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31일 토요일

어둠 속의 고양이.

흰색 털 덕분에, 어둠 속에서도 잘 보일뿐 아니라 아이포토에서 얼굴 인식도 완벽히 되고 있는, 셋째 고양이 꼼.

얘는 왜 부쩍 잡념도 많고 사색적으로 되어가는걸까. 어른 고양이가 되어 조금씩 덜 까부는 것, 그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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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6일 월요일

새벽 모임.

새벽 다섯 시. 헤드폰을 벗고 방문을 열고 나와보니, 문앞에 이렇게들 앉아있었다.

분명히 뭔가 수군거리다가 멈춘듯 한데... 시침떼고 조용하게 쳐다들 보고 있었다.

보통 여섯 시에서 일곱 시 사이에 이놈들이 아내를 깨우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뭔가를 모의하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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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4일 토요일

아이폰


어제, 아내와 나의 아이폰을 4S로 바꿨다.
iOS 5에 최적화된 기계를 쓰게 되니 지금은 가볍고 날 것 같음.

그런데, 저녁에 아내가 모임에 나갔다가, 각종 분야에서 언제나 난체하며 타인을 자주 비하하곤 하는 어떤 갤럭시 유저남으로 부터, ‘아이폰의 기능을 10%라도 제대로 쓰고 있느냐’는 비아냥을 받았단다. 그분 말하길 자신은 스마트폰의 기능을 10%도 쓰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갤럭시 탭을 사용한다고 하는, 뭔가 이상하면서도 아주 잘 수긍이 가는 설명도 덧붙이면서.


요약해서 두 가지를 말해주고 싶은데, 자신이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한다고 해서 대부분의 남들도 비슷하리라는 생각은, 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관심도 호기심도 없으면서 동시에 이해력과 가치판단도 결여된 상태를 드러내는거다. 보통 그런 상태를 간편하게 표현하기 위하여 무식하다…고 부른다. 무엇이든 '여자'에게 가르치려 드는 한국의 아저씨들을 그래서 남들이 모두 싫어하는 거란다.

그리고, 내 아내는 아이폰의 기능을 전부 죄다 써서 걱정이다. 참고로 지난 십여년 넘게 매킨토시만 써왔다. 그리고 우리는 맥 오에스로 연애를 하다가 결혼했다.

듣던 중 병신같은 소리였어서 굳이 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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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2일 목요일

편식하는 고양이.

셋째 고양이 꼼.
얘가 새해에는 제발 부디, 주는대로 밥 좀 잘 먹었으면 좋겠다.
음식을 가리고 먹는 양도 적어서 그 덕분에 몸매는 제일 날씬하다.
새해에는 잘 먹는 것을 찾아내어 무조건 많이 먹여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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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고양이.

모든 포유동물이 그렇지만, 고양이는 그중에서도 사랑이 많은 존재이다.
그리고 예민하기도 하고 세심하기도 하다.
제법 까탈스럽고 예민하다는 주인 녀석에게 따지고 꾸짖을 일들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참을성도 많은 동물이다.

집안의 큰언니 고양이 에기. 건강해줘서 고맙다.
집안에서 가장 스트레스에 민감한 고양이인데도 늘 많이 참고 오래 기다려줘서 볼 때 마다 미안하다. 언제나 건강하고 많이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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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1일 수요일

밤은 길어도 아쉽다.


겨울밤은 길어져도 아쉽다.
요즘은 며칠 동안 밤마다 음반들을 앨범째로 되듣고 있다.
이틀 전에는 아침까지 캐논볼 애덜리, 베니 골슨, 브레커 형제들, 밥 민처의 음반들을 들었다. But Not For Me가 끝났을 때 창문 밖이 밝았다.
오늘은 윈튼 켈리의 음반 서너장을 아이튠스에 담아 헤드폰을 쓰고 순서대로 듣고 있다.
음악을 들을 시간도 없이 한 해를 보냈는데, 그렇다고 분주히 움직여 무엇을 했다고 말할 것은 하나도 없다.
좋은 연주, 좋은 음악을 듣고 있으니 무슨 안전한 장소에 겨우 숨어들어온 듯한 기분이 든다.

이번 해엔 부쩍 자주 어딘가 좀 다녀오고 싶어졌었다.
아침에는 안개도 내리고 풀잎에 찬이슬이나 서리가 앉아있거나 해도 좋고, 방문을 열면 흔들리거나 말거나 나뭇가지가 능청스럽게 내려다보는 곳에서 며칠, 아니면 몇 주 지내다 오고 싶었다.
그리고 그곳은 조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함평에 계시는 영주 형님도 뵙고 싶고, 대구에 있는 해룡형도 만나고 싶었다.
동해에 사는 영현이도 찾아가보고 싶었고 바다 건너 조지아주인가에 살고 있다고 하는 은엽이도 생각났다.
멀리 있는 분들은 말할 나위도 없고, 가까이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 잔에 남은 차를 식혀본 일도 없었다.
언제나 바쁘게 급하게 서두르며, 만나면 시계나 들여다 보며 지내버렸다.
언제나 시간이 없었던 이유는 알고보면 내가 바빠서도 아니고 특별히 더 게을러졌기 때문도 아니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열흘 남은 올해의 끝이 되고 났더니, 모래를 한 웅큼 쥐었다가 손을 편 것 처럼, 무엇 하나 남은 것도 없고 만져지는 것도 없다. 뭘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기억해야 할 것을 까먹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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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5일 목요일

새 버젼 녹음.

이 날의 녹음은 아주 쾌적했었고, 스트레스 받는 일도 없었고, 정말 그날 오후의 커피 맛이 기억날 정도로 상쾌했다. 두 세 번 합주로 끝나버린 녹음이어서 심지어 녹음을 마치고 시간이 남았다. 나는 멤버들과 헤어져 밀려있는 다른 일을 하러 가기도 했다.

촬영에 비협조적인 멤버들을 카메라맨들이 잘 찍어주시고 편집도 잘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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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4일 수요일

제대로 숨을 쉬기.

무대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바쁘게 지내왔는데 이제 하나 둘 일정이 끝나간다. 올 연말은 좀 한가할 것이다.
시간이 나면 그동안 미루고 못했던 일들을 할거다.
몇 주 고생하던 감기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아침에는 안개가 가득하고 겨울 냄새가 풍겨왔다.

