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MyCats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MyCats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6년 6월 3일 수요일

부재 不在

 

아침 일찍 일어나 강을 바라보다가 주인들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오래된 캣타워 곁에 다가가 서있었다. 여기 층층마다 고양이들이 한 마리씩 올라가 놀던 때가 있었다. 제일 높은 곳에서 털을 고르고 있던,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편안히 낮잠을 자고 있던 내 고양이들이 사이 좋게 공유하고 있었던 가구가 이제는 덩그라니 혼자 나무처럼 서있다. 고양이들이 주둥이를 문지르고 몸을 부비곤 했던 캣타워 기둥을 어루만져보다가 먼지도 없는데 괜히 걸레를 적셔 가져와 닦았다.

고양이 깜이도 저 캣타워에서 시간을 보내길 좋아했었다. 지금도 가끔 캣타워에 올라가 드러누워 쉬기도 하지만 언니 고양이들이 멀리 떠나고 난 후에는 전처럼 자주 쓰지 않는다. 한밤중에 모처럼 저 위에 올라 혼자 먼 곳을 보고 있는 깜이를 보았는데, 그것도 잠시였다. 이내 내려와 맨바닥에 앉아서 멍하니 있었다. 고양이가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도 없는 캣타워에 혼자 있던 깜이가 내 눈에는 쓸쓸하게 보였다.
주렁주렁 열매처럼 캣타워에 고양이들이 열려 있었던 때가 있었고, 이제는 없다. 비어있는 캣타워는 내 고양이들의 무게를 기억한 채로 매일 강을 내려다 보고 있다. 그때에도 고양이들 덕분에 행복했고, 지금도 그들과의 기억 덕분에 마음 한 쪽이 따스하다. 지금 곁에서 자고있는 깜이도 나와 같았으면 좋겠다.


2026년 4월 26일 일요일

이른 아침

 

일요일 이른 아침에 동네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사찰에 가보았다. 역사 깊고 오래된 곳이라고 들었다. 한강 쪽이 아니라 동네의 내륙 쪽 산길에서 아침 산책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절 마당에는 마음에 드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사찰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괜한 기대를 했었는가 보다, 하며 오래 머물지 않고 돌아서려고 했다. 그때 어디에선가 고양이가 나타나더니 단숨에 내 앞으로 뛰어 왔다.

한 마리가 아니라 이쪽 저쪽에서 고양이들이 튀어나와 꼬리를 높이 들고 반가와 했다. 검색을 해보니 그 절은 고양이들이 여러 마리 살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고양이들을 만나는 바람에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인사하고 쓰다듬어 주며 시간을 보내게 됐다.

고양이들은 전부 한쪽 귀 일부가 잘려져 있었다. 모두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는 표식을 해둔 것이다. 나이 어린 고양이들은 건강하고 즐거워 보였다. 배가 고파서 사람을 반기는 게 아니라 간식, 별식이라도 가지고 왔느냐고 하며 관심을 보이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않아서 미안하구나, 라고 말을 해줬다.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고양이들에게 친절했던 것 같다. 애들이 다 구김 없고 편안해 보였다.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뛰고, 계단을 달려 오르다가 볕이 드는 곳에 멈춰 몸을 핥고 있기도 했다.

산길을 내려와 아침 일찍 문 여는 식당에 들러 밥을 먹었다. 식당에도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는데 산 속에 있던 녀석들과는 다르게 사람을 경계하고 있었다. 호기심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길래 가까이 다가갔더니 얼른 뒤돌아 내빼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에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와 기지개를 켜고 있는 우리 고양이들에게 밥과 물을 챙겨 줬다.



 

2026년 2월 17일 화요일

말띠 해

 

오늘은 설이다. 고양이 이지는 열 일곱 살이 됐다. 당뇨를 다 이겨내고 건강하게 잘 지낸다. 그 뒤에는 두꺼운 공책에 가득 시간과 횟수를 기록해가면서 고양이에게 약과 밥을 손가락으로 떠먹이고 있는 아내의 고단함이 있다. 벌써 몇 년째 나이 많은 고양이들을 돌보느라 아내는 긴 시간 외출도 해본 적이 없다. 이지와 아픈 짤이가 편안하게 잘 지내주고 있는 것이 아내의 고생에 대한 유일한 보상이다.

