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31일 일요일

올해 들었던 음악들

2월에 소니에서 나온 워크맨 (음악파일 재생기기) 을 사고, 헤드폰과 이어폰도 새로 샀다. 맨 처음엔 신이 나서 그동안 보관했던 낮은 비트율의 파일들은 지우고 가지고 있는 시디들을 열심히 무손실 음원으로 새로 저장했었다. 그것도 나중엔 힘이 들어서, 생각 날 때에 한 두 장 정도 변환하거나 했다. 그래도 좋은 음질로 하루 종일 음악을 들으며 다니는 것이 참 좋았다.

일상 중에 가장 자주 듣는 음악은 보통 오래된 음악들이다. 수 없이 반복하여 들어 왔어도 또 찾아 듣게 되는 음악들은 빼고, 올해에 새로 듣게 되었던 음반들을 정리해 봤다.


이 앨범은 작년에 나왔던 것인데 나는 올 봄이 되어서야 듣게 됐다. 빌 프리셀의 기타와 제럴드 클레이튼의 피아노가 조화롭고, 그레고리 타디의 테너 색소, 클라리넷이 아름답게 들렸다. 이제 제법 나이 든 조나단 블레이크의 드럼도 좋았다. 다섯번 째 곡 Waltz for Hal Willner를 여러 번 들었다.

어우, 메탈리카의 72 seasons 앨범이 나온 날부터 시작하여 몇 달 동안, 정말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며 이 앨범을 들었다. 걸으면서 듣고 운전하며 듣고 잠깐 쉴 때에 한 곡씩 들었다. 더 좋아진 앰프 톤도, 곡과 앨범의 구성도 전부 다 좋았다. 한 시간 이십 분 정도인 길이가 길지 않게 느껴졌다. 투어가 시작된 후에는 한동안 그들이 유튜브에 올려주는 라이브 영상을 꾸준히 보았다. 과거에 냅스터와 소송도 했던 메탈리카가 매우 좋은 품질로 자신들의 라이브 현장을 보여주고 있으니 세월의 차이를 느끼기도 했다.
일흔 두 번의 계절은 햇수로 18년. 그들의 인연을 이야기 하는 이 앨범제목과 상관 없는 이야기이지만 내가 김창완밴드의 리더님을 만나 처음 연주했던 것이 18년 되었다. 그분과 나는 열 여덟살 차이가 나니까, 그 때 리더님의 나이는 지금의 내 나이였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

밥 제임스의 새 앨범은 일종의 예의로 몇 번 들었다. 죄송하지만, 이 분은 Fourplay 이후 몇 년째 동어반복 중인 것 같다. Chuck Loeb이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Fourplay 활동이 계속 이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밥 제임스는 그 포맷으로 아직 더 들려줄 것이 많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화가 중에도 같은 주제로 계속 똑같아 보이는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있듯이, 동어반복이라고 해도 항상 새로운 느낌을 주는 음악가 중에 Jeff Lorber 가 있다. 그는 작곡, 연주, 녹음 등에 있어서 언제나 적절한 선을 유지하고 있다. 지미 하슬립과 함께 하는 것이 더 할 나위 없이 좋고, 몇 곡에서는 제프 로버 본인이 리듬 기타를 치고 있는데 그 연주도 좋다. Marc Lettieri의 기타 연주도 좋았다. 드럼은 게리 노박.

제스로 툴의 새 앨범이라니, 깜짝 놀랐다. 제목은 독일어처럼 조어해 놓았지만, 누가 보아도 Rock Flute 이다. 이안 앤더슨은 뭐 다른 의미가 있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잊어버렸다. 열 두 곡 모두 이안 앤더슨의 작곡과 노랫말로, 첫 곡의 나레이션을 듣고 나면 두번째 곡부터 '록 플룻'이 펼쳐진다. 전조, 변박, 연극같은 구성은 여전하고, 노인이 된 록커가 이제 힘을 빼고 편안하게 노래하는 목소리는 매력적이다. 여름까지 메탈리카의 앨범과 함께 가장 많이 듣고 있었다.