그런데 아무리 공기를 들여마셔도 가슴 속이 시원해지지는 않았다.
언젠가 부터 나도 모르게 잘 못 숨쉬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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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6일 화요일

12월은 냅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느껴진다고 하지만, 12월은 정말 냅다 뛰어 도망가고 있구나. 벌써 닷 새가 지나고 있다.
어제 밤에는 아직 내 멱살을 잡고 어긋장을 부리고 있는 감기를 버텨보려 일부러 든든히 먹고 오래 잤다. 훨씬 개운하다.

대충 세 컵 정도 나올 분량의 콩을 담아 빙글 빙글 돌려 갈았다. 이제 아침이 밝을 때 까지 마실 커피를 내려 놓았다.

연말이어서 이곳 저곳으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그중 일부는 연주를 부탁받는 전화인데 일정을 더 이상 조정할 수 없어서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두어 개의 일은 돈을 받지 않는, 친목상의 부탁이었다. 오래 전 부터 알고 지내던, 내가 어려웠던 시절 도움을 주셨던 분의 비영리성 행사인데다가 심야의 시간이어서 부담없이 참석을 약속했다. 올해에도 이렇게 똑같이 지나가버리고 말게 되었지만, 내년의 연말에는 마음 따뜻해지는 날을 마련해 가까운 친구들과의 모임이라도 가졌으면 좋겠다. 연주도 하고 떠들고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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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와 함께.

지금 커피잔 곁에는 판피린 병도 한 개 기다리고 있다. 감기와 함께 겨울을 보내고 있다.

지난 달 7일에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새로 녹음했다.
아침에 음원이 나와있어서 육백 육십원을 내고 다운로드했다.
이 곡은 그날 오후에 세 번 연주했던 것 중 두 번째의 것을 테이크한 것이고... 그렇게 해왔던 것 처럼 동시에 연주한 것을 더빙 없이 라이브로 녹음한 것. 모노로 시작하여 스테레오로 변하는 아이디어는 녹음 직후 리더님의 제안이었다.
윤기형님의 조언을 듣고 그것이 옳다고 동의하여 베이스의 라인을 간결하게 했던 것이 그때는 좋았는데, 지금 들어보니 조금 답답하기도 하다. 나의 나름대로의 구상이 있었다고 해도 언제나 전체 사운드를 위해서 양보하고 물러나주는 것, 그것이 좋은 결정만은 아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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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29일 화요일

가을비 오다 말다.



지난 주에 검지 손가락의 손톱이 들려버렸다. 일주일 내내 너무 무리를 했다.
그것을 핑계로 주말의 이틀 동안 악기를 만지지 않았고, 어제는 신인밴드 심사의 일로 악기에 손댈 시간이 없었다. 다행히 손톱은 아물었다. 뻣뻣해진 손가락을 펴느라 새벽 부터 연습을 했더니 아침. 일하러 나갈 시간이 다 되었는데 지쳤다. 날씨도 좋아서 마른 이불 속에 들어가 빗소리 들으며 잠이나 자고 싶다.

커피를 죽처럼 진하게 내려서 한 주전자 들고 운전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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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28일 월요일

어릴적 나에게.

이 사진을 며칠 전에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으로 걸어뒀다. 그 후 질타와 핀잔을 받았다. 현재의 모습과 너무 다르지 않느냐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십육년 전의 사진이다. 내 방은 옥탑방이었다. 그날 오후에 옥상 위 방문 앞에서 친구와 둘이 몇 장의 사진을 찍었었다. 누군가로부터 음악을 하도록 도와줄테니 사진을 찍어오라는 주문을 받았었다. 처음엔 당돌하게도 '사진이라면 나를 만났을 때에 지들이 찍으면 될 것이지'라고 했다가, 그래도 뭔가 앞의 일을 도움 받을 것 같아서 이런 찌질한 일도 했었다. 그리고 결과를 말하자면 당시에 음악 일을 하기 위한 도움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받지 못했다.

요즘은 연말이고 학기말이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로부터 듣는 한숨과 푸념 중에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이 많았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냉정하고 밥맛 없을테지만,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고 있다면 누구도 자신에게 무엇을 하면 좋다고 조언해줄 수가 없다. 그게 사실이다. 스스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모르는데 뭐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그 앞에서 만일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된다라며 아는체 하고 훈수를 두는 사람이 있다면 경계하거나 무시해도 좋다. 사기꾼이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아는 것은 처음에는 어려운 일처럼 보인다. 하고 싶다는 생각의 본질이 바로 그 일이 맞는지, 그 일을 하는 것으로 얻어질지도 모른다고 믿고 싶은 어떤 보상인 것인지를 처음에는 스스로 알지 못한다. 어느쪽이라고 해도 제일 좋은 일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작하지 않은채로 세월을 보내다 보면 하고 싶어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나중에는 잊게 되어 버린다.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면 주변의 대부분이 제약이 되고 벽이 되어버리는 것 투성이이지만, 그래서 어쩌면 매일 좌절하고 자주 무너지겠지만, 시작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을 배우게 된다. 하고 싶었던 일의 실체가 알고 보니 허상이었다거나, 재미가 없어졌다거나 하여 그만둔다고 하더라도 아예 해보지도 않았던 것 보다는 낫다고, 저 시절의 나는 생각했었다.

사진을 찍었던 그날 오후 이후 지금까지, 나는 참 여러 갈래의 길을 빙빙 돌았다. 바보같은 판단으로 일을 그르치기 일쑤였고, 어리숙하여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이 많았다. 능력이 모자라 길바닥에 주저 앉아 고개를 떨궈야 했던 날들도 많았다. 여전히 그렇지만 재빠르지 못하여 부당한 일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도 자주 벽에 부딪혀 인상 쓰며 올려다보고 한숨을 쉰다. 결핍이 많고 모자란 녀석이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똑같다. 다만, 십육년 전 막연히 꿈꾸었던 그 일만은, 하고 있게 되었다.

부끄러운 이십대 시절의 사진을 꺼내어 두고, 나는 과거의 나에게 미안해했다. 과거의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도 못했다. 그러나 아직 계속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니까, 라고 변명을 하고 싶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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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12일 토요일

부산역

10일, 목요일.
새벽에 출발하여 오전 열 시에 부산역에 도착했다.
지난 밤에 일찍 잠들면 푹 자고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일찍 잠드는 바람에 너무 일찍 깨어버렸다. 결국 밤을 새우고 운전. 어둠이 걷히면서 드러나는 하늘 빛이 예뻤지.

