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31일 월요일

연말공연.


청중이 많으면 많을수록 연주하는 입장은 여유로와진다. 대구의 이 공연장에서는 천 명의 관객들이 가득 차있었다. 그분들 덕분에 잔향이 많이 사라졌다. 나는 음악이 흐를 때에 관객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늘 신기하다. 점잖을 빼는 분들이나 즐기려고 작정한 분들이나 그 동작의 크기만 다를뿐, 반응은 솔직하고 냉정하다.

간밤의 꿈에 작은 클럽에서 연주를 하는 꿈을 꾸다가, 잠꼬대를 하고 말았다. 일찍 일어나있던 아내가 짓궂게도 내 잠꼬대에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나는 그 대답에 다시 대답을 하다가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꿈속에서의 장면은 이제 막 클럽에 가득 앉아있는 분들의 무릎사이로 지나가면서 무대에 오르기 직전이었다. 무릎이 서로 닿을 정도의 공간에서 밤새 연주하기, 그것이 가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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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다니던 날.


바보같이 눈길에 발을 헛디뎠다. 금세 부어오르고 통증이 심했다.
집에 돌아와 더운 물에 담갔다가 주물러보기도 했지만 견딜 수 없이 아팠다.
자고 일어났더니 웬걸, 한 걸음 옮기기도 힘들었다.
전부터 계속 아프고 있던 왼손의 손가락도 치료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병원에 가기로 결심했다.
쌀쌀해진 일요일 오전에 옷을 차려 입고 뒤뚱거리며 문을 연 정형외과를 찾아갔다.
친절함을 배우기엔 평일의 업무가 너무 힘들었다는듯, 일요일에 출근해서 창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기라는듯, 퉁명스럽기 그지 없는 병원 직원들의 말투가 거슬려서 하마트면 아픈 발로 아무데나 걷어차줄뻔 했다. 접수창구의 여자아이는 원래 교육을 그렇게 받은 것인지, 사람을 바라보지도 않은채 중얼거리며 물었다. "뒷자리요."
나는 정말 못알아들어서, 뒷자리에 함께 와준 아내를 돌아보았다. 그랬더니 두 번째엔 내 얼굴을 쳐다보며, 그러나 여전히 중얼거리듯, 주민번호 뒷자리요, 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겨우 발목을 삐끗했을뿐이지만, 정말 고통을 견디며 병원을 찾아와 접수를 하려는 환자에게도 그렇게 대하고 있었을테니, 원.


말씨가 빠른 의사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발목의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처방을 받았다. 몹시 아픈 주사를 맞았고, 약도 받아 먹었다. 손가락의 문제는 심각하다고 겁을 주고 있었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에게나 테니스 선수들에게 흔히 있는 무엇무엇이라는 증상일 확률이 있으니 심하면 수술을 해야 좋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정밀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고 했다. 몹시 아픈 주사를 맞은 쪽의 궁둥이를 문지르면서 발목의 처치에 대한 값만 치르고 병원을 나섰다.
몇 주 만에 부모님 댁에 들러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결국은 어머니의 강한 확신과 막무가내에 이끌려 침을 놓아주는 집에 가게 되었다. 마침 오늘 침놓아주는 집에 가기로 되어있었던 어머니를, 그저 태워다드리고 도망쳐오고 싶었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침을 꽤 무서워한다.) 역시 함께 동행한 아내는, 자신의 살에 스테인레스 재질의 가느다란 쇠꼬챙이가 찔려 박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생글 생글 웃으며 구경하고 있었다.


어릴 적 부터 발목을 자주 다쳤어서, 침을 맞았던 일이 몇 번 있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그것을 두려워한다. 침이라는 것을 두려워한다기보다는 시술을 하는 사람을 미더워하지 않는 것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 자세히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지도 않을뿐더러, 아파서 찾아온 환자보다 수백명의 살에 침을 찔러본 내가 더 잘 알거든? 이라는 식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침대에 누워 발목과 손가락에 침을 맞기 시작했다. 고통스럽지 않아서 깜박 잠이 들 정도였다.


침을 맞고 집에 돌아왔더니 졸음이 쏟아져서 세 시간을 잤다.
자고 일어났더니 목이 말라서, 부엌으로 가서 물을 한 잔 가득 따라 마시고, 담배를 한 개 들고 재떨이를 찾아 다녔다. 문득, 어랍쇼, 통증을 느끼지 못한채 걸어다니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완전히 나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침의 상태와 비교하면 거의 다 나은 느낌이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네크의 상태가 많이 나빠져 있던 베이스 기타를 손보았다. 다시 조립하고, 조율한 뒤에, 조금 전까지 연습을 해보고 있었는데, 신기하다. 손가락의 통증이 없어졌다. 부어있던 왼손도 가라앉아서 이제 오른손과 비슷해졌다. 팔목도 멀쩡하고 움직임도 편하다. 그것참... 진통의 비결이 궁금하다.


정형외과의 주사도 맞아뒀고, 왼발과 왼손에 여러개의 침도 맞아두었으니 이제 곧 낫겠지.
모처럼 추운 겨울날씨가 반갑다. 몸이 나아지니까 반가와진다. 아침 무렵만 하더라도, 뭐가 이렇게 추운 것이냐고 투덜거렸다.

2007년 12월 28일 금요일

대구 공연 리허설.

리허설하는 내내 동굴 속처럼 모든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베이스앰프의 베이스 노브를 거의 1까지 줄여야 했다.


공연 후에.



한 달 동안, 베이스 줄을 4 셋트 소모했다. 대구에 가기 전날에 마지막 줄 셋트를 써버려서 여분의 베이스 줄이 없어서 조금 불안했다.

깊이 잠을 잔 적이 없었어서 마지막 공연엔 피로가 제법 쌓여있었다. 4 시간 가까이 장거리 운전을 한 까닭이기도 했겠지. 그런데에다, 공연이 끝난 후에 제법 술을 많이 마셨다.

