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31일 토요일

12월 31일.


올해의 마지막 주에 우리는 나흘 동안 동물병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팠던 일곱살 고양이 이지는 이제 회복하고 있다. 가느다란 두 발에 카데타를 여러 번 꽂아야 했다. 핏줄이 가늘어서 수액을 맞추기 위해 너무 많이 주사 바늘로 찔렀다. 조그만 발을 여러 번 주물러 줬다. 고양이는 곧 나을 것이다.

아내를 고양이와 함께 동물병원에 남겨 두고 오늘 밤 공연을 위해 나 혼자 돌아왔다.
연말의 토요일, 도로는 자동차로 꽉 막혀 있었다. 오른편으로 내 집 앞의 강이 보였고, 정태춘 님의 노랫말이 떠올랐다.

'무슨 강이 뛰어내릴 여울 하나 없더냐.'

아내가 주사를 맞으며 졸고 있는 고양이 이지의 사진을 보내줬다. 염치도 없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 시간에 아내를 태워 집에 데려다 주기를 부탁하고 나는 주섬 주섬 악기를 챙겨서 나갈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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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7일 토요일

부여에서 공연.


부여 국립박물관에 있는 공연장에서 공연을 했다.
아담하고 작은 공연장이었다. 잘 설계되어 있었고 잔향이 적었다.
리허설을 할 때에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공연 중에도 사운드가 좋을 것이라고 예상해 볼 수 있었다.

부여 박물관 건물도 아름다왔다. 채광과 자연스러운 조명이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줬다.
나는 점심을 먹고 혼자 박물관의 전시물들을 구경했다.


플렛리스 베이스로 전부 연주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리허설을 마쳤었다.


무대 가까운 곳에 출입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잠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는지 손이 많이 시려웠다. 손이 굳어서 정확한 피치를 유지하느라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결국 공연 후반의 몇 곡은 재즈베이스로 연주했다.

돌아오는 길에 졸음이 쏟아졌다.
휴게소에 몇 번 들러 차에서 토막 잠을 잤다.
나는 적당히 피로를 회복할 즈음 다시 깨어나 운전하는 것을 반복했다. 이제 이 패턴은 완전히 익숙해졌다.

열흘 조금 지나면 해가 바뀐다.
어두운 고속도로를 달리며 올해에 나에게 벌어졌던 일들을 떠올렸다.
어떤 일들은 잠깐 잠이 들었을 때에 지나가버린 꿈처럼 여겨졌다.


2016년 12월 14일 수요일

까만 고양이.


장난 심한 어린 고양이는 잘 먹고 잘 크고 있다.
모든 고양이들이 재미있어 하는 것을 이 어린이도 재미있어 하고 있다.
베이스의 줄을 새것으로 교환하고 있었는데, 곁에 다가와 한참을 올려다 보며 구경하고 있었다.


조금 전 까지 미친듯이 집안을 뛰어 다니며 사고를 치고 있던 고양이는 이윽고 지루해졌는지 하품을 했다.
악기의 줄을 다 감은 후 내려다 보니 고양이는 그 자리에 길게 누워 그만 잠들어버렸다.


2016년 12월 4일 일요일

TV를 좋아하는 어린이.


아직 한 살도 되지 않은 어린이 고양이는 이제 완전히 기운을 회복했다.
덕분에 집안의 다른 고양이들과 사람들은 어린 고양이에게 시달리는 생활을 하고 있다.
밤중에 소리를 내며 뛰어 놀고, 아무 곳이나 올라가서 부스럭 거리고 있는 중이다.
도저히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소란을 떨며 지내고 있다.


나는 어린이 고양이가 잠깐이라도 조용히 있어주지는 않을까 하여 유튜브에서 고양이를 위한 비디오를 찾아 틀어줘보았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어린이 고양이는 그 비디오들을 아주 좋아했다.


고양이를 위한 비디오에는 새, 다람쥐, 고양이 등의 동물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어린 고양이는 아예 화면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한 시간이 넘도록 TV를 보고 있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조용한 낮 시간을 잠시나마 보낼 수 있었다.


2016년 12월 3일 토요일

안양에서 공연.


내비게이션이 예측해줬던 그대로 46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몇 번 연주해보았던 평촌 아트홀이었다.

앰프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리허설을 마칠 때 까지 편안한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내가 공연을 하고 있을 시간에 아내는 광화문 집회에 참여하고 있었다. 집에서 나올 때에 구형 아이폰 두 개를 원격 카메라로 켜두고 나왔었다. 집안의 고양이들을 들여다 보니 모두 자리를 잡고 잠을 자고 있었다.


공연을 마친 후 사람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아직 서울 시내에 남아 있던 아내와 연락을 주고 받으며 운전을 했다. 지하철 역에서 아내를 만나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낮 동안 종일 잠을 자던 고양이들이 현관 앞에 달려와 반겨줬다.

