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7일 금요일

해를 마무리 하는 공연.


한 해를 끝내는 공연을 했다. 같은 장소에서 세 번째, 송년(送年) 공연.
이제 이 장소에서 공연을 마치면 또 해가 바뀐다는 기분이 든다.
이 날의 공연을 잘 마무리 하고 싶어서 준비를 많이 했다. 작은 공간이므로 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이펙터 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앰프의 소리가 잘 들리기를 원했다.
연주할 곡들의 순서가 바뀌고 조(調)가 많이 달라졌다. 어떤 곡은 더 낮은 음역대에서 연주했다. 공연의 중간 부분에 어쿠스틱 기타의 반주를 할 때에는 평소에 연주하던 베이스 라인 그대로 하지 않았다. 마치 새로운 편곡처럼 들리게 하고 싶었다. 의도했던 대로 잘 연주할 수 있었고, 올해의 마지막 공연을 잘 마칠 수 있었다.


올해는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되돌아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단하고 힘들었다.
불평을 하거나 투덜대는 짓은 그럴 수 있는 여력이라도 있을 때에나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해 동안 나는 한숨을 쉴 생각도 할 여유가 없었다. 미워하고 싶은 한 해였다. 어서 지나가라고 떠밀고 싶었다.

공연을 마치고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테이블에 마련된 감자튀김을 먹다가 동료가 따라준 맥주를 마시기 시작하고 말았다. 조금만 맛을 볼 작정이었는데 맥주가 너무 맛있게 느껴져서 그만 몇 잔을 거듭 마셔버렸다. 마른 진흙처럼 몸에 붙어있던 여러가지 감정들이 맥주 몇 잔을 마시며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2019년 12월 21일 토요일

당진 공연.


당진에서의 공연을 마쳤다.
낮에 서해대교를 건너다가 9년 전 태안 바닷가에서 공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태안에는 어떤 연고가 있어 가끔 다녔다. 당진도 그랬다. 공연을 하러 갔던 적은 아직 없었다.

화요일부터 오늘까지 계속 감기 몸살을 앓았다. 두 시간 운전을 하는 것도 힘이 들었다. 공연을 마칠 때까지만 버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리허설을 마칠 즈음부터 몸살 기운이 사라졌다.


십 년 전 12월에는 밴드의 두번째 음반을 낸 후 연말 공연을 했었다. 열 번의 해가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극장에서 요청한 포스터에 서명을 하고 어쩐지 기록을 해두고 싶어서 사진을 찍었다.



스물 두 곡을 연주한 공연도 지난 십 년 세월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공연을 마치고 악기를 정리하다가 무대 바닥에 붙여둔 셋리스트를 한 번 더 보았다. 십 년 동안 어떤 곡은 모양이 달라졌고 어떤 곡은 조가 바뀌었다. 어떤 곡은 내가 녹음하고 연주한 지 십 년이 넘었고 어떤 곡은 내가 마음에 담아 들어온 지 삼십년이 넘었다.

이제 다음 주에 남은 공연을 하면 힘든 일만 많았던 한 해를 얼른 보내줄 수 있다.
오늘은 우선 오래 자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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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16일 월요일

행복해하는 고양이.


고양이 이지가 자주 기분 좋아하며 논다. 뛰어다니기도 하고 무엇인가에 즐거워져서 혼자 장난에 몰두하기도 한다.

어디까지 더 나빠질 수 있을까 싶었던 올 한 해 동안, 고양이 이지가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잘 먹고 잘 노는 것은 몇 안되는 행복한 일이었다. 우리는 이지를 볼 때 마다 껴안고 입 맞춰주며 고마와했다.

동물병원에 갔다가 주먹만한 어린이 고양이가 철장에 갇혀 있는 것을 보고 다가갔었다. 어린 고양이가 눈을 크게 뜨고 가늘게 울며 두 앞발로 내 손가락을 꼭 쥐었었다. 집에 돌아온 후 계속 손가락 끝에 남은 고양이의 온기가 마음에 남아서, 아내와 함께 동물병원에 다시 찾아가 입양을 했었다. 고양이 이지가 우리와 함께 살게 된 것이 그때로부터 벌써 십 년. 세월은 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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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6일 화요일

음악


아침에 병원에 다녀와서 세 시가 다 되어 첫 끼를 먹었다.
일찍 일어났더니 잠이 모자라 두어 시간 낮잠을 잤다.

저녁에 학교 학생들의 정기공연, 졸업공연이 있었다. 서교동까지 가는 길에 자동차가 빼곡했다. 오랜만에 찾아간 동네엔 울긋불긋 낯선 간판들이 가득했다.
학생들의 연주를 주의 깊게 보았다. 나는 지난 주 작은 공연을 제대로 잘 하지 못했던 것이 아직 마음에 남아있다. 자신들이 공들여 준비한 음악들을 한 곡 씩 연주하는 학생들의 표정에는 강한 자의식이 보였다. 대부분은 과잉된 기분으로 보였지만, 그 사이에 시선을 멈출만한 미래의 연주자들도 있었다.



공연장에서 십여분 걸어서 오늘 약속되어 있던 녹음실에 도착했다. 스무 살 많으신 음악선배 형님은 벌써 도착하셔서 녹음을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얼마 전 그 분의 노래 두 곡을 녹음했다. 오늘 녹음을 끝으로 이제 후반 작업만 남았고 아마도 새해 초에 음원이 나올 것 같다.

깊은 밤 동네에 돌아오니 입김이 보였다.
이제 겨울은 시작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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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3일 토요일

멍하게 하루를.


사진 속의 검은 고양이 깜이의 모습은 며칠 전 아침에 찍은 것이다.
베란다에 햇볕이 드는 시간에 나왔다가, 그늘이 지면 다시 방에 들어간다.
대부분 햇볕을 쬐며 드러누워 자고 있지만 가끔은 저렇게 강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을 때가 있다.

토요일이었던 오늘, 하루 종일 나도 책상 앞에서 뭔가 멍한 채로 있었다. 계속 악기를 들고 정해둔 루틴대로 연습을 하기는 했는데 특별한 생각은 없었다.
어제 저녁에 친구들과 공연을 했다. 그 공연을 잘 하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혼자 연습을 많이 했었다. 아이디어도 많았다. 그런데, 어제 나는 연주를 잘 하지 못했다. 한 번 제대로 되지 않은 다음에는 모든 것이 꼬여가기 시작했다. 거의 곡 마다 틀렸고 나 때문에 음악이 끝나지 못하고 더 이어지기도 했다.

