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29일 수요일

고양이들이 소란스럽게 했다.


순이는 두 살이 되도록 혼자 지냈다.
나와 둘이서만 살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고양이들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친구들이 둘이나 생겨버렸다.
요즘 순이는 심심할 겨를이 없다.

심심하지 않을 뿐 아니라, 텃세를 부리고 싶었던 것인지 틈만 나면 다른 고양이들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때리고 도망을 치기도 하고, 가끔은 얻어 맞았다. 쫓고 도망을 가는 놀이가 시작되면 정신없이 빠르게 뛰어다니고 있다.

깊은 밤에 책상 앞에 앉아있으면 갑자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쿠로가 달려가고 뒤이어 순이가 쫓아 뛰어지나갔다. 흐트러진 물건들을 추스리고 있으면 이번엔 순이가 달음질을 치고 쿠로가 여유를 부리며 뒤따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밤을 보내어 놓고 오전에는 둘이서 나란히 잠이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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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28일 화요일

아침.

어디론가 떠나면 하루 세 끼를 잘도 챙겨 먹는다.
아침식사를 위해 도시로 걸어나와 어느 식당 앞 길 위에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았다.
거리가 조용했고 커피도 맛있었다.
평화로운 아침식사를 하게 되어 좋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딘가에서 알람이라도 울려서 사람들이 미리 약속된 시간에 움직이기라도 하는 것 처럼, 일제히 거리에 사람들이 쏟아져나왔다.
내가 밥을 먹고 있는 자리의 곁을 말쑥한 차림의 사람들이 끝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비현실적으로 단정했고 걸음걸이도 반듯한 수백명의 사람들의 행렬이었다. 어떤 이는 나를 쳐다보며 지나갔고 어떤 사람은 테이블 위의 음식을, 또 어떤 사람은 곁을 지나간 후 고개를 돌려 힐끗 보며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만 체할뻔 했다.

싱가폴 시내의 평일 출근 시간은 정말 밋밋하다. 깨끗하고 소란스럽지 않고 지나치게 단정했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한 마디 묻고 싶었다. 이곳에서는 혹시 걸으며 말을 해도 벌금을 물리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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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광합성을 하던 여자.


나는 뜨거운 햇빛을 피하여 오후 내내 그늘에 숨어있었다.
아내는 볕에 목말랐었다는 듯 한나절을 햇빛 아래에 누워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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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서 오후를 보냈다.


따뜻한 해변에서 오후 시간을 보냈다.

나는 도시를 좋아하고 큰 도시의 내부를 꼬물거리며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서울에 돌아오니 정말 모든 것이 좋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사람들은 각각 개성 넘치는 모습으로 인상을 찌푸리고, 남을 밀쳐내며 걸으면서도 사과 한 마디하지 않는다. 악다구니질을 일삼으며 오만한 동작으로 침을 뱉으며 다닌다. 과연 대도시이다. 무례한 모든 성격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역시 대단하다. 좋다. 좋아. 나는 서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활력이 넘친다. 더럽긴 하지만.

그래서 한없이 고요했던 오후의 열대 해변의 풍경 사진을 바라보다가, 언젠가 다시 가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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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비행기.


나는 작은 경비행기를 타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살짝 긴장을 하고 있었다.
나보다 여행 경험이 많은 아내는 전혀 개의치않고 닌텐도 게임을 한참 하더니 곧이어 편안히 한숨 자고 있었다.


아이팟.


지금 가지고 있는 iPod을 구입한 이후 해외에 다닐 일들이 많아졌다.
자동차 안에서나 쓰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몇 시간 동안 의자에 묶인채 하늘 위에 있을때에는 이만큼 고마운 이기가 없다.
붉은 가죽 케이스는 때가 묻어 반질반질해졌다.
처음 이 녀석을 손에 들고 어디론가 떠났을 무렵은 세상이 어쩐지 나에게만 불친절하다고 여기던 시절이었다.
한없이 맑은 하늘 속에서 평소에 귀기울여 듣고 싶었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을 때에, 나는 세상이 나에게도 제법 관대할 때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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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소년.


웃는 얼굴이 밝은 소년 하나가 배에 뛰어올랐다.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그의 바지 끝에는 바닷물이 조금도 묻지 않았다.
배가 물 위를 달리기 시작하자 조용히 뱃머리에 걸터앉아 어디인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낯익게 느껴져서 이상했다.
해는 저물기 시작했고 소년은 뭍에 다다른 후 배에서 펄쩍 뛰어내릴때까지 조용하고 밝은 표정만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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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26일 일요일

길에서 만난 고양이.