손열음이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열 여덟 곡을 담은 앨범을 녹음했다는 기사를 읽었었다. 작년에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녹음했고, 올해에 앨범이 공개됐다. 전부 여섯 시간 반 정도 되는 길이이다. 나는 순서대로 며칠에 걸쳐 듣고, 한동안 뭔가를 쓰고 있을 때 계속 틀어두고 있었다. 내 편견이지만, 최근 인기 있는 남자 연주자들의 연주보다 손열음의 피아노가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트리오 실내악 음반을 찾다가 이 트리오의 앨범들을 듣고 있게 됐다. 브람스 Opus 8과 에른스트 크레네크의 곡이 담겨있다. 46분 길이로, 듣기에 편안하고 듣고 나면 조금 착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브래드 멜다우의 클래시컬 음악 앨범이다. 영국 테너 가수 이안 보스트릿지와 듀엣으로 연주했다. 멜다우의 작곡은 재즈일 수도 클래시컬일 수도 있는데, 테너의 목소리가 섞이니 쟝르의 경계 어딘가에 있는 세계 같았다. 노랫말은 블레이크, 예이츠, 셰익스피어, 괴테 등의 시에서 가져왔다. 노랫말이 함께 제공되지 않아 음악을 들으며 가사를 볼 수 없었지만, 가사를 읽으며 듣는다고 해도 내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지 자신 없었다.
이 음반은 멜다우가 직접 밝히길, 'MeToo의 시대에 성적인 자유의 제한'에 대한 앨범이다. 이 음반에 관한 한글 기사라고 할 것은 읽어볼 수 없었다. 어차피 나처럼 그 시어를 제대로 읽고 듣지 못하니까 국내의 음악 글 쓴다는 사람들도 주목하지 않은 것이거나, 섹슈얼 프리덤이니 하는 말은 지금의 시대에 하지 않는 것이 낫기 때문에 아무도 안 쓰는 것 아닐까.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이 앨범으로 보냈다.
유월에 써둔 것이 있으니 그것으로

에릭 클랩튼의 21세기 첫 십년 사이의 Rarities 앨범이 나왔고, 듣고 있는 동안 눈이 동그랗게 되어 있었다. 첫 곡이 무려 Johnny Guitar 였다. 그 뒤로 이어지는 블루스 음악이 갑자기 나를 과거의 어디로 데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곡마다 각각 다른 시기에 따로 녹음한 것인데 어떻게 한 것이길래 마스터링이 완벽한 걸까, 하고 놀라기도 했다. 기타 연주도, 노래도, 다른 악기들의 입체감도 매우 좋았다.
그리고 돌아가신 Jeff Beck과 함께 연주했던 Moon River가 애니메이션 비디오와 함께 공개되었고, 하루 이틀 동안은 그것을 여러 번 돌려보고 다시 들었었다.

쳇 베이커, David Liebman과 연주했던 피아니스트 Richie Beirach 가 아직도 연주하고 있었는지 몰랐다. 검색해 보니 David Liebman 과 그는 한 살 차이였다. 두 분 모두 이제 일흔 후반 정도이니까, '아직도' 라는 말은 삼가야 옳겠다. 오래 전부터 활동했던 음악인들을 떠올리면 막연히 여든 아흔 가까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 앨범은 사실 드러머 빌리 하트의 이름이 있어서 얼른 골라 들어보았는데, 알고 보니 무려 이십년 전에 나왔던 음반이 애플뮤직에 무손실 음원으로 새로 올라와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 앨범이 있는 줄 몰랐었으니까, 올해 처음 들어본 음악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리치 베이릭 (이렇게 발음하는 것 같다)이 쉰 다섯이었을 때에 녹음한 것이므로 이것은 그의 젊은 시절 연주라고 해도 좋겠다. 음원의 음질이 좋고, 스탠다드 넘버들이 듣기 좋다. 바이올린이 추가된 트랙도 있다.
이 분은 작년에도 솔로 피아노 음반을 냈다고 하는데, 그것은 들어보지 못했다. 2018년에 나왔던 David Liebman과 듀엣으로 녹음한 앨범 Empathy 는 참 좋았었다.