새벽까지 내가 망쳐버린 공연 생각에 열중하다가 자고 일어난 뒤로는 그만 정신이 멍해졌다.
무엇이 가장 문제였고 어떤 것에서 내가 잘못 판단했던 것인지 알고 싶었다. 어제 오전에 괜히 네크의 트러스로드와 브릿지를 조정했기 때문이었을까, 줄의 게이지를 바꿨던 것이 나빴던 것일까, 앰프를 잘 못 조작했던 탓이었을까 등등... 어딘가 기운이 빠져서 종일 축 늘어져 있었다.

다시 깊은 밤. 고양이 깜이는 한참 동안 놀아달라고 조르다가, 이제는 잠을 자러 가자고 투정을 부리고 있다. 저 고양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를 따라다니는 것인가. 다른 고양이들은 아내의 방에 모여 각자 자리를 잡고 쿨쿨 자고 있다.
나는 고양이의 성화를 받아주는 체 하며 이제 일부러라도 편안하게 자고 일어나 일요일 만큼은 덜 멍청하게 보내려고 한다. 망쳐버린 공연은 할 수 없는 일이다. 가까운 시일 안에 내 스스로 그 기억을 만회할 기회가 생기길 바란다.

음악을 랜덤으로 틀어보았더니 한참 동안 템포가 빠른 피아노 곡이 재생되고 있다. 모두 꺼두고, 오늘은 좀 깊이 잠들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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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8일 월요일

뮤지션과 음악팬

뮤지션과 음악팬

10월에 Sting 이 한국에 와서 공연을 했다. 그 날은 서초동 집회가 한참이었던 토요일이었고, 같은 날 나는 밴드 공연을 하느라 정읍에 다녀왔었다. 그의 홈페이지를 보니 지난 일요일 필라델피아 공연을 끝으로 올해의 투어를 마무리한 모양이었다. 내년 1월에 로스앤젤레스를 시작으로 다시 미국 투어 일정이 적혀있었다.

유튜브에 스팅의 한국공연, 일본공연 영상들이 여러 개 올려져 있었다. 모두 관객이 찍은 것들이므로 앵글이 조금 불안정하고 사운드가 곱지는 않았지만, 직접 보지 못한 공연의 모습을 구경하기에 충분했다.
올 해의 스팅 투어에도 그룹 폴리스 (The Police) 시절의 곡들이 많았다. 셋리스트의 절반은 'The Police Cover'로 채워졌다. 'Message In A Bottle'로 시작하는 무대의 모습은 거친 영상으로 보아도 멋있었다. '51년생이니 이제 곧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꾸준한 운동으로 다듬어진 다부진 몸에 '57년 프레시젼 베이스를 걸치고 무대에 등장하는 스팅은 여전한 록스타의 모습 그대로였다.

두 명의 기타리스트 중 어린 연주자는 '85년생인 Rufus Miller 로, 3년 전 스팅의 앨범 '57TH & 9TH' 에 참여한 이후 계속 투어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그는 무대 가운데에 밴드 마스터인 스팅을 두고 서로 나란히 서있는 Dominic Miller 의 아들이다. 도미닉 밀러의 딸은 기타 치며 노래하는 문신 많은 가수 Misty Miller 이다.

도미닉 밀러가 스팅을 만나 함께 하기 시작했던 것은 1991년 부터이다. 이제 28년이 다 되었다.  1985년 스팅의 첫 솔로음반 부터 함께 했던 Kenny Kirkland 가 세상을 떠나버린 '98년까지, 도미닉 밀러와 케니 커클랜드는 각각 스팅 밴드의 록과 재즈 스타일의 양쪽 축이었다. '96년에 올림픽 공원에서 그 두 사람이 스팅과 함께 무대위에 있었던 공연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야외공연 도중에 둔촌동 일대의 아파트 주민들이 항의하는 바람에 PA 시스템의 볼륨을 줄였어야 했던 그 공연이었다. 당연히 무대 앞의 사운드도 매끄럽지 않았지만 그런 것은 아무 상관 없었던 강한 음악적 경험이었다.

폴리스는 '84년까지 활동했고, 스팅의 솔로 앨범이 나오면서 일 년 쉬었다가 '86년에 한 번 더 활동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해체했다. 약 9년 남짓 기간 동안에 정말 많은 명곡들을 남겼다. 도미닉 밀러는 그 후 폴리스의 활동기간의 세 배 정도를 스팅과 함께 해왔다.
그런데 아직도 가끔은 유튜브나 해외 게시판 등에서, '어째서 폴리스의 곡을 연주할 때에 도미닉 밀러는 앤디 서머즈처럼 하지 못하는가' 라는 댓글을 본다. 아마 그런 음악팬들에게 연주자라는 인격체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세션 연주자란 팬들의 기억 속에 아름답게 각인된 명곡들을 충실하게 재연해야하는 피고용인일 뿐이라는 느낌일까.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스팅의 솔로 작업들은 도미닉 밀러 마음대로 연주하더라도, 폴리스 곡들 만큼은 앤디 서머즈를 공부했어야 했다, 라는 식의 글들은 이십 년 전에도 볼 수 있었다.

올해의 스팅 투어에 Shane Sager 라는 하모니카 연주자가 참여했다. 나는 유튜브에서 그가 스팅과 함께 Fields of Gold 를 연습하는 장면을 구경한 적이 있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Englishman In New York' 의 인트로와 간주를 훌륭하게 연주했는데, 그가 불과 몇 달 전까지는 블루스 하프만 연주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랍다. 스팅의 요구로 석 달만에 12음계 하모니카를 연습해야 했다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그는 이번 투어에서 여러 곡에 하모니카 연주를 곁들이며 좋은 음악을 들려줬다.