부산역 광장에는 바람이 불어서 낙엽이 나이먹은 순서대로 떨어져 날리고 있었다.
비둘기 몇 마리가 노숙인들의 근처를 희롱하듯 놀며 다니고 있었다.
이곳에서 기차를 타고 도착할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잠이 쏟아졌다.
하루 전에 미리 도착해있던 상훈씨가 나타나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것을 보기 전 까지 몽롱하고 어질어질한 상태로 상체 하체를 잘 가누지 못했다.

낮의 리허설을 마치고 부산의 밀면을 한 그릇 먹고 있을 때에 김진숙 씨가 무사히 크레인에서 내려오셨다는 소식을 읽었다.

2011년 11월 10일 목요일

편안한 새벽

일찍 잠들었다가 새벽에 일어났더니 책상 앞의 자리를 차지하고 고양이들이 잠들어 있었다. 손을 뻗어 쓰다듬으면 그르릉 거리며 좋아한다. 나는 좀 비켜달라고 했던 것이었는데 그르릉만 하고는 두 놈 모두 다시 잠들어버렸다.

동이 트기 전에 공연을 위해 부산으로 출발할텐데, 아이팟에 담긴 음악들을 정리하고 몇 장의 음반들을 새로 집어 넣었다. 먼 길을 혼자 운전하며 왕복하는 하루를 보내고 난 후엔 뭔가 마음 속이 정리정돈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밤중에는 돌아와서, 나도 고양이들 처럼 몸을 말고 자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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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9일 수요일

녹음실에서.

indie2go from Instagram
11월 7일, 벨벳 녹음실에서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녹음했다.
산울림 헌정 음반에 이 곡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김창완밴드의 트랙으로 수록될 예정이다.
리더님의 새로운 구상에 따라 편곡을 바꾸어 연습해 본 것이 두어 번. 그것을 공연할 때에 무대 위에서 해 본 것이 서너 번... 이 날 실제 녹음 시간 두 시간, 연주는 합주로 세 번이었다. 마지막 것으로 테이크했다.
베이스는 앰프 없이 Moollon의 D.I.와 컴프레서, EQ, 시그널 부스터만 사용했다.

새 편곡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뭔가 더 덧입히려고 애쓰는 것 보다는 더 이상 빼거나 생략할 것이 없을 때에 진솔해진다. 음악도 인간관계도 비슷하다.


녹음은 쾌적하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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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28일 금요일

위기

우울한 기분이 심해졌다.
사실, 이 우울은 가을이 되었다고 하여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벌써 몇 개월간, 아니면 몇 해 동안 쌓이며 지속되었던 우울증 - 이거나 그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여유 없이 달려가기만 해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도와 도전은 크던 작던 결국은 실패의 연속이었다는 자학이 시작됐다. 사실은 그냥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서 나약한 자기 연민에 빠진 것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풀죽은 인상을 하고 있었다. 어느날 심야에 졸리워 하는 아내를 붙잡고 내 상태가 이러이러하다고 푸념을 했다. 뭔가 징징거리고 싶은 마음에 주절 주절 이야기를 했더니, 다정하고 나지막한 일갈이 돌아왔다.
"정신과를 가보던가."

그 말을 듣고 뭐가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에 실망했다가, 다음 날 낮에 고속도로를 운전하던 중 생각이 나서 웃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다지 귀찮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별로 귀기울이고 싶지도 않다는 투로 말하던 아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차창을 열어둔 채로 큭큭 웃어대고 말았다. 백 몇 십 킬로미터로 달리며, 음악도 라디오도 꺼둔채로 우는듯 웃었다. 그러다가 웃음을 멈추고 보니, 나는 역시 정신과에 가보던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밤에는 무엇도 좋은 것이 없고 물을 마셔도 입맛이 쓰더니, 아내의 냉소적인 태도에 오히려 위안을 얻었다.
행크 모블리의 음반을 여섯 장 내리 들었다. 아침 까지 음악을 듣고 싶은 새벽 세 시 반...
위기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일로 지레 기운 빠질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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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10일 월요일

매일 일만 하고 있다.

오래 블로그를 업데이트 하지 않았다. 대신 트위터에 낙서를 많이 했다.
컴퓨터를 열어볼 시간은 없고 늘 아이폰을 쥐고 살았다. 티스토리는 아직도 iOS를 제대로 지원해주지 않고 있다.

일상은 굳이 업데이트를 할 것도 없이 똑같은 매일이 반복되고 있다. 일하고 또 일하고, 레슨, 강의, 공연을 하고 연습을 반복했다. 가끔 하루 반나절 동안 잠을 잤다. 주차장에서 잠깐씩 졸거나 길가에 차를 세우고 뒷자리에 누워서 잤다. 노을을 보거나 막히는 도로에서 앞 차량의 빨간 등을 보며 살짝 꿈을 꾸거나 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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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6일 화요일

완전 어린이.

이 고양이는 거의 강아지 수준이다.
어찌나 사람을 좋아하는지 옆에 와서 등을 붙이고 눕는다. 졸졸 따라 다니거나 장난감을 물고 와서 사람 얼굴을 올려다 본다.
내가 번쩍 들어 안으면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침착하려고 애쓴다. 반면, 여자가 안으면 사람 몸에 착 감겨서 그대로 떨어질 줄 모른다. 그렇다... 얘는 수컷 어린이 고양이이다.

왜 버려졌었는지, 누가 버렸던 것인지는 모른다. 다행히 우리집에서 살게 된 이후 말썽 피우는 것 없이 천진하게 놀며 잘 먹고 잘 논다. 이렇게 내 집에 맡겨진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입양자 심의를 까다롭게 하고 있는 아내는 선뜻 이 고양이를 데려갈 분을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

귀여움을 잔뜩 떠는 이 고양이 덕분에 원래 우리집 식구 고양이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폐쇄적이고 비타협적인 가족이다. 공간을 공유하도록 허락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막내 고양이는 이 고양이에게 자신의 '엄마'를 빼앗겼다는 기분이 드는 것인지 노상 시무룩했다.

나는 잠을 자는 시간이 부족하고 그 시기도 넉넉하지 않다. 그런데 이 놈은 늘 내가 잠들기 시작하면 다가와 손을 물고 얼굴을 밟는다. 장난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나는 전 보다 더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중이다. 철창 안에 가둬놓는다면 사람은 조금 편히 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불쌍한 눈빛을 보느니... 마음에 걸려 가둬두고는 또 내가 못자겠다.

