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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2일 화요일

이지와 동물병원

 

이지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갔다. 진료실에 들어가 혈액검사를 받고 피하수액 주사를 맞고 나온 고양이를 아내는 두 손으로 감싸 어루만져줬다. 당화단백 수치는 더 낮아져서 계속 정상 범위 안에 있었다. 이지는 집에 돌아와 따뜻한 자리에서 잠을 잤다.

2023년 11월 26일 일요일

겨울

 

바닥을 따뜻하게 해줬더니 고양이들이 바닥에 붙어 뒹굴고 있었다. 겨울이 되었다.

열세살 짤이, 열네살 이지는 매일 인슐린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채혈을 하거나 며칠에 한 번씩은 피하수액을 맞고 있다. 스스로 먹지 못하는 두 마리 고양이를 위해 아내는 하루 종일 사료를 갈거나 개어서 묽게 만들어 손가락으로 떠먹이는 생활을 여섯 달째 하고 있다.

일곱살이 된 깜이는 언니들이 함께 놀아주지 못하게 된 뒤로 심심하다. 사료가 담긴 그릇 앞에서 혼자 먹고, 고양이들 근처를 어슬렁 거리다가 내 곁에 다가와 떼를 쓰기도 한다. 어른 고양이들이 아내의 침대 곁에서 잠을 자는 동안 깜이는 내 머리맡에 와서 베개를 같이 베고 잠든다.


2023년 11월 16일 목요일

까만 고양이

 

얘는 까만 고양이이니까 깜이라고 부르자고, 내가 그렇게 이름을 지어버렸다. 고양이 깜이는 일곱 해 전 오늘, 집앞에서 우리를 만나 냅다 따라들어와 그 뒤로 함께 살게 되었다.

깜이를 만난 날

고양이는 습관처럼 하는 짓이겠지만, 어쩐지 해마다 이 즈음이 되면 창밖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기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깜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장소가 우리와 만났던 그 지점인 것 같아서 그 모습을 보며 숨죽여 웃을 때가 있다. 과연 그 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어서인지는 내가 알 수 없겠지만.

그 해엔 내 고양이 순이가 떠났던 것 외에도 내 주변에 어려운 일들이 많았었다. 그때 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시절이었다는 것을 다 지나온 다음에야 알았다. 상실, 우울, 비관과 같은 감정을 낙엽처럼 털어내며 몇 해를 살아오는 동안에 고양이 깜이가 곁에서 많은 도움을 줬다. 지금도 깜이는 굳이 내 발 아래에 자리를 잡고 누워 가늘게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내일 아침엔 칠년 전을 기념하며 맛있는 간식이라도 내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2023년 10월 24일 화요일

고양이 식구들

 

고양이 이지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다녀왔다. 이지의 당뇨증세는 다 낫지 않았지만 아주 호전되었다. fructosamine 수치도 많이 낮아졌다. 우리는 이 정도만으로도 감사해 하며 병원에서 돌아왔다. 이지도 편안한 얼굴로 어슬렁거리며 집안을 다녔다.

열세살 고양이 짤이도 보름 동안에 많이 좋아졌다. 기침도 하지 않고 다시 그르릉거리기도 하며 지낸다. 이지와 병원에서 돌아올 때에 짤이에게 먹일 약 일주일 분을 더 사왔다. 두 마리 모두 스스로 먹으려 하지 않아서 아내는 하루 종일 고양이에게 먹일 사료를 가공하고 번갈아 손으로 떠먹이느라 고생하고 있다. 


어른 고양이들을 돌보느라 일곱살 고양이 깜이에게 소홀하였다. 깜이는 다가가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면 귀찮아하지 않고 기분 좋아한다. 조용히 곁에 와서 몸을 기대었다가 그대로 졸기도 한다. 언니들을 간병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는 것 같았다.


2023년 8월 30일 수요일

고양이 식구들

 


당뇨병을 앓는 고양이 이지를 치료하고 돌보느라, 우리는 여름 내내 집에서 보냈다. 이지는 이지대로 회복하기 위해 혈당을 재고 주사를 맞느라 고생을 했다. 그러는 동안 다른 두 마리 고양이들은 무더운 여름을 각자 알아서 지내야 했다.


