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사진을 보내줬다.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다더니 정말 내가 사는 동네에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고양이들은 잠깐 베란다에 나와 눈 구경을 하다가, 이내 따뜻한 곳을 찾아 집안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호텔에서 나왔을 때 제주의 기온은 영상 13도. 나는 외투를 벗어 팔에 끼우고 공연장까지 걷기로 했다. 반팔 셔츠만 입었는데 땀이 났다. 이십여 분 걷다가 길가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다시 이십여 분 걸었더니 공연장에 도착해버렸다.이것도 집에 돌아온 다음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그날 반팔 셔츠를 입고 걷다가 그늘을 만나면 선뜩했던 것이 전부 감기몸살을 제대로 앓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눈에 익은 이름이 적힌 차량들이 보였다. 우리 밴드의 공연 전반을 책임져 주는 이 팀은 제주도가 본거지이다. 그동안 전국을 돌며 공연을 할 때마다 그들은 배를 타고 육지에 도착하여 긴 시간 차량으로 이동하는 강행군을 하였다고 들었다. 이번엔 그분들의 '홈타운'에서 공연하는 것이어서 어쩐지 스태프들 모두 여유롭고 기운이 넘쳐 보였다. 한 해 동안 최선을 다 해준 그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들은 오히려 밴드 멤버들에게 선물을 준비해줬다.
2023년 12월 29일 금요일
제주로 출발
아침에 혼자 제주로 출발했다. 공항에 도착할 즈음 비행기 이륙시간이 미뤄졌다는 알림을 받았다. 시간이 생겨서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탑승구 앞 간이 식당에서 어묵 우동을 사 먹었다. 식당에서는 질 낮은 음원의 수준 낮은 가요를 무선 스피커로 찢어질 듯 틀어 놓아서 음식을 먹는 내내 괴로웠다. 화장실에 갔는데 그곳에서도 천장에 달린 스피커로 매우 나쁜 음질의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있었다. 나는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피로해져서 탑승구 앞 의자에 털썩 앉아 있었다.호텔 객실엔 마음에 드는 조명과 책상이 있었는데, 탁상용 조명이 고장이 나 있었다. 그것을 교환해주러 왔던 직원은 굳이 문 앞에서 구두를 벗고 방 안에 들어왔다. 나는 그것이 불편하여 신발을 벗지 않아도 좋다고 세 번 말했지만, 그는 '아닙니다'를 두 번 말하고, 세 번째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그를 불편하게 한 것 같아 더 말하지는 않았다.
2023년 12월 24일 일요일
군산으로.
자정에 토트넘과 에버튼 경기중계를 보고 잠을 충분히 못 잔 상태로 집에서 출발했다. 도로 상태가 나쁠까봐 걱정하면서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논산천안 고속도로에서부터 눈발이 날리더니 서천공주 고속도로에서부터는 폭설이 시작됐다. 14년 전 12월 20일에 새만금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날은 출발부터 도착할 때까지 눈을 맞으며 달렸었다. 그리고 눈이 내리고 있는 야외에서 연주를 했었다. 나는 왼손에 장갑을 끼고 베이스를 쳤던 것이 기억 났다. 그게 벌써 14년 전 일이었다니.
군산 톨게이트에 다다르고 있을 때에 왼쪽으로 번호가 익숙한 자동차가 지나갔다. 앞질러 지나가던 차량에서 내 차를 알아보신 리더님이 전화를 했다. 그렇게 우연히 만나 리더님이 일러주신 식당으로 따라가 함께 밥을 먹었다. 식당에서 나왔더니 눈은 그쳐 있었고 어린이들이 쌓인 눈 위에서 놀고 있었다. 아이들은 어차피 서로에게 명중하지 않을 눈을 뭉쳐 던지며 뛰어다녔다. 멀리서 누런 개 한 마리가 차가운 눈을 밟긴 싫었는지 꼬리만 흔들며 아이들이 노는 걸 구경하고 있었다.
