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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20일 토요일

Dave Grusin

 


내가 스무 살, 이십대 초반에 들었던 음악 중에는 그 무렵 인기 있었던 GRP 레이블의 음악이 많았다. 당시 새로운 기술이었던 디지털 레코딩, 디지털 믹싱, 디지털 마스터링으로 제작했다고 하여 시디에 DDD 마크를 표시해두기도 했던 레이블이었다. 나는 나보다 음악을 많이 알고 있었던 친구집에 찾아가 음악을 듣기도 하고 LP나 시디를 빌려오기도 했었다. 그 중에 데이브 그루신의 1977년 앨범 One Of A Kind 도 있었다. 데이브 그루신은 그 이듬해인 1978년에 Larry Rosen 과 함께 GRP Records 를 시작했다. 나는 이 앨범을 친구가 가지고 있었던 LP로 빌려와서 카세트 테잎에 담아 카세트 플레이어로 들으며 다녔었다. 그 음반은 1984년에 GRP 에서 다시 발매했던 리이슈였다. 

그 즈음 어디에선가 우연히 만났던 여자아이가 한 명 있었다. 그 친구는 자신이 음악을 아주 좋아한다면서, '가요'는 안 듣는다고 했었다. 보사노바 얘기를 하고 스팅을 좋아한다고 했었는데, 어느 날 내가 그에게 데이브 그루신의 Modaji 를 들려줬었다. 음악이 시작된 후 1분 쯤 지났을까,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노래는 언제 나와?' 라고.

그 다음에 한 번 더 만났었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서로 별로 호감이 없었던 것 같다. 어쨌든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그 친구는 나에게 '가요를 싫어하며 데이브 그루신 음악에 노래가 없어서 실망했던' 사람으로 남았다.

빌려왔던 LP를 카세트 테잎에 옮겨 담은 다음 친구에게 음반을 돌려줬다. 그래서 오래도록 그 앨범을 들었으면서도 앨범에 참여했던 연주자들을 알지 못했었다. 알려고 했다면 찾아볼 수 있었을텐데 나는 귀찮았던 모양이다. 이십년 전에 나온 데이브 그루신의 베스트 앨범을 듣다가 생각이 나서 '노래가 나오지 않는' Modaji 의 베이스 연주자를 검색해봤다. 프란시스코 센테노라는 사람이었는데 나에게는 낯선 이름이었다. 이미지 검색을 해보니 오래 전 대학로 카페에서 틀어주던 뮤직 비디오에서 봤던 연주자였다. 유튜브 링크를 찾아보니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함께 연주하며 노래도 하던 그분이었다.

앨범 One Of A Kind 에 수록되어 있던 다른 곡 중 Playera 의 베이스는 론 카터였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됐다. 드럼은 스티브 갯. 나는 그 베이스 소리가 론 카터였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그 곡을 들으며 그 베이스 사운드는 분명 일렉트릭 플렛리스 베이스일 것이라고 상상했었다. 그 앨범의 베이스 연주자는 프란시스코 센테노와 론 카터 두 사람이 맡고 있었다. 드럼은 모두 스티브 갯, 색소폰은 그로버 워싱턴 쥬니어였다. 

그러고보니 나는 데이브 그루신의 GRP 음반인 조지 거쉬윈 커넥션이라는 앨범도 가지고 있었는데, 시디와 함께 들어있던 두꺼운 책자와 종이로 되어있는 겉표지만 있고 플라스틱 케이스와 시디는 보이지 않고있다. 봄이 되면 방안의 물건들을 모두 끄집어 내어 꼭 한번 정리를 해야겠다.


2021년 3월 19일 금요일

Chrlie Parker Jam Session


 나는 이 음반을 26년 전에 샀다. 아무 정보 없이 음반가게에서 시디를 고르다가 겨우 네 곡이 들어있는 이 앨범을 보자마자 얼른 구입했다. 겉면에 어마어마한 연주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이 녹음 시리즈에 대해 읽고, 나머지 음반들을 구하기 위해 돌아다녔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 그 후에는 그것에 대해 잊고 지내다가 얼마 전에 생각이 나서 시디를 꺼내어보았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시디가 훼손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시디의 뒷면에 흠집이 크게 났는데 첫번째 트랙에서 계속 튀는 잡음이 들리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이 음반은 그동안 컴퓨터에 옮겨 담아둔 적이 없었다. 아마 시디에 상처가 난 것이 먼저였고, iTunes 가 등장한 것이 그 이후였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혹시 음악파일로 변환을 하면 괜찮아지지는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럴 리가 없었다. 나머지 곡이라도 음원파일로 바꾸어 컴퓨터에 넣고, 애플뮤직에 이 음반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처음에는 발견할 수 없었다. 역시 없는 것인가 생각하다가, 내가 계속 찰리 파커의 이름으로만 검색하고 있었던 것을 알았다. Norman Granz 의 이름을 검색했더니 애플뮤직에 이 녹음의 전체 시리즈가 쨘, 하고 나타났다. 급히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틀었다. 선명한 모노 사운드가 멋지게 들리고 있었다.

이 녹음은 한반도가 전쟁으로 망가지고 있던 1952년 7월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진행되었다. 노만 그란쯔는 수완이 좋은 프로듀서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연주자들에게 깊은 신뢰를 얻고 있었던 사람이었나 보다. 이 연주자들을 동시에 모아놓고 녹음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 레코딩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재즈의 전설들이고, 그 무렵에도 이미 각 악기의 최고들이었다. 그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 것이 스스로도 꽤 자랑스러웠던지 노만 그란쯔가 쓴 음반해설을 보면 신이 나있다. 애플뮤직에 음원들이 모두 있는 덕분에 며칠은 이 시리즈들을 계속 듣고 있는 중이다. 앨범 표지 그림이 내가 가지고 있는 시디보다 조금 못난 것을 빼면, 곡마다 참여한 뮤지션들의 이름을 모두 잘 적어놓은 점도 좋았고, 내 시디보다 음질도 좋았다.

