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28일 월요일

분실

방송사의 복도 끝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는 좋았고, 리허설을 마치고 늦은 점심식사를 하러 가던 길이었다.
그리고 그날의 녹화를 잘 마치고 난 다음, 집에 돌아와서 짐을 풀어놓으면서야 비로소 수 년 동안 잘 써왔던 케이블을 그곳에 두고 와버린 것을 알았다.
그 바로 전 날, 다른 공연장에서 연주를 마치고 늘 지니고 다니던 케이블을 잃어버리고 와서 평소 아끼던 다른 것을 가지고 나갔던 참이었다. 이틀 사이에 자주 사용하던 케이블 두 개를 홀라당 분실하고 말았다.

시간을 다투는 상황이 되거나, 조금만 다급해지면 덜렁거리고 뭔가를 잃어버린다. 어릴 때에도 그랬다. 주변의 스탭들이 빨리 빨리를 자꾸 말하고 있으면 그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서두르게 된다. 이런 일들은 여러번 있었다. 앰프 위에 담배와 지갑을 두고 와버린 적도 있었고 패치 케이블 잃어버리긴 일쑤였고 심지어 자동차 열쇠를 두고 온 적도 있었다. 대부분은 다시 되찾을 수 있었지만 이번엔 포기했다.

이제부터 주위에서 아무리 서둘러달라고 해도 느릿 느릿 내 할 일 다하고 움직여야겠다. 


,

2010년 6월 20일 일요일

중앙박물관 공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공연을 했다.
넓고 탁 트인 공간이었다. 소리도 좋았다.

그곳에는 아직도 되돌려받아야 할 땅이 많이 남아있다.
그것이 너무 먼 이야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

2010년 6월 18일 금요일

태안 공연

무대 위에 스모그를 잔뜩 뿜어놓았고 조명은 어두웠다.
습한 바닷바람이 살에 닿았다.
풀벌레 소리가 듣기 좋았던 밤이었다.


.

2010년 6월 13일 일요일

양귀비

집 앞 강가에 양귀비 꽃이 피었다며 아내가 사진을 찍어 왔다. 꽃을 보고는 잘 모르고... 잎을 보고서야 알아보는 나라는 넘은 정말이지... 답이 없다.

오래 전 화천의 어느 군 부대에서 한 여름에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날은 덥기도 무척 더웠는데, 기억나지는 않지만 무슨 일이었는지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있었다. 훈련병 시절의 거의 마지막 즈음이었던가.
진흙탕을 구르고 땀에 적셔진 옷이 다시 마를 무렵 갑자기 소나기가 왔었다. 어찌나 시원했던지. 곁에 있던 나이 든 하사관 한 사람이, "이게 양귀비다. 이쁘냐?" 라고 물었었다. 꽃이 예쁜지를 묻는 것인지 내눈에 그 꽃이 예쁘게 보이는지를 묻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꽃이니까 예쁘겠지 뭐... 그렇게 중얼거리며 허락도 없이 젖은 담배를 피웠던 것 같다.

소총에 군복, 땀냄새와 맛대가리 없는 양배추 김치, 사내들의 호르몬 과잉, 욕설과 음담들이 뒤섞인 여름날이었다. 소나기를 피하며 담배를 물고 물끄러미 바라보던 꽃 한 송이가 예뻐보이는 건 당연했다.

.

나라

공연 리허설을 마치고 담배 한 개비 입에 문 채 건물 밖에 나왔더니 태극기가 비를 맞으며 펄럭이고 있었다.
원래의 일정에서 조정되어 우연히 오늘이 되어버린 공연이었다. 새벽에 빗소리를 듣고 자다가 일어나서 상쾌해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기분좋게 집을 나서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났다. 그분들이 인사차 나에게 건네는 말씀이,
"어디 응원하러 안가시고 일하러 가시나요?"

축구 경기를 응원하는 일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 이상할 것도 없는 지금의 상황이지만 뭔가 소외감마저 생겼다.