사람 둘은 피곤하여 드러누웠다. 개운하게 자고 일어난 고양이들이 어둠 속에서 뛰어다니며 놀기 시작했다. 고양이들이 달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2016년 11월 29일 화요일

녹색 컨테이너


수색역에 있는 녹색 컨테이너 건물에서 밴드 합주를 했다.
추운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햇빛이 따뜻했다.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가 그 빛이 따뜻해 보여서 사진을 찍었다.

합주를 마치고 레슨을 위해 한 시간 반 동안 운전을 했다.
그 시간은 언제나 길이 막히기 때문에 오랜 시간 운전을 하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집에 늦게 돌아왔다.
집안의 모두가 잠들어 있었다.
까만 어린 고양이만 소리를 내며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고양이를 안아주고 세수만 한 다음, 가방을 끌러 정리할 생각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버렸다.

2016년 11월 26일 토요일

광화문에서.


아내는 낮 부터 광화문에 나가 있었다.
나는 다른 일을 하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시내로 나갔다.
광화문 해태상 앞에서 아내와 만났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줄지어 광장을 걷고 좁은 길을 따라 소격동 길을 걸었다.



사람들 틈에 끼인채 행진을 하다가 화장실을 찾아 가기 위해 행렬로 부터 빠져 나오기 위해 반대 방향으로 걸어야 했다. 예상 보다 빠져 나오기 쉽지 않았다. 가까스로 근처 박물관 건물의 화장실 앞에 도착했더니 사람들이 순서를 기다리느라 길게 줄 서 있었다.

다시 골목을 따라 큰 길로 나오는 길을 걷다가, 이번에는 동생 내외와 마주쳤다.
처음에는 서로 현실감이 없어서 잠깐 멍하니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장소에서 만날 수 있었다니, 우스운 순간이었다.

동생네는 을지로에 자동차를 주차해뒀다고 했다. 덕분에 우리는 차를 얻어 타고 귀가할 수 있었다.


2016년 11월 24일 목요일

검은 고양이


지난 주 어느날 밤에 아파트 현관 앞에서 새까만 어린 고양이가 아내의 바지를 붙잡고 매달렸다.
우리는 무턱대고 울며 안기는 고양이를 데리고 집에 들어와 먹이고 재웠다.



다음 날 동물병원에 가서 간단한 검사를 했다. 어린이 고양이는 사흘 가까이 거의 잠만 잤다.
그동안 무척 고단하고 힘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기력을 회복한 어린이 고양이는 이제 사람만 보면 다가와 무릎에 앉고 쉴 새 없이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아홉살 하얀 고양이 꼼은 새까만 어린이를 무척 귀여워 하고 있다. 함께 뛰어 놀고, 어린이를 데리고 다니며 이것 저것 가르치려 하고 있었다.

기껏해야 아홉달 정도 되어 보이는 까만 어린이 고양이는 한쪽 귀와 다리를 다쳤던 것으로 보였다.
보름 전 어느날 우리 동네에 이삿짐을 운반하는 차량이 가득했었다. 아무래도 그날 버려진 것으로 보인다. 아주 귀엽고 사람을 좋아하고, 무엇보다 낙천적이다.

내 고양이 순이가 세상을 떠난지 넉달이 지났다.
지금은 순이가 늘 앉아 있던 곳에 어린 고양이가 드러누워 새근거리며 자고 있다.
나와 아내는 이 고양이를 맡아 키우자는 말을 하고 있지 않다. 다만 조만간 동물병원에 다시 데려가 부러졌다가 저절로 붙어버린 것으로 보이는 다리를 검사하고 중성화 수술도 시키기로 하였다.

추워졌다.

영하의 기온이 되었다.
이제 겨울인데, 주말에는 또 광화문에 나가야 할 것 같다.


요즘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진 한 장. 돌아가신 대통령의 관 앞에서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 있는 분이 그의 오랜 운전기사였다는 미담 이야기를 보았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허리 숙여 절을 하고 있던 분은 그날 운구차량을 운전했던 분이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사실 관계를 확인하려 해보거나 하다 못해 옛 기사를 다시 찾아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언제나 미담을 원하고 동화를 만들고 신화처럼 여기기 좋아한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이 보고싶어하는 것을 보고싶은대로만 보려고 한다.

지금의 그 꾸며진 미담, 사실이 아니었던 동화가 복사되고 붙여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현재의 시절을 기가 막혀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남한의 사람들이 십여년 전에 얼마나 사회에 무관심했는지를 알게 해준다.


나는 앞으로의 우리가 조금만 더 이성적이고 약간만 더 합리적일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는 언제나 쉽게 잊어버리고 자신의 이익손실과 관계 없다고 여겨지는 것에 금세 무관심해지는 존재이다. 인간이란 원래 부터 그 정도의 존재이고, 그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더 나아지려고 하지 않는 것은, 잘못은 아니더라도, 추하다.

2016년 11월 13일 일요일

노란 나뭇잎들.


