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30일 목요일

준비


 두 주 전에 가까운 곳에 볼일이 있어서 자동차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데 스티어링 휠의 느낌이 좋지 않았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리기 시작했을 때에 뭔가 심각한 것을 느꼈지만 잠깐 멈춰서 살펴볼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십여킬로미터를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앞쪽 바퀴에 아주 큰 못이 박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내가 그것을 보고, "또?" 라고 말했다.

그 날엔 근처에서 우선 타이어를 땜질하고 돌아왔다. 뾰족한 것을 밟는 바람에 타이어가 납작해질 수도 있고 도로를 달리다가 화물차에서 떨어진 작은 돌 때문에 앞유리가 깨질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유난히 그런 일을 자주 겪는다. 이건 주의한다고 하여 피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내가 멍청한 것과 관계가 없다. 이번엔 목포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못을 밟았고,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새벽에 집까지 운전하여 온 모양이었다. 이건 멍청한 것과 상관이 있겠다.

이틀 전에 모친을 모시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아무래도 새 타이어를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예약을 하지 않고 찾아간 바람에 한 시간 넘게 기다려 타이어를 교환할 수 있었다. 쓰고 있던 타이어는 수명이 많이 남지 않아 있었다. 올 겨울에 먼 길을 다녀올 일이 많다. 겨우 타이어를 교환한 것 정도로 뭔가 준비를 많이 한 기분이 들었다.

2023년 11월 29일 수요일

시간은 빠르다.


 미리 주문했던 다음 연도 다이어리 공책은 지난 주에 이미 도착했다.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채워진 올해의 다이어리 공책엔 이제 한 달 분량의 공란만 남았다. 과연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는, 시간이란 것은 정말 빠르다.

조금 한가할 줄 알았던 이 달도 정신없이 쫓기듯이 살았다. 다음 달엔 지난 시월만큼 일정이 많다. 잠깐 한눈을 팔면 내가 뭘 하려고 했던 것인지 기억하기 조차 어렵다. "곧 한가해지니까 한번 만나자"라고 말했던 사람들에게 연락하지 못하고 지나가서 미안하다는 메세지를 보냈다.

어김없이 휘어져서 가습기 가까이 세워 놓았던 재즈베이스의 넥이 돌아왔다. 가습기에 물을 채우면서 쉰 세번이나 겪는 겨울이 여전히 너무 낯설다고 생각했다.

2023년 11월 28일 화요일

어디


 약속 없이 집 앞에 찾아 온 모친의 전화를 받고 자다가 깨어 뛰어 나가서 운전을 시작했다. 나는 좋아하지 않는, 그러나 모친에게는 아마도 소중한 듯한 시골집에 갔다가 평소보다 일찍 노인을 서울집에 모셔다 드렸다. 눈도 잘 보이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고 받는 것은 할 수 없다고 말하던 내 아버지는 저녁밥을 먹지 못할까봐 엄마에게 전화하여 언제 오느냐고 하고 있었다. 도로가 막히지 않아서 이른 시간에 엄마를 집앞에 내려드렸고, 내 부친은 제 때에 저녁식사를 했을 것이다.

오래 운전했던 것도 아닌데 혼자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피로해졌다. 아내에게 전화하여 음식을 포장하여 가겠다고 말하고 강가의 식당에서 비빔국수를 주문했다. 강바람이 저녁하늘 위에 맴돌고 있었다.

사람은 지금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중요한 거라는데, 나는 여태 내가 어디에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2023년 11월 26일 일요일

겨울

 

바닥을 따뜻하게 해줬더니 고양이들이 바닥에 붙어 뒹굴고 있었다. 겨울이 되었다.

열세살 짤이, 열네살 이지는 매일 인슐린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채혈을 하거나 며칠에 한 번씩은 피하수액을 맞고 있다. 스스로 먹지 못하는 두 마리 고양이를 위해 아내는 하루 종일 사료를 갈거나 개어서 묽게 만들어 손가락으로 떠먹이는 생활을 여섯 달째 하고 있다.

일곱살이 된 깜이는 언니들이 함께 놀아주지 못하게 된 뒤로 심심하다. 사료가 담긴 그릇 앞에서 혼자 먹고, 고양이들 근처를 어슬렁 거리다가 내 곁에 다가와 떼를 쓰기도 한다. 어른 고양이들이 아내의 침대 곁에서 잠을 자는 동안 깜이는 내 머리맡에 와서 베개를 같이 베고 잠든다.


2023년 11월 25일 토요일

아침 생방송


 23일 목요일 아침, 라디오 생방송에서 연주하기 위해 새벽에 집에서 나왔다.

다섯 시부터 오분 간격으로 알람을 맞춰두고, 결국 잠을 못 잔 상태에서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났다. 그럴 줄 알았다.

아침에 일정이 있으면 힘들다. 그래도 생방송이어서 낫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늘어나거나 같은 것을 반복하는 일은 없을테니까.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때 크라잉넛이 먼저 와서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집에서 보온병에 커피를 가득 담아 가지고 나왔는데 한 시간 이십분 동안 운전을 하면서 다 마셔버렸다. 사운드 체크를 마친 뒤에 건물 일층에 있는 커피집에서 커피 한 잔을 더 마셨다. 그래도 졸음이 쏟아졌다.