갑자기 ECM에서? 라는 의문으로 존 스코필드의 새 앨범을 듣기 시작했다. 앨범 제목은 Grateful Dead의 곡 제목이고, 수록곡들은 밥 딜런, 닐 영, 레오나드 번스타인, 마일스 데이비스의 넘버들까지 분별이 없... 아니지, 다양하다. 빌 스튜어트의 드럼이 듣기 좋았다. 존 스코필드의 기타 연주는, 이젠 저 위의 경지라는 것에 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 앨범을 많이 듣지는 않았다. 어쩌다가 생각이 나면 랜덤 플레이로 놓고 틀어두는 정도였다. 좋은 앨범인데 올해엔 자주 들을 앨범이 아니었나 보다. 지금은 그냥 두고, 나중에 더 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Incognito의 새 앨범이 등장했다. 이렇게까지 부지런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꾸준하고 여전한 팀이다. 인원이 많아서 움직이기 무거울텐데 라이브 연주도 일년 내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자주 내고 있는 앨범마다 몇 곡은 또 훌륭하다. 일제 베이스를 쓰는 프란시스 힐튼의 연주는 언제 들어도 기분 좋다. 어쩜 이렇게 안정적으로 잘 치는 거지.
그러나 노래가 있는 이런 류의 팝 음악을 자주 듣지 않게 되어 많이 들어보진 않았다. 최근에 블루투스 수신기를 새것으로 바꾸고 나서 장거리 운전을 할 때에 큰 음량으로 몇 번 들었었다. 좋긴 좋은데, 열 여섯 곡은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약간 부끄럽지만, 친구들과 함께 하고 있는 밴드의 새 음원 두 곡이 나왔다. 9월에 녹음했고 겨울에 발매했다. 이번엔 산울림의 곡들이어서 올해 초에 밴드 리더님에게 우선 말씀을 드리고, 녹음을 한 뒤에 '개작동의서'를 내밀며 서명도 받았다. "재미있게 했더라"라고 서너 번 말씀해주셨는데, 윤병주는 좀 더 강한 추천의 말씀을 요구해보라고 하기도 했다. 내 생각엔 원작자가 이렇다 저렇다 언급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아닌가)











 



올해의 마지막 공연

 

나는 지난 군산 공연을 마치고 스태프들에게 내 악기를 맡겼다. 그 덕분에 하루 전에 제주에 올 때에 가방 한 개만 들고 다닐 수 있었다. 페달보드에서 컴프레서 한 개만 떼어 내어 새로 건전지를 넣어 가져왔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악기의 네크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나머지 멤버들이 비행기를 타고 날고 있을 무렵 나는 준비를 마치고 대기실에서 잠깐 쉴 수 있었다.

올해엔 모든 공연에서 이펙터 순서를 바꿔가며 페달보드를 사용했다. 오늘은 발 앞이 텅 비어있으니 옛적 언젠가로 돌아가 연주하는 느낌이 들었다. 맨 처음에 클럽에서 연주할 때엔 아무 것도 연결한 것 없이 악기의 노브들만 가지고 음색을 바꿔가며 연주했었는데, 그 때 기억이 났다.

그러고 보니, 시월에 일본에서 연주할 때엔 컴프레서 조차 없이 연주 했었다. 그 땐 소리가 좋지 않아 두 배로 힘들었었다. 오늘은 내 악기의 소리도, 음향도 모두 좋았다. 두 시간 십분 동안 소리를 즐기며 연주할 수 있었다. 드라이브 페달을 가져오지 않은 대신에 공연 뒷부분은 피크로 연주했다.

한 해의 끝날에, 한 해의 끝 공연을 잘 마쳤다. 올해에 분주하게 많이 다녔다. 모든 일정을 아무런 오류 없이 잘 마칠 수 있어서 약간 뿌듯했고, 무대에서 악기를 챙겨 공항으로 향하는 승합차에 탈 무렵부터 어쩐지 몸이 으슬거리고 아프기 시작하여 기분이 안 좋았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도착하여 다음날까지 오한과 몸살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해열제를 먹고 더운물 안에 들어가 곰곰 생각해보니 앞의 이틀 동안 나는 감기에 걸릴 만한 짓을 했던 것 같다. 모든 일정을 마친 후에 긴장이 풀어져서 그랬을 수도 있다. 나는 아파서 끙끙거리며 신음을 내며 바가에 뒹굴고 있었다. 간신히 몸을 가누면서 그래도 모든 일을 마친 뒤에 아파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2023년 12월 30일 토요일