애플뮤직에서 찾은 같은 앨범.

그래서 플라스틱 상품인 내 오디오시디는 기념품처럼 벽 한 구석에 다시 놓여지고, 69년 전의 기념할만한 녹음을 방금 다운로드한 음원으로,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기분좋게 듣고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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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이 시리즈들을 모두 듣고 보니 네 장의 디스크마다 블루스가 있고, 모든 연주자가 한 곡씩 골라 솔로를 진행하는 긴 발라드 메들리도 두 트랙이나 더 있었다. 누군가 도중에 엎질렀는지 물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여유롭게 연주하고는 있지만 무서운 실력자들끼리의 긴장감도 느껴진다. 템포가 빠른 곡에서 각자 네 마디씩 순서대로 주고받는 솔로는 매우 즐겁다. 어느날 오후 내내 옛 재즈를 쉬지 않고 듣고 싶다면 추천할만하다. 

2021년 3월 8일 월요일

iPod Classic.

 


1월 중순에 아이팟 클래식을 다시 사용해보려고 했다가 컴퓨터에 있는 음악들을 제대로 채워넣지 못했었다. ( 아이팟 얘기 )

오래 사용하고 있는 내 아이폰의 전지가 점점 쉽게 방전되고 있기도 했고, 음악을 들을 때에는 방해받지 않으며 음악만 듣기 위해 이 구형 아이팟을 다시 쓰고싶었다. 지난번 실패 이후 곰곰 생각하다가 내가 애플뮤직을 사용한 이후 컴퓨터에 담아뒀던 음악파일들이 iOS 기기들과 동기화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애플은 맥오에스에서 iTunes를 없애고 Music 이라는 어플리케이션으로 음악을 관리하도록 해놓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음악들은 모두 어딘가에 있는 (어디에 있는지 나는 모르는) 애플의 서버에 올려져 있었고, 그것을 다시 모두 다운로드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었다.

문제는 파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맥의 내장 하드디스크에 보관했던 음악파일들은 백업 하드에 따로 옮겨둔 다음 모두 지웠다. 그리고 Music 앱에서 내 파일들을 전부 다운로드 하기 시작... 꼬박 이틀동안 파일들의 대부분을 다시 내려받았다. 다시 아이팟 클래식을 연결하여 동기화를 했고,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걸려 음악파일들을 담을 수 있었다.

그나마 재즈만 옮겼을 뿐인데 가득 차버렸다.

SSD 시대에 하드디스크로 수 많은 작은 파일들을 전부 내려받고, 그것을 다시 오래된 소형 하드디스크로 옮겨 담아야 했으니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납득할만 했다. 그런데 맥 오에스와 옛 iTunes 를 계승한 Music 앱에는 문제가 너무 많았다. 우선 모든 동작이 느리고, 뭔가 불합리했다. 같은 앨범의 다른 버젼을 애플뮤직에서 구독했을 때에 내 파일을 삭제해버리기도 했다. 수 많은 에러가 속출하고 음악의 정보는 뒤섞였다. 애플뮤직에서 구독하고 있는 음원들은 어차피 아이팟 클래식에서 재생할 수 없다고 해도 원래의 내 파일들은 올바르게 보관되었어야 했다. 그 음원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CD들에서 모두 리핑해뒀던 것들이었다. 별 것 아니긴 하지만 나름 긴 세월 동안 완벽하게 정리해뒀던 것들이는데, 쟝르의 명칭도 멋대로 바뀌어버렸고 어떤 파일들은 정보가 누락되어 트랙 넘버가 맞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또, 컴퓨터에 새로 넣어둔 음원들은 제때에 클라우드로 업로드되지도 않았다. 나는 백업해뒀던 내 파일들을 다시 가져와 '보관함에 추가'하는 작업을 일일이 수동으로 하여 바로잡아야했다. 역시 걸핏하면 에러, 속도는 물론 느리다.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준다고 해도 매달 돈을 지불하는 서비스인데, 이것은 너무 바보같은 체계이거나 아니면 그들 중 아무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애플은 지난 이십 년 동안 너무 규모가 커져버린 것 아닐까.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잘 해내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애플을 흉보며 동기화를 마친 아이팟을 손에 들고 음악을 틀었다. 그리고 나는 곧 그 불만들을 금세 잊어버렸다. 12년이나 지난 옛 기계는 새것처럼 잘 작동했다. 여전히 아이폰보다 음질이 더 좋았다. 갑자기 마음이 너그러워져서, 그래, 애플이 옛날에는 언제 뭐 멀쩡했었던가, 하는 생각도 하고.





2021년 1월 16일 토요일

아이팟


서랍을 정리하다가 옛 모델 아이팟을 꺼내어 충전을 했다. 불과 6년 전까지도 매일 들고 다니며 사용했던 기계였는데 더 이상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새 맥오에스에서 이제는 제대로 동기화가 되지도 않았다. 나는 애플뮤직을 사용하고 있고, 아마도 그 이유로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보관함을 바르게 싱크로나이징 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제조한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지원하지 않는 구형 기계가 되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멀쩡히 작동하는 기계를 사용할 수도 없게 해놓았다니.