나는 외출해야 할 때에 나가기도 하고 하루 이틀 집에 들어오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아내는 여름 전체를 집안에서 긴 잠을 못 자면서 고양이를 돌보았다. 사람은 고된 일과를 몇 달 째 보내고 있는데 언제나 곁에 '엄마'가 있으니 고양이들은 좋은가 보다. 다 큰지 오래된 막내 깜이는 부쩍 응석만 늘었다.


열 네 살 고양이 이지는 느릿느릿 낫고 있다. 최근의 혈당수치와 진료를 보면 머지 않아 remission 으로 되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면 신나게 뛰기도 하고 깊은 밤 살금살금 나와 동생 고양이들의 밥을 몰래 먹어보기도 하고 있다. 혈당을 관리하기 위해 아내는 결국 다른 고양이들의 밥그릇도 모두 거두었다가, 모두에게 정해진 시간에만 먹을 수 있도록 하였다. 고양이들도 나도 어차피 살을 빼야하니까, 불만을 가지진 말자고 말해주고 있다.


2023년 1월 1일 일요일

고양이 식구들.

 

2023년이 되었다. 
열네 살 고양이 이지는 근엄한 표정이지만 꾸준히 귀엽다.

일곱 살 짜리 깜이는 도통 철이 들지 않고. (나처럼)


열세 살 짤이는 언제나 착하고 게으르다. (꼭 나처럼)



깜이는 겨우내 사람의 베게를 제 침구로 쓰고 있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갑자기 하품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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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3일 월요일

식구들과 세상에서.

 


천둥소리가 서너 번 들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식구들은 모두 자고 있다. 조용히 걸어가서 열어뒀던 베란다의 창문을 닫고 왔다. 비오는 소리, 스틸 펜촉이 종이 위를 지나가는 소리 사이로 고양이 깜이의 잠꼬대가 들렸다.

올해 초부터 컴퓨터로 글쓰기를 멈추고 만년필을 손에 쥐고 공책에 쓰기를 시작했다가, 그만 펜의 세계라는 수렁에 빠졌다. 어지러운 세상이 되어버려서 한가로이 취미나 즐길 때가 아니라는 자책과 이런 것에라도 몰두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만족이 매번 교차한다.

선거들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우리의 사회가 욕망의 세력과 염치의 세력이 반씩 나눠진 정도는 되는 줄 알았던 것이 그냥 판타지였던 것 같기도 하다. 거창한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평화롭고 안전하게 식구들과 세상을 사는 일이 이제 대단한 일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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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4일 목요일

애정

 



고양이와 함께 살면 하루에 몇 번씩 신비한 경험을 한다.

사람들은 개와 고양이가 얼마나 영리한지에 대하여 자주 말한다. 그게 중요한 이유가 뭔지 나는 모르겠다.

혹시 자기들이 영리하지 못하여서 개나 고양이가 사람이 이름을 부르면 알아듣는 것을 보고 똑똑하다고 감탄해주며 위안을 얻는 걸까. 다른 종의 동물과 주거를 함께 하며 고작 기뻐하는 일이 동물의 지능이라니, 지능에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 많은 건가.

내가 고양이들과 살면서 경험하는 신비로운 일들은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종의 동물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애정을 표현할 때다. 밥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자기를 굳이 쓰다듬어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대로 애정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며 다가와 떠나지 않는다.

일찍 죽어서 떠나버린 고양이 순이와 나는 특별한 관계였다. 그 고양이는 나에게, 나는 고양이에게 매일 애정을 표현했다. 고양이와 나만 기억하는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순이가 죽은지 벌써 오 년이 지났는데도, 자주 그 고양이의 갸르릉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착각을 한다.

고양이 순이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은 나의 청승만은 아니다. 지금 함께 살고있는 고양이들이 발산하는 애정 덕분에 나는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순이와 꼼이를 가슴 안에서 떠올려 또 한번씩 느껴볼 수 있다.

