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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3일 토요일

성남 공연


 가족과 함께 공연장에 와 준 친구가 꽃을 선물했다. 하루 전에 꽃집 앞에서 망설이다가 돌아왔는데 이런 우연이. 마침 내가 사고 싶었던 배색으로 이루어진 꽃 묶음이었다. 고마웠다. 아내가 찍어준 사진 속에선 고양이 깜이가 향기를 맡으며 코를 부비고 있었다.

연락 없이 일찍 예매하여 공연을 보러 온 다른 친구들은 내가 서있는 자리 앞 줄에 앉아 있었다는데, 나는 이제 안경을 쓰지 않으면 객석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정확히 보지 못 한다. (다행이었다) 그들은 과일과 떡을 선물해 줬다. 나는 그들에게 줄 공책을 가져갔었는데 그나마도 준비하지 않았다면 너무 염치 없었을 뻔 했다. 고마워하며 받았다. 허기 진 채로 밤 늦게 집에 돌아와 떡을 맛있게 먹었다.

성남 아트센터에 여러 차례 갔었지만 오페라하우스에서는 처음 연주해 봤다. 연주자가 다녀야 하는 동선에 경사로가 없어서 악기를 실은 손수레를 끌며 계단을 오르다가 허리 통증이 시작되어 애를 먹었다. 


2024년 3월 10일 일요일

하남에서 공연


 하남문화예술회관은 집에서 강을 건너면 바로 있는 장소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이번엔 집에서 가까운 곳에 공연 일정이 잡혔다. 약속 시간 30분 전에 도착하겠다고 생각하고 시간에 맞춰 출발했다. 공연장까지 17분 걸렸다. 나머지 멤버들은 나보다 먼저 와 있었다.

이곳에서 공연했던 것은 12년 전 일이었다. 오래 되어서 잘 기억나지 않았는데, 장비반입구 쪽 주차장에서 제일 먼저 길고 완만한 경사로가 보였다. 악기를 실은 수레를 밀고 들어가면 바로 무대로 향하는 출입구가 나왔다. 대기실도 가까왔다. 어제 공연장이 너무 열악했기 때문에 하남 문화예술회관이 매우 선진적이고 좋아 보였다.
어젠 몇 곡을 제외하고 전부 피크로 연주했다. 오늘은 피크를 가져가지 않고 모두 손가락만으로 연주했다. 두 시간 십오분 동안 연주하는 것이 조금 힘들었다. 이틀 연속 공연을 했기 때문이었는지, 지치고 힘이 들었다.
밤중에 귀가하여 지하 2층에 주차를 하고, 악기들을 차 안에 그대로 둔 채 집에 들어왔다.


2024년 3월 9일 토요일

부천에서 공연

 

연주하러 다니다 보면 불편할 때도 있고 고생스러울 때도 있는 법이지만, 이 극장은 너무 열악했다. 주차장에서 무대로 향하는 길엔 경사로가 전혀 없었다. 악기를 실은 손수레를 멈추고 악기를 들고 계단을 올라 옮긴 다음 다시 수레에 싣고 무대 앞에 도착했더니, 또 다시 계단이 있었다. 리허설을 마칠 때까지 난방을 해주지 않아 야외공연을 하는 것처럼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 대기실도 열악하긴 마찬가지였다. 불평하면 뭐 할 것인가. 주차장으로 가서 자동차 히터를 켜고 잠시 누워 있었다.

기분 탓인지, 첫 곡을 시작할 때에 소리가 고르게 들리지 않아서 두 시간 넘게 예민해져 있는 상태로 연주를 했다. 그런 날도 있는 것이니까, 더 불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쾌적했다. 며칠 째 듣고 있는 마리아 조앙 피르스의 쇼팽 앨범을 들으며 운전했다.



2024년 2월 20일 화요일

안성에서 공연


 토요일 공연은 몸이 아픈 상태로 해야 했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허리에 주먹을 대고 문지르거나 두드렸다. 파스를 두 장 붙이고 있었지만 통증이 낫진 않았다.

공연 직전에 커피를 한 컵 가득 마셔버렸다. (맛있는 커피였다) 그 때문에 서너 곡 지날 무렵부터 오줌이 마려웠다. <둘이서>는 본래 처음부터 끝까지 베이스가 멜로디를 연주해야 하는 곡인데, 밴드리더님은 그 노래를 단순한 기타 반주로만 하길 원했다. 그 노래가 막 시작되었을 때 나는 느릿느릿 무대 뒤로 빠져나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기실 화장실에 다녀왔다. 볼일을 보면서 지금 무대에서 흐르고 있을 노래를 머리 속에서 따라 가고 있었다. 그 곡의 2절이 끝난 뒤 간주에서부터는 베이스 연주를 하기로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무대로 돌아갔을 때 여유롭게 필요한 순간에 잘 맞춰 소리를 낼 수 있었다.