제주에서

 

아내가 사진을 보내줬다.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다더니 정말 내가 사는 동네에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잠깐 베란다에 나와 눈 구경을 하다가, 이내 따뜻한 곳을 찾아 집안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호텔에서 나왔을 때 제주의 기온은 영상 13도. 나는 외투를 벗어 팔에 끼우고 공연장까지 걷기로 했다. 반팔 셔츠만 입었는데 땀이 났다. 이십여 분 걷다가 길가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다시 이십여 분 걸었더니 공연장에 도착해버렸다.
이것도 집에 돌아온 다음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그날 반팔 셔츠를 입고 걷다가 그늘을 만나면 선뜩했던 것이 전부 감기몸살을 제대로 앓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눈에 익은 이름이 적힌 차량들이 보였다. 우리 밴드의 공연 전반을 책임져 주는 이 팀은 제주도가 본거지이다. 그동안 전국을 돌며 공연을 할 때마다 그들은 배를 타고 육지에 도착하여 긴 시간 차량으로 이동하는 강행군을 하였다고 들었다. 이번엔 그분들의 '홈타운'에서 공연하는 것이어서 어쩐지 스태프들 모두 여유롭고 기운이 넘쳐 보였다. 한 해 동안 최선을 다 해준 그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들은 오히려 밴드 멤버들에게 선물을 준비해줬다.




2023년 12월 29일 금요일

제주로 출발

 

아침에 혼자 제주로 출발했다. 공항에 도착할 즈음 비행기 이륙시간이 미뤄졌다는 알림을 받았다. 시간이 생겨서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탑승구 앞 간이 식당에서 어묵 우동을 사 먹었다. 식당에서는 질 낮은 음원의 수준 낮은 가요를 무선 스피커로 찢어질 듯 틀어 놓아서 음식을 먹는 내내 괴로웠다. 화장실에 갔는데 그곳에서도 천장에 달린 스피커로 매우 나쁜 음질의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있었다. 나는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피로해져서 탑승구 앞 의자에 털썩 앉아 있었다.

호텔 객실엔 마음에 드는 조명과 책상이 있었는데, 탁상용 조명이 고장이 나 있었다. 그것을 교환해주러 왔던 직원은 굳이 문 앞에서 구두를 벗고 방 안에 들어왔다. 나는 그것이 불편하여 신발을 벗지 않아도 좋다고 세 번 말했지만, 그는 '아닙니다'를 두 번 말하고, 세 번째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그를 불편하게 한 것 같아 더 말하지는 않았다.

하루 먼저 왔으니 푹 쉬고 다음 날 활기있게 움직이려 했는데, 어쩐지 잠들었다가 추워서 깨어났다. 더운물로 씻고 새벽에 다시 잠들었다. 집에 돌아와서야 알았지만 그 때 쯤부터 감기 기운이 있었던 것 같다.


2023년 12월 24일 일요일

군산에서 공연.


 군산 예술의 전당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악기를 설치했다. 사운드체크를 할 때에 음향 담당 스태프가 내 악기에서 전기 소음이 나고 있다고 알려줬다. 나는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염민열에게 도움을 청했다. 민열이가 기타를 내려 놓고 다가와 내 악기들을 점검해줬다. 전기적 잡음의 원인을 그는 금세 찾아 냈다. 나는 문제가 있는 페달을 빼어 버리고 연주하기로 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스태프가 잡음이 나고 있다고 말해주기 전까지 그것을 듣지 못했다. 웅크리고 앉아 캐비넷에 귀를 대고서야 겨우 알았다. 내 오른쪽 귀가 높은 주파수를 잘 듣지 못하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 양쪽 귀 모두 그런 것 같았다.

