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앞서 와있던 병주가 구글맵 주소를 보내주며 오라고 했다. 대충 세수를 하고 아이폰을 들여다보며 그 장소로 찾아갔다.그곳은 HOWL the Field 라는 이름의 술집이었다. 병주와 경묵형, 그리고 오래 전부터 알고있었지만 처음 만나는 두 분과 다음날 같은 곳에서 연주할 일본인 두 분이 있었다. 나는 카레라이스를 주문하여 허겁지겁 먹었다.
2023년 10월 27일 금요일
친구들과 만남
2023년 10월 26일 목요일
일본으로
이 블로그에 자주 써오고 있었다시피, 나는 멍청하다. 기본적으로 셈을 못하고, 빠르게 상황에 대처하지도 못한다. 겸양이나 수사가 아니라, 정말 그러하고, 아주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그랬다.
자신이 둔하고 멍청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나의 몇 안되는 장점이다. 늘 배우는 데 느리고, 남보다 더 애쓰지 않으면 남이 하는만큼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번 일본행과 안양, 광주 공연으로 이어지는 사나흘 동안의 여행을 위해 미리 많이 공부했다.
구글 지도를 열어놓고 일본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나 혼자 어떻게 목적지까지 잘 찾아 갈 것인지, 움직일 경로를 찾았다. 경로와 교통편을 정한 다음엔 구글 맵을 몇 주 동안 반복하여 보면서 길을 외웠다. 스트릿 뷰 기능이 매우 유용했다. 혼자 외국에 가는 것도 처음이고, 빠듯한 시간 안에 반드시 돌아와야 하는 일정을 해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사진으로 지형지물을 외우고, 지도를 보며 길을 머리 속에 담아둔 다음 지난 10개월 사이에 웹에 올려진 정보를 취합하여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전부 메모했다.
6:20 새벽에 한 번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고양이 깜이가 곁에 다가와 내 베게에 기대어 같이 잠들었다. 어둠 속에서 깜이가 나를 보는 표정이 어쩐지 걱정하는 얼굴 같았다. 저 인간이 제대로 잘 할 수 있을까, 라고 하는 것이었을까.2022년 7월 19일 화요일
강릉, 강문, 초당동
집을 떠나 호텔에서 하루 머무는 일정이 정해졌을 때 당연히 공책과 펜을 가지고 가기로 마음 먹었다. 숙소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가져가지 않았더라면 후회할 뻔 했다.
장거리 운전과 긴 리허설 때문에 피곤했었는데도 호텔 방 안의 책상에서 글을 쓸 때 눈이 아프지 않았다. 책상용 스탠드 조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내 방에서는 밝게 불을 켜놓아도 그림자가 생기고, 한 두 장 종이를 채우면 눈물이 나며 눈이 따갑고 아프다. 밝기와 빛의 색이 괜찮은 조명 한 개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방에서 내다 보이던 풍경은 넓은 논이었고 해송들이 군데 군데 모여 앉아 있었다. 어릴 적부터 그곳에서 그 소나무들을 보아왔는데, 언제나 흐트러진 차림으로 기대거나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강릉이라면 바다 보다도 늘 소나무들이 좋았었다.
지금은 잘 포장된 도로가 길게 늘어져 있어서 옛날의 해변 모습은 아니지만 나는 그곳을 한 여름에 맨발로 걸어다니기도 했었다. 바다에서 나와서 대충 샤워장 물을 끼얹고, 젖은 옷과 몸 그대로 호수를 끼고 돌아 걸으면 한 여름 볕과 바닷가 바람에 어느새 옷이 바짝 말라 있었다. 높은 방에서 창 밖을 내려다 보다가, 대충 육십여년 전에 저 길을 걷고 있었을 내 아버지를 한 번 상상해 보았다.
2018년 8월 11일 토요일
공연 여행.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가서 하루를 자고 왔다.
아침 일찍 서울역에 가서 주차를 하고 부산역에 도착하면 자동차에 실려 공연장으로, 리허설을 마친 후 옷을 갈아입고 잠시 앉았다가 곧 공연... 이런 루틴은 언제나 똑같다. 공연 후에는 늦은 저녁을 먹고 다음 날 거꾸로 순서를 밟아 집으로 돌아오는 패턴도 항상 같다.
그러니까 이런 것도 여행이라고 말하기에는 군색하다.
무덥고 습한 날씨였다. 하지만 그늘이 없는 야외공연이 아니고 에어컨이 가동 중인 실내공연이었기 때문에 더웠다고 불평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공연 후에 혼잡한 상황에서 잠시 정신을 놓았다. 새 건전지를 넣어둔 보스 튜너를 그만 그곳에 놓아두고 와버렸다. 집에 돌아와 가방을 정리할 때가 되어서야 알게 됐다. 언제나 흘리고 분실하고 다시 사기를 반복한다. '내가 그렇지 뭐.'