2023년 12월 16일 토요일
경주에서 공연
몇 년 만에 경주 예술의 전당에 다시 갔다. 갑자기 추워진 기온은 견딜만 했는데 센 바람이 무섭게 불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카트에 악기를 싣고 공연장까지 몇 걸음 이동하는데 맞바람에 악기가 넘어질 뻔했다.오늘은 셋리스트 앞 부분에 필요한 연주를 위해 다섯줄 펜더 재즈를 가지고 나왔다. 무대 위의 음향이 좋았다.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사운드체크를 마쳤다.
2023년 11월 14일 화요일
목포에서 공연
토요일 오후 네 시 반에 집에서 목포로 출발했다. 처음엔 내비게이션이 네 시간 반이면 갈 수 있다고 알려주더니 점점 시간이 늘어났다. 다섯 시간 사십분이 지나서야 예약해둔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음날 이른 시간에 공연장에 갔다. 미리 악기 소리를 내어보고 확인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인사를 할 때 열흘 전 광주에서 연주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 땐 안양, 광주에서 어떻게 연주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피로했었다. 일부러 하루 전에 공연장 근처에 숙소를 잡고 잘 자둔 덕분에 이번엔 좋은 상태로 연주할 수 있었다.
2023년 10월 29일 일요일
광주에서 공연
14:30 광주 예술의 전당 대극장에 도착했다. 어제 안양에서 연주할 때 마이크로 신스 페달을 다시 조정할 필요를 느꼈다. 마침 리더님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오전에 문자 메세지를 보냈었다. 악기를 설치하고 페달보드 앞에 앉아서 리허설 전까지 새로 소리를 만들고 있었다.리허설을 마치고 공연 시작을 기다렸다.
안양 공연, 그리고 광주로
나는 졸지는 않았지만, 아마 반쯤은 자고 있었던 것 같다. 연주하는 내내 소리가 가까와졌다 멀어졌다 했는데, 내 컨디션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루 전에 일본의 어느 동네에서 연주하고 있었는데 지금 안양에 와서 공연을 하고 있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20:40 공연을 마치고 광주로 출발했다. 어지럽고 졸음이 밀려와서 휴게소와 졸음쉼터에 몇 번 멈춰 서야했다. 29일 1:05, 광주 중흥동에 도착했다. 심야에 문을 연 식당을 발견하고 들어가 콩나물국밥을 먹었다.
29일 1:30, 예약되어 있던 모텔에 도착했다. 아뿔싸, 모기에 잔뜩 물리고 나서 벌떡 일어나 불을 켜고 모기 사냥을 했다. 모기 열 마리를 때려 잡고 시계를 보니 네시였다. 인근 다른 모텔에 전화를 해보았는데, 방이 없다고 하더니, 다시 전화가 와서는 주말요금을 적용해야 하니까 7만원을 내라고 했다. 나는 사양하고 전화를 끊었다. 모텔 방 안에 뿌리는 모기약이 비치되어 있었다. 처음엔 그것이 왜 있는 것인지 몰랐다. 모기약을 잔뜩 분사하고, 이불을 얼굴까지 덮고 잠들었다.
2023년 10월 28일 토요일
다시 김포공항으로
5:00 코엔지역 파출소 앞 승차장에서 택시를 탔다. 어제 저녁에 미리 외워둔 일본어로 공항에 데려다달라고 주문했다. 서울에 도착하면 곧장 안양으로 가서 오늘의 밴드 공연을 준비해야 하는 일정이기 때문에, 비싼 택시비는 아깝지 않았다. 체력을 아끼며 공항이 혼잡하기 전에 비행기 탑승구 앞에 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2023년 10월 27일 금요일
일본에서 연주
호텔 안내문에 건물전기장치 문제로 새벽 세시 경에 잠깐 정전될 수 있다고 적혀있었다. 에어컨을 켜둔채로 잠들었다가 툭 소리와 함께 전기가 나갔을 때 잠을 깨어버렸다. 그 뒤로 오전까지 뒤척이기만 했을 뿐 잠을 잘 수 없었다. 나는 다음날 아침에 제 때에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돌아가 안양 공연장에 도착해야 하는 일에 온 신경이 쓰여서 여전히 긴장과 각성상태였다.