이번엔 곡 순서 때문에 악기를 두 번 번갈아 사용했다. 첫 곡을 시작할 때 소리가 이상하여 한 번 더 당황했다. 리허설 때에 잡음 문제를 해결하느라 이것 저것 해보다가 앰프의 Bright 버튼을 눌러놓았던 모양이었다. 그나마 그것을 빠르게 발견하여 연주를 하면서 뒤돌아 슬쩍 버튼을 오프 시켜 놓을 수 있었다.
두 시간 공연을 마치고 주차장에서 자동차 시동을 건 다음 잠깐 눈을 감고 쉬어야 했다. 집으로 출발할 때에 다시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중간에 한 번 차를 멈추고 찬 바람을 쐬며 걷다가 다시 운전했다. 이제 올해의 일정은 주말에 있을 제주도 공연 하나만 남았다.


군산으로.


 자정에 토트넘과 에버튼 경기중계를 보고 잠을 충분히 못 잔 상태로 집에서 출발했다. 도로 상태가 나쁠까봐 걱정하면서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논산천안 고속도로에서부터 눈발이 날리더니 서천공주 고속도로에서부터는 폭설이 시작됐다. 14년 전 12월 20일에 새만금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날은 출발부터 도착할 때까지 눈을 맞으며 달렸었다. 그리고 눈이 내리고 있는 야외에서 연주를 했었다. 나는 왼손에 장갑을 끼고 베이스를 쳤던 것이 기억 났다. 그게 벌써 14년 전 일이었다니.

2009년 12월 20일, 새만금

군산 톨게이트에 다다르고 있을 때에 왼쪽으로 번호가 익숙한 자동차가 지나갔다. 앞질러 지나가던 차량에서 내 차를 알아보신 리더님이 전화를 했다. 그렇게 우연히 만나 리더님이 일러주신 식당으로 따라가 함께 밥을 먹었다. 식당에서 나왔더니 눈은 그쳐 있었고 어린이들이 쌓인 눈 위에서 놀고 있었다. 아이들은 어차피 서로에게 명중하지 않을 눈을 뭉쳐 던지며 뛰어다녔다. 멀리서 누런 개 한 마리가 차가운 눈을 밟긴 싫었는지 꼬리만 흔들며 아이들이 노는 걸 구경하고 있었다.


2023년 12월 16일 토요일

경주에서 공연


 몇 년 만에 경주 예술의 전당에 다시 갔다. 갑자기 추워진 기온은 견딜만 했는데 센 바람이 무섭게 불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카트에 악기를 싣고 공연장까지 몇 걸음 이동하는데 맞바람에 악기가 넘어질 뻔했다.

오늘은 셋리스트 앞 부분에 필요한 연주를 위해 다섯줄 펜더 재즈를 가지고 나왔다. 무대 위의 음향이 좋았다.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사운드체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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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동안 자주 긴 시간 운전을 하고 여러 장소를 다니며 밴드 투어를 했다. 이제 경주 공연을 끝으로 두 번의 일정이 남아있다. 



2023년 12월 13일 수요일

긴 공연

크라잉 넛과 함께 하는 공연을 위해 공연장에 일찍 갔다. 나는 따로 준비할 것이 있어서 조금 더 일찍 갔던 것인데 다른 사람들도 이른 시간에 모두 모였다. 두 팀이 함께 하다보니 리허설 시간도 길었고 공연 시간도 길었다. 지난 주에 이어 우리 순서 중 절반은 플렛리스 베이스로 연주했다.

14년만에 무대 위에서 함께 연주한 친구들이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모습엔 관록이 묻어났다. 십 몇 년의 세월도 세 시간이 넘는 공연 시간도 훌쩍 지나갔다.


 

2023년 12월 12일 화요일

이지와 동물병원

 

이지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갔다. 진료실에 들어가 혈액검사를 받고 피하수액 주사를 맞고 나온 고양이를 아내는 두 손으로 감싸 어루만져줬다. 당화단백 수치는 더 낮아져서 계속 정상 범위 안에 있었다. 이지는 집에 돌아와 따뜻한 자리에서 잠을 잤다.

2023년 12월 9일 토요일

휴식


 수요일 밤중에 지하철을 타고 서교동에 다녀온 일이 몸을 피로하게 했었다. 악기 가방을 메고 걷는 것은 문제가 없었고 부슬부슬 내리던 비도 반가왔다. 지하철 의자에 앉아 있으면 허리가, 일어서 있으면 발목이 아팠다. 통증을 참는 게 체력을 빼앗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어제 무대 위에서는 견딜만 하였는데 집에 돌아오니 피로가 밀려왔다.

