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28일 월요일

알아서 듣고 해와라.


나는 처음부터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과 함께 연주를 시작했다.
지금도 나이든 분들과 연주를 하게 될 때가 많다.
이런 경우 크게 두 가지 성향의 음악선배들을 만나게 된다.

첫번째는 악보를 잔뜩 늘어놓는 분들이다.
한 꾸러미의 악보를 집어주면서, '다 복사할 필요는 없고, 뭐 몇 장 정도 빼고 한번씩만 살펴보고 와라' 라고 한다.

두번째는 카세트테잎을 주는 분들이다.
'이것만 우선 듣고 알아서 해와라'

사실은 '듣고 딴다'라는 표현을 쓴다. 그분들의 용어로 그 말의 뜻은 음악을 듣고 코드진행과 연주할 음표들을 외거나 적어오라는 의미이다.
요즘은 이런 경우에 나는 난처해진다.
이제 더 이상 집에 카세트 테잎 플레이어가 없기 때문이다. 오래 사용했던 플레이어가 고장난 후에 다시 구입할 생각이 없어서 그냥 뒀던 것이다.
이렇게 카세트 테잎을 받게 되면 별 수 없이 나는 자동차 안에서 테잎을 틀어놓고 오선지와 연필을 쥔채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노래의 제목을 적어서 음악파일을 다운로드 하거나 음반을 구해보아야 한다.
오래된 곡이나 대중적이지 않은 곡들은 그나마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도 없고 음반을 구하기 쉽지 않을 때도 많다.

게다가, 이렇게 테잎을 받아모면 거의 대부분 그 음질이 아주 나쁘다. 나와 같은 연주자들에게 테잎을 주기 위해 복사를 거듭했을테니 음질이 좋을 수 없다. 어쩌면 처음부터 소스 음원이 후졌을 가능성도 높다. 피치는 엉망이고 인트로나 곡의 마무리 부분은 아예 뚝 잘려져있기도 하다.

한번은 용기를 내어 시디를 주실 수는 없느냐고 물었다.
"응? 없어." 라고 했다.

위의 두 가지 경우에 들지 않는 음악선배도 있다.
곡의 제목만 겨우 알려주고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나중에는 그것이 오히려 정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연주하려면 최소한 이런 이런 음악은 듣고 있어야지, 라는 생각일 것이다. 그래서 점점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음악이라고 해도 일 때문에 구입하는 시디들이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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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21일 월요일

편지.


요즘 재미있게 읽었던 책은 이황과 기대승의 편지들을 모아놓은 '고봉집'의 새 번역본이었다.
남의 편지들을 읽는 것이 원래 재미있는 것이지만, 이 두 학자의 편지들은 정말 재미있었다.

그들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지만 나도 꾸준히 편지와 이메일 등을 차곡차곡 모아두고 있는 편이다. 생각이 나서 그것들을 다시 읽어보았는데... 정말 쓸데 없는 말들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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