이 고양이와 평생 함께 할 가족을 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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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31일 수요일

흐리고 더웠다.

습하고 더운 날씨였다. 라디오를 마치고 돌아와서 조금 빈둥대다가 그만 시간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그동안 적어둔 미뤄둔 일들을 들여다 보며 핑계와 궁리를 만들어 또 미뤄둘 마음을 먹다가, 낮에 독촉 전화를 받은 강의계획서만큼은 작성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몽골로 떠나기 직전 연락을 받았고, 정말 겨를이 없었다.
학교 홈페이지는 그러나 여전히 윈도우즈에 최적화되어있다며, 익스플로러(만) 권장하고 있다. 아이패드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컴퓨터를 열어 노력을 해봤지만 역시 아직도 맥 오에스에서는 눌려지지 않는 스크립트 버튼 투성이였다.
하루 더 미루어 보았자 내일도 모레도 없던 시간이 보너스로 생겨지지는 않는다. 게다가 오늘은 개강 첫 날 학생들을 만나는 약속이 예정되어 있다.
수작업으로 일일이 모든 것을 작성하고 났더니 다섯 시 반이 되었다.
열 시에 일어나면 된다.
컴퓨터를 열은 김에 기기들을 동기화하고 사진을 옮기는데에 삼십여분을 더 썼다.
지금 여섯 시가 되었다.

새삼 말하기도 뭐하지만 하루가 짧다.
대부분의 하루를 잠만 잤다고 하는 고양이에게도 늦여름의 하루는 짧다.
흐리고 더운 여름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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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새 음반 홍보를 위해 연달아 라디오 방송들이 잡혀 있다.
라디오의 부스는 어느 곳이라고 해도 반가운 느낌이 있다.
이제는 말장난으로 FM 주파수를 소비하는 프로그램들이 더 많다. 그렇지만 여전히 음악으로 위로를 나누고 마음을 토닥여주는 분들도 있다. 라디오 스튜디오의 모습이 영상으로 보여지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아마 머지않아 거의 모든 방송이 그렇게 변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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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 다녀왔다.

토요일 저녁에 출발, 일요일 오후에 공연, 월요일 새벽에 귀국행 비행기를 타는 일정일 뿐이었지만, 몽골에 다녀왔다.
활기찬 울란바트로의 시민들을 봤다. 담벼락이라고는 없는 드넓은 초원, 탁 트인 벌판에서 노상방뇨를 하고 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쳐 서로 허허 웃기도 했다.
석탄을 싣고 중국으로 향하는 끝없이 긴 열차가 대륙 위에 금을 긋듯이 지나가는 모습도 봤고, 그곳에서 사업을 한다고 하는 한국인들이 몽골어는 조금도 배우지 않은채 노동자인 몽골 현지인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모습도 봤다.
우리말과 발성이 똑같아서인지 유창한 한국어를 말하는 통역 담당 몽고분들을 보며 놀라와했다. 공부를 무척 열심히 했거나 재능이 남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끄럽고 무질서한 공항과 포장상태가 좋지 않은 길 옆에는 플라스틱 비닐 쓰레기들이 끝도 없이 버려져있었다.
너무 짧은 여행이었긴 했지만, 몽골의 사람 사는 세상을 볼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 내일을 위해서, 혹은 오늘만을 위해서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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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20일 토요일

새 음반

하루만 더 쉬고 싶다는 욕심과 내일도 할일이 있다는 위안이 섞이는 밤이었다. 김창완밴드의 이번 음반은 정확히 2011년 6월 12일 하루에 모두 녹음했다. 손에 쥔 음반이 마치 그날 찍어둔 사진 한 장 같다.

내 앞에는 지금 두꺼운 책도 있고, 어지러운 악보도 있고, 심난한 뉴스와 가증스러운 인터뷰 기사도 있고, 아내의 결혼전 사진과 밤새 말썽 피우는 어린 고양이도 있고, 물기를 먹은 악기들과 반쯤 비워진 담배갑도 있다.

그리고 그런 것과 상관없이 잠은 오지 않고 하고 싶은 것과 해야할 것들은 맨날 머리 속에서만 서로 다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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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9일 화요일

김창완밴드

부산 국제 록페스티벌에 다녀왔다.
큰 행사를 운영하는 스탭들의 일사불란함과 성실함, 똑 부러지는 일처리가 인상적이었다. 무엇이든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이 하는 일이 중요하다. 날씨가 좋지 않다거나 하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그동안 착실히 발전하고 있는 부산 국제록페스티벌은 아마 머지않아 가장 중요한 음악 행사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악기가 비에 흠뻑 젖었다. 이동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미처 잘 말리지 못했다.
오늘은 서울숲에서 야외공연을 한다. 비는 여전히 흩뿌릴텐데 다른 악기를 가져가야 좋을지 기왕에 젖은 악기를 가져가는 것이 좋을지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 악기들의 줄을 손질했다. 한 개는 새 줄로 감아 놓았다.

출연자의 이름이 써있는 콘테이너 출입문이 남다르게 보여 담아왔다. 대충 이 날의 그 느낌과 흡사하게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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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1일 월요일

주유소

디지털 카메라를 아예 집에 놓아두고 출발했었다.
아이폰으로 아무데서나 사진을 담았다.
아무래도 아이폰 5에는 더 좋은 카메라를 붙여주면 좋겠다.

아틀란타에서 공연 후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물을 사러 어느 주유소에 들렀었다. 검고 눅눅한 밤공기 속에 비현실적으로 불빛만 빛나고 있었다.
약간 창피하지만, 이건 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느낌이라고 생각하며 한 장 찍어뒀는데 나중에 보니 살짝 흔들려서 진짜 그런 느낌으로 찍혀있었다. (....라고 나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5달러에 한 상자를 구입해왔던 물은 맛있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한 병을 마셔보니 전혀 맛이 없었다.
밤 사이 갈증도 욕심도 많이 없어졌었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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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일만 킬로미터 떨어진 무대

