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25일 목요일

노래.


지난 한 주 동안은 녹음과 공연들 덕분에 어지럽게 밀려있던 레슨들을 보충하느라 바빴다.
몇 시간 전에 잠을 자다가 내 잠꼬대 소리에 내가 깨어버리고 말았다. 일주일 내내 약장수처럼 레슨을 하다가 보니, 꿈속에서도 누군가를 가르치고 있었다. '옥타브를 동시에 눌러봐'라고 내가 소리내어 말하고는, 깜짝 놀라서 잠을 깨어버리고 말았다. 어휴.

언제나 불면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요즘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서 비교적 잘 자는 편이 되었다. 여전히 밀린 잠을 몰아서 자버리는 날도 있기는 하지만 예전의 것과 비교하면 행복한 수면생활을 하고 있다. 다만, 자꾸 잠결에 노래가 들려서 깊이 잠들지 못한다. 악기소리와 겨우 싸워 이겨서 잠에 빠지고 나면 꿈결인지 뭔지 모르겠으나 자주 노래가 들린다. 무슨 노래들인지도 모르겠고... 노래를 부르다가 놀라서 깨어나거나, 음악 이야기의 통화내용을 큰 소리로 말해버리다가 벌떡 일어나 잠꼬대를 멈추는 일이 점점 잦다.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고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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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24일 수요일

무대 위에 재떨이를.


지치고 배고프고 추웠던 새벽의 파티.
맥주와 소세지로 배를 채우고 몇 시간을 더 연주하고 있었을즈음 어느새 서너 대의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나중에서야 노래하던 분들이 불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슬쩍 지나갔던 화면이었지만 기분좋아했던 장면들을 기록해줘서 변감독님께 고마왔다. 방송에 담배 물고 연주하는 것이 보이면 안된다는 나라가 되었다니 그것이 웃겼다.

처음 시작할 때 부터 연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무대 위 앰프에 놓여있는 재떨이에 담배를 놓아두고 피우며 연주했었다. 한참 후에 서교동에 갓 새로 생겼던 클럽에 갔을 때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담배를 물고 버드와이저 깡통을 한 손에 든채로 무대에 올랐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에 대한 관객의 손가락질이었다는 것을 튜닝을 다 마치고 돌아서보았을 때에서야 알았었다. 오히려 문화적 충격을 받은 것은 나였었는데, 씰룩거리며 나를 비난하던 사람들의 얼굴은 더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지금은 그 모든게 우습고 웃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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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5일 월요일

다 커버린 고양이.


지금도 내 곁의 책꽂이 위에서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졸다가, 장난하다가...를 반복하고 있는 어린 고양이.
이 집안에서야 어린 고양이일뿐, 징그럽게도 다 커버렸다.
몸집만 커져버린채로 아직도 장난꾸러기 어린 고양이.
몽고반점처럼 어릴적에만 이마 위에 남아있게 된다는 검은 줄은 이제 다 없어졌다.
저 쬐그만 녀석이, 집안의 다른 두 어른 고양이들 사이에서 양쪽의 비위를 맞추기도 하고 함께 놀아주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집안의 두 인간들 사이를 오가면서도 열심히 맡은바 소임을 다하고 있으니, 알고보면 가장 바쁜 고양이일지도 모르겠다. 엄청난 식욕과 식사량의 이유는 역시 그렇게 일을 많이 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더 많이 먹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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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악기.


김창완 밴드의 '우두두다다'라는 곡의 간주 부분은 음정이 맞지 않는 멜로디가 기타의 솔로와 섞여서 들리게 되어있다. 이것은 Matrix Synth, 혹은 그냥 Mini Analog Synth라고 불러줄 수 있는 장난감 키트 제품의 소리를 더빙한 것이다.
정식 이름은 가켄 SX 150으로, 장난감이라고는 했지만 연주자의 아이디어와 쓰임새에 따라서 범위가 넓은 연주도 가능할 수 있는 악기이다.

음반에 담긴 소리는 밴드 리더님의 연주였다.

이것을 연주하는 장면이 TV의 화면에 나오게 된 후 그것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었다. 음반의 속지에 이 악기의 명칭이 적혀있다. 웹을 검색해보면 간단한 회로도와 미디로의 연결 요령, 쓰임새 등등이 자세히 설명되어있고, 유튜브에는 동영상들도 있었다.

위의 사진은 https://www.flickr.com 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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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4일 일요일

또 한 해가 저문다.


한 주일 동안은 재즈 음악에 묻혀 지냈다.
다음 주 부터 연말의 공연까지는 록 음악을 연주하며 지낼 것이다.
또 한 해가 지나가버리고 있다.
지난 열 두 달 동안의 크고 작은 연주들을 기억해보니 아쉽기만 하다. 어째서 나는 동시에 두 세 가지 일을 잘해내지 못하는 것인지... 하고 싶었던 것들은 다른 일들에 밀리고 밀려 결국 수 년째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있다. 남들은 여러가지 복잡한 일들을 잘도 거뜬히 해내며 사는 것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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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2일 금요일

태도


일상에서의 태도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 맞다... 그것이었군, 하는 생각을 했다.
익숙해져있거나 낯설거나간에, 마음과 몸이 편안하거나 남의 옷을 입고 있어서 불편하거나간에 드러나 보이는 것은 살아가고 있는 모양일뿐. 그 모양이 소리가 되었든 침묵이 되었든 상관없이.

