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29일 목요일

고양이와 마주 보며 음악을 들었다.


처음엔 고양이 순이가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했다.
마주 보며 오래 앉아 있었다.
나중엔 순이가 나와 함께 있는 것을 많이 좋아하는 것인가 보다, 라고... 내가 편한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순이가 골골 소리를 내고 있다. 졸지도 않으면서 곁을 떠나지 않고 서로를 쳐다보며 앉아 있는 중이다.
이제야 알았다. 순이도 나와 함께 피아노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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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主義.





오스기 사카에 자서전을 읽었다. 옛날엔 사회주의, 북한과 일본의 공산주의에 대한 책에 늘 이 사람의 이름이 '오오스기 사카이'라는 발음으로 적혀있었다.솔제니친의 '떡갈나무를 들이받은 소'라는 책도 요즘은 '송아지 떡갈나무에 들이받히다'라는 제목으로 팔고 있다.
오스기 사카에 자서전과는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들만 하고 있지만... 아무리 옳은 표현이라고는 해도 에코의 소설로 팔리고 있는 '푸코의 진자'는 아무래도 '푸코의 추'라는 초판의 제목이 더 정감있다. 이미 머리속에 새겨진 심상때문인가. 이런 것들이 몇 개 더 있었는데 나중에 생각나면 써둬야겠다.

오스기 사카에의 자서전은, 정말 구경하고 싶던 그의 죽음 직전의 상황은 적혀있지 않았다. 당연히 자서전이므로 죽기 직전의 일들을 자신이 차분히 기록하고나서 살해당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대신 궁금했던 그 당시의 풍경을 훔쳐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떠돌아다녔던 중국과 서유럽과 파리에서의 이야기들이 볼만했다. 나는 어릴적에 이런 사람들을 동경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별로 관심이 없는 것도 같다. 그냥 그랬었나보다, 하는 정도.
나는 지금 매사에, 모든 타인들에게, 주변의 환경들에 너무 무디고 무감한지도 모르겠다. 자유로운 인생이라는 것은 허상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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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28일 수요일

기운이 빠졌다.


일찍 일어나 집안청소를 말끔히 하고 나갔다 왔다.
고양이 순이가 나를 유난히 반겼다. 꼭 집안이 깨끗해서가 이유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고양이들은 환경이 깨끗해야 기분 좋아하는 것 같다.
순이는 이리 저리 뛰어다니더니 금세 사전을 베고 누워 자고 있다.
나는 기운없이 하루 종일 걸었다. 그 때문인지 엉뚱하게 먹고싶은 것들이 생각나고, 괜히 배가 고프다.
오늘 하루동안의 지하철, 버스요금을 합치면 확실히 차를 가지고 나가는 것 보다 오히려 돈이 많이 든다. 불합리한 것 아닌가 했다. 그런데 시내에서 덕소역으로 향하는 전철의 분위기가 정겨웠다.
오늘은 어떻게 해봐도 기운이 나지 않는 날이었다.
나도 순이처럼 책을 베고 누워 자버리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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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 점점 잘 맞는다. 꿈꿨던 것을 무시하지 않았으면 피할 수도 있었던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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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25일 일요일

순이의 자리



나는 병적으로 시디와 디비디에 백업을 해두던 버릇을 버린지 오래 됐다.
그 대신 대용량 하드 디스크를 늘려가며 온갖 파일들을 담아두고 있다.
하드 디스크라는 것이 자료를 보관하기엔 얼마나 위험한 매체인지를 잘 알고 있다. 나는 평소에 하드디스크가 충격받지 않게 하려고, 너무 열받지 않게 하려고 신경 쓰고 있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기도 하거니와, 행여 알아준다고 해도 자신의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고양이 순이는 창가에서 바람쐬며 졸다가 어쩐지 으슬으슬하다 싶으면 저렇게 하드 디스크 위에 올라와 온돌을 즐긴다.

고양이가 자리를 비운 뒤 하드 디스크들을 만져보면 정말 뜨겁다. (고양이나 기계나) 이 정도 열은 버텨주겠지... 하면서도 신경 쓰인다.

순이가 푹신하게 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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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17일 토요일

구경가기로 했다.



Yellowjacket 내한 공연이 8월에 있다고 한다. Jimmy Haslip의 연주를 직접 볼 수 있다.
줄을 반대로 감고 연주하는 그의 손을 꼭 보고 싶다.