이상훈 씨가 찍어줌.
이 날의 앰프는 Ampeg SVT 2 였다.
관객석 방향의 소리는 알 수 없었다. 무대 위의 앰프 소리는 좋았다.
떠나오는 날 집에서 Moollon과 Fender 재즈를 두고 한 개를 고르느라 고민을 했었다. 요즘 네크의 상태가 좋았던 Fender를 집어들고 떠났었다. 하루 전에 악기점에서 손을 보아두기도 했다. 그 덕분에 보름 동안 좋은 상태로 유지되어주어서 연주하는데에 편했다. 신경 쓰이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번엔 다섯 번의 공연을 Moollon 3 Plus와 Bass Muff, 그리고 아틀란타에서 십만원에 구입한 Polytune 튜너와 함께 했다. 페달보드를 가지고 다니지 않을 때에 뮤트 스위치 역할을 해줄 튜너가 필요했는데 그 용도로도 Polytune은 훌륭했다. (사실 한 개 가지고 싶었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무대 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공연 전에 설레임이나 떨림이 없으면 안된다느니 그런 말을 나에게 했던 분이 있었는데, 그런 것 없어진지 오래되었다. 편안한 마음이면 된다. '두근 두근이 없으면 안된다' 같은 말을 하며 허세를 부릴 여유가 있으면 그 대신 가만히 앉아서 준비가 충분히 되었는지 하나씩 꼽아보며 마음을 조용하게 만드는게 좋다. 관객이 많거나 적거나, 무대 상태가 좋거나 나쁘거나 간에, 고른 숨으로 연주할 생각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낫다.

집에서 만 킬로미터 떨어져있는 어느 극장에서의 저녁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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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24일 일요일

편안한 아침

집에 돌아와 이틀 만에 맞는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막내 고양이는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장난을 걸더니 어느새 창가에 길게 누워 졸고 있었다.
창문을 열고 싶었지만 졸고 있는 고양이를 방해할 것 같아서 그만뒀다.
오랜만의 편안한 아침.
오늘은 수목원에서 야외공연을 한다.
습기가 아주 많을 것이다.
올 여름엔 내 악기들이 잘 버텨준다. 아무 이상이 없어서 조금 불안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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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23일 토요일

시카고에서..

July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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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골목

 July 2011
무척이나 더웠다. 묵고 있던 호텔과 옆 건물 사이에는 이런 골목이 있었다. 이른 아침에는 자동차에서 물건을 내리고 그것을 바삐 옮기는 사람들이 조용히 일하고 있었다. 밤중에는 누군가가 저 골목을 빗자루로 쓸고 물을 부어 청소하는 것을 보았다. 오래된 건물 사이를 지나다니는 바람은 마르고 건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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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에서.

July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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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센터 투어

이번 여행 동안에 로스엔젤레스, 샌디에고, 아틀란타, 시카고의 기타센터들을 모두 가보았다. 기타센터의 직원이라고 해도 대략 열흘동안에 네 개 도시의 지점들을 돌아본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곳은 시카고의 링컨파크 부근 기타센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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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왔다.

뙤약볕이었던 미국에서 보름간 지내고 어제 돌아왔다.
공항에서 차를 세워두었던 일산 상훈씨네로 갔다. 그곳에서 윤기형님을 태우고 장흥으로 모셔다드렸다. 다시 부랴 부랴 달려 구리에 도착했다. 학원에서 레슨 일을 다하고 집에 오니 밤중이 되었다.
다른 나라에서 폭염을 겪었던지라 아침에 집에서 일어나니 선선한 느낌이 들었다.
주말까지 쌓여있는 밀린 일과 공연, 일요일엔 가족 모임, 다시 월요일 부터 무한 반복될 생활들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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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11일 월요일

San Diego 에 왔다.

바보같은 티스토리는 iOS에서 사진 첨부도 되지 않아서 몇 줄만 적어둔다.
미국 공연 세번째 연주를 위해 샌 디에고에 도착했다. 지금은 리허설을 기다리며 숙소에서 대기중이다.
약 10000 km 떨어진 곳에서 나라 소식을 듣고 보고 있다.
남겨두고 온 일들과 해야할 것, 써야할 것들이 신경 쓰이고 있지만... 연주 여행이 끝날 때 까지는 공연에만 집중해보려고 한다.
트위터에 툭툭 던지듯 잡글을 적어두는 맛에 이곳에는 한 달에 한 두 개의 글을 올리고 있다.
티스토리가 바보만 아니어도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티스토리는 좋아질 가망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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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7일 목요일

여행 준비

아침 일찍 일어나, 참 바쁘게 많은 일을 해냈다. 계획한대로 다 했다고 나 혼자 대견해하고 있다.
로스 엔젤레스, 샌 디에고, 아틀란타, 시카고에서 공연을 하러 몇 시간 후 떠날 예정이다.
가지고 나갈 악기를 손보고 새 줄을 감기 위해 오전에는 악기점에 들렀다.
운전하고 달리고 일을 다 마치고 집에 오니 열 두 시가 되었다. 짐을 꾸리고 남은 일을 끝냈더니 지금은 세 시 사십 분이다. 스무 시간 넘게 깨어있는 중이다. 졸음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에는 여행 중에 뭘 잃어버린다거나 두고 온다거나 하는 멍청한 짓을 하지 않기를 바라며...
두어 주 동안, 잘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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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28일 화요일

고맙고, 미안했다.

고양이 순이와 내가 작은 오피스텔에서 둘이 살고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 해 겨울에 나는 매일 연주를 하러 다녔다.
저녁부터 밤까지 세 번, 네 번의 연주를 하고 나면 셔츠는 땀으로 젖기 일쑤였다. 그러면 나는 더워진 몸을 식히기 위해 겨울의 차고 매서운 바람이 부는 밖으로 나와 젖은 셔츠 차림으로 쏘다녔다. 자동차의 창문을 열어둔 채로 운전을 하기도 했다.

어느날 일을 마친 후 새벽에 오피스텔로 돌아오면서 그만 고양이 밥을 사오는 것을 잊고 말았다.
당시에는 잘 모르고 그랬던 일이었지만, 몸이 고단했고 다시 나가기엔 귀찮았다. 나는 대충 내가 먹던 참치캔을 덜어서 고양이 밥그릇에 담아주고는 그만 쓰러져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알람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팔 다리가 무겁고 등은 침대에 접착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잠은 깨었는데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감기에 심하게 걸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목과 이마에는 열이 심했다. 손은 차갑게 느껴졌다. 허벅지에 이불이 스치기만 해도 민감한 통증을 느꼈다. 고개를 들어보려 했더니 여름날 뙤약볕에서 넘어져 앞으로 구르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나는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엉금엉금 기어서 물을 한 잔 마시고는 주저앉았다. 몇 시인지 확인하고, 아직 연주하러 나가려면 몇 시간은 남았으니 조금만 더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천천히 기어가서 침대에 누웠다. 순이는 책상 앞 의자에서 몸을 말고 쿨쿨 잠들어있었다. 순이가 자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는 다시 잠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나는 내 신음소리에 잠을 깨어버렸다.
나도 모르게 아파서 신음을 내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 소리에 그만 내가 깨어버렸던 것이었다.
우선 일터에 전화를 하여 몸이 아프다는 것을 말하고 양해를 구하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전화를 찾으려 했다.
그런데 몸이 너무 무거웠다. 꼼짝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들어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입고 있던 셔츠는 식은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열은 더 심해져서 널어둔 빨래를 걷어 깔고 누우면 잘 다려질 정도라고 생각했다.
나는 가까스로 눈을 뜨고 팔을 들어 올려 무거운 몸을 일으키려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두 개의 파란 눈알이 내 코 앞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찌나 놀랐는지, 잠시 내 위에서 나를 보고있는 존재가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고양이 순이였다.

