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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4일 일요일

시골에서 만난 고양이

 


시골집에 아내와 함께 가서 몇 시간 밭일을 하고, 노인 두 분과 함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주차를 할 때 나이 지긋한 고양이 한 마리가 입구에 앉아 있었다. 차에서 내렸더니 건물 가까이에 어린 고양이들이 몇 마리 모여 놀고 있었다. 모시고 간 부모 두 분은 이미 들어가서 주문을 하는 중에 나와 아내는 자동차 대쉬보드에 넣어뒀던 고양이 간식을 뜯어 나눠주고 있느라 시간 가는줄 몰랐다. 식당주인이 그것을 보더니 저쪽에 몇 마리가 더 있을 것이라고 했다. 건물 뒷편에 더 많은 고양이들이 일광욕을 하고 있다가 조심성 없이 다가갔던 나 때문에 후다닥 흩어졌다. 식당주인의 말에 따르면 나이 많은 고양이를 시작으로 하나 둘 모이던 고양이들이 이제는 아예 자기들의 마을처럼 여기며 식당 주변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퉁명스러운 식당 아저씨의 말투와 건물 주변에 가지런히 놓여진 고양이 사료 그릇, 물 그릇들이 대조를 이루어 어울리고 있었다.

어린이 고양이 두 마리가 가까이 다가간 나를 보고 있었다. 호기심이 많았던 한 녀석과 상자 뒤에서 눈만 내밀고 있던 다른 한 놈이 가장 친해 보였다.

날은 습하고 무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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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10일 수요일

지나가버린 가을.


 그동안 멈춰야했던 것을 앙갚음이라도 하듯 바쁘게 시월을 보내고 나서, 다시 학교의 일과 집안의 허드렛일들에 시간을 쓰다보니 그만 가을이 지나가버렸다. 피곤한 몸으로 돌아와 손과 얼굴을 씻으려는데 고양이 깜이가 내 곁에 뛰어올라와 쳐다보고 있었다.


아내가 만들어주고 사다준 장난감이며 쿠션들은 본체만체하고 고양이들은 저렇게 빈 종이상자를 오가며 놀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니까 슬슬 사람 곁에 붙어서 잠을 자려고 한다. 올 가을은 단풍이 물들었는지 낙엽이 떨어졌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없어져버린 것 같다.

올 겨우살이도 고단할 것이고 큰 선거가 다가올수록 공해에 가까운 것들도 자주 보게 되겠지. 오래도록 그랬던 것처럼,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반겨주는 고양이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식구가 있다는 것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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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25일 토요일

고양이 친구들

 


잠을 세 시간 밖에 못자고, 하루에 일곱 시간을 운전해야 했다. 소모적인 하루가 될 줄 알면서도 아침 일찍 출발해야만 했다.

후미진 골목에서 귀여운 아기 고양이를 만났다. 다른 고양이들과 놀고 있었던 작은 고양이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잠깐 망설이더니 어느 집 파란대문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자신의 집 안에 들어가자 안심이 되는 듯, 바른 자세로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밥을 주는 사람이 있는 것으로 보였고 잘 먹고 잘 놀며 크고 있는 것 같았다. 배도 통통하고 털에 윤기도 있고. 나는 어린 고양이를 더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몇 시간 후 부모 두 분과 이모를 모시고 도착한 식당에서 이번엔 나이 든 고양이를 만났다. 아내는 식사를 마치고 음식을 잔뜩 챙겨 고양이에게 먹였다. 얘는 식당에 세들어 사는 고양이답게 잘 먹고 지내는 것 같았다. 가장 맛있는 것만 받아먹고 그 외의 음식은 거절했다.


아내가 준 음식을 조금 먹고 볕이 있는 곳에서 쉬려던 고양이에게 내가 다가갔다. 한참 어루만져주고 엉덩이를 두드려줬더니 고양이는 누워서 뒹굴기도 하고 나에게 장난도 걸었다.



떠날 시간이 되어 이 고양이와도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이 모자라 정신이 없었던 나는 날씨 좋은 가을 볕 아래에 오래 있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도 고양이 친구들을 만나서 즐거웠던 금요일 오후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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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22일 수요일

밤새 함께 있는 고양이


 옛날 내 고양이 순이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막내 고양이 깜이는 자주 내 곁에서 밤을 함께 새운다. 졸리우면 아내의 곁에 가서 눕거나 하면 될텐데 굳이 나의 옆에 다가와 불편한 곳에 자리를 잡고 졸음을 견디고 있다. 가끔씩 손을 내밀어 얼굴을 만져주면 그르릉 거리며 좋아한다.