내 아이폰은 벌써 4년이나 되어서, 이제 슬슬 배터리가 빠르게 닳아 없어지고 있다. 배터리를 교환하면 더 쓸 수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 하고싶지는 않고, 자동차 안에 두고 다니며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하드디스크 아이팟에 음악을 새로 담아두고 싶었다. 결국 동기화가 되지 않는 기계를 다시 서랍에 넣어두고, 해결방법은 나중에 찾아보거나 하기로 했다.

가끔 선잠이 들었을 때에 나는 어릴적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수십 년 전에, 나는 어두운 방에서 손끝으로 더듬어 오디오의 시디 트레이를 열고, 음악 시디 한 장을 용케 집어넣어 작은 음량으로 틀어둔채 잠들고는 했다. 지금 내 자동차에는 시디 플레이어가 있긴 하지만, 나는 마지막으로 시디라는 것을 트레이에 넣어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매일 음악을 들으면서 작은 전화기 한 개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고맙기도 하면서, 어딘가 서운하기도 하다. 케이블을 모두 분리하여 방 한 쪽에 가구처럼 놓아둔 오디오를 다시 연결해볼까 생각하다가, 지금은 필요없이 분주한 일을 벌이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집안의 가구도 다시 배치해보고 싶은데, 아직은 못하겠다. 봄이 오고 몸이 조금 더 나아지면 하기로 한다.

2020년 12월 30일 수요일

Deep Purple, Whoosh!


오래 전에 하드록 음악이 팝 음악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빌보드라던가 라디오의 순위 차트에 하드록 밴드들의 이름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대는 이제 흘러가버렸다.

나는 그 시대에 나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수 많은 록커들의 이름과 음악들은 레코드의 포장을 뜯던 소리, 새 카세트 테이프에서 나는 플라스틱 냄새와 함께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올해에 옛 하드록 뮤지션들이 발매한 음반들 중, 나는 여름에 나온 Deep Purple의 앨범 Whoosh!가 좋았다. 이미 오월에 나는 그분들이 새 앨범에 실릴 곡을 합주하고 있는 영상을 보았었다. 그 영상에는 이언 길런의 보컬은 없었기 때문에 아직 어떤 노래가 나올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혼란해지고 있던 학교의 일정과 함께, 밴드의 공연 마저도 하나 둘 취소되고 있는 상황 때문에 점점 기운이 빠지고 있었다. 1954년생인 기타리스트 스티브 모스를 제외하고 모두 일흔이 넘은 멤버들의 합주 영상을 몇 번씩 다시 보면서 나는 합주실과 공연장의 무대를 그리워했었나 보다.

딥 퍼플의 새 앨범 Whoosh!를 틀어놓고 느꼈던 기분은 반갑다는 것이었다. 그 밴드의 옛날 느낌이 그 음악에 담겨 있었다. 좋은 음반을 많이 만든 캐나다인 프로듀서가 영국인 노인 음악인들을 미국의 내쉬빌로 불러 녹음했다.* 스티브 모스와 돈 에이리의 사운드가 각각 왼쪽과 오른쪽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도 정겨웠다. 50여년 동안 활동해온 베테랑들이 자신들의 연주를 즐기며 만들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비닐 포장을 뜯거나 카세트 테이프를 다시 뒤집어 재생하는 일은 없지만, 이 앨범은 나의 어릴 적, 하드록이 팝이었던 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해줬다.

첫 곡 Throw My Bones는 '이언 길런이 보컬인 딥 퍼플 노래'의 전형 같았다. 네 번째 곡 Nothing At All은 재미있었다. 스티브 모스는 정말 다양한 것을 잘 하는 기타리스트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 곡 No Need to Shout의 인트로는 오르간 사운드였는데, 그것을 듣는 누구라도 고인이 된 존 로드를 추억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프로그레시브 느낌이 섞인 열 번째 곡 Remission Possible도 좋았다. 그리고 열두 번째 곡이 시작될 때에, 나는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반갑고 즐거웠다. And The Address 라는 연주곡인데, 이 음악은 딥 퍼플의 1968년 데뷔 앨범 Shades of Deep Purple에 첫 번째로 수록되어 있는 곡이었다. 이 연주곡은 리치 블랙모어와 존 로드가 아직 딥 퍼플이 완전히 꾸려지기 전에 만들었던 곡이었고, 밴드가 구성된 뒤 가장 처음 완성된 곡이었다. 52년만에 다시 녹음된 새 버젼에서, 원곡을 연주했던 멤버는 이제 이언 페이스 한 분 밖에 없다.

중학생 시절에 나는 딥 퍼플의 앨범 Fireball, Machine Head와 Stormbringer를 카세트 테이프로 가지고 있었다. In Rock, Burn, 그리고 라이브 앨범과 표지가 조악했던 이상한 부트렉은 LP로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아직까지도 그것들을 내가 어디에서 구입했었는지를 기억한다. 그것들은 모두 내가 태어난 이후에 나왔던 음악들이었지만 이미 그 당시 딥 퍼플은 해체한 것과 다름 없었기 때문에, 마치 아주 오래 전 밴드의 음악처럼 여겨졌었다. 그래서 '84년에 그들이 (잠시) 다시 모여 Perfect Strangers 를 발표했을 때에 나는 꽤 기뻐했었다.

2020년에 딥 퍼플이 선물해준 앨범 Whoosh! 는 내 취향으로는 매우 좋았다. 삼 년 전에 그들이 같은 프로듀서와 함께 작업했던 InFinite 앨범 보다 훨씬 좋았다.

나는 여전히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일부러 옛날 하드록 음악을 들으며 잠을 청할 때가 있다. 분명히 다른 음악들 보다 소란스런 사운드일텐데, 그것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글을 쓴 김에 오늘은 이 앨범을 틀어두고 누워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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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eve Morse는 미국인이다.

