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25일 화요일

그리워했다.


꿈에서 순이를 보았다.
그리고 잠을 깨었다. 밖은 깜깜했다. 두 시 반이었다.

순이가 떠난지 아직 백일이 되지 않았다.
고양이 순이가 내 어깨에 볼을 기대고 그르릉 거리던 시절이, 어느 날에는 아득한 옛 일 같기도 했다. 어떤 아침에는 어제의 일 처럼 느껴졌다. 매일 꿈에서 고양이를 보았었다가 한 동안 꿈을 꾸지 않고 지냈다.

꿈 속에서 한 번도 내 고양이를 만지거나 다가가 안아 보지 못했다.
다시 꿈에서 만나게 되면 와락 다가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눈이라도 마주치면 이름을 부르며 웃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2016년 10월 23일 일요일

고양이들과 밤을 보냈다.


며칠 사이 오랜만에 낮과 밤이 바뀌어 버렸다.
초저녁에 잠들었다가 자정 즈음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스프와 통밀빵을 먹었다.
고양이 꼼은 비좁은 상자에 몸을 구겨 넣고 졸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고양이 이지는 이미 잠을 깨었으면서도 여전히 자는 체 하고 있었다.
이름을 부르면 양쪽 귀만 쫑긋 거렸다.

나는 편안하게 드러누워 자다가 일어났는데, 목과 어깨와 허리에 통증이 심했다.
혹시 집안이 추워서 고양이들이 웅크린 채로 자고 있는 것인가 하여 난방장치를 켜주었다.

2016년 10월 21일 금요일

서교동에서 연주를 했다.


친구들과의 블루스 팀 공연은 드문 드문 계속 하고 있다.
금요일 저녁에 서교동의 클럽에서 블루스 공연을 했다.
연주를 하고 있는 시간은 즐겁기 때문에 언제나 짧게 느껴진다.

금요일 서교동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건물 사이에서, 자동차의 바닥에서 길고양이들이 사람들의 발을 피하며 다니고 있었다.
어디에나 음악 소리가 들렸다.
해가 저물면 불빛들이 거리를 밝혔다.

연주를 마치고 혼잡한 도로를 빠져 나오면서 아무도 부르지 않을 노래와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2016년 10월 9일 일요일

춘천에서 공연을 했다.


아침에 출발하면서 패딩 자켓을 챙겼다.
나는 춘천의 날씨를 아주 잘 안다. 해가 떨어지기 전 부터 추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날씨였다.
나는 하루 전에 자동차의 타이어를 새것으로 교환했다. 타이어 네 개가 전부 마모선이 지워질 정도로 닳아 있었다. 타이어를 교환하면서 엔진오일도 교환했었다.
춘천의 공연장 앞에 주차를 하고 시동을 끄려고 했을 때에, 자동차의 계기판에 '엔진오일 부족'이라는 경고등이 켜졌다.

하루 전에 교환했던 엔진오일이 부족하다니. 오일을 교환할 때에 찜찜했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보험회사에 전화하여 출장서비스를 부탁하고 임시 조치를 했다. 리허설을 마친 뒤에 가장 가까운 정비소에 가서 몇 시간 동안 기다렸다가 점검을 하고 부족한 엔진오일을 마저 보충해야 했다.


공연 시간 전에 여유있게 공연장에 돌아올 수 있었다. 갑자기 잠이 쏟아졌다. 미리 챙겨갔던 두꺼운 외투를 덮고 몇 십 분 정도 차 안에서 자고 났더니 몸이 개운해졌다.
익숙한 장소에서 연주를 했다. 이곳에서 몇 번째 연주를 했는지 세어 뒀었는데, 이제는 그만 잊었다. 여름 이후 오랜만에 다른 친구들도 만나 무대 곁에서 손을 잡고 인사도 했다.

집에 돌아올 때엔 일부러 국도를 선택하여 음악을 틀어두고 느린 속도로 운전했다. 아파트의 주차장에서 자동차의 시동을 끄기 직전에 비틀즈의 The Fool On The Hill 이 막 끝나고 있었다.


2016년 10월 7일 금요일

가을 오후.


금요일 오후에 볕이 드는 베란다에는 고양이들이 몸을 쭉 펴고 누워 뒹굴고 있었다.
아내는 고양이들을 쓰다듬고 첫째를 품에 안아 입을 맞췄다.
내가 틀어두었던 음악은 끝이 나고 조용한 공기가 집안을 떠다녔다. 고양이 꼼은 한참 동안 아내의 품 안에서 얼굴을 마주 보며 안겨 있었다.

업데이트 된 iOS의 기능 때문에 아이패드에 담아 가지고 다니는 순이의 사진을 열어 볼 때면, 작년 오늘의 사진, 재작년 지금 쯤의 사진을 보게 된다. 나는 내 고양이 순이가 그 이듬해 여름에 내 곁을 떠날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나는 순이가 그 다음 여름에 죽고 없어질 것이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따스한 햇볕 속에서 아내와 고양이의 포옹이 끝난 후 창문을 열었더니 제법 차가와진 바람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찬 공기를 듬뿍 마시면서, 나는 방금 지나가버린 지금이 무척 소중했다는 생각을 했다.



2016년 10월 3일 월요일

산꼭대기에서 연주를 했다.


신불산 간월재에서 연주를 하고 왔다.
리허설을 하기 위해 하루, 공연을 하기 위해 하루를 보내고 왔다.
억새가 가득한 아름다운 능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산악 자전거들도 많이 보였다.


이곳은 5년 전에 인공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을 두고 반대의 의견이 많았던 장소였다.
능선에 올라가 보니 이미 매점과 휴게소와 전망을 볼 수 있는 데크가 다 지어져 있었다.
당시 시민단체가 반대했던 이유가 기억 났다. 아름다운 능선이 인공 시설물들로 망가질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나는 그 주장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산꼭대기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공연을 구경하는 일은 근사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런 일을 사업으로 삼아 아름다운 능선의 고요와 스산한 바람소리를 어지럽혀야 할 이유는 없다. 구조물들이 없었고 등산객이 적었던 시절의 간월재는 지금의 모습 보다 더 아름다왔을 것이다. 나는 직업을 핑계로 그곳에서 잔뜩 소음을 내어버리고 온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 탓은 아니지 않느냐고 하기에는 가슴 속이 떳떳하지 못했다.
이런 것은 하지 않을 수록 좋다. 지역 발전을 위한 사업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우선 철학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아마 우리의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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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일 일요일

연주하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2016, Oct. 1. with J-Brothers. (trimmed image)

지난 봄에 친구들의 밴드에 참여하여 함께 녹음했던 음반이 나왔었다.
그 후 우리들은 각자의 바쁜 일상을 보내며 서로의 시간을 모아 연주를 해오고 있는 중이다.

어제는 블루스 밴드 J-브라더스와의 열 두 번째 공연을 했다.
언제나 연주하고 있는 동안에는 시간이 빨리 흘러 간다.
조금만 더 연주하고 싶었다.

지금은 새벽 두 시 오십 분.
이제 두어 시간 정도 잠을 자고 나서 고속도로를 달려 울산 울주군으로 갈 것이다.
도착하면 김창완밴드의 리허설을 하고, 다음 날 오후에는 아름다운 곳에서 공연을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