사흘 전 부터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린 수면리듬 때문에 며칠 동안 정신이 멍청하다.
낮에 들었던 음악이 자려고 눕기만 하면 귓속에서 자기들끼리 엉겨붙어 소란을 피운다.
이래서야 뭐 일상이 어쩌고 태도가 어떻고 말할 여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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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사진.


관객석 사이에서 나의 학생들 얼굴을 보았다.
그날 구경하러 와줬던 그들이 무대 맨 앞에 모여서 내 이름을 불렀을때 '선생님'이 아니라 '형'이라고 해줘서 고마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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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0일 수요일

공연 사진.


스페이스 공감의 공식사진. 
사진을 찍어주신 이미지 님의 다른 사진들을 보니 공연장의 느낌을 잘 찍는 분이신 것 같았다. 나도 묵직한 카메라를 손에 들고 공연 무대의 사진들을 찍어보고 싶다.


이 장면들은 다른 곳에서의 무대였다.
다른 장소에서 다른 분이 찍어주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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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사진.


잡지에 사진이 나왔다길래 밴드의 이야기인줄 알았더니 TV 프로그램 이야기였다.
정작 잡지라는 것은 구경하지 못했다.
누군가 스캔해두신 것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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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9일 화요일

내가 아끼는 음반.


우연하게 좋은 음반을 발견할 때가 있다. 아무 정보도 가지고 있는 것이 없어서 고민을 하다가, 직감을 믿어보자, 하고 덜컥 사버리는 경우이다. 어차피 확률은 반이다. 좋거나 나쁘거나.

무려 15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재즈 음반을 많이 가지고 있던 단골 레코드점에서 스웨덴의 색소폰 연주자 Arne Domnérus와 그의 기타리스트 Rune Gustafsson의 듀엣 음반인 Sketches of Standards를 골랐을 때에,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음악을 많이 알고 있던 직원 분은 마침 자리를 비우고 없었고, 누구에게 이 음반에 대하여 물어볼 수가 없었다. 연주자들의 이름은 발음하기도 어려운 먼 이국의 것들이고 거기에다 이렇게 마이너 레이블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자켓이라니.
그런데도 골라서 손에 쥐고 망설이고 있었던 이유는 뒷면에 적혀있던 열 세 곡의 곡명들 때문이었다.

한참 재즈를 배우고 싶어 안달이 나있었지만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었던 나는 거의 대부분의 용돈을 시디를 구입하는데에 다 써버리기 일쑤였다. 우선은 스탠다드 곡들이 많이 담긴 음반을 고르는데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이 값싸보이는 음반에는 재즈 스탠다드가 가득 담겨있었던 것이다.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첫번째 트랙인 Blowing In The Wind로, 밥 딜런의 노래였다. 그 곡을 기타와 색소폰이라는 악기 두 개로 연주했다... 궁금해서 견딜 수 없어하고 있었다.

아직도 이 두 연주자에 대해서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겨우 인터넷의 도움으로 몇 개의 사이트를 찾아 읽었을 뿐이고, 이미지 검색을 통해 그동안 두 분 모두 많이 늙어버린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연주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Rune Gustafsson을 Arne Domnérus의 기타리스트라고 했던 이유는, 그가 Arne 아저씨의 밴드에서 오랜 기간 연주를 했던 파트너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1950년대 초반 부터 밴드의 리더로서, 세션 연주자로서 활동해왔으므로 능숙한 연주는 비길데 없다. 밥 딜런의 곡 외에 Rune Gustafsson의 오리지널 곡이 한 곡, 그 외엔 모두 듀크 엘링턴의 음악들 위주의 스탠다드 재즈 넘버들로 채워져있다. 여유롭고 따뜻하며 능글맞을 정도로 원숙한 두 연주자의 조화로운 멜로디를 들으며 눈을 감으면, 오래된 살롱에서 실내악을 듣는 것 같기도 하다가, 한 여름에 풀밭에 누운채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 것 같기도 하다.
모든 곡이 아름답게 표현되고 살랑거리고 있으면서도 스윙하고 있다. 색소폰 연주자 Arne는 자주 클라리넷으로 바꿔 불기도 하고 있는데 그 음색과 호흡이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슬프게 한다. 화음과 워킹베이스, 솔로 멜로디를 자유롭게 오가며 연주해주고 있는 Rune Gustafsson의 기타는 노련하지만 상냥하기 그지 없다.

생각난 김에 이 음반에 대하여 알고 싶어서 검색을 해보고 있었는데, 덴마아크에서 만든 이 음반은 이제 더 이상 재고가 없는 모양이었다. 아마 처음부터 많은 갯수의 카피를 찍어두지도 않았던 것 같다. 두 사람의 다른 음반이 보이던데 역시 리뷰의 평도 좋고 음질도 좋다고 하여, 구입할 음반 목록에 넣어두었다.
안개가 자욱했던 밤길, 귀가하며 기억해낸 이 음반을 시디플레이어에 걸어두고 볼륨을 높였더니 몸과 마음이 푸근해져왔다. 한 시간 가까이의 조용한 기쁨이 필요하면 다시 걸어둘 음반이다.