공연의 절반 뒷 부분은 가벼운 악기를 메고 거의 전부를 피크로 연주했다. 통증을 참느라 조금이라도 에너지를 아껴보려 했던 것이었는데 힘을 빼고 연주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2023년 12월 9일 토요일

송년 공연


 해마다 연말에 해오고 있는 송년 공연. 늘 그 해의 마지막 주에 하곤 했었는데 지난 해에 이어 올해에도 12월 첫째주에 공연을 했다.


프렛리스 베이스로 녹음했던 곡이 오랜만에 셋리스트에 포함되었다. 전날 밤에 프렛리스 베이스를 꺼내어 잘 닦고 연습해보며 소리를 확인했다. 리허설을 할 때에 언제 악기를 바꾸어야 할지 곡 순서를 보며 생각하다가, 그냥 앞 부분은 프렛이 없는 프레시젼 베이스로 죽 연주하기로 했다.


무대에 악기를 모두 올려둔 모습만 보면, 이 밴드가 무슨 이국적인 음악이라도 할 것처럼 보였다. 잔향, 흡음 등에 신경을 쓴 공간 덕분에 연주하는 동안 소리가 좋았다.
다만, 이제 두 시간 반 동안 악기를 들고 서있는 것이 조금 무리가 되었다. 다시 의자를 사용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2023년 11월 25일 토요일

아침 생방송


 23일 목요일 아침, 라디오 생방송에서 연주하기 위해 새벽에 집에서 나왔다.

다섯 시부터 오분 간격으로 알람을 맞춰두고, 결국 잠을 못 잔 상태에서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났다. 그럴 줄 알았다.

아침에 일정이 있으면 힘들다. 그래도 생방송이어서 낫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늘어나거나 같은 것을 반복하는 일은 없을테니까.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때 크라잉넛이 먼저 와서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집에서 보온병에 커피를 가득 담아 가지고 나왔는데 한 시간 이십분 동안 운전을 하면서 다 마셔버렸다. 사운드 체크를 마친 뒤에 건물 일층에 있는 커피집에서 커피 한 잔을 더 마셨다. 그래도 졸음이 쏟아졌다.

이 장면은 아마 연주 시작 직전에 크라잉넛 멤버들이 왁자지껄 말하는 것을 듣고 전부 웃었던 것 같다. 길지 않은 생방송이 끝날 때까지 나는 졸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십일월이 한가하리라 생각했는데 뭘 한 것도 없이 벌써 다 지나갔다. 집에 돌아와 열흘 전에 주문했던 가구를 배송 받고, 저녁에는 레슨을 하러 갔다가, 밤중에는 동물병원에 들러 고양이 짤이에게 먹일 약을 사왔다. 긴 하루였다.


2023년 10월 28일 토요일

다시 김포공항으로

 



언제나 그랬지만, 다섯시부터 오분 간격으로 맞춰둔 알람은 하나도 듣지 못했다. 왜냐면 알람이 울리기 이십분 전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일어나자마자 미리 챙겨둔 가방을 어깨에 메고 체크아웃한 다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따라 컵에 덮개를 씌워 들고 호텔에서 나왔다.

5:00 코엔지역 파출소 앞 승차장에서 택시를 탔다. 어제 저녁에 미리 외워둔 일본어로 공항에 데려다달라고 주문했다. 서울에 도착하면 곧장 안양으로 가서 오늘의 밴드 공연을 준비해야 하는 일정이기 때문에, 비싼 택시비는 아깝지 않았다. 체력을 아끼며 공항이 혼잡하기 전에 비행기 탑승구 앞에 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5:43 하네다 공항 3 터미널에 도착했다. 아직 오가는 사람이 없었다. 항공권은 어제 모바일 앱으로 체크인 했고, 출국심사도 빠르게 마쳤다.
6:05 탑승구로 가는 길에 화장실에 들렀다가 호텔에 치약과 칫솔을 두고 온 것을 알았다. 아마 어제 밤 짐을 챙기고 있던 과거의 나는 내가 아침에 일어나 호텔을 나오기 전에 양치를 할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근처에 있는 상점은 일곱시에 문을 연다고 써있었다. 가까운 곳에서 국수 한 그릇을 사 먹고 일곱시가 되어 칫솔과 치약을 구입했다.

8:00 터미널 한쪽 맨 끝이 내가 탈 비행기의 탑승구였다. 먼 거리였다. 거기까지 걷는데 이미 몸이 너덜너덜해져서 기운이 없었다. 조금 전에 먹었던 국수 때문에 더 졸리웠던 것이었나 보다. 눈앞에 보이는 터미널 내부의 구조가 스탠리 큐브릭 영화 스틸처럼 보였다. 거의 사흘 내내 수면부족 상태로 일단 여기까지는 왔으니, 오후에 안양에 도착하기만 하면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1:57 김포공항에 돌아왔다. 던킨도우넛에서 찬 커피를 사고, 주차비로 오만원을 낸 뒤, 곧장 안양으로 출발했다. 음악을 틀지도 않고 막히는 도로를 앞만 보며 움찔움찔 가고 있었다.