2018년 5월 28일 월요일
2017년 7월 16일 일요일
성주에 갔었다.
공연을 위해 성주에 갔었다.
리허설 후 점심을 먹은 다음 일행과 함께 커피집에 들렀다가, 버들숲을 보게 되었다.
미리 알고 있던 지식이 없었다. 무슨 나무들인지도 잘 몰랐다. 잠을 거의 못 잤던 탓에 비실거리고 있었다. 수십그루의 오래된 나무들을 보고 홀려서 길을 건너 가까이 다가가 구경을 했다.
집에 돌아와 그 장소에 관하여 찾아 읽어보았다.
몇 백 년 나이를 먹은 버드나무들이 그곳에 있기 전에는 밤나무들을 심어 놓았었다고 했다.
무척 더웠던 여름날이었다.
공연 직전이 아니었다면 나는 천천히 나무들 사이를 걸어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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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9일 일요일
기차역.
울산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날 플랫폼에 서서 이 사진을 찍었다.
그 직전에 이 역을 통과하는 고속열차가 굉음을 내며 빠르게 지나갔다.
나는 이제 '잠시 일상을 잊고 기차여행이라도 떠나보는...' 생각 같은 것은 하지도 않는다.
그런 일은 앞으로도 한참 동안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으니까.
언제나 일을 하러 갔다가, 일을 마치면 바빠진 마음을 쥐고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이 계속될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없는 기차역은 왜 그렇게 쓸쓸해 보이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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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8일 토요일
울산에서 심야 커피.
마침 울산에 와있었던 친구를 일 년 만에 만났다.
공연장에서 인사를 하고 공연을 마친 후 늦은 저녁을 다 먹고 나서야 연락하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평소였다면 자고 있을 시간이었을텐데 밤 늦게까지 나를 위해 운전을 해줬다.
밝게 켜놓은 간판들이 반짝이는 거리에서도 커피를 팔고 있는 곳이 있었을 것이었지만, 가능한 조용한 곳을 찾고 싶었다.
2016년 10월 3일 월요일
산꼭대기에서 연주를 했다.
신불산 간월재에서 연주를 하고 왔다.
리허설을 하기 위해 하루, 공연을 하기 위해 하루를 보내고 왔다.
억새가 가득한 아름다운 능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산악 자전거들도 많이 보였다.
이곳은 5년 전에 인공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을 두고 반대의 의견이 많았던 장소였다.
능선에 올라가 보니 이미 매점과 휴게소와 전망을 볼 수 있는 데크가 다 지어져 있었다.
당시 시민단체가 반대했던 이유가 기억 났다. 아름다운 능선이 인공 시설물들로 망가질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나는 그 주장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산꼭대기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공연을 구경하는 일은 근사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런 일을 사업으로 삼아 아름다운 능선의 고요와 스산한 바람소리를 어지럽혀야 할 이유는 없다. 구조물들이 없었고 등산객이 적었던 시절의 간월재는 지금의 모습 보다 더 아름다왔을 것이다. 나는 직업을 핑계로 그곳에서 잔뜩 소음을 내어버리고 온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 탓은 아니지 않느냐고 하기에는 가슴 속이 떳떳하지 못했다.
이런 것은 하지 않을 수록 좋다. 지역 발전을 위한 사업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우선 철학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아마 우리의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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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11일 일요일
말들의 숨소리를 들었다.
몽골로 우리를 초대하셨던 분은 관광지를 안내하고, 말을 타 본다거나 양고기를 맛 볼 수 있게 해주시느라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렇지만 나는 평소의 생각 때문에, 그런 것을 즐기고 싶지 않았다.
매번 정중히 사양할 때 마다 죄송스러워했다.
거듭 권유하는 말씀과 신경 써 주시는 마음 때문에 나는 더 사양하지 못하고 결국 몽골에서의 마지막 날에는 일행과 동행하여 초원에 함께 갔었다. 물론 말을 타거나 양고기를 먹는 일은 하지 않았다. 단지 넓은 땅을 걸어 보았을 뿐이었지만 나름 한적하게 쉬는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평야를 걷다가 뼈와 가죽이 일부 남아 있는 말의 시체를 만났다.