2008년 12월 8일 월요일

문 열고 들어가 눕기.



방 귀퉁이에 나이 많은 장이 한 개 있는데, 아무리 문고리를 걸어 두어도 누군가의 손에 의해 열리곤 한다. 분명히 닫아 놓았는데 문이 열려있는 것이 보이면 어김없이 용의자와 공범, 혹은 배후조종자들이 그 안에 들어가 잠들어있다. 곱게 개어놓았던 장 속의 내 옷은 고양이의 털로 범벅이 되어버린지 오래가 되었다.



따뜻하고 편안하게 잠들어버린 고양이들... 사이좋게 누워서 쿨쿨 소리내며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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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7일 일요일

리허설.


5일 저녁의 리허설. 녹화가 있었던 하루 앞의 날에는 재즈베이스를 사용했다. 사흘 중 녹화가 없었던 첫날과 마지막 날에는 Moollon의 5현을 썼다. '열 두 살은 열 두 살을 살고...'를 위해 플렛이 없는 프레시젼을 사용했다. 앰프에 마이크를 설치해줘서 고마왔다. D.I.를 따로 연결해둔 것으로 보아 편집과정에서 소리를 섞을 것이다. 수 년 동안 수많은 공연을 경험한 스페이스 공감 팀에게는 이제 매뉴얼을 몇 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기술과 요령이 쌓여있는 것은 아닐지.
이틀 동안에는 Big Muff 퍼즈를 사용했다. 공연 1분 전에 갑자기 짧은 베이스 솔로를 해보라는 주문이 있었다. 퍼즈를 사용해서 연주... 그 장면이 방송분에 담겨있게 될지 모르겠다.

심야에 이어진 클럽의 파티에서 어느 밴드의 한 친구가 허락도 구하지 않고 내 베이스를 사용했다. 그것이 그들 사이에서는 관용될 수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무례한 행동이었다. 거기에다 피크를 쥐고 마구 연주를 해버리는 바람에 나무 재질로 되어 있는 5현 베이스의 픽업 커버에 흠집이 나버렸다. 나는 그 베이스의 피크가드를 떼어낸 채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내가 아무리 큰 동작으로 연주를 해도 바디에 손끝이 닿지 않게하는 요령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피크가드가 있어야할 부분의 바디에도 흠집이 나버렸다. 내 악기를 간수하지 못하고 아무데에나 세워뒀던 나의 잘못이었군, 이라고 생각하고 넘기기로 했지만, 이제부터 그 흠집들이 눈에 보일 때 마다 신경이 쓰일 것이다.

타인의 악기를 두렵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자신의 사운드와 연주에 민감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 내 속이 좁은 탓이겠지만 흠집을 볼 때 마다 그날의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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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6일 토요일

공감 공연.


재미있게 연주했으니 그것으로 좋다, 라고 할 수는 있지만, 이튿날의 것은 너무 재밌게 하려고 했던 느낌이 들었다. 몰입되었던 느낌을 놓치거나 멤버들간의 교감이 흐트러지거나, 몇 개의 음의 실수도 생겨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하필이면 그 날의 연주가 방송에 쓰이기위해 녹화되어버렸다.

그 다음날의 비공개 공연은 훨씬 차분했어서 연주의 질만으로 보자면 사흘 중 제일 좋았다. 이미 흘러간 물이었다. 흥이 넘치던 하루 전의 그림 위에 오버더빙을 할 수도 없는 것이니까.
솔직한 게 최고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즐거웠고, 연주상의 결함이 보인다고 해도 날것 그대로 기록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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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허설, 공감.


곡마다 악기를 바꾸기 귀찮아서 그냥 모두 플렛리스로 해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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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중독.


고백하자면, 나는 그냥 클럽 같은 곳에서 매일 밤 연주하는 것이 꿈이었다. 여전히 그렇다.
연주하고 음악 일을 하는 것으로 살고 있으니 절반은 비슷하게 되어진 것일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꿈은 멀다.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 비슷할지도 모른다.

지난 밤에는 약속되지 않은 연주를 즐기며 재미있어하기도 했고, 적당히 취한 동료들의 소리를 들으며 흔들거리기도 했다.

모르는 얼굴들, 새로 인사하게 된 친구들 할 것 없이 즐거워하기 위해 모였던 자리였으므로 편안했다.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 못하는 것은 치명적이기도 하지만 인사를 할 때마다 새롭기도 해서 뭐 괜찮은 것이군, 했다. 지난 밤에는, 사이 마다 쉬기도 하고 마시기도 했지만... 일곱 시간 정도는 계속 연주를 한 셈이었다.
무대 위에 맥주와 재떨이만 계속 준비된다면 열 두 시간 정도는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겨우 그 정도로도 사실은 고단했다. 피로하고 지쳐서 그만 많이 자버렸다. 그렇지만 또 전화가 걸려와서 연주하러 나오라고 한다면, 얼른 악기를 들고 나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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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새워 놀았다.