시국은 시국이고, 계절은 여느때 처럼 노란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혜화동에서 종로 5가로 걸으면서 조금 더 여유가 있었다면 나무들 사이에 잠시 앉아 있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실망을 하고, 사람에게 상처 받아 외로와지는 것은 알고 보면 나의 탓이다. 나는 뭐 그렇게 사람들에게 기대를 하고 살가와지려고 애를 쓰는 걸까, 싶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사실은 아주 오래 전에 서랍 깊숙히 접어 둔 바람이다.

우울한 어깨를 하고 서울 시내로 향했다가,  그곳에서 노란 나뭇잎들을 보며 겨우 기운을 내었다. 내 어린 시절의 종로길을 걸을 수 있었던 오후가 고맙게 느껴졌다.


광화문에서.


수십만이라느니, 백만이 넘었다느니 하며 사람들은 숫자를 세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종로에서 교보빌딩 모퉁이까지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밀려 걸어갔다. 그 넓은 장소에서 앞 뒤의 사람들과 몸이 닿은채로 몇 시간 동안 움직여야 했다.

그러는 동안에 청소년, 젊은이들, 어린이를 안은 여자와 남자들, 휠체어를 타거나 안내견의 도움을 받으며 걷던 맹인들 중 누구도 남을 밀치거나 소란을 피우거나 발을 밟거나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신기하게 여겨졌다. 남한의 사람들은 원래 어깨를 부딪히거나 사람을 밀치거나 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 아니었나, 했다.

아니나 다를까, 타인을 몸으로 밀고, 손을 뻗어 사람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사람들이 드디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전부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떠들었고 아무 말이나 했다. 그러다가 만만해 보이는 상대를 보면 훈계질을 하거나 가르치려 들었다. 모두,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공감하지도 못하고 배우려 하지도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그렇게 되어버린 것인지, 원래 그런 인간들이 나이를 먹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냉정하게 따지자면 그들은 지금의 세상에 대하여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 공손히 사죄하는 일이 먼저여야 옳지 않을까. 쓸데 없는 소리일테지만.


2016년 11월 11일 금요일

빨간 잎.


비 내렸던 날, 먼길을 출발하기 위해 주차한 곳을 찾아갔더니 빨간 잎 한 장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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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3일 목요일

십일월이 되었다.


집에는 낡은 책이 많다.
서적을 구입하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아침에 아내가 읽고 있던 책에 대해 말을 걸었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집에 읽을 책이 없어."

원래 그런 거다.
시디나 책이나 구입하고 모아 놓아도 문득 소파에 앉아서 듣거나 읽을 것이 없기 마련이다.

십일월이 되었다.
지난 일요일은 내 고양이 순이가 죽은지 백 일이 되었던 날이었다.
아무에게도 말 하지 못했지만, 나는 혼자 강가에 나가서 순이를 떠나 보냈던 아침처럼 긴 의자에 앉아 강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있었다. 무슨 의식을 치르거나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냥 마음 깊이 그리워했다.

십여년 전에 이사를 다니며 가지고 있던 책을 많이 처분해야 했다. 이제는 그것이 아깝게 여겨지지 않는다. 낡은 책은 버려져도 좋다고 생각했다. 두 번 다시 펴 보지 않았을 책들이었다.
집안에 무엇을 더 채울 것이 아니라 하나 둘 씩 버리고 잊는 습관을 가져보겠다고 생각했다.


2016년 10월 25일 화요일

그리워했다.


꿈에서 순이를 보았다.
그리고 잠을 깨었다. 밖은 깜깜했다. 두 시 반이었다.

순이가 떠난지 아직 백일이 되지 않았다.
고양이 순이가 내 어깨에 볼을 기대고 그르릉 거리던 시절이, 어느 날에는 아득한 옛 일 같기도 했다. 어떤 아침에는 어제의 일 처럼 느껴졌다. 매일 꿈에서 고양이를 보았었다가 한 동안 꿈을 꾸지 않고 지냈다.

꿈 속에서 한 번도 내 고양이를 만지거나 다가가 안아 보지 못했다.
다시 꿈에서 만나게 되면 와락 다가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눈이라도 마주치면 이름을 부르며 웃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2016년 10월 23일 일요일

고양이들과 밤을 보냈다.


며칠 사이 오랜만에 낮과 밤이 바뀌어 버렸다.
초저녁에 잠들었다가 자정 즈음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스프와 통밀빵을 먹었다.
고양이 꼼은 비좁은 상자에 몸을 구겨 넣고 졸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고양이 이지는 이미 잠을 깨었으면서도 여전히 자는 체 하고 있었다.
이름을 부르면 양쪽 귀만 쫑긋 거렸다.

나는 편안하게 드러누워 자다가 일어났는데, 목과 어깨와 허리에 통증이 심했다.
혹시 집안이 추워서 고양이들이 웅크린 채로 자고 있는 것인가 하여 난방장치를 켜주었다.

2016년 10월 21일 금요일

서교동에서 연주를 했다.


친구들과의 블루스 팀 공연은 드문 드문 계속 하고 있다.
금요일 저녁에 서교동의 클럽에서 블루스 공연을 했다.
연주를 하고 있는 시간은 즐겁기 때문에 언제나 짧게 느껴진다.

