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27일 수요일

가을

 

무릎 사이를 지나는 바람이 춥게 느껴지는 새벽에, 가을이 왔구나 했다.

세월은 빠르고 자연은 참 무심하다. 토요일 공연 사진을 한 장씩 넘겨보고 있었다. 밴드 리더님과 만나서 그의 노래들을 함께 연주하며 지내온 지 햇수로 십팔년째 되었다. 긴 시간인데 무슨 계절이 한번 바뀐 듯 지나갔다. 듣고있던 음악을 끄고, 서버에 남아있는 식은 커피를 컵에 따라와 벌컥 마셨다.

2023년 9월 26일 화요일

고양이와 병원에

 

열네살 고양이 이지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가서 정기 진료를 받았다.

이지는 이제 혈당수치가 안정적이 되어서 하루 이틀 인슐린 주사를 놓아주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며칠 기력이 없어보여 몇 가지 검사를 추가로 하고, 피하수액을 조금 맞추었다. 진료를 마친 뒤에 곧 집에 갈 것을 알고있는 이지는 얌전하게 케이지 안에 앉아 있었다. 이지를 돌보기 위해 아내는 올 여름 전체를 집에서 보냈다. 넉 달 동안 아팠던 쪽은 고양이이고 고생을 한 쪽은 아내였다. 기대했던 것처럼 빠르게 완치되지는 않았지만 이지의 성격처럼 조용히 느리게 낫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된 고양이 짤이가 이지의 곁에 슬그머니 다가가 함께 있어줬다. 이지는 까만 고양이가 다가오면 우선 꿀밤을 때려주고 보지만 짤이에겐 친절하다. 종이상자 안에 두 고양이의 숨소리가 빙빙 돌고 있었다. 나는 곁에 엎드려 팔을 뻗어 고양이들을 쓰다듬어줬다.


2023년 9월 23일 토요일

어울림극장

 

고양 어울림극장에서 공연을 했다. 13년 전부터 몇 년에 한번씩, 그리고 지난 해 여름과 이번 공연까지 합치면 이 곳에서 여섯번째 공연이었다.

약속 시간 삼십분 전에 도착하였는데, 다른 멤버들은 이미 모두 와있었다. 내가 일찍 출발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사람들을 오래 기다리게 할 뻔했다. 리허설은 금세 끝났다.

그 동네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가까운 곳에 좋은 공연장이 있어서 좋겠다고 생각했다. 좀처럼 하지 않는 일이지만 오늘은 극장 입구에 앉아서 찾아온 손님들과 인사를 했다. 공연 삼십분을 앞두고 급히 무대 뒤로 가려는데 규칙대로 일하고 있는 직원분들이 가로막아 대기실에 들어가지 못할 뻔했다. 무대 스탭 한 분이 나를 발견하고 안내해주어 간신히 연주할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나는 혼자 긴박한 일을 겪었지만 그렇게 정확하게 자기 일을 하는 분들이 있어서 극장이 잘 운영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2023년 9월 20일 수요일

녹음

 

4년만에 가평 녹음실에 갔었다. 종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일찍 일어났고, 조금 이른 시간에 출발하여 여유롭게 도착했다.

두 곡을 녹음했고, 나는 내 악기의 녹음을 마친 뒤에 악기를 주섬주섬 챙겨 집으로 먼저 돌아왔다. 아침에 나올 땐 내 할 일을 끝낸 뒤에도 모처럼 스튜디오 안에서 뒹굴거리며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피곤한 기분이 계속 나를 귀찮게 했다. 계획보다 너무 일찍 일어났고, 기운이 없어지고 있었다.
모든게 체력에 달려있다. 나는 운동해야 하는데, 통증이 있다는 핑계로 몸을 움직이지 않으며 지내고 있다. 집에 돌아와 발목과 허리에 붙인 파스를 떼어내면서 내가 너무 약골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3년 9월 18일 월요일

많이 움직였다.


 아침 일찍 시골집에 가서 부모 두 분을 태우고 서울집에 모셔다 드렸다. 시골집에서 무거운 것들을 좀 옮기고, 돌아오는 길에 식당에 들러 함께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40분 동안 선잠을 잤다.

합주연습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수요일에 녹음하는 곡들을 연습하기 위해 모이기로 했다. 이른 저녁 시간이어서 지하철을 타고 다녀왔다. 퇴근 시간에 이 동네에서 서울 쪽으로 운전하려면 도로 위에서 음악을 아주 많이 들어야 한다.