13:40 안양아트센터에 도착했다. 페달보드와 악기를 설치하고 튜닝을 했다.차에 실어뒀던 것 치고는 악기 상태가 아주 좋았다. 주차장의 기온과 습도가 적당했었나 보다.
공연장 대기실에 샤워실이 있어서 냉큼 수건을 챙겨들고 들어갔다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그대로 다시 나왔다. 어째서 더운물이 나오는지 미리 확인하지도 않고 부랴부랴 옷부터 벗었던 걸까. 
화장실에 가서 머리를 감고 대기실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었다.
14:30 밴드 멤버들이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리허설을 할 때에, 아무래도 오늘은 연주 도중에 살짝 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2023년 10월 27일 금요일

일본에서 연주

 

호텔 안내문에 건물전기장치 문제로 새벽 세시 경에 잠깐 정전될 수 있다고 적혀있었다. 에어컨을 켜둔채로 잠들었다가 툭 소리와 함께 전기가 나갔을 때 잠을 깨어버렸다. 그 뒤로 오전까지 뒤척이기만 했을 뿐 잠을 잘 수 없었다. 나는 다음날 아침에 제 때에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돌아가 안양 공연장에 도착해야 하는 일에 온 신경이 쓰여서 여전히 긴장과 각성상태였다.

결국 정오가 지났을 즈음 호텔을 빠져나와 동네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산책을 한다거나 하는 한가로운 목적은 아니었다. 아내가 나카노역 앞에 있는 대형상점에 가서 고양이들에게 줄 간식을 사오라고 했었다. 그런데 내 상태가 지금 어딜 다녀올 정도로 멀쩡하지 않았다. 호텔 부근에도 상점이 있을테니 고양이 간식 정도는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한참을 걸으며 기웃거렸다.

코엔지역 북쪽을 한 시간이나 돌다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을 때, 거기에 있는 수퍼마켓에서 고양이 간식들을 발견했다. 어째서 가장 가까운 곳부터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그랬다면 체력을 조금이라도 아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신에 낯선 거리를 한 바퀴 돌아볼 시간을 가지진 못했겠지, 라며 마음 속으로 내 행동을 두둔했다.
고양이들을 위한 간식을 사면서 수퍼마켓에서 팔고 있는 샐러드 등을 사서 호텔방에서 먹고, 곧장 오늘 연주할 장소로 갔다. 약속시간 십오분 전에 도착했다. 잠시 후 한 사람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에게 악기를 빌려주기로 한 아카이 씨에게 답례를 하고, 베이스를 받아 내가 가져온 스트랩을 걸었다. 오래된 일제 펜더 재즈베이스였다.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여 브릿지 높이를 조정하고 튜닝을 마쳤다. 
집에서 유튜브로 이 장소에서 했던 공연 영상을 몇 편 보았을 때 베이스 사운드가 좋다고 생각했다.  직접 와서 보니 역시 500와트 암펙 앰프의 소리가 무척 좋았다.
16:00 두 시간 가까이 연주 준비를 하고, 리허설을 했다.
당장이라도 어디 누울 곳이 있으면 쓰러져 자버리고 싶을 정도로 피곤했다. 공연 시간까지는 멀었는데 자꾸 눈이 감기고 정신이 몽롱했다. 병주와 함께 근처 커피집에서 찬 커피를 주문하여 먹었는데, 그 커피 덕분에 정신을 차렸다.
19:40 앞 순서 팀의 연주를 보면서 잠깐 정신을 놓았다가 눈앞에 있던 시멘트 기둥에 쿵 하고 머리를 박고 말았다. 아직 우리의 연주 순서가 되려면 멀었는데 정신이 맑지 못하여 어쩌지, 걱정하다가, 약간 몽롱한 상태로 집중해보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동안 그랬던 적이 이미 여러번 있었지 않았나, 하면서.
22:40 연주를 다 마쳤다. 빌어 쓴 악기를 잘 닦아 가방에 넣어주고 옷과 가방을 챙겨 클럽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과 인사를 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호텔에 돌아와 무엇을 어떤 순서로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새벽 다섯시부터 오분 간격으로 알람을 열 두 개 맞춰두고 잠들었다. 열 두번째 알람을 듣고 일어나면 이미 낭패일테지만 반드시 제 때에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면서 침대에 누워버렸다.






2023년 10월 21일 토요일

울주에 다녀왔다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었다.