금요일 서교동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건물 사이에서, 자동차의 바닥에서 길고양이들이 사람들의 발을 피하며 다니고 있었다.
어디에나 음악 소리가 들렸다.
해가 저물면 불빛들이 거리를 밝혔다.

연주를 마치고 혼잡한 도로를 빠져 나오면서 아무도 부르지 않을 노래와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2016년 10월 9일 일요일

춘천에서 공연을 했다.


아침에 출발하면서 패딩 자켓을 챙겼다.
나는 춘천의 날씨를 아주 잘 안다. 해가 떨어지기 전 부터 추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날씨였다.
나는 하루 전에 자동차의 타이어를 새것으로 교환했다. 타이어 네 개가 전부 마모선이 지워질 정도로 닳아 있었다. 타이어를 교환하면서 엔진오일도 교환했었다.
춘천의 공연장 앞에 주차를 하고 시동을 끄려고 했을 때에, 자동차의 계기판에 '엔진오일 부족'이라는 경고등이 켜졌다.

하루 전에 교환했던 엔진오일이 부족하다니. 오일을 교환할 때에 찜찜했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보험회사에 전화하여 출장서비스를 부탁하고 임시 조치를 했다. 리허설을 마친 뒤에 가장 가까운 정비소에 가서 몇 시간 동안 기다렸다가 점검을 하고 부족한 엔진오일을 마저 보충해야 했다.


공연 시간 전에 여유있게 공연장에 돌아올 수 있었다. 갑자기 잠이 쏟아졌다. 미리 챙겨갔던 두꺼운 외투를 덮고 몇 십 분 정도 차 안에서 자고 났더니 몸이 개운해졌다.
익숙한 장소에서 연주를 했다. 이곳에서 몇 번째 연주를 했는지 세어 뒀었는데, 이제는 그만 잊었다. 여름 이후 오랜만에 다른 친구들도 만나 무대 곁에서 손을 잡고 인사도 했다.

집에 돌아올 때엔 일부러 국도를 선택하여 음악을 틀어두고 느린 속도로 운전했다. 아파트의 주차장에서 자동차의 시동을 끄기 직전에 비틀즈의 The Fool On The Hill 이 막 끝나고 있었다.


2016년 10월 7일 금요일

가을 오후.


금요일 오후에 볕이 드는 베란다에는 고양이들이 몸을 쭉 펴고 누워 뒹굴고 있었다.
아내는 고양이들을 쓰다듬고 첫째를 품에 안아 입을 맞췄다.
내가 틀어두었던 음악은 끝이 나고 조용한 공기가 집안을 떠다녔다. 고양이 꼼은 한참 동안 아내의 품 안에서 얼굴을 마주 보며 안겨 있었다.

업데이트 된 iOS의 기능 때문에 아이패드에 담아 가지고 다니는 순이의 사진을 열어 볼 때면, 작년 오늘의 사진, 재작년 지금 쯤의 사진을 보게 된다. 나는 내 고양이 순이가 그 이듬해 여름에 내 곁을 떠날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나는 순이가 그 다음 여름에 죽고 없어질 것이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따스한 햇볕 속에서 아내와 고양이의 포옹이 끝난 후 창문을 열었더니 제법 차가와진 바람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찬 공기를 듬뿍 마시면서, 나는 방금 지나가버린 지금이 무척 소중했다는 생각을 했다.



2016년 10월 3일 월요일

산꼭대기에서 연주를 했다.


신불산 간월재에서 연주를 하고 왔다.
리허설을 하기 위해 하루, 공연을 하기 위해 하루를 보내고 왔다.
억새가 가득한 아름다운 능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산악 자전거들도 많이 보였다.


이곳은 5년 전에 인공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을 두고 반대의 의견이 많았던 장소였다.
능선에 올라가 보니 이미 매점과 휴게소와 전망을 볼 수 있는 데크가 다 지어져 있었다.
당시 시민단체가 반대했던 이유가 기억 났다. 아름다운 능선이 인공 시설물들로 망가질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나는 그 주장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산꼭대기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공연을 구경하는 일은 근사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런 일을 사업으로 삼아 아름다운 능선의 고요와 스산한 바람소리를 어지럽혀야 할 이유는 없다. 구조물들이 없었고 등산객이 적었던 시절의 간월재는 지금의 모습 보다 더 아름다왔을 것이다. 나는 직업을 핑계로 그곳에서 잔뜩 소음을 내어버리고 온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 탓은 아니지 않느냐고 하기에는 가슴 속이 떳떳하지 못했다.
이런 것은 하지 않을 수록 좋다. 지역 발전을 위한 사업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우선 철학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아마 우리의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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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일 일요일

연주하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2016, Oct. 1. with J-Brothers. (trimmed image)

지난 봄에 친구들의 밴드에 참여하여 함께 녹음했던 음반이 나왔었다.
그 후 우리들은 각자의 바쁜 일상을 보내며 서로의 시간을 모아 연주를 해오고 있는 중이다.