나는 내 나라가 존재만으로 사랑할만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올림픽과 월드컵도 좋지만 그냥 내 나라의 풀 한 포기, 사람들과 공기의 냄새가 너무 좋아서 국가란 것이 무엇인지도 그만 잊을만큼이 되면 참 좋겠다.


,

2010년 6월 8일 화요일

고양이의 인사

밖에서 공연 리허설을 하는 도중에 아내가 집에서 사진을 보내줬다. 자랑하려고 보내온 사진이었다. 앉아 있던 아내에게 순이가 뛰어올라와 한참 동안 그르릉거리며 좋아해주고 있었다고 했다.

고양이와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겪는 일일텐데,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 인사를 주고 받는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처음 눈이 마주친 고양이 순서로 다가와 한 마리씩 몸을 부비고 인사를 해준다. 눈을 지긋이 감고 다가와 코를 비비기도 한다. 눈을 마주쳐 얼굴을 올려다보며 갸르릉 소리를 낸다. 이럴 때 세심하게 대답해주지 않으면 다음부터는 그만 무시를 당하기도 한다. 대충 넘어가면 한동안 개 혹은 돌 취급을 당한다. 마주쳐도 비켜 가버릴때도 있다.

소파에서 잠들었다가 고양이들 중 누군가가 깨워서 일어날 때도 있다. 복잡하고 다양한 이유로 깨운다. 고의성 없이 깨울 때도 있다. 그곳에 누워보고 싶으니까 좀 비켜달라, 라고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경우엔 그날 아침에 내가 인사를 성의없이 했던 것은 아닌지 기억해볼 필요가 있다.


.

두 사람

연습실에서 합주를 하던 장면이다.
나는 나 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과 주로 작업하고 연습해왔다. 언제나 귀한 경험이었고 행복했다고 과장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나이 많은 분들과의 인연이 많았다.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지지만 그렇다고 당연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주 배웠고 고마운 가르침을 얻어왔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음악을 함께 연주하고 있으면, 그 공간 안에는 사람 숫자 만큼의 시간들이 돌아다닌다고 생각했다. 그윽해질 때까지 담궈져있던 각자의 과거들이 소리로 변해서 나오는 것 같다.

윤기형님은 이제 아이폰 '주물럭거리기'에 완전히 익숙해지셨다.



.

2010년 6월 6일 일요일

그게 뭐냔 말이다.

이해해주기 어려운 일이 있다.
많은 연주자들을 불러 모아 큰 규모의 공연을 만드는데에 얼마나 많은 수고와 돈이 드는지 짐작이 간다. 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땀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해하기가 어렵다.

두 개의 서로 다른 무대를 굳이 가깝게 붙여놓고 각각의 공연을 동시에 진행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옆 무대의 소리가 다 들리고 있어서 이쪽에서 한 곡이 끝나면 잠시 이웃무대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다. 멀티태스킹 콘서트인가.

공연 아홉 시간 전에 리허설을 했다. 좋은 공연을 만들기 위해 긴 시간을 배려하며 노력한 결과로 언제나 본공연 때에는 모니터가 엉망인 까닭은 무엇인지. 뮤지션들이 열악한 상황에 익숙해지도록 돕고 싶어서인가.

방송에 쓰일 화면이 필요한 것은 잘 알겠다. 카메라맨은 언제나 드럼세트 곁에 다가가 카메라를 빙빙 돌리다가 연주를 방해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스네어드럼을 접사촬영해야 한다는 방송사의 사내규정 같은 것이 있는 것일까.
드럼세트가 놓여진 단을 밟고 서는 바람에 무대가 기울어졌고 흔들렸다. 연주하는 사람이 어떤 스트레스를 받는지 고려해주지 않는 배짱은 무엇인지. 그 정도의 적극성이 있다면 지금 소리를 내고 있는 연주자가 누구인지 리허설 때에 왜 미리 알아두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런 일들은 작년에도 있었고 그 전에도 그래왔다.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다. 이제는 정말 그냥 원래 그런 것인가보다, 하고 순응하면 안되는 것 아닐까. 우리들의 선배들이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수 없는 시절을 보내느라 좋은 시스템을 물려주지 못했다면 지금의 우리들이라도 달라져야 옳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 안간힘으로 연주되는 음악이 입장료를 지불한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있을 것인지는 뻔한 것 아닌가. 그 값 비싼 장비들을 들여놓고서 고작 그것이 뭔가 말이다.