짤이는 열 다섯 살이 됐다. 이 고양이는 작년에만 동물병원에 스무 번 다녀왔다. 이제 한쪽 뒷다리를 완전히 쓰지 못하고 있어서 아내는 밥과 약을 먹이고 피하수액을 주사해주는 것 뿐 아니라 시간에 맞춰 화장실에 데려가 오줌과 똥을 누고 있는 동안 고양이가 서있을 수 있도록 두 팔로 감싸 안은 채 돕는 일을 매일 여러 번 하고 있다. 짤이는 도움이 필요하면 고개를 들어 사람을 찾지만 그렇다고 소리 내어 부르거나 하지 않는다. 아내나 내가 근처에 보이지 않으면 영차, 하고 일어나서 쓰지 못하는 다리를 끌고 어떻게 해서든 화장실로 간다. 그러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용변을 보면서 힘을 주고는 그만 철푸덕 쓰러져버리기도 하지만, 우리가 달려가 뒤늦게 부축이라도 해주면 다시 기운을 내어 제 자리로 걸어가려 애를 쓴다. 자기연민이나 칭얼거림은 하나도 없다. 나는 고양이 짤이가 그런 모습을 보일 때 늠름하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다 이제 아내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개 율리까지 낮 시간에 돌보고 있은지 일 년이 넘었다. 아내의 형제와 살고 있었던 율리는 지난 해 여름부터는 평일이면 매일 낮에 이 집에 와서 지낸다. 아내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나이 많은 고양이 두 마리를 돌보다가 그 사이 비는 시간에 개를 데리고 나가서 몇 번씩 산책을 시키고 돌아와 개에게 밥과 물, 간식을 주고 있다. 개 율리는 고양이들이 있는 집을 어린이집처럼 다니면서 표정이 더 밝아졌다. 살이 오르고 건강해지기도 했다. 열 살 짜리 동갑내기인 고양이 깜이는 여전히 개가 함께 있는 것을 마뜩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미워하는 법도 없다. 개는 개대로 고양이들 사이를 조심조심 다니고 나이 많은 고양이들은 의도적으로 개를 무시하는 듯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심심한 깜이만 율리에게 다가가기도 하고 놀자고 해보기도 하는데, 정작 율리는 까만 고양이와 그다지 친해지고 싶어하지는 않아서 깜이가 다가오면 가만히 벽을 보고 돌아 앉는다.
아내가 잠깐 쉴 수 있는 시간이 되면 고양이들과 개가 동시에 낮잠을 자는데, 그럴 때엔 집안이 더없이 고요하다. 나는 스피커를 끄고 헤드폰이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거나 방문을 닫고 악기 연습을 한다.
올해는 말띠 해라고 했다.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다만 언제나 그렇게 기원하고 있었듯이 올해에도 매일 아무 일 없이 평범한 일상이 계속되길 바란다.


2025년 10월 8일 수요일

아픈 고양이

 

어제 새벽에 고양이 짤이가 갑자기 크게 소리를 내어 울었다. 내가 헤드폰을 벗고 거실로 나가기도 전에 짤이 곁에서 자고 있던 아내가 깨어나 어둠 속에서 고양이를 들어 고양이 화장실 안으로 옮겨주고 있었다. 고양이 짤이는 갑자기 한쪽 뒷다리를 쓰지 못하고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주에 내가 여수에 있을 때에 아내는 별안간 걷지 못하는 고양이를 안고 혼자 동물병원을 이틀 동안 뛰어다니고 있었다. 제 힘으로 걸어가서 용변을 보지 못할 것 같으니까, 짤이는 사람을 깨워 도와달라고 했던 것이다. 아내가 들어올린 채로 고양이는 볼일을 보았고, 나는 화장지로 고양이의 엉덩이를 닦아 줬다.

오늘도 동물병원에 다녀왔다. 답답한 것은 검사를 해보고 이런저런 촬영을 해보아도 고양이의 어디가 잘못 되어서 한쪽 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치료를 할 수도 없다. 그저 고양이의 다리에 부목을 대고 솜과 붕대를 감아주는 처치만 했다. 시간이 지나서 짤이의 발이 붓고 있는 것을 보고 칭칭 감긴 테이프와 부목은 끌러주었다.