네 시간 반 동안 달려 울주에 도착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셀 수 없이 많은 산등성이를 보았다. 산이 만든 곡선들이 유난히 예쁘다고 생각했다. 차에서 내려서는 예상 못했던 추위를 느끼고 옷을 얇게 입고 온 것을 후회했다.

울주 산악영화제에는 몇 번 왔었다. 마지막은 2018년이었다. 태백산맥의 끝단 산바람은 언제나 상쾌한 공기가 떠다닌다. 연주를 시작하기 직전에 바깥에서 밤공기를 들이마셔 보았다.


2023년 10월 8일 일요일

인천 공연



영종대교 앞 드림파크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하여 공연을 하고 왔다. 내비게이션의 예측과 달리 외곽순환도로에 정체가 심했다. 다행히 약속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작은 규모의 공연이었고 리허설 시간이 되었을 때 비로소 악기와 음향장비가 막 설치되는 중이었다. 사람들이 아주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설치하고 준비해야 했다. 무대 위에서 음향을 조정하느라 뛰어다니던 청년은 혼자 분주하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땀을 흘리며 무대 위와 아래를 번갈아 다녔던 그 스탭 덕분에 정해진 시간에 맞춰 리허설을 하고 공연도 진행할 수 있었다. 일부러 그에게 다가가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공연을 마친 뒤에도 한번 더 했다.

가까운 곳에 조성된 야생화 공원에 꽃이 잔뜩 있었다던데, 아쉽게도 구경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2023년 10월 7일 토요일

강화도 전등사


 두 시간도 못 자고 아침에 깨어버렸다. 고양이 이지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아내가 내는 그릇소리에 깬 것이 아니었다. 어떤 꿈을 꾸다가 혼자 벌떡 일어나 앉았다. 토요일에 길이 많이 막힐 것이었기 때문에, 잠이 모자란 상태로 일찌감치 강화도로 출발했다.

이 곳에서 공연했던 것이 십일년 전 시월이었다. 그날의 공연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사찰을 둘러보면서도 처음 와보는 기분이 들었다. 리허설을 한 뒤에 멀찍이 숲에 세워둔 자동차에 들어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잠을 청했다. Simon & Garfunkel의 Bookends 앨범을 들으며 잤는데, 깨어났더니 몸이 가뿐해졌다. 어두워진 밤하늘 아래 공기가 상쾌했다.

조용한 산사에서 열 곡을 연주하고, 두어 곡을 더 한 후에 공연을 마쳤다. 무대에서 내려와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 중계를 틀어보았더니 한 점을 잃고 지는 중이었다. 아이폰 화면에 축구 중계를 틀어놓고 아나운서의 말을 들으며 운전했다. 전반전에 동점이 되고, 후반전에 대표팀이 한 골 더 넣는 것을 들으며 집까지 왔다. 막 경기가 끝났을 때 나는 집에 도착하여 주차장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올해 전등사 공연은 잘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2023년 1월 30일 월요일

진주에서 공연

 

1월 29일에 진주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을 했다.

리허설을 시작하기 전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 몇 주 동안 나는 다시 이펙터들을 새로 배열하고 페달보드 위에 연결하여 한참을 연습했다. 전에는 해보지 않았던 순서로 꾸며 보았다. 이것들을 통과한 악기 소리가 항상 좋을 수 있도록 오래 준비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악기를 조율하고 소리를 내보는 순간 제대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컴프레서 페달의 소리가 영 이상했다. 재빨리 노브를 조정하면 금세 해결할 수 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하려면 납득할 이유가 필요했다. 내가 집에서 시간을 들여 맞춰두었던 것이 틀렸었던 것인지, 케이블 어딘가에 이상이 생긴 것인지, 극장에 놓인 앰프와 모니터 스피커 때문인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새로 조정하는 값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내가 나를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을 수도 있겠다.

결국은 컴프레서의 아웃/인 노브를 대충 다시 만져서 소리는 잘 나오게 해두고 시작할 수 있었다. 나머지 페달들도 연습했던 그대로 좋은 소리를 내줬다. 어찌어찌 공연은 마쳤지만 왜 그런 문제가 생겼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좀 더 공부해서 내가 원하는 소리를 항상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졌다.

공연을 삼십분 앞두고 나는 무대에서 내려가 객석 사이의 통로를 따라 맨 위에 있는 콘트롤룸에 찾아갔다. 엔지니어를 찾아 리허설을 할 때에 내가 듣고 있던 음향 상황을 설명하고 두세 가지를 다시 주문했다. 그가 빠르게 알아듣고 내가 원하는대로 해주었던 덕분에 편안한 상태에서 두 시간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이런 일도 예전엔 귀찮아서 하지 않았었다. 지금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 없으니, 가능한 최적의 상태에서 가장 좋은 소리를 내며 연주하고 싶다.