그런데 아무도 스팅에게 하모니카는 집어치우고 브랜포드 마살리스의 색소폰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음악팬들은 한 사람의 뮤지션을 솔로 가수와 록밴드 멤버 시절의 록스타로 나누어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편곡이 가능한 곡이 따로 있고, 훼손하면 안되는 경전과 같은 음악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Hired Gun 들의 처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음악팬들은 스팅이 이제 더 이상 폴리스 시절처럼 피크로 펜더 재즈 베이스를 튕기며 무대 위에서 높이 뛰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는 않는다.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면서 폴리스 시절의 곡들은 조금씩 템포가 느려졌고, 그의 보컬은 힘을 빼는 대신 그윽해졌다. 그의 베이스 라인은 더 단순해졌으나 견고해졌고, 엄지손가락으로 연주하는 베이스의 음색은 점점 더 아름다와졌다. 훌륭한 뮤지션과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행복은 그런 것을 목격하는 것에서 더 많이 얻어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2019년 11월 8일 금요일

실수


악기를 넘어뜨렸다. 그만 오래된 악기의 네크에 큰 흠집이 났다. 부러지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해본다고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십여 년 사용해온 기타 스탠드가 모두 고장이 났다. 두꺼운 나사를 찾아 겨우 고정시켜 놓았었다. 어제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에 허리 통증이 다시 심해졌다. 일찍 잠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내일 공연에 쓰일 악기들을 점검했다. 작은 렌치로 브릿지를 조정하는데 눈이 침침했다. 안경을 꺼내어 쓰고 방 안에 불을 밝혀야 했다. 아무리 자세를 고쳐 앉아도 허리가 아팠다. 여전히 어깨와 팔은 저리고 손가락 서너 개는 감각이 무뎠다.
나는 두 개의 악기를 모두 손 본 후에 스탠드에 악기를 세우려다가 그만 허리가 아파 악, 소리를 냈다. 그 때문에 몸을 움츠리다가 들고 있던 악기를 기타 스탠드에 제대로 걸지 못했고, 임시방편으로 고정시켜뒀던 나사가 스탠드에서 빠지면서 베이스가 그대로 넘어져버렸다.

낡은 것들을 미련 없이 버리고 새 것을 사뒀거나, 내 눈이 여전히 좋고 몸이 아프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쓸모가 없다.
악기의 네크에 깊이 파인 상처를 나는 아무 소용 없을 줄 알면서도 손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어떤 생각이 새로 생겼다.
이제 지금까지 습관 들여 살았던 것 보다 더 조심해야 하겠구나. 무심코 하던 행동들을 더 주의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이상하거나 서운한 일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러운 것이다.

내일 공연으로 분주했던 두어 달의 일정이 끝나간다. 내가 신경을 쓰며 악기를 점검하는 유난을 떨고 있는 이유는 지난 주의 공연이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일 공연을 완벽하게 하고 싶은 것은 맞다. 그렇지만 콘서트는 나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사소한 것에 몰두하여 쓸데 없는 강박 같은 것은 가지지 말아야겠다.

오늘은 푹 자고, 내일은 고요한 마음으로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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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4일 월요일

기운이 없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지난 주 수요일에 경주에서 공연을 했다. 리허설을 마친 후에 나는 그날의 공연이 모두 순조로울 것으로 생각했다. 무대는 잘 준비되어 있었다. 친숙한 음향 팀은 완벽하게 소리를 만들어줬다. 전부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첫 곡을 시작할 때 부터 내 악기에서 예상하지 못한 소리가 나왔다. 아주 거칠고 메마른 소리였다. 나는 그것이 악기의 탓인지 앰프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모니터 스피커는 리허설을 할 때 보다 음량이 커져있었는데, 그것 역시 정말로 음량이 세어진 것인지 아니면 리허설 때에 내가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악기의 줄을 건드릴 때 마다 신경이 쓰였다. 나는 위축되어서 악기의 볼륨 노브를 돌려보기도 하고 모든 이펙터를 꺼보기도 했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순서에 따라 악기를 바꿨을 때에도 몹시 당황했다. 갑자기 소리가 작아졌고 원하는 음색을 낼 수 없었다. 여전히 무엇이 원인인지도 나는 파악할 수 없었다. 가능한 연주 도중에 앰프나 이펙터의 노브에 손을 대는 것을 삼가려 했는데, 그 날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연주하는데에 편안한 소리를 내보려고 애썼지만 하나도 제대로 되어지지 않았다.
그럭 저럭 공연을 마치고, 나는 대기실로 돌아가는 대신 공연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잠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나, 내가 너무 안일했던 것인가, 공연 직전에 손톱을 한 번 더 다듬었어야 좋았을까, 아니면 멤버들과 저녁을 먹을 때에 나 혼자 끼니를 거르지 않았어야 옳았나.

다른 사람들이 다 떠난 뒤에, 나는 힘이 빠진 채로 느릿 느릿 악기를 챙겨 차에 싣고 심야의 고속도로를 달렸다. 뭔가 일을 바르게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 졸립지도 않았다.

그 다음 날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했다. 수업과 수업 사이에, 나는 계속 전날의 공연을 떠올리며 기초적인 연습을 다시 해봤다. 여전히 기분이 가라앉고 있지만 어쩌다 잘 되어지지 않는 날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하여 일을 망쳤다고 여겨질 때에, 나는 심하게 자책을 하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 뛰어나지도 완벽하지도 못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생긴 습관일 것이다. 엉뚱한 생각이 들어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았던 악기들을 검색하여 자세히 살펴보기도 했다. 나를 탓하기 싫으니 악기 탓을 해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지나고 보면, 내가 나를 책망하는 것이 나중의 일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주말 동안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계속 연습을 했다. 연습이 지나간 일을 보상해주지는 않지만, 비슷한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줄여주기는 할 것이다.

돌아오는 주말에 다른 공연이 기다리고 있다. 그 공연을 아주 잘 해내면 기분이 나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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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9일 화요일

밤중에 경주에.


낮에 고민하다가, 공연 하루 전에 미리 경주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일 공연을 마치고, 그 다음 날에는 여주에 가서 수업을 해야 한다. 지난 주 대구에 다녀왔을 때에도 무척 피곤하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장거리 운전을 하고 밤 열 시를 넘길 공연을 마친 후 다시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 보다는 하루 전에 공연장 근처에 도착해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매니저님에게 전화를 걸어 이 내용을 말하고, 해가 저문 후에 느긋하게 출발하려고 하고 있었다. 오후 늦게 매니저님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내가 머물 숙소를 예약해 주셨다고 했다. 나는 내가 편할 때에 출발하여 내가 머물 곳을 알아서 잡아 하루 자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감사 인사를 하고 짐을 챙겨 운전을 시작했다.

밤 열한 시 직전에 한옥집의 외양을 흉내 낸 이상한 여관에 도착하였다. 어떻게 말해도 호텔이라고 해줄 수는 없는 곳이었다. 오랜만에 요를 깔고 바닥에 누워본다. 집에서 하던 일들을 그대로 가져왔다. 이어폰을 잘 못 가져오는 바람에 에어팟을 사용해야 했다.
그런데 역시 의자가 아니어서 몸 여기 저기가 무척 아팠다. 나는 아직도 양손이 저리고 허리와 목과 어깨에 통증이 있다.