사흘 동안의 공연을 마치고, 거의 이삿짐 수준의 악기와 짐들을 자동차에 나눠 싣고, 꽉꽉 막히고 밀리는 도로를 뚫고 아늑한 클럽에 도착했다.

그리고 새벽 다섯 시 까지 다시 또 연주의 연속. 나로서는 술을 마시고 큰 소리로 대화하는 것 보다 그 편이 훨씬 좋았다. 다시 악기를 챙기고 겉옷을 걸쳐 입고 있을 때가 되어서야 손가락이 많이 아프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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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5일 금요일

겨울의 느낌.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땀으로 흠뻑 젖은 옷을 뽀송뽀송한 옷으로 갈아입고,
외투를 뒤집어 쓰고 밖으로 나가 담배를 한 대 물었다.
그 순간의 기분이야말로, The Happi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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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재 중..


공연 직후 '싸인회'.
민우씨는 정성껏 또박 또박 서명하느라 자꾸 결제서류가 밀리고 있었다.
한 분씩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를 하고 이름을 적고 있었는데, 어쩐지 스물스물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요즘 쉬지 못하였기 때문인지 손목과 손가락들이 많이 아팠다.
다 끝나고 악기를 들고 나왔더니 부쩍 차가와진 바람이 콧속에 슥 들어왔다.

피아노 음악을 듣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며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아이팟의 셔플을 눌렀더니 Brad Mehldau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강변을 달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내내 Keith Jarret과 Wynton Kelly를 들었다. 운전할 때에도 손가락엔 계속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제법 고단하여 하루 정도는 쉬고싶어졌다.
그러나 내일도 공연이다. 
연말 공연을 대비한 엄격한 리허설인 셈인건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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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4일 목요일

스페이스 공감.


몇 달 만에 다시 찾은 스페이스 공감.
리허설 때에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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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


야외에서 스탠다드 재즈 연주를 하는 도중에, 어떤 남자가 지나가면서 반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신나는 노래는 언제 나와?'

멍멍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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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일 월요일

헬로 루키 공연.


춥고 바람이 많이 불었던 토요일. 리허설을 마치고 무려 일곱시간... 지루하게 기다리다가 무대에 올랐다.
그때쯤 나는 반쯤 졸고 있었어서 그만 달랑 베이스만 들고 올라갔다가, 이크, 케이블과 페달보드를 대기실에 두고 와버린 것을 무대에 올라가서야 알았다. 느릿느릿 다시 대기실로 돌아가 이펙터들을 챙겨서 다시 무대로 나왔더니 이미 다른 멤버들은 준비 끝. 맨 앞의 관객 몇 분이 티를 내지 않으려하며 허둥거리고 있는 나를 보고 웃었다.

무대에서 바라본 청중들의 얼굴들. 무려 세 시간이 넘게 선채로 구경하고 있었을텐데도 피로해하기는 커녕 잔뜩 집중해있었다. 축하공연을 하는 입장으로 그곳에 섰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나이 어린 밴드들에게 보답하고픈 마음이 있었다.

앞서 연주했던 밴드들의 편의상 그렇게 되었었던 것인지, 모니터 스피커의 음량이 너무 컸었다. 그것을 피하느라 케이블의 길이에 신경쓰며 왔다 갔다... 소리가 좋은 위치를 찾느라 바빴다. 물론 그 정도면 불만을 가질 정도의 사운드는 아니었다. 훌륭했던 편이었다.
진지한 청중들, 열정 가득했던 출연팀들, 부럽기도 했고 보기좋았다. 나의 이십대에는 그런 시절이 없었다. 겨우 두 곡만 연주해야했지만, 그날의 주인공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 보다는 마음을 담아 축하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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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29일 토요일

작은 무대에서의 소리.


십 수년간 많은 사람들의 발자취로 맨질 맨질해져있는 무대의 바닥에 페달보드를 설치하고...
뒤를 돌아보았더니 아뿔싸, Trace Elliot의 콤보 앰프가 있었다.

이 앰프를 선호하는 분들도 분명 있겠지만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지금껏 그 앰프로는 한 번도 기분 좋았던 적이 없었다. 걱정을 조금 하면서 열심히 소리를 만들어보았다. 작은 무대에 기타앰프들이 단체 사진을 찍듯 다닥 다닥 붙어있는 모양새에서는 볼륨을 작게 해두고 시작해야 좋다. 베이스 앰프의 소리를 꾸밀때의 첫번째 중요한 점은 다른 악기들의 소리를 간섭하지 않아야 하는 것. 넓지 않은 공간에서는 저음 쪽을 지나치게 줄여버리면 좋지 않으므로 EQ는 만지지 않고 우선 음량을 줄여준다. 기타와 드럼의 레벨이 결정될 때 까지는 음색을 적절하게 만들어두는 것에 신경을 쓰고, 밴드의 사운드를 잡아 먹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볼륨을 조금씩 조절하여 만져 놓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 상태가 되기 십상이다. 세팅을 살펴보면 역시 D.I. 박스가 앰프에 연결된 채로 마이크가 설치되어있지 않았다. 결국 개인 모니터용으로 앰프를 올려다 놓은 것일 뿐... 페달보드를 통해 빠져나갈 소리를 듣기 좋게 만져주는 일로 리허설을 마쳤다.
물론 무대 위의 내 위치가 가장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리였어서 그랬겠지만, 공연 내내 모든 사운드가 고르게 잘 들려줘서 나는 신경 쓸 것이 없었다. 다른 멤버들의 사정은 곤혹스러웠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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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공연.