떠나버린 순이, 꼼이와 다른 점은 있다. 고양이 깜이는 내 옆에서 졸음을 참고 참다가, 시간이 너무 지났다고 생각하면 그 때부터 칭얼거리며 나를 방해하기 시작한다. 이제 그만 하고 잠을 자러 가자는 신호이다. 내가 컴퓨터를 재우고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하면 바닥으로 내려와 침실로 가는 길에 앞장서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덕분에 오늘도 날이 밝기 전에 잠들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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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30일 수요일

떠나고 변하는 것들.

 



고양이 꼼이가 우리 곁을 떠난지 일년이 되는 날이었다. 작년 오늘, 비는 정말 추저분하게 내리고 있었다. 재가 되어버린 꼼이를 작은 단지에 담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는개와 같은 비가 흩뿌려지고 있었다.

함께 살고있는 세 마리의 고양이들이 더 애틋하여 날마다 어루만지고 껴안으며 생활하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이겠지만, 매일 나는 이제 죽어서 곁에 없는 내 고양이 순이와 꼼이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 날마다 고양이들이 놀던 곳, 숨어있던 곳, 장난치던 구석, 잠자고 있던 자리를 청소하면서 이제는 만져볼 수 없는 손끝의 느낌을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그런데 그것은 감정의 남은 부분일 뿐, 사실은 그 감촉도 느낌도 점점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사람을 바라보던 예쁜 눈망울이나 활력이 넘쳤던 장난꾸러기 고양이들의 모습은 이제 다시 볼 수 없다.

사람들은 자주 '고양이 액체설'과 같은 Meme으로 고양이들의 재미있는 모습을 공유하며 재미있어하고 귀여워 한다. 나는 한 번도 그런 것에 반응해보지 않았다. 고양이가 숨을 멈추면 제일 먼저 몸이 축 늘어지면서 정말로 뼈가 없는 액체처럼 흘러내린다. 반듯하게 조심히 눕혀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갑게 굳어져버린다. 미리 힘주어 눈을 감겨주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것을 경험하면 고양이 액체설 따위의 문장만 보아도 바삐 화면에서 눈을 돌리게 된다.

모든 생명의 생과 사는 어처구니 없고 허망하다. 생사의 찰나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삶의 가치라던가 죽음의 의미 같은 것들이 모두 무의미하게 여겨진다고 했다. 전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심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다가 내가 병원신세를 졌던 반년 전에, 심하게 아파보았던 이후에도 나는 세상을 보는 시각이 조금 더 달라진 것 같다.

자전거 타기를 좋아했던 나는 2016년 그 여름부터 거의 자전거에 손을 대지 않았다. 고양이 순이가 암 판정을 받은 후에, 내가 자전거 타기에 미쳐서 몇 년을 보내며 고양이의 건강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순이의 병을 미리 발견하지 못했고, 결국 고양이가 죽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더 이상 자전거 위에 앉아 땀을 내며 바람을 쐬는 것이 즐겁지 않아졌다.
꼼이가 갑자기 아프기 불과 몇 주 전에는 영상을 찍어뒀었다. 유난히 민첩하고 운동신경이 좋았던 그 고양이가 높이 도약하고 어려운 동작으로 뛰어내리는 장면들이 담겼다. 그랬던 고양이 꼼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아팠고, 병을 이기지 못하여 세상을 떠났다. 순이가 죽은 뒤에 집안의 고양이들을 자주 병원에 데려가 검진하고 미리 건강을 확인하며 지냈는데도 꼼이가 병들고 죽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나는 이제 집안의 고양이들이 우습고 재미있는 행동을 하여도 구태여 영상을 찍어 남기거나 하고싶지 않아졌다. 그냥 그 순간 웃어주고 다가오면 끌어안아 쓰다듬어주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라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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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5일 화요일

겨울, 고양이 생각

 


갑자기 추워졌다. 일기예보가 알려줬던 것처럼 영하 10도로 기온이 내려갔다. 눈이 내렸었고 강원도 북쪽에는 한파경보가 내려진다는 뉴스도 보았다. 감염병은 더욱 확산하고 있다.