내일 공연으로 바빴던 한 달이 지나간다.
오늘은 여유를 부리며 깊이 잠들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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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4일 목요일

대구에서.


대구에서 공연했다.
보통의 공연에 비하면 절반 정도 분량이었다.
아침 일찍 출발하여 고속도로를 달렸다. 내 차에는 멤버 분들의 악기가 실려있었다. 그들은 KTX를 타고 가기로 했고, 나는 직접 운전을 하여 가고 있었다. 중부내륙 고속도로에서 큰 정체를 겪었다. 약 한 시간 남짓 손해를 보았다. 알고 보니 큰 사고가 있었다. 사고 현장에서 구급차가 막 떠난 것으로 보였다. 나는 약속시간에 늦을까봐 조바심이 났지만, 안전하게 도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악기가 내 차에 실려 있으니 사고라도 나면 오늘 공연은 망치는 것 아닐까 하였다. 올해 들어 나는 자주 과속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약속 시간에 정확히 도착하여 짧은 리허설을 하고, 공연을 마쳤다.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엔 느긋한 마음으로 밤길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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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2일 화요일

잠깐 가을.


오랜만에 이틀 동안 쉴 수 있었다. 어제와 오늘 동네에 있는 한의원에 다시 찾아가 치료를 받고 침을 맞고 있다. 다시 팔과 손이 저린 증상이 시작되었다가 그것이 심해져 손 끝에 감각이 없어진 정도가 되었었다. 토요일 인천 공연은 왼손에 감각이 없어서 지판을 자주 쳐다봐야 했다.

침을 맞고 진료를 받는다고 쉽게 낫지는 않는다. 그래도 시간을 낼 수 있을 때에 몸을 관리라도 해보려는 것이다. 그 덕분에 동네 어귀를 느릿 느릿 걸으며 가을 하늘을 올려다 보고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집 앞에 나무들은 잎의 색도 바꾸고 빨간 열매를 맺기도 하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 어느 감나무 앞에 서서 탐스럽게 매달린 감을 올려다 보았다. 더러는 새들이 쪼아 먹기도 했지만 예쁜 색을 띠고 가지 끝에 주렁 주렁 달린 감들을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오랜 기간 힘든 일들을 겪어 왔다. 아직 아무 것도 더 나아지지는 않았다. 모처럼 쉴 수 있었던 이틀 동안 밤중에 갑자기 전화를 받고 응급실에 가거나 걱정을 가득 안고 도로를 달리는 일은 없었다. 그 정도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내일 부터 다시 합주를 하고 공연을 하러 먼 길을 다녀오고 밴드 일정 때문에 미루어야 했던 수업 준비도 더 공들여 해야 한다. 몸이 저절로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치료를 받으러 다니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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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9일 토요일

인천에서 공연.


이번 주는 아길라 앰프를 크기 순서로 사용했다.
연주하는 시간만큼은 즐거웠던 한 주일이었다.


오늘 공연의 절반은 플렛리스로 연주했다.
플렛이 없는 재즈 베이스를 다시 한 개 가지고 싶어졌다.

긴 리허설 덕분에 공연할 때엔 좋은 소리로 연주할 수 있었다.
스물 한 곡이 순간 지나가버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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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8일 금요일

새 친구들.


아내로부터 밥을 얻어 먹는 비둘기 두 마리가 새로 다른 두 비둘기들을 친구로 맞은 모양이다.
이른 아침에는 서로 순서대로 날며 놀더니 낮에는 나란히 창가에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던 비둘기들이 매일 찾아와 밥을 먹으며 지내더니 뚱뚱해지고 깃털에 윤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올해도 매서울 겨울을 비둘기들이 잘 버티며 보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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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7일 목요일

오랜만에 '공감'.


오랜만에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했다.
일산 스튜디오에서는 처음 연주하는 것이었다. 이사오기 전 스페이스 홀 대기실에 있던 냉장고를 그대로 가져와 둔 것을 보고 웃음이 났다.

미리 부탁했던 아길라 앰프와 캐비닛이 준비되어 있었다. 어제 녹음실에서 사용했던 것은 300와트, 오늘 것은 500와트. 앰프 소리도 좋고 연주하기도 편했다. 다만 한 가지, 15년이나 된 음악 프로그램이라면 베이스 앰프에 마이크도 사용해주면 더 좋겠다.



올 가을 꾸며놓았던 페달들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연말까지 이 조합으로 계속 연주할 생각이다.
방송 녹화였기 때문에 연주할 곡이 많지 않았다.
공연이 금세 끝나버려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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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6일 수요일

가을, 녹음.


아침 일찍 가평에 지어진 녹음실에 친구들과 함께 모였다.
공기 좋은 옛 가평역 자리에 예쁘고 훌륭하게 설계된 레코딩 스튜디오가 지어져 있었다.
한 번 가보고 싶었던 장소였다.

내가 좋아하는 아길라 앰프가 준비되어 있었다. 앰프 사운드가 마음에 들었다. 녹음실에 머물러 있는 동안 기분 좋게 연주했다.


오전에 한 곡, 오후에 한 곡을 합주 녹음으로 진행했다.
두 개의 악기를 모두 가져가긴 했는데, 처음부터 플렛리스로만 녹음하고 싶었다. 두 곡 모두 플렛리스 프레시젼으로 녹음할 수 있었다.

열흘 가까이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했던 까닭에 오늘 아침에도 알람이 울리기 전에 잠을 깨었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는 길에 졸음이 쏟아져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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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1일 금요일

Mac OS Catalina


iOS 두 가지 업데이트 후에 기다리던 맥 오에스 10.15가 나왔고, 이틀에 걸쳐 맥북과 아이맥을 업그레이드 했다.
처음 맥 오에스 텐의 퍼블릭 베타 버젼이 나온지 벌써 이십여년, 19년이 지난 오에스는 많이 변했다. 이제 공식 명칭은 macOS가 되었다고 들었다.

요즘은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을 시간이 없다. 그 덕분에 잠들기 전 업그레이드 시작 버튼을 눌러 놓고 아침에 일어나 확인하는 식으로 할 수 있었다. 몇 시간이 걸렸는지는 그래서 정확히 몰랐다.