2020년 12월 24일 목요일

옐로우재킷과 빅밴드

 


몇 년 전 펠릭스 파스토리우스의 후임으로 옐로우재킷 멤버가 된 Dane Alderson은 훌륭한 베이시스트이다. 그의 연주가 좋아서 여전히 나는 앨범으로, 동영상으로 옐로우재킷의 음악을 꾸준히 보고 들었다. 올해 연말이 다 되어, 지난 달 첫째 주에 옐로우재킷의 스물 다섯번째 앨범이 나왔다. 그동안 유튜브에서 녹음과 연주 장면이 담긴 짧은 영상을 보아왔는데 드디어 음원이 공개되었다. 기다리고 있던 앨범이어서 반가왔다.

앨범의 제목인 Jackets XL의 XL은 로마숫자 표기로 40이라는 의미이다. 이 밴드의 4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독일 Cologne을 기반으로 오래 활동하고 있는 WDR Big Band와 협연했다. 옐로우재킷의 리듬섹션에 빅밴드 브라스 섹션이 더해졌다. 그리고 열 곡 중 일곱 곡은 바로 멤버인 Bob Mintzer가 편곡하였다. 한 곡은 창단멤버인 Russell Ferrante가, 나머지 두 곡은 Vince Mendoza가 맡았다.

Bob Mintzers는 2016년부터 이 WDR Big Band의 지휘를 맡고 있다. 그리고 이 빅밴드는 작년에 피아니스트 Fred Hersch의 앨범에 참여했는데, 당시 빅밴드의 편곡과 지휘를 맡은 사람은 Vince Mendoza였다. Fred Hersch와 WDR Big Band의 앨범 Begin Again도 아주 좋은 앨범이었다.

옐로우재킷의 스물 다섯번째 앨범은 두 곡을 제외하고 모두 지나온 그들의 앨범 수록곡들을 다시 편곡, 연주한 것이다. 러셀 퍼렌티는 그 중 아홉번째 곡 Coherence를 편곡했다. 이 곡은 옐로우재킷의 2016년 앨범 타이틀곡이었다. 빅밴드 편성으로 다시 연주한 음악 중 가장 정갈하고 숨막히는 편곡이었다. 아름답고 담백하지만 연주자의 입장에서 들어보면 정말 어려운 변박이 군데 군데 나타나고 있었다. 러셀 퍼렌티는 빅밴드 작곡/편곡/지휘자이며 피아니스트인 Maria Schneider 의 편곡을 가져와 사용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것을 위해 그는 마리아 슈나이더의 웹사이트에서 'Hang Gliding'의 악보 패키지를 구입했고, 그것으로 공부하고 연주 동영상을 찾아 보았다고 했다. 이 곡에서는 밥 민처가 실제 소프라노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고, 러셀 역시 신디사이저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정교하게 편곡한 이 음악을 들으며 아주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곡으로 변했다고 생각했다.

밥 민처는 대학을 졸업한 뒤 Buddy Rich 빅 밴드와 공연하는 것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했었다. 80년대에 그는 브렉커 형제와 윌 리, 피터 어스킨, 로저 로젠버그 등과 함께 당시 젊은 재즈 올스타로 구성된 빅 밴드 활동을 했다. 이후 Thad Jones / Mel Lewis Orchestra와 자코 파스토리우스의 Word of Mouth 빅 밴드 멤버로도 활동했다. 빅 밴드 편성으로 이루어진 옐로우재킷의 앨범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 이유이다.

밥 민처는 수십년 동안 EWI도 연주해왔다. 신디사이저 관악기인 이 전자악기(사실은 콘트롤러)를 사용하는 것을 두고 어떤 재즈팬들은 '그것은 재즈가 아니다'라는 말도 해왔다. 전자악기를 사용하는데에 적극적이었던 옐로우재킷의 음악도 '재즈가 아닌' 어떤 것으로 분류하기 좋아했던 그 재즈팬들에게도 이 앨범을 추천해주고 싶다.

이 앨범의 두번째 곡 Dewey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이름 Miles Dewey Davis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곡에서 들을 수 있는 뮤트 트럼펫 멜로디는 바로 밥 민처가 EWI로 연주한 것이고, 곡의 중간에 나오는 플룻 연주는 그가 EWI의 플룻음색으로 연주한 것을 빅 밴드 멤버들의 실제 플룻 사운드와 섞은 것이다. 러셀 퍼렌티의 신디사이저 솔로가 아주 좋고, 리듬이 현대적으로 바뀐 것도 좋다. 2020년의 빅 밴드 사운드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데인 앨더슨의 베이스 솔로가 빛나는 곡은 첫번째 수록곡 Downtown이다. 알토 색소폰 솔로는 빅밴드 멤버인 Johan Hörlen의 연주이다. 윌 케네디의 드럼 브레이크가 후반부에 나오는데 그 부분도 아주 좋았다. 윌 케네디는 빅 밴드와의 연주를 위해 22인치 베이스드럼을 사용했다고 했었다. 최근 팝음악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라우드 마스터링 - 음량을 크게 하여 음원을 완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상대적으로 볼륨이 작다. 나는 아마도 그 덕분에 드럼의 공간감이 더 좋게 들리고 있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지난 40년 동안 스물 다섯 장의 앨범을 발표했고, 재즈, 팝, 퓨젼, OST, 가스펠 등을 연주해온 옐로우재킷은 맨 처음 기타리스트 로벤 포드의 밴드로 시작했었다. 여전히 그들을 재즈 그룹으로 생각하지 않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이제 옐로우재킷은 역사 속의 어떤 재즈 쿼텟보다도 오랜 기간 활동해온 재즈 밴드가 되었다. 긴 시간 동안 음악활동을 통하여 업적을 이루어 온 이 4인조 그룹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며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더 앨범을 들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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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0일 일요일