올해 초 부터 체중이 줄어서 몸이 가벼워졌었는데, 4 개월만에 다시 살이 쪄버렸다. 어쩌면 이렇게 금세 옷이 꽉 끼여 조이고 행동하는데에 부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게다가 공연 내내 서있다가 보면 발목이 아프다. 공연사진에 찍혀있는 사진을 보면 얼굴이 더 둥글게 되어버렸다. 겨우내 더 통통해지기 전에 살을 빼야지.

2007년 12월 26일 수요일

나쁜 소리일때.


지난 주의 H 공연장에서는 소리가 좋아서 모두들 편안하게 연주했다.
이번 대구의 공연장은 그보다 크고 넓었다. 소리의 잔향이 너무 심해서 연주하기에 많이 힘들었다.
운동경기장이라던가 산이나 건조물을 마주보고 있는 야외공연장에서도 잔향이 너무 많아 애를 먹었던 적이 있었다. 이런 경우, 악기의 소리들은 귀여운 강아지가 되어버린다. 어떤 음을 치면 그 소리들은 공을 던지면 열심히 달려가 그것을 물고 다시 내가 서있는 곳까지 충성스럽게 되돌아오는 것 같았다. 모든 악기의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공간에 윙윙거리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다.

불편했지만 적응하기 위해 집중하고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이다. 경험으로 배워뒀던 몇 가지의 방법들이 제대로 적용되어줘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선택하는 방법은, 다른 연주자의 모니터 스피커 소리를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들을 수 있도록 내 모니터의 레벨을 줄여주는 일이다. 그리고 베이스 앰프의 Low EQ를 과감하게 줄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잔향이 너무 많은 공간에서, 이렇게까지 저음을 희생하면 과연 베이스 소리라고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될 정도로 줄여주는 시도를 해보면 그 효과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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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24일 월요일

레슨실에서.



1. 휴일의 사이에 끼워진 월요일 저녁. 오후에 학원에 나와봤더니 이런 날에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학생들이 가득.... 할 리는 없고, 몇 명만 복도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젊고 시간이 많아서 그렇겠지만, 그렇게 대충 대충 뭔가를 성취해보겠다는 생각이라면 반드시 음악이라는 것을 공부할 필요는 없지 않겠니,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2. 말하기를 바로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발음이나 말의 습관을 문제 삼자는 것이 아니고, 생각을 탓하는 것이다. 음악이란 말을 배우는 것과 같다.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면 차근 차근 제대로 말하기를 배워야 옳다. 색소폰이라고 쓰고 말해야 바르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를 해줘도 꼬박 꼬박 섹스폰이라고들 한다. 섹스를 하면서 전화를 건다는 의미가 아니라면 좀 읽고 쓰는 버릇이라도 해보렴. 여전히 전기 기타, 일렉트릭 기타를 그냥 일렉이라고 부른다. 그들중 아무도 그냥 Drum이라고만 쓰면 두드리는 북 한 개를 의미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다. 반드시 Drums라고 써야만 온전한 드럼 셋트를 의미하게 된다. 노래의 곡목을 쓸 때에 각 단어의 첫 철자를 대문자로 써야한다는 것도 그들은 '배우지 못해서' 모른다. 가르쳐주지 않아서, 漢時의 운율이라든가 소넷트는 14행시라는 것은 (이런 시대에는) 알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더라도 영어가사의 Rhyme은 이해해야 한다. 적어도 영어가사 노래를 발음을 잔뜩 굴려가며 부르고 있으려면 말이다.

3. 학원의 레슨을 잠시 쉬겠습니다,라고 굳이 인사까지 하고 갔던 학생들이 곧 다시 돌아왔다. 새로 들어와 시작하는 학생들도 계속 늘어난다. 다시 레슨을 하려는 학생들은 반갑다. 그러나 씁쓸하다. 그 정도의 시간을 투자하여 레슨을 받았으면 혼자 실력을 연마할 수 있도록 해줬어야 좋은 선생이었을테다. 새로 시작하기 위해 찾아온 학생들도 반갑지만 씁쓸하다. 무슨 음악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그냥 가요요, 라고 하던가 '찬양'이요, 라고 한다. '집에 가라'라고 해주고 싶은 충동이 울컥 치민다. 역시 별로 좋은 선생이 아닌 까닭일테다.
갈등이 있다. 기왕에 오랜 기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므로 나는 더 잘 가르치고 싶다. 그들에게 해줄 이야기들은 그칠줄 모르고 떠오른다. 그러나 문득 문득 이런 일은 그만두고 나는 자꾸 음악의 여행을 하러 다니고 싶다. 훌쩍 악기를 들고 떠나버리는 꿈도 꾼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레슨이란, 수 개월, 수 년 동안 끊임없이 가르치는 일이 아니다. 무엇을 연습하고 어떻게 음악을 들으며 연주할 것인가에 대해 책을 내밀어 주면, 책장을 넘겨가며 읽는 일은 학생의 몫이다.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만들어주지 못하는 선생이 되어서 나는 부끄럽다. 그 때문에 그들은 계속 부모의 돈을 들여, 혹은 고생하며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들여 일 년이 넘게 레슨을 받는다. 학생의 숫자는 늘어만 가고... 모르는 사람들은 나더러 더 많이 벌테니 좋은 일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숫자가 쌓여갈 수록 나는 부끄럽다.

2007년 12월 23일 일요일

피크 사용하기.