이 장면은 아마 연주 시작 직전에 크라잉넛 멤버들이 왁자지껄 말하는 것을 듣고 전부 웃었던 것 같다. 길지 않은 생방송이 끝날 때까지 나는 졸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십일월이 한가하리라 생각했는데 뭘 한 것도 없이 벌써 다 지나갔다. 집에 돌아와 열흘 전에 주문했던 가구를 배송 받고, 저녁에는 레슨을 하러 갔다가, 밤중에는 동물병원에 들러 고양이 짤이에게 먹일 약을 사왔다. 긴 하루였다.


2023년 11월 19일 일요일

새 아이폰

케이스를 씌우지 않고 몇 년을 아무 일 없이 잘 지냈는데, 목요일 낮에 그만 집안 화장실 타일 바닥에 아이폰을 자유낙하 시켰다. 순간의 부주의로 뒷면 유리가 아름다운 무늬를 그리며 박살이 나버렸다.

급한 대로 스누피 스티커를 붙였다. 새로 아이폰을 살 계획은 없었다. 뒷면 유리를 수리하는 비용을 열심히 검색했다. 칠십만원을 들여 뒷면 유리를 교환하고 싶진 않았다. 전화기를 떨어뜨려 깨버린 건 처음이었다. 채 4년도 채우지 못했는데...
그러던 중 금요일 낮에 전화기를 집어 들다가 전기가 오르는 것 같은 감각을 느끼고 한 번 더 손에서 아이폰을 떨어뜨렸다. 유리가루에 손가락이 찔린 것이었다. 피가 예쁜 빨강 빛으로 몽실 피어올랐다. 유리조각을 빼내지 못해 밤까지 고생을 했다. 유리가 박힌 것은 왼쪽 검지 손가락이고, 그 손가락은 연주할 때에 가장 혹사 당해야 하는 손가락이다.

그래서... 정말 계획에 없었지만, 아이폰 15 프로를 사게 되었다. 이번엔 비건 케이스도 같이 샀다.

마이그레이션을 마치고 여전히 따끔거리는 손가락을 불빛에 비춰보며 채혈침으로 미세한 유리조각을 한 개 더 빼냈다.


 

2023년 11월 16일 목요일

까만 고양이

 

얘는 까만 고양이이니까 깜이라고 부르자고, 내가 그렇게 이름을 지어버렸다. 고양이 깜이는 일곱 해 전 오늘, 집앞에서 우리를 만나 냅다 따라들어와 그 뒤로 함께 살게 되었다.

깜이를 만난 날

고양이는 습관처럼 하는 짓이겠지만, 어쩐지 해마다 이 즈음이 되면 창밖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기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깜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장소가 우리와 만났던 그 지점인 것 같아서 그 모습을 보며 숨죽여 웃을 때가 있다. 과연 그 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어서인지는 내가 알 수 없겠지만.

그 해엔 내 고양이 순이가 떠났던 것 외에도 내 주변에 어려운 일들이 많았었다. 그때 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시절이었다는 것을 다 지나온 다음에야 알았다. 상실, 우울, 비관과 같은 감정을 낙엽처럼 털어내며 몇 해를 살아오는 동안에 고양이 깜이가 곁에서 많은 도움을 줬다. 지금도 깜이는 굳이 내 발 아래에 자리를 잡고 누워 가늘게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내일 아침엔 칠년 전을 기념하며 맛있는 간식이라도 내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2023년 11월 14일 화요일

목포에서 공연

 

토요일 오후 네 시 반에 집에서 목포로 출발했다. 처음엔 내비게이션이 네 시간 반이면 갈 수 있다고 알려주더니 점점 시간이 늘어났다. 다섯 시간 사십분이 지나서야 예약해둔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음날 이른 시간에 공연장에 갔다. 미리 악기 소리를 내어보고 확인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인사를 할 때 열흘 전 광주에서 연주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 땐 안양, 광주에서 어떻게 연주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피로했었다. 일부러 하루 전에 공연장 근처에 숙소를 잡고 잘 자둔 덕분에 이번엔 좋은 상태로 연주할 수 있었다.
다시 집에 돌아올 때엔 겨우 네 시간 쯤이야 쉬지 않고 운전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젠 밤 운전이 예전처럼 수월하지 않다고 느꼈다. 집에 도착할 즈음엔 이상하게 팔에 힘이 많이 들어가고 더 고단해졌었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알았는데, 자동차 왼쪽 앞 타이어에 큰 못이 박혀 바퀴가 납작해져 있었다. 어디에서부터 못을 박은채로 달려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나에겐 이런 일이 유난히 자주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2023년 11월 8일 수요일

길 위의 고양이들

 

쌀쌀해진 날씨였지만 한낮 햇살은 따뜻했다. 식당에서 나왔더니 어린 고양이들이 볕을 쬐며 뒹굴고 있었다. 방해할까봐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멀리서 고양이들을 보고 있었다. 이제 곧 추워질텐데,  길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고양이들에게 코 앞에 닥친 계절은 또 얼마나 혹독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