지하철 역까지 가는 길에 삐쭉삐쭉 솟은 아파트 건물과, 삐쭉거릴 건물들을 더 짓기 위해 공사가 한창인 현장이 보였다. 이십년 전에 내가 이 동네에 왔을 땐 고요하고 한적했던 시골이었는데 이젠 주차할 자리도 모자란 작은 도시처럼 변했다.

연습을 마치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올 때엔 피로가 밀려왔다. 잠이 부족하고 이른 시간부터 긴 시간 운전을 했던 것 때문이었나보다. 등에 메고 있는 악기 가방이 무겁게 느껴졌다. 땀이 많이 났는데, 골목길에서 휙 지나가는 바람이 시원했다.


2023년 9월 16일 토요일

영덕 인량마을에서

 

모텔에서 나와 근처 커피가게에 가서 샌드위치와 커피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이른 시간이어서 가게엔 손님이 나 한 사람이었다. 사장님은 70, 80년대 소프트 록 음악을 틀어놓았는데, 창 밖의 빗소리에 섞여 듣기 좋았다. 한 시간 쯤 지나자 가게 안이 북적일만큼 손님들이 들어왔기 때문에 나는 커피를 내 보온병에 담아 가지고 나왔다.

약속보다 두어 시간 일찍 오늘 연주할 인량마을 고택에 도착했다. 잠깐 비가 덜 오는가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빗방울이 굵어졌다. 근처 주차장에 차를 멈추고 삼십여분 선잠을 잤다.
이윽고 멤버들이 모두 도착했다. 천막 위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리허설을 했다. 비가 내리는 덕분에 오늘밤 음악소리는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습기 때문에 악기가 물을 머금은 것처럼 젖어버렸다.
공연과 녹화를 마친 후에 방송 조명 아래에서 그림처럼 보이던 기와집 처마들을 두리번거리며 구경했다. 연주가 끝났을 때에 비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자동차 시동을 걸었는데, 집에 가면서 들을 음악을 고르느라 한참 더 차 안에 머물러 있었다. 집까지 네 시간, 새벽 한 시에 도착했다. 편의점에 들러 사온 왕뚜껑 라면과 김밥을 먹고 조금 전에 끝난 토트넘과 셰필드 유나이티드 경기의 요약본을 보았다. 소화를 시키기 위해 뉴스를 보고, 집안을 어슬렁거리며 잠자고 있는 고양이들을 쓰다듬다가 다시 새벽에 되어서야 잠들었다.




2023년 9월 15일 금요일

깊은 밤 영덕으로

 


어제 목요일에 회기동에서 친구들과 함께 하는 팀과 합주연습을 했다. 새벽에 두어 시간 자고, 정오에 네 시간 넘게 더 잠을 자두었다. 다음날 영덕에서 연주하기 위해 오늘 하루 먼저 그곳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멤버들은 승합차로 내일 오전에 출발하기로 했다. 나는 혼자 운전하는 쪽을 선택했다.

저녁 일곱시 반에 집에서 출발했다. 보온병에 커피를 가득 담아 운전하며 조금씩 마셨다. 광주휴게소에 들러 라면을 먹고 햄과 치즈가 들어있는 샌드위치를 사서 가방에 넣었다. 원주와 제천을 지나는 중에 무서울만큼 센 빗줄기를 맞으며 운전했다. 

밤 열한시 반에 영덕 톨게이트를 지났다. 낮에 예약해둔 모텔을 찾아가는 중에 아내로부터 문자메세지를 받았다. 조금 전에 측정한 고양이 이지의 혈당수치를 적어보내며, 인슐린 주사 후 열 여덟시간이 지났는데 혈당이 정상적인 수치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알려줬다. 자정에 모텔에 도착하여 짧게 통화를 했다.

모텔 방에서 조명이 밝은 곳을 찾아 책상으로 삼고, 아이패드로 다스뵈이다를 보면서 쉬었다. 휴게소에서 사온 샌드위치와 집에서 가져온 커피를 먹고 가방에 챙겨온 공책과 펜을 꺼내어 글을 썼다.

일부러 하루 전날 공연하는 동네에 온 이유는 좋은 컨디션으로 일을 하고 집에 돌아가기 위한 것이었다. 운전하며 듣고 있던 음악을 아이패드로 틀어두고 침대에 드러누웠더니 갑자기 피로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그만 한 시간 쯤 지나 잠을 깨었고, 동이 틀 때까지 못잤다. 아내로부터 다시 이지의 아침 혈당이 얼마나 나왔는지, 인슐린은 얼마나 주사했는지 듣고 나서 잠이 들었다.