피크를 사용한 것은 이번 공연이 처음이었다. 사실은 삼 년 전 1월의 공연에서도 피크를 사용했던 적이 있었지만 단 한 곡에서 그냥 한 번 써봤을 뿐이었다. 이번엔 작정을 하고 두 번째의 연습날 부터 피크를 쥐고 있었다.그동안 이 밴드의 연주를 해오면서 베이스의 연주 자체에 아무래도 답답한 부분이 있었다. 그것이 피크를 사용한 음색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전부터 했었지만 나는 고집을 피우고 있었다. 문득 지금까지 한 번도 피크를 사용하는 연습을 진지하게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몇 주 전부터 생각이 날 때마다 조금씩 피크를 쥐고 연습해오고 있었다. 공연을 위한 연습 첫 날 어떤 곡들에서는 여전히 답답하게 들리는 베이스 소리를 확인하고 피크를 사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이번 공연에는 두어 곡을 제외하고 모두 피크로 연주했다. 결과물을 들어보고 싶다. 녹음해주신 분들이 계실테니 곧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무대 뒤에서.


올 봄에 이 곳에서 공연을 했었다. 그때에도 적어두었던 기억이 나는데, 십여 년 전에 (정확히는 그보다 더 오래되었더군요...) 나는 이 공연장의 무대 뒤에서 허드렛 일을 하고 있었다.

친구와 함께 연주자들에게 제공되는 음료수를 나르고 악기를 설치하고 공연 내내 무대 곁의 커텐 뒤에 서서 연주를 지켜보며 심부름을 했었다. 몇 번 같은 공연장의 무대에 서보니 마치 자주 오던 장소라도 되는 듯 편안했다. 이 무대 곁의 커텐 뒤에서 쳐다보이는 내 모습이 궁금했었는데, 고맙게도 사진을 얻게 되었다. 뷰파인더로 내가 서있는 무대 쪽을 바라보고 있는 그 자리에 선채로 몇 시간이고 연주를 구경하던 어릴적 내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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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공연.

한 해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연말의 공연들을 하면서 겨울을 보내고 있다.

계속 무대에서 생활하는 것이 즐겁고 좋지만, 집에 남겨둔 고양이들에게 매일 미안해하고 있다.
공연을 다 마치고 며칠 쉴 때엔 고양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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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22일 토요일

편안한 고양이.

잘 먹고 잘 뛰어노는 꼬마 고양이가 부럽게 보였다.
마음도 편하고 몸도 편한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와 함께 살게 되어 행복해졌다면 참 좋겠다.
하루 종일 까불고 장난만 치려는 고양이 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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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19일 수요일

평화로움.

조금만 더 자고 싶었는데 외출해야하는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고양이 순이가 곁에서 내 얼굴을 앞발로 꾹꾹 찔러보고 있었다. 나는 순이를 와락 끌어안고 선잠을 조금 더 잤다. 직전의 상황은 같은 자리에 순이 대신에 양아치 고양이 꼬맹이가 있었다.
낮에는 집안의 고양이들을 전부 목욕시켰다. 순이가 끝없이 투덜거리면서 씻겨지고 있는 동안 다른 고양이들은 욕실 문 앞에 줄지어 서서 근심어린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하여 욕실 앞에 줄을 선 순서대로 한 마리씩 목욕을 했고, 그 털북숭이들을 말려주고 닦아주느라 여러 장의 수건이 흠뻑 젖었다.
겨울의 정오 무렵. 창문에는 햇살이 가득하고 목욕을 마친 고양이들은 기분이 좋아져서 각자 자리를 잡고 졸기 시작했다. 기껏 아내가 바닥 청소를 해놓았더니, 빗질이 끝난 뒤에 굴러다니는 고양이 털들로 다시 어지러워졌다.
마음도 개운해졌고, 차가운 강바람이 불고 있는 한 낮의 공기가 상쾌했다. 잠들어 있는 고양이들을 하나씩 쓰다듬어 줬다. 평화로운 느낌에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곧 악기를 들고 집을 나와 일터로 떠났다. 아내는 아마 다시 청소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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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18일 화요일

녹음실.


오랜 친구와 나란히 앉아 악보를 앞에 두고 음악을 조물락거리고 있었다. 햇빛은 밝았고 방안은 따뜻했다. 건물의 높은 층에 녹음실이 있는 것이 더없이 좋았다. 지하가 아닌 것만으로도 상쾌했다. 문제는 흡연이었다. 담배 피우면 혼을 내겠다는 협박 문구들 때문에 녹음하는 내내 현관 밖으로 나가 덜덜 떨며 담배를 피웠다.
미국 흉내내기의 일환으로서의 금연정책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다) 문화 예술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라던가 하는 통계자료는 나올 수 없을까, 생각했다. 무엇인가 좋은 느낌이 들만하면 담배를 피우기 위해 나갔다 들어오느라고 양질의 음악을 녹음할 수 없었어요... 따위의 핑계를 댈 수 있다면 좋겠다.



2007년 12월 17일 월요일

가방을 좋아하는 고양이.



내가 맥북을 담아 들고 다니는 가방은 (벌써 꽤 오래도 썼다) 대단히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함께 사용하고 있는 기타가방과 함께 지난 수 년 동안 어디에나 같이 다녔다.
재봉선에 문제가 생긴다거나 하는 것은 물론 없고 여전히 새것처럼 편하고 견고하다.
고양이들이 마구 잡아 뜯어놓지만 않는다면 앞으로 몇 년 동안은 더 쓸 수도 있을지 모른다.
처음에는 샴고양이 순이가 가끔씩 발톱을 다듬느라 긁어놓았었고, 이제는 쬐그만 양아치 고양이 녀석이 제 장난감삼아 마음껏 유린하며 지낸다.
가방의 등받이부분이 푹신하고 편해서 순이도 자주 올라가 졸고는 했었는데, 이 녀석은 아예 손잡이 끈에 얼굴을 걸고 잠을 퍼자곤 한다.

2007년 12월 13일 목요일

공연 연습.



다음 주 부터 시작될 공연을 위해 연습을 하고 있다.