지금 곁에 다가와 한참 동안 내 얼굴을 보다가, 내가 잠깐 품에 안고 어루만져줬더니 무릎 가까이에 몸을 말고 누워 잠든 검은 고양이. 고양이 깜이는 옛날에 순이가 그랬던 것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좋아한다는 표현을 한다. 동물과 함께 살면 매 순간 사랑을 빚진다.



2022년 3월 20일 일요일

의미있는 것

 


예전의 나는 작은 기쁨과 고통에 혼자 예민해하여 한 줌도 안되는 감정을 이만큼 과장하곤 했다. 이제는 그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자연은 우리에게 무심하다. 원래 세상이란 우리에게 아무 관심이 없다.

인간이라는 쪽의 입장에서는 자꾸 이치를 따지고 싶어하고 원칙이니 정의 따위를 내세워 떼라도 써보려 하는 것이지만, 자연・세상・우주는 그런 것에 아무런 상관을 하지 않는다. 자연의 입장에서는 어떤 가치라고 할 것도 없는 것을 논리인 것처럼 우겨보려고 해봤자, 우리는 점점 더 약하고 보잘 것 없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된다. 그것을 부조리하다며 계속 우는 소리를 내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인간이 하는 일이겠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되어지지 않는 것을 해결해달라고 드러누워 소란을 피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내 곁을 지키며 밤새 의자에서 몸을 접고 자고있는 고양이를 한 번 더 쓰다듬어주는 일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이 뭐 몇 개나 될까.



2022년 1월 12일 수요일

새해, 고양이들


 2022년이 되었다. 고양이 이지는 낮에 잠깐 아내가 입혀본 옷을 입고 있었다. 잘 어울리긴 했지만 어디에 외출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다시 벗겨줬다. 옷에 익숙하지 않은 이지는 몇 걸음 걷는데에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항상 잘 먹고 언제나 먹을 것을 보채는 뚱보 고양이 짤이는 오늘도 배가 부른채 구석자리를 찾아가 졸고 있었다. 저 자리의 바닥이 아주 따뜻하다. 다음 간식 시간까지 계속 자보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막내 고양이 깜이는 오늘도 심심해했다. 함께 사는 사람들이 나이 들면서 자주 많이 더 놀아주지 못하여 미안해하고 있다. 아내가 고양이 털을 모아 작은 공을 만들어줬다. 그것을 가지고 신나게 놀다가, 그만 어딘가에서 잃어버렸던 모양이다. 시무룩해진 깜이를 위해 아내는 공 한 개를 더 만들어줬고, 오래 지나지 않아 고양이는 공을 또 잃어버렸다. 찾아달라고 나를 올려다보길래 시선을 피하고 사진만 한 장 찍은 후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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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10일 수요일

지나가버린 가을.


 그동안 멈춰야했던 것을 앙갚음이라도 하듯 바쁘게 시월을 보내고 나서, 다시 학교의 일과 집안의 허드렛일들에 시간을 쓰다보니 그만 가을이 지나가버렸다. 피곤한 몸으로 돌아와 손과 얼굴을 씻으려는데 고양이 깜이가 내 곁에 뛰어올라와 쳐다보고 있었다.


아내가 만들어주고 사다준 장난감이며 쿠션들은 본체만체하고 고양이들은 저렇게 빈 종이상자를 오가며 놀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니까 슬슬 사람 곁에 붙어서 잠을 자려고 한다. 올 가을은 단풍이 물들었는지 낙엽이 떨어졌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없어져버린 것 같다.

올 겨우살이도 고단할 것이고 큰 선거가 다가올수록 공해에 가까운 것들도 자주 보게 되겠지. 오래도록 그랬던 것처럼,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반겨주는 고양이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식구가 있다는 것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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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26일 화요일

병원

 


어제 아침에 일찍 외출했다. 아버지의 병원 진료가 예약되어 있었다. 그 병원이 한산했던 적은 없었지만 이른 시간에 꽤 사람이 많고 자동차가 붐볐다. 주차를 하는데에 20여분이나 걸렸다.