짤이의 소리에 놀라서 깨었던 깜이는 눈을 크게 뜨고 얌전히 앉아서 우리를 지켜보다가, 짤이가 안정을 찾자 그제서야 안심을 했는지 갑자기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나이가 든 고양이들을 벌써 수 년째 돌보고 있는 아내는 고양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가 빠르게 판단하여 지난 주에 사왔던 약을 중단하고 고양이를 안정시켰던 덕분에 짤이는 더 이상 배탈을 일으키지 않게 됐다. 당뇨를 앓았던 이지는 건강을 찾아서 아픈 짤이를 간병하는 아내 곁에 앉아서 그루밍을 하고 있다. 짤이는 이제 편안해졌는지 아내의 목 아래에 앞발을 밀어 넣고 자고 있다. 아픈 고양이가 낫고 아내의 고단함도 덜 수 있을 거라고, 무슨 근거는 없지만, 나는 믿고 있다.


2025년 9월 16일 화요일

여름을 보낸 고양이들

 

정말 더웠던 이번 여름에 이 고양이 두 마리는 언제나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는 베란다에 나가서 찜질을 하듯 드러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다가 너무 더우면 잠깐씩 에어컨이 있는 집안으로 들어와 바람을 쐬다가 다시 굳이 양지를 찾아 베란다에 나가서 또 드러누워 쿨쿨 자곤 했다.

이제 밤 기온은 섭씨 20도. 여름을 보낸 고양이들은 밤이 되면 벌써부터 푹신하고 따뜻한 곳을 찾아가서 잠이 든다. 달마다 병원에 다니고 있는 중인 짤이와, 언제나 심심한 깜이가 사이 좋게 바람을 쐬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2025년 9월 11일 목요일

고양이들

 

아내가 새로 사준 고양이 가구를 베란다 창가에 놓아줬더니 오후에 고양이 짤이는 볕을 쬐고 바람을 즐기며 그 위에서 낮잠을 잤다. 내집의 베란다에서 사진처럼 바다가 보일 리가 없다. 저 사진은 AI로 배경을 만든 이미지이다. 고양이 짤이가 편안하게 자는 모습을 보면서 멀리 보이는 것이 높은 아파트 건물이 아니라 수평선과 하늘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양이들은 새 물건이 마음에 드는지 사이좋게 번갈아 올라가 놀았다.
나는 지하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에 악기들을 싣고, 가득찬 쓰레기 봉투를 버리고, 가방에 옷과 양말 등을 챙겨 넣었다. 이제 어깨에 메는 가방에 지갑과 아이패드, 공책, 수첩, 펜케이스를 담으면 이틀 동안 집을 떠나있을 준비는 끝난다. 작년과 재작년엔 다른 사람들이 그날 오전에 출발할 때 나는 하루 전에 미리 공연장 근처에 가서 잤다. 허리통증 때문에 긴 시간 운전을 하고 리허설과 공연까지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몸과 마음이 좀 가볍다. 내일 아침에 집에서 떠나며 고양이들에게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해줄 것이다.


2025년 7월 28일 월요일

잉크, 고양이들

 


지난 주엔 울산에 다녀와서 파커 블루블랙 잉크를 다 썼다. 이번 주엔 울산에서 돌아와 다이어민 제트 블랙 잉크를 남김 없이 썼다. 글입다 잉크와 펠리칸 블랙 잉크 잔여분을 모아 놓았던 용기에 조금 남은 다이어민 잉크까지 같이 담았다.

울산에서 길고 지루한 대기 시간을 보내던 중에 아내가 집에서 사진을 보내줬다. 요즘 고양이 깜이에게 밥을 주려고 하면 언니 고양이들 두 마리가 금세 나타나서 깜이의 밥을 빼앗아 먹으려고 든다. 당뇨식과 신장을 보호하는 사료를 먹이고 있다보니 아무래도 맛이 없는지 두 마리 언니 고양이들은 깜이가 먹는 사료를 자주 탐내고 있는 것이다. 아내가 헌신적으로 고양이들을 돌보아 병을 치료한 덕분이다.


