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 31일 화요일

태능신앙촌.

태능 선수촌은 신앙촌인가보다.

가관이다.
기독교 국가, 기독교 신자들이 대부분인 나라의 선수들도 한국의 선수들처럼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본 적 없다. 이슬람 국가의 선수들이 경기에서 승리할 때마다 알라를 외치는 모습을 본 일 없었다.

각 기독교 관련 사이트에도 운동선수들이 기도하는 모습에 대한 글이 올려져있었다. 읽으나 마나 그들에 대한 칭찬 일색이었다. 유치하고 졸렬하다고 생각했다. 너희들의 신은 고작 금메달을 따주거나 8강, 4강에 오르게 해주는 일을 하고 있는거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아니면 서울시를 봉헌 받거나.

이원희는 한판승으로 상대를 누르고 무릎을 꿇더니 기도를 하고 팔을 벌리는 몸짓을 벌였다. YTN에 출연하여 그 모습에 대해 백지연이 물었더니,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 아버지에게 온전히 바치는 몸짓'이었다고 했다. 경기 중 힘겨울 때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떠올렸'다고도 했다.

태권도의 문대성도 예외가 아니었다. 멋있게 이겼거나 힘겹게 이겼거나 간에, 승리한 직후 관중석에 올라가 태권도 관계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아는 사람들을 껴안고 기쁨을 누린 것도 사사로울 뿐 밉게 볼 필요는 없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역시 꿇어 앉더니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선수생활 도중 절에 숨어들어가 잠적한 적도 있었다가, '선수촌'에서 후배로부터 전도를 받고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고 했다.

역도선수도, 축구선수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하나님은 종목별로 영광을 받느라 무척 바빴다. 예수를 매달았던 유태인들은 모두 게임에서 졌어야 옳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선수들의 모습을 두둔하면서 '우리나라의 신앙양태가 다른나라와는 다르기 때문'이라고, 어떤 목사가 컬럼을 쓴 적이 있었다. 지난 월드컵 때의 일이었다. 그의 긴 글 중에서 위의 한 줄 문장만은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돈이 모이는 대형교회들과, 폐쇄적이고 부패한 체육관료주의와, 한 번도 정의로왔던 적은 없었던 언론들이 만들어내는 기이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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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27일 금요일

해괴한 시비.

신경쓰지 않을 나이도 되었는데, 오랜만에 해괴한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부인하고 싶지도 않고 부정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미국 음악인들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어떤 이유와 핑계를 들어 미국의 문화에 잠식된 놈이라고 손가락질을 한다고 해도 나는 상관없다. 나는 좋은 음악을 찾아서 들었던 것이었다. 그대신 너희들은 내 질문에 대답을 해줘야 한다. 나는 그 시절의 누구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어야 옳았던 것이었느냐는.

스콧 피츠제랄드를 읽으며 자랐다거나, 제임스 조이스에 빠져서 청춘을 보냈다는 사람에게는 미국문화에 젖었다는니 아일랜드가 어떻다느니 말하지 못하면서, 보들레르와 랭보를 입에 달고 다니는 이들 앞에서는 문학이니 시이니 아무 언급도 하지 못하면서.

이분법적 사고, 왜곡된 정의감, 진짜인줄 알고 지니고 사는 애국심, 무엇보다도 무식하여 용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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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9일 월요일

엄마에게 라디오를.



엄마의 생신이었다.
나는 라디오를 선물해드렸다.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이지만, 나에게 엄마와 라디오는 늘 연동되는 단어로 되어있다.
아주 아주 꼬마였던 시절에 엄마는 나에게 자주 라디오를 틀어줬다. 대부분 사람의 목소리보다는 연주음악이 흘러나오는 선국으로, 주로 기억하는 것은 현악기와 피아노였다.

십대가 되어서야 나의 라디오를 가지게 되었을 때에, 나는 스폰지를 물 속에 처박아버린 것처럼 음악에 빠져들었다. 어쩐지 한 번은 들어봤던 것 같은 음악들이 종일 나를 적셨다.
정식 음악교육을 한 번도 받아보지 않았던 나에게, 꼬마 시절 엄마가 틀어줬던 라디오가 말하자면 음악수업이었던 셈이다.

다행이다. 내 엄마는 다른 아무 기능도 없는 작은 라디오를 받고 좋아하셨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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