어제는 블루스 밴드 J-브라더스와의 열 두 번째 공연을 했다.
언제나 연주하고 있는 동안에는 시간이 빨리 흘러 간다.
조금만 더 연주하고 싶었다.

지금은 새벽 두 시 오십 분.
이제 두어 시간 정도 잠을 자고 나서 고속도로를 달려 울산 울주군으로 갈 것이다.
도착하면 김창완밴드의 리허설을 하고, 다음 날 오후에는 아름다운 곳에서 공연을 할 것이라고 했다.




2016년 9월 30일 금요일

가을이 되었다.


새벽, 창문을 지나가는 바람이 서늘했다.
가을이 되었다.
나는 웃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배불러 하기도 하며 매일을 산다.
고양이 순이가 없는 첫 가을을 보낸다.
이 해의 여름은 고약했다.

볕이 고왔던 오후에 고양이 이지가 창문 앞에서 졸고 있었다.
작은 고양이의 숨소리가 행복하게 들렸다.
나는 셔터 소리에 잠을 깨어버린 고양이를 살며시 들어서, 꼭 껴안아 보았다.



2016년 9월 11일 일요일

말들의 숨소리를 들었다.


몽골로 우리를 초대하셨던 분은 관광지를 안내하고, 말을 타 본다거나 양고기를 맛 볼 수 있게 해주시느라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렇지만 나는 평소의 생각 때문에, 그런 것을 즐기고 싶지 않았다.
매번 정중히 사양할 때 마다 죄송스러워했다.

거듭 권유하는 말씀과 신경 써 주시는 마음 때문에 나는 더 사양하지 못하고 결국 몽골에서의 마지막 날에는 일행과 동행하여 초원에 함께 갔었다. 물론 말을 타거나 양고기를 먹는 일은 하지 않았다. 단지 넓은 땅을 걸어 보았을 뿐이었지만 나름 한적하게 쉬는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평야를 걷다가 뼈와 가죽이 일부 남아 있는 말의 시체를 만났다.
반쯤은 땅에 묻혀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주변에 흩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말들은 관광객의 유희를 위해 사람을 태우고 뚜벅 뚜벅 걷고 걷다가 생을 마친다. 고단하지 않은 삶이 없고 짐승으로서 고통스럽지 않은 생이 있겠느냐만, 나는 사람들이 이런 일을 점점 삼가게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말들은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나는 오래 전에 행복한 얼굴의 말을 가까이에서 만져보고 지켜보았던 적이 있었다. 행복한 개와 말들은 허세를 부리거나 자존심을 세우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힘들어하는 동물들을 보면 한참 동안 마음이 좋지 않아서 괴롭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앉아서 쉬려 하는 말의 뺨에 손을 대어 어루만지고 싶어했는데, 주변에 흩어진 말의 똥 무더기를 피하려다가 넘어질 뻔 했다. 따분한 낮 시간을 보내던 말들에게 큰 웃음을 주고 올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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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10일 토요일

초원에서.


몽골의 초원을 산책 삼아 걸었다.
드넓은 곳을 잠깐 걸어보겠다고 했다가, 거리를 가늠하지 못하여 그만 두 시간을 걷게 되었다.
물가에 몽골 사람들이 자동차에서 내려 불을 피우고 둥글게 모여 앉아 있었다.
그들이 근처를 지나던 나를 불러 초대를 했다.
출발 전에 간단하게 외워두었던 몽골의 인사를 말했더니 그들도 짤막한 우리말로 대답을 해줬다.
한 사람이 건네어 준 따뜻한 차는 맛이 있었다. 금세 몸이 따뜻해졌다.
가득 담아준 차를 모두 마시고 흐르는 강물에 몸을 숙여 컵을 대충이나마 씻어서 돌려줬다.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그들은 자동차에 오르더니 그곳을 떠났다.
근처에 모여 앉아 있던 까마귀들이 동료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았더니 어느새 여러 마리의 까마귀가 그곳에 날아와 사람들이 남기고 간 간식을 나눠 먹고 있었다.



2016년 9월 8일 목요일

몽골에서 공연을 했다.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공연을 했다.
하늘은 넓고 맑았다.
저녁이 되어가면서 건조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며칠 전 파주와 안동에서 야외공연을 했을 때에 베이스의 네크에 습기가 가득했던 것이 기억났다. 몽골에서는 악기의 나무가 바짝 마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공연을 준비하셨던 분들이 작은 것에도 많은 신경을 써주셨기 때문에 편하게 연주할 수 있었다.


2016년 9월 4일 일요일

안동에서 공연을 했다.


안동의 고택마을에서 공연을 했다.
낮에 도착하여 한옥을 구경하며 주변을 걸었다.
풍경이 좋았다.

낮에 몸을 숙여 들여다 보았던 논 주변의 물이 하도 맑아서 쪼그려 앉아 다슬기와 잠자리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2016년 9월 3일 토요일

파주에서 공연을 했다.