4년 전 이 즈음에, 지금 내 곁에서 칭얼거리며 잠투정을 하는 까만 고양이가 나와 아내에게 이제부터 우리와 함께 살겠다고 선언했다. 유난히 추웠던 11월 밤중의 일이었다. 우리 두 사람이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아직 이름이 없었을 어린 고양이를 부르자 얘는 고민도 없이 다가와 우리에게 몸을 부비며 끙끙 소리를 내었다. 결국 고양이를 품에 안고 데려와 병원에서 진료를 받게 하고 몸을 씻기고 키우기로 한 것은 아내와 내가 맞긴 하지만, 나는 그날 밤 이 고양이가 절박한 심정으로 '선언'을 했던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나는 당신들과 살아야겠다.' 라고. 추워진 11월이 다시 찾아오자 나는 그날 밤 까만 고양이 까미를 만났던 일이 기억났다.

까미는 아주 말이 많고 걸핏하면 투정을 부리는 어린이 고양이가 되었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언니 고양이들에게 심한 장난을 걸고 얻어 맞는 일도 매일 하고 있다. 그리고 간식이 생각날 때에는 우리를 만났던 그날 그랬던 것 처럼 단호하고 당당하게 먹을 것을 요구한다. 가끔은 정말 배가 고픈 것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어쨌거나 아주 분명하고 강한 어조로 사람에게 간식을 내놓으라고 할 때 마다, 나는 까미가 언변 좋은 대중연설가의 기질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올해 여름에 사랑했던 고양이 꼼이를 잃었다. 아직 반 년도 지나지 않았다. 떠나고 없는 고양이를 매일 매일 몇 번씩 떠올리며 여름과 가을을 보냈다. 꼼이는 내 결혼의 시작과 함께 우리와 살게 되었었다. 고양이 꼼이는 언제나 우리 두 사람을 웃게 했다. 하얀 고양이 꼼이는 애정을 표현할 때에도, 말썽을 부릴 때에도, 즐거워 뜀박질을 하거나 나른하게 마냥 졸고 있을 때에도 귀엽고 예뻤다. 나는 고양이 꼼이에게 행복을 빚진 채 그를 떠나 보냈다.

고양이 까미가 우리와 만났던 그 해 여름에는 고양이 순이가 세상을 떠났다. 순이와 가장 친했던 꼼이는 그로부터 꼭 4년 후에 순이가 떠난 곳으로 갑자기 가버렸다. 지난 달에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겪고 응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었다. 병실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며 잠깐씩 잠들었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했던 날, 나는 떠나고 없는 내 고양이들을 한참 생각했다. 그리고 새삼, 각자의 시간은 결국 별안간 멈추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내와 나의 전화기와 시계에는 항상 우리의 곁을 떠난 고양이들의 사진이 보여지고 있다. 곁에 없는 고양이를 그리워 하다가, 지금 곁에 있는 고양이들을 껴안고 얼굴을 부벼 보기도 한다. 나는 더 쓰다듬어도 좋다며 그르릉 소리를 내는 고양이를 안아 편안한 자리에 눕히고 책상 앞으로 돌아와,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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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10일 월요일

장마

 


아주 긴 장마가 지나가고 있다.

태풍 '장미'도 남쪽에서 다가오는 중이라고 했다.

비가 끝이 없을 것처럼 내리고 있다.

눅눅해진 바닥에 고양이들이 더워하며 드러누워 있었다. 에어컨을 켜줬더니 고양이 이지가 편한 모습으로 낮잠을 잤다.


낮에 떡볶이를 먹었다. 요즘 며칠 동안 하루에 한 끼를 먹고 있다. 배가 고파지면 고구마를 먹거나 우유를 마셨다.


밤중에 심야 극장에 다녀왔다. 점심 이후 먹은 것이 없어서 극장에서 파는 소세지 빵을 먹었다. 집에 돌아오니 주차할 자리가 없었다. 빙빙 집 주변을 돌다가 지하 2층에 핸드브레이크를 풀어두고 주차했다. 전화번호를 자동차의 앞 유리에 올려뒀다.

집안이 습했다. 비는 다시 쏟아지고 있었다.

2019년 12월 16일 월요일

행복해하는 고양이.


고양이 이지가 자주 기분 좋아하며 논다. 뛰어다니기도 하고 무엇인가에 즐거워져서 혼자 장난에 몰두하기도 한다.