새 오에스를 설치하기 전에 사용하는 프로그램들이 새 오에스에 모두 최적화가 되어있는지 찾아 읽어 보고, 여전히 32비트인 앱들 중 결국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고 쥐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판단했다. 우선 하드디스크 대신 SSD가 담겨 있는 맥북에 먼저 새 오에스를 설치해 봤다. 그것으로 대략 테스트를 해보고 책상 위에 있는 아이맥의 업그레이드를 진행했다. 아무 문제 없이 쾌적하게 오에스 설치를 끝냈다. 딱 한 가지, 글 쓰는 프로그램인 Scrivener 2 만은 64비트 버젼이 나올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결국 포기하기로 했다. 그 회사... 좀 너무하다는 생각은 든다. 새 버젼을 구입하라는 의도일테지만, 한 번 팔면 그만인거냐, 라고 따지고 싶기도 하다.

새 오에스를 기다리지 않고 설치하고 싶었던 이유는 이십여년이 된 주요 프로그램들이 더 가볍게 바뀌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아이튠스는 스트리밍 이전 시대에 유용했다. 최근에 그 음악 통합 앱은 너무 비대했고 둔했다. 새 오에스의 Music 앱 정도면 충분하다. 기분이 산뜻해졌다.

사용하던 오디오 인터페이스의 회사에서는 성의를 보여줬다. 32비트였던 소프트웨어를 베타 버젼이나마 64비트로 만들어 새로 다운로드 할 수 있게 해준 덕분에 업그레이드 이전에 사용했던 그대로 계속 쓸 수 있게 됐다.

오후 세 시에 집을 나서면서 Photo 앱이 저렇게 일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지금은 밤 열 시. 아직도 저렇게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약 10% 정도 남은 모양이다. 이 경우 해당 앱을 꺼두어도 컴퓨터에 켜져있는 동안에는 보이지만 않을 뿐 뒤에서 같은 작업을 계속 한다. 수 만 장의 사진들이 있으니 오래 걸릴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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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7일 월요일

그 때의 나.


충분히 연습이 되어있고 성실하고 재능도 있어 보이지만, 여전히 소란스럽기만 하며 음악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젊은 연주자들을 여럿 본다. 함께 연주하게 되면 무거운 수레를 밀며 겨우 걷는 기분이 든다. 그런 친구들과의 연주는 고되다.

하지만 문득 생각해보면, 나의 처음은 지금의 그들 보다도 못했을 것이었다.
아무 것도 가르쳐준 적은 없었지만, 어린 나를 견뎌줬던 내 선배들이 나의 선생님들이었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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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5일 토요일

운전, 연주, 운전.


정읍에서 공연했다.
새벽에 어떤 소음 때문에 잠을 깨어 결국 다시 잠들지 못했다. 겨우 두 시간만 잘 수 있었다.
아침 일찍 운전을 시작, 네 시간 동안 고속도로를 달렸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예상하지 못했던 추위.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따뜻해 보이는 외투를 입고 있었다. 내장산 기슭의 바람이 매서웠다.

아직 여름 옷을 입고 다니는 나는 계절의 변화에 너무 둔감한 것 같다.
첫 곡을 시작했을 때에 낮은 온도에 악기의 줄이 점점 더 차갑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손이 시려워서 입에 손을 가져다 대고 후후 불었다. 사람들이 보기에 매우 바보같았을 것이다.

공연이 진행되면서 해가 지고, 기온은 더 낮아졌다. 악기의 음이 자꾸 미세하게 올라갔다. 가장 덜 변한 줄을 기준으로 삼아 연주를 하면서 수시로 튜닝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무대 위의 음향은 최근 몇 년 중 가장 최악이었다. 이미 리허설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정이었을 때에 눈치를 챘다. 공연을 시작한 후 연주를 하는 도중에 헤드셋 마이크를 하고 있는 분을 불러 모니터 스피커의 소리를 아예 꺼달라고 부탁했다. 이런 경우에는 무대 위의 사운드를 최대한 귀기울여 듣는 편이 언제나 더 나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기왕에 시작한 연주를 할 때에는 더 이상 핑계를 대거나 부실한 음향을 구실 삼아 변명할 필요는 없다. 집중하여 잘 하면 그만이다.

공연을 마치고 났더니 감기에 걸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읍 시내에서 따뜻한 국밥을 먹고 다시 운전을 시작했는데, 저절로 두꺼운 이불이 덮혀지는 것 처럼 졸음이 밀려왔다. 두 번이나 중간에 쉬면서, 세 시간을 운전하여 집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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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 친구가 서초동에 함께 가겠느냐는 문자메세지를 보내왔다.
지난 주 부터 다음 주까지 토요일 마다 공연이 약속되어 있어서, 나는 못 가는 대신 내 몫까지 해주고 오렴, 이라고 답을 했다.
집에 돌아와 금세 잠들지 못하고 사람들이 올린 사진과 글을 한참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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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27일 금요일

공연 사흘 째.



밴드 10주년 기념공연이라는 이름을 붙인 나흘 동안의 공연, 사흘째 순서를 마쳤다.
연주하고 공연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내 개인사는 편안하지 못했다.

연주하는 일이란 특별할 것도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러나 마음의 상태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사흘 내내 공연 직전 혼자 스스로를 가라앉히고  정서를 유지하려 애써야 했다. 음 한 개, 박자 하나에 더 신중하려고 했다.

오늘 밤은 집에 돌아오는 길이 멀게 느껴졌다.
먹은 것이 없어서 그랬나 보다.
챙겨 먹고, 쉴 수 있을 때에 쉬어야 한다.

내일 남은 공연은 더 편안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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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23일 월요일

공연 준비.


수요일 부터 나흘 동안 한 장소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다.
주말에 악기에 새 줄을 감고 페달보드를 꺼내어 케이블 청소를 했다.
합주실에 조금 일찍 가서 소리를 확인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몇 해 동안 이펙터를 들고 다니지 않았었다. 올 가을 공연들에서 연주할 곡이 특별히 더 많은 것은 아니다. 한정된 악기 편성에서 조금 더 다양한 음색이 필요했다. 보드 위에 붙어있던 것들을 모두 떼어 케이블과 잭을 닦고 꼭 사용할 것들을 새로 추렸다.
페달보드의 구성을 자주 바꾸다 보니 보드에 페달을 고정할 때에 사용하는 강력 테이프를 다 써버리고 없는 줄도 몰랐다. 급한대로 끈으로 묶어 가방에 넣어 이동했다. 아침에 테이프를 주문했으니 모레 공연 직전까지는 배송될 것이다.