2025년 6월 22일 일요일

여름을 맞는 고양이들


 고양이 이지는 당뇨병을 다 이겨내고 건강해졌다. 사소한 것들로 자주 병원에는 다니지만 이제 아프지 않고, 기운이 나서 돌아다니며 깜이의 밥을 빼앗아 먹으려 하고 있다.

췌장염을 앓았던 고양이 짤이는 비대성 심근병증으로 일 년째 치료 중이다. 지금 심장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그것을 치료하다보니 신장 수치가 조금 나빠졌다. 나흘 뒤에 병원에 진료예약이 되어 있다. 그래도 고양이는 아프지 않아하고, 잘 먹고 잘 잔다.
아내는 새벽에 일어나 밤까지 고양이 두 마리를 돌보느라 정해놓은 시간마다 약과 물을 먹이고 사료를 일일이 만들어 손으로 먹이고 있다. 4년째 계속 중인 아내의 고생 덕분에 열 넷 열 다섯 살 고양이들이 병을 이기고 평온하게 지내고 있다.

언니 고양이들이 병치레를 하고 회복하는 동안 고양이 깜이는 같이 놀아줄 대상이 없어 심심해 했다. 떼쓰고 투정부리는 일이 잦아졌다. 고집도 세어져서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좀처럼 포기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착하게 늘 언니 고양이들에게 양보를 하고 잘 참아준다.
한강 쪽 유리문을 열어놓으니 밤공기가 시원하게 들어온다. 고양이들이 건강하게 여름을 맞고 있다.


2025년 2월 21일 금요일

병원에 다니는 고양이


 주말에 집을 비우고 있는 동안 혼자 고양이를 돌보고 있을 아내에게 도움이 될 것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고양이 짤이에게 먹일 이틀치 가루약을 캡슐에 담아 알약으로 만들어 놓았다. 제주도에 다녀온 다음날 월요일 오전에 다시 짤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가야한다.

열 네 살 고양이 짤이는 지금 심장 비대증으로 폐에 물이 생기고 있었다.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 이뇨제를 계속 투여하고 있다. 그것이 신장에 무리를 줄 수 있기 때문에 혈액검사로 신장수치를 확인하며 약을 먹이고, 주사를 놓아주는 중이다. 호흡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몇 시간씩 산소방 안에 들어가게 해주고 있다.

2011년 8월에 몽골에서 공연을 하고 며칠만에 집에 왔더니 아내가 노란 줄 무늬 고양이를 데려다 놓았다. 그 무렵 고양이 이지를 데려온지 두 해째, 나는 아내에게 더 이상 새로운 고양이는 키우지 말자고 말해두고 있었다. 순이, 꼼이, 이지만 돌보며 살자고 했었다. 세 마리 고양이들에게만 신경을 써도 넉넉하지 못 할 수 있고, 사람의 생활이라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하게 얘기했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없는 사이에 또 고양이를 데리고 온 아내에게 불만이었다. 길에서 지내던 고양이는 한동안 한쪽 구석에서 얌전하게 있었다.
결국 다른 곳에 입양 보내지 못하고 고양이 짤이를 우리가 키우기로 결심했다. 그 후 어느날 아침, 나는 짤이에게 다가가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어 보았다. 그 전까지는 정들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데면데면 하고 있었다.
그때 고양이가 깜짝 놀라며 나를 올려다 보았다. 나는 짤이의 눈빛에서 복잡한 감정이 지나가는 것을 본 것 같았다. 잠깐 시간이 지난 후 짤이가 내 손에 주둥이를 살짝 문질렀다. 여전히 긴장하고 어색한 자세로, 조금은 의심하고 조금은 안심하면서. 내가 점점 더 세게 쓰다듬고 나중엔 안아주자 고양이는 긴장을 풀고 그루밍을 했다. 그날 이후 비로소 짤이는 편안하게 눕기도 하고 언니 고양이들을 따라 집안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나는 그때의 일때문에 고양이 짤이에게 오래 미안해했다.
그리고 아내는 번갈아 아프고 있는 나이든 고양이들을 몇 년째 온힘을 다해 보살피고 있다.