재즈 기타 앨범


 

작년에 애플뮤직에서 하모니카 연주자 Toots Thielemans 을 기리는 듀엣 앨범을 발견했다. 이 듀엣 앨범에 담겨있는 연주들이 좋아서 한동안 자주 듣고 있었다. 한동안  새로운 재즈 연주자를 모른채 지냈었다. 자주 찾아보지 않으면 새로운 음악인들의 이름을 하나도 모르게 된다. 나에게는 Yvonnivk Prene이라는 하모니카 연주자의 이름도 생소했지만 기타리스트 Pasquale Grasso 도 낯설었다. 그 음반을 시작으로 나는 이 기타리스트의 연주를 좋아하게 되어 가끔 앨범들을 찾아 들어보고 있었다.

올해에 나왔던 좋은 재즈 음반들 중에서 솔로 기타 연주로 열 두 곡이 담겨있는 Pasquale Grasso 의 이 앨범 Solo Masterpieces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음악을 듣다 보면 특정한 쟝르 음악 연주자에게 매료되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쟝르만의 언어를 그대로 이어 받으면서 자신의 음악성과 악곡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드러나는 연주를 마주치게 되면 조금 바쁜 일이 있어도 우선 잠자코 앉아서 음악이 끝날 때까지 듣게 된다.  이 앨범의 모든 곡이 그랬었다. 파스쿠알레 그라소의 테크닉도 놀랍지만 스탠다드 재즈 음악들을 해석하는 그의 연주는 재즈 기타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연주자들의 좋은 점을 모아 놓은 것 같았다.

피크와 손가락을 동시에 모두 사용하는 그의 주법은 특별하거나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파스쿠알레 그라소는 완벽한 연주자들이 그렇듯 현을 퉁기는 모든 피킹이 다 자연스럽다. 그는 오른손 새끼 손가락까지 자유롭게 사용할뿐더러 그 힘이 센데, 그 덕분에 순간 순간 더 풍부한 기타 화성을 들을 수 있는 것 같다. 그가 사용하는 기타가 특이하여 검색을 해봤다. 프랑스의 기타 장인인 Bryant Trenier라는 사람이 만든 것이었다. 고전적인 설계로 보이는 외관에 모두 수작업으로 악기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파스쿠알레 그라소가 사용하는 기타는 트레니에가 그를 위해 만들어 준 파스쿠알레 그라소 모델 (Modello Pasquale Grasso)이었다. 핑거 레스트가 없는 대신에 콘트롤 노브가 브릿지 부분에 달려있는 점이 좋아 보였다. 바디에 따로 구멍을 뚫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간단한 수리가 필요할 때에도 편리할 것 같았다.  http://www.trenierguitars.com/

파스쿠알레 그라소는 2019년 하반기 동안 솔로 기타 음반으로만 네 개의 디지털 EP 를 발표했었다. 그 후에 세 장의 음반들이 더 나왔다고 했다. 나는 아직 전부 다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각 앨범의 제목을 보니 모두 스탠다드 재즈와 위대한 연주자들의 작품들을 연주한 것 같다. 올 겨울에는 그의 연주들을 모두 다 들어보고 싶다. 나는 솔로 기타로 연주되는 재즈 음악은 어쩐지 겨울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왔는데, 그것은 아마 내가 처음 Wes Montgomery의  CD를 구입하고 재즈 기타에 깊이 빠져들었던 계절이 겨울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파스쿠알레의 이 앨범은 녹음된 전체 사운드도 좋고 악기의 음색도 좋다. 그 사운드는 조 패스처럼 너무 날카롭지도 않고 짐 홀처럼 너무 슬프지도 않다. 어느 날 하루를 골라 스피커로 크게 틀어두고 들어보고 싶은 앨범이다. 그의 스탠다드 시리즈들은 오래된 재즈팬 뿐 아니라, 이제 막 재즈 기타를 듣기 시작했거나 스탠다드 재즈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아주 좋은 음반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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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항상 그랬었지만 음반이나 음원을 유통하는 회사는 일을 대충 하는 경향이 있다. 지니뮤직에서 위의 음반은 '애시드/퓨젼'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틀린 분류이다.

2020년 11월 24일 화요일

선택 지지 편향.

로직 프로 10.6 업데이트

 


로직 프로가 10.6으로 업데이트 되었다.

업데이트 파일이 공개된 것은 내가 낮에 학교에서 쓰러져 응급차에 실려 병원에 드러누웠던 그 날이었다.

이제서야 컴퓨터를 켜고 정리를 시작하다가 뒤늦게 업데이트를 완료하고 추가적으로 필요한 파일들을 모두 다운로드 했다.

몇 가지 좋아진 기능들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반가운 것은 훨씬 다양해진 샘플러였다. 나에게는 십 몇 년 전에 구입하고 모아둔 악기 샘플 파일들이 있는데, 그동안 제대로 사용해 볼 수 없었다. 강화된 샘플러 기능 덕분에 하드디스크에 담아두기만 했던 이제서야 나는 그 야마하 드럼 샘플들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결과물의 품질도 좋아서 무척 마음에 들어하고 있다. 아직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을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더 많이 다뤄보지는 못하고 컴퓨터를 꺼야 했다.

내가 우리나라에서 윈도우즈 컴퓨터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매킨토시만 써온지  삼십 년이 다 되었다.  MS-DOS 시절 이후 나는 당시 매킨토시의 오에스 이름이었던 맥 시스템이 나에게 잘 맞는 오에스인 것을 알았고, 지금까지 매킨토시 이외의 컴퓨터는 사용하지 않고 지냈다. 그것을 자랑할 일은 아니다. 