어디까지 더 나빠질 수 있을까 싶었던 올 한 해 동안, 고양이 이지가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잘 먹고 잘 노는 것은 몇 안되는 행복한 일이었다. 우리는 이지를 볼 때 마다 껴안고 입 맞춰주며 고마와했다.

동물병원에 갔다가 주먹만한 어린이 고양이가 철장에 갇혀 있는 것을 보고 다가갔었다. 어린 고양이가 눈을 크게 뜨고 가늘게 울며 두 앞발로 내 손가락을 꼭 쥐었었다. 집에 돌아온 후 계속 손가락 끝에 남은 고양이의 온기가 마음에 남아서, 아내와 함께 동물병원에 다시 찾아가 입양을 했었다. 고양이 이지가 우리와 함께 살게 된 것이 그때로부터 벌써 십 년. 세월은 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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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16일 금요일

동네에서 만난 고양이.


아내와 함께 동네에 나갔다가 상점 앞에서 이 고양이를 만났다.
졸고있던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더니 반가와하며 인사를 해줬다.
그 곁에 사료와 물, 정성껏 만들어준 집도 있었다. 십여년 전과 비교하면 길고양이들을 챙겨주는 분들이 아주 많아진 것은 사실이구나, 했다.

머리가 많이 아파서 진통제를 먹었다.
밤중에는 부모님 집에 들렀다. 가는 길에 빵집에서 식빵 두 개와 팥이 들어있는 빵을 샀다. 빵봉지를 받아든 엄마는 마침 먹을 것이 없었다며 반가와했다. 돌아올 때엔 식빵 한 개를 굳이 도로 가져가라고 하여 다시 들고 나왔다.

지난 주에 아내가 다급하게 구조했던 새끼 고양이는 그만 죽고 말았다. 새벽에 그 전화를 받고 동물병원에 다녀왔다. 일주일 동안 입원하며 살도 불었고 건강해져서 살아날 수 있을줄 알았었다. 결국 폐렴증상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마음이 아팠다. 아내가 엊그제 풀숲에서 데려와 임시보호자에게 맡긴 고양이들은 매우 건강하다고 했다. 잘 뛰어놀고 둘이 함께 꼭 붙어서 잘 잔다고 들었다.

깊은 밤, 일부러 내집의 고양이들을 일일이 찾아 쓰다듬어줬다.
말복이 지났다고도 하고 곧 입추라고도 한다.
추석이 다가오는 것이 신경쓰이지만 세상의 일들이 신경을 쓴다고하여 달라지거나 반드시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힘내어 각자 잘 살아가면 그것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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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1일 목요일

고양이가 좋아하는 것.


어린 고양이 깜이는 잘 자고 잘 먹은 후에는 계속 사람이나 언니 고양이들을 치댄다.
놀아달라고.

비디오를 보여주면 고양이 깜이를 조용하게 만들 수 있다. 처음에는 고양이를 위한 비디오로 시작했다. 그런 영상에는 다람쥐나 새들이 등장한다. 영상의 길이는 고양이를 붙잡아두기에 충분히 길지만, 고양이는 금세 흥미를 잃어버렸다. 사실 끈이 움직이거나 쥐가 도망치고 있는 영상을 더 재미있어하는데, 그대신 모니터가 남아나지 않는다. 고양이가 모니터를 긁고 때려보고 뒤로 돌아가 끈이나 동물을 찾아보려하기 때문이다.
 ( https://choiwonsik.blogspot.com/2016/12/tv.html )

혹시 이것은 어떨까, 하여 애니메이션 뽀로로를 틀어줬더니 갑자기 고양이 깜이는 자세를 고쳐 앉더니 에피소드 한 개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린이들이라면 모두 좋아한다고 하더니 어린 고양이에게도 무척 재미있는 것이었나보다.
집안의 다른 언니 고양이들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당분간 깜이를 진정시킬 때엔 뽀로로를 사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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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일 금요일

동물병원.


고양이 이지의 진료가 예약되어있었다.
이지가 많이 건강해졌기 때문에 병원에 가는김에 그동안 검진을 해보지 못했던 꼼이도 함께 데려갔다.
검진결과 이지는 과연 건강해졌다. 용량을 줄여 복용하고있는 약도 머지않아 그만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고양이 꼼은 몇 년만에 검사를 해본 것인데 모든 수치가 정상 이상으로 좋다고 했다. 오른쪽 어깨에 상처가 아물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도 치료를 받았다.