친구



'최대한 착하게 보이도록 찍자'라고 약속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충 그런 표정으로 되어버렸다.
녹음 작업에 불러준 친구의 마음이 고마왔다.
내년엔 그의 음악을 도울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침실


잠결에 조금씩 침대가 좁아지는 것을 느꼈다.
사람의 곁에 다가와 친근하게 구는 것이 귀엽다.
꼬마 고양이 꼼은 뻔뻔한데다 맷집 마저 좋다. 사람의 발에 몇 번 채이고 맞아도 잠을 깨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갈 줄을 모른다.
나는 똑바로 누워서 잠들었다가 깨어날 때엔 기묘하게 구부러진채로 일어나게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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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4일 화요일

달력



어릴적에 연세 많으셨던 분이 '달력은 점점 빨리 넘겨지도록 되어있다', 라고 하셨었다.
그것은 정말이었다.
학생들과 만나는 레슨실의 벽에는 달력이 붙어있는데, 나는 뭔가를 설명하다가 특별히 메모지가 없거나 다급하면 그냥 달력에다가 낙서를 해버리는 버릇이 있다.

어느덧 다 지나와버린 올해의 달력을 바라보니 한 해가 대단한 속도로 지나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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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


얼마전 어느 학교의 수시입시 필기시험 문제중에서, 정답이 나오지 않는 이상한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수험생들이 시험시간 내내 이의를 말하고 설명을 요구했지만 시험감독관들은 별 이상이 없는 문제라고 우기고 있었다고 했다. 결국은 시험종료 5분 전에 시험감독 선생들이 다급하게 문제가 잘못되었다며 정정을 해주고, 이미 답을 기입해버리고 말았던 학생들을 위해 대책을 마련해줬다고 들었다.
음표에 #이 한 개 빠져있는 것이 그렇게 심각해질 수 있다.

누구에게나 참정권이 주어지는 것이 옳다,라고 우리는 생각하도록 되어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길고 긴 역사를 통해서 인류가 기껏 배웠다는 것이 '개나 소나 투표하는' 훌륭한 제도인거구나, 라는 생각도 함께 한다.

정답이 없는 객관식 문제를 내어놓고 유권자들에게 답을 고르라는 것은 옳지 않은 짓이다. 거기에다가 간단 명료한 문항에 대한 답의 예시라는 것이 무려 열 두 개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어처구니 없는 퀴즈다. 넌센스 문제가 아니고서야 그 열 두 개 중에 정답이 있을까싶을 정도다.
풀리지 않는 객관식 문제를 해결하는 고전적이고 유치한 방법을 사용하여, 우선은 말도 안되는 답들을 일단 지워나가보자....라고 한다면, 결국 다 지워야 할 지경이다. 그저 최악과 적당히 악이 있을뿐, 도무지 이번 문제엔 정답이 없다. 

그러더니 시험종료가 다가오니까 이번엔 엉터리 답안 몇 개가 자기들끼리 서로 합쳐지더니 그걸 찍어달라고도 한다. 앞으로 문항의 수는 더 줄어들 수도 있겠지만 그래봤자 그 답이 그 답일테다.
객관식 답안의 갯수가 줄면 뭐하나, 어쨌거나 정답의 근사치조차 보이지 않는다. 시험감독관은 부정행위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아예 수험생들의 눈과 귀를 틀어막았다. 이것 저것 틀어막으려고만 하다보니 자기들이 뭘 막아야 옳은지도 잘 모른다.

학생들로 말하자면, 시험공부는 하지 않은채 불량한 사전정보만 가진 수험생들이 태반이다. 그것도 가관이거니와, 시험장 밖에서는 각계의 '업자'들이 학생들을 교란하고 호객한다. 심지어 협박도 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문제출제자로 여기고 수험생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것은 말하자면 막대한 돈과 시간을 들여 벌이는 헛지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 아무리 엉터리 객관식 시험이라고 해도, 즐겁게 하자, 라고 마음 먹는다. 얼마나 즐겁고 마땅한가. 아무리 엿같은 문제라고 해도 기꺼이 하려고 애쓴다. 평생 해먹겠다고 헌법을 바꾸거나 체육관에서 얼렁뚱땅 처리되고 말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아무리 엉터리 문제라고 해도 풀어보려 애쓸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시험이 끝날때까지 더 머리가 아프더라도 계속 고민하고 속상해보기로한다. 어찌되어도 매한가지 결과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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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캣 놀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신경이 쓰여 문밖으로 나가보았다. 꼬마 고양이가 비닐봉지를 목에 걸고 뛰어다니고 있었다. 집안의 어른 고양이들중 아무도 그에게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넌 결코 수퍼캣이 될 수 없어' 라고.
내가 어릴때에 어른들이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아서, 번번히 다리가 부러졌던 친구 녀석이 있었다.

사진 속의 표정을 보면 이 고양이는 뭔가 스스로 몹시 대견하다고 생각되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보아줘도 그냥 까만 봉지 키티인데...
꼬마 고양이는 한참 동안 비닐봉지를 두른채 집안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줄 선 고양이들.


아내가 찍어두었다가 보여준 사진.
장면의 설명은 이런 이야기인듯. 까만 고양이는 워낙 아내를 좋아하여, 음식을 만들거나 주방에서 분주하게 일해야할 때엔 반드시 곁에 와서 앉는다. 
개수대의 좁은 턱에 올라앉은 까망이를 보고 샴고양이가 뛰어 올라갔다.
그것을 멀리서 지켜보던 꼬마 고양이는, 깡통 통조림을 배급받는 것으로 알고 얼른 따라서 올라와 줄을 섰다.
맨 앞을 넘겨다 보지만, 그날 저녁의 배급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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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3일 월요일

단짝이 된 고양이들.



햇빛이 따뜻하게 비추던 오후, 소파위에서 벌어진 고양이들의 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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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30일 금요일

선배.