어떤 도구를 꾸준히 사용하려면 그것을 다루는데에 능숙해져야 한다. 컴퓨터의 오에스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도구라면 꾸준한 공부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에 시간을 쓰고 때로는 몰입하여 배우지 않으면 불필요한 낭비가 발생할 수 있다. 보통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만 하는 사람들은 말하자면 망치질을 하다가 제 손을 때린 후 화풀이로 도구를 집어 던지는 사람과 비슷하다.

또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하고 나면 그것이 가장 옳은 선택이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경험에 갇힌채 새로운 것에 대한 공부가 모자란 경우에, 사람은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조금도 인정하려 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어떤 것을 결정하여 실행에 옮긴 다음 그것이 망쳐졌을 때에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화를 낼 대상을 먼저 찾고 그것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맥 오에스는 제 때에 업데이트 하지 않는 것이 진리', '맥 오에스를 최신으로 업데이트 하면 사용하던 것을 하나도 못쓰게 된다' 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 결정이 옳다고 스스로 굳게 믿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자꾸 전파하려고 한다. 조금 비약하자면 지구평면설을 주장하거나 비이성적인 광신도의 처음도 그렇게 시작되는 법이 아닌가 한다.

나는 맥 오에스를 항상 최신으로 유지하고 있고, 그것은 보안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오에스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되어지는 것은 이제 주기적인 일이므로, 사용하고 있는 써드파티 프로그램들이 새로운 오에스에 잘 호환되도록 함께 업데이트 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항상 필요하다. 더 이상 새 오에스를 지원하지 않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 오에스의 업데이트와 업그레이드를 보류하거나 포기해야 할 수도 있지만, 더 나아진 성능으로 매일 하는 작업을 계속 하고 싶다면 언제나 새로운 선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에는 당연히 물질적이거나 두뇌를 사용해야 하는 비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언제나 최신 부품으로 컴퓨터를 조립하려고 하는 성실함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을 즐기기 위하여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내가 매일 사용하는 컴퓨터 오에스는 이제 모바일의 iOS와 가능한 닮아가기 위해 변화 중이다. 점점 컴퓨터는 덜 켜게 되고 iOS 기기는 이미 항상 몸에 지니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지식만 가지고는 변화하는 도구들을 문제 없이 다루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오에스나 어떤 기기가 더 발전하고 나아진다고 하더라도 '업데이트 하면 망한다' 라는 말을 복음처럼 전파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2020년 8월 23일 일요일

쿼텟

 


Joshua Redman 쿼텟의 새 음반을 들었다.
사진은 그의 트위터에서 가져온 것이다. 나는 애플뮤직으로 듣고 있다.
과거의 명반을 다시 발매하는 것 말고, 새로 만들어지는 음반들 중에서 좋은 것을 찾는 것이 점점 어렵다. 재즈 뿐만이 아니라 다른 쟝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앨범은 정말 좋았다. 조금 과장하면 감격같은 기분이 들었다.

1993년에 조슈아 레드맨의 두번째 앨범이 나왔을 때에 무척 놀라고 좋아했었다. 나는 군복무 중 휴가를 나왔을 때에 대학로에 있었던 레코드가게에서 그 음반을 샀다. 음반이 나온지 2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Pat Metheny와의 라이브 트랙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얼른 CD를 집어들었던 것이었는데, 이내 젊은 색소폰 연주자의 멜로디에 사로잡혔다. 그 이듬해에 조슈아 레드맨 쿼텟이라는 이름으로 다음 앨범 MoodSwing 이 나와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 음반은 내가 군복무를 마친 후에 살 수 있었다.  그 쿼텟의 앨범을 들으며 나는 재즈라는 것이 전설로 남아있는 나이 많은 연주자들의 유산에 그치지 않는, 계속 진행하고 있는 음악이라고 확신했었다. 당시 네 명의 젊은 연주자들의 연주는 이미 노인이 된 베테랑들의 그것과 닮아있으면서도 동시에 새로왔다. 그래서 그 이후에도 계속 그 멤버들 그대로 쿼텟이 유지되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그 두 장의 앨범은 Pat Metheny Group의 Imaginary Day와 함께 나의 기억 속에서 '90년대 말의 풍경 중 하나였다.

그 후 스물 여섯 해가 지났고, '94년의 그 앨범 구성원이 다시 모여 연주한 것이 새 앨범 RoundAgain 이다. 네 명이 한 앨범을 위해 모두 모인 것은 MoodSwing 이후 처음이다. 이미 어렸을 때에도 좋은 연주자들이었던 그들의 연주는 이제 어떤 수준 위를 날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완전히 무르익은 연주를 듣다가 가끔 정신을 차리면 그제서야 연주자들의 테크닉이 들린다.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고 잔가지를 모두 쳐내어 완벽하게 다듬어진 나무들이 조화를 이룬 정원을 구경하는 것 같았다.

세 곡은 조슈아 레드맨, 두 곡은 Brad Mehldau, 나머지 두 곡은 한 개씩 Christian McBride와 Brian Blade가 썼다. 수록된 모든 곡이 좋지만 Brad Mehldau의 Moe Honk 와 조슈아 레드맨의 곡 Silly Little Love Song 이 제일 먼저 좋아졌다. 지금의 재즈음악이 어떻길래 그러느냐고 물으면 잘 표현할 수는 없는데, 이 앨범은 어쩐지 이십여년 전의 향수같은 것도 느껴졌다. 2020년에 나오고 있는 재즈음반들에서는 들어보기 힘든 공기가 그 안에 있다.





2020년 6월 4일 목요일

심야에 녹음.