소식통(?)에 의하면 올여름의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은 아직도 출연진이 미확정이라고 한다. 출연할 연주자들과의 계약이 마무리되어있지 않다고 들었는데, 리차드 보나 밴드를 또 볼 수는 없는 것인가. 보나형이 안온다면 자라섬에는 가지 않아도 좋다,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공연들이 다 끝나고 이렇게 시간이 생겨도, 좋은 연주자의 공연을 구경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 참... 문득 좋은 연주들을 자주 볼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샘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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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16일 금요일

순이의 얼굴 반쪽.


순이가 어둠 속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카메라의 플래쉬를 켜고 얼른 찍었다.
순이가 눈 부셔했다.
고양이 얼굴에 대고 플래쉬를 켜지 말아야겠다.

그런데 사진을 찍고 났더니 순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몸을 말고 구르더니 나에게로 달려와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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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15일 목요일

꿈이 맞는건 신기하다.


어제 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어떤 사람이 나에게 '연필을 사야 해. 그림을 그려야 한다.' 라고 말했다.

그냥 개꿈이려니 했다.

그런데 조금 전 새벽에 아무 약속 없이 찾아갔던 장소에서, 재근형으로 부터 연필을 선물 받았다. 재근형은 나에게 연필을 내밀며 이거 쓸래? 라고 했다. 무심코 그냥 그것을 받아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꿈을 꿨던 것이 떠올랐다.

연필이라는 것이 꿈에 등장한 것도 생경한 일이었고, 연필을 선물 받은 것도 의아한 일이었다.

군대시절의 꿈을 꾼 다음날에 군대 시절 친구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 학교 다니던 꿈을 꾸었던 날에는 모르는 사람이 졸업생 어쩌구 단체라고 하며 전화번호부를 보내줄테니 돈을 내라는 전화를 하기도 했다.

나는 내가 둔하고 멍청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꿈들을 모두 잘 기억하고 다녔다면 미쳤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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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가 귀엽다.




처음에는 베이스 소리를 듣는 것이 싫어서 그러는줄로 알았다. 베이스를 치고 있으면 어디에 숨어있다가도 달려나와서 다리 위에 올라와 방해를 하곤 했다.
그럴때마다 다시 악기를 내려놓고 쓰다듬어 주고 달래준 다음 연습을 계속 했다.
어떤 때엔 나도 짜증이 나서 고양이를 덥썩 집어 푹신한 곳을 겨냥하여 집어 던진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면 순이는 삐친 표정을 짓고 멀리 앉아서 나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악기 뿐 아니라 내가 무언가를 안고 있으면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 같다.
바닥에 앉아서 책을 보다가 다리 위에 베개를 올려두고 책을 받쳐놓았더니, 아니나다를까 다가와서 그 위에 뻔뻔하게 앉아버렸다.

이것이 고양이가 가진 일종의 질투인지, 아니면 '너 한번 엿먹어봐라'라는 투의 심술인지 파악을 하지 못하여, 지금도 여전히 달래고 쓰다듬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렇게 해주면 갑자기 많이 좋아한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마음 한쪽을 치유받는 기분이 들어서 나는 고양이에게 고마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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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13일 화요일

언제나 곁에 있어주는 고양이.


내가 잠이 들때까지 고양이 순이는 방황을 하고 있다. 혼자 봉투안에 들어갔다가, 의자 밑에 누워봤다가, 빨래걸이 위에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도 한다. 놀아달라는 것 같아서 다가가면 그냥 곁에 와서 앉아 있기만 했다. 그러다가 내가 침대에 누우려는 모양을 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단숨에 의자위로 올라가 자신의 잠자리를 마련한다.
이 의자를 침대 곁에 바짝 붙여둬야 한다. 그렇게 해두지 않으면 잠자는 동안 계속 순이가 칭얼거리는 소리에 시달려야한다.
무슨 이유로 이런 시스템이 형성된 것인지는 서로 기억을 못하겠는데, 어쨌든 사람과 고양이가 '나란히' 잠을 자야하는 것으로 되어지고 말았다. 언제나 곁에 있어주는 고양이 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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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고양이.


동물과 단 둘이 살아본 사람이라면 나와 똑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고양이들은 은근히 사람에게 잘 엉겨붙고 치근댄다.
순이도 두 살이 되면서부터는 부쩍 무릎 위에 올라와 골골거리기 일쑤이고, 항상 졸졸 따라다닌다. 
내가 자려고 누우면 곁에 와서 자리를 잡고, 의자에 앉으면 항상 책상에 걸터앉아 마주 보고 있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났다는듯 제 볼일을 볼때면 어디론가 사라져 내가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못들은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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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12일 월요일

공연 후에.


