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2일 월요일

고마왔어요, 할머니.

 


내 외할머니. 스물 네살에 내 엄마를 낳았다. 내 엄마는 스물 네살에 나를 낳았다. 할머니는 마흔 여덟살에 외손주를 보았다. 그는 첫 손자인 나를 많이 귀여워했다.

나는 내 엄마의 부모,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좋아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못지 않게 나를 예뻐했다. 나에게 다정했던 외할아버지는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돌연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그는 갑자기 아내를 데리고 단둘이 남산에 놀러가자고 했단다. 계획도 없이 할머니의 손을 잡고 남산에 올라간 외할아버지는 그곳에서 아내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외할머니는 그 기억을 언제나 행복하게 이야기했다. 그 사진은 외할머니 집에 항상 놓여있었다. 고운 옷을 입고 있는 흑백 사진 속의 중년 부부는 활짝 웃고 있었다. 나는 외할아버지가 로맨틱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할머니는 여생 동안 내내 일찍 자신을 떠나버린 남편을 그리워했다.

나는 육년 전 할머니의 생일에 이 사진을 찍었다. 갑자기 할머니는 낙상을 하여 정형외과에 입원했었고 그 뒤로 건강이 점점 나빠졌다. 나중에는 요양병원에 계셔야 했다. 할머니는 지난 금요일 새벽에 급히 연락을 받고 달려간 큰 딸과 두 아들을 만난 후 돌아가셨다. 임종을 지킨 내 엄마에 따르면 할머니가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에 감겨진 두 눈에서 양볼을 타고 눈물 한 줄기가 길게 흘렀다고 했다.
가족 모두가 모여 사흘 동안 장례를 치렀다. 나는 할머니의 유골함을 가슴에 안고 할아버지가 묻힌 묘지로 갔다. 할아버지의 묘에 할머니의 유골이 합장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장례를 모두 마치고 돌아와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꿈을 꿨는데, 작은 새 한 마리가 지저귀며 한참을 날고 있었다. 아마 내가 피아노 독주 음악을 틀어둔채로 자고 있었기 때문인가 하였다. 

아흔 아홉살 우리 할머니, 편안히 쉬셔요. 많이 고마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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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10일 수요일

지나가버린 가을.


 그동안 멈춰야했던 것을 앙갚음이라도 하듯 바쁘게 시월을 보내고 나서, 다시 학교의 일과 집안의 허드렛일들에 시간을 쓰다보니 그만 가을이 지나가버렸다. 피곤한 몸으로 돌아와 손과 얼굴을 씻으려는데 고양이 깜이가 내 곁에 뛰어올라와 쳐다보고 있었다.


아내가 만들어주고 사다준 장난감이며 쿠션들은 본체만체하고 고양이들은 저렇게 빈 종이상자를 오가며 놀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니까 슬슬 사람 곁에 붙어서 잠을 자려고 한다. 올 가을은 단풍이 물들었는지 낙엽이 떨어졌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없어져버린 것 같다.

올 겨우살이도 고단할 것이고 큰 선거가 다가올수록 공해에 가까운 것들도 자주 보게 되겠지. 오래도록 그랬던 것처럼,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반겨주는 고양이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식구가 있다는 것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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