2024년 12월 12일 목요일

식구들

 

하마터면 끔찍한 일을 겪을 뻔했던 일주일을 보내며 매일 쏟아지는 뉴스들을 보고 있자니 지난 한 두 달이 일 년쯤 지나간 것처럼 여겨졌다. 그 사이 아내의 생일이 지나갔고 자동차 점검을 받았고 오랜만에 안국동, 계동에 가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기도 했다. 내일은 주말 공연을 위해 거제도로 간다.

내 집의 식구들, 고양이 이지는 부쩍 식욕이 생겨서 뭐든지 집어 먹는 바람에 아내가 예민해졌다. 잘 먹으면 좋은 일이지만 겨우 당뇨를 이겨낸 이후에 다시 건강을 해칠까봐 우리는 걱정하고 있다. 실제로 체중도 늘었다. 정작 자기가 먹어야 하는 사료는 손가락으로 먹여줘야 하는데 먹지 말아야 하는 다른 고양이 밥은 몰래 잘도 먹고 다니는 것이다.

짤이는 심근비대증으로 급히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이뇨제로 처치를 하고 나서는 신장수치가 올라가 전보다 세심하게 돌보고 있다. 아내는 고양이를 위한 산소방을 대여했다.

나이 많은 두 고양이들이 건강을 유지하면서 편안해진 표정으로 햇빛을 쬐고 있었다. 내일부터 이삼일 집을 비우는데, 낯선 곳 숙소 침대에 누우면 집에 있는 고양이들이 생각난다. 지금처럼 불안한 시국엔 더 그렇겠지.

한밤중에 깜이가 다가와 치대기 시작했다. 한참 안고 있다가 바닥에 내려놓았더니 그대로 내 발을 베고 누워서 떠나려 하지 않았다.


2024년 10월 1일 화요일

고양이와 병원에

 

고양이 이지의 정기 진료가 있는 날이었다. 석 달 만에 동물병원에 가는 것이어서 이지는 새 차를 처음 타보았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자동차 안에서 놀고 있는 고양이가 귀엽게 보였다. 이지는 구내염을 앓다가 치아병변이 생겨 이빨을 뽑아야 했었다. 그 때 치료를 위해 스테로이드를 써야 했고, 수 년이 지난 후 당뇨를 겪었다. 일년 하고 넉 달, 아내는 외출 한 번 자유롭게 하지 못하며 이지를 돌보았다.

 이제 이지는 당뇨병을 이겨냈다. 당화단백 검사 결과도 좋았다. 여전히 스스로 먹지 못하여 곱게 갈은 깡통사료를 떠먹여줘야 하고 수액주사를 놓아주기도 해야 하지만 나이 든 고양이가 더 아프지는 않게 됐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밤에는 추워졌다. 가을이 너무 짧다. 아내가 이지의 발톱을 깎아주는 동안 깜이는 곁에서 나지막히 그르릉 소리를 내고 있었다.


2024년 9월 25일 수요일

선선해졌다.

 

이른 아침에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책상 앞에 앉았다. 고양이 이지에게 밥을 먹여주고 난 후 아내는 이지를 소중히 끌어안고 집안을 거닐고 있었다. 날씨가 선선해진지 이제 일주일 쯤 지났다. 베란다에 얇은 이불처럼 햇빛이 비추고 있었다.

고양이 깜이는 내 머리맡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는데, 내가 일어나 보니 어느새 간식을 얻어먹고 볕을 쬐며 앉아 있었다. 나를 보며 작은 소리로 아침인사를 했다. 나는 그 소리는 듣지 못하고 고양이의 입 모양만 보았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잠을 깨려고 하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을이 다가오자 고양이들은 아내의 침대에 모여서 뒹굴기 시작했다. 봄과 여름엔 각자 생활을 하다가 가을과 겨울엔 좁은 아내의 침대 위에 올라가 한데 모여 새우잠을 잔다. 고양이 짤이는 잠이 덜 깬 얼굴로 그르릉 소리를 내며 인사를 하더니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2023년 12월 12일 화요일

이지와 동물병원

 

이지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갔다. 진료실에 들어가 혈액검사를 받고 피하수액 주사를 맞고 나온 고양이를 아내는 두 손으로 감싸 어루만져줬다. 당화단백 수치는 더 낮아져서 계속 정상 범위 안에 있었다. 이지는 집에 돌아와 따뜻한 자리에서 잠을 잤다.