잘 자고 일어났다.
그놈의 악몽에 대한 글을 써둔 효과가 있었던 것이었는지, 꿈의 강도가 많이 약해졌다.
정말 많이 피로할 때까지 버티다가 잠들었다. 아마도 그 때문에 꿈을 꾸었어도 기억을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고 일어났더니 그만 손이 퉁퉁 부어있었다.

컴퓨터 모니터를 꺼두고, 대신 빈 공책을 펴놓았다. 천천히 하나씩 있었던 일을 짚어 보았다.
어제 밤에 부산에서, 마지막 곡이 시작될 때부터 무대인사를 하고 무대 뒤로 들어올때까지 아래층과 위층의 모든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뛰며 좋아해줬다. 관객들의 적극적인 반응을 볼 수 있는 것은 즐겁고 기쁘다. 기분 좋았다.

나는 어쩌면 그동안 여유있어도 좋을 순간에 잔뜩 신경을 세우고, 긴장해야할 때에 바보처럼 느긋하게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세 번의 공연을 통해 무대 위에서의 작은 일들을 떠올려보았다. 중요한 경험이 되었다.

이제 이 달의 일정은 아무 것도 없게 되었다.
시간이 생겼으니 며칠 놀러라도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의 여유는 여전히 없다.
일이 없어도, 놀 수가 없다.


무서운 꿈.

길몽, 흉몽... 이라는 단순한 분류말고, 우리는 꿈에 대한 더 세부적인 카테고리를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좋은척 했지만 개꿈, 개가 등장했는데 알고보니 예지몽 (원하지 않는 영양탕을 대접받았다던가... 하는), 복권당첨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 돼지꿈, 삼겹살이나 돼지뽈살에 관련된 돼지꿈 등등으로... 체계적인 분류와 연구를 누군가가 해줘야된다고 생각한다.

요즘 무서운 꿈 때문에 미칠 지경이 되었다.
깨고 나면 뭐 견딜만한데, 꿈속에서는 정말 공포스럽다.
나는 과거에 많은 횟수로, 곧 나에게 닥쳐올 나쁜 일들에 대한 꿈을 미리 꿨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단 한번도 그런 꿈을 꾸고나서 미리 앞일에 대한 대비를 했다거나 꿈의 암시를 알아챘다던가 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뭐 사실 대비를 한다고 해봤자 뭘 할 수 있겠는가.
하마트면 한쪽 눈을 잃을뻔했던 무서운 사고를 겪기 전날 밤에, 나는 내 눈에 쇠젓가락이 꽂혀서 괴로와했던 꿈을 꿨었다. 그 다음날 오후에, 누군가가 트럭 위에서 잘못 던진 쇠파이프가 날아와서 내 오른쪽 눈과 귀 사이의 관자놀이를 맞추고 말았었지. 희한하고 다행스럽게 쇠파이프가 날카롭지 않아서 가벼운 뇌진탕과 찰과상만 입었었다.
어쨌거나 내가 조금만 고개를 잘못 돌렸더라면 눈알이나 귀가 작살이 날 뻔 했었던 것이었다.
조금더 세부적이었던 꿈은, 누군가 거대한 존재가 내 차를 마구 밟아서 납작하게 만들어버리는 꿈이었다. 차 안에 갇혀서 어쩔줄 몰라하던 사람은 내가 아니었고 다른 사람이었었지.
그리고나서 며칠 뒤에 나는 졸음운전을 하다가 갓길에 세워둔 공사표지판을 가볍게 들이받고 급정지했었다. 자동차는 범퍼만 긁혔을뿐 이번에도 나는 멀쩡했었다. 정신이 번쩍 들어 조심하며 집에 돌아오는데, 같은 길에서 큰 사고를 당해 어떤 차가 찌그러진채 수습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도로엔 유리가루가 가득했고... 소름 끼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후 나는 조금 시건방지게 되어서, 어지간한 일에도 나라는 녀석은 어쩐지 다치거나 죽을 팔자는 아닌게야, 따위의 생각도 해본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그 해 초여름, 일주일 내내 괴한들에게 여러차례 칼을 맞고 죽는 꿈과, 높은 언덕에서 누군가가 밀어서 떨어져 죽는 꿈과, 무서운 여자가 송곳으로 내 가슴을 마구 찔러서 바닥에 흘러넘치는 내 피에 미끄러지며 도망치는 꿈을 꿨었다.
그리고 그 해 늦 여름, 나는 갑자기 이혼했다.