2022년 10월 22일 토요일

문경에서


도로가 막힐 것을 걱정하여 서둘러 문경으로 출발했다. 오래 운전하여 멀리 가서 연주하고 바로 돌아오는 일정일 땐 속이 더부룩한 것이 싫어 거의 굶는다. 밥을 먹지 않고 다녔던 덕분에 몸은 가벼웠는데 밤중엔 정말 배가 고팠다. 나는 내가 원해서 굶었다고 하지만 오랜만에 함께 따라왔던 아내는 나 때문에 밤까지 같이 굶어야했다. 그대신 돌아오는 길에 휴게소에서 첫끼를 먹고 아내가 고르는대로 간식을 사줬다. 집에 도착할 때 보니 간식들은 전부 빈 봉지만 남아있었다.

옷을 잘 챙겨 갔었다. 분명 해가 지면 추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후 세 시에 리허설, 네 시 반에 공연이라는걸 뒤늦게 알고 셔츠 한 장만 입고 무대에 올라갔다가 추워서 덜덜 떨었다. 리허설을 할 땐 더웠었는데... 하며 억울해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오래 겪어보았는데도 얻는 교훈과 지혜가 없다니. 손이 시려워 감각이 없었다.

리허설 직전에 오래 전 학교 학생이었던 정석원으로부터 메세지를 받았다. 우리가 도착하기 직전 같은 무대에서 앞 순서로 연주하고 동료들과 함께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서로 어긋나 만날 수 없었지만 반가와서 문자를 남겨줬다는 그에게 고마왔다. 나는 그와 만나지 못하고 지냈지만 인터넷으로 그가 활동하는 것을 자주 지켜보고 있었다. 연주도 잘하고 마음이 고와 늘 기억하고 있는 친구였다. 오래 만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을 적어두었다가 시간을 내어 찾아다니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낮에 나뭇잎들이 물드는 것을 보며 리허설을 했었다. 집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려보니 후드 틈새에 낙엽이 끼워져 있었다. 너는 어디에서부터 타고 온거니, 하고 조심히 꺼내어 화단에 앉혀줬다.



2022년 10월 16일 일요일

금천구 축제에서


 금천구청역 뒤에 안양천이 흐르는 작은 광장에서 연주했다. 하천 건너에 구름산 숲이 좋다고 들었는데 한번도 가보지는 못했다. 그 근처엔 산이 많아서 삼성산, 비봉산 등에 숲과 공원이 잘 꾸며졌다고 했다. 언젠가 한번 가볼 생각이다. 깜깜한 안양천 깊은 밤 사람들이 무대 앞에 가득 모였고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는 표정들이 가까이에서 잘 보였다.

 

그날 나는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었는데, '꼬마야'님이 찍어주신 사진을 보고 내가 편안할 때의 표정은 저런가 보다, 했다. 토요일 오후에 도로는 극심하게도 막히더니 돌아올 땐 강변북로를 시원하게 달려올 수 있었다. 계획했던대로 집에 돌아와 라면과 김밥으로 오늘의 두번째 식사를 하고 토트넘과 에버튼이 겨루는 축구중계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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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14일 일요일

원주 치악체육관 공연

 

 

18년 만에 치악체육관에 가보았다. 나는 잘 못 기억하고 있었다. 치악체육관에서 연주했던 것이 2003년인 줄 알았는데, 2004년 1월의 일이었다. (2004 1월...)

공연장에 가면 그 건물에 대해 읽어보는 것이 습관인데, 이곳은 1980년에 개장했다고 적혀있었다. 문득 어딘가에 갔을 때에도 같은 해에 완공된 건물이라고 했었는데... 하다가, 여의도 KBS 별관이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동양방송에서 세워 4월부터 새 건물을 본사로 삼아 사용하다가 그 해 11월에 언론통폐합으로 빼앗겼던 그 건물이었지, 따위의 쓸모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치악체육관은 붉은색 벽돌이 인상적이었다. 이십여년 전에 왔을 땐 눈이 많이 내렸었는데, 그 때에도 붉은 벽돌과 지붕이 기억에 남았었다. 대기실로 사용하는 방의 문앞 복도에 반짝 하고 햇살이 들어오는 것이 보여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한 시에 모여서 음향과 장비를 체크하고, 두 시에 리허설을 시작하기로 되어 있었다. 음향 등을 확인한 뒤에 잠시 쉬며 리허설을 기다리고 있을 때 공연장 메인 믹싱콘솔 앞에서 음향을 담당하는 음향감독님이 나를 찾아와 자기소개를 하며 나에게 내 액티브 베이스에서 고음쪽 노이즈가 생기고 있다고 알려줬다. 그 잡음을 없애지 못하여 상의를 하러 일부러 말을 해준 것이었다. 나는 리허설을 할 때 악기 프리앰프의 트레블을 줄여보겠다고 대답했다. 리허설을 하는 도중에 무대 위의 사람을 통하여 음향감독님에게 노이즈 여부를 다시 확인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연주가 시작되면 괜찮다'는 것이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잠이 부족했던 나는 우선 자동차 뒷자리에 몸을 접고 누워서 토막 잠을 잤다. 자동차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막 잠이 들 때에 어떻게 하면 노이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답을 찾은 것 같았다.

