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29일 수요일

M200 Café Crème

 


갖고 싶었던 펠리칸 카페 크렘이 도착했다. 주문한지 열흘 만에 왔다. 나는 그것이 더 오래 걸릴 것으로 생각했었다.
이 펜은 7년 전에 출시되었던 한정판으로 지금은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 M200 을 산다면 이 모델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구할 수가 없었다. 트위터에서 보았던 글에서는 작년 까지도 일본의 펜가게에서는 팔고 있었다고 했는데 내 검색 능력으로는 찾지 못했다. 이베이에는 중고 물건이 어쩌다 한 번 올라오기도 했지만 원하는 닙 사이즈가 아니거나 너무 낡아버린 것들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생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값을 비싸게 매겨 놓았다.
지난 주 월요일 새벽에 우연하게 새 제품으로 이 펜을 파는 곳을 발견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주문 결제가 끝나 있었다. 어떤 검색어를 거쳐 발견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디에도 모두 품절이라는데 왜 그곳에만 새 제품이 있었는지도 여전히 모르겠다. 아무튼 독일과 홍콩을 거쳐 온다고 하길래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고 있었고 어제 인천에 도착하여 택배 송장번호로 조회가 가능해졌었다. 그러더니 단숨에 배송. 우리나라, 빠르다.

펜은 많은 사람들의 리뷰 그대로 보기 좋고 쓰기 편하다. 캡을 포스팅 했을 때의 균형감도 좋고 스틸 닙이 미끄러지는 것도 유려하다. 색상도 디자인도 마음에 쏙 들었다. 잉크창과 피스톤 필러는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엔트리 모델 라인으로 나온 제품이 이제는 구하기 힘들어 너무 비싼 값이 되어버렸다. 펠리칸은 스페셜 에디션이라고 했지 리미티드 에디션이라고 했던 적은 없으므로 언젠가 다시 만들어 주려나 하고 기대했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그랬던 적은 없었다. 손에 들어온 새 펜을 만지작 거리며 만일 이것이 언제든지 구입하기 쉬운 펜이었다면 내가 그렇게 홀린 듯 사버렸을까 하고 생각해봤다. 만년필이고 뭐고 역시 중독에 약한 사람에겐 좀 치명적이구나.


.

2022년 6월 28일 화요일

광양 성당


 


공연을 마치고 공항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어찌나 졸음이 쏟아지던지 음식을 먹으면서도 잠을 자고 싶었다. 대화하려 하면 발음이 뭉개졌다.
밥을 먹고 식당에서 나왔을 때 가까운 곳에 천주교 광양교회가 보였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저 종탑을 보아서 (종 같은 것이 있는지는 모른다) 기억하고 있었다. 사진으로 보았던 저 성당 안에 있는 조형물들이 아름답고 따뜻해 보여서 언젠가 한 번 방문해보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그냥 지나쳐 와야 했다.
비가 개인 하늘은 기지개를 켜는 듯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이틀 사이 두 개의 공연을 잘 치르고 배부르게 저녁을 먹었더니 피곤이 몰려와 나도 하늘 마냥 늘어져 눕고만 싶었다.

오고 가는 길이 먼 일정들은 늘 힘이 든다. 아프지 않은 곳이 없더니 집에 돌아와 바닥에 길게 누워 잠깐 눈을 감고 있는 것 만으로 조금 나아졌다. 눈을 떠보니 고양이 깜이가 조용히 곁에 와서 나란히 누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샤워를 하고 아홉 시간 동안 잠을 잤다. 무슨 꿈을 꾸었는데 제주의 파란 하늘도 나왔던 것 같았다.

.

고양시, 제주시에서 공연.

산매 꼬마야 님이 찍어주심.