오랜만에 낡은 클럽에서의 사진을 얻었다.
수십년이 된 장소도 아닌데 낡았다는 표현을 사용하기엔 마땅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맨 처음 그 장소가 생겼을때 반갑고 기분 좋아했던 것이 생각났다. 벌써 세월이 흘러 이제 십 년을 훌쩍 넘겼다.
소박한 규모의 무대가 새삼 반가왔던 것인지 제법 흥이 나서 나는 어쩐지 마음대로 연주해버렸던 것 같았다. 지켜보신 분들이 '그렇게 신이 났었나요'라고 해줬다.
내가 그랬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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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26일 수요일

새 음반이 나왔다.


지난 달 말에 녹음했던 음반이 나왔다.
후반작업을 이번 달의 중반까지 계속 해왔다.
녹음했을 때에 메모해둔 것을 읽으며 11월이 되어버린 이제야 옮겨 적는다.
실제 녹음은 10월의 마지막 사흘 동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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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중언부언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여전히 아쉽다. 두 가지의 믹스, 마스터링 중의 한쪽을 선택해야했기 때문이다. 동의했고 결정되어버렸는데도 자주 아쉽다. 그래서 밴드의 일로 말하자면 베타버젼의 작은 음반으로 여겨지게 될 것 같다. 적어도 나로서는.

여섯 개의 곡들을 순서대로 멤버 전원이 동시에 합주를 하는 것으로 녹음했다. 녹음은 당연히 매우 빨리 진행되었다. 여러차례 테이크를 반복할 필요가 없기도 했다. 짧은 시간에 집중해야할 것들이 많았는데 너무 여유가 없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료들 사이의 신뢰 덕분에 일이 일답게 진행될 수 있었다. 삼고초려로 초빙했던 외국의 엔지니어분은 함께 저녁식사를 할 때에, '이렇게 멤버들끼리 친한 밴드는 오랜만입니다'라고 해줬다.

한 곡에서 플렛리스 베이스를 사용했다. 연습하고 준비하는 기간에는 합주실에 가지고 나가지도 않았었다. 합주연습을 할 때 마다 집에 돌아와서 플렛리스로 녹음할 생각으로 연습해뒀었다. 녹음 하루 전에 상훈씨에게 언뜻 의사를 비췄더니 '해보라'고 하길래, 녹음 직전에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플렛리스를 꺼내어 그냥 해버렸다. 모두들 '저 녀석이 뭐 잘 알아서 하겠지' 정도로 생각해줬던 것 같아서 그게 고맙다. 이 곡은 그래서, 플렛을 제거한 프레시젼 베이스에 콤프레서, 암펙의 SVT2가 전부였다.

8비트의 연주곡과 컨트리 형식의 노래, 다른 두 곡에서는 늘 가지고 다니던 재즈베이스를 사용했다. 코러스와 콤프레서, 시그널 부스터를 썼다. 가능한 앰프의 소리만 내고 싶었기 때문에 자주 모두 바이패스해둔 부분이 있다. 록음악을 연주하기에는 내 악기의 현고가 모두 낮기 때문에, 녹음 당일에는 브릿지를 조절해서 조금씩 올려두었다. 집에 돌아와 다시 브릿지와 픽업의 높이를 맞추느라 시간을 들여야했다. 피크를 사용한 것은 두 곡. 엔지니어분의 제안으로 한 곡에서는 오래된 베이스맨 앰프를 빌어와 게인을 잔뜩 걸어 드라이브 소리를 더빙했다. 암펙에서의 드라이브도 해보고 싶었지만 워낙 '빨리 빨리' 했어야 했던 분위기여서, 펜더의 베이스맨만 사용하고 말았다.

나머지 한 곡에서는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5현을 사용했다. 악기 자체의 게인이 센 편이어서 앰프의 음량을 낮춰야했다. 이펙터는 아무 것도 연결하지 않은 상태로 녹음했다. 기타앰프를 연결한 상훈씨의 클라비넷 사운드와 기타의 소리가 중음역대를 메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을 더 어지럽히고 싶지 않아서, 결국 낮은 D의 음은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두 번의 테이크로 녹음을 마치게 되었다.