무대 위에는 Aguilar 앰프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무려 DB751 하이브리드 헤드가 와있었다. 750와트를 내주는  앰프였다.나는 앰프의 게인과 마스터 볼륨을 1 이상 올릴 수도 없었다. 그만큼 출력이 세었기 때문이었다.

네 시 반에 잠을 깨고 대기실에서 펜더 엘리트 베이스의 프리앰프 노이즈에 관한 글들을 검색하며 도시락을 먹었다. 도움이 되는 글은 찾을 수 없었다.




문제는 노이즈가 생기고 있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리허설을 하는 동안 내내 악기의 톤을 정돈할 수 없었다. 이런 상태면 그냥 한 개의 악기만 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오늘은 내 자리가 유난히 좁고 베이스 앰프가 워낙 세기 때문인가 하였다. 가깝게 놓여있는 모든 스피커와 마이크가 액티브 모드일 때 악기의 픽업을 타고 잡음을 유발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향감독님이 '음악이 진행되는 동안엔 괜찮다' 라고 말했던 것의 의미는 여전히 노이즈가 있지만 연주하는 동안엔 음악소리에 묻혀서 감추어지는 정도라는 뜻이었을 것이었다. 그것을 해결해주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공연 시작 직전에, 나는 자동차에서 잠을 청할 때에 떠올랐던 생각대로 악기를 패시브 상태로만 연주하기로 결정했다. 노이즈 문제도 사라질 것이고, 베이스의 톤은 가지고 갔던 MXR 페달로 쉽게 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운드 체크를 할 때에 듣기 싫은 소리를 발견하면 욕심을 버리고 가능한 거슬리지 않는 톤을 사용하는 것이 언제나 정답이었다. 그래서 베이스의 스위치를 끄고 전부 패시브 모드로만 연주하였더니, 그 결과가 아주 좋았다. 공연 내개 마음에 드는 톤이 나와주고 있었고, 두 악기의 음량 차이도 적어서 편하게 연주할 수 있었다. 일부러 찾아와 의논해준 젊은 엔지니어 덕분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혼잡하여 미처 그분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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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6일 토요일

세종로, 사직동 길

 

몹시 더웠다. 습도가 아주 높았다. 세종로 지하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의 온도계에는 섭씨 35도가 표시되고 있었다.

서울시가 주관한 광화문 행사를 위해 시내에 갔었다. 행사와 연주에 관한 이야기는 적어둘 것이 없다. 보기 드물게 수준이 낮은 관제행사였다. 열심히 행사를 준비하고 섭외되어 출연한 사람들만 고생했다.

리허설을 마치고 에어컨이 충분하게 틀어져 있는 대기실 테이블 위에 악기를 꺼내어 놓았다. 리허설을 할 때에도, 밤에 연주를 할 때에도 악기의 네크에서 물이 뚝뚝 흘렀다. 에어컨 바로 앞에 악기를 눕혀 잘 마르도록 해두고, 나는 경복궁 역 앞에 있는 펜가게에 구경을 하러 갔다. 올해 초에 명동 판가게에 구경하러 갔을 때에 경복궁 역 앞의 상점도 가보고 싶었는데 그땐 코로나 방역 때문에 매장문을 열지 않고 있었다. '찌는 듯한' 이라는 진부한 표현이 딱 맞는 기온과 습도 속에서 오랜만에 세종로와 사직동 길을 걸어서 펜가게에 도착했다. 안에 들어가 혼자 두리번거리며 구경을 했다. 내가 관심을 가질만한 것은 없었다. 나는 아무튼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 너무 취향이 고정되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시 대기실로 사용하는 세종문화회관 건물로 돌아갈 때에는 이십대 시절에 다녔던 골목길을 찾아 걸었다. 길이 없어진 것 같기도 하고 새로 생긴 것 같기도 하여 조금 당황했다. 내가 맞게 걷고 있는지 잠시 멈추어 지도 앱을 열어 확인을 해봐야 했다.

대기실에 돌아오니 염민열의 기타와 내 베이스가 보송보송한 상태로 변해 있었다. 줄을 닦고 다시 조율한 다음 그대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연주 순서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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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19일 화요일

강릉에서.


 강릉에 일요일에 갔다가 월요일에 공연을 하고 돌아왔다. 출연하는 팀들이 많았고 긴 시간이 필요한 공연이었다. 일요일에 리허설을 하기 위해 강릉에 가서 초당동 해안길에서 하루를 묵었다.