 토요일에 고양시에서, 일요일에는 제주도에서 공연을 하고 왔다. 저녁이 아니라 낮 시간에 시작하는 공연들이었다. 두 시간이 넘는 공연 시간 동안 큰 통증 없이 잘 했다. 이제 괜히 긴장하고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만 잠을 못 자서 힘이 들었다. 이틀 공연하는 내내 눈이 감기고 심지어 무대 위에서 여러 번 하품도 하였는데 공연 후에 생각해보니 관객들에게 하품하는 모습이 다 보였을 것 같았다. 내가 그런 것을 조심하지 못할 만큼 피곤했었던 것 같다. 이미 보인 거야 뭐 할 수 없지만 주의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제주 공연장은 몇 번째 가본 곳이어서 리허설을 마친 후 비어있는 대기실을 찾아 혼자 한 시간 정도 잠을 잤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프로비덴스 코러스는 제 역할을 잘 해줬다. 고양시에서 공연할 때에 팝업 노이즈가 심했던 것이 신경 쓰였는데 제주에서는 페달을 밟았을 때 잠깐 소리가 나지 않는 증상이 있었다. 전류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역시 오래 쓰지 않은채 서랍에 넣어둔 탓에 풋스위치에 녹이나 먼지때가 끼였기 때문인 것 같다. 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문제는 소란스런 곡을 연주할 때 여러번 스위치를 밟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제주 공연장은 매진이라고 하더니 과연 관객석에 빈 자리가 없었다. 공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공연장에 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청중들이 가득 찬 극장에서 연주하는 것이 기분 좋았다.


.

2022년 6월 19일 일요일

22, Seoul Pen Show


'펜 쇼'에 처음 다녀왔다. 나는 잠을 안 자고 커피 석 잔을 마신 후에 아내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갔다. 행사가 열리는 충무아트센터에서 오래 전에 공연을 했었기 때문에 그곳에 주차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요일 낮 지하철은 쾌적했다.

행사 장소는 넓지도 좁지도 앉은 홀이었는데 오전부터 이미 사람으로 가득했다. 문 밖에서 보이는 것은 온통 사람들, 펜 보다 사람의 숫자가 더 많아 보였다. 성황이었다. 펠리칸 펜들을 잔뜩 진열하고 계셨던 분이 최고였다. 나는 그 앞에 세 번이나 가서 제일 오래 머물렀다. 사람들이 가득하여 비좁았기 때문에 마냥 그 자리에 눌러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몇 개 집어들고 잉크를 찍어 써보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잘 참았다. 종이에 몇 줄 선이라도 긋기 시작했다면 분명히 한 개 정도는 사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처음 가보는 행사였어서 더 그랬겠지만 나는 아주 재미있게 구경했다. 아내는 연필깎이를 샀다. 나는 아무 것도 사지 않은 나를 속으로 칭찬했다. 그대신 그동안 사진으로 보았던 펜들을 직접 보며 조금 더 공부해 볼 수 있었다. 가을에 다시 행사가 열릴 때엔 얼마 정도 돈을 챙겨서 갈지도 모르겠다.

행사장 길 건너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왔다. 허리에는 통증이 심하고 졸음이 쏟아져서 힘들었는데도, 오랜만에 걸어다니며 사람 많은 곳을 경험했더니 기분이 좋아졌다. 다녀오길 잘 했다. 혼자였다면 또 귀찮아하며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꺼이 함께 동행해준 아내에게 고마와했다.


.

2022년 6월 13일 월요일

식구들과 세상에서.

 


천둥소리가 서너 번 들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식구들은 모두 자고 있다. 조용히 걸어가서 열어뒀던 베란다의 창문을 닫고 왔다. 비오는 소리, 스틸 펜촉이 종이 위를 지나가는 소리 사이로 고양이 깜이의 잠꼬대가 들렸다.

올해 초부터 컴퓨터로 글쓰기를 멈추고 만년필을 손에 쥐고 공책에 쓰기를 시작했다가, 그만 펜의 세계라는 수렁에 빠졌다. 어지러운 세상이 되어버려서 한가로이 취미나 즐길 때가 아니라는 자책과 이런 것에라도 몰두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만족이 매번 교차한다.

선거들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우리의 사회가 욕망의 세력과 염치의 세력이 반씩 나눠진 정도는 되는 줄 알았던 것이 그냥 판타지였던 것 같기도 하다. 거창한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평화롭고 안전하게 식구들과 세상을 사는 일이 이제 대단한 일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