파주에서 공연을 했다.
포크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하고 있는 행사인 것으로 알고 있다. 전에도 연주하러 왔던 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탁 트인 넓은 장소였다.
리허설을 할 때에 사진을 찍었다.
행사장에서 반가운 옛 동료들, 언제나 지나가며 인사하고 지내는 연주인들을 만났다.
덥고 습했던 탓이었는지 몸이 쉽게 지쳤다.
집에 돌아오는 길이 멀게 느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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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27일 토요일

구례에서 만났던 고양이.



전남 구례에 공연을 하러 다녀왔다.
아내와 함께 갔었다.
그곳에 살고 있는 고양이가 아내를 발견하더니, 잠시 후 그들은 그 동네를 둘이 함께 거닐고 있었다.

나도 가까이 다가가 앉아서 쓰다듬고 엉덩이를 두드려 줬다.


고양이는 한참을 우리와 함께 놀았다. 공연 시간이 다가와 무대 쪽으로 이동해야 할 때가 되었는데 고양이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내는 고양이에게, '건강히 잘 살아라'라고 인사를 해줬다.



2016년 8월 25일 목요일

순이가 곁에 있었다.



순이가 떠난지 한 달이 되었다.

그동안 매일 슬퍼하고 아파했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덜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그리워지는 것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생명은 유한하니까, 이것은 자연의 법칙일 뿐일테니까 어쩔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야 견뎌볼 수 있었다.

자주 청소를 했다. 순이의 흔적이 묻어있는 집안의 모든 곳을 볼 때 마다 눈물이 났었다.
이 집에서 보냈던 전부의 시간을 함께 했던 내 고양이의 생각에, 집안의 모든 구석 구석마다 슬픈 냄새가 났었다.

엊그제에는 조금 다른 기분이 느껴졌다.
나는 내 고양이 순이와 내가 서로를 깊이 좋아하며 살았던 12년이 정말 근사했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경험은 한 번 뿐이었던 일이었다.
나는 이제 이 집의 모든 곳에서 순이를 좋아했던 내 감정을 본다.
나는 언젠가 이곳을 떠날지도 모르지만, 집안의 후미진 구석 한 군데도 남기지 않고 마음 속에 넣어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후회하고 자책하는 일은 역시 부정적인 것이고, 그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내가 했던 일과 하지 않았던 어떤 일들에 대하여 반성했어야 했고, 내 힘이 모자라 순이에게 소홀할 수 밖에 없던 일들에 대하여 깊이 미안해해야 했다. 그런 과정은 내가 나라는 사람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했다.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고양이와 함께 있었던 11년 6개월 동안의 내 모습이 어떠했던가를 하나씩 되짚어 보았다. 순이의 사진들을 모아 다시 보면서 날짜를 확인하고 그때의 기록을 살펴보기도 했다.

사진 속의 고양이 순이는 아주 많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사진 속 그 순간의 일들을 기억할 때 마다 나는 순이의 의사표현과 마음과 감정을 모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고양이의 눈에 비치고 있었을 내 모습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거의 매일 꿈에서 순이를 보았다. 어떤 것은 꿈이 아니라 잠에서 깨어나 문득 떠올랐던 기억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꿈에서 순이는 어린 고양이 시절의 모습으로 뒹굴며 놀기도 하고 조용하게 그르릉 거리며 잠을 자고 있기도 했다. 꽃을 보고 기뻐하거나 고양이 꼼과 뛰어 노는 모습도 있었다. 지난 밤에는 천둥소리에 놀라서 떨고 있는 어린 순이를 내가 껴안고 토닥이며 진정시키고 있었다. 순이는 처음 겪어보는 천둥번개와 소란한 빗소리에 겁을 먹었다가 내 품안에서 안정을 찾더니 금세 장난을 치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 커피를 내리며 생각해보니 그것은 실제 있었던 일이었다.

이것은 결국 남에게 이해받지 못할, 혹은 공감받지 못할 외로운 경험일 수도 있다. 다만 고양이 한 마리가 십년을 넘게 살다가 병으로 갑자기 죽어버린 것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도 개에게서도 다른 고양이에게서도, 순이와 함께 했던 세월과 같은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마 남아있는 나의 시간 안에서도 더 이상 없거나 드물 것이다.
나는 슬퍼하기를 일부러 멈추려하지 않으려 한다. 그 대신 지나온 십여년이 나에게 귀하고 아름다왔던 날들이었다는 것을 잊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순이가 떠나던 날의 모습도 굳이 기억하려고 한다.
순이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든 간에, 내가 고양이 순이를 많이 사랑했다는 것을 그 고양이도 함께 느껴줬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고양이 순이는 내 곁에 있었다.
무척 그립고, 보고싶다.
그리워할 수는 있고, 이제 볼 수는 없다.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마음이 아프고, 의식하지 못하며 울기도 한다.
더 시간이 지나면 마음도 무뎌지고 눈물도 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나를 좋아해줬던 순이의 모습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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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26일 화요일

순이가 죽었다.

토요일에 지산 록페스티벌에서 연주를 했다.

하루 전이었던 금요일 새벽에 순이가 죽었다.
내 품에서 숨을 멈췄다.
고양이의 목과 다리가 평온하게 늘어졌다.