긴 합주를 하는 동안 집중하느라 커피가 놓여져 있는 것을 그만 잊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악기를 챙겨 나오면서 식은 커피를 벌컥 들이켰다.
가을 하늘은 맑았다.
햇빛은 따뜻하고 바람은 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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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29일 목요일

안경.



자신의 허물을 보지 못하고 남을 탓하는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다. 몇해 전에 오랜만에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는데, 스크린의 해상도가 너무 낮다는 기분이 들었다. 영화에 집중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쁜 화질이라고 생각하여 극장에서 나온 후에도 투덜거렸었다. 어떻게 저런 후진 시설을 해놓고 표값을 받는 것이나며 죄없는 극장을 탓했다. 내가 그동안 컴퓨터 모니터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에 대형 스크린에 비춰지는 영상이 거칠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그것이 갑자기 나빠진 내 시력 때문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워낙 시력이 좋았던 나는 한번도 눈이 나빠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며 살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조금 오래 운전을 하고나면 몸이 지치기도 했고 햇빛이 들어오는 자리에 앉아 책을 읽다보면 얼굴의 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인상을 쓰며 읽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한참 후에야 내 시력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해에 처음으로 안경을 샀다.

안경점 사장님은 완성된 안경을 나에게 건네어주면서 자연스럽게 노안이 생긴 것일 뿐 여전히 시력이 좋은 편이니 항상 안경을 쓸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안경을 사용한 후 다시 긴 시간 운전을 하여도 피로하지 않게 되었다. 올해엔 인상을 덜 쓰며 활자를 읽기 위해 돋보기 안경을 한 개 더 샀다. 역사상 초기의 안경 렌즈란 노안을 교정하기 위했던 것이었다. 나는 이제서야 본연의 기능을 위한 물건을 가지게 된 셈이다.

안경을 쓰기 시작한 후 비로소 눈이 나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평소에 함께 길을 걷다가 뻔히 보이는 간판의 글씨를 알아보지 못하던 아내의 심정을 이제서야 알 수 있었다. 아직 일정한 거리에 있는 것들은 여전히 선명하게 잘 보이기 때문에, 늘 안경을 썼다가 벗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귀찮고 어색하다. 하지만 인상을 쓰며 눈을 가늘게 뜨지 않아도 되는 것이 좋고, 극장의 스크린을 다시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것도 좋다.

한편, 내 눈이 나빠진 것을 모르고 극장의 시설을 탓했던 것이 혼자 미안하여 그 후에도 영화를 볼 일이 있으면 나는 계속 같은 극장에 다니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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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25일 일요일

제주에 다녀왔다.


편안하고 순조로왔던 제주도 공연을 마치고 돌아왔다.
예정, 약속, 준비들이 잘 이루어졌고 초대해준 분들이 마련해준 숙소도 편안했다.
토요일 아침 기타를 하드케이스에 담다가 그만 허리에 큰 충격을 느끼고 그 자리에 쓰러져버렸던 일만 제외하면 모든게 좋을뻔 했다.

그동안 작은 통증들이 모여있다가 터져버린 것 같았다.
공항까지 운전하는 동안 통증이 계속 느껴지다가 비행기를 타면서 극심해졌다. 제주도에 도착할 무렵에는 아무데나 드러누워 쉬고싶을 지경이었다.


리허설을 마친 후에 가까운 곳에 정해준 숙소에서 쉴 수 있었던 덕분에 공연 직전에 어느 정도 회복을 할 수 있었다. 통증이 아니었다면 더 집중하고 즐기면서 연주할 수 있었을텐데 아쉬웠다.
모두 열두 곡을 연주했다.  습기가 가득한 바닷바람 덕분에 새로 감아둔 기타줄의 표면이 거칠어졌다. 가까운 곳에 모여앉은 청중들의 소리, 한 곡을 연주할때마다 한번씩 하늘 위를 지나가던 비행기 소리들이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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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22일 목요일

기타


주말에 제주도에서 통기타를 연주해야하는 공연이 예정되어있다.
한달 남짓 어쿠스틱 기타를 열심히 쳤다. 처음에는 낯설더니 조금씩 감각이 되돌아왔고, 이제 다시 익숙해졌다.
어릴적에 기타를 치고싶어서 몰래 연습했던 기억도 나고, 그 시절 하루종일 이어폰으로 듣고 다니던 음악들도 생각났다. 다만 악기의 큰 음량을 틀어막을 수 없어서 밤이 되면 연습을 할 수 없었다. 심야에 통기타를 치면 이웃들의 수면을 방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엔 이불을 뒤집어 쓰고서도 연습을 했었는데 이제는 남의 집에 피해를 줄 것을 지레 걱정하여 심야의 악기연습을 삼간다.

열흘 전 제천에 다녀온 이후 통기타에 새줄을 감고 자주 연습했다. 그동안은 베이스를 손에 쥐어보지 않았다. 덕분에 오른손의 손톱이 기타를 연주하기 알맞은 정도로 자랐다.
내일 약식으로 합주를 한 번 하고 그 다음날은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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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20일 화요일

슬픔.


운전을 하다가 전화를 받고, 십여년간 함께 일하고있는 분이 갑자기 부친상을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하려던 일들을 대충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와 밤중에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자정이 넘어서 도착한 인적드문 길 옆의 장례식장에서 아버지를 잃은 사람을 만났다.

두 시간 동안 텅빈 방 안에 마주 앉아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예상하지 못한 이별이 사람을 얼마나 무기력하게 하는지 나는 잘 알고있다. 그것은 서운함, 슬픔 따위의 단어로는 그 뜻을 전달하기에 부족하다.

돌아오는 길엔 한번도 쉬지 않고 운전했다. 검은 하늘빛이 바래지더니 요금소를 지날 무렵 갑자기 아침이 되었다. 나는 돌아가신 분의 인생은 알지 못하지만 조금전 만나고 온 분이 느끼고 있을 황망한 심정은 잘 알 것 같았다. 졸음을 이기기 위해 음악을 틀었다가 상을 입은 분이 생각나서, 그만 꺼두고 달려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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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16일 금요일

동네에서 만난 고양이.


