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27일 토요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제까진 일기예보에서 일요일부터 온다고 했었다. 사나흘 넘게 내린다고 하니 걱정스런 마음이 든다. 가물어도 비가 와도 걱정인 시절이다.

사진 속의 고양이들의 모습은 며칠 전에 찍어둔 것들이다. 흐리고 습한 오늘 집안의 고양이들은 종일 드러누워 잠을 잤다. 이지 혼자 낮동안 이쪽 저쪽 어슬렁거리며 조용히 참견하고 다녔다.



고양이 짤이는 자주 다가와 뭐라고 말을 걸거나 몸을 부빈다. 조금 쓰다듬어주면 이내 드러누워 내 손을 움켜쥐고 그르릉 소리를 냈다. 잘 먹고 잘 자고, 언제나 점잖다. 착한 심성이나 점잖은 태도는 사람이나 고양이나 타고 나는 것 같다. 너는 매일 착하구나, 하며 안아주면 짤이는 더 크게 그르릉거리곤 한다.



고양이 깜이는 늘 심심하다. 나이 많은 고양이 언니들이 놀아주지 않으면 사람에게 불만을 늘어놓으며 뭐라도 해달라고 조른다. 먹고싶은 것이 있을 땐 갑자기 예의바르게 굴기도 하지만 저 혼자 졸음이 와도 요란하게 칭얼거리고 못본체 하면 생떼를 쓴다. 그 모습이 귀여워 무릎에 올려놓고 토닥거리면 이내 코를 골며 졸기 시작한다.



2023년 5월 18일 목요일

만년필 수리

 

지난 주에 펠리칸 펜을 쥐고 있는데 손가락 사이로 잉크가 흘러내렸다. 배럴에 틈이 벌어져 잉크가 새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한동안 펜을 계속 닦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여 잉크를 빼내고 펜을 씻은 다음 한참 들여다 보았다.

내가 펜을 노려본다고 뭐 달라질 것은 없었다. 한번 더 만년필을 잘 닦고 보증서가 들어있는 포장상자를 꺼냈다. 수입사에 수리를 맡기는 일을 작년에 해보았기 때문에 당황하거나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았다. 수리센터로 만년필을 발송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연락을 받았다.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펜을 수리하기 전에 담당직원이 전화를 해주고 어떻게 수리할 것인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 정도의 배려만으로도 수리를 부탁하는 쪽에서는 안심이 되고 신뢰감도 생긴다. 보증기간이 남아있기 때문에 정책에 따라 수리비는 무상이었다.

담당자는 배럴이 깨어져 있으므로 교체를 할 것이라면서 펜이 심한 압력을 받았나봐요, 밟혔다거나, 라고 말했다. 나는 그런 적이 없었다고 가능한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지만 어쩐지 내 목소리에 섭섭해하는 심정이 담겨서 입 밖으로 나왔다. 그분은 배럴이 깨어진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는 듯, 곧 말을 이어갔다. 배럴을 새것으로 교체할텐데, 준비되어 있는 부품은 새로 나온 모델 밖에 없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새 모델이라면 내가 작년에 사서 가지고 있는 M605 펜처럼 불투명한 배럴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잠깐 고민해야 했다. 펜을 들어 빛에 비추었을 때 배럴의 줄무늬 사이로 잉크레벨을 볼 수 있는 것이 이 펜의 특징이며 장점이었다. 불투명한 펠리칸 펜으로 변해버릴 수 있다고는 예상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잠시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내가 고민하는 사이에 아무 서두를 일이 없어 보이는 편안한 음성으로, 그 담당자가 다시 묻고 있었다. 이 배럴로 교체해도 될까요. 나는 그렇게 해주세요, 라고 말하고 통화를 마쳤다.

그래서 완벽하게 불투명한 배럴로 바뀐 펠리칸 만년필이 돌아왔다. 불투명한 펜을 써본 적 없었다면 많이 어색하고 낯설어할 뻔했다. 어쩐지 더 견고해진 느낌이지 않아, 라고 나 혼자 위로하는 최면을 거는 중이다. 이 만년필만 두번이나 수리를 받았다. 이제 아무 말썽 없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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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11일 목요일

손보아 고치기

 


지난 달엔 갑자기 설거지통 아래 배수관이 막혀서 급하게 수리를 해야했었다. 이번엔 화장실 양변기 줄눈 사이로 물이 새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오래 쓰고 있으니 수리할 곳도 생기고 바꿔야하는 것들도 보인다. 양변기를 교체하는 김에 세면기도 바꾸기로 했다. 좋은 업체를 고르기 위해 이틀동안 찾아보고 몇 군데와 통화도 했다.
약속한 날에 와주신 기술자는 솜씨가 좋고 꼼꼼한 분이었다. 그분 덕분에 욕실이 깔끔하고 쾌적해졌다. 예상하지 못한 지출을 두 달 연속 해야 했지만, 손보고 고치며 살아야 할 것들은 생기기 마련이다.

고양이 깜이는 시공이 끝날 때까지 포장상자를 차지하고 앉아서 모든 일에 간섭을 하더니, 나중엔 기술자 분과 인사도 나누었다. 

2023년 5월 8일 월요일

꽃과 밭.

 


꼭 어버이날이어서가 아니라 연휴가 지나서 길이 덜 막힐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늘 부모 두 분이 머무는 시골집으로 갔다. 모친이 하고싶어 하는 고구마 밭을 일구고 모종을 사와서 고구마를 잔뜩 심었다. 일을 마치고 장갑을 벗었더니 손이 땀에 젖어 주름이 잡혔다. 곁에 옹기종기 모여 피어있는 수레국화가 예뻐서 사진으로 담고 싶었는데 계속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