밴드 녹음, 베이스 녹음

밤중에 서교동에서 녹음을 했다.
여러 번 해볼 필요 없었다. 소리를 조정하고 연습삼아 한 두 번 맞춰 본 다음, 그 직후의 연주를 그대로 녹음했다. 거의 한 번에 끝난 셈이다.
기분 좋게 녹음을 마쳤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후 곧장 고속도로를 달려 녹음실에 가느라 무엇을 먹지 못하였다. 녹음을 마치고 남아서 근처에 문을 연 식당에서 만두를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처럼 음식이 쉽게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편의점에서 커피를 큰 컵으로 사서, 그것을 마셨다.

하루가 길었다. 많이 고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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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16일 월요일

연주.


지난 주 금요일, 서교동 클럽에서 공연을 했다.
이번에는 전날 밤에 합주를 할 수 있어서 연주하는데에 편했다. 합주라고 해봤자... 대충 한 번 맞춰보는 것이었지만.

감염병에 대한 소식은 넘쳐나고 한국의 언론은 여전히 마스크 타령인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공연을 보러 와준 분들이 많아서 뜻밖이었다. 사실은 무관중 공연이라고 해도 기꺼이 할 생각이었다.

하루 전 합주할 때에는 의자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스트랩이 조금 늘어난 것인지 내 체중이 조금 줄어버린 것인지 서있을 때에 악기의 위치가 약간 낮게 느껴졌다.
다음 주에 남아있는 한 곡이 마저 발표되면 또 공연을 하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짧았던 공연 시간이 근래 석 달 중 제일 마음이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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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2일 월요일

촬영.


친구와 함께 하는 밴드 멤버들이 오랜만에 악기를 가지고 모였다. 지난 해에 녹음했던 음악 중 한 곡이 발매되었다. 밴드는 '윤병주와 지인들'이라는 이름으로 정해졌다.
오늘은 공개하고 있는 곡들을 위해 비디오 촬영을 했다.

서교동 거리는 온통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있었다. 주차를 한 뒤 차에서 내려서는 나도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사람들은 전염병 때문에 두려움이 생겼고 간혹 맨 얼굴로 상점에 들어가면 직원 분들이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였기 때문에, 남들을 불안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메르스라는 전염병이 창궐했던 것이 불과 사, 오 년 전이다. 그것이 지금의 코로나 19라는 것 보다 훨씬 지독했었다. 다만 그때와 달리 지금의 행정부는 일을 너무 잘 하고 있고, 지금의 언론은 그때와 달리 신이 나서 아무 말이나 하고 있다.

오랜 시간 촬영이 계속되니 슬슬 허리가 아파왔다. 그런데 나만 힘들고 아픈 것 같아서 내색하지 않으려 힘을 주고 서있었다. 알고 보니 다른 사람들도 피로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네 시간 동안 공연을 하는 것이 낫지, 같은 곡들을 여러 번 촬영만 하는 것은 고된 일이었다.

수고를 아끼지 않아준 감독님과 잘 준비해준 친구 덕분에 즐겁게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오가는 사람이 줄어버린 밤거리가 유난히 춥게 느껴졌다.

2019년 10월 19일 토요일

인천에서 공연.


이번 주는 아길라 앰프를 크기 순서로 사용했다.
연주하는 시간만큼은 즐거웠던 한 주일이었다.


오늘 공연의 절반은 플렛리스로 연주했다.
플렛이 없는 재즈 베이스를 다시 한 개 가지고 싶어졌다.

긴 리허설 덕분에 공연할 때엔 좋은 소리로 연주할 수 있었다.
스물 한 곡이 순간 지나가버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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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7일 목요일

오랜만에 '공감'.


오랜만에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했다.
일산 스튜디오에서는 처음 연주하는 것이었다. 이사오기 전 스페이스 홀 대기실에 있던 냉장고를 그대로 가져와 둔 것을 보고 웃음이 났다.

미리 부탁했던 아길라 앰프와 캐비닛이 준비되어 있었다. 어제 녹음실에서 사용했던 것은 300와트, 오늘 것은 500와트. 앰프 소리도 좋고 연주하기도 편했다. 다만 한 가지, 15년이나 된 음악 프로그램이라면 베이스 앰프에 마이크도 사용해주면 더 좋겠다.



올 가을 꾸며놓았던 페달들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연말까지 이 조합으로 계속 연주할 생각이다.
방송 녹화였기 때문에 연주할 곡이 많지 않았다.
공연이 금세 끝나버려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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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6일 수요일

가을, 녹음.


아침 일찍 가평에 지어진 녹음실에 친구들과 함께 모였다.
공기 좋은 옛 가평역 자리에 예쁘고 훌륭하게 설계된 레코딩 스튜디오가 지어져 있었다.
한 번 가보고 싶었던 장소였다.

내가 좋아하는 아길라 앰프가 준비되어 있었다. 앰프 사운드가 마음에 들었다. 녹음실에 머물러 있는 동안 기분 좋게 연주했다.


오전에 한 곡, 오후에 한 곡을 합주 녹음으로 진행했다.
두 개의 악기를 모두 가져가긴 했는데, 처음부터 플렛리스로만 녹음하고 싶었다. 두 곡 모두 플렛리스 프레시젼으로 녹음할 수 있었다.

열흘 가까이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했던 까닭에 오늘 아침에도 알람이 울리기 전에 잠을 깨었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는 길에 졸음이 쏟아져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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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7일 월요일

그 때의 나.


충분히 연습이 되어있고 성실하고 재능도 있어 보이지만, 여전히 소란스럽기만 하며 음악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젊은 연주자들을 여럿 본다. 함께 연주하게 되면 무거운 수레를 밀며 겨우 걷는 기분이 든다. 그런 친구들과의 연주는 고되다.