작년 가을부터 수개월동안 불행한 일들을 계속 겪었다.
오늘 나이 많은 고양이들이 건강하다는 말을 들으니, 작은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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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12일 수요일

고양이 가족.


월요일에 자동차를 수리하는 동안 대기실에서 서성거리며 음악을 듣고 있었다.
정비공장에 이웃한 집의 기와지붕 아래로 무엇인가 보여서 가까이 다가갔더니, 고양이들이 볕이 드는 곳에 푹신한 낙엽을 침구 삼아 곤히 자고 있었다.


어린 고양이 둘은 서로 부둥켜 안은채로, 엄마로 보이는 고양이는 곁에서 혼자 웅크린채로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슬레이트 담 건너에는 자동차들이 지나다니는 소리,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 다양한 엔진소리들이 소란했는데 고양이들은 나뭇잎 사이로 지나는 바람소리를 벗삼아 쿨쿨 자고 있었다. 엄마 고양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어려보였고, 아기 고양이들은 살이 토실토실하였다. 다행히도 잘 먹고 잘 자며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 머물던 세 시간 동안 고양이들은 자세를 바꿔가며 자기도 하고 엄마 고양이는 잠시 자리를 비우기도 했었다. 그 작은 공간만큼은 고양이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편안하고 따뜻한 집으로 보였다. 일생동안 그들이 그렇게 평화로왔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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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3일 수요일

고양이 친구를 만났다.


새벽에 시골에 다녀와야했다. 잠이 모자라 거의 정신을 잃을 뻔 했다.
볕이 뜨거웠다.
그늘에 있으면 추위가 느껴질 정도의 바람이 불었다.
아무래도 며칠 안에 감기가 찾아올 것 같았다.

일찍 마칠 줄 알았던 일정이 길어지고, 나는 시간을 확인하며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어서 돌아가 해야할 일과 약속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데나 누워 잠들고 싶었던 즈음, 고양이 소리가 났다. 작년에 그곳에서 아내와 함께 만났었던 그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나에게 다가와 머리를 부비고 몸을 비비며 좋아했다. 나는 피곤한 것을 잊어버렸다. 고양이를 따라갔다.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그 집에서 가장 그늘이 시원한 마당이었다.

작년 3월, 그 고양이를 만나 쓰다듬어주고 인사를 했을 무렵에는 내 고양이 순이도 살아있었다. 순이는 떠나고 없는데, 너는 잘 살아있었구나, 하며 여러번 어루만져줬다.

오늘 오후에 있었던 유일한 즐거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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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6일 수요일

어린 고양이와 동물병원에.


한쪽 귀가 무슨 일이었는지 구겨진 채로 되어있는 어린 고양이 까미.
귓속을 진료하기 위해 몇 주 동안 동물병원에 다니고 있다.

오늘은 낮 시간에 나 혼자 까미를 데리고 다녀왔다. 고양이의 양쪽 귀가 모두 전보다 많이 나아져있었다. 먹는 약을 잘 먹였기 때문일 것이라고 수의사 선생님이 말해줬다.

동물병원에 갓난 아기 고양이가 있었다.
까미는 진료를 마친 후에도 이동장 안에서 칭얼거렸다. 이동장을 아기 고양이 앞에 놓아두었더니 두 어린 고양이가 서로를 쳐다보며 잠시 놀았다.


2017년 8월 20일 일요일

화장지 습격.


고양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본다고 하는, 화장지 습격.
꼬마 고양이 까미가 드디어 해냈다.

집안의 다른 고양이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인지, 어른 고양이들은 매일 발랄한 어린 고양이와 자주 놀아주지 않는다. 꼬마 고양이는 무척 심심했을 것이었다.

귀의 문제로 병원에 몇 주째 다니고 있는 중이다. 많이 나았지만 아직 더 살펴봐줘야 한다.
짝짝이 귀를 가진 꼬마 고양이가 다시 습격을 할지도 모르니 조금 질 좋은 화장지를 사놓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유해하지 않은 일상용품이란 것이 과연 존재할까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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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9일 토요일

십 년이 지났다.


결혼 10주년을 지나보냈다. 살다보니 지나간 세월이니까 그다지 대수롭지 않을지도 모른다. 처음 각자 한 마리씩 지니고 왔던 고양이 두 마리가 먼저 떠나간 자리에는 군데 군데 마음의 꽃들이 피어있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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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7일 월요일

고양이와 꽃


꽃을 꽂아두었더니 고양이들이 한 마리씩 곁에 앉아 냄새를 맡으며 놀고 있었다.
고양이 까망이가 살며시 꽃가에 앉더니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마도 건드리고 물며 장난을 하고 싶어했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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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2일 목요일

목요일.