새벽에 깨어나 커피를 마시며 이삼일 미뤄둔 것들을 쓰기 시작했다. 줄리앙 캐논볼 애덜리와 밀트 잭슨의 앨범을 두 번 들을 때 쯤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피곤이 풀리고 기운이 나는 느낌이 들었다.


송년 공연


 해마다 연말에 해오고 있는 송년 공연. 늘 그 해의 마지막 주에 하곤 했었는데 지난 해에 이어 올해에도 12월 첫째주에 공연을 했다.


프렛리스 베이스로 녹음했던 곡이 오랜만에 셋리스트에 포함되었다. 전날 밤에 프렛리스 베이스를 꺼내어 잘 닦고 연습해보며 소리를 확인했다. 리허설을 할 때에 언제 악기를 바꾸어야 할지 곡 순서를 보며 생각하다가, 그냥 앞 부분은 프렛이 없는 프레시젼 베이스로 죽 연주하기로 했다.


무대에 악기를 모두 올려둔 모습만 보면, 이 밴드가 무슨 이국적인 음악이라도 할 것처럼 보였다. 잔향, 흡음 등에 신경을 쓴 공간 덕분에 연주하는 동안 소리가 좋았다.
다만, 이제 두 시간 반 동안 악기를 들고 서있는 것이 조금 무리가 되었다. 다시 의자를 사용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2023년 12월 6일 수요일

합주 연습

다음 주에 예정된 공연을 위해 합주 연습을 했다. 크라잉넛의 본부는 훌륭했다. 한 공간에 남자들만 가득 모여있는 것은 군복무 이후 처음이라고 투덜거려 보긴 했지만. (진심이었다)


 

2023년 12월 2일 토요일

이천 아트홀에서 공연


 반대편 길은 벌써부터 자동차들이 밀리고 있었지만 나는 겨우 오십여분 달려 이천아트홀에 도착했다.

이틀 전부터 어깨와 손가락에 약간 문제가 있어서 오늘은 가벼운 악기로 공연의 절반 이상을 연주하기로 했다. Moollon 재즈는 가볍고 넥 상태가 좋았지만 사운드체크를 할 때 4번 줄의 서스테인이 짧아져 있는 것을 느끼고 조금 당황했다. 벌써 스트링을 교환할 때가 되었다니, 그렇게 많이 썼던가.

펜더 재즈는 새 줄을 감아 놓았고 소리는 항상 좋지만 여전히 넥 상태가 고르지 않았다. 공연의 앞 부분에 부드러운 연주를 해야 할 때 사용했다. 리허설을 할 때 악기와 이펙트 페달에 신경을 쓰다가 그만 모니터 스피커의 음향 상태를 대충 확인하고 넘어가는 바람에 연주를 시작한 뒤에 애를 먹었다. 일부러 챙겨간 피크를 자동차 안에 두고 내려서 피크를 사용해야 하는 곡에서 곤란을 겪기도 했다. 늘 하던 일인데도 잊어먹거나 무심하게 넘겨버리는 일이 꼭 있다.

공연 시작 직전에 주차장에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돌아본 곳에 머리가 하얗게 센 남자가 있었는데,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리는 데에 몇 초가 걸렸다. 어릴 적 이웃하여 살았던 친구가 아내와 함께 공연을 보러 와 있었다. 그가 공연장에 와준 덕분에 이십 오육년 만에 다시 만났다. 무척 반가왔다.


아침에

 

이른 아침. 곱게 갈아 개어서 약과 보조제를 섞은 음식을 아내가 손가락으로 떠먹여주고 났더니 고양이 이지가 편안한 모습으로 쉬고 있었다. 고요한 집안으로 초겨울 햇빛만 요란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살며시 이름을 부르자, 고양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2023년 11월 30일 목요일

준비


 두 주 전에 가까운 곳에 볼일이 있어서 자동차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데 스티어링 휠의 느낌이 좋지 않았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리기 시작했을 때에 뭔가 심각한 것을 느꼈지만 잠깐 멈춰서 살펴볼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십여킬로미터를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앞쪽 바퀴에 아주 큰 못이 박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내가 그것을 보고, "또?" 라고 말했다.

