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21일 일요일

고양이와 평화롭게.


늘 하던대로 홀딱 벗고 자다가 그만 추워서 몸을 떨며 일어났다.
이제 올해의 더위는 마지막회일까. 혹시 에필로그가 남아있을까.

하늘이 높고 선선해지니까 공기의 냄새가 감정을 과장시킨다.
집에 혼자 있을 때에는 알지 못하다가도 외출하여 누군가들과 함께 있으면 오히려 부쩍 혼자처럼 느껴졌다.

집에 다시 돌아오면 고양이 순이와 함께 평화로왔다.
나도 순이를 흉내내어 같은 모습으로 드러누워있다가 잠이 들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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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17일 수요일

줄을 삶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많이 습하다.
올 여름에 악기의 줄들이 쉽게 못쓰게 되어버렸다.
집안 청소를 하다가 생각이 나서, 오랜만에 물을 끓여 줄 세탁을 해보았다.
내 방법은 줄을 풀어 세제로 잘 닦은 후에 끓는 물에 3~4분 정도 넣어 약한 불로 가열하는 것이다. 줄을 물에서 꺼낸 뒤에 잘 말린 다음 적당히 왁스를 발라주는 정도이다.

새것처럼 될 수는 없지만 조금 더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효과는 볼 수 있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 줄은 아예 조율이 안될 정도로 못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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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16일 화요일

마커스 밀러.



마커스 밀러의 새 음반, Silver Rain을 듣고 있다.
이번에는 Sophisticated Lady가 담겨 있다. 그 곡을 좋아해서 종일 틀어두며 듣고 있다.
마커스 밀러는 자신만의 음악적인 레시피 같은 것이 있나보다. 예를 들어 정해진 순서와 방법으로 이 곡은 요런 재료로 요렇게, 저 곡은 저렇게, 라고 하는 규칙이 있는 것 같다. 아주 안전한 결과물이 단정하게 생산된다. 파격적이지 않다고 해도 다수의 입맛에 꼭 맞는다.
그의 오리지널도 좋지만 앨범마다 스탠다드 한 곡씩을 커버해주는 것도 고맙다.
그의 편곡은 꽤 훌륭하다. 1시간 20분이 금세 지나가는 즐거운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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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 고양이.


아직 어린아이인 고양이 순이는 내가 집에 있는 동안에 항상 졸졸 따라다닌다.
내가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어김없이 책상에 올라와 나와 마주보고 코를 맞댄다.
아주 더운 여름이다.
더운 날씨에 고양이가 발목에 달라붙거나 앞에 다가와 코를 대고 있으면 더 덥다. 털옷을 입은 고양이는 나보다 더 더울 것이다.
내가 집을 비우면 혼자만 있어야 하는 고양이 순이.
항상 미안하고 고맙다고 생각했다.
얼굴을 쓰다듬고 입을 맞춰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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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12일 금요일

비오니까 좋다.


많이 덥고 습했다.
아침이 밝아올때까지 빗소리를 섞어 음악을 들었다.
고양이 순이는 밤새 울었다.
울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달려와서 가슴에 머리를 부볐다.
나는 요즘 자주 눈이 아프다.

오늘 밤의 공연은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가기가 귀찮다.

잠을 못자고 있기 때문에 알람을 맞춰두고, 잠깐 졸다가 일어나려고 한다.
고양이 순이의 그릇에 물을 따라주고, 사료를 담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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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7일 일요일

종일 마루바닥에 있었다.


매일 덥고 습하다.
하루 종일 연습을 하다가 문득 쳐다보면 순이는 저렇게 앉아 있었다.
다시 쳐다보아도 계속 저렇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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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가라앉아있다.


뭔가 침체기가 찾아왔다.
의욕이 뚝 떨어지고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잃었다.

Yellowjackets 의 연주를 들으며 하루를 보냈다.
지미 하슬립의 연주 모습을 상상해봤다. 아직 동영상을 찾아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6현 MTD에 줄을 거꾸로 감아 사용한다. 왼손잡이인데 처음부터 저렇게 연주를 시작했던 모양이었다. 저 형과 마주 앉아서 베이스를 배우게 된다면 상대방의 손가락을 보고 익히기에 수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습하고 덥다.
새 줄로 갈기 전까지는 연습 따위는 그만둬야지, 생각하다가도 불안하여 악기를 잡았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이럴때엔 그냥 음악이나 듣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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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2일 화요일

양쪽 끝은 닮았다.


클래식 오디세이라는 TV프로그램을 보면, 진행자인 아름다운 여자분이 언제나 드레스를 입고 나온다.
진행자의 말투와 어감도 격조있다. 심지어 근엄하기까지 하다.
카메라를 바꿔 쳐다볼 때 마다 언제나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원고를 읽는다.
누가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는걸까, 나는 그 모습을 볼 때 마다 생각해본다.
여자가 미소를 짓지 않으면 불편하게 보는 사내들이 있기 때문일까?
'고급음악'을 소개할 때엔 대충 단정한 옷 정도를 입어서는 부족하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엄숙한 분위기와 고급스러우려고 시도한 배경화면, 단편적인 정보를 나열하고 있는 설명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드레스를 보면 미안하지만 막 우습다.
지난 번엔 그 진행자분에게 어깨가 드러나보이는 드레스를 입혔는데, 어두운 색의 긴 치마여서 오히려 더 더워보였다. 그렇게 격식을 차린 설명 뒤로 소개된 영상은 털털하게 셔츠를 풀어헤치고 야외에서 자유롭게 연주하는 요요마였어서 더 웃겼다.

매스미디어가 일반 시민들을 계몽해야 한다는 강박, 후졌다.
음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은 모두 사람들에게 이런 것 좀 들어보라며 문화를 배우라고 가르치려는 듯 보인다. 그러다가 간혹 진행자가 일으켜 세워서 인사를 시키는 사람들은 무슨 시장이거나, 군수, 도지사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아주 일찍 음악회장에 오는 것이 틀림없다. 항상 맨 앞 자리에 앉아있다.

얼마 전에 이상한 쇼프로그램에 이상한 애들이 나와서 바지를 벗고 뛰어다녔다고 하여 말이 많았다.
그들이 자신들의 어느 부분을 사람들에게 생방송으로 보여준 것이 뭐 그렇게 대수인가 생각은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내가 우습게 여겼던 근엄한 프로그램의 드레스가 떠올라 겹쳐진다.
그들이 보여준 행위의 교훈이라면 알맹이 없는 사람일수록 늘 껍데기만 뒤집어 씌우려하는줄만 알았는데, 반대로 껍데기를 벗는 사람들도 있다는 정도라고나 할까. 펑크니 인디니 흉내를 내보려면 공부는 아니라고 해도 조금의 사색 정도는 있었으면 좋았다. 외피만 가져온채로 내실이 없는 경우, 사람은 그렇게 된다.

그 둘은 닮았다. 벗고 뛰어다닌 청년들은 행위에 대한 근거가 없고, 필요없이 차려입은 사람들은 격식 속에 내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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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웠다.


며칠 동안 마음이 어지러웠다.
이 동네에 이사를 온 후 처음으로 강가에 나가보았다. 그곳에 앉아서 모기에 물어뜯기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생각했다. 강바람은 음습하고 내음이 비릿했다.
쓸모없고 소모적인 일인 줄 알면서도 나는 감상적이 되어버릴 때가 자주 있다.

집에 돌아와 몸을 씻고, 안소니 잭슨이 연주한 미셀 카밀로, 스티브 칸, 미셀 페트루치아니, 존 스코필드의 음악들을 계속 들었다. 듣고 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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