아버지는 몇 가지 검사를 해야 했는데, 다행히도 더 나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석 달 후에 정기적인 진료 예약만 하는 것으로 병원 일을 마칠 수 있었다.

내가 약을 사러 병원 앞을 걸어갔다가 오는데, 정문 앞에 어떤 노인이 몸의 앞 뒤로 크게 인쇄한 간판을 걸고 보도 위에서 소리 높여 말을 하고 있었다. 그냥 지나가려다가, 그가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 참신하여 읽어보게 되었다. 그 내용은 길지만 요약하자면 '미국 바이든은 부정선거' 이며, '문재인은 박근혜를 사면할 것이 아니라 사죄를 해야 한다' 라는 것이었다. 그 곁에 있는 현수막에는 '박근혜 대통령님의 쾌유를 빌고 어쩌고...'가 써있었는데, 벌써 몇 년 동안 보여지는 그 천막은 어째서 치워지지 않고 있을 수 있는지 의아했다. 감옥에 있어야 할 전직 대통령이 그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노인이 들고 있는 문구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어서 웃음도 났다.

아버지의 검사 결과가 좋아서 가벼운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다. 고양이 두 마리는 방금 들어온 나를 흘깃 보기만 하고 다시 나란히 앉아 계속 창 밖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아마 새들을 구경했던 모양이었다.

오늘. 나는 치과 수술을 시작했다. 티타늄 픽스쳐가 내 턱뼈에 박혀졌다. 첫번째 수술을 마치고 간호사의 설명을 들은 후에 밖으로 나와 약국으로 향했다. 가느다란 는개비가 뿌려지고 있었다. 흐린 날씨였기 때문인지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제 몇 개월 동안은 거의 죽만 먹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남아있는 수술이 여러 번이기 때문에, 아내를 귀찮게 하지 않고 내 끼니 정도는 혼자 해결할 방법을 찾기로 했는데... 기껏 생각해 낸 것은 오뚜기 스프와 죽을 여러 봉지 사가지고 온 것 뿐이었다. 

밤중에 갑자기 몸살 기운이 심해졌다. 입안의 통증 보다 근육통이 더 힘들었다. 감기는 아닌 것 같고, 아마도 치과에서 긴 시간 동안 눕혀지고 앉혀졌던 바람에 그랬던 모양이다. 어쩌다 보니 새해가 되어도 나는 줄곧 병원만 다니고 있다. 

2020년 12월 15일 화요일

겨울, 고양이 생각

 


갑자기 추워졌다. 일기예보가 알려줬던 것처럼 영하 10도로 기온이 내려갔다. 눈이 내렸었고 강원도 북쪽에는 한파경보가 내려진다는 뉴스도 보았다. 감염병은 더욱 확산하고 있다.

4년 전 이 즈음에, 지금 내 곁에서 칭얼거리며 잠투정을 하는 까만 고양이가 나와 아내에게 이제부터 우리와 함께 살겠다고 선언했다. 유난히 추웠던 11월 밤중의 일이었다. 우리 두 사람이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아직 이름이 없었을 어린 고양이를 부르자 얘는 고민도 없이 다가와 우리에게 몸을 부비며 끙끙 소리를 내었다. 결국 고양이를 품에 안고 데려와 병원에서 진료를 받게 하고 몸을 씻기고 키우기로 한 것은 아내와 내가 맞긴 하지만, 나는 그날 밤 이 고양이가 절박한 심정으로 '선언'을 했던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나는 당신들과 살아야겠다.' 라고. 추워진 11월이 다시 찾아오자 나는 그날 밤 까만 고양이 까미를 만났던 일이 기억났다.