고양이는 나를 밟고 앉아서 내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양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가늘고 높은 목소리로 외마디 말을 하고는, 하고 있던 일을 계속 하겠다는 듯 내 입술과 코를 핥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짓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당황했다. 그 다음에는 간지럽고 우습기도 하여 어린 고양이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려주며 조금 더 누워있었다. 고양이 순이는 계속 내 볼과 코와 입을 핥아주고 있었다.
그런데 간지럽다고 생각했던 볼과 입술에 이상한 감촉이 느껴졌다. 간지럽기 보다는 통증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순이를 쓰다듬으며 머리맡으로 옮겨 앉혔다. 그랬더니 고양이는 펄쩍 내 얼굴을 뛰어넘어 책상 앞 의자에 다시 올라가 앉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혼자 기합소리까지 내며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았다. 일터에 가야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었다. 이제 일어나서 전화를 하고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본 다음, 약국에라도 다녀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을 마치고 세면대 앞에서 거울을 들여다 본 후 전화를 찾으러 나오려다가, 나는 다시 욕실로 들어가 거울을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이게 뭐지.
입술 끝이 벗겨져 있었다. 볼도 벌겋게 부어올랐고 코 끝도 살짝 빨갛게 되어있었다.
고양이가 핥아주는 바람에.
나는 그것이 고양이 순이의 혀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것을 몇 초 동안 거울 앞에서 얼굴을 만져보다가 그제서야 알았다. 내가 신음을 내었던 것은 고양이의 혀가 너무 따가와서 그랬던 것이었다.
나는 찬물을 틀어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렸다. 고양이가 앉아있는 책상 앞으로 가서 몸을 낮춰 앉았다. 몇 개월짜리 고양이 순이가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그릉그릉 소리를 내며 좋아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에게 말하듯 무심코 이렇게 말해버렸다.
"고맙다."

나는 어린 고양이 순이를 여러번 쓰다듬고 들어올려 껴안았다. 얼굴을 막 주물러주기도 했다. 순이는 계속 그릉그릉 소리를 냈다. 뭔가 큰 위로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고양이에게 간호를 받은 것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이 고양이에게 고마와했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아프더니, 정신을 차려보니까 나는 고양이를 들어올려 한 바퀴 돌기도 하고 아직은 거북하지만 앉았다가 일어설 때에도 덜 어지러웠다. 그렇다면 쉬지 말고 일을 하고 오자, 라고 생각했다. 나는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고 좌변기에 앉아 이를 닦았다. 평소보다 두툼하게 옷을 껴입고 악기를 챙겨 질질 끌며 고양이를 위해 램프를 켜주고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했다.

그날 밤에 연주하는 일이 수월하지는 않았다. 의자를 부탁하여 앉아서 연주했다. 도돌이표를 잊고 실수를 하기도 했다. 가까스로 일을 마치고 났는데 땀도 나지 않았다. 밖으로 나왔을 때엔 내 입김이 단지 바깥 공기가 차갑기 때문에 나는 것인지 내 체온이 너무 높기 때문에 나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차가운 공기를 쐬니 조금 몸이 나아진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연주를 할 수 있었을 정도라면 뭐 그다지 심하게 아픈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지난 밤에 잊었던 고양이 밥을 기억하고 밤새 문을 여는 마트에 들러 사료를 한 봉지 샀다. 어서 들어가 쉬고 싶어서 내가 먹을 빵과 우유를 봉지에 담아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악기를 내려놓고 자신만만하게 순이를 부르며 사료봉지를 뜯어 고양이 밥그릇을 찾았을 때가 되어서야, 아뿔싸, 나는 고양이의 밥그릇과 물그릇이 텅 비어있는 것을 보았다. 어린 고양이 순이는 기뻐하는 소리를 내며 사료봉지에 달려들어 보채고 비닐봉지 안에 들어있는 빵을 물고 뛰어다녔다. 전날 밤에 덜어주었던 참치통조림은 말라붙은채로 그릇 밖에 나와있었다. 입맛에 맞지 않았는지, 입맛이 변했던 것인지 참치는 전혀 먹지 않았다. 나는 고양이 밥그릇에 사료를 부어주고 다른 그릇에 물을 따라줬다.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밥을 먹고있는 고양이 곁에 나란히 앉아서 우유와 빵을 먹었다.
우습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지만, 나는 사람의 언어로 또 고양이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세월이 흘러 벌써 그것은 6년 전의 일이 되었다. 이제 고양이 순이는 살이 포동포동 오른 어른고양이가 되었다. 걸핏하면 사람처럼 의자에 앉아 무심하게 바라보다가 서로 눈이 마주치면 눈을 깜박여준다. 어슬렁거리며 집안을 걷고 다른 고양이와 장난을 치다가 가끔은 혼을 내기도 한다.