어떤 날엔 하룻밤에 몇 가지의 꿈을 꾸기도 하고, 수목드라마처럼 매주 이어서 꾸는 꿈도 생겨서 꿈속의 장소를 약도로 그려보기도 했었다. 심지어 다시 같은 장소가 등장하는 꿈을 꾸게 될때엔 꿈속에서 만나는 존재들에게 잘 있었느냐고 인사를 했던 적도 있었다.
꿈을 연구한 사람의 책을 읽어보면 나와 같은 경우는 상당히 일반적인 현상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신경쓰이지 않을 수는 없다. 일반적이든 특수한 것이든 간에 무서운 꿈은 정말 질색이다. 심한 공포에 질려서 잠을 깨버리면 다행인데, 은근히 무서운 장면들을 꿈속에서 더 기대하게 되기도 한다.
이번에 새롭게 연속되고 있는 공포물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
항상 너무 너무 사악한 존재가 직접 출연하고, 소품도 다양하고 시공간 설정도 스케일이 크다. 이렇게 다채로운 악몽을 겪은 적이 없었다.

노력 끝에 불면증을 없애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분류하기 어려운 악몽에 시달릴 줄이야. 이것이 그냥 개꿈이기를 바라며... 완전히 피곤해질때까지 기다렸다가 꿈도 꾸지 않고 잘 수 있기를 바라며, 스무 잔 째의 커피를 또 마시고 있다. 부산에서 돌아온지 네 시간 째이고, 마지막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난지 40시간째이다.

2006년 6월 11일 일요일

시그널 부스터.


최근에는  ZOOM의 멀티 이펙터와, 이 사진에 보이는 Xotic의 시그널 부스터를 늘 사용하고 있다.
이번의 세 차례의 공연에서는 다른 것은 쓰지 않고 이 시그널 부스터만 사용했다. 특별히 이펙터가 필요한 소리를 요구하는 곡이 없었기도 했지만, 큰 용량의 PA시스템, 큰 규모의 공연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베이스 톤이 깎이는 것이 싫어서 가능한 앰프와 베이스 사이에 아무 것도 연결해두지 않기로 하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이놈을 아주 잘 써먹었는데, 뉘앙스의 차이라는 것 때문에 손가락으로 세게 피킹하지 않아야하면서도 단단하고 풍부한 음색이 필요했던 곡의 중간중간에 적절히 사용했다. 효과가 좋았다. 평소에는 멀티이펙터의 뒤에 두고 베이스의 신호를 보강해보려는 의도로 쓰기도 하고, 어떤 경우엔 일그러지지 않으면서 게인만 올려주는 용도로도 쓰고 있다. 꽤 마음에 들어하고 있는 중이다.


부산에서 공연을 했다.


부산에 다녀왔다.
그러나 새벽의 서울 - 버스 - 공연장 - 공연 - 버스 - 다시 다음날 새벽의 서울... 의 일정이어서, 부산문화회관을 갔다 온것인지 광화문의 세종문화회관을 다녀온것인지 모르겠다.
달고와 유나가 소주에 오돌빼이 먹던 항구의 포장마차 구경도 못했다. (TV연속극의 주인공 이름들이었다...)

공연보러 왔던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다니, 뭐 기분 좋은 일이긴 했지만, 박수를 받으며 인사를 하던 순간, 이 정도로는 아직 안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찬물 끼얹고 싶은 심보가 아니라, 이제 그 정도의 연주와 음악으로는 절대 성에 차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모든 일정이 일단 끝났고, 이번에도 많이 배웠다. 그리고 해내야 할 일들이 많이 생겼다.
부산공연에서의 사진은 구해지기 어렵겠지. 비디오 촬영도 했던 것 같던데.

전날 밤을 꼬박 새운 탓에 공연직전까지 거의 졸았다. 나를 포함한 몇 명의 멤버들이 전부 수면부족상태였다. 공연이 끝나고 다시 밤길을 달려 서울에 도착했을때 이미 새벽 네 시가 넘었는데, 정말 미칠 노릇인 것이... 활동 시간이 돌아와서인지 눈이 반짝거리고 목소리는 활기차게 변하고 컨디션이 최상으로 돌아와버렸다.
그 결과 지금 이 시간까지 잠들지 못하고 몸의 열을 식히는 중이라는...