굵은 빗방울이 듬성 듬성 외국도시의 오후에 둔탁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우산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고양이도 우리처럼 잠시 비를 피할 곳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닷가 고양이들 중에는 여유로운 모래사장의 해변에서 떳떳하고 뻔뻔하게 사람들과 식사를 즐기는 고양이 조합원들이 있는가 하면 항구에서 야박하게도 분리수거해놓은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점심식사를 허탕친채 소나기를 피하러 뛰어야하는 보도블럭 위의 고양이도 있다.
검 자국 한 개 발견하기 어려운, 깨끗하고 이상한 도시의 바닥을 종종 걸음으로 가로질러가는 고양이의 몸짓에 피로가 가득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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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25일 토요일

파란 하늘.


여행지에서 눈을 떴을때에 하늘에 그려지는 풍경이 즐거웠다.
그 하늘이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온 듯 심신이 죄여져있던 시절을 흘려보낸 직후라면, 그것이 어떤 모습이었더라도 (누구에게든) 새로왔을 것이다.
주제넘는 어떤 것도 새로 바라지 않고 분에 넘치는 어떤 것도 무리하여 구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집에 두고 온 고양이 순이를 무척 보고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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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결혼식에 와주셨던 분들, 시간을 내어 인사를 전해주신 분들, 아래의 소식에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보냈다.
도착하니 해야 할 일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묵었던 곳의  벽에 Tokay Gecko 도마뱀이 근사한 몸짓으로 움직이며 밤새 노래를 불렀다. 도마뱀의 목소리가 그렇게 예쁜줄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보고싶었던 고양이들을 껴안아 주고 악기의 줄을 교환하며 일을 할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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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바닷가 고양이.


믿거나 말거나, 우리가 일부러 고양이들을 찾아다녔던 것도 아니었는데 저녁식사 시간에 또 한 마리의 예쁜 고양이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어처구니 없이 눈을 마주치자마자 얼른 다가와서 아내에게 볼을 부비더니 안아올려진 상태에서 계속 애교를 부렸다. 그래도 된다고 하면 가방에 담아서 데려오고 싶을 정도로 귀여움을 떨었다.
고양이는 아내에게 온갖 아양을 떨며 생선을 얻어 먹었다.
아주 작고 어린 녀석이었는데 제법 배불리 받아 먹더니 그 자리에서 얼굴과 손발을 씻기 시작했다.
천성이 교태가 가득한 고양이 언니인 것인지 한참을 몸단장을 했다.

그리고 몇 번 올려다보며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우리가 손을 흔들어주자 느릿 느릿 어둠속으로 걸어갔다.

혹시 이 해변의 고양이 조합에서 정한 순번에 따라 매 식사시간마다 고양이들이 파견을 나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관광지의 고양이들이 살아가는 방법이었던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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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고양이.


첫번째 만났던 고양이와 저녁식사를 함께 했던 다음날 낮의 일이었다.
우리는 멀리 떨어진 섬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또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작은 고양이 한 녀석이 눈앞에 등장하더니, 식탁 위로 올라와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왜 왔는지 알겠지?'라는 표정을 짓고 앉아 있었다. 뒤이어 우리에게 몹시 친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 대단한 생활력이로구나.... 그러나 전혀 밉지 않았다.

이쪽에서 보자면 어떻게 보아도 구걸인데, 어떻든 간에 누가 보더라도 그저 친구들과 함께 하는 정겨운 점심식사 장면이 되었다. 뻔뻔하고 능청스러운 것이 너무 귀여웠다.
소금이 뿌려지지 않은 감자와 간이 맞지 않았던 쇠고기를 배불리 먹고서, 이 녀석은 아예 식탁 아래로 내려가 잠이 들고 말았다.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겨 사라질 때 까지도, 녀석은 코를 골며 잠들어있다가, 우리가 멀어진 다음에는 부시시 일어나 잠깐 쳐다보더니 다른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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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만난 고양이.

저녁식사 시간,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 녀석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곁에 다가와 한 번 쳐다보더니 잠시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고, 결코 자신의 방문목적을 숨기지 않은채 조심스럽게 음식을 요구했다.
가뜩이나 집에 두고온 고양이들이 생각나있던 중이었다.
기꺼이 인사를 나누고 함께 생선을 나눠 먹었다.


고양이는 배불리 먹은 다음 다시 원래 나타났던 곳으로 돌아가 앉더니 입과 손발을 씻고 유유히 깜깜한 해변의 풀숲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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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17일 금요일

내일 결혼한다.

내일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많은 분들께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의 메일을 쓰고 있었다.
참석해주지 못하시는 분들께도 죄송해하고, 고마와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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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의 주변이 너무 많이 변했다.