하지만 문득 생각해보면, 나의 처음은 지금의 그들 보다도 못했을 것이었다.
아무 것도 가르쳐준 적은 없었지만, 어린 나를 견뎌줬던 내 선배들이 나의 선생님들이었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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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5일 토요일

운전, 연주, 운전.


정읍에서 공연했다.
새벽에 어떤 소음 때문에 잠을 깨어 결국 다시 잠들지 못했다. 겨우 두 시간만 잘 수 있었다.
아침 일찍 운전을 시작, 네 시간 동안 고속도로를 달렸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예상하지 못했던 추위.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따뜻해 보이는 외투를 입고 있었다. 내장산 기슭의 바람이 매서웠다.

아직 여름 옷을 입고 다니는 나는 계절의 변화에 너무 둔감한 것 같다.
첫 곡을 시작했을 때에 낮은 온도에 악기의 줄이 점점 더 차갑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손이 시려워서 입에 손을 가져다 대고 후후 불었다. 사람들이 보기에 매우 바보같았을 것이다.

공연이 진행되면서 해가 지고, 기온은 더 낮아졌다. 악기의 음이 자꾸 미세하게 올라갔다. 가장 덜 변한 줄을 기준으로 삼아 연주를 하면서 수시로 튜닝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무대 위의 음향은 최근 몇 년 중 가장 최악이었다. 이미 리허설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정이었을 때에 눈치를 챘다. 공연을 시작한 후 연주를 하는 도중에 헤드셋 마이크를 하고 있는 분을 불러 모니터 스피커의 소리를 아예 꺼달라고 부탁했다. 이런 경우에는 무대 위의 사운드를 최대한 귀기울여 듣는 편이 언제나 더 나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기왕에 시작한 연주를 할 때에는 더 이상 핑계를 대거나 부실한 음향을 구실 삼아 변명할 필요는 없다. 집중하여 잘 하면 그만이다.

공연을 마치고 났더니 감기에 걸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읍 시내에서 따뜻한 국밥을 먹고 다시 운전을 시작했는데, 저절로 두꺼운 이불이 덮혀지는 것 처럼 졸음이 밀려왔다. 두 번이나 중간에 쉬면서, 세 시간을 운전하여 집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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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 친구가 서초동에 함께 가겠느냐는 문자메세지를 보내왔다.
지난 주 부터 다음 주까지 토요일 마다 공연이 약속되어 있어서, 나는 못 가는 대신 내 몫까지 해주고 오렴, 이라고 답을 했다.
집에 돌아와 금세 잠들지 못하고 사람들이 올린 사진과 글을 한참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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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23일 월요일

공연 준비.


수요일 부터 나흘 동안 한 장소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다.
주말에 악기에 새 줄을 감고 페달보드를 꺼내어 케이블 청소를 했다.
합주실에 조금 일찍 가서 소리를 확인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몇 해 동안 이펙터를 들고 다니지 않았었다. 올 가을 공연들에서 연주할 곡이 특별히 더 많은 것은 아니다. 한정된 악기 편성에서 조금 더 다양한 음색이 필요했다. 보드 위에 붙어있던 것들을 모두 떼어 케이블과 잭을 닦고 꼭 사용할 것들을 새로 추렸다.
페달보드의 구성을 자주 바꾸다 보니 보드에 페달을 고정할 때에 사용하는 강력 테이프를 다 써버리고 없는 줄도 몰랐다. 급한대로 끈으로 묶어 가방에 넣어 이동했다. 아침에 테이프를 주문했으니 모레 공연 직전까지는 배송될 것이다.

긴 합주를 하는 동안 집중하느라 커피가 놓여져 있는 것을 그만 잊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악기를 챙겨 나오면서 식은 커피를 벌컥 들이켰다.
가을 하늘은 맑았다.
햇빛은 따뜻하고 바람은 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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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22일 목요일

기타


주말에 제주도에서 통기타를 연주해야하는 공연이 예정되어있다.
한달 남짓 어쿠스틱 기타를 열심히 쳤다. 처음에는 낯설더니 조금씩 감각이 되돌아왔고, 이제 다시 익숙해졌다.
어릴적에 기타를 치고싶어서 몰래 연습했던 기억도 나고, 그 시절 하루종일 이어폰으로 듣고 다니던 음악들도 생각났다. 다만 악기의 큰 음량을 틀어막을 수 없어서 밤이 되면 연습을 할 수 없었다. 심야에 통기타를 치면 이웃들의 수면을 방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엔 이불을 뒤집어 쓰고서도 연습을 했었는데 이제는 남의 집에 피해를 줄 것을 지레 걱정하여 심야의 악기연습을 삼간다.

열흘 전 제천에 다녀온 이후 통기타에 새줄을 감고 자주 연습했다. 그동안은 베이스를 손에 쥐어보지 않았다. 덕분에 오른손의 손톱이 기타를 연주하기 알맞은 정도로 자랐다.
내일 약식으로 합주를 한 번 하고 그 다음날은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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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9일 금요일

공연.


병주와 함께 다시 지난번 장소에서 공연했다. 오늘은 잠도 적당히 자두었고, 컨디션이 좋았다.
지난 달에 겪었던 고통스러운 경험 덕분에 리허설 때에 내 귀를 괴롭히지 않는 각도로 스피커와 앰프들을 자리잡아 놓았다. 앰프의 게인도 적당히, 가능한 피로하지 않기 위해 스트랩의 길이를 몇 센티미터 줄였다.
즐겁게 했다. 아마 한 시간 반 정도 연주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