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 31일 수요일

여름밤.


어디엔가 들어가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일을 해본지 오래였다.
하지만 여름밤 더위가 너무 지독했다. 깡통음료를 들고 거리에 서있는 것이 힘들었다.
사막에서 물을 찾듯 들렀던 한 카페 벽에는 자전거가 걸려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자전거를 좋아했었다.
그만 잊고 있었던 것이 기억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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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7월 22일 월요일

Charlie Haden

찰리 헤이든의 이름을 맨 처음 알았던 것은 팻 메스니와 오넷 콜맨의 앨범 Song X 를 듣게 되었을 때였다.
팻 메스니와 찰리 헤이든이라고 하면 이제는 누구라도 The Beyond The Missouri Sky 를 떠올리겠지만, 내 기억 속에 찰리 헤이든과 팻 메스니가 깊은 인상을 남겨줬던 연주는 Song X 앨범에 있는 Mob Job 이라는 곡이었다.

극단으로 치닫는 것 같은 오넷 콜맨과 많은 음반을 내왔던 찰리 헤이든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과의 어떤 연주에서는 어쩌면 그렇게 절제된 베이스 연주를 할 수 있는지 놀라울 때가 있다. 마치 언제 어디서라도 금세 다른 어떤 음악이 되어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는 정말로 '더 많은 음'을 쳐야 할 이유가 없는 타입의 연주자일지도 모른다.

찰리 헤이든의 연주는 항상 함께 연주하고 있는 솔로 연주자의 연주를 더 빛나게 해준다고 느껴왔다. 정해진 화음을 벗어나거나 페달톤으로 단음만을 지속시켜줄 때에도, 그의 베이스에 엉겨붙는 다른 사람들의 연주는 어쨌든 한껏 더 빛이 난다.
연주자의 연주라는 것은 그 사람의 인성이 반영된다고 생각한다. 아직 찰리 헤이든의 성품에 대해서 아는 바는 없지만 말이다.

잘 다듬어진 편곡의 현악기들과 함께, 피아노와 보컬 모두 일품인 Shirley Horn 의 목소리로 Folks Who Live On The Hill 을 들었을 때에 너무 좋아 그 자리에서 열 번은 다시 들었다. 찰리 헤이든의 앨범 The Art Of The Song 에 실려있는 곡이다.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오래된 노래이고 가사가 아름답다. 지금까지 몇 사람의 목소리로 이 노래를 들어봤었는데 셜리 혼의 노래가 제일 훌륭하게 들렸다. 감동적이었다. 어딘가 마음에 와서 철퍼덕 붙어 버리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 이유는 노래의 편곡 때문일 수도 있고, 셜리 혼의 음색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찰리 헤이든의 해석이 담겨있는 연주 덕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가수의 목소리를 더 듣기 좋게 해주는 노래 반주를 하는 베이스 연주자,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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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7월 16일 화요일

악몽.


대학을 졸업한 후에 군에 입대했던 나는, 부대 사벼들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았다.
그 얘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 구나.

아무튼 그랬었는데, 군에서의 나의 임무는 뭐였냐하면 바로 야근이었다.
거의 매일 밤, 정말 매일 밤을 새우며 사무실에서 일을 했다. 낮에는 낮의 업무대로 바빠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뭐하러 그렇게 일을 해주었는지 모르겠다.

게으른 것은 자랑이 아니다. 그것은 잘 안다.
군 복무 내내 나는 내 군화를 닦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
신병 시절 소속 부서의 상관이었던 소령의 군화를 닦는 일은 해봤었다. 정작 나 자신은 제복을 다려서 입거나 전투화를 광나게 닦는 일을 질색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내 것은 다리지도 닦지도 않고 지냈다. 사실은 제복을 다리고 군화를 광내는 일이 제일 우스꽝스런 짓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는 그것을 보다 못한 동료들이 내 옷과 신발을 다려주고 닦아주려고 했지만 그나마 별로 오래 가지 못했다.

제대한 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지난 주에 마지막 예비군 훈련을 다녀왔다.
흙이 잔뜩 묻은 채 오래도록 굳어서 걷는데에 무겁기까지 했던 내 전투화.
이젠 정말 신을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래 신을 일이 없을 것을 기대하며 군화를 닦아 놓았다. 8년만에 닦여진 신발이 되었다.

나는 아직도 일년에 한 번 두 번, 다시 군에 입대하는 악몽을 꾼다. 어떤 꿈에서는 야근을 마치고 난데없이 적군과 마주쳐 전투를 시작하는 꿈도 꿨다. 트라우마이고, 무엇보다도 끔찍한 악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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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7월 7일 일요일

떠나고 싶어졌다.


염증이 나던 중에 납득할 수 없는 태도를 보이는 상대방에게 더 끌려다니고 싶지 않아서 연주하던 곳을 그만뒀다.
나는 사회에 부적응자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 사회라면 내가 다른 곳으로 떠나면 될 것 같다.

집에 돌아와 하루를 보냈더니 맥이 풀리고 의욕이 없어진다.
언젠가 물결을 가르며 집에 돌아오던 여행길이 생각났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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