,

2010년 6월 5일 토요일

Time To Rock 공연

작년에 이어 다시 참여했던 공연이었다. 낮 한 시에 리허설을 했고 출연 시간은 밤 열시 반이었다.

가능하면 낮에 다시 동네로 돌아와 두 시간 짜리 일을 하고 다시 공연장으로 가려고 했다. 금요일 밤의 재즈 연주도 구경하러 가지 못했다. 도로는 끔찍하게 막히고 있었다. 어디로 이동을 할 용기를 낼 수 없었다.

그리고 많이 피곤했던 공연이었다.


.

2010년 6월 3일 목요일

밤 새워 지켜봤다.

많이 피곤했다.
개표방송을 시작한다는 아나운서의 말을 들으며 방에 들어가 잠을 자고 나왔다. 밤 열시에 다시 일어나서 그 후로 계속 선거결과를 보고 있었다.
트위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TV 앞에 앉아서 악기를 안은채 틱 증후군처럼 줄을 두드리고 있었다. 담배도 피웠다.

이 달에는 공연들이 많다. 레슨도 많다. 규모가 큰 음악공연들과 입시시장의 제물이 되고 있는 학생들을 번갈아 접하다 보면 세상의 일에 더 민감해진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주제여서 지켜보는 일이라도 게을리하지 않고 싶다는 기분이 든다.


,

2010년 6월 1일 화요일

헤이리 공연

비가 온다는 예보가 살짝 비켜가준 덕분에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일기예보는 늘 살짝 비켜가주고 있다.

처음 가본 헤이리에서의 야외공연이었다.
가족모임처럼 놀러가면 좋겠다는 발상으로 오랜만에 아내도 함께 갔었다.
상훈씨네 가족이과 미국에서 우연히 날짜 맞춰 귀국하신 둘째형님도 뵈었다.
공연시간 한 시간 전에 전화연락이 되었던 동생네 식구들이 놀라운 속도로 도착, 연주 도중에 조카들과 가족들의 얼굴도 보게 되었다.

'다음 번엔 놀러오자~'라는 리더분의 말씀에 모두들 좋다고 대답은 했지만, 모두 일에 쫒기는 사람들... 그다지 가능성 없는줄은 알고 있다.

소풍이 될 줄 알았던 하루였는데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공연날이었다.
모처럼 함께 왔던 아내는 카페의 터줏대감 고양이와 삽살개랑 시간을 다 보냈던 일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헤이리의 모모

우리 고양이가 어떤 품종이고 얼마짜리이고...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은 스스로의 가치도 품종과 가격으로 매겨두고 있을지 모른다. 고양이의 가격이 하락하거나 하면 아마 사료값부터 아낄 분들이다.

헤이리에서 만난 고양이 모모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지어지기 전 부터 그곳에서 살고 있었는데, 익숙하고 평화로운 그곳을 떠나는 것 보다는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할 것이라고 여긴 새 주인분들이 그대로 맡아서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다고 했다.
"거두어 주신 거군요~"라고 인사말을 드렸더니, 그 아주머니 하시는 말씀,

"얘가 우리를 거둔 거지요."

함께 사는 고양이로부터 힘이 들 때 마다 얼마나 위로를 받았는지 몰라요, 라고 했다.
담장도 없는 곳에서 풀밭을 마음대로 뛰어 놀도록 내버려둘 수 있는 이유를 알았다. 모모는 그분들을 데리고 평생 거기에서 살겠지. 종자를 따지고 가격이 얼마이고를 말하는 분들은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마누라님은 삽살개와 장난하다가 고양이와 부비며 놀다가를 반복했다. 고양이 모모는 아내의 품에 안겨 골골거리고 어깨를 타고 뛰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