6년 전의 그 겨울밤에, 아기 고양이였던 순이는 사실은 내가 아파하고 있던 것을 걱정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밥도 물도 주지 않은채 잠만 자고 있는 나를 보며 어서 저놈을 깨워야 밥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일 수도 있다. 깔깔한 혓바닥으로 계속 내 얼굴을 핥으며 정말 단순하게 배가 고파서 사람을 책망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의 만 이틀을 굶고있었으면서도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내 곁에서 몸을 말고 자다가, 식은땀을 흘리고 고열을 견디고 있었던 나를 한참 동안 핥아준 덕분에 내 얼굴에 상처까지 냈던 고양이의 행동을 나는 쉽게 잊지 못한다. 사실은 다른 의도였었다고 하더라도, 나에게 그 경험은 어린 고양이로부터 받았던 극진한 간호였다. 그리고 아무도 본 사람은 없지만, 그날 밤 내가 고양이 곁에 가까이 앉아서 고맙고 미안했다라고 말했던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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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12일 일요일

램프를 친구 삼은 고양이

고양이가 집안에 네 마리가 있는데, 각각 식성이 다르다.
이 녀석이 즐겨 먹는 사료는 저 넘이 안 먹고, 요놈이 너무나 좋아하는 캔 사료는 조놈에게는 그냥 못먹는 깡통일 뿐이다.
지난 밤에 아내와 대화를 하던 중, 아내가 나에게 '이지가 좋아하는 간식을 주문했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곁에 있던 막내 고양이 지지배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꼬리는 물음표처럼 휜 채로 등 한 가운데의 털이 바짝 선 모습으로 눈알은 평소보다 훨씬 더 커져가지고서는, 갑자기 밥을 달라고 성화를 부리기 시작했다.
내 무리한 추정으로는 이 고양이가 아마도 자신의 이름인 '이지'와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명사인 '밥'을 동시에 듣고 의미 혹은 이미지를 파악했으며, 사람들에게 강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않으면 이번에도 얼렁뚱땅 그냥 넘어갈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 같았다.
고양이라는 것들이 막무가내인 점은 이 부분인데, 아무리 조금 전 들었던 말이 미래에 있을 기쁜 소식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설명을 해도 그런 언어는 알아듣거나 파악해주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시제에 약한 것일까나.
결국 이 녀석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다른 간식 - 이라고 해봤자 생선을 재료로 한 습식사료 - 를 잘게 잘라 내어 주었다. 그랬더니......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뒤돌아 앉아서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엉덩이를 사람 쪽으로 하고, 신체의 모든 부분이 벽을 향한 채로 단지 두 귀만 뒤쪽으로 돌려져 있는 모양새. 아, 기가 막혔다.

조금 전에 바닥에 엎드려 뭔가를 읽다가 고개를 들었더니, 막내 고양이가 책상에 앉아 전등을 쳐다보며 뭐라 뭐라 하고 있었다. 어조는 처연하고 음성은 낮은 것으로 보아 여전히 세상 돌아가는 것은 모르면서 제 신세를 부풀려 한탄하는 것 같았다.
눈 부셨을텐데... 그보다도, 전구 주제에 고양이의 말을 들어줄 리가 없지 않은가. 바보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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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7일 화요일

어지러움

문득 올해 초에 오키나와에서 보았던 수평선이 떠올랐다.
이쪽은 제주도의 북쪽 해안이므로 오키나와의 바다와는 거리가 멀다.
어지럽고 눈의 촛점을 잘 맞출 수 없는 증상이 오래 지속되고 있어서 먼 바다를 내다보고 있으려니 오히려 피로해졌다.
이것이 단순히 수면부족이거나 피로였으면 좋겠는데.
혹시 한동안 피우지 않았던 담배를 근래에 다시 피웠던 탓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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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31일 화요일

나를 좋아하는 고양이

집안에서 수컷이라고는 사람 중에 나 하나, 고양이 중에 얘 한놈.

이 녀석도 나이가 벌써 나릅. 많이 컸다. 그런데 살좀 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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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30일 월요일

평창 감자꽃 스튜디오.

평창의 옛 노산초등학교 자리, 감자꽃 스튜디오에서 공연을 했다.
아주 오랜만에 밝은 기운으로만 가득한 장소에 다녀왔다.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연주하는데에 문제가 있었다.
공연 중에 계속 손가락과 팔목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연주를 마쳤을 때엔 저리고 손가락이 부어있었다. 아무리 문지르고 휘저어도 보아도 낫지 않았다. 뭐가 문제인건가, 점점 더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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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9일 일요일

울산 태화강변.

하루 전에는 울산의 태화강 앞에 다시 다녀왔다.
지난번엔 습기가 가득한 한여름이었어서 무더웠던 기억이 있었는데, 이번엔 는개비가 종일 뿌려지고 있었고 해가 저문 후엔 춥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침에 일찍 집을 나서면서 긴 팔 옷을 현관 앞에 두고 안가지고 나와버렸던 덕분에 나는 살짝 떨고 있었다.
한대수 씨의 리허설이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내 엄마가 좋아하시는 가수 한경애 씨도 대기실 천막에서 뵈었다. 함께 도시락을 먹었는데, 그렇다고 '제 어머니가 좋아하셔요'와 같은 말은 절대 꺼낼 수 없었다. 식사를 하시는데 방해가 될 것 같았다.

울산은 좋은 날씨를 만난 날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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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7일 금요일

밤 새우고 떠나는 길.

나는 거의 아침에 잠들고 정오가 지나면 일어나 활동을 시작한다.
매일 밤을 새우는 편이다.
그래서 이런 일을 겪을 때가 자주 있다.

잠깐 잠들었다가, 꿈결에 마치 알람 소리를 들었다는 착각을 했다.
착각이었을까 실제였을까를 의심하다가 결국 모든 의식이 돌아와 버려서 잠을 깨고 말았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대개 그렇게 끝나듯, 맞춰놓은 알람 시간과는 전혀 상관없는 시각에 혼자 깨어나 당황했다. 말짱해진 정신으로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할지를 결정하느라 털썩 주저 앉아있는 상태.

그래서 아침 일찍 길을 떠나야하는 날, 제 시간에 일어나지 못할까봐 잠을 못잔다.
그리하여 오늘 저녁 울산에서의 공연도 좀비 상태로 하게 될 것 같다.
오늘 새벽엔 어쩐지 밴드 멤버들의 트위터 글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일찍 잠들었고 잘 자고 있는 중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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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언니 고양이, 건강해라

이 집의 큰 언니 고양이는 올해 열 다섯 살.
아내가 잘 보살피며 살아왔던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워낙 건강해서 평소에 노묘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지내왔다.
그런데 고양이가 조금 아팠다.
나이가 많으니 작은 것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밥 잘 먹고 아무렇지도 않던 고양이가 갑자기 엉거주춤, 여러번 토를 하고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내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친절하고 헌신적인 수의사 선생님은 고양이 에기의 나이를 듣고 깜짝 놀라했다. 걱정하는 눈빛으로 고양이에게 인사를 했다.
"너 정말 동안이구나."