까미는 아주 말이 많고 걸핏하면 투정을 부리는 어린이 고양이가 되었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언니 고양이들에게 심한 장난을 걸고 얻어 맞는 일도 매일 하고 있다. 그리고 간식이 생각날 때에는 우리를 만났던 그날 그랬던 것 처럼 단호하고 당당하게 먹을 것을 요구한다. 가끔은 정말 배가 고픈 것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어쨌거나 아주 분명하고 강한 어조로 사람에게 간식을 내놓으라고 할 때 마다, 나는 까미가 언변 좋은 대중연설가의 기질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올해 여름에 사랑했던 고양이 꼼이를 잃었다. 아직 반 년도 지나지 않았다. 떠나고 없는 고양이를 매일 매일 몇 번씩 떠올리며 여름과 가을을 보냈다. 꼼이는 내 결혼의 시작과 함께 우리와 살게 되었었다. 고양이 꼼이는 언제나 우리 두 사람을 웃게 했다. 하얀 고양이 꼼이는 애정을 표현할 때에도, 말썽을 부릴 때에도, 즐거워 뜀박질을 하거나 나른하게 마냥 졸고 있을 때에도 귀엽고 예뻤다. 나는 고양이 꼼이에게 행복을 빚진 채 그를 떠나 보냈다.

고양이 까미가 우리와 만났던 그 해 여름에는 고양이 순이가 세상을 떠났다. 순이와 가장 친했던 꼼이는 그로부터 꼭 4년 후에 순이가 떠난 곳으로 갑자기 가버렸다. 지난 달에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겪고 응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었다. 병실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며 잠깐씩 잠들었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했던 날, 나는 떠나고 없는 내 고양이들을 한참 생각했다. 그리고 새삼, 각자의 시간은 결국 별안간 멈추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내와 나의 전화기와 시계에는 항상 우리의 곁을 떠난 고양이들의 사진이 보여지고 있다. 곁에 없는 고양이를 그리워 하다가, 지금 곁에 있는 고양이들을 껴안고 얼굴을 부벼 보기도 한다. 나는 더 쓰다듬어도 좋다며 그르릉 소리를 내는 고양이를 안아 편안한 자리에 눕히고 책상 앞으로 돌아와,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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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10일 월요일

장마

 


아주 긴 장마가 지나가고 있다.

태풍 '장미'도 남쪽에서 다가오는 중이라고 했다.

비가 끝이 없을 것처럼 내리고 있다.

눅눅해진 바닥에 고양이들이 더워하며 드러누워 있었다. 에어컨을 켜줬더니 고양이 이지가 편한 모습으로 낮잠을 잤다.


낮에 떡볶이를 먹었다. 요즘 며칠 동안 하루에 한 끼를 먹고 있다. 배가 고파지면 고구마를 먹거나 우유를 마셨다.


밤중에 심야 극장에 다녀왔다. 점심 이후 먹은 것이 없어서 극장에서 파는 소세지 빵을 먹었다. 집에 돌아오니 주차할 자리가 없었다. 빙빙 집 주변을 돌다가 지하 2층에 핸드브레이크를 풀어두고 주차했다. 전화번호를 자동차의 앞 유리에 올려뒀다.

집안이 습했다. 비는 다시 쏟아지고 있었다.

2020년 7월 23일 목요일

흐리고 비.

 


잔뜩 흐리고 비가 내렸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 대한 생각들, 일에 관련된 생각들로 새벽에 잠을 깬 후 계속 깨어 있었다.

그리고, 순이가 죽은지 네 해가 되었다. 이제 곁에 고양이 꼼이도 없는 장마철을 보낸다.

어릴 적 부터 어떤 우연이 반복되어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고 관심을 기울였던 것에 접근하는 경험을 해왔다. 올해에 모든 공연들이 취소되고 더 이상의 음악 일정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더니 악기를 쥐고 무엇을 연습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린 시절 음악에 빠져들었을 때의 곡들을 다시 듣기 시작했다. 임시로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 두고 반복하여 들었다.

며칠 음악을 듣다가 우연히 그 음악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찾게 되기도 하고 악기를 점검하려고 렌치를 찾다가 엉뚱한 곳에서 오래된 CD를 찾게 되기도 했다. 그런 것이 사소한 것을 다시 배우게 하고 나에게 동기를 주기도 한다.

손톱을 깎고 오래 그냥 세워져 있었던 악기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을 풀기 위해 연습을 시작했다. 
조용했던 집안에 악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니 고양이 깜이가 내 얼굴을 올려다 보며 표정을 살폈다. 마주 앉아 잠시 쓰다듬어줬다. 고양이는 금세 골골 소리를 내며 드러누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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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22일 수요일

비가 내린다.