선배다운 사람이 있다.
인생의 기묘한 부분 중의 하나는, 의외성이 가득한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마주 앉아 무엇을 배운 적이 없지만 가르침을 나눠주신 선생님들이 계시고, 어릴 적부터 만나 어깨에 팔을 걸치고 다닌 적이 없지만 평생지기같은 친구들이 있고, 단 몇 번의 대화라든가 연주만으로도 존경심이 생겨지는 선배들이 있다. 
수백일 동안 얼굴을 보았을 학창시절의 교사들이 선생님처럼 여겨지지 않는다던가, 오래된 관계라는 것만으로 친구로 보아줄 수는 없는 관계가 있다던가, 함께 공부했거나 무엇인가를 나누어 겪었다고 해도 도저히 인생의 선배로 모셔줄 수 없는 사람들과는 반대인 경우들이다.

언제나 꾸준한, 인생이 음악으로 가득한 선배 한 분이 책을 냈다.
대뜸 구입하고 서명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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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요 나누기.



원래는 고양이들끼리 잠들어있길래 '설정' 삼아 나도 곁에 길게 누웠다.
뭔가 평온해져오더니 결국 나도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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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고양이.




졸음을 참아가며 밥상 위의 생선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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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아픈 고양이.



수술받은 곳은 아물었고, 그 대신 다른 고양이들에게 대들다가 얻어맞는 바람에 눈두덩에 새로운 상처가 생겼다.

얘는 하루 종일 두 가지만 하며 시간을 죽이는데, 잠을 자거나 말썽을 피우거나가 그 일과이다.
이 놈 때문에 잠을 설치기가 일쑤였어서 미워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고양이들끼리의 헤게모니가 정돈되는 형국이 된 모양이다.
두들겨 맞는 꼬맹이에게는 불쌍한 일이겠지만 잠을 자고 싶어하는 집안의 인간들에게는 다행한 일이다.
눈가의 상처가 안스러워서 다시 귀여워해주기로 했다.

2007년 11월 29일 목요일

투입지가 뭐냐.

꼭 8일 동안, 그러니까,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분의 삼성 관련 폭로가 이슈화될 무렵부터 시작하여 아침마다 주문한 적 없는 중앙일보가 문앞에 던져지고 있었다. 문 앞에 '중앙일보를 두고 가지 말아라' 라고 적어놓았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그 메모 위에 다른 광고를 턱 붙혀놓고 신문을 떨어뜨린채 가버렸다. 

사흘째 부터 배달원이 도착하는 시간을 노려 현관문을 열고 나가보았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드디어 오늘 아침, 우연히 신문이 도착하기 전에 잠을 깬 덕분에 배달원을 현장에서 붙잡을 수 있었다.
붙잡힌 배달원에게 무슨 죄가 있겠나. 나는 그저 옷을 얇게 입은채 뛰어나오는 바람에 추워서 인상을 썼을 뿐인데 현행범으로 옷섶을 붙잡혀버린 그의 얼굴에 두려움이 보였다. 연신 사과하며 절대로 신문을 두고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단단히 약속을 받은 후 등을 돌려 집으로 들어가버리는 내 등 뒤에 대고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고 외쳐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의 변명 중에 들었던 새로운 단어 한 개. '... 그것은 투입지여서, 상부의 지시에 의해 지국에서는 꼭 하도록 되어있습니다...'
투입지라, 투입지... 삼성아, 쪽팔리지도 않으냐.
투입지가 뭐냐고 물었더니 '무가지라고 보시면 됩니다'라고 대답해줬다.
그런거냐.

올해 초에 며칠 외국에 갔다가 집에 돌아왔을때에, 세 부의 조선일보가 문앞에 뒹굴고 있었다. 그때의 배달원은 내가 시간을 기다려 잡으러 나갈 수고를 덜어주느라 그랬던 것인지, 이른 아침에 초인종을 누르며 직접 찾아와줬었다. 찌푸린 얼굴로 문을 열었더니 몇 달만 공짜로 신문을 보라며 공손하게 말을 꺼냈었지. 선물로 자전거를 준다고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는 까먹었지만 현관문 앞에 서서 굴욕감을 느낀 얼굴로 나를 노려보던 젊은이의 표정은 기억이 난다.

그나저나, 이미 문앞에 접혀진채 차곡차곡 쌓여있는 쓰레기들을 내다 버릴 생각으로 귀찮아하고 있었는데, 낮에 부모님이 다녀가시면서 덥석 집어 가셨다. 그 종이들은 아마 시골로 실려가 고구마라든가 농작물을 위해 흙위에 깔리거나 할테지. 엄마가 요긴하게 쓰시길. 읽지는 마시고.

감기.


감기는 나아가고 있다. 아직은 콧물이 남아있고 기침도 하고 있지만. 병원에 가라는 말을 고집피우며 외면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정도로 병원에 갈 나이가 아니야,라고 우기고 있지만 더 바빠지는 다음 주가 되면 버티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일은 병원에 다녀올지도 모른다.

손가락을 다쳤는데, 벌써 4주가 되었다. 역시 고집을 피우며 병원에 가보지도 않고 저절로 나아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드디어 악기를 만지고 있지 않아도 아프기 시작했다.

커피가 떨어진 상태로 사흘을 보냈는데, 집안의 사람 두 명의 상태가 멍청해진 것 같았다. 각각 다른 커피로 세 봉지를 사와서 느리게 내려 마셨다. 지금은 잠들었다가 꿈을 꾸고 깨어나버린 새벽, 다시 커피 석 잔 분량을 만들어 단숨에 마셔버렸다. 집안은 잠들어있는 사람과 고양이들의 숨소리로 가득하다. 방안에는 커피 냄새로 그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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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8일 수요일

커피


어쨌든 동네에 커피 콩을 볶아 팔고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어째서 '어쨌든' 인가 하면, 그다지 로스팅이 훌륭하지도 않았고 원두가 특별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허술하고 엉성했다.
동네에서 커피를 팔고 있는 곳은 없기 때문에 그나마 반가운 장소가 되었다.
아침 일찍 커피집에 가서 몇 봉지의 커피를 샀다. 마루바닥에 커피 콩 자루들이 군데 군데 앉아서 졸고 있었다. 쌀처럼, 커피도 포대자루째로 집에 두고 퍼먹어도 되는 것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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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누워있었다.