조금 더 젊은 고양이라면 무난하게 검사와 치료를 할텐데, 그것이 오히려 큰 언니 고양이에게 심한 스트레스가 되고 해를 입히는 것이 될까봐 조심해했다. 탈수 증세가 있고 몸이 불편하여 화가 나있긴 했지만 그렇게 성을 내고 기운을 쓰는 것이 오히려 건강한 상태라는 증거일 수 있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일시적인 탈이 난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의 심정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뭔가 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지 한 시간 가까이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수액 주사를 맞추고 약을 지어왔다.

집에 돌아와 아내는 큰 언니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
나머지 고양이들은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방문 앞에 한 마리씩 앉아서 방 안을 향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내는 고양이에게 약을 먹이고 음식물을 먹도록 돌봤다.
지난 밤 일을 하고 있을 때에 아내로부터 문자메세지가 왔다.
"에기가 밥도 먹고 고양이 우유도 마셨고 뒹굴뒹굴 논다. 우히히."
다행이다. 일시적인 변비라던가 배탈이었으리라.

큰 언니 고양이야, 꼭 건강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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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를 좋아하는 고양이

기타 가방을 열어 악기를 꺼내려고 할 때 마다, 정말 무척이나 좋아한다.
고양이들은 악기에 반응한다.
가끔은 집착도 한다.
무심해하는 고양이도 물론, 있다.

http://aulait.tistory.com/1123

http://aulait.tistory.com/195

http://aulait.tistory.com/985

2011년 5월 24일 화요일

고양이의 악기검사

나이 순서대로 기타에 다가와 확인 및 검수절차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갔다.
막내 고양이 순서일때에 사진을 한 장 찍어주고 있었는데, 녀석이 슬며시 발톱을 세우고 기타 위에 올라가려는 몸짓을 하여 순간 급한 마음에 발로 차버릴 뻔 했다. (과장된 표현임...) 
미안하다, 막내 고양이. 서로에게 다행하게도 앞발로 툭 건드려보더니 다른 고양이에게 장난을 치러 가버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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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tar

내 분수에 맞지 않는 좋은 기타를 선물받았다.
내 손에 딱 맞는 기타를 오랜 시간을 들여 제작해주신 JK형님, 많이 고맙습니다.
사흘째 새벽. 드디어 이웃의 폭력적인 항의의 소리를 듣고서야 살금 살금 기타를 가방에 넣어두고 허리를 폈다. 순간 너무 미안해서 숨소리도 작게 내고 방안의 불을 살짝 껐다.
좋은 기타여서 울림이 아주 크고 멀리 간다. 결코 일부러 시끄럽게 하려고 크게 연주하고 있던 것이 아니다. 결백을 주장하는건 못하겠지만 변명은 이렇게 하고 싶었다.
출근, 퇴근길에 악기를 맨채로 엘리베이터를 탔을때, 함께 타신 누군가가 어깨 뒤에서 고약한 시선을 보내는 느낌을 받으면 안절부절 몹시 두렵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편하게 다니지 못한다.
기타 때문에 지금 기분이 많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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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6일 월요일

그린플러그드 공연.

사진 ; 베이시스트 민경준 님
바람이 몹시 불어서 춥고 손이 시려웠는데 그래도 오월 중순. 무대 위는 약간 서늘했던 정도였다.
겨우 30여분 동안의 공연이었다.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무대 위가 몹시 시끄러웠다.
관객이 많고 공연장이 클 수록 무대 위의 사운드는 정돈되고 고요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것은 밴드의 문제였다. 사실은 나의 일정 때문에 사흘 전에 공연장 리허설을 하지 못했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관객들의 표정이 밝았었다.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하늘이 어두워지자 무대 위에서 누런 색깔로 넘실 거리는 한강이 어둠에 감춰져 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집에 오는 길에는 두리뭉실한 달이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약간의 몸살 기운이 있다.
아마도 센 강바람을 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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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5일 일요일

일요일 공연

일주일 내내 힘들었다. 잠을 못자고 운전하는 것을 이제 못하겠다. 많이 힘들다.
정말 이런 식으로 생활하지 않겠다고, 뭔가 생활 패턴을 바꿔보이겠다고 큰소리 쳤던 것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토요일을 컴퓨터 앞에서 일하고 소파에 엎드려 자버렸다. 다시 일어나 마저 일을 하고 바닥에 옆으로 누워 잤다. 잠깐 깨어나 일하고 의자에서 또 잠드는 일을 반복하며 보내버렸다.
이불을 덮지 않은 탓에 추워서 깨어나 보니 이른 아침이었다.
오늘은 그린플러그드 페스티벌 공연날이다.

상태가 말이 아닌 것도 그렇지만 머리 속이 텅 빈 것 처럼 되어서 제대로 멍청해져버렸다. 너무 찌뿌듯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지난 화요일에는 빗속에서 야외공연을 하는 바람에 페달보드가 흠뻑 젖었었다. 집에 와서 잘 말려두긴 했지만 케이블 사이에 습기가 남아있는지 아니면 녹이 슬었는지 접촉 상태가 좋지 않다. 당장 모두 분리해서 열심히 닦고 점검하면 좋을텐데 그것을 못했다. 멍청한 표정으로 그냥 쳐다보기만 하며 무덤덤하게 앉아 있었다.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배도 고프고 목이 마르고 그러나 움직이기도 싫고 계속 멍청한 상태로 하루를 보낼 것 같은 상태이다. 지금은 음악도 잘 안들린다.
오늘 연주할 공연장이 어디인지도 아직 모르고 있었다. 뒤늦게 검색을 해보고 지도를 살펴보다가 어제의 공연 후기들을 읽어 보았다. 사람들이 마음씨가 좋다. 좋지 않은 공연에는 비난도 퍼붓고 훈계도 늘어놓으면 좋겠다. 칭찬의 말들만 있다는 것은 어쩌면 그만큼 기대치가 낮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면 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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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6일 금요일

어린이 고양이

(하는 짓은) 아직도 어린이인 고양이.
집안에서 얘만 날씬하고 말랐다.
밥 좀 많이 먹었으면 좋겠다.

워낙 가리는 음식(=사료)이 많고, 그나마도 많이 먹지 않는다. 그런 주제에 활동량은 제일 많다. 놀지 못해서 언제나 꿈틀 꿈틀 안달을 하고 있으니, 살이 붙을 겨를이 없다.
집안의 고양이가 건강할 수 있도록 신경쓰는 일이 참 까다롭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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