결국 정오가 지났을 즈음 호텔을 빠져나와 동네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산책을 한다거나 하는 한가로운 목적은 아니었다. 아내가 나카노역 앞에 있는 대형상점에 가서 고양이들에게 줄 간식을 사오라고 했었다. 그런데 내 상태가 지금 어딜 다녀올 정도로 멀쩡하지 않았다. 호텔 부근에도 상점이 있을테니 고양이 간식 정도는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한참을 걸으며 기웃거렸다.
코엔지역 북쪽을 한 시간이나 돌다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을 때, 거기에 있는 수퍼마켓에서 고양이 간식들을 발견했다. 어째서 가장 가까운 곳부터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그랬다면 체력을 조금이라도 아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신에 낯선 거리를 한 바퀴 돌아볼 시간을 가지진 못했겠지, 라며 마음 속으로 내 행동을 두둔했다.고양이들을 위한 간식을 사면서 수퍼마켓에서 팔고 있는 샐러드 등을 사서 호텔방에서 먹고, 곧장 오늘 연주할 장소로 갔다. 약속시간 십오분 전에 도착했다. 잠시 후 한 사람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에게 악기를 빌려주기로 한 아카이 씨에게 답례를 하고, 베이스를 받아 내가 가져온 스트랩을 걸었다. 오래된 일제 펜더 재즈베이스였다.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여 브릿지 높이를 조정하고 튜닝을 마쳤다. 집에서 유튜브로 이 장소에서 했던 공연 영상을 몇 편 보았을 때 베이스 사운드가 좋다고 생각했다. 직접 와서 보니 역시 500와트 암펙 앰프의 소리가 무척 좋았다.친구들과 만남
나보다 앞서 와있던 병주가 구글맵 주소를 보내주며 오라고 했다. 대충 세수를 하고 아이폰을 들여다보며 그 장소로 찾아갔다.그곳은 HOWL the Field 라는 이름의 술집이었다. 병주와 경묵형, 그리고 오래 전부터 알고있었지만 처음 만나는 두 분과 다음날 같은 곳에서 연주할 일본인 두 분이 있었다. 나는 카레라이스를 주문하여 허겁지겁 먹었다.
2023년 10월 26일 목요일
일본으로
이 블로그에 자주 써오고 있었다시피, 나는 멍청하다. 기본적으로 셈을 못하고, 빠르게 상황에 대처하지도 못한다. 겸양이나 수사가 아니라, 정말 그러하고, 아주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그랬다.
자신이 둔하고 멍청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나의 몇 안되는 장점이다. 늘 배우는 데 느리고, 남보다 더 애쓰지 않으면 남이 하는만큼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번 일본행과 안양, 광주 공연으로 이어지는 사나흘 동안의 여행을 위해 미리 많이 공부했다.
구글 지도를 열어놓고 일본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나 혼자 어떻게 목적지까지 잘 찾아 갈 것인지, 움직일 경로를 찾았다. 경로와 교통편을 정한 다음엔 구글 맵을 몇 주 동안 반복하여 보면서 길을 외웠다. 스트릿 뷰 기능이 매우 유용했다. 혼자 외국에 가는 것도 처음이고, 빠듯한 시간 안에 반드시 돌아와야 하는 일정을 해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사진으로 지형지물을 외우고, 지도를 보며 길을 머리 속에 담아둔 다음 지난 10개월 사이에 웹에 올려진 정보를 취합하여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전부 메모했다.
6:20 새벽에 한 번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고양이 깜이가 곁에 다가와 내 베게에 기대어 같이 잠들었다. 어둠 속에서 깜이가 나를 보는 표정이 어쩐지 걱정하는 얼굴 같았다. 저 인간이 제대로 잘 할 수 있을까, 라고 하는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