강릉 공연에는 펜더 재즈를 가지고 갔다. 이번에는 낮은 D음을 쓸 곡이 없었기 때문이었기도 했고, 몇 달 전 이 악기의 상태가 나빴던 것을 그동안 잘 고쳐놓았기 때문에 큰 공간에서 소리를 확인하고 싶었다. 공연을 만든 방송사 쪽에서 무대 위에서 입을 의상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을 때 나는 십 년 전에 검은색 반팔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공연했던 사진을 골라서 보내줬다. 그 옷차림은 이렇다 할 색감이 없으니 펜더 재즈 베이스의 선버스트 바디가 의상의 일부로 보여지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페달은 MXR 프리앰프/드라이브 한 개를 가져갔다. 페달 보드를 들고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베이스의 소리가 자연스럽게 들리기를 원했다. 그나마 가져갔던 페달은 두 곡에서만 썼다. 


발왕산 동쪽 해안 도시의 기후는 종잡을 수 없다. 경포 호숫가에 차려진 무대는 저녁이 되어 기온이 내려가도 습도가 높았다. 악기를 잡으면 나무에서 물기가 배어나왔다. 바람도 불었다.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베이스 줄과 손가락 끝을 괴롭게 하더니, 결국 또 손톱 끝이 조금 들려버렸다.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몰라 피크를 두어 개 챙겨 갔었다. 내 손가락 끝은 언제나 말썽이다. 소리는 좋았다. 넓은 장소와 기온과 습도, 그리고 관객들 덕분에 공연 내내 모든 음악들의 소리가 좋았던 것 같았다.



2022년 5월 12일 목요일

노원문화예술회관 공연.

 


3년 전에는 대구에서 공연을 했었다. 그 즈음 나는 계속 불면에 시달렸다. 그날 알람을 듣지 못하고 늦게 일어났고, 집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것보다 고속도로를 달려 대구로 가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았다. 대구에 잘 도착하여 공연을 마치고 밤에 돌아올 때에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잠을 잤던 기억이 떠올랐다. 2019, 11/May
요즘은 일부러 잘 자두고 있다. 수면 시간이 모자라면 쪽잠을 자는 것으로 가능한 그 시간을 채우는 중이다. 판데믹 기간 동안 하지 못하고 있던 두어 시간의 단독공연을 준비하러 일찍 공연장으로 갔다.
공연을 만든 분들이 무대에 공을 많이 들였다. 멤버들에게 적당한 넓이의 자리를 따로 마련해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음향도 운영도 모두 좋았어서 편하게 연주할 수 있었다.
공연 하루 전까지 페달보드를 열어두고 여러가지 조합을 고민했었다. 가장 단순하고 음의 손실이 없는 정도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MXR의 베이스 D.I. 한 개만 사용하기로 했다. 그 페달이 기대했던 역할을 잘 해줬다.

내 몸이 완전히 멀쩡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공연 도중에 알았다. 한 시간 쯤 지날 무렵 갑자기 통증이 시작되었다. 센 곡들을 연주할 순서였는데 나는 곡의 인트로를 치면서 돌발상황이 생길 경우 모니터 스피커 옆으로 발을 두고 드러누우면 대충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능한 태연하게 드러누우면 사람들이 누군가 갑자기 쓰러졌다며 놀라지는 않을 것 같았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어떻게 눕더라도 큰 민폐가 될 뻔했다. 게다가 연주자의 자리에 높은 단까지 설치되어 있었으니, 보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가관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잘 버텼다.
일부러 공연을 준비할 때에도 일어선 채로 셋리스트 전부를 합주해보았었다. 그 때는 견딜만 했었다. 공연을 마칠 때까지 통증이 없어지지 않아서 진땀이 났다. 무대에서 내려오자 마자 눈에 보이는 의자에 기대어 긴 호흡을 했다. 통증이 약해지고 시력도 조금 회복되었다. 아직 완전히 나은 것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좋아진 것이다. 집에 돌아올 때에 자동차의 창문을 열어두고 바람을 쐬며 운전했다. 공연장이 집에서 멀지 않았던 것도 다행이었다. 다음 달에 약속된 공연들도 잘 할 수 있도록 운동도 하고 체력도 잘 유지해야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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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5일 목요일

악기

 