반쯤은 땅에 묻혀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주변에 흩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말들은 관광객의 유희를 위해 사람을 태우고 뚜벅 뚜벅 걷고 걷다가 생을 마친다. 고단하지 않은 삶이 없고 짐승으로서 고통스럽지 않은 생이 있겠느냐만, 나는 사람들이 이런 일을 점점 삼가게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말들은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나는 오래 전에 행복한 얼굴의 말을 가까이에서 만져보고 지켜보았던 적이 있었다. 행복한 개와 말들은 허세를 부리거나 자존심을 세우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힘들어하는 동물들을 보면 한참 동안 마음이 좋지 않아서 괴롭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앉아서 쉬려 하는 말의 뺨에 손을 대어 어루만지고 싶어했는데, 주변에 흩어진 말의 똥 무더기를 피하려다가 넘어질 뻔 했다. 따분한 낮 시간을 보내던 말들에게 큰 웃음을 주고 올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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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10일 토요일
초원에서.
몽골의 초원을 산책 삼아 걸었다.
드넓은 곳을 잠깐 걸어보겠다고 했다가, 거리를 가늠하지 못하여 그만 두 시간을 걷게 되었다.
물가에 몽골 사람들이 자동차에서 내려 불을 피우고 둥글게 모여 앉아 있었다.
그들이 근처를 지나던 나를 불러 초대를 했다.
출발 전에 간단하게 외워두었던 몽골의 인사를 말했더니 그들도 짤막한 우리말로 대답을 해줬다.
한 사람이 건네어 준 따뜻한 차는 맛이 있었다. 금세 몸이 따뜻해졌다.
가득 담아준 차를 모두 마시고 흐르는 강물에 몸을 숙여 컵을 대충이나마 씻어서 돌려줬다.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그들은 자동차에 오르더니 그곳을 떠났다.
근처에 모여 앉아 있던 까마귀들이 동료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았더니 어느새 여러 마리의 까마귀가 그곳에 날아와 사람들이 남기고 간 간식을 나눠 먹고 있었다.
2016년 9월 4일 일요일
2016년 8월 27일 토요일
2016년 7월 4일 월요일
짧은 휴식.
짧은 일정이었지만, 일을 하러 떠났던 제주에서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겼었다.
아픈 고양이에 대한 걱정과, 내일과 모레와 다음주의 일들을 생각하느라 완전히 안심할 시간을 누리지는 못했다. 그것은 아마 앞으로도 계속 될 일일테니 불만을 가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도 고생스러웠다.
사흘 내내 비를 맞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조용한 곳에서 빵과 우유와 오렌지로 아침을 먹으며 짧은 평화를 느껴본 것은 좋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아직 젖은 옷을 입고서, 몸이 아픈 고양이를 안고 쓰다듬었다. 그것이 귀한 순간처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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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3일 일요일
4.3 사건의 흔적
함덕에서 숙소로 향하여 길을 걷다가, 제주 4.3 사건 당시의 이야기가 적혀있는 비석을 보았다. 두 개의 비문을 읽어보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아무 것도 없었다.
누군가가 가져다 고이 놓아둔 꽃 한송이 없었다.
현장마다 꽃을 놓아두려면 제주도는 거대한 꽃밭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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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사진: 꼬마야 님, 산울림매니아 |
제주문예회관에서 공연했다.
토요일 오전 김포공항은 주차장에 자리가 없었다. 약속시간 1시간 전에 도착하여 공항을 몇 바퀴 돌다가 겨우 방화동의 다른 곳에 주차를 하고 공항청사까지 걸어갔다. '주차대행 서비스'는 한번도 이용해본 적 없었다.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아마 앞으로도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
출발은 지연되었고 제주공항에서는 착륙을 위해 기다리느라 공중에서 한참을 선회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모양이었다. 공연장에 도착하여 리허설을 마치고 났더니 이미 지쳐버렸었다.
공연을 마친 후 숙소였던 함덕의 해변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많이 더웠고 아직 옷을 갈아입지 못하여 답답했던 식당에서 말없이 빠져나와, 숙소까지 천천히 걸었다. 습도가 가득한 바람이 불었다.
원격카메라 앱으로 집에 두고온 고양이들의 모습을 자주 들여다보았다. 아내의 모습도 자주 보였다. 아픈 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고 물을 먹이고 약을 먹이느라 쉬지도 못하는 모양이었다.
2016년 3월 5일 토요일
2014년 11월 22일 토요일
공연을 마치고.
다만 어서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언젠가는 아무 할 일 없이 한번쯤은 놀러오겠다고, 전에는 그렇게 말해보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말도 꿀꺽 삼켜두게 되었다.
엘에이 공연.
옷차림과 무대배경만 보아서는 엘에이인지 서울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름 구경을 와줬던 오랜 친구가 객석에서 찍어준 것.
공연을 기획하고 밴드를 초대한 회사의 모든 분들은 몹시 성실한 사람들이었고, 자신의 일들을 제대로 하기 위해 열의를 보이는 분들이었다. 덕분에 연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평소에 하던 공연의 절반 분량 정도였어서, 너무 짧았다는 느낌.
그렇게 다음 날까지 이어졌던 두 차례의 공연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