추워져서 전기담요를 깔아뒀다.
그랬더니 고양이들이 제일 반가와했다.
밤중에 마루에 뭔가가 줄을 맞춰 놓여있는 것 처럼 보였다.
불을 켜봤더니 이런 모양으로 잠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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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전공.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입장에서 하지 않아야할 말인줄은 알지만, 음악을 전공한다는 것은 그저 여러가지 중의 한 가지 길일 뿐이다. 지름길도 아니고 유일한 출구도 아닌 것인데 그것에 목숨을 건 것 처럼 여긴다. 실제로는 대부분 인생의 아무 것도 걸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은 계속 자기 암시만 하고 있다. '나는 뭔가를 하고 있다'라고 하는.

문예창작과를 졸업해야만 소설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미술대학을 거쳐야만 화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열정이라는 것이 생겨나지 않는 이상 아무 것도 될 수 없다.
실용음악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입시 과목을 놓고 그것에 매진하고 있는 학생들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은 정말 음악을 좋아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일테다. 무엇을 위해서 연습을 하는지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대학에 입학하겠다고 레슨을 받으러 다니는 것을 보면서 나는 자꾸만 염증이 난다.

그들에게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있는지 물어보아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왜냐면 세상에 어떤 음악들이 있는지도 여지껏 모르기 때문이다. 음반을 구입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것들을 들어보라고 종이에 가득 적어줘도 듣지 않는다. 이유를 물어보면 어디에서 그 음악들을 다운로드해야하는지 몰라서라고 말을 한다. 그런 주제에 부모에게 악기를 사달라고 조르고 있는 것이다. 용돈을 아껴 공연을 보러 간 적도 없고, 인터넷을 뒤져 음악을 찾아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왜 학원을 수강하며 젊은 날을 보내는 것일까. 연애할 시간도 없을텐데.
왜들 그렇게 하향평준화를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일까.

대학의 수시입시라는 것 때문에 또 한 주 강의를 쉬게 되었다. 수없이 많은 학생들이 실용음악과 (도대체 어디에 실용된다는 것인지)에 지망하며 시험을 치르러 다니고 있는데... 부디 그런 경험들이 그들의 인생에 실용적인 무엇으로나마 남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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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7일 화요일

겨울용품


아내가 며칠간 대나무 바늘과 실을 가지고 열심히 뭔가를 하더니, 목도리와 모자를 만들어줬다.
아주 따뜻하다. 색상별로 몇 개 더 만들어달라고 할까 궁리중이다. 귀찮아할지도 모르지만, 뭐 뚝딱 만들어내던 것으로 보아 손쉽게 더 만들어주지 않을까.


힘들었던 11월.

감기로 절반을 보내고, 쓸모없는 일에 치이고, 불규칙한 수면으로 무기력했던 11월, 빨리 지나가라.
항상 일이라는 것은 함께 몰려다닌다. 다음 달의 연습일정들이 모두 정해졌는데, 아주 빠듯하다. 연습과 레슨, 공연, 녹음 등의 일들이 따로 모여 약속이라도 한듯 서로 날짜를 피해 하루씩 차지하고 앉았다. 모처럼 연락해준 친구의 녹음과 공연연습들이 반갑다. 그 사이 클럽에서의 연주도 있고 레슨의 강행군도 있다.

어서 숨가쁘게 겨울의 거리를 뛰어 다니고 싶은 마음과, 계속 방안에서 고양이들과 굴러다니며 잠이나 자고 싶은 마음이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다음 달은 반드시 다른 생각을 할 겨를 없이 바빠야만 한다. 다행이다. 선거라든가 세상의 일들에 가능한한 무뎌져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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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의 퇴원.

그동안 계속 입원해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으로 병원에 가서 실밥을 뽑고 상처를 치료하고, 더불어 수의사의 손에 발톱으로 자상도 남겨준 꼬마 고양이.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 뒷자리에 앉아서도 까불고 있었다.
매우 긍정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꼬마 고양이.
얘를 보고 있으면 좋은 기운이 생기는 것 같았다.
어서 말끔하게 낫고, 잘 먹고 잘 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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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4일 토요일

모여서 잠들었다.


고양이들과 소파를 나누어 사용하고 있다.
순이와 내가 둘이서만 쓸 때엔 넓었었는데, 이제 소파 한 개가 더 있어야 좋을 지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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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썽꾸러기.


이렇게 심한 장난꾸러기, 말썽꾸러기 고양이가 있을줄이야.
나는 고양이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약간의 조증 증세가 있는 녀석이라고 규정지었는데, 아내는 그저 활발하고 장난 좋아하는 어린 고양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너무 많이 빨리 뛰어다니고 노는 바람에 정신이 없다. 드디어 수술한 곳의 실밥을 풀어내고 머리에 쓴 갓을 벗을 날이 되었는데, 걱정이다. 얼마나 더 신나게 뛰어다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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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9일 월요일

넘겨다 보기.


큰 언니를 넘겨다보는 꼬마 고양이.


큰 언니 (?) ....를 넘겨다보는 다 큰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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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8일 일요일

괴발.

肉球.
고양이의 발을 일본에서 일컫는 단어라고 들었다. 肉球는 발가락들을 말하고, 발바닥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른 이름이 있다고 했었다.