아내와 함께 동네에 나갔다가 상점 앞에서 이 고양이를 만났다.
졸고있던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더니 반가와하며 인사를 해줬다.
그 곁에 사료와 물, 정성껏 만들어준 집도 있었다. 십여년 전과 비교하면 길고양이들을 챙겨주는 분들이 아주 많아진 것은 사실이구나, 했다.

머리가 많이 아파서 진통제를 먹었다.
밤중에는 부모님 집에 들렀다. 가는 길에 빵집에서 식빵 두 개와 팥이 들어있는 빵을 샀다. 빵봉지를 받아든 엄마는 마침 먹을 것이 없었다며 반가와했다. 돌아올 때엔 식빵 한 개를 굳이 도로 가져가라고 하여 다시 들고 나왔다.

지난 주에 아내가 다급하게 구조했던 새끼 고양이는 그만 죽고 말았다. 새벽에 그 전화를 받고 동물병원에 다녀왔다. 일주일 동안 입원하며 살도 불었고 건강해져서 살아날 수 있을줄 알았었다. 결국 폐렴증상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마음이 아팠다. 아내가 엊그제 풀숲에서 데려와 임시보호자에게 맡긴 고양이들은 매우 건강하다고 했다. 잘 뛰어놀고 둘이 함께 꼭 붙어서 잘 잔다고 들었다.

깊은 밤, 일부러 내집의 고양이들을 일일이 찾아 쓰다듬어줬다.
말복이 지났다고도 하고 곧 입추라고도 한다.
추석이 다가오는 것이 신경쓰이지만 세상의 일들이 신경을 쓴다고하여 달라지거나 반드시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힘내어 각자 잘 살아가면 그것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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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12일 월요일

제천에서 공연.


내가 사는 동네에는 바람이 불고 비가 많이 왔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오늘 돌아다녔던 도로와 공연장 부근은 맑았다.
오후에 출발하여 이제는 낯익은 길을 따라 제천의 청풍호 부근에서 윤기형님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약속시간에 맞춰 멤버들의 차량이 동시에 모두 모였다. 리허설을 할 때에 음향이 좋지 않아 오늘밤 공연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악기의 상태도 나빴다. 공연이 시작되었고, 역시 연주하기 힘든 상황이 이어졌다.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어서 무대 위의 사람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연주해야했다.
제천 영화제에는 이전에도 몇번 출연하여 연주했었다. 기억에 남는 좋은 공연도 있었는데 오늘은 실망스러웠다.

리허설 후에 주최측에서 마련해준 호텔에 들어가 편안히 낮잠을 잤다. 고마운 숙소였다. 그 덕분에 피로가 많이 풀렸다.


공연을 마치고 전화기를 확인해보니 아내가 두달 남짓 돌보고 있던 아기 길고양이 형제를 데려와 임시로 보호해줄 분에게 잘 맡겼다고 했다. 함께 보내온 사진을 보니 두 마리 모두 건강한 모습이었다.

집에 돌아온 후 눅눅해진 악기를 대충 닦고 스탠드에 걸어뒀다.
듣고싶어서 쟁여둔 음악이 많고 읽고싶어서 모아둔 책들이 많은데 하루가 짧다.
커피를 한 번 더 내려 마시려다가, 이제부터는 가능한 잠을 충분히 자두자고 생각하여 그만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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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8일 목요일

잠을 자고, 세차도.


많이 잤다. 충분히 자고 일어나보니 오후였다.
여전히 무덥고 습했다.
커피를 내리고 청소를 하면서 기억나는 것을 더 잘 기억하려고 메모를 해뒀다.

자동차의 실내를 청소하고 싶어서 세차장에 들렀다. 어딘가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차량의 내부가 조금 깨끗해졌다.
저녁에 고양이 이지가 내 근처에서 머물며 졸기도 하고 놀기도 했다.
최근에 이지가 자주 토하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이틀 전에 아내와 함께 이지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다녀왔다. 혈액검사를 하고 방사선 촬영을 했다. 항구토제를 사서 먹였고 피하수액 주사도 맞췄다. 그 후 몸이 편안해졌는지 다시 잘 놀고있다. 표정도 좋아보인다.


고양이 이지는 계속 나의 등뒤에서 나를 보고있었던 것인지 내가 뒤를 돌아볼 때마다 눈이 마주쳤다. 혹시 소란스럽거나 너무 밝아서 못자고 있는 것인가 하여 등 한 개를 꺼주고, 스피커를 끄고 헤드폰을 머리에 썼다. 잠시 후에 다시 바라보니 몸을 길게 편채로 쿨쿨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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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3일 토요일

부산에 다녀왔다.


다대포 해변에서 공연했다.

아침 일찍 서울역에서 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는 중에 읽던 책의 나머지 부분을 절반 읽었다. 오후에는 리허설을 마치고 에어컨을 틀어둔 커피집 테이블 앞에 앉아 책의 뒷부분을 마저 다 읽을 수 있었다. 우연히 발견한 책이었는데 흥미로왔다. 피터 싱어의 '더 나은 세상'이라는 책으로, 원제는 Ethics In The Real World 였다.
요즘 생각해봤던 주제들이 그 책 안에 많이 담겨있었다. 어떤 사람은 살아가면서 더 배우려는 태도를 지니지 않으려 애를 쓰기도 한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경험 속에서 굳혀놓았던 생각이 사실과 위배될 때에 혼자 절망하는 모양이다. 절망만 하면 괜찮은 편인데 그런 감정은 쉽게 혐오와 분노로 튀어나온다. 피로하지만, 그런 사람들이라고 해도 어쨌든 대화는 해야한다.

화요일 밤부터 꼬박 하루를 못자고, 그 다음날에 조금 잤다가 어제 다시 한숨도 못잤다.
다대포 앞은 무덥고 습했다. 고운모래가 가득한 해변이었지만 수면부족과 불면으로 몸을 쉴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무대 위의 음향상태도 좋지 않았다. 가능한 체력을 잘 안배해야했다.

밤중에 돌아올 때에 열차가 늦게 출발했다. 나중에 뉴스를 보니 너무 기온이 높아 선로가 가열되어 고속열차들이 여러 곳에서 지연되었다고 했다.
새벽, 서울역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엔 음악을 꺼두고 자동차의 유리문을 열어둔채로 달렸다.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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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1일 목요일

고양이가 좋아하는 것.


어린 고양이 깜이는 잘 자고 잘 먹은 후에는 계속 사람이나 언니 고양이들을 치댄다.
놀아달라고.

