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31일 수요일

흐리고 더웠다.

습하고 더운 날씨였다. 라디오를 마치고 돌아와서 조금 빈둥대다가 그만 시간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그동안 적어둔 미뤄둔 일들을 들여다 보며 핑계와 궁리를 만들어 또 미뤄둘 마음을 먹다가, 낮에 독촉 전화를 받은 강의계획서만큼은 작성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몽골로 떠나기 직전 연락을 받았고, 정말 겨를이 없었다.
학교 홈페이지는 그러나 여전히 윈도우즈에 최적화되어있다며, 익스플로러(만) 권장하고 있다. 아이패드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컴퓨터를 열어 노력을 해봤지만 역시 아직도 맥 오에스에서는 눌려지지 않는 스크립트 버튼 투성이였다.
하루 더 미루어 보았자 내일도 모레도 없던 시간이 보너스로 생겨지지는 않는다. 게다가 오늘은 개강 첫 날 학생들을 만나는 약속이 예정되어 있다.
수작업으로 일일이 모든 것을 작성하고 났더니 다섯 시 반이 되었다.
열 시에 일어나면 된다.
컴퓨터를 열은 김에 기기들을 동기화하고 사진을 옮기는데에 삼십여분을 더 썼다.
지금 여섯 시가 되었다.

새삼 말하기도 뭐하지만 하루가 짧다.
대부분의 하루를 잠만 잤다고 하는 고양이에게도 늦여름의 하루는 짧다.
흐리고 더운 여름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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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새 음반 홍보를 위해 연달아 라디오 방송들이 잡혀 있다.
라디오의 부스는 어느 곳이라고 해도 반가운 느낌이 있다.
이제는 말장난으로 FM 주파수를 소비하는 프로그램들이 더 많다. 그렇지만 여전히 음악으로 위로를 나누고 마음을 토닥여주는 분들도 있다. 라디오 스튜디오의 모습이 영상으로 보여지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아마 머지않아 거의 모든 방송이 그렇게 변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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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 다녀왔다.

토요일 저녁에 출발, 일요일 오후에 공연, 월요일 새벽에 귀국행 비행기를 타는 일정일 뿐이었지만, 몽골에 다녀왔다.
활기찬 울란바트로의 시민들을 봤다. 담벼락이라고는 없는 드넓은 초원, 탁 트인 벌판에서 노상방뇨를 하고 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쳐 서로 허허 웃기도 했다.
석탄을 싣고 중국으로 향하는 끝없이 긴 열차가 대륙 위에 금을 긋듯이 지나가는 모습도 봤고, 그곳에서 사업을 한다고 하는 한국인들이 몽골어는 조금도 배우지 않은채 노동자인 몽골 현지인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모습도 봤다.
우리말과 발성이 똑같아서인지 유창한 한국어를 말하는 통역 담당 몽고분들을 보며 놀라와했다. 공부를 무척 열심히 했거나 재능이 남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끄럽고 무질서한 공항과 포장상태가 좋지 않은 길 옆에는 플라스틱 비닐 쓰레기들이 끝도 없이 버려져있었다.
너무 짧은 여행이었긴 했지만, 몽골의 사람 사는 세상을 볼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 내일을 위해서, 혹은 오늘만을 위해서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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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20일 토요일

새 음반

하루만 더 쉬고 싶다는 욕심과 내일도 할일이 있다는 위안이 섞이는 밤이었다. 김창완밴드의 이번 음반은 정확히 2011년 6월 12일 하루에 모두 녹음했다. 손에 쥔 음반이 마치 그날 찍어둔 사진 한 장 같다.

내 앞에는 지금 두꺼운 책도 있고, 어지러운 악보도 있고, 심난한 뉴스와 가증스러운 인터뷰 기사도 있고, 아내의 결혼전 사진과 밤새 말썽 피우는 어린 고양이도 있고, 물기를 먹은 악기들과 반쯤 비워진 담배갑도 있다.

그리고 그런 것과 상관없이 잠은 오지 않고 하고 싶은 것과 해야할 것들은 맨날 머리 속에서만 서로 다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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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9일 화요일

김창완밴드

부산 국제 록페스티벌에 다녀왔다.
큰 행사를 운영하는 스탭들의 일사불란함과 성실함, 똑 부러지는 일처리가 인상적이었다. 무엇이든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이 하는 일이 중요하다. 날씨가 좋지 않다거나 하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그동안 착실히 발전하고 있는 부산 국제록페스티벌은 아마 머지않아 가장 중요한 음악 행사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악기가 비에 흠뻑 젖었다. 이동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미처 잘 말리지 못했다.
오늘은 서울숲에서 야외공연을 한다. 비는 여전히 흩뿌릴텐데 다른 악기를 가져가야 좋을지 기왕에 젖은 악기를 가져가는 것이 좋을지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 악기들의 줄을 손질했다. 한 개는 새 줄로 감아 놓았다.

출연자의 이름이 써있는 콘테이너 출입문이 남다르게 보여 담아왔다. 대충 이 날의 그 느낌과 흡사하게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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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1일 월요일

주유소

디지털 카메라를 아예 집에 놓아두고 출발했었다.
아이폰으로 아무데서나 사진을 담았다.
아무래도 아이폰 5에는 더 좋은 카메라를 붙여주면 좋겠다.

아틀란타에서 공연 후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물을 사러 어느 주유소에 들렀었다. 검고 눅눅한 밤공기 속에 비현실적으로 불빛만 빛나고 있었다.
약간 창피하지만, 이건 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느낌이라고 생각하며 한 장 찍어뒀는데 나중에 보니 살짝 흔들려서 진짜 그런 느낌으로 찍혀있었다. (....라고 나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5달러에 한 상자를 구입해왔던 물은 맛있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한 병을 마셔보니 전혀 맛이 없었다.
밤 사이 갈증도 욕심도 많이 없어졌었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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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일만 킬로미터 떨어진 무대

이상훈 씨가 찍어줌.
이 날의 앰프는 Ampeg SVT 2 였다.
관객석 방향의 소리는 알 수 없었다. 무대 위의 앰프 소리는 좋았다.
떠나오는 날 집에서 Moollon과 Fender 재즈를 두고 한 개를 고르느라 고민을 했었다. 요즘 네크의 상태가 좋았던 Fender를 집어들고 떠났었다. 하루 전에 악기점에서 손을 보아두기도 했다. 그 덕분에 보름 동안 좋은 상태로 유지되어주어서 연주하는데에 편했다. 신경 쓰이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번엔 다섯 번의 공연을 Moollon 3 Plus와 Bass Muff, 그리고 아틀란타에서 십만원에 구입한 Polytune 튜너와 함께 했다. 페달보드를 가지고 다니지 않을 때에 뮤트 스위치 역할을 해줄 튜너가 필요했는데 그 용도로도 Polytune은 훌륭했다. (사실 한 개 가지고 싶었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무대 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공연 전에 설레임이나 떨림이 없으면 안된다느니 그런 말을 나에게 했던 분이 있었는데, 그런 것 없어진지 오래되었다. 편안한 마음이면 된다. '두근 두근이 없으면 안된다' 같은 말을 하며 허세를 부릴 여유가 있으면 그 대신 가만히 앉아서 준비가 충분히 되었는지 하나씩 꼽아보며 마음을 조용하게 만드는게 좋다. 관객이 많거나 적거나, 무대 상태가 좋거나 나쁘거나 간에, 고른 숨으로 연주할 생각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낫다.

집에서 만 킬로미터 떨어져있는 어느 극장에서의 저녁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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