우리말에는 특별히 고양이의 발에 이름을 붙혀준 것이 없다. 단지 고양이의 발을 괴발이라고 말했었는데, '괴발개발 썼다'라고 말하면 형편없이 못쓴 글씨를 흉보거나 하는 말이었다. 이것이 변하여 요즘에는 주로 '개발새발' 이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괴발딛고 걸었다, 라고 하는 표현도 있었다. 고양이가 발을 딛듯이 조용히 소리내지 않고 걷는다는 뜻이었다. 이런 말들을 나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데, 점점 쓰지 않으므로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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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고양이 퇴원.

동물들을 자동차 안에 함께 태우고 이동할 때엔 반드시 이동장 안에 넣어서 좌석벨트를 채워준다거나 그래야 한다. 
꽤나 위험한 짓이었지만 가방 안에서 꺅꺅거리며 어찌나 소란을 피우던지 잠시 앞유리 앞에 앉혀줬다. 시간이 지나자 저 좁은 자리에서 잠도 자거나 했다. 

회전하거나 자동차가 멈출 때에 눈을 감고도 잘 알아서 균형을 잡는 것은 고양이로서는 쉬운 일인 것인지, 얘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이 자세로 앉아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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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나는 귀찮아서 병원을 가지 않고 버텨보려하다가 드디어 두통과 기침까지 시작되었다.
이렇게 게으름만 피우는 사내와 함께 있으려면 참을성이 아주 많아야할 것 같다....라고, 뻔뻔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아내가 약을 사다주고 뜨거운 국을 해줘서 그것을 받아먹고 겨우 나아가고 있다.

눈이 시리고 몸은 으슬거려서 운전은 커녕 집 밖으로 나가기도 싫었지만, 배를 꿰맨 채로 낫기를 기다려야하는 꼬마 고양이를 태우고 동물병원으로 나섰다.

고양이는 주사를 몇 대 더 맞고, 회복이 빠르니 더 이상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한 주일 후에 실밥을 제거하러 한 번 쯤 병원에 들러보면 된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아내는 팔기 위해 진열해놓은 (아무리 잘 포장해서 말한다고 해도 결국 그런 것이다) 새끼 고양이들 앞에 선채로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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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졌다.


아침 일찍, 나는 주차해둔 자동차를 옮겨 놓기 위해 밖에 나갔었다.
어제밤에 자리가 없어서 다른 차를 가로막아 놓았었다. 그대로 두고 아침에 잠들었다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을 것이어서 적당한 빈 자리가 생겼을만한 시간을 기다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두꺼운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코 끝에 겨울 냄새가 훅 하고 들어왔다. 추워졌다. 몸살 기운으로 갑자기 몸이 떨리기도 했지만 기분 좋았다. 여름에는 속절없이 비가 계속 내려야 좋고 겨울에는 추워야 나는 좋다. 그런데 비가 내리고 추워지면 곤란을 겪는 분들이 있을테니 마냥 좋다고만 하는 것도 죄스럽다.

집안에 다시 돌아오니 따뜻한 공기가 그윽했다. 고양이들은 밖의 사정이 어떤지도 모른채로 사이좋게 흩어져 잠자고 있었다. 환자 고양이 꼬맹이는 제일 따뜻한 방 안에서 길게 늘어져 자고 있었다.

이 집의 사람 여자 한 명은 잠을 설치며 고양이의 약을 네 번 먹이고 사람 사내의 약을 챙겨 먹이고, 사료를 여러 번 덜어주고 밥을 여러 번 차려 주느라 휴일을 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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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자국

꼬맹이 녀석의 배에 남겨진 바느질 자국.

아내가 꼬맹이 고양이 녀석을 가리켜 '옆구리 터진 넘'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건 좀 심했다고 생각했다.
옆구리 꿰맨 놈이라고 해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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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7일 토요일

엉겨붙는 고양이.


함께 살기 시작한지 불과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큰 일들만 만들어내고 있는 꼬맹이 고양이.

갑자기 입원하고 수술을 해야했던 날의 장면이다. 자꾸만 사람의 베게를 차지하고 잠을 자는 바람에 녀석을 번쩍 들어 다른 곳에 놓아두고 누워야하는데 그러면 아예 사람 위에 올라와 치근대다가 잠들곤 했다. 배에 실밥자국이 주루룩 생겨버린 지금도 그 버릇은 여전하다. 은근히 무거워서, 반드시 잠을 설치게 된다.

'기존 질서 개무시'를 삶의 자세로 삼고 있는 꼬맹이 녀석은 이제 어른 고양이들의 잠자리도 제 멋대로 차지하고 잠을 잔다. 어른 고양이들은 뭐라고 하지도 않고 자리를 비켜주거나 함께 엉덩이를 대고 자거나 하고 있다.

내 고양이.


깊은 밤이 되면 나는 혼자 한 쪽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경우가 잦다.
가능한 소란스럽지 않게 하기 위해 방문을 닫아두고 창문도 닫는다. (사실은 요즘 추우니까)
다른 사람과 고양이들은 집안의 다른 곳에서 각자의 자리를 잡고 잠을 자고 있다.
다만 고양이 순이는 나와 함께 방에서 밤 시간을 보낸다. 내 곁에서 졸다가, 일부러 가까이 다가와 참견을 하다가, 장난을 걸다가, 다시 근처에 누워 잠을 청하더라도 늘 함께 있어준다. 음악소리가 거슬리면 구석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을 잔다. 몸을 길게 펴고 편하게 자는 것을 좋아하는 고양이인데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함께 있는 것을 보면 미안하기도 하고 좀 미련해보이기도 한다.

커피를 만들어 놓으면 적당히 식을 즈음 발로 찍어 먹어보거나 한다. 요즘은 대담하게 컵에 머리를 박고 훌쩍 훌쩍 마시기도 한다.
기타를 치고 있을 때에 무릎 위에 올라와 앉는다.
하던 일을 멈추고 순이야, 하고 부르면 눈을 마주치며 그르릉 소리를 낸다.
나와 함께 지내는 몇 년 동안 고양이 순이는 하루도 어김없이 내 곁에 함께 있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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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어둠 속에서 iPod과 맥을 연결하기 위해 커넥터를 꽂았더니 잠시 밝아졌다. 작은 화면 위에 피크가 있었어서 예뻐보였다.

