 무대였는데도 재미있었다. 오랜만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다른 것을 잠시 잊고 베이스만 칠 수 있어서 좋았다.

그 동네는 이제 판데믹이 끝나버린 것처럼 사람들이 많이 다녔다. 연주를 마치고 얼른 악기를 챙겨 부모님 집에 들러야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Romain Pilon 의 몇 년 전 앨범을 들으며 운전했다.



2022년 4월 18일 월요일

글 모음

 


이번 생일에 아내가 만년필을 선물해줬다. 부담없고 가벼운데 품질도 좋다. 이 달에는 이 펜으로 많이 썼다.

펜으로 써둔 것이 늘어나고 있어서 공책의 글들을 텍스트 파일로 저장해 보려고 방법을 찾아보았다. 아이폰 카메라에 비춰진 손글씨를 인식하여 번역할 수 있으니 손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스캔하거나 촬영한 이미지 파일을 구글에서 열면 가능했다. 필기한 글씨를 인식하는 정확도도 훌륭했다. 너무 알아볼 수 없게 흘려 쓰지 않는다면 손글씨를 텍스트 파일로 바꾸어 저장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PDF 파일로도 바꿀 수 있는데, PDF 문서에서도 단어별로 검색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더 생각해보니 매일 써둔 글들은 이미 너무 많고 앞으로도 그것들을 일일이 촬영하거나 스캔하여 잘못 인식된 글자를 고쳐서 분류하고 저장하는 것은 좀 바보같은 짓 같았다. 시간을 많이 빼앗길 것이고 그러느니 처음부터 컴퓨터로 쓰는 것이 낫겠다. 그래서 처음으로 돌아와 공책은 공책대로, 블로그에 담아둘 것이나 생기면 컴퓨터로 쓰기로 했다. 뭐 대단한 기록이라고, 더 단순하게 살아도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