보컬 녹음이 정말로 빨리 끝나버렸기 때문에 멤버들은 몇 가지의 더빙을 더 시도해볼 시간을 얻었다. 우리 밴드 리더분의 보컬 녹음 장면은 감탄할만 했다. 목소리와 힘을 제어하는 방법도 방법이거니와 마이크를 사용하는 방법, 잘 계획되어진 순서... 역시 연륜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반작업의 맨 마지막에, 두 개의 결과물을 두고 선택을 했어야만 했다. 녹음작업부터 함께 관여하고, 실질적인 프로듀싱을 해줬던 엔지니어 N씨의 후반작업이 나는 좋았다. 그러나 다른 쪽으로 결정했어야 했고, 음악이라는 결과물 앞에서 어느쪽이 최선인지에 대하여 판단의 책임을 질 수가 없었다. 여전히 아쉬움이 많고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결정을 내려야하는 분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연주자가 되었든 창작자가 되었든, 어느 정도의 레벨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논리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살면서 배웠지 않았느냐고 자신에게 타이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도 나에게는 그만한 논리라는 것이 갖춰져있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더 좋다는 말입니다'라는 것으로는 너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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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음반.

어쨌든 버젼 0.5의 베타 음반이 나왔다. 이것이 좋은 일들의 좋은 시작이 되면 좋겠다.
굳이 정관사를 붙여 최상급의 단어를 만들어 붙인 'The Happiest'라는 이름 속에는, 오래된 한 뮤지션의 반어법적인 역설이 있다고 나는 짐작해본다. '가장 행복한' 사람의 내면에는 지긋지긋할 정도의 고독과 외로움이 녹아있다. 누구라고 해도 그런 것은 그저 겨우 짐작해보기나 할 뿐, 본인의 것으로 여길 수는 없는 것이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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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25일 화요일

매스미디어.

지난 번 케이블 방송사의 음악 시상식 캡쳐화면을 주워오게 되었다.
다시 보니 그 날의 정신없었던 분위기가 기억난다. 폭탄테러 직후의 시장터 같았다.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거대자본의 기업에서 물량으로 쏟아부은 것에 비하여, 그런 기획과 공연의 좋은점은 어디에 있을까. 그렇게 많은 사람의 시간과 노동력을 빌어와서 겨우 좋은 그림을 만드는데에 열중해버릴 뿐, 음악에는 관심이 없는 기획이라고 생각했다. 거창한 철학이나 비젼은 기대하기도 어렵거니와 음악적이지도 않은 음악 방송사의 쇼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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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21일 금요일

바람부는 날의 음악.


사진은 최근 경매사이트에 올라와있던 카세트테이프의 표지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고양이가 창가에 앉아서 하염없이 하늘을 보고 있길래 무엇을 하는가 했더니, 바람에 이리 저리 날리고 있는 나뭇잎들이 보였다. 고층의 아파트 유리창에 와서 부딪히고는 다시 날려가버리는 나뭇잎들.

낙엽 落葉 이라고 해버리면 ‘떨어지는 잎사귀’일텐데, 이것은 쏘아올려지듯 속절없이 빙글 빙글 돌며 날려지고 있는 중이어서 나뭇잎이라고만 해야하는가, 따위의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고양이와 나란히 앉아 미칠듯이 쏘아올려지고 있는 나뭇잎들을 구경하다가, Brian Melvin의 음반을 틀어두었었다. 그날 이후 두 주일 가까이 계속 그 음반을 듣게 되고 있다.
드러머 브라이언 멜빈의 음반이라고는 하지만 Jaco Pastorius, Jon Davis가 함께 연주한 트리오 앨범이어서 오히려 자코라는 연주자의 이름으로 더 알려져있는지도 모른다.

십여년 전 피아노를 치는 친구가 어느날 이 음반을 알려줬을 때에야 겨우 듣게 되었던 나는 여기에 담겨있는 자코의 연주를 듣고 놀랐었다. 기뻐했었다.
이 앨범은 자코가 녹음한 음반들중 제일 명료한 음질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좋은 소리가 담겨있는 음반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스탠다드 재즈로 채워져있어서 언제나 아끼는 앨범이 되었다.
게다가 자코가 이 앨범에서 연주하고 있는 것은 플렛이 있는 베이스이다.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모두 뒤져도 찾기 어려운 플렛티드 베이스의 음색인데, 처음에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듣고 있었다. 자연스럽고, 착하고, 행복하게 연주하고 있는 느낌이다. 현실로 말하자면 심하게 망가져있었던 심신이었을 무렵의 그였지만, 브라이언 멜빈의 설명처럼 이 음반을 녹음할 무렵 만큼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마치 ‘드럼과 피아노를 위해서 연주하러 왔어’, 라고 말하고 있는 것 처럼 따뜻하고 충실하게 연주하고 있는 음반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녹음했던 음반이었고 사망했던 이듬해에 발표되었었다.

그가 죽은지 20년도 더 지나버렸다. 그가 남겨준 음악을 들으며 바람이 몹시도 부는 아침에 나는 겨우 기운을 얻는다. 부쩍 추워진 요즘에, 이 음반은 온기를 느끼게 해주고 웃을 수 있게도 해줬다. 거위털 외투보다도 고마운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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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레코드가게에서 지구레코드에서 나왔던 이 음반의 한국산 라이센스반을 보았었다. 그 레코드는 어찌 어찌 흘러서 그곳까지 가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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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18일 화요일

클럽에서.