비디오를 보여주면 고양이 깜이를 조용하게 만들 수 있다. 처음에는 고양이를 위한 비디오로 시작했다. 그런 영상에는 다람쥐나 새들이 등장한다. 영상의 길이는 고양이를 붙잡아두기에 충분히 길지만, 고양이는 금세 흥미를 잃어버렸다. 사실 끈이 움직이거나 쥐가 도망치고 있는 영상을 더 재미있어하는데, 그대신 모니터가 남아나지 않는다. 고양이가 모니터를 긁고 때려보고 뒤로 돌아가 끈이나 동물을 찾아보려하기 때문이다.
 ( https://choiwonsik.blogspot.com/2016/12/tv.html )

혹시 이것은 어떨까, 하여 애니메이션 뽀로로를 틀어줬더니 갑자기 고양이 깜이는 자세를 고쳐 앉더니 에피소드 한 개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린이들이라면 모두 좋아한다고 하더니 어린 고양이에게도 무척 재미있는 것이었나보다.
집안의 다른 언니 고양이들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당분간 깜이를 진정시킬 때엔 뽀로로를 사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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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22일 월요일

조용했던 하루.


사진 앱에 모아둔 고양이 순이의 폴더를 클릭했더니 사진파일의 메타정보에 따라 연도가 표시되었다. 그 기간이 내가 고양이 순이와 함께 했던 시간이었다. 그 숫자를 보면서 나에게 친절했던 내 고양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삼년 전 그날 아침에 나는 화장터 직원으로부터 순이의 재가 담긴 상자를 받아들고 집으로 출발했다. 운전을 시작한지 몇 분 되지 않아 갓길을 발견하고 차를 멈췄다. 그리고 갑자기 저절로 울음이 터졌었다. 울고싶지 않아서 버텼던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참고 싶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내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소리도 눈물도 없이 울음이 터져버렸다. 아무도 없는 길 위에서, 뒤늦게 눈물이 빗물처럼 떨어져 허벅지를 적실 때까지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때의 감정은 정확하지 않다. 기억할 수 있는 감각은 있다. 나는 고통스러워했다. 몸이 아파왔다. 헤어지고싶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서운하고 슬퍼했던 것 같다. 세월이 흘렀는데도 이런 기분이니까, 아마 그 순간에도 그런 감정이었을 것이다.

2006년, 4월에.


슬픈 기억, 아픈 느낌은 좋지 않다. 나이 먹은 인간이라면 그런 정도는 떨쳐내거나 가슴 깊이 묻어두는데에 능숙해지는 것인줄 알았다. 나는 아마도 그런 사람은 되지 못하는 모양이다.

고양이를 떠나보내는 일 역시 많은 관계들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 말로 이성적인 체하며 센척을 해보았자 아픈 마음은 나아지지 않는다.
기억이 날 때엔 기억하고, 슬퍼할 때엔 차분히 슬퍼하는 게 더 낫다. 헤어지기 전까지 힘껏 행복하면 좋고, 누군가를 잃고 고통스러워할 때에 위로받지 못하였다고 해도 오래 서운해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배우면 되는 것 같다.

그날처럼 덥고 습했던 하루가 조용하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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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21일 일요일

연주.


일요일 저녁 공연을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팀과 함께 연주했다.
흐린 하늘처럼 가라앉은 기분으로 집에서 나왔었는데 연주를 마친 뒤에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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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20일 토요일

연습


집안의 일로 열흘 넘게 베이스 연습을 못했었다. 지난 화요일 밤에 합주를 할 때에 길어진 손톱을 깎으며 살짝 긴장을 했었다.

내일 공연을 위해서 악기 연습을 오래 했다. 새삼 준비할 것은 없었다. 다만 손가락이 말썽이라도 부리지 않을까 하여 염려했다.
오랜만에 이 악기를 가지고 가려고 마음 먹었다. 반음 내린 튜닝으로 맞추기 위해 브릿지의 높이를 조절했다. 여름마다 그랬던 것처럼 창문을 열어두고 지낸다. 바람이 창문 사이를 지나며 덜 덥게 해주는 대신에 실내의 습도는 높아진다. 악기의 네크와 브릿지를 미리 손봐둬야 했는데... 올해엔 여러가지 다른 일 때문에 제대로 관리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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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9일 금요일

다 나은 고양이


한 해 전만 해도 구내염이 심하여 많이 아팠던 고양이 이지는 병이 다 나은 후 어릴적 그랬던 것처럼 자주 장난을 친다. 새로 바꾼 이불의 느낌이 마음에 들었는지 하루에도 몇번씩 침대에 올라가 구르고 뛰며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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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5일 월요일

착한 얼굴.


개들이 다 그렇지만, 선한 눈빛을 하고 물끄러미 나에게 시선을 맞춰주면 마음이 평화로와지는 기분이 든다. 착한 강아지는 언제나 나와 아내를 반갑게 맞아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거워해준다.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면 서운해하느라 꼬리를 오무린 채 기운 빠진 얼굴을 하는데, 집에 돌아가는 내내 그 모습이 선하다. 어쩌면 강아지의 연기에 속고 있는 건 아닐까, 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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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일 월요일

칠월.


병원에 입원 중이었던 분이 퇴원하셨다. 아내가 집에 돌아오자 고양이들이 활기를 띠고 있다.
검은 고양이 깜이가 하도 귀엽게 굴어서 웃었다.

지난 밤에 나는 순이가 나오는 꿈을 꾸다가 별안간 깨어버렸다.
꿈의 내용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하지만 기록해두고 싶지 않다.
그렇게 잠에서 깨어난 후 커피를 내리고 청소를 하면서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날씨가 좋은 월요일이었다.
벌써 칠월이 되었구나, 하며 아무 것도 적어놓지 않은 비어있는 달력을 넘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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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5일 화요일

고양이 이지.


두 시간 자고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났다.
다시 병원.
순서대로 환자분의 진료를 다 마치고 났더니 오후가 되어있었다.
나도 아내도 거의 스무 시간째 굶고 있었다.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집에 돌아와 청소를 하고, 다시 쓰러져 잠을 자버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하루를 다 소모했다.
내일은 내 부모 두 분을 모시러 아침 일찍 나가야 한다.
잠깐이라도 할 일을 하고싶었다. 컴퓨터를 켜고 악기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느라 방안의 불을 켰더니 고양이 이지가 기타 케이스 위에 앉아 나를 보고있었다. 아내가 집을 오래 비웠던 동안에 이지는 나와 조금 더 가까와진걸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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