좋은 오디오를 사놓고도 마음껏 들어본 적이 없다.
언제나 한밤중이 되어서야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기니까, 음량을 마음대로 크게 할 수가 없다. 결국은 헤드폰을 쓰거나 컴퓨터 앞에서 작은 음량의 모니터 스피커를 켜두거나 해야하는 사정이다.
팻 메스니 그룹의 The Way Up 같은 음반을 처음 부터 끝까지 적당히 큰 음량으로 주욱 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아파트의 10층에 살고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
제법 방음 공사를 해놓았다는 건물인데도 심야시간 집안의 어떤 벽 쪽에서는 이웃집의 대화마저도 들을 수 있다. 벽에 귀를 대면 내용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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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6일 금요일

환자들의 하룻밤.


감기 기운이 가득했는데 며칠 불량한 수면을 취했던 것이 좋지 않았다.
이 정도의 기온에 두꺼운 옷을 입는 것도 거추장스러워서 부실하게 입고 다녔던 것도 나빴다.
감기 몸살 때문에 힘이 빠졌다.

밤중에 나는 어린 고양이의 몸에 상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큰 고양이들에게 두들겨 맞아서 생긴 상처인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피부 안쪽에 염증이 생긴 것 같았다. 급히 병원에 데리고 가서야 피부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종양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갑작스런 일이었지만 24시간 동물병원이 그나마 있었다는 것에 고마와했다.


혈액검사를 하도록 허락하고 수술을 위해 입원을 시켰다. 이 꼬마 고양이가 그동안 얼마나 아팠을까. 신경이 많이 쓰였다. 고양이를 병원에 둔 채로 돌아오는 길에 맥이 풀렸었는지 몸살이 심해졌다. 환절기마다 감기로 고생을 했다가 올해엔 그럭 저럭 넘어가는 것 같았어서 너무 방심했었던 탓이다.

아내가 죽을 만들어줘서 겨우 배를 채우고 일하러 나갈 수 있었다. 밤중에 일을 마치고 고양이를 데려오기 위해 다시 병원으로 갔다. 아내는 주기적인 통증이 심하여 힘들어하고 있었고 나는 감기 몸살에, 어린 고양이는 4cm가 넘는 피부종양 수술을 마친 뒤 기운이 빠진채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꼬마 고양이 녀석은 병원의 의사 앞에서는 힘 없이 축 늘어진채로 불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자동차에 데리고 올라타자마자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불평을 하는 정도였다. 자동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그것이 심한 불만이 섞인 목소리로 바뀌었다.
나중에는 아예 욕설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동차 안에서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운전하기에 위험할 정도였다. 아내는 안간힘을 쓰며 꼬맹이를 달래려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우리는 꼬마 고양이가 왜 그러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고양이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뒤이어 아내가 조용한 목소리로 새로운 소식을 말해줬다.
"얘가 아무래도 오줌을 누고 있는듯한 기분인데... "
자동차를 잠시 세우고 실내등을 켰다. 뒤를 돌아보았더니 과연 졸졸졸 아내의 바지 위에 오줌을 누고 있는 중이었다.
꽤 많은 양의 오줌을 누고있던 어린 고양이의 얼굴에는 긴장과 갈등이 해결되는 다양한 표정이 지나가고 있었다.
생리욕구를 해결하자 금세 다시 수술을 마치고 하루를 굶은 어린 고양이로 돌아와 축 늘어져서 금세 졸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그 난리를 떨었던 것을 우리 두 사람은 알아들어주지 못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꼬마 고양이는 두 손으로 어떻게든 머리에 씌어진 기구를 벗겨내려 애를 쓰다가, 화를 내며 고양이 화장실에 가서 한 번 구르고는 그 꼴을 한 채로 졸졸졸 뛰어가 밥그릇을 찾았다. 내일 아침까지는 더 굶어야 한다는 의사의 처방이 있었으므로 밥그릇을 빼앗았다. 솜에 물을 적셔 조금 먹도록 한 다음, 더 뛰어다니다가 수술한 상처가 덧나기라도 할까봐 고양이 이동장 안에 넣어주었다. 그 안에서 얌전히 있을 꼬맹이 고양이가 아니겠지만, 어쨌든.

다른 고양이들은 그들대로 감정이 상한 녀석, 일상이 깨어져 뭔가 불안한 녀석, 어린 놈이 아파하는 것 같아 걱정해주는 녀석으로 나뉘어 집안을 정신없게 했다. 그리고 아내는  통증으로 고생을 하고 나는 감기 몸살이었다. 아내는 고양이 이동장을 끌어다놓고 제일 심한 환자인 꼬맹이를 지켜보랴 다른 고양이들 돌봐주랴 고생스러웠던 밤을 보냈다.

이쯤되면 좀 누워서 엄살을 부리며 몸살을 앓고도 싶긴 한데, 종일 죽만 먹었더니 배도 고프고 잠들어버리기엔 시간이 아까왔다. 이런 저런 환자들의 만 하루가 지났다. 꼬맹이 고양이는 곧 건강해질테고 나머지 고양이들의 기분도 이내 풀어지면 좋겠다. 나는 내일 낮이 되도록 나아지지 않으면 병원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

이제야 고양이들은 각자 자리를 잡고 누워 잠을 자기 시작했다. 집안은 새근 새근 조용한 숨소리로 가득하다.

꼬마 고양이.


꼬마 고양이가 수술을 받은지 며칠이 지났다.
목에 갓을 두른채 지내려니 장난을 좋아하는 꼬마 고양이는 매일 따분하다.


머지않아 실밥을 풀고 상처가 아물면 다시 집안을 폭주하며 뛰어 놀 것이다.
귀여운 고양이가 어서 낫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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