새벽, 주룩 주룩 비가 내려주고 있다.
아침이 되어도 눈이 부시지 않을 것 같아 좋기만 하다.
오늘 저녁엔 오랜만에 클럽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다.
게다가 그 장소는 오랜만에 가보는 곳이다. 이제는 낡고 우중충해져있을 그곳의 입구에 다다르면 뭔가 반가운 것도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공연할 곡들을 대충 연습해보다가 오래 전에 드나들었던 곳들이 생각났다. 비좁은 무대여서 서있을 자리가 없었던 클럽들이 그때엔 더러 있었다. 먼저 드러머가 손님들 사이를 뚫고 들어가 어렵게 심벌들 사이로 몸을 통과시켜 드럼 세트에 앉으면 그제서야 겨우 겨우 콤보 앰프 위에 걸터앉아 엉덩이에 진동을 잔뜩 느끼며 연주해야 했던 눅눅하고 좁아터진 옛날의 클럽들, 카페들을 자주 그리워했다. 앞에 마주보고 앉은 관객과 눈이 마주쳐지는 것이 자주 민망해서 몇 시간 동안 눈을 감고 연주하기도 했었는데... 지금도 어딘가에는 그런 곳들이 남아야 있겠지만, 아직도 그런 곳에서 그렇게 음악을 즐기려하는 청중들은 존재할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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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5일 수요일

닳아버린 사람.


어린 학생 한 명이 카메라를 집어들더니
말없이 셔터를 눌렀었던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천진한데 나는 닳아버렸다.
내 모습을 찍어주는줄도 모르고
오른손을 내밀어 돌려달라고 보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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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보 위의 고양이.


곱게 세탁해놓은 흰 이불보 위에 제일 먼저 뛰어드는 고양이는
당연히 순이.
뒹굴다못해 노래를 부르듯 그르릉거린다.
세제 냄새가 담긴 하얀 이불보를 무척 좋아한다.

순이는 한참을 이불보 위에서 놀다가, 이불보 위에서 잠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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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감이 달렸다.


볕이 좋았던 낮에 집앞의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감을 보았다.
어쩌자고 푸른 하늘을 벽지 삼아 붉게도 매달려 있었는지.
종일 바람은 불고 햇볕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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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3일 월요일

쉴 수 있던 시간.


며칠 동안 많이 말하지 않아도 되었어서 좋았던 것이었나보다.
지나고 보니 그랬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내일 부터는 약장수처럼 하루종일 말을 해야하는 한 주가 시작될 것이어서 미리 피로해진다.
떠들지 않으면서도 할 수 있는 레슨 방법을 고안해야만 계속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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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27일 월요일

Etienne Stadwijk


음악친구들에게 보나 밴드의 Etienne Stadwijk 씨의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처음 리차드 보나의 음반을 들었을 때에도 관심을 끌게 하는 인물이었는데 보나의 정규음반에는 그외에도 다른 건반 연주자들의 세션들이 담겨있었어서 자세히는 알 수 없었다. 수 년 전의 보나 공연을 보았을 때에야 그의 진가를 잘 볼 수 있었다.
그 후로 팬이 되었다, 라고 쓰면 좋겠지만, 그의 연주에 대해서는 보나의 앨범들과 공연실황에서나 듣고 즐거워할 뿐 아직도 그가 참여했던 다른 음반들을 들어본 것은 기껏해야 Sadao Watanabe의 라이브 음반과 애시드 재즈그룹 Groove Collective 정도일 뿐이다.

그의 연주는 공간이 많은 것 처럼 여겨지면서도 밴드 전체의 사운드를 전부 이끌고 가는듯 힘이 넘친다. 꽤 근사하고 세련되어있다. 재능이 넘치는 세션맨들이 세상에 가득하겠지만 이런 사람의 연주는 흠, 괜찮군, 하는 정도로 듣고 지나쳐버릴 수 없는 묵직한 느낌이 있다.
리차드 보나는 공연할 때마다 그를 네덜란드의 노틀담에서 왔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웹의 자료들에는 거의 대부분 남미의 수리남 출신으로 되어있다. 국적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개인사가 궁금해진다.
버클리 음대에서 Arranging을 전공했고, 그 후의 음악활동은 프랑스와 뉴욕을 오가며 해오고 있었던 것 같다.


아직 다 알고 있지는 않지만 대충 그가 함께 연주했던 연주자들은, Kenny Garrett, Herbie Mann, Cornell Dupree, Groove Collective, Brooklyn Funk Essentals, 라틴 팝 그룹 Barrio Boyz, Freddie Jackson, 기타연주자 Leni Stern, 그리고 Sadao Watanabe가 리차드 보나와 함께 했던 공연의 실황음반 One For You, 영화 Deep Blue Sea의 오리지날 사운드 트랙, 리차드 보나의 정규음반 전부에서의 세션들이다.

무척이나 더웠던 몇 해 전의 여름에 매일 아침마다 듣고 있었던 보나의 음반 Munia - The Tale의 11번째 곡 Playground 는 Etienne Stadwijk의 곡이다.
프랑스에서 출반된 Acid Jazz 음반과 몇 개의 편집음반에서는 그의 이름이 ATN Stadwijk으로 적혀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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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25일 토요일

커피


당번이 정해져있는 것은 없지만, 대개 먼저 깨어난 사람이 만드는 것으로 되어버린 커피 한 잔.
내가 만드는 것이 훨씬 더 맛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꼭 그렇지도 않다.
아무래도 내가 아내보다 잘 하는 것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저 커피 콩을 간다거나 하는 단순 작업이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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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의 고양이


새벽, 듣고 있던 음악을 껐더니 어디에선가 그르르릉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면 아까 부터 보고 있었다는듯 막내 고양이의 모습.