순이가 떠난지 11개월이 되었다.
밤중에도 생각했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에도 생각했다.
그렇다고 순이의 재를 담아놓은 단지를 꺼내어 손으로 문질러본다거나 새삼 사진을 열어 하염없이 보고 있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하루도 어김 없이 고양이 순이를 생각하고 그리워 한다.

아침에 소음을 내는 사람들은 지난 해에 이어 매일 정확한 시간에 다시 음악소리와 괴성 지르기를 시작했다. 읍사무소의 공무원에게 다시 전화를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아마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는지 궁리해보지만 다른 수가 없다. 만일 그들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여름이 끝날 때 까지 내가 아침 시간을 망치지 않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는지 찾아보아야 한다.

국도를 달려 운전을 오래 했다. 애플 뮤직에서 새로 나온 음악들을 들었다. 리마스터를 거친 옛 음반들도 들었다. 재즈를 무작위로 틀어놓기도 했다.
어떤 날은 그날 했어야 했던 일에만 집중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잘 해내지 못한다. 언제나 마음의 짐이 있는 것을 감당하기 싫은 날도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조용한 길을 달리고 달렸다. 그 평화로움이 낯설게 여겨졌다.

컴퓨터와 전등을 끄고 자려고 누웠을 때 검은 고양이 까미가 내 발 곁에 오더니 발목을 껴안고 잠이 들었다. 불편할텐데 항상 내 곁에서 자다가, 아침이 밝으면 아내의 곁에 가서 선잠을 잔다.
어린 고양이 덕분에 순이를 잃은 마음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생명이라는 것, 죽음이라는 것은 양쪽 모두 불성실하고 불합리하다.
어린 고양이를 살짝 들어올려 침대의 푹신한 자리에 눞혔다.
고양이가 그르릉 거리며 편안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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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26일 금요일

금요일.




오후 세 시에 합주를 하러 서교동에 갔었다.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길이 막히지 않았어서 일찍 도착하여 잠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었다.
날씨는 좋았고 하늘은 예뻤다.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과 한 곡씩 공연을 위한 곡들을 연습했다.
예정보다 합주가 일찍 끝났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조금 밀리고 막혔다.

아내가 만들어준 피자를 먹었다.
그것을 먹고 잠들었다가 밤 열 한시에 일어났다.
다음 날 레슨할 음악파일을 손보았다.
강의에 사용할 원고를 정리하고, 일부를 처음부터 고쳐서 다시 썼다.
커피를 내려 마셨다.
까만 어린이 고양이가 주방 쪽 작은 창문 앞에 앉아있었다.
그 그림자를 보는 순간 순이 생각이 났다.
까만 고양이를 안아서 쓰다듬어 주고, 아내가 그렸던 순이의 그림이 걸린 벽 앞에 서서 커피를 마셨다.


2017년 5월 22일 월요일

잠을 잤다.


주말이 다 지나도록 집에서 쓰러져 있었다.
무엇을 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싶어서 옛날 영화들을 꺼내어 다시 보았다.
지난 번에는 박찬욱의 복수 시리즈 1과 3을 보았다.
오늘은 가운데 것을 다시 보았다.

강의 원고를 쓰기 위해 자료를 펼쳐 놓고 그것을 다시 읽었다.
너무 많은 분량을 읽고 났더니 정작 원고를 쓸 수 없었다.
배가 고파서 국수를 만들어 먹고는 다시 잠을 자버렸다.

연습을 할 수도 없었다.
아픈 손가락은 이제 네 개로 늘어났다.
올 여름에는 병원에 한 번 가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업실에 가서 커피를 한 컵 곁에 두고 정리한 자료를 읽으며 강의 원고를 썼다.
쓰다 보니 금세 자정을 넘겨버렸다.
집에 돌아왔지만 주차장에 자리가 한 군데도 없었다.
서너 바퀴를 돌다가 결국 적당한 곳에 평행주차를 하고 자동차의 기어를 중립에 놓아둔채 집에 들어왔다.
고양이들이 반가와하며 뛰어나왔다. 아내는 내가 고야이들과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깨어나 잠결에 고양이 이지에게 물에 불려둔 사료를 떠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