나는 무슨 억지를 부리고 싶었던 것인지, 순이를 데리고 강 건너에 있는 동물병원에 가서 응급벨을 눌렀다.
숙직중이던 수의사가 나와줬다. 수의사로부터 고양이의 죽음을 확인받았다. 순이는 이미 사후경직이 시작되고 있다고 했다.

다시 집에 돌아와 순이를 자동차에 안에 놓아둔채로 샤워를 하고 면도를 했다. 그러다가 나는 내가 내 수염이 아니라 입술 위를 면도기로 긁고 있는 것을 알았다. 면도날이 오래되어 잘 들지 않았던 덕분에 입술을 도려내지 않을 수 있었다.

옷을 갖춰 입은 후 아내는 집에 남게하고 작년에 에기를 화장했던 곳으로 운전을 시작했다. 한 시간 반을 달리며 곁에 눕혀진 순이를 어루만지고 쓰다듬었다. 나는 아마 계속 고양이의 이름을 불러주고 있었을 것이다.
그곳에 도착하니 거의 다섯시가 다 되었다.
화장터의 직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순이의 몸을 쓰다듬으며 붙들고 있었다. 내가 껴안았던 바람에 그대로 굳어버린 고양이의 다리를 힘주어 펴서 편안하게 보이는 자세를 만들어줘야 했다.

아침이 되어 고양이 순이가 담긴 단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루의 색이 순이의 털빛과 닮았어서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가벼웠다.

나는 청소를 하고 순이가 그동안 사용했던 수건들을 걷어 세탁기 앞에 쌓아뒀다. 전날 순이에게 미처 다 먹이지 못했던 물에 불려놓은 사료를 들고 멍청하게 서있기도 했다.
오후가 다 되도록 구석 구석 닦았다.

평소대로라면 고양이들은 전부 낮잠을 자고있을 시간이었다. 그런데 고양이 꼼은 나처럼 잠을 못 자고 있었다. 꼼은 순이가 있었던 집안의 구석 마다 옮겨다니며 순이를 찾기도 하고, 나에게 다가와 얼굴을 올려다보며 소리내어 말을 하기도 했다. 청소기의 소음에도 도망치지 않았고, 나중에는 내가 움직이는대로 함께 따라다녔다. 그러더니 결국 순이와 나란히 잠을 자던 자리로 가서는 순이가 있었던 공간을 비워두고 그 가장자리에 누워 혼자 잠이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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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지산에서의 연주를 잘 마쳤다.
눈이 충혈되고 아팠어서 옅은 색안경을 쓰고 연주를 했다.
작년에 에기가 떠났을 때에도 바로 그 다음날에 성남에서 공연을 해야했었다.
나는 연주에 집중하려고 애를 썼다.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에도 나는 여전히 잠을 잘 수 없었다. 거의 뜬 눈으로 다시 아침을 맞았다.

집안이 너무 조용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로, 금요일 이후 집안이 너무 조용하다.
덥고 습했던 며칠이 지나더니 저녁에는 열어둔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나는 창문앞에서 밤중이 될 때 까지 한참을, 보고싶어하며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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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5일 금요일

순이와 다시 병원에.


월요일에 동물병원에 다녀온 후, 순이의 상태가 좋아지지 않고 있었다.
새벽에 힘들어하는 고양이를 어루만지고 쓰다듬다가 일곱시가 다 되어 자버렸다. 내가 다시 깨어난 것은 오전 열시였고, 그 세 시간 남짓 사이에 아내가 일어나 순이에게 밥을 먹이고 약을 먹였다고 했다. 그러나 순이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있었다.
겨우 자리를 잡고 숨을 쉴 수 있게 되면 가쁘게 호흡을 하며 움직이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다시 병원에 급히 갔다.
병원에서도 설명을 듣거나 진료를 하느라 시간을 지체하는 일 없이 곧장 고양이를 산소처치실로 옮겼다. 흉수를 150ml 뽑아야했다. 수액을 맞추고 필요한 주사를 더 맞추었다.

긴 시간 동안 고양이가 주사를 맞으며 산소실 안에 들어가 있어야 했기 때문에, 아내와 나는 그 앞에 앉아서 순이를 지켜보며 이름을 불러주기도 하고 빌 에반스의 피아노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다. 순이는 편안한 표정을 되찾았다. 나중에는 길게 몸을 펴고 잠깐 잠을 자기도 했다.
오전 11시 반에 집을 나서서, 저녁 6시가 되어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응급처치에 지나지 않을 뿐, 순이를 완치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수의사 선생님과도 많이 대화를 나눴다.
집에 함께 돌아온 후에 순이는 걸어다니기도 하고 물을 청하여 조금 먹기도 했다. 캔사료를 따줬더니 그것을 조금이나마 스스로 먹었다. 밤중에는 서늘한 곳을 찾아 앉아 있기도 했다. 스크래쳐에서 발톱을 긁어보기도 했다. 나는 순이가 앉거나 눕는 자리마다 마른 수건과 매트를 펴주었다. 새벽에 주사기로 물을 조금씩 먹여 보았다. 낮은 접시에 물을 따라주면 순이는 혀를 내밀어 물을 적시는 정도로 맛을 보기도 했다.