어느날 갑자기 집안에 식구가 늘고, 다른 고양이 식구도 생겼다.
처음 보는 가구들이 새로 들어오고 순이가 뛰어 놀던 빈 방은 물건들로 채워져 좁아졌다.
순이는 매일 매일 변화는 상황에 적응하느라 머리가 어지러웠을지도 모른다.
나는 자주 순이를 안아 올려 쓰다듬으며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고 있었다.
알아듣거나 말거나 한참 변명을 하고 있으면 순이는 고로롱 소리를 내며 이제 그만 말해도 된다는 듯 기분좋아해줬다.
나는 순이에게 고마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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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고양이.

고양이 손님 한 분이 놀러오셨다.
이 분은 뭔가 의상을 갖춰입고 와주셔서 어쩐지 대접을 정중히 해드려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덩치도 꽤 크다.
그런데 너무 수줍어하기도 하고, 자신의 대외적 이미지에 대해서는 무신경하시다.
한참 동안 어둠속에 숨어서 주변을 관찰하더니 순이가 끊임없이 귀찮게 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밝은 곳으로 나왔다. 사실은 호기심을 못이겨서 그랬을 것이다.

턱시도 고양이 쿠로와 당분간 함께 지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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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15일 수요일

순이는 잠이 덜 깨었다.


아침에 소란한 알람소리에 자고 있던 고양이들과 사람들이 일제히 눈을 떴다.
커피를 내릴 물을 끓이고 창문 곁에서 하늘을 구경하다가 다시 방에 들어갔더니 고양이 순이는 아직도 잠이 덜 깨어서 비몽사몽인 상태였다.
조그맣게 음악을 틀어두었더니 성가시다는 듯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아무 것도 아닌 어느날의 아침이었지만 나는 이런 순간이 훗날에는 오래 기억해둘만한 좋은 기억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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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순이의 잠자리.


순이는 그동안 언제나 내 곁에서 함께 잤다.
내가 깨어있으면 순이는 졸리운 것을 견디면서도 내 곁에 다가와 함께 있었다.

함께 사는 고양이와 사람엄마가 생긴 이후, 순이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었나보다. 어느 곳에 자리를 잡고 앉거나 누워도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기도 했다.
이불을 세탁하고 새것으로 바꿔놓았다. 고양이 순이는 멀리서 달려와 제일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버렸다. 그러더니 그곳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보니 유진의 다리를 조금씩 밀어내며 자신의 공간을 확보해두고 있었다.

순이는 며칠 비바람이 조금 불었다고 계속 이불을 찾고 있었다.
조용히 잠들어있는 식구들을 다시 깨우지 않기 위해 살짝 방문을 닫고, 나는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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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나는 기본적으로 컴퓨터 게임은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플레이 스테이션이니 엑스박스니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여전히 컴퓨터 게임이니 게임기계에는 흥미가 없거나 흥미를 가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었다.무엇인가에 사로잡히면 악기연습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무엇에 몰두하면 다른 일을 하나도 제대로 못한다.
이번에 유진이 가지고 싶어했어서 덜컥 두 개를 구입했다.

그러나 고작 하고 있는 짓은 영어삼매경 정도. 가끔씩 둘이서 할 수 있는 게임 정도일 뿐이다. 아직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많이 없었다. 닌텐도에서 할 수 있는 미디프로그램도 있다고 하는데 역시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다.

게임이란 문학이다. 기술적으로 잘 만들어져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게임이란 인간의 예술적 환상의 구현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전염되고 전이된다. 언젠가는 마리오와 루이지가 아브라함이나 베오울프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
마리오는 성을 향해 힘껏 뛰고 달리며 다치고 멍들어도 해맑게 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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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14일 화요일

고양이 에기.


고양이 에기는 이른 아침에 잠을 깨었던 모양이었다.
유진이 예쁘다며 봉지에 담아왔던 발판과 매트들은 모두 고양이들의 여름용 방석이 되어있었다. 커텐 사이로 햇빛이 조금 들어오는 자리에서 에기는 문득 주변의 모든 것이 다 궁금하다는 듯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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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13일 월요일

축축하고 더웠다.



아이포토를 넘겨보다가 우연히 수년 전에 찍었던 사진을 발견했다.
그 해 여름은 정말 등허리가 녹을 것처럼 더웠었다.
공연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걸어가다가 자동차가 막 빠져나간 자리에 어미 고양이가 털썩 주저앉는 것을 보았다. 그 뒤로 어린 고양이들이 따라와 엄마 고양이의 젖을 물기 시작했다.
무더웠던 날이었다. 밤중이어서 어느정도 식어있었겠지만, 아스팔트 바닥은 정말 많이 뜨거웠을 것이다.

오늘도 축축하고 덥다. 이 정도라면 너무 덥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여전히 비가 내리면 기분이 좋다.
비개 내리는 것은 좋은데, 우리 동네의 고양이들이 빗방울을 잘 피하고 있는지, 깨끗한 물은 마시고 있는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가끔씩 마주치는 동네 고양이들에게 인사를 하며 밥이라도 챙겨줬으면, 하고 생각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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