그리고 졸리운데도 쉽게 잠을 자고 싶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는 요즘 반복되는 공포스러운 꿈 때문이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았는데 점점 많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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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9일 금요일

피아노.

오늘도 운전을 많이 했다.
오전 일찍 집을 나설 때엔 데이브 그루신, 빌 에반스, 키스 자렛, 브라이언 멜빈을 들었다.
밤 늦게 집에 돌아오는 동안에는 크리스 보티와 아르투로 산도발, 마일즈 데이비스를 들었다.
낮에 들렀던 헌책방이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초등학교 아니었다고.) 옆이었는데, 그 동네 특유의 풀냄새와 한적함 때문이었는지 언덕위에 차를 세워두고 한참을 피아노 음악에 취해있었다.

내 기억속에 가장 오래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피아노와 관련된 이미지는, 희고 예쁘장한 손에 묻은 핏방울이었다. 새로 펼친 악보에 그만 손가락을 베어서, 그 여자의 손에서 핏방울 하나가 건반 위에 뚝 하고 떨어졌었다. 나는 일곱살도 되지 않았던 꼬마였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 에로틱하게 느껴졌었다. 그후로 한참을 흰 종이, 흰 손가락, 흰 건반과 붉은 핏방울의 이미지에 홀려있었던 기억이, 오늘 났었다.
여차여차하여 그 해 여름 이후 피아노 앞에 앉아본 적은 없게 되었었지.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세상에 피아노만한 악기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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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고 꽃 떨어졌다.


오늘은 어릴적의 기억들이 자주 떠올랐다.
어린애 때부터 나는 비만 오면 흥분했었다.
여름이 되면 추워하지 않으면서 비를 맞고 다닐 수 있어서 좋아했었지. 지금은 그런 짓 못한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약속없는 아침 시간에 외출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괜히 기분이 좋아서, 오전에 일찍 집을 나서는데 길가에 꽃잎이 수두룩하니 떨어져있었다. 얼룩 고양이 한 놈이 발에 물묻히기 싫어서 꽃잎을 밟으며 어디론가 가고 있길래, 서둘러 차를 세우고 카메라를 꺼냈다.
당연히, 내 둔한 동작으로 카메라의 스위치를 켰을 때엔 고양이는 이미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고양이라는 놈들은 하는 일 없이 분주하고 느리면서 재빠르다.

그래서 주인공 없는 배경 사진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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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7일 수요일

공연 마쳤다.


출연한 분들이 많아서 한 컷에 다 들어오지 못했다.
이 장면 속에 그날의 느낌이 담겨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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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공연장에서.


2006년 6월 3일, 성균관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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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피날레.


이분들은 웃고 있었지만 사실 속내는 난감해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마지막 무대 인사를 빙자하여 광석 형님은 연주를 하는 도중에 모두를 불러내셨는데, 마지못해 나오기는 했으나 할 것은 없고... 그래서 그저 웃고 있었다.
나는 그게 우스워서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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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4일 일요일

따뜻하구나.


공연을 잘 마쳐서 기분이 좋았따.
집에 돌아온 후에도 전혀 피로하지 않았다.
운전을 오래 했기 때문이었는지 왼팔과 허리에서 가끔 소리가 났다.

잘 자고 일어났다.
바람이 따뜻하게 불었다.
더 어릴 적에는, 세월이 흐르면 좋은 사람들만 남는다는 말의 뜻을 잘 몰랐었다.
잘 몰랐거나 들은체하지 않았을 것이다.
첫날 공연의 사소한 문제로 기분이 우울해져있을 때엔 자꾸 자책을 하게 되었다. 혼자 남게 되었을 때에 화를 내지 않으려고 건들거리며 집에 돌아왔었다.
마지막 공연을 기분 좋게 마치고 났더니, 함께 그 자리에 있었던 많은 분들에게 많이 고마왔다. 좋은 사람들이 남아주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흐른 뒤에도 마음에 남아있을만한 이들이라면 틀림없이 좋은 사람들이리라는 의미였을까.

고양이 순이 옆에 나란히 앉았다.
하늘 한 번 보고, 지나가는 강물을 한 번 보고, 순이를 끌어안고 얼굴을 부볐다.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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