그 날엔 근처에서 우선 타이어를 땜질하고 돌아왔다. 뾰족한 것을 밟는 바람에 타이어가 납작해질 수도 있고 도로를 달리다가 화물차에서 떨어진 작은 돌 때문에 앞유리가 깨질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유난히 그런 일을 자주 겪는다. 이건 주의한다고 하여 피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내가 멍청한 것과 관계가 없다. 이번엔 목포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못을 밟았고,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새벽에 집까지 운전하여 온 모양이었다. 이건 멍청한 것과 상관이 있겠다.

이틀 전에 모친을 모시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아무래도 새 타이어를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예약을 하지 않고 찾아간 바람에 한 시간 넘게 기다려 타이어를 교환할 수 있었다. 쓰고 있던 타이어는 수명이 많이 남지 않아 있었다. 올 겨울에 먼 길을 다녀올 일이 많다. 겨우 타이어를 교환한 것 정도로 뭔가 준비를 많이 한 기분이 들었다.

2023년 11월 29일 수요일

시간은 빠르다.


 미리 주문했던 다음 연도 다이어리 공책은 지난 주에 이미 도착했다.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채워진 올해의 다이어리 공책엔 이제 한 달 분량의 공란만 남았다. 과연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는, 시간이란 것은 정말 빠르다.

조금 한가할 줄 알았던 이 달도 정신없이 쫓기듯이 살았다. 다음 달엔 지난 시월만큼 일정이 많다. 잠깐 한눈을 팔면 내가 뭘 하려고 했던 것인지 기억하기 조차 어렵다. "곧 한가해지니까 한번 만나자"라고 말했던 사람들에게 연락하지 못하고 지나가서 미안하다는 메세지를 보냈다.

어김없이 휘어져서 가습기 가까이 세워 놓았던 재즈베이스의 넥이 돌아왔다. 가습기에 물을 채우면서 쉰 세번이나 겪는 겨울이 여전히 너무 낯설다고 생각했다.

2023년 11월 28일 화요일

어디


 약속 없이 집 앞에 찾아 온 모친의 전화를 받고 자다가 깨어 뛰어 나가서 운전을 시작했다. 나는 좋아하지 않는, 그러나 모친에게는 아마도 소중한 듯한 시골집에 갔다가 평소보다 일찍 노인을 서울집에 모셔다 드렸다. 눈도 잘 보이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고 받는 것은 할 수 없다고 말하던 내 아버지는 저녁밥을 먹지 못할까봐 엄마에게 전화하여 언제 오느냐고 하고 있었다. 도로가 막히지 않아서 이른 시간에 엄마를 집앞에 내려드렸고, 내 부친은 제 때에 저녁식사를 했을 것이다.

오래 운전했던 것도 아닌데 혼자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피로해졌다. 아내에게 전화하여 음식을 포장하여 가겠다고 말하고 강가의 식당에서 비빔국수를 주문했다. 강바람이 저녁하늘 위에 맴돌고 있었다.

사람은 지금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중요한 거라는데, 나는 여태 내가 어디에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2023년 11월 26일 일요일

겨울

 

바닥을 따뜻하게 해줬더니 고양이들이 바닥에 붙어 뒹굴고 있었다. 겨울이 되었다.

열세살 짤이, 열네살 이지는 매일 인슐린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채혈을 하거나 며칠에 한 번씩은 피하수액을 맞고 있다. 스스로 먹지 못하는 두 마리 고양이를 위해 아내는 하루 종일 사료를 갈거나 개어서 묽게 만들어 손가락으로 떠먹이는 생활을 여섯 달째 하고 있다.

일곱살이 된 깜이는 언니들이 함께 놀아주지 못하게 된 뒤로 심심하다. 사료가 담긴 그릇 앞에서 혼자 먹고, 고양이들 근처를 어슬렁 거리다가 내 곁에 다가와 떼를 쓰기도 한다. 어른 고양이들이 아내의 침대 곁에서 잠을 자는 동안 깜이는 내 머리맡에 와서 베개를 같이 베고 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