눈이 마주치자 일어나 앉는가 했는데 곧 다시 엎드려 잠들어버렸다.
고양이의 숨소리가 방안에 냄새처럼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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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풀들.


관심이 일면 배우게 되고 알게 되면 사랑하게도 된다.
아내는 초록색 풀들을 집안에 하나 둘 데려오면서 살뜰히도 보살피고 가꾸더니, 잠깐 동안의 외출 내내 길 옆의 나무 골목 어귀의 풀들을 헌책방에서 책을 고르듯 보고 있었다.
헝겊과 솜들, 털실들, 고양이들, 풀과 꽃들이 집안에 어우러져 오후 내내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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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23일 목요일

꿈같았던 공연



이미 다 아는 순서, 너무 익숙해진 악곡들, 마지막까지 외워버린 공연.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도.
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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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22일 수요일

아프다.

정동.
망해버린 옛 왕조와 지배세력의 동네였던 곳.
백여년 동안 수도 없이 외세로부터 유린되어오고 있는 마을.
가을 냄새가 가득하다거나 진통제처럼 고요한 풍경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지랄맞은 관제행사들로 도회의 건물들 사이엔 쇠가 부딛히는 소음이 맴돌이 하고 있었고
외국의 이름으로 간판을 만들어 붙인 음식점들의 냄새만 골목에 가득했다.

리허설을 마치고 비어있는 너른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있는데
계속 어지럽고 뼈마디가 아파왔다.
이틀 새에 잇달은 訃告들 때문이었는지 그저 계절에 마음이 섞여 우울했던 것인지
잘 몰랐었는데
에잇... 감기몸살이었구나.

아침 일찍 일어나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타왔다.
오늘은 먼길을 달려가서, 기다려오던 공연을 구경하기로 했던 날이었는데
몸이 아프니 마음도 맥이 풀린다.

병원에서 돌아와 식은 커피를 따라 두고 연달아 담배를 피웠다.
좋은 음악을 골라 나직히 틀어놓았더니 주사약의 냄새가 코에서 났다.
오늘 밤 좋은 음악을 한껏 마시고 돌아오면 몸살도 낫고
내 악기들의 소리도 다시 상쾌하게 들렸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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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20일 월요일

내 고양이.


집에서 뭔가 하고 있을 때에는 자주 고양이들의 방해를 받는다.
지난 밤에 매우 집중해야 하는 녹음을 하고 있었는데, 고양이 순이는 무릎을 밟으며 느린 걸음으로 올라와 컴퓨터의 Delete 키를 한 번, 스페이스 바를 한 번 눌러줬다. 녹음한 것을 지워준 후에 다시 플레이까지 해주는 센스. 꼭 붙잡아 안고서 한숨을 쉬고 있으려니 아예 다리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그르릉, 그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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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18일 토요일

제주도 공연 직후


좋은 공연이었다.
공연을 마친 직후 무대에서 인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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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학 공연.


분위기가 좋았던 공연. 공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에 아직도 햇볕이 따사롭고 밝은 세상이었어서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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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17일 금요일

악기 가방 안에는 고양이가.


언제나 어김없이 악기가방이 열리면 들어가 앉아서 논다.
사실은 무슨 가방이든 열어두면 들어가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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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바닷가


조용하고 붐비지 않고 너른 곳을 원하느라 사람들은 소란하고 땀내나고 좁아터진 곳에서 아둥바둥하는지도 모르겠다.
역시 바닷가를 찾으면 좋은 때는 늦가을의 맑은 날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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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무대


이 공연을 주최하신 분들은 환경이 열악하다며 연신 이해를 부탁하는 말씀을 해줬지만, 우리들은 오히려 재미있고 기분 좋았다.
나는 문득 오래 전 종로의 작은 소극장이 떠올랐다.
공연을 준비해온 분들이 어찌나 세심했는지 정겨운 무대가 꾸며졌고 오래된 건물의 내벽 때문에 잔향이 자연스러웠다. 전기기계로 가득찬 큰 무대에서 자주 시달려야했던 잡음도 없었다.
또 가보고 싶어지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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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16일 목요일

조용한 하늘


공항 - 공연장 - 식당 - 다시 공항의 하루 일정이었으므로, 나의 이번 제주도 초행길은 여행이라고 해줄 수 없어야 한다.
하지만 반나절 숨쉬어볼 수 있었던 남쪽의 공기 때문에 기분이 많이 좋아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고요했다. 공연장 입구 앞의 풀밭에 길게 누워서 한숨 길게 잘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평소 듣고 싶지 않았던 소리들이 그렇게 많았던가 했다. 조용한 하늘, 시끄럽지 않은 해변에 며칠이라도 머물고 싶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도심이 아닌데도 언제나 소리가 가득하다. 혹시 소리들 때문에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인상이 어두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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