순이가 다시 구석으로 걸어가 마른 수건 위에 편안히 눕는 것을 보고, 나도 그만 잠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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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4일 목요일

무거운 여름.

지난 밤에 1시 즈음 잠들었다.
리차드 보나의 새 음반을 들으며 잠이 들어버렸다. 네번째 곡까지만 기억에 남아있었다.
자리에 누운지 16분 정도 지나서 자버렸다는 말이 될 것이다.

아침 여덟시에 깨었다. 눈을 감고 더 누워있으려 했다. 그러다가 고양이 순이가 생각이 나서 마루로 나가보았다. 아내의 베개가 소파 위에 찌그러진채 놓여있었다. 아마도 밤중에 순이를 보살피느라 그곳에서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고양이 화장실들을 청소하고 물에 불려놓은 사료를 숟가락으로 곱게 으깨었다. 순이에게 약을 섞은 사료를 조심조심 먹였다.

합주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걸어나오다가 바람에 위아래로 까딱거리는 꽃들을 보았다.
사진에 담아두고 싶었다.
어릴적에는 이 꽃이 보기 싫었다. 강요받았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이름을 바꿔 부르면 문득 예쁘게 보인다. '샤론의 장미'가 영어식 이름이었을 것이다.

오후에 집에 돌아와 다시 고양이를 돌봤다. 낮에 아내가 에어컨을 틀어줬더니 순이가 숨을 쉬는 것이 조금 더 편하게 보였다고 했다. 얼려둔 아이스팩을 수건에 감싸서 순이의 자리에 놓아줬다.

다시 저녁. 순이를 위해 사료를 물에 불려놓고, 먹이다가 남은 깡통사료는 냉장고에서 꺼내어 녹여두고 있는 중이다. 순이는 얼음팩을 반쯤 안고 잠이 들어있다. 너무 체온이 내려갈 것이 걱정되어 마른 수건을 한 장 더 접어 그 사이에 놓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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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1일 월요일

순이와 병원에.


순이는 호흡이 더 가빠졌다.
고양이 순이는 점점 더 아파지고 있다.
순이를 안고서 방사선 촬영실과 병원의 복도를 돌아다녔다. 동물병원의 간호사와 의사는 입을 모아 순이에게 ‘정말 착한 고양이’라고 했다.

밤중에 순이가 욕실 앞에 다가가 앉아 있길래 쓰다듬고 안아줬다. 주사기에 물을 담아 먹였더니 아주 조금씩 목을 축일 정도로 받아먹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던 밤 시간에 순이는 창가에 누워 오랜만에 고른 숨을 쉬며 잠이 들었었다. 순이가 다시 소파 뒤 어두운 구석자리로 가기 전까지 나는 순이의 곁에 앉아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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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8일 금요일

블루스 연주


낙성대에 있는 클럽에서 J-Brothers와 연주를 했다.


덥고 눅눅한 날씨였다.
관객이 가득했다면 분위기가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더 덥고 더 습했겠지.
연주를 마치고 강변북로를 달려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비릿한 강바람이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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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6일 수요일

밴드 합주, 레슨.


겨우 합주와 레슨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다 보냈다.

알람을 맞춰두었던 시간보다 일찍 일어나, 커피를 내려 마셨다. 아내가 갈아서 만들어준 토마토와 아몬드 등을 빵과 함께 먹었다.
그리고 아직 정오가 되지도 않았는데 꽉 막혀있던 도로가 생각난다. 산책하러 나왔다가 아내에게 달려들어 얼굴을 핥고 부둥켜 안으려 하며 좋아하고 있던 개 한 마리도 기억이 난다. 아내의 얼굴은 개의 침으로 범벅이 되었고, 그 개의 주인은 삐쳐버렸었다.

합주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달려와 고양이 순이를 돌보았다.
40분 동안 마루바닥에서 잠을 자고, 다시 일어나 레슨을 하고 돌아왔다.
내일은 다시 정오에 블루스팀의 합주가 있고, 오늘처럼 저녁에 레슨이 있다.

하루에 겨우 두 개의 일을 하는 것으로 시간을 다 써버리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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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5일 화요일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들.


고양이 순이의 상태는 더 좋아지지 않고 있다.
순이가 활발하게 움직이지 못한지 한 달이 넘었다.
여름을 보내는 고양이들은 사람에게 칭얼거리거나 놀아달라고 조르는 대신에, 조용하게 자리에 앉아 물끄러미 사람의 얼굴을 보거나 아픈 고양이 곁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드는 일이 많아졌다.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들이 건강하기를 언제나 바라고 있었다.
고양이들도 사람들도 건강할 수도 있고 병을 얻을 수도 있다.
고양이들의 단잠이 더 달콤하고,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의 큰숨이 한숨처럼 들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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