2023년 9월 9일 토요일

임진각

 

파주에 다녀왔다. 포크페스티벌, 7년만에 다시 가보았다. 그 해 일정과 비슷하게 다음 주엔 고택음악회에 연주하러 간다. 칠년 전엔 안동이었다. 이번엔 영덕이다.

나는 조금 일찍 출발하여 파주에서 인호형을 만나 함께 늦은 점심을 먹었다. 토요일 낮 외곽순환도로는 길이 많이 막혔다. 집에서 임진각까지 두 시간 십분이 걸렸다. 시원하게 열린 하늘엔 새 모양 연들이 날고 있었다. 탁 트인 푸른 잔디 언덕이 거기에 그대로 있었다. 이곳도 만들어진지 벌써 18년이 되었다. 공원 여기 저기에 적혀있는 평화, 통일 같은 글자도 하늘과 잔디처럼 그냥 그대로 있었다.

예상했던대로 공연시간은 지연되었고, 늦은 밤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은 관객들을 위해 준비한 것 외에 두 곡 더 연주했다. 무대 아래로 호수가 있어서 습기가 가득했다. 악기에 물기가 맺혔다. 악기를 말리기 위해 자동차에 악기가방을 싣고 지퍼를 열어 놓았다. 돌아올 때엔 아는 길이라고 생각하여 내비게이션 앱을 켜지 않았다가 하마터면 길을 잃을 뻔 했다. 급히 앱을 켜서 제대로 길을 찾은 뒤엔 마이클 브렉커의 Pilgrimage 앨범을 들으며 운전했다.

2023년 9월 8일 금요일

늦여름


 아직 덥지만 해가 지고 나면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습도와 기온이 조금 낮아지니까 고양이 식구들은 낮 시간을 즐기고 있다. 이지는 혈당수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서 인슐린 주사를 한 번씩 건너뛰어보기도 하였다.


짤이와 가까이 드러누워 올 여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거짓말이다)


다 모르겠고 나는 뒹굴며 놀으련다, 라는 태도인 깜이는 낮동안 볕을 쬐다가 그늘에 숨기를 반복하여 지냈다.


2023년 9월 7일 목요일

논산 공연


음악을 들으며 논산을 향해 운전했다. 올해엔 분기별로 메탈리카, 팻 메스니, 에릭 클랩튼의 새 앨범들이 제일 좋았다. 세 장의 음반이 다 끝나기 전에 공연장에 도착했다. (이름만 보면 삼십년 전 어느 해의 음악 이야기 같다) 

극장 길 건너편에 샌드위치 가게가 보였다. 아직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그것이 먹고 싶어져서 주차장에서 만난 민열이에게 제안을 했다가, 이미 도시락이 준비되었다는 말에 거두었다. 하늘은 맑고 전봇대 위엔 새 한 마리가 앉아 볕을 쬐고 있었다.


이틀 전부터 살짝 허리에 통증이 느껴져서 일부러 가벼운 악기를 가지고 갔다. 14년 된 내 Moollon J-Classic 은 피니쉬가 군데 군데 벗겨지고 바디에 상처도 많이 났지만 소리는 더 좋아졌고 여전히 연주하기 편하다. 가벼워서 두 시간 넘게 연주를 한 뒤에도 덜 힘들었다.

체중이 불어서 몸이 유선형으로 되어버렸다. 몇 킬로그램 늘어나니 무릎에 무리가 생기는 기분도 든다. 이 날엔 유난히 관절에도 통증이 있고 양쪽 손목도 아팠다. 몸에 파스를 붙이고 있었다. 사진에 담긴 모습은 자세도 불편해 보인다. 다음 달까지 이어지는 일정들을 잘 해내려면 살을 빼고 잠을 잘 자둬야겠다.


공연을 마친 후 악기를 챙겨들고 그대로 주차장에 가서, 자동차 시동을 걸고 집으로 출발했다. 무엇 때문인지 연주 도중에 조짐이 느껴지더니 집에 도착할 즈음엔 잇몸이 살짝 부어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서 대표팀과 웨일즈의 친선경기 중계를 보겠다고 버티다가, 결국 깊이 잠들어버렸다.

2023년 9월 5일 화요일

흙과 초록

 

시골집엔 나비가 가득 날아다녔다. 덥고 습한 오후에 나비들도 사마귀들도 개구리들도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있으면 먹는 호박과 있어도 잘 먹지 않는 호박잎을 잔뜩.


그리고 오이와 가지를 봉지에 담아 받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