순이가 떠난지 네 해가 되는 날이었다.
꼼이가 단짝이었던 순이를 따라 가버린지 겨우 이십여일이 지났다.
바람이 불고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창문을 닫고 집안을 청소하는데, 구석마다 떠나고 없는 고양이 두 마리가 마치 조금 전까지 드러눕거나 뛰어 놀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제 실없는 농담으로 웃고 아무 음악이나 틀어두고 흥얼거리기도 한다.
다시 만날 수 없는 고양이들을 보고싶어도 하고 가끔 아무 것도 없는 곳을 향해 없어진 고양이의 이름도 불러 보았다.
같이 있을 동안에 힘주어 행복하려고 하고, 헤어진 후에는 적당히 슬퍼한 후 오래 그리워하면 되는 일이다. 오늘은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했었다.

2020년 4월 24일 금요일

동물병원


정오에 고양이 꼼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갔다.
혈액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했다.
주치의 선생님이 말하길, 꼼이의 상태가 좋아졌다고 했다. 체중도 늘었고 췌장염 수치도 안전한 상태가 되었다. 아직 림프절이 여전히 보이고 있었다. 항생제를 일주일만 더 먹이고 한 달 뒤에 다시 검사를 하면 좋겠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 꼼이는 식욕이 생겼는지 사료 그릇을 핥았다. 다른 고양이들이 먹다가 남겨둔 간식을 핥아보는 것은 꼼이의 버릇일 뿐, 무언가 배부르게 먹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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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5일 수요일

선거일


늦게 잠들었던 바람에 아홉시가 다 되어 일어났다.
청소를 하고 커피를 내렸다.
열두 시부터 온라인 수업을 시작해야 했다. 아내는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사전투표를 했기 때문에 아내가 투표를 하러 갈 것을 깜박 잊고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수업을 마친 후 오후에 함께 투표장에 다녀오자고 했다.

첫번째 수업을 마친 후 방문을 열고 나와보니 아내는 그 사이에 투표를 하고 집에 돌아와 있었다.

온라인 수업을 마친 후 늦은 첫 끼 밥을 먹었다. 이후 개표방송을 한쪽에 틀어두고 수업자료를 정리했다.
저녁에 동물병원에서 전화가 왔고, 고양이 꼼이의 검진을 위해 병원 예약을 했다.
아프지 않은 고양이 두 마리는 아내가 심어둔 캣닢을 앞에 두고 한참을 뜯어 먹으며 놀고 있었다.

오늘은 세월호 사건 여섯 해가 되는 날이었다.
선거결과를 다 보느라 새벽까지 깨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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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2일 일요일

바람이 많이 불었다.


아침 일곱시에 깨었다.
오전에 커피를 세 번 내렸다.
열 시 쯤 아내는 고양이 꼼에게 사료를 챙겨 먹였다. 스스로 먹지 않고 있어서 사료를 물에 개어 조금씩 입에 넣어줘야 한다. 먹지 않으려는 고양이에게 음식을 억지로 먹이는 일은 쉽지 않다.

오후에는 고양이 깜이가 자다가 일어나 야옹거리며 간식을 달라고 보챘다.
아픈 고양이 꼼이는 좀처럼 이동하지 않았다.

밖에는 센 바람이 소리를 내며 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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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31일 금요일

햇볕.


내가 사는 집 앞에는 이제 막 시작한 강물이 한강이 되려고 달리고 있다. 맑은 날 아침에는 높이 떠오른 해가 강이 달려가는 방향을 따라 지나가며 낮 시간 내내 볕을 만들어 준다. 고양이들은 햇볕이 좋은 날에는 전날 밤에 미리 일기예보라도 확인한 것 처럼 일찍 자리를 잡고 누워서 오후까지 잠을 잔다.

고요하게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자고 있는 고양이들이 재미있어서 사진을 찍었다. 막내 고양이 깜이는 눈을 뜨고는 기분이 좋은지 이상한 모습으로 갸르릉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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