2023년 11월 26일 일요일

겨울

 

바닥을 따뜻하게 해줬더니 고양이들이 바닥에 붙어 뒹굴고 있었다. 겨울이 되었다.

열세살 짤이, 열네살 이지는 매일 인슐린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채혈을 하거나 며칠에 한 번씩은 피하수액을 맞고 있다. 스스로 먹지 못하는 두 마리 고양이를 위해 아내는 하루 종일 사료를 갈거나 개어서 묽게 만들어 손가락으로 떠먹이는 생활을 여섯 달째 하고 있다.

일곱살이 된 깜이는 언니들이 함께 놀아주지 못하게 된 뒤로 심심하다. 사료가 담긴 그릇 앞에서 혼자 먹고, 고양이들 근처를 어슬렁 거리다가 내 곁에 다가와 떼를 쓰기도 한다. 어른 고양이들이 아내의 침대 곁에서 잠을 자는 동안 깜이는 내 머리맡에 와서 베개를 같이 베고 잠든다.


2023년 11월 16일 목요일

까만 고양이

 

얘는 까만 고양이이니까 깜이라고 부르자고, 내가 그렇게 이름을 지어버렸다. 고양이 깜이는 일곱 해 전 오늘, 집앞에서 우리를 만나 냅다 따라들어와 그 뒤로 함께 살게 되었다.

깜이를 만난 날

고양이는 습관처럼 하는 짓이겠지만, 어쩐지 해마다 이 즈음이 되면 창밖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기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깜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장소가 우리와 만났던 그 지점인 것 같아서 그 모습을 보며 숨죽여 웃을 때가 있다. 과연 그 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어서인지는 내가 알 수 없겠지만.

그 해엔 내 고양이 순이가 떠났던 것 외에도 내 주변에 어려운 일들이 많았었다. 그때 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시절이었다는 것을 다 지나온 다음에야 알았다. 상실, 우울, 비관과 같은 감정을 낙엽처럼 털어내며 몇 해를 살아오는 동안에 고양이 깜이가 곁에서 많은 도움을 줬다. 지금도 깜이는 굳이 내 발 아래에 자리를 잡고 누워 가늘게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내일 아침엔 칠년 전을 기념하며 맛있는 간식이라도 내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2023년 10월 24일 화요일

고양이 식구들

 

고양이 이지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다녀왔다. 이지의 당뇨증세는 다 낫지 않았지만 아주 호전되었다. fructosamine 수치도 많이 낮아졌다. 우리는 이 정도만으로도 감사해 하며 병원에서 돌아왔다. 이지도 편안한 얼굴로 어슬렁거리며 집안을 다녔다.

열세살 고양이 짤이도 보름 동안에 많이 좋아졌다. 기침도 하지 않고 다시 그르릉거리기도 하며 지낸다. 이지와 병원에서 돌아올 때에 짤이에게 먹일 약 일주일 분을 더 사왔다. 두 마리 모두 스스로 먹으려 하지 않아서 아내는 하루 종일 고양이에게 먹일 사료를 가공하고 번갈아 손으로 떠먹이느라 고생하고 있다. 


어른 고양이들을 돌보느라 일곱살 고양이 깜이에게 소홀하였다. 깜이는 다가가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면 귀찮아하지 않고 기분 좋아한다. 조용히 곁에 와서 몸을 기대었다가 그대로 졸기도 한다. 언니들을 간병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는 것 같았다.


2023년 8월 30일 수요일

고양이 식구들

 


당뇨병을 앓는 고양이 이지를 치료하고 돌보느라, 우리는 여름 내내 집에서 보냈다. 이지는 이지대로 회복하기 위해 혈당을 재고 주사를 맞느라 고생을 했다. 그러는 동안 다른 두 마리 고양이들은 무더운 여름을 각자 알아서 지내야 했다.


