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31일 금요일

순이는 일곱 살.


이제 곧 여덟 살, 내 고양이, 순이.
고양이 식구들이 늘어날 때 마다 샘이 더 많아지고 토라지기도 잘 했다.
그런데 털 색이 하얗거나 노랗거나 간에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 서로 그루밍을 해줄 수 있다면 그게 가족일테니까...
새해에는 다른 고양이들과 서로 좋아하고 예뻐하며 잘 지내면 좋겠다.
건강해라 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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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30일 목요일

동료분들.

한 해 마무리를 하며 골라 본 멤버분들의 사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사진에는 그날 이 공간에 있던 멤버들 네 명의 얼굴이 조각 조각 담겨있다.
오후에 연습을 마친 후 커피집에 들어와 앉아 있었던 장면이다.
올해에는 윤기형님과 다시 만났던 것도 특별한 일이었고, 함께 스무 번이 넘는 공연을 했던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모두 몸도 마음도 건강히 새 해를 준비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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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7일 월요일

마지막 리허설

올해 마지막 리허설이었다.
참 숨가쁘게도 지내왔던 한 해였다.
공연을 마치면 이제 며칠은 여행을 떠나서 약속 없이 느긋하게 돌아다니며 아무 때나 기대어 자고 그래야지... 라는 것은 달콤한 상상일 뿐이다.

내일 부터 또 즐겁게 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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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4일 금요일

착한 고양이

집안의 막내 고양이 이지는 천성이 착하다. 바보처럼 착해서 자주 안스럽다. 불편하고 위험을 느낄 때 하악질을 하는 것도 요즘이 되어서야 겨우 배웠다. 그나마 그것도 어설프다. 이 고양이의 주된 표현 방법은 가늘게 우는 소리를 하거나 미안해하거나 동그랗게 눈을 뜨고 올려다보는 것이다. 화가 나기라도 하면 그냥 도망을 가버린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짧은 한숨을 쉬는 것이 전부이다.
나이 많은 고양이들이 심통을 부리고 힘이 약해서 억울한 일을 겪어도, 그저 상대방을 핥아주거나 말없이 물러난다.

고양이 이지는 우리가 그 쬐그만 앞발을 꼭 쥐고 집으로 데려오기 전 까지 동물병원의 좁고 인정없는 쇠창살에 갖힌채로 내일이 분명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세상에 대한 아무런 적의가 없다.
다만 아내를 진짜 엄마로 여기고 있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서 나는 고양이에게 자주 아내와 너는 종이 다르다는 사실과 그에 관련된 진화론적인 설명을 해주고는 있지만, 한 번도 귀담아 듣지를 않았다.

새벽에 텔레비젼을 틀었다가 사람들이 돼지와 소를 죽여 땅에 퍼담아 파묻고 있다는 뉴스가 나와버렸다. 어리고 착한 녀석이 곁에 앉아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려 나는 텔레비젼의 전원을 끄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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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7일 금요일

학기를 마쳤다.

지난 주에 학기의 마지막 수업을 마쳤다.
졸업하는 학생들과 사진을 찍기도 했고 첫 학년을 마친 이들과 손뼉을 마주치며 인사하기도 했다.
대부분이 귀가하고 다시 고요하게 비어버린 복도와 레슨실 마다, 무슨 영혼들처럼 악기 소리의 흔적들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많은 말을 하느라 바빠서, 그들의 말을 들어야할 시간을 놓친 것이 아까왔다.
머지않아 공연장에서, 대기실에서, 무대 위에서 만날 수 있을 사람들이 그들 중에도 나오겠지.

케이블을 감고 악기를 가방에 챙기면서 퀘퀘한 지하실 냄새를 맡았다. 어딘가 썩고 있는 것 같은 우중충한 습기의 냄새가 풍기는 클럽들, 카페들의 기운. 나는 그런 곳들을 기웃거리고 다니며 나이 많은 어른들의 연주와 생활을 구경하느라 스무 살 무렵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를 보내고 뒤돌아보면서, 내가 배우며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셨던 그 형님들에게 고마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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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2일 일요일

나는 멍청하다.

공연 날. 제 시간에 알람 소리 듣고 일어나서 고양이들 밥도 주고... 여유 부리며 더운 물로 샤워도 하고... 
그러나 타고난 멍청함을 발휘,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반대 방향으로 쾌활하게 돌진. 그놈의 하이패스 톨게이트를 피한다는 것이 그만....
다급해졌을 때는 이미 춘천 방면으로 신나게 가고 있던 중이었다. 결국 열차 시간 놓치고 전속력으로 서울역 도착, 다음 열차 표를 사고 났더니 입에서 단내가 났다.

커피를 사들고 트위터를 열어 보았더니 열차 안에서 멤버들이 방금 남긴 글들이 보였다. 침울하게 사과의 답글들을 남기고 커피 한 모금을 입에 털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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