나는 웬만하면 학생들의 악기에 관심을 두지 말고, 거슬리는 것이 보여도 상관하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전에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가져오는 악기의 상태가 나쁘거나 하면, 굳이 내가 직접 조정해주거나 손봐줘야 직성이 풀리곤 했었다. 십 년 이십년 어린 학생들의 세대가 바뀌면서 베이스줄 조차 스스로 교환하지 못하는 학생까지 목격하게 된 이후 나는 학생들의 악기는 그들 스스로 알아서 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남이 나서서 뭔가를 바로잡아주면 그들은 스스로 배울 기회를 만들지 못할 것 같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 연주하는 것 외에 악기의 유지 관리같은 것에는 신경을 쓰고 싶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주에는 내가 오래 쓰고있는 펜더 재즈를 가지고 다녔다. 지난 달 방송촬영 때에 이 악기를 들고 갔었는데, 하루 전에 네크를 조정했는데도 휨 정도가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았어서 연주할 때에 애를 먹었다. 그 전 여섯 달 동안 이 악기를 케이스에서 꺼내지 않았던 탓에 상태가 나빠졌던 것은 아니었나 싶어 악기를 다시 분리하여 트러스로드를 조이고, 브릿지의 녹을 닦아내고, 새들을 움직여 피치도 조정해뒀다. 넥과 바디를 조립하면서 조인트를 고정하는 나사 중 한 개가 헛돌고 있는 것을 알았다. 워낙 많이 분리 조립을 반복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음 주 밴드의 공연에서 이 악기를 쓰려고 한다. 손에 다시 익숙하게 하고 싶어서 일주일 내내 이 악기로 연습하고 있다.

수업시간에 학생 중 한 명의 악기에 톤 노브가 없어진 것이 눈에 보였다. 학생에게 노브를 분실하였느냐고 물어보니 그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그 부품을 꺼내며, '며칠 안에 악기점에 가져가서 맡기려고 한다'라고 했다. 맙소사.

나는 내 가방에서 도구를 꺼내고 학생에게 악기를 건네어 받아, 프레시젼 베이스의 톤 노브의 나사를 조여 다시 부착해줬다. 악기를 구입하고 한 번도 '셋업'을 하지 않았다고 하길래 줄 높이를 조정해주고, 열 두번째 플렛에서 하모닉스를 내어보며 새들을 앞 뒤로 움직여 만져줬다. 베이스를 다시 받아든 학생이 연주해보더니 좋아하며 웃었다. 나는 그 학생이 언젠가는 스스로 정보를 찾아보고 공부하여 대수술이 필요한 것이 아닌 이상 자기의 악기를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펜더 재즈는 금세 내 손에 익숙해졌다. 악기의 상태도 좋고, 연주하기에 아무 무리가 없다. 연습하면서 오랜만에 패시브 톤이 정겹게 느껴지고 그동안 이 악기와 함께 다녔던 수많은 장소들이 드문드문 떠오르기도 했다. 다가오는 공연은 좋은 소리로 연주할 수 있을 것 같다.



2022년 4월 30일 토요일

재즈

 


(4월 29일 금요일 밤)

내일 연주할 곡들을 계속 연습하다가 유튜브에서 유명한 연주자들의 라이브를 구경하고 있었다. 이번에 연주할 곡들은 내가 외우고 있는 곡들이 대부분이어서 조금 더 음악적인 것에 집중을 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재즈 연주 영상들을 찾아 보고 있으니 잊고 지냈던 스윙 리듬의 기분이 돌아오고 있다.

Arturo Sandoval 의 십년 전 연주 영상을 보면서 아주 옛날 대학로에 매주 구경하러 가서 라이브를 보며 혼자 공부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당시에 나는 막막했던 미래에 대한 걱정, 무엇부터 먼저 시작해야 좋은지 알 수 없는 때였다. 아무라도 악기를 다루는 사람을 보면 다가가 인사를 하고 대뜸 질문을 해대었다. 내 성격에, 좀처럼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 연주자 선배들은 뭔가를 묻고있던 어린애가 기특했는지 귀찮아하지 않고 나에게 뭐라도 알려주고자 설명하곤 했는데, 문제는 그들은 자기가 알고있는 것을 가르쳐 본 경험이 없어서 쉽게 설명하지 못했고 나는 너무 아는 것이 없어서 그분들의 친절한 설명을 알아듣지 못했다. 리얼북 한 권을 제본하여 들고 다니며 연주자들 앞자리에 책을 펴놓고 소절을 따라가며 보고있기도 했다. 요령도 없이 무식하게 혼자 배우고 있었던 시절의 기억이 갑자기 많이 떠올랐다.

(4월 30일 토요일 밤)

서교동 골목의 가게에서 연주를 했다. 어제 악보를 보며 연습해두길 잘했다. 오랜만에 비좁은 공간에서 베이스 헤드를 드럼의 라이드 심벌에 부딪히며 워킹을 할 수 있었다. 낯설은 장소, 부자연스런 무대였는데도 재미있었다. 오랜만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다른 것을 잠시 잊고 베이스만 칠 수 있어서 좋았다.

그 동네는 이제 판데믹이 끝나버린 것처럼 사람들이 많이 다녔다. 연주를 마치고 얼른 악기를 챙겨 부모님 집에 들러야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Romain Pilon 의 몇 년 전 앨범을 들으며 운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