나는 외출해야 할 때에 나가기도 하고 하루 이틀 집에 들어오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아내는 여름 전체를 집안에서 긴 잠을 못 자면서 고양이를 돌보았다. 사람은 고된 일과를 몇 달 째 보내고 있는데 언제나 곁에 '엄마'가 있으니 고양이들은 좋은가 보다. 다 큰지 오래된 막내 깜이는 부쩍 응석만 늘었다.


열 네 살 고양이 이지는 느릿느릿 낫고 있다. 최근의 혈당수치와 진료를 보면 머지 않아 remission 으로 되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면 신나게 뛰기도 하고 깊은 밤 살금살금 나와 동생 고양이들의 밥을 몰래 먹어보기도 하고 있다. 혈당을 관리하기 위해 아내는 결국 다른 고양이들의 밥그릇도 모두 거두었다가, 모두에게 정해진 시간에만 먹을 수 있도록 하였다. 고양이들도 나도 어차피 살을 빼야하니까, 불만을 가지진 말자고 말해주고 있다.


2023년 1월 1일 일요일

고양이 식구들.

 

2023년이 되었다. 
열네 살 고양이 이지는 근엄한 표정이지만 꾸준히 귀엽다.

일곱 살 짜리 깜이는 도통 철이 들지 않고. (나처럼)


열세 살 짤이는 언제나 착하고 게으르다. (꼭 나처럼)



깜이는 겨우내 사람의 베게를 제 침구로 쓰고 있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갑자기 하품을 하는 중이다.

.

2022년 6월 13일 월요일

식구들과 세상에서.

 


천둥소리가 서너 번 들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식구들은 모두 자고 있다. 조용히 걸어가서 열어뒀던 베란다의 창문을 닫고 왔다. 비오는 소리, 스틸 펜촉이 종이 위를 지나가는 소리 사이로 고양이 깜이의 잠꼬대가 들렸다.

올해 초부터 컴퓨터로 글쓰기를 멈추고 만년필을 손에 쥐고 공책에 쓰기를 시작했다가, 그만 펜의 세계라는 수렁에 빠졌다. 어지러운 세상이 되어버려서 한가로이 취미나 즐길 때가 아니라는 자책과 이런 것에라도 몰두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만족이 매번 교차한다.

선거들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우리의 사회가 욕망의 세력과 염치의 세력이 반씩 나눠진 정도는 되는 줄 알았던 것이 그냥 판타지였던 것 같기도 하다. 거창한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평화롭고 안전하게 식구들과 세상을 사는 일이 이제 대단한 일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

2022년 3월 24일 목요일

애정

 



고양이와 함께 살면 하루에 몇 번씩 신비한 경험을 한다.

사람들은 개와 고양이가 얼마나 영리한지에 대하여 자주 말한다. 그게 중요한 이유가 뭔지 나는 모르겠다.

혹시 자기들이 영리하지 못하여서 개나 고양이가 사람이 이름을 부르면 알아듣는 것을 보고 똑똑하다고 감탄해주며 위안을 얻는 걸까. 다른 종의 동물과 주거를 함께 하며 고작 기뻐하는 일이 동물의 지능이라니, 지능에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 많은 건가.

내가 고양이들과 살면서 경험하는 신비로운 일들은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종의 동물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애정을 표현할 때다. 밥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자기를 굳이 쓰다듬어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대로 애정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며 다가와 떠나지 않는다.

일찍 죽어서 떠나버린 고양이 순이와 나는 특별한 관계였다. 그 고양이는 나에게, 나는 고양이에게 매일 애정을 표현했다. 고양이와 나만 기억하는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순이가 죽은지 벌써 오 년이 지났는데도, 자주 그 고양이의 갸르릉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착각을 한다.

고양이 순이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은 나의 청승만은 아니다. 지금 함께 살고있는 고양이들이 발산하는 애정 덕분에 나는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순이와 꼼이를 가슴 안에서 떠올려 또 한번씩 느껴볼 수 있다.

지금 곁에 다가와 한참 동안 내 얼굴을 보다가, 내가 잠깐 품에 안고 어루만져줬더니 무릎 가까이에 몸을 말고 누워 잠든 검은 고양이. 고양이 깜이는 옛날에 순이가 그랬던 것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좋아한다는 표현을 